그녀는 비록 지성과 미모를 겸비하고 신분도 높았지만 자신이 기껏해야 방 감독관의 노리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방 감독관보다는 오히려 만천우 일행을 더 미워하는 모습을 보였다.그녀는 본능적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신이 오늘 이런 수모와 치욕을 당한 것은 모두 이 허여멀건한 하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이 남자가 없었다면 그녀는 자신을 아끼는 방 감독관에게 발길질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이 원수! 천하의 못된 놈!하현은 그녀가 자신에 대해 이런 한을 품은 지 꿈에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알아차렸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에게 아첨하는 이런 여자는 방해물만 될 뿐이다.방 감독관은 자신의 얼굴을 쓱 문지른 뒤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만천구 일행을 바라보았다.“만 선생, 그리고 여러분. 죄송합니다.”“이 천한 여자가 눈이 멀어 함부로 당신들을 건드렸습니다.”“대신 사과드립니다.”말을 하면서 방 감독관은 뜻밖에도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그는 10대 최고 가문인 방 씨 가문 출신으로 거물 중의 거물이라 할 수 있고 인맥도 상당했다.그렇지 않았으면 감독관 자리에 앉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리고 방 씨 가문에서 그를 이 자리에 옹위한 것은 용위의 힘을 빌려 방 씨 가문에 득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방 씨 가문조차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들이 정성껏 준비한 감독관이라는 직책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이런 수모를 당할 줄은!만 씨 가문만의 능력으론 부족할지 모르나 최근에 무성에 나타난 분이 방 감독관을 해임하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말 한마디면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그러자 방 감독관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만 선생, 당신들과 그분은 무슨 일로 여기에 오셨습니까?”“지나가는 일입니까?”방 감독관은 분명 방금 전 만천구한테 뺨을 맞은 일을 완전히 잊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우리가 마침 여기 무성에 왔는데 버젓이 그런
만천구의 말에 방 감독관의 안색이 급변했다.이 남자의 손에 권력이 있으니 누가 말대꾸를 할 수 있겠는가?평소에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일지 모르지만 의지가 있는 사람이 한번 마음먹고 정말로 조사하려고 하면 하나하나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만천구의 태도를 보고 방 감독관의 안색이 말도 못 하게 일그러졌다.그는 원래 이 상황을 수습해 보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려고 했다.하지만 일이 이 지경으로 흘러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망했다!완전히 망했다!직책도, 그 많던 부귀영화도 다 사라질 것이다.순간 방 감독관은 상관 경홍근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이놈이 자신을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하현과 이렇게 부딪힐 수 있었겠는가?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담?방 감독관을 따르던 곱상한 여자들도 모두 충격에 휩싸인 듯 손으로 작은 입을 가렸다.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만천구 일행이 정말로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방 감독관 같은 거물에게 직접 손을 쓰다니!진 선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이 자리를 아마 평생 되찾을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만 선생, 만 서장, 진 부당주, 한여침...”“다들 무성 안에서 거물들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잖습니까?”“만사 너무 빡빡하게 처리하면 후환도 좋지 않고요. 적당히 하고 좋게 좋게 지내는 게 어떨까요?”경홍근은 더 이상 침착할 수가 없었다.계속 눈앞의 상황을 좌시할 수도 없었다.만약 방 감독관이 이대로 고꾸라진다면 자신과 조한철에게까지 불똥이 튈 게 뻔하기 때문이다.방 씨 가문은 분명 그에게 잘못을 물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경홍근은 조한철뿐만 아니라 방 씨 가문에 가서도 그들이 설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설령 경홍근이 금전파의 수장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절대 봐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그를 죽이려 들 것이다.그래서 경홍근은 지금 엄청
만천구의 진지한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고 어느 때보다 엄중함이 서려 있었다.“만약 당신들이 건드린 사람이 나이고 만 씨 가문이었다면 조한철의 얼굴을 봐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 당신들과 따지지 않았을 겁니다.”“그러나 당신들은 오늘 밤 하현을 건드렸고 내가 듣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고 보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보였어요.”“법을 위해서도 공명정대를 위해서도 이 일은 간단히 처리할 수 없습니다!”“방 감독관, 내일은 아마 짐을 싸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겁니다!”“물론 내가 추궁하는 말에 똑바로 앉아 모든 걸 감당해 낼 수 있다면 내 말을 무시해도 됩니다.”방 감독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망했다!그는 스스로 무슨 짓을 했는지 마음속으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그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기만 하면 죽지는 않더라도 완전히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이런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물러나는 게 낫다.이런 생각이 들자 방 감독관의 얼굴에는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기색이 감돌았다.그는 지금까지 화내고 싶으면 내고 사람을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제멋대로 행동했었다.그러나 지금은 감히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함부로 하다가는 감투를 비롯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어쩌면 목숨마저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상황을 파악한 뒤 경홍근은 눈썹을 들었다 놓으며 움찔한 뒤 입을 열었다.“만 선생, 여러분, 당신들 정말 조 세자의 체면도 봐주지 않겠다는 겁니까?”“죽기 살기로 해 보자는 거냐구요?”그는 말을 마치며 필사적으로 방 감독관에게 눈짓을 했다.방 감독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뭔가를 깨달은 듯 얼른 나섰다.“만 선생, 조 세자까지 갈 것까지도 없어요. 당신들 우리 방 씨 가문은 생각지도 않는 겁니까?”“난 방 씨 가문 후계자의 심복입니다!”“우리 방 씨 가문의 체면도 봐주지 않고 어떻게 무성에서 일을 할 수 있겠어요? 후환이 두렵지도 않습니까?”“무조건 다 몰살시켜버리겠다니 뒤탈이 두렵
한여침은 무시하려면 무시할 수 있다.진주희도 아무것도 아니다.그러나 그들 뒤에 더 많은 뒷배가 있었다...조한철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수 있다.하지만 방 감독관의 감투는 완전히 사라진다.경홍근의 금전파도 완전히 와해되고 무성의 6대 파벌은 5대 파벌로 바뀌게 될 것이다.이것은 두 사람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결말이었다.그러나 지금 그들에겐 이 파국을 헤쳐나갈 방법이 없었다.“하 씨! 만 선생을 좀 설득해 봐?”“이렇게 큰 인물들이 당신 때문에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데 이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그래서 당신이 얻는 게 뭐야?”바로 그때 방금 발에 걷어차인 여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하현을 노려보며 원망에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당신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여자들 치마폭에 싸여서 이미 충분히 이득을 봤잖아?”“적당히 하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이런 거물들이 완전히 발칵 뒤집히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무성 경제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알기나 해?”“당신은 지금 사태가 악화되는 걸 막기는커녕 가만히 방관만 하고 있어! 이렇게 하면 더욱 역효과가 난다는 거 몰라?”“방 감독관 뒤에는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방 씨 가문이 있어. 상관 뒤에는 5대 문벌 중 하나인 서북 조 씨 가문이 있다는 거 잊지 마!”“10대 최고 가문과 5대 문벌이야!”“그들이 만만하다고 생각해?”“만일 여기서 터지면 당신 같은 소인배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거야! 백 번 죽어도 배상할 수 없는 거액을 배상해야 할 거라고!”“내 말 좀 들어봐!”“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똑똑히 알아야지. 적당할 때 그만둘 줄도 알아야 하고!”분명 이 여자는 하현이 나서서 일을 좋게 좋게 해결하길 바라고 있는 듯했다.그렇지 않으면 방 감독관과 경홍근에게 되돌릴 수 없는 일이 터질 것이고 그 여파는 그녀에게도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 부잣집 여자는 하현같이 호가호위하는 남자를 가장 싫어한다는 것
”적당히?”하현의 얼굴에 흥미진진한 표정이 떠올랐다.그는 경홍근을 위아래로 잠시 훑어본 뒤에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일이 막 재미있게 시작되었는데 내가 지금 끝내면 상관께서 친히 데리고 온 이 사람들한테 좀 미안해지지 않겠어요?”“하지만 당신 말이 맞아요. 굳이 다른 사람들한테 폐를 끼칠 필요는 없죠.”잠시 후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내가 직접 당신들 금전파를 건드리면 되는 것을요.”“뭐? 지금 우리 앞에서 일부러 재미난 척하고 있는 거야?”“금전파를 움직인다고?”“그게 가당키나 해?”부잣집 여자는 입을 가리고 한껏 비웃었다.“만 씨 가문도 아니고 집법당도 아니고 도끼파도 아닌데 당신 혼자 뭘 믿고 센 척하는 거야?”“지껄인다고 다 말이 아니고 목 위에 달려 있다고 다 머리가 아니라고!”“우리를 뭘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거야?”그녀는 경멸과 비아냥으로 일관하며 하현을 흘겨보았다.10대 최고 가문도 아니고 5대 문벌도 아니고 상류층에서도 본 적 없는 놈이 감히 이 바닥에서 금전파를 건드리겠다고?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경홍근, 방 감독관, 진 선배 그리고 부잣집 여자는 하나같이 팔짱을 낀 채 하현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웃기지도 않는 소리!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금전파를 건드린다고?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만천구 일행은 무의식적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의 능력을 잘 아는 그들은 그가 기꺼이 나선다면 분명 그가 원하는 대로 해낼 거라고 생각했다.절대 허세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특히 만천구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다.그는 하현의 배후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있는지 줄곧 궁금해하던 터였다.하현이 이런 말을 하자 그는 하현이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당신한테 기회를 주지.”하현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30분 안에 금전파를 부숴 버릴 수 있다면 예전에
”무성에 얼마나 많은 금전파 지부가 있고 그 지부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이런 것도 모르면서 뭐? 금전파를 쓸어버리겠다고?”“가당치도 않은 농담을!”“꿈도 꾸지 마!”여기저기서 여자들이 키득키득거리는 소리가 스멀스멀 울려 퍼졌다.그녀들은 오늘 밤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본 듯 만면에 가득 냉소가 피어올랐다.하현 같은 어릿광대를 보게 되다니!경홍근도 여유로운 손길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뒤 거침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만천구 일행이 아니라면 누가 나서도 두렵지가 않았다.바로 그때 갑자기 진 선배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귓가에 대었다.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진 선배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얼마나 얼어붙었는지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그러자 경홍근이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왜? 왜 그래?”“풀썩!”진 선배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쭉 빠져서 멍한 표정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방주, 큰일 났습니다.”“금전파의 8대 천왕들이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 지금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처치 중에 있다고 합니다!”“우리가 분산시켜 놓은 15개의 계좌에 있는 검은 돈도 모두 적발되어 은행에 동결되었구요.”“술집 13곳, 노래방 6곳, 지하 영업소 3곳 모두 폐쇄되었다고 합니다!”“우리 본부와 4개의 지부에 복면한 사람들이 동시에 들이닥쳤다고 합니다.”“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실력이 뛰어나서 불과 몇 분 만에 현장을 초토화시켰구요.”“사람들은 다 잡혀갔다고 합니다.”“금전파는 이제 완전히 와해되었습니다.”뭐?경홍근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벼락을 맞은 듯 벌벌 떨었다.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부잣집 여자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뱉었다.“그럴 리가?”그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돌아서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하현을 바
하현의 말을 들은 경홍근의 얼굴엔 절망이 내려앉아 완전히 빛을 앗아갔다.잠시 후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하 씨! 당신! 절대 이렇게 끝나지는 않을 거야!”“이런 수법이 나한테는 통할지 몰라도 조 세자는 절대 당신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조 세자가 반드시 네놈을 죽일 거야!”“난 저세상에서 두 눈 부릅뜨고 네놈을 기다리고 있을게!”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껌뻑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여전히 기고만장한 경홍근은 애꿎은 경찰관 두 명에게 손바닥을 휘두르고는 발로 밀치며 경찰차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경홍근이 감옥에 들어간 다음날 아침.조한철은 예전과 다름없이 연무장에서 무술을 연마했고 모든 과정이 끝난 후에야 정자에 앉아 하인들이 가져다주는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하루의 시작은 아침을 먹는 것부터였다.조한철의 절대적인 루틴이었다.그는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절대 늦잠을 자서는 안 되며 이른 아침 운동을 마친 후 꼭 영양 잡힌 식사를 해서 체력을 충분히 보강해야 정신이 맑아진다고 생각했다.그렇게 해야 일 처리도 빠르고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줄일 수가 있다.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그야말로 마음껏 여흥을 즐기는 것이다.하인이 음식을 내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조한철은 태블릿PC를 뒤적거리며 급한 서류들을 처리했다.바로 그때 인형처럼 아리따운 여비서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다만 여비서의 얼굴에는 여느 때 보이는 애교가 하나도 없었고 조심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조 세자, 일이 좀 생겼습니다.”조한철은 눈도 들지 않은 채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말해.”“상관 경홍근과 방 감독관한테 일이 생겼습니다.”여비서가 말을 이었다.“그들은 어젯밤 하현을 찾아 국술당에 쳐들어가서 소란을 피우다가 만 씨 가문 사람들과 한여침, 진주희를 맞닥뜨렸다고 합니다.”“결국 그들은 하현을 짓밟는 데 실패했고 그뿐만 아니라...”“음, 그뿐만
하현이 인수한 국술당에 조한철이 깜짝 선물을 준비하던 그때.무성 용 씨 가문 저택.사청인은 핸드폰 속의 자료를 보면서 용 씨 가문 저택에서 가장 향락으로 점철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맨몸에 근육질을 자랑하듯 용천진이 늑대개 몇 마리를 데리고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이 늑대개들은 며칠째 굶주리고 있었다.주인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잔인한 독기가 물이 올라 있었다.하지만 사나운 늑대개들을 조련하는 용천진의 몸짓은 매우 안정적이고 다부져 보였다.그의 우람한 주먹 한 방이면 늑대개들도 기를 못 쓰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질 것 같았다.사청인이 걸어오는 모습을 본 용천진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늑대개 한 마리의 목을 잡아채 사정없이 주먹을 날려 버렸다.순식간에 늑대개는 헐떡이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그가 죽은 늑대를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자 다른 늑대개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죽은 개를 물어뜯었다.용천진은 하인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미지근한 물에 양손을 씻었다.그리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사청인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사청인, 이렇게 일찍 여긴 어쩐 일이야?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어?”용천진은 환한 미소로 사청인을 맞았다.하지만 그의 사람됨을 아는 사람들은 지금 그가 보이는 미소 뒤에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나쁜 소식도 아니에요.”사청인도 빙그레 웃으며 용천진의 곁으로 가서 함께 나란히 발걸음을 옮겼다.“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하현이 훨씬 더 강한 상대 같아요.”“어제 만났을 때 투우를 이용해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고 했어요.”“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황소를 죽이는 바람에 내가 생각했던 방안과 묘책이 모두 엉망이 되었어요.”“심지어 그에게 덤벼들려던 우리 사람이 되려 당했지 뭐예요.”“게다가 하현은 우리한테 3일의 시간을 주겠다고 하면서 하루라도 늦으면 이자를 십억이나 물리겠다고 했구요.”“3일 안에 돈이 들어온 게 확인되지 않으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