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이 이 말을 하자, 장민수는 냉소를 터뜨리며 따졌다. “진짜면 진짜고 가짜면 가짜지 이것도 골동품이라고?“감정하는 분야에서는 이것 역시 골동품이라고 말하는 법은 없어. 만약 네가 이런 것도 알지 못하고 허튼소리 하면서 소란스럽게 굴 거라면 빨리 꺼져! 여기서는 아무도 너를 반겨주지 않으니까!”주위의 많은 사람들 역시 작은 소리로 몇 마디 욕을 했지만, 어쨌든 이 곳은 안씨 집안의 홈 그라운드이니 감히 하현을 쫓아낼 수는 없었다. 하현은 장민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천천히 말했다. “방금 장회장님이 말씀하신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백호의 그림은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아무리 기세가 드높은 그림이라고 해도 선비의 숨결이 배어 있으니, 이 그림은 진수를 모방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너……”이번에는 장택일이 하현을 가리키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뜻밖에도 그는 지금 이 그림을 위조품이라고 말하는 거야?이 녀석은 서화를 이해하고 있는 거야? 없는 거야?그는 지금 알아챈 셈인데 이 녀석이 나서볼 요량으로 여기서 허튼 소리를 하는 거네. 방금 그 문사병을 감정해낸 것은 백 퍼센트 안흥섭이 그에게 미리 가르쳐 준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 폐물 녀석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그래서 선생님이 창피를 당했다. 자신의 선생님이 냉소를 연발하는 것을 보고 장민수는 지금 바로 뛰어나와 하현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개망나니야. 계속 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봐!”“좋아. 너 말하는 것 좀 보자. 이 그림이 왜 위조품인지 말해봐!” “네가 만약 설명할 수 있다면 나 장민수가 엎드려 사과 하지!”“만약 네가 설명을 못 한다면, 오늘 너는 서울 호텔에서 기어서 나가야 할거야!”와_______이 말이 나오자 사방이 온통 왁자지껄해졌다.“그래! 어디 말해봐!”“내가 보기에 이 데릴사위는 알지도 못하면서 허풍을 떨고 있어!”“이런 사람이 어떻게 골동품 품평회에 올 수 있었을까? 결혼하려고?”
모두가 하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유명하고 진귀한 그림 위에 이미 옅은 자국이 하나 박혔기 때문이다. 하현은 이 순간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장택일을 보며 말했다. “장회장님, 방금 말씀하셨듯이 이번에 지시면 이 시계는 제가 갖는 거죠?”그러고 나서 장민수를 힐끗 쳐다보았다.“폐물아, 네가 말했듯이 만약 이 그림이 모조품이면 너 나한테 절하고 잘못을 인정할거야?”장택일은 하현의 절권도를 본 후 이미 약간 뜨거운 솥 위의 개미처럼 초조하고 불안해했다. 하지만 그는 필경 서화 감정의 대가급으로 자신의 전공에 자신이 있었는데 이 순간 어떻게 그가 경악했다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눈 앞의 이놈은 서울 2류 가문의 데릴사위일 뿐이고, 감정 업계에서는 더더욱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가 이 그림이 가짜라고 한들 그의 말을 들어야 하나?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그러자 장택일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고. 이 순간 악랄하게 말했다.“좋아. 늙은이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그림은 진짜야! 만약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면 내 골동품 롤렉스 시계를 너에게 바칠게! 만약 그것이 진짜라면 나는 너의 어떤 물건도 원하지 않아. 나한테 무릎 꿇고 사과해!”자신의 선생님의 저력 있는 모습을 보고, 장민수는 지금 비웃으며 말했다.“하현, 유치하게 굴지 마! 네가 어떻게 선생님의 적수가 될 수 있겠니!”“만약 이 그림이 정말 위조품이라면 내가 바로 너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잘못을 인정하겠지만, 만약 이 그림이 진짜라면 너는 즉시 기어서 나아가야 해!”하현은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네가 이렇게 확정을 지었으니, 내가 오늘 너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주지.”“백호는 일생 동안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극히 드물어.”“조선 후기에 이르면 누구나 다 들어봤을 화가가 있는데, 장대천이라고 부르지. 그는 서화에 조예가 깊어 그 그림의 가치가 세상을 놀라게 했어.”“그리고 이 거사는 백호의 그림을 매우 존경했고, 진품도
“내가 네 얼굴을 부숴버리겠어!”어떤 사람이 큰 욕을 퍼부었다. “그건 방금 네가 접은 흔적이잖아. 네가 천고의 명화를 망가뜨려놓고 이게 허점이라니! 믿든지 말든지 이 어르신이 널 때리겠어!”“그래, 이걸 증거로 삼았다고? 너는 내가 바보인줄 알아? 너 머리에 문제 있는 거 아니니?”“하현, 너 그만 좀 웃길 수 없겠니? 빨리 무릎 꿇어. 그렇지 않으면 잠시 후엔 사람들이 분노할거야. 사람들에게 얻어 맞으면 좋지 않을텐데.”장민수는 계속해서 냉소하며 입을 열었다. 하현의 그럴 듯한 말은 듣지 마라. 그는 증거도 없고 모든 것이 다 추측과 짐작일 뿐이니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분명 장택일을 믿을 것이고, 절대로 그를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현은 바보 같은 표정으로 장민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꼬마야, 네 선생님의 솜씨가 형편없다는 건 나도 알겠다.”“하지만 이 일을 겪고 나니 나는 너에게 더 좋은 선생님을 추천하고 싶어. 앞으로 남은 평생을 헛되이 보내지 마!” 말을 마친 하현은 아쉬운 표정으로 장민수의 어깨를 두드렸다.“꺼져! 데릴사위 주제에!”“네가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 한 번 보자!”“못 내놓으면 너의 목숨은 죽는 것 만도 못할 거야!”장민수는 하현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붓고 이를 갈았다. 하현을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 났다.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지금 이 그림의 접힌 곳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방금 이걸 왜 접었는지 알아?”“이것이 장대천이 남긴 허점이기 때문이야!”“백호의 그림은 모두 경상도 동가에서 많이 생산되는 종류의 화선지를 사용했다. 고려후기 때 동가의 화선지가 유명했다가 몰락하면서 후에 이런 종류의 화선지의 제조 공법이 전해지지 않았어!” “이런 종류의 화선지는 아주 특별한 점이 있는데 종이를 접는 힘이 얼마나 크던지 관계없이 접혔던 자국은 바로 회복이 돼! 위조품은 영원히 회복되지 않지!”“와_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지껄이네!”장택일은 하현을 비웃으면서 쳐다보다가 시선이 안흥섭에게로 떨어졌다. “안씨, 당신은 감정 업계에서 창시자급 인물이시니 당신이 이 그림의 진위를 평가해 주면 모두가 당신을 믿을 것입니다.”“좋아요. 안씨 대가님, 당신이 해 주세요!”“맞아요! 이 데릴사위가 여기서 장회장님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도록요!”“우리는 안씨 대감님의 신분과 지위를 믿기 때문에 함부로 판정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안흥섭은 의미심장하게 장택일을 한 번 쳐다보고 나서 돋보기를 꺼내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 그림의 맹호는 정말 생동감 있고 위엄이 넘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는 진품인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와……”그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방금 그 데릴사위가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마치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그럴 듯 하게 말하더니 결과는 나쁘지 않네!안흥섭이 진짜라고 말했으면 가짜일 리가 있나?“쓸모없는 것! 너 들었지? 나한테 무릎 꿇어! 기어 나가!”장민수는 정신이 돌아오면서 하현을 가리키며 욕을 했다. “장민수, 화내지 마. 단지 하현이 몰라봤을 뿐이야. 방금 농담한 걸 가지고 진짜로 여기지 마.”안수정은 당황하면서 앞으로 빨리 걸어갔다. 그녀는 하현이 정말로 무릎을 꿇을까 봐 두려웠다. 설은아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이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여자가 자신의 남편을 위해 말하는 것을 눈앞에서 빤히 보고 있으려니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애처로웠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때 그녀는 자신이 왜 하현과 싸웠는지 처음으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하현 곁에서 그를 위해 용서를 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은 마땅히 자신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어린 놈아. 어르신이 일찍부터 너한테 말했잖아. 사람은 겸손과 경외함을 가져야 한다고. 어르신이 오늘 너에게
장택일이 바로 화를 내자. 선풍도골의 품격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그는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경멸하며 말했다. “젊은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안씨가 이미 이 그림은 진품이라고 단정을 지었는데, 너는 아직도 여기서 쫑알거리고 있니? 설마 너는 아직도 안씨의 감별력을 의심하는 거야?”안흥섭은 감정업계의 스승이신데, 누가 감히 그의 감별력을 의심하겠는가?보잘것없는 데릴사위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쫄지 않으니 정말 살지 죽을지 모르겠다. 이 때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현을 혐오하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자 안흥섭이 갑자기 손을 흔들며 말했다.“여러분, 그의 말이 맞습니다. 제 말이 아직 다 안 끝났으니 방해하지 말아주세요……”뭐?안씨 대가님의 말이 아직 안 끝났다고? 하지만 그는 방금 이미 이 그림이 진품이라고 말했다. 설마 그가 자신의 얼굴에 직접 먹칠을 하려는 것인가? 쓸모없는 데릴사위를 구하려고?그를 결혼시키려고?안흥섭은 이어서 말했다.“이 그림은 진품이 맞지만 백호의 진품이 아니라 장대천의 진품입니다. 백호의 모조품이요!”이 말을 하자 모두들 깜짝 놀라서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이 순간 뜻밖에도 산과 강이 끝없이 펼쳐진, 봄 햇살이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다. 이 그림은 정말 장대천의 작품이다!이 게임에서는 장택일이 지고 하현이 이겼다는 의미이기도 했다.그 다음, 역으로 찬바람 부는 소리가 들려왔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하현을 마치 괴물을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현도 사양하지 않고 책상 위의 골동품 롤렉스 시계를 제멋대로 집어 들고는 자신의 손목에 찼다. 몇 번을 쳐다본 후 웃으며 말했다. “장회장님, 제가 마침 손목시계가 하나 부서졌는데 감사합니다.”“너, 너, 너……”장택일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가 폭발하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선생님!”장민수는 황급히 장택일을 일으켜 세운 후, 하현을 노려보며 독살스럽게
하현은 군말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이 단검은 고구려 때 것임이 틀림없어요. 비록 좀 부식이 되긴 했지만 이런 청동기는 약간 구릿빛이 도는 게 정상이에요!”“이 궁등은 조선 만력 연간에 궁중에서 관리하던 용품이었을 거예요!”“마지막으로 이 반지는 공친왕이 사냥할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그 옥 반지 같아요.”하현이 말을 마치자 안흥섭은 멍해졌다. 잠시 후 그는 박수를 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귀재, 하현은 정말 감정 업계의 귀재다. 마치 무거운 역도를 가볍게 들어 올리는 것 같다. 이런 능력은 일반 감정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애석하게도 그는 이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장택일 두 사제가 보기에 비할 데 없이 귀중한 물건들이 하현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사람이 안씨 집안의 최고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다만 그가 언제 이혼을 할지 알 수 없었다……하현을 사모하는 손녀의 눈빛을 보면서 안흥섭은 탄식을 연발했다. 만약 자신의 손녀가 데릴사위를 찾는다고 하면 프랑스 파리에서 날아와 줄을 설 것이다. 아쉽게도 그녀는 이 남자만 마음에 들어 한다.……. 마지막 세 가지 골동품 감정이 완료됨에 따라 이번 골동품 품평회는 막을 내린 셈이다. 하현은 이런 상류층들이 한데 모인 곳에서도 약간의 화제거리가 되는 편이다. 다만 감정 업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위상이 있었지만, 실제 상류층의 수천 가지의 비즈니스 계에서는 전혀 지위가 없었다.배후에 안흥섭과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안씨 가문이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장택일의 신분도 많은 부분 그가 평소 일류 가문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하현이라는 데릴사위가 비록 방금 좋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상류층들이 볼 때는 이런 기묘한 재주와 숙련된 기술도 모두 수준급에는 속하지 않는다. 요 며칠은 그가 다른 사람들이 밥 먹고 차 마실 때 나누는 화제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정말 감정 업
설씨네 별장. 설씨 어르신은 맨 위의 자신의 자리에 단정히 앉았다. 그 자리는 마치 왕좌와 같았다. 그 자리는 그의 위엄과 권력을 대변했다. 설씨 집안은 정말 2류 가문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정말 설씨 집안 한 사람 한 사람을 귀족이고 상류층이라고 생각했다. 여러가지 자질구레한 규칙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의자 하나를 놓고 3, 6, 9 등분으로 배분해서 앉으니 너무 웃겼다. 희정은 설씨 어르신이 화를 내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하현에게 호통을 쳤다.“하현! 너 빨리 올라와서 할아버지께 인사 안 해! 어르신이 뭘 가리키시는 지 좀 봐!”“어르신, 설민혁을 곤경에서 빼내주시려고요?”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하현, 너 솜씨가 대단하구나. 배짱도 만만치 않고!”설씨 어르신의 안색은 어두웠고, 말투는 매서웠다.“네가 어디에 가서 잘 모르면서도 아는척하는 재주를 배워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로 네가 높은 지위에 올라 우리 설씨 집안에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 같아?”“네가 아니었다면 오늘 민혁이가 이렇게 창피를 당했을까? 그는 우리 설씨 집안의 부사장이야. 그가 망신을 당하면 우리 설씨 집안의 얼굴이 망신을 당한 거라고!”“너한테 한 번 물어보자. 너 일부러 우리 설씨 집안을 망신시키려고 한 거야?”“어르신, 이 일의 시작이 어떻게 됐는지 다 알고 계시잖아요.”“내기는 제가 한 게 아니에요.”“저를 질책하시기 전에 왜 설민혁에게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 묻지 않으세요?”하현은 또박또박 말했다. “너……”설씨 어르신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손가락은 계속 떨렸다. 하현이 골동품 품평회에 참가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기에 그는 당시 설민혁을 막지 않았다. 하현이 무릎을 꿇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그에게 그저 장난으로 해본 우스갯소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하현이 정말 골동품 품평회에 참가할 자격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게다가 안씨 집안 사람들과
설민혁의 이 말을 듣고 설씨 어르신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마음이 편협한 설민혁이 뜻밖에도 이런 말을 내뱉을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이 폐물이 너에게 충분히 보상을 한다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들었지? 나한테 보상해!”설민혁은 의기양양하게 탐욕스러운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지금 할아버지가 뒷받침을 해주신다면 그는 반드시 얻어 내고야 말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보상?” 하현은 입가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우리 부사장님에게 내가 어떻게 보상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네요?”“네 손에 있는 그 시계, 나한테 줘. 그럼 내가 용서해 줄게.”설민혁은 지금 욕심이 가득 찬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230억 상당의 골동품 롤렉스 시계였다. 만약 이것을 되팔면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이나 술을 마실 수 있을까? 몇 명의 어린 스타들을 불러도 열흘이나 보름 정도는 큰 문제 없겠지. 하현은 이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설민혁은 마치 출병하여 죄를 묻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은 해명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골동품 롤렉스를 자신에 손에 넣으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도 정상이다. 설씨 가문이 비록 2류 가문이었지만 재산은 몇 천억 원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설민혁의 연봉은 몇 억 원 이상이면 괜찮은 거였다. 설씨 가문의 재산을 물려 받지 않는 한 230억짜리 시계는 절대 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설민혁은 이렇게 주판을 툭툭 두드려 계산한 것이다. 그러나 관건은 욕심을 감추기 위해 ‘보상’이라는 두 글자를 쓴 것이었다. 하현이 이전에 설씨 집안에서 얼마나 억울하게 폐물취급을 받았든지 관계없이, 설민혁이 이렇게 공짜로 얻어먹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 시계 갖고 싶어? 꿈에서 좀 깨어나지 그래!“설민혁, 무슨 근거로 내가 너한테 이 시계를 줘야 한다고 생
”맞아, 설은아. 잘 생각해 봐. 금정에서 아무런 깊은 인맥이 없는 네가 그 많은 돈을 빌리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야!”“고성양이 지금 요구하는 건 조금 지나친 면이 없진 않지만 누구보다 현실적이라고도 할 수 있어!”임민아도 마뜩잖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눈 한 번 딱 감고 넘어가면 되잖아? 그럼 거액을 융통할 수 있다고!”“가장 중요한 것은 고성양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거야. 너한테는 정말 좋은 일이야!”“앞으로 네가 금정 비즈니스계에서 고성양과 인맥을 맺게 되면 너한테 절대 불리할 게 없어!”진서기와 임민아 두 사람 모두 고성양에게 돈을 빌렸다.그들은 그에게 몸을 맡겼을 뿐만 아니라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었다.그래서 오늘 그녀들은 설은아를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일을 여기서 정리하길 바란 것이다.다행히 고성양이 설은아를 아주 만족스러워했고 설은아와 연결만 잘 시켜준다면 이자 문제는 없던 일로 하겠다는 약속도 받은 터였다.간단히 말해서 오늘 설은아가 그에게 돈을 빌리지 않으면 그녀들은 고성양에게서 빌린 돈과 이자를 갚을 방법이 없었다.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들이 이 불구덩이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자신들은 설은아한테 자매 같은 친구인데 친구를 위해서 이 정도도 희생해 주지 못한다는 것인가?사람 됨됨이가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진서기, 임민아. 너네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설은아는 그들이 이번 일에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순간 설은아의 얼굴에 단호함이 가득 퍼졌다.“난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습니다.”“고성양, 죄송합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헛걸음한 것 같군요.”“오늘 밥은 제가 사는 걸로 하죠.”나박하는 이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설은아가 다행히 나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빌리지 않겠다고?”고성양의 눈빛이 일순 싸늘해졌다.그는 금테 안경을 살짝 만지작거리다가
이때 임민아는 재빨리 달려와 자신의 가슴을 고성양에게 바짝 붙이며 말했다.“고성양, 이렇게 오느라 수고 많았어.”“이렇게까지 체면을 세워 주니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어!”“됐어! 당신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고성양은 귀찮은 듯 짜증스럽게 말했다.“절세미인이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왔는데 어디 있는 거야?”“고성양, 바로 여기야!”진서기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설은아를 얼른 끌어당겼다.“은아, 이 분이 바로 고성양이야.”설은아는 이제 고성양의 횡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나박하가 방금 한 말이 거의 사실일 거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하지만 아홉 번째 방주로서 부족한 이천억 원의 자금을 떠올리며 억지로 웃음을 떠올렸다.“고성양, 안녕하세요.”“저, 제가 돈을 좀 융통하고 싶은데요.”“아하! 전설적인 미녀가 여기 계셨군요! 게다가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라구요. 신분도 있고 지위도 상당한 데다 아주 인물도 빼어나시군요. 딱 내 스타일이에요!”고성양은 분명 설은아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하지만 신비에 휩싸인 왕 씨 가문을 등에 업은 그는 10대 최고 가문에 대해서는 별로 크게 경외심을 갖지 않았다.“설 사장님. 다들 보는 사람들도 많으니 쓸데없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겠어요.”“이천억이 다른 사람들에겐 융통하기 어려운 금액일지 모릅니다.”“하지만 나한테는 큰 문제가 아니죠!”“강호의 법칙에 따라 선이자 10%를 떼고 드립니다. 이자는 30%.”“2000억을 빌리면 우선 선이자를 떼고 1800억을 가져가면 됩니다. 한 달 후에 이자와 원금을 합쳐 2600억을 갚으세요!”“돈이 없으면 안 갚아도 됩니다. 하지만 아홉 번째 방주의 자산은 모두 저당 잡히게 됩니다.”“문제없죠?”설은아는 고성양이 말하는 조건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소문으로만 들리던 그 사악함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한 달에 이자만 800억이었다!내뱉는 말마다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이렇게 하자구.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이천억이 모이지 않을 수 있어!”“하지만 내가 가진 걸 다 내놓으면 아마 이백억은 될 거야!”나박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이백억에 대한 이자는 줄 필요없어. 우선 급한 불부터 꺼!”“나머지 금액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잠시 어리둥절했던 설은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나박하, 당신 돈은 받을 수 없어!”“당신이 있는 것 없는 것 다 팔아버리면 다시는 재기할 가능성이 없게 돼! 당신한테 그런 짐을 지울 수는 없어!”나박하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했다.“설은아, 내가 어려울 때 당신이 도와줬던 거 지금 갚는 거야!”“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나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내가 어떻게 배은망덕할 수 있겠어? 절대 나한테 짐 지우는 거 아니야!”“아무튼 그렇게 해결하자구!”“그렇게 해!”“날 봐서 그렇게 해줘!”진서기는 결국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 돈으로 당신 묫자리 하나 못 사는데 뭘 얼마나 된다고 다른 사람한테 빌려준다는 거야?”“은아가 관장하는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 자리가 얼마나 씀씀이가 큰 줄 알아? 그 돈 이백억, 금방 없어질 거야!”“잘 들어! 은아를 위해 마련한 이 좋은 자리를 당신이 망친다면 난 다시는 당신 얼굴 안 볼 거야!”나박하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뭐가 좋은 자리라는 거야? 뭐가 좋은 일인데? 내가 보기엔 당신은 좋은 먹잇감을 준비해 놓고 옆에서 이익이나 보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에 불과해!”“퍽!”나박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굳게 닫혀 있던 룸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이 걸어 들어왔다.그들 뒤에는 양복 차림에 사나운 표정을 한 남자들이 뒤따라왔다.보아하니 위풍당당한 경호원 같았다.맨 앞에 선 사람은 입생로랑 셔츠를 입고 있었다.금테 안경을 쓰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긴 그의 모습은 겉보기로는 상당
나박하는 고성양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깜짝 놀랐다.“진서기, 당신이 말한 그 사람... 중천 그룹만큼이나 유명한 장청 캐피털 로얄패밀리 고성양 말이야?”“오호! 뭘 좀 아는 모양이군!”진서기는 콧방귀를 뀌며 나박하를 쳐다보았다.“맞아. 바로 그 장청 캐피털이야.”“자산은 수조 원이 넘는 그룹이지. 그러니 현금 이천억 정도 조달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청 캐피탈이 중천 그룹과 마찬가지로 배후에 금정에서 가장 신비에 싸인 왕 씨 가문을 두고 있다는 거야!”“이제 내가 왜 이 거물을 소개하는지 알겠지?”나박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난 별로 아는 건 없지만 중천 그룹과 장청 캐피털의 배후에 금정의 유명한 가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뭔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가문이라고 들었어. 5대 문벌인 금정 간 씨 가문이나 10대 가문인 금정 김 씨 가문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더군.”“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예전에는 왕 씨 가문도 5대 문벌 중 하나로 꼽혔다고 해.”“그런데 그 가문은 너무 조용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집단이라 승부조작을 많이 일삼아서 지금은 5대 문벌에 들지 못한다고 해.”“그렇다고 해도 금정에 있는 왕 씨 가문의 역량은 어마어마해.”“어쭈! 촌뜨기인 줄 알았더니 꽤나 식견이 깊은데?”임만아는 비아냥거리며 코웃음을 쳤다.“이왕 이렇게 고성양의 출신 배경도 알게 되었으니 잠시 후에 그가 오면 다들 영리하게 잘 행동해야 해. 그게 설은아를 돕는 길이야.”임민아의 말에 현장에 있던 남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장청 캐피털은 원래도 유명한 데다가 배후에 힘이 막강한 왕 씨 가문까지 있다니!역사와 전통이 깊은 금정에서 이 왕 씨 가문에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은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장청 캐피털과 고성양의 도움을 받는다는 건 왕 씨 가문을 배후에 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이것이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였다.그래서 지금 많은 남자들
설은아의 말을 들은 진서기는 황급히 임민아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임만아, 너도 너무해. 어떻게 그런 말을 자꾸 함부로 할 수 있어?!”“여기 왔으니 됐어! 우리 다 친구잖아!”“자,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해. 우리 고성양이 언제 오시려나?”“어차피 우리가 오늘 여기 온 목적은 설은아가 고성양한테서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거야.”하현은 살짝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자신이 이미 설 씨 집안을 도와 오백억의 빚을 받아주었는데 설은아가 또 누군가에게서 투자를 받으려고 하다니?!나박하도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말했다.“설은아, 무슨 일이야?”“당신은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잖아?! 이번에 금정에 온 것도 더욱 그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장을 넓혀 보려고 온 거고!”“그런데 돈이 잘 안 도는 거야?”“음. 문제가 좀 생겼어.”설은아는 입꼬리를 살짝 가라앉히며 멋쩍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하현에게 이런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하현에게 알려지더라도 할 수 없었다.나박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설은아, 얼마나 부족한데 그래? 말해 봐!”“내 체면도 좀 세워 주면 안 되겠어?”임민아는 나박하를 보며 냉소를 흘렸다.“쓰레기 처리 회사가 이미 멈췄는데 어떻게 은아를 도와줄 수 있다는 거야?”나박하는 조금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내 회사가 동결되긴 했지만 물려받은 것을 포함해서 아직 내 이름으로 된 집이 몇 채나 있어. 만약 필요하다면 그걸 팔면 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박하를 쳐다보았다.파산 직전에 자기 앞길도 막막할 텐데 이렇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의리는 꽤 있는 놈인가?조상의 집마저 팔려고 하다니?!설은아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나박하, 그 집은 당신 어머니가 당신한테 넘겨준 마지막 자산이잖아!”“그걸 판다고 해도 난 절대 그 돈 못 받아!”“이
나박하의 말에 설은아는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나박하, 그런 농담 그만해.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오해? 누가 오해할 수 있겠어?”나박하는 껄껄 웃었다.“금정에서 우리 설 사장의 미모와 인품이 빼어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당신을 쫓아다니고 싶어 했던 일도 어제오늘 일이 아닌 걸 뭐!”“됐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옆에 있던 진서기가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은아는 이미 임자가 있어!”“이분이시지. 바로 소문난 그 데릴사위 하현. 설은아의 남편이야!”“곧 혼인신고한다고 들었어!”“그러니 당신들한텐 기회가 없다니까!”생각지도 못했던 진서기의 발언에 현장에 있던 남자들은 갑자기 된서리를 당한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나박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고 눈동자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가득했다.이 볼품없는 남자가 설은아가 결혼했던 전설의 그 데릴사위라니!다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그런데 최 여사님이 아주 싫어한다던데 재결합이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진서기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오묘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말인즉슨 설은아 정도의 조건이라면 이 데릴사위를 당장 발로 걷어차야 한다는 거야.”“지나가는 아무 남자나 잡아도 이 데릴사위보다는 낫지 않겠어?”“진서기!”설은아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나무라듯 진서기를 노려보았다.모두가 좋은 친구 사이이고 진서기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에 한 말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무례했다.그러나 하현은 진서기의 말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 하현입니다.”화려한 옷차림을 한 십여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삐죽거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심지어 몇 명의 여자들은 하현의 더러운 시선에 자신의 긴 다리가 눈에 들까 얼른 다리를 모았다.그러나 나박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오히려 자신의 명함을 꺼내 하현에게 공손히 건네
소항 회관 2층 888호 룸.하현 일행이 럭셔리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십여 명이 쳐다보았다.그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여자들의 목에는 커다란 보석이 달려 있었고 남자들의 손목에는 금빛이 도는 커다란 시계가 걸쳐 있었다.한 마디로 이 사람들한테서는 부귀하고 사치스러운 분위기가 풍겼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시가 몸에 짙게 베어 있는 것 같았다.설은아 일행이 들어서자 그들은 모두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사람들은 설은아를 보자마자 눈동자에 희미한 빛을 반짝였다.머리를 매끈하게 뒤로 빗어 넘긴 젊고 유능한 남자들의 눈동자엔 설은아를 향한 음흉한 기운이 가득했다.설은아 같은 미녀는 이곳 금정에서도 매우 드문 게 분명했다.“설은아, 서기, 민아! 당신들 다 같이 왔네?”그때 머리가 약간 벗겨진 남자가 싱긋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그의 용모는 잘생기지도 훤칠하지도 않았지만 온몸은 명품으로 뒤덮여 있었다.얼굴에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손가락에 커다란 금반지도 여러 개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졸부임이 분명했다.“나박하, 옷차림이 어떻게 아직도 이래?! 이제 육지로 올라왔으면 물속에서 놀던 티는 벗어나야지!”“좀 신경 써주면 안 돼?”“우리 모임에 자꾸 이런 식으로 오면 우린 당신이 우리의 품위까지 떨어뜨린다고 생각할 거야!”임민아는 차가운 눈길로 비아냥거리며 얼굴 가득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이 틈을 타 설은아는 하현을 향해 말했다.“이 사람은 나박하야. 금정 토박이지. 원래는 그렇게 거물급은 아니었는데 쓰레기 분류 사업에 뛰어든 뒤로 수조원의 자산가가 되었어.”“모두들 그를 두고 쓰레기 왕이라고 칭하지.”“그런데 듣기로는 최근 금정 관청에서 자체적으로 이 사업을 처리하려고 해서 나박하의 사업이 자칫 도산할 수도 있다고 했어.”하현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임민아가 왜 그렇게 무시하는 투로 그를 대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만약
하현은 두 여자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그녀들에게 힐끔 시선을 떨어뜨린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은아, 우린 들어가자.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진서기는 소항 회관으로 들어가려는 하현의 앞을 가로막으라는 듯 임민아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하현은 무심코 발을 떼려다가 줄곧 자신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임민아가 갑자기 앞을 막자 흠칫 놀랐다.“나한테 무슨 볼 일 있어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더 이상 설은아한테 찝쩍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이미 설은아와 헤어졌어요. 그럼 깔끔하게 물러서요.”임민아는 차가운 말투로 내뱉었다.“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설 씨 집안사람들은 당신을 전혀 반기지 않아요. 모르겠어요?”“이제 알았으면 썩 꺼져요! 어서!”“이곳은 우리 같은 상류층 사람들이 오는 곳이지 당신 같은 얼뜨기가 오는 곳이 아니에요!”하현은 냉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와 설은아 사이의 일은 당신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 않나요?”“설은아는 내 친구예요. 그러니 친구로서 당연히 이 정도는 할 수 있죠!”임민아는 턱을 치켜들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은아가 마음씨가 고와서 당신이 이러는 것도 가만히 놔두는 거예요!”“그렇지 않고서 당신같이 능력도 없고 돈도 없고 역량도 부족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은아와 함께 있을 수 있겠어요?”“은아는 타고난 미모에 붙임성까지 있는 사람이에요. 봉황이 노는 곳에 어찌 꿩이 알짱거릴 수 있겠냐구요?”“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여기까지 말한 임민아는 콧대를 잔뜩 치켜세우며 위엄을 과시하려 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하현은 한쪽 입가를 살짝 말아올리며 냉소를 흘렸다.이윽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임민아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임민아 씨, 맞죠?”“당신은 스스로가 너무 잘난 줄 아는 사람이군요.”“내가 어떤 사람이든, 자격이 있든 없든 그건 당
”아니야.”하현은 설은아가 갑자기 간민효를 언급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엄도훈이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우리 쪽이 계약할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 거야.”“그래서 회사 법무팀에 직접 물어보라고 연락한 거야.”하현의 설명을 들은 설은아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아, 갑자기 생각났어. 엄도훈이 당신한테 이러는 걸 보니 간민효가 당신한테 엄청 많은 도움을 줬었나 봐, 그렇지?”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조그만 일에 간민효를 들먹일 필요는 없어.”설은아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만약 무성이나, 혹은 남원이나, 대구였다면 그녀도 그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그러나 금정은 역사와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다른 곳과 비교할 곳이 아니었다.금정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하현이 이런 말을 하니 설은아는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는 억지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 하현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분명 금정에도 그의 포석을 두었음이 틀림없다.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인정하기 싫은 질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이런 생각에 사로잡히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슬기를 떠올렸고 왕주아를 떠올렸고, 동리아를 떠올렸다.그녀의 마음은 더욱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질투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그들의 차는 그렇게 달리고 달려 으리으리한 소항 회관에 다다랐다.화려한 불빛이 눈앞에 일렁거렸고 많은 차들이 오갔다.곳곳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퍼졌고 많은 미남미녀들이 드나들었다.차가 멈춘 후 하현은 설은아를 따라 걸어 나왔고 곧이어 마세라티가 멈추어 서는 것이 보였다.빼어난 몸매에 세련된 메이크업을 한 두 여자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두 여자는 설은아가 금정에서 안 지 얼마 안 된 비즈니스 파트너였다.한 사람은 진서기이고 다른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