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브라흐마 이샤의 몸이 붕 떴다가 이번에는 벽에 그대로 부딪혀 떨어졌다.그녀는 온몸을 부르르 떨다가 발버둥치며 일어서려고 했지만 하현이 이미 그녀 앞에 와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브라흐마 이샤는 이를 갈며 다시 한번 비수를 빼들어 휘둘렀다.칼날이 날카롭게 번쩍거렸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하현, 조심해!”“퍽!”하현은 피하지 않고 무덤덤한 얼굴로 손바닥을 휘둘렀다.그의 동작은 날카로워서 보이지 않지만 정확하게 브라흐마 이샤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브라흐마 이샤는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렸지만 땅에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더 이상 일어날 수가 없었다.“짝짝짝짝!”하현이 손뼉을 쳤다.그러자 바로 옆 입구에서 루돌프 팀이 들어왔다.그들은 최대한 빨리 브라흐마 이샤에게 마취제를 투여한 다음 빠르게 그녀의 부상을 치료했다.그녀가 과다 출혈로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브라흐마 이샤는 이를 악물고 그들의 행동을 노려보았다.하현은 사람을 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브라흐마 이샤는 하현이 자신에게 그런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루돌프 팀이 떠난 후에야 하현은 흑장미가 건네준 차 한 잔을 여유 있게 받아 마시며 브라흐마 이샤를 바라보았다.“어이, 브라흐마 이샤!”“당신도 어쨌든 신분이 높은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직접 복수할 생각을 했어?”“당신들은 제3, 제4의 신분을 보내서 날 칠 수도 있었잖아?”“밑에 사람이 많으니 언제든 날 죽일 수도 있었을 테고.”하현은 차근차근 정황을 분석하며 브라흐마 이샤의 표정을 살폈다.그는 은연중에 설은아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섞었고 직접 자신에게 달려드는 게 좋을 거라는 압박도 잊지 않았다.거들먹거리며 내뱉는 하현의 말에 브라흐마 이샤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그녀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하 씨. 내가 설은아를 습격하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설은아를 볼모로 삼은 건 우리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물론 항상 침대 밑에 숨어 있는 건 불가능하지.”“사실 흑장미는 구석에 앉아 있었어. 밖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지만.”“그런데 오늘 아침 병원에 왔을 때 이상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어.”“향수 냄새도 아니고 특유의 제라늄 냄새인데 묘하게 묵직하게 느껴졌지.”“순간 인도인이 병원에 와 있다는 것을 직감했어.”“당신들이 도대체 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해치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조심하는 게 나쁘지 않으니까 흑장미를 바로 준비시켰지. 그래서 침대 밑에 숨어 있었던 거야.”“당신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을 때 당신한테서 딱 그 냄새가 났어.”“그래서 그때부터 난 당신의 신분을 알고 있었지.”“그런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지 몰랐기 때문에 연기를 좀 했어.”“그 이후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더 잘 알 테고.”하현은 일목요연하게 그동안의 일을 말했다.동시에 그의 말은 브라흐마 이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다.결국 자신이 치밀하게 계획한 살인 계획이 다른 사람에게 쉽게 들통이 나 버렸다.이것은 교만하고 자존심 강한 인도인에게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그렇군!”브라흐마 이샤는 모든 과정을 듣고 피를 토할 뻔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외출하기 전에 향을 피워놓고 샤워를 하지 말 것을 그랬다.오랜 습관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브라흐마 이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를 악문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은 내 동생을 죽이고 또 날 이 모양으로 만들었어!”“능력이 있으면 날 죽여!”“그렇지 않으면 이 피맺힌 원수를 반드시 되갚아 줄 거야!”“우리 브라흐마 가문이나 선봉사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거든!”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브라흐마 이샤를 바라보며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떠올렸다.“이럴 땐 용서를 비는 거야! 그러지 않고 도발한다면 그건 정말 죽여 달라는 소리밖에 안 돼!”“정말 내 손에 죽고 싶은 모양이군!
한여침 쪽에서는 이미 살인범을 이리저리 심문하고 있었고 이 사건의 배후가 김 씨 가문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게다가 용천오가 일부로 선봉사를 위협한 일은 하현도 잘 알고 있었다.이 두 집안은 모두 인도인의 손을 빌려 자신을 없앨 궁리를 하고 있었다.하현은 인도인의 도움을 받아 반격해 그들이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전설 속의 3대 요승 중 하나인 브라흐마 커크가 인도인이 다른 사람의 앞잡이가 된 것을 알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하현은 무척 기대가 되었다....해 질 무렵, 무성 장례식장.브라흐마 아샴의 신분은 외빈이었기 때문에 경찰서 측은 부검 후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바로 보냈다.그리고 인도인도 장례식장의 작은 별채를 임대하여 브라흐마 아샴의 장례를 위해 인도인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일전에 브라흐마 커크는 인도 선봉사에 수백 명의 고수를 보내라고 명령했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대하에 입국했기 때문에 안전한 거처가 있어야 했다.무성에는 이곳 장례식장만큼 안전하고 인적이 드문 곳이 없다.7시가 가까워지자 도요타 랜드크루저 여러 대가 장례식장에 들어서더니 별채의 빈소 앞에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고 양복 차림의 사나운 남자 십여 명이 걸어 나왔고 곧이어 검은 제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여자는 20대 후반으로 보였고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말끔하게 틀어올린 모습이었다.화장은 수수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게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다.당당한 그녀의 걸음걸이에 미끈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발렌시아가 스타킹을 신은 긴 다리는 보기만 해도 아찔할 정도였다.이 여자는 바로 김규민이었다.그녀는 방금 48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겨우 경찰서에서 풀려났다.꽃다발을 다소곳이 든 그녀는 브라흐마 아샴의 영정 앞에 공손히 세 개의 향을 피워 올렸다.인도인의 장례는 지전을 태우는 풍습은 없었고 향을 피우고 꽃을 바치는 풍습만 있었다.빈소 안은
김규민은 김 씨 가문의 다른 중요한 두 명의 인물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해명했다.브라흐마 아부는 무덤덤한 기색으로 김규민을 한 번 쳐다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별말씀을 다 하십니다.”“우리 인도상화는 무성에 여러 해 있었어요. 이일 전에는 샤르마 커 일행도 범인과 충돌한 적이 있었죠.”“이 모든 일이 김 씨 가문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그날 밤의 일이 없었더라도 우리는 하 씨 그놈과 충돌했을 거예요.”“다만, 술집에서의 일은 우리가 먼저 잘못했으니 그건 인정해야죠.”“그런데 하 씨 그놈이 감히 병원에까지 와서 브라흐마 아샴을 죽이고 선봉사의 체면을 짓밟아 놓을 줄은 몰랐어요.”“이 일만은 공평하게 처리되었으면 좋겠어요.”“사람을 죽였으면 죗값을 받아야죠! 그게 당연한 이치고요!”브라흐마 아부의 눈에는 차가운 분노의 빛이 가득했다.무성에서 여러 해 동안 용천오와 의형제를 맺었던 그였다.그런 그가 언제 이런 창피한 일을 겪었겠는가?그래서 그는 지금 이 일에 반드시 제대로 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하 씨 그놈이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떤 뒷배가 있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우리 선봉사를 건드려 인도의 고귀한 사람을 죽였으니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사람을 죽인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죠!”브라흐마 아부의 말을 들은 다른 인도인들은 모두 이를 갈고 눈을 부릅뜨며 살의를 표했다.그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하현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어쨌든 이 일로 인도인의 자존심에 큰 생채기가 났기 때문이다.인도의 귀한 제2 계급의 인물이 대하에서 죽었으니 그들에게 있어서는 죽음과도 같은 크나큰 수치이자 굴욕이었다.인도인들의 눈에 하현을 향한 살의가 득실거리는 모습을 보고 김규민의 눈동자에 통쾌한 기운이 가득 서렸다.그녀는 지난번 술집에 있었던 사건을 생각하면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리고 그 일 때문에 경찰서에 48시간 동안이나
하지만 국외 종파들이 대하 경내에 종파를 여는 것은 줄곧 대하 조정에서 허가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인도인은 요 몇 년 동안 종파를 열 수가 없었다.그런데 뜻밖에도 김 씨 가문이 이런 때에 허가증을 주다니!늘 평온하고 담담했던 브라흐마 아부도 지금은 끓어오르는 감격을 숨길 수가 없었다.이 허가증은 브라흐마 아샴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브라흐마 아샴의 죽음으로 이런 허가증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브라흐마 아부는 진작에 브라흐마 아샴을 죽였을지도 모른다!이제 대하에 출발점이 생겼으니 인도인들은 대하의 강호들을 상대로 대대적으로 공격을 펼칠 기회까지 생기게 된 것이고 용문 같은 초석을 발밑에 둘 수 있게 된 것이다.이렇게 두 나라가 경쟁하게 된다면 인도인들은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게 된다.간단히 말해서 이 허가증은 기회이자 훌륭한 발판이 되는 것이다.브라흐마 아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서류를 낚아채듯 받아들고는 입을 열었다.“고맙습니다. 가서 어르신에게 말씀드려 주세요!”“우리 인도상회뿐만 아니라 선봉사와 인도 모두는 이제 김 씨 가문과 영원한 친구가 되었다구요!”“김 씨 가문과 이익을 공유할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김 씨 가문의 이익을 우선할 것을 약속합니다!”“안타깝게도 제 스승님 브라흐마 커크는 어린 아들의 죽음으로 기력이 없으셔서 옆방에서 쉬고 계십니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직접 나오셔서 고마움을 표했을 거예요.”“장례가 마무리되고 그놈을 처단하고 나면 꼭 찾아뵙겠습니다.”“앞으로 당신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꼭 저에게 알려주세요. 저 브라흐마 아부는 반드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브라흐마 아부는 자신도 모르게 김규민의 검은 스타킹에 눈을 흘렸다가 한 움큼 덥석 만지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누르며 고마움을 표했다.“네, 아버지께 꼭 말씀 전할게요!”“서로의 우정이 영원하길 빌겠어요!”김규민은 브라흐마 아부의 뜨거운 시선을 보며 기겁을 했다.어쨌든 그녀에게
”당신?! 하현?!”이때 인도인들도 하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감히 브라흐마 커크의 이름을 직접 입에 담다니 스스로 고귀하다고 여기는 인도인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함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인도인들이 허리춤에 찬 장검을 뽑아들고 싸늘한 표정으로 하현을 에워쌌다.“당신이었군. 하현!”브라흐마 아부가 살짝 어리둥절해했다가 이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함부로 찾아와! 아주 간덩이가 부었군! 지옥을 제 발로 찾아오다니!”“내 제자를 죽이고 감히 그의 빈소에 들어와 소란을 피워! 게다가 내 스승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스스로가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이지?”“우리 인도인에게 맞선 결과가 어떨지 생각이나 해 봤어?”브라흐마 아부는 선봉사와 인도상회가 아직 주도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는데 하현이 제 발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인도인을 뭘로 보고 이따위 짓을 벌이는 것인가!수십 명의 인도인들은 지금 서슬 퍼런 장검을 들고 단번에 하현을 베어버릴 기세로 노려보았다.김규민도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눈동자를 매섭게 번쩍이며 입을 열었다.“하현, 이 건방진 자식!”“브라흐마 아샴을 죽여 놓고 감히 빈소에 와서 소란을 피우다니!”“무성 만 씨 가문이 있으면 이렇게 함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한 거야?”“당신의 그 무모함을 고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야?”“잘 들어. 당신이 한 짓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대가를 치러? 내가? 무슨 대가?”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차갑게 김규민을 노려보았다.“난 사람을 죽이지도 불을 지르지도 않았는데 왜 내가 대가를 치러야 하지?”“오히려 인도인과 김 씨 가문이 이유 없이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잖아?! 해명을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할 사람들은 당신인 거 같은데?”하현은 말을 하면서 멱살을 움켜쥐고 있던 사람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이 사람이 브라흐마 아샴을 죽인 범인이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놈에
하현의 말을 들은 인도인들은 모두 숨을 헐떡였다.그들은 뭔가 불안하고 찜찜한 점이 없지 않았지만 하현이 이렇게 증거를 데려올 줄은 몰랐다.그리고 그날 현장에 있던 몇몇 인도인들은 하현이 데리고 온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그날 본 범인과 거의 흡사하게 생긴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있던 인도인들의 얼굴이 급변했다.모두가 적개심을 느끼며 남자를 노려보았다.김규민은 눈꺼풀을 펄쩍이며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하현! 아무 근거도 없이 없는 사실을 날조하지 마!”“우리 김 씨 가문이 어떤 집안이야?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야?”“당신 함부로 우리 가문을 모욕하지 마!”“어디서 거지 한 명 데려와서 이렇게 증거라고 들이밀면 누가 속을 줄 알았어?”“똑똑히 들어. 음식은 함부로 먹어도 되지만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그렇게 막말을 하다간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김규민은 펄쩍펄쩍 뛰며 하현의 말을 강하게 부인했다.그녀는 브라흐마 아부 일행의 주의를 딴 데로 돌려서 하현의 증언이 사실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집중했다.브라흐마 아부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뜬 후 하현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하 씨! 이 사람이 당신의 모습을 하고 내 제자를 죽였다고 했는데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거야!”“확실한 증거도 없이 우리더러 어떻게 믿으란 말이야?”“우리 선봉사와 인도상회는 똑똑한 사람들이야. 함부로 속일 생각하지 마!”“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 그렇지 않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그가 말을 하는 사이 수십 명의 인도인들이 하현을 에워쌌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브라흐마 아부, 내가 오늘 밤 진범을 데리고 온 것은 당신들 인도인이 두려워서가 아니야.”“누명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난 브라흐마 아샴을 죽일 하등의 이유가 없어!”하현은 손에 든 장검을 가지고 바닥에 쿡
”개자식! 감히 우리 김 씨 가문을 모함하다니!”김삼구의 말을 들은 김규민은 순간 표정이 급변하더니 손에 쥐고 있던 총을 들어 그의 입을 막기 위해 죽이려고 했다.“촤칵!”하현이 땅바닥에 발을 세게 디디자 자갈 하나가 날아와 김규민의 손목에 탁하고 맞았고 그녀의 총구는 허공을 향했다.“김규민, 흥분하지 마.”“적어도 내 앞에서는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당신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을 죽여 입을 막기 위함이겠지. 당신이 자꾸 이러면 난 당신이 이놈을 사주해 날 해하려 했다고 생각하게 되잖아, 안 그래?”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하현을 바라보던 인도인들은 무의식적으로 김규민을 쳐다보았다.김규민은 미친 듯이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로 말했다.“하 씨 이 개자식아!”“당신은 우리 김 씨 가문에 오명을 씌우기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다 쓰고 있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우리 김 씨 가문은 당신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당신이 이러면 당신 가족들까지 모조리 죽여 버릴 거라고!”“조상들 무덤까지 파헤쳐 낭패를 보게 만들 거야!”“조상들 뼈를 가루로 만들어 아무렇게나 날려 버릴 거라고!”김규민은 하현에게 협박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김삼구에게 하는 말이었다.하현은 김규민을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무덤덤한 얼굴로 김삼구를 바라보며 말했다.“계속해. 당신이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해 봐.”“걱정하지 마. 난 당신의 안전을 지켜주겠다고 이미 약속했잖아. 약속은 지킬 테니까!”“그리고 당신 가족의 안전도 약속하지. 날 믿어.”“당신이 가고 싶은 나라에 아무 걱정 없이 가도 돼!”김삼구는 힘없이 웃었다.사실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그에게 다른 선택지가 뭐가 있겠는가?그는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김 씨 가문은 그동안 체면을 구겼지만 만 씨 가문이 하현을 비호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일에 많은 힘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고 괜히 만 씨 가문을 건드리고 싶지도 않았어!”“그래서 김 씨 가문은 머리를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