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필요도 없고 물어볼 필요도 없어.”용호태는 두 손을 뒷짐지고 앞으로 걸어 나오며 하현에게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한 가지만 알아두면 돼. 당신이 내 제자를 건드렸다는 거.”“내 집법당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거!”옆에서 성원효가 끼어들며 말했다.“스승님, 방금 저 자식이 스승님을 가만히 안 둘 거라고 했어요!”다른 일행들도 덩달아 거들며 한마디씩 했다.“맞아요. 방금 저놈이 그렇게 말했어요.”“이 자식은 스승님을 아주 무시하고 있다구요!”“스승님을 안중에도 여기지 않고 있어요!”“스승님, 봐주지 말고 저놈을 밟아 주십시오!”“어? 날 가만히 안 두겠다고?”“게다가 우리 무성에서?”용호태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아니 겁도 없이 그런 말을 했다고? 오늘 내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나답지 않은 것이지!”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럼 이제 나랑 이치를 따질 준비가 된 거야?”“이치?”용호태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무성에서는 주먹이 곧 이치야.”“멍청한 놈! 아무리 이치가 있어도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지 않으면 소용없어!”“내 말 못 믿겠으면 이 망할 놈한테 물어봐. 감히 나와 이치를 따질 수 있는 것인지!”용호태는 오만방자하고 싸늘한 눈빛으로 땅바닥에 널브러진 성경무를 가리켰다.하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보아하니 이치를 따지기는커녕 그냥 날 칠 기세군, 안 그래?”“맞아.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건 바로 당신 때문이거든.”“지금 당장 어서 무릎 꿇고 잘못을 인정해. 성원효한테 당신이 한 잘못에 대해 죗값을 톡톡히 치른다면 목숨만은 살려 두지!”용호태의 표정은 음흉하고 포악스럽기 그지없었다.“오늘 당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당신 가족뿐만 아니라 당신의 선대 조상들까지 모두 벌을 받게 될 거야.”“선대 조상들의 무덤을 파헤쳐 뼛가루를 천지사방에 뿌려버릴 거니까!”용호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서늘한 기운이 가득 서려 있었다.그는
모든 사람들이 하현을 바라보며 숨죽이고 있을 때였다.사람들의 눈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성원효의 뺨을 휘갈긴 것이다!“퍽!”하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성원효는 손쓸 겨를도 없이 뺨이 얼얼해졌다.“생각이나 하고 말해!”“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무릎을 꿇으라 마라야?”하현은 얼굴이 날아간 성원효를 보며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스승님!”성원효는 땅에 엎어진 채 얼굴을 가리며 피를 내뿜었다.토해낸 핏덩이 안에는 누런 이빨 몇 개가 섞여 있었다.피를 보자 성원효는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아무리 생각해도 하현이라는 개자식이 이렇게까지 날뛸 줄은 몰랐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며 한동안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벌린 채 하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누구도 눈앞에서 벌어진 장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아까보다 더 처참한 몰골로 만들어 버리다니!용호태도 지금 현장에 있는데!그 외에도 이렇게 많은 고수들이 있는 가운데서 어떻게 하현이 이렇게 주먹을 날릴 수 있는가?하현은 자신이 죽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것인가?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뜻인가?하현의 주먹에 가장 놀란 건 용호태였다.그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그의 상식으로는 이런 상황에 직면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은 굴복할 줄 알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어쨌든 그는 용문 집법당의 부당주였고 용문 내부에서는 당주를 제외하고 그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게다가 실력도 누구 못지않게 강하다.그의 존재 자체가 바로 최강 고수의 정수였다.하현 같은 외지인을 밟아 죽이는 것은 개미 한 마리 밟아 죽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근본도 모르는 외지인이 감히 그의 존재를 무시하고 그의 체면을 살려주기는커녕 눈앞에서 성원효의 뺨을 갈겨버리다니?!이건 비단 성원효의 뺨을 날린 것이 아니
성원효가 뭐라고 하건 말건 용호태는 그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이 자식이!”“어디서 이 영패를 손에 넣었어?”“어떻게 이게 당신 손에 있냐고?”하현은 당당하게 말했다.“그게 왜 내 손에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도대체 이게 왜 당신 손에 있냐고?”용호태는 절대 그럴 리 없을 한 가지 가능성을 희미하게 떠올렸다.“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목숨 부지하기 힘들 거야!”“항성과 도성에 있을 때 누가 소란을 피우길래 손 좀 봐 줬지.”“그가 나한테 이걸 주더군.”하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뭐라더라? 이걸 가지고 있으면 용문 집법당을 통솔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지 난 잘 모르겠어.”용호태의 안색이 갑자기 검게 변했다.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항성과 도성, 용문 집법당의 영패, 그리고 이 젊은 녀석...점점이 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갑자기 뚜렷한 선을 이으며 머릿속에 딱 박혔다.바로 눈앞의 젊은이가 용문 집법당의 새로운 당주인 것이다!용천오가 이미 사람을 보내 이놈을 죽이라고 지시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이놈은 왜 아직도 이렇게 팔팔하게 날뛰며 자신의 앞에 멀쩡히 서 있는가?순간 용호태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무슨 표정을 어찌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부당주, 한 가지만 물어보자구.”하현은 앞으로 걸어와 손을 뻗어 용호태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이 영패가 용문 집법당을 통솔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거 맞지?”용호태는 얼굴이 흙빛이 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는 이 영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일단 인정을 한다면 그것은 용호태가 패배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진정한 당주가 돌아왔는데 부당주인 그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성원효는 말하자면 반쪽짜리 용문 제자나
”보아하니 영패가 좀 먹혔나 보군.”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덤덤한 표정으로 걸어갔다.그러다 그는 갑자기 두 손을 마구 휘두르며 앞에 있던 집법당 제자들을 쓸어버렸다.집법당 제자들은 모두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로 하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몇 사람은 이빨까지 빠져 낭패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으로 얼마든지 하현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하현이 용문 집법당 영패를 들이밀자 아무도 그를 거역할 수 없었다.어쨌든 용문 내부와 집법당 내부에서 이 영패는 두말할 것 없이 집법당 당주를 뜻하는 증표였다.명을 받들고 그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이 광경을 본 여자들과 성원효 일당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영패라는 것을 눈앞에서 보다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아주 오랜 유물처럼 보이는 이 영패가 뜻밖에도 집법당 제자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지는 몰랐다.순간 성원효는 눈동자를 희번덕거렸다.자신이 친히 모셔온 선생님 덕분에 겨우 안정을 찾았었는데 갑자기 영패라는 물건 때문에 모든 상황이 뒤집혔다.“퍽!”하현이 손을 휘둘러 마지막 남은 집법당 제자의 얼굴을 뒤엎었고 그제야 천천히 용호태 앞으로 걸어갔다.하현이 차가운 미소를 띠며 다가오자 용호태는 이를 갈았다.“이놈아, 네놈이 집법당 영패를 들고 왔다고 해도 나한테는 아무것도 바뀌는 거 없어!”“다른 사람들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충고했었지!”“그렇지 않으면 아주 혼쭐이 날 거라고...”하현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고 단호하게 한마디 내뱉었다.“무릎 꿇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는 하다 하다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용호태에게 무릎을 꿇라고?!하현이 미쳤나?아니면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설령 그가 대단한 능력자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용호태에게 무릎을 꿇라고 할 수 있는가?저 사람은 용문 집법당 부당주이다!영패 하나 손에
믿기지 않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눈을 번쩍이게 만드는 광경이 또 펼쳐졌다.하현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좌우로 활을 쏘듯 용호태의 얼굴을 후려갈긴 것이다.“퍽!”“이건 제멋대로 용문을 짓밟은 대가야!”“퍽!”“이건 옳고 그름을 가릴 줄 모른 벌이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한 벌이야!”“용문 집법당 부당주로서!”“솔선수범은커녕 제멋대로 행동한 것도 모자라!”“스스로 용문 규칙도 나 몰라라 하는데 어찌 용문을 지킬 수 있단 말이야?!”“용문은 대하의 요지를 그 오랜 세월 동안 철저히 지켜왔어!”“그런데 결국 당신 같은 개자식 때문에 오랜 세월 쌓았던 공로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생겼어!”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한 대 한 대 울분을 터뜨리듯 용호태를 때렸다.용호태의 얼굴은 말도 못 하게 부풀어 올랐다.용호태도 고수였지만 마구잡이로 퍼붓는 하현의 공격에는 도무지 손을 쓸 수가 없었다.얼굴은 돼지머리처럼 부풀었고 몸은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용호태가 겨우 몸을 일으키려 하자 사람들은 드디어 용호태가 화를 참지 못하고 하현을 죽이려고 반격에 나서는가 보다 했다.그러나 용문 집법당 영패 앞에서는 분노든 원망이든 용호태는 죽을힘을 다해 억누를 수밖에 없었고 감히 어떠한 저항도 시도할 수 없었다.모두들 멍하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다.용문 집법당의 부당주가 개처럼 얻어맞았는데 누가 나설 수 있겠는가?이제 누구의 힘이 더 강하고 누구의 배경이 더 탄탄한지 명확해졌다.성원효를 지원하러 왔던 부잣집 도련님들은 모두 놀라서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그들 상류층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던 이치는 일단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 찌질해 보여도 잘못을 우선 인정해야 했다.선을 그어야 할 때는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체면을 좀 잃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자신의 목
폐부를 찌르는 듯한 하현의 말에 용호태는 더욱더 분하고 억울한 듯 이를 갈다가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승복, 승복해.”“입으로만 승복한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승복해야지, 안 그래?”“내 신원을 파악한 뒤 우리 가족을 죽이겠다는 거 아냐?”“기회가 되면 우리 조상들의 무덤까지 파헤쳐 뼛가루를 날려버리고 싶겠지, 그렇지?”하현은 옅은 미소를 띠며 용호태의 머릿속을 본 것처럼 말했다.그러고 나서 그는 갑자기 발을 들어 용호태의 단전을 걷어찼다.용호태는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막아보려 했지만 무릎을 꿇고 있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순간 그의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마치 누군가가 망치로 몸을 내리친 것처럼 느껴졌고 수십 년 동안 힘들게 수련한 내공은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줄곧 똑바로 차리고 있던 정신은 순식간에 완전히 무너졌다.순간 용호태는 숨을 헐떡이며 땅바닥에 널브러졌고 온몸에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용호태는 이를 갈며 울분을 터뜨렸다.“개자식!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아무것도 아니야. 당신의 내공을 조금 망친 것뿐이지.”무미건조한 하현의 목소리가 용호태의 심장에 박혔다.“당신 같은 사람은 집법당에 몸을 두기 적합하지 않아. 너무 창피해!”“그리고 난 당신이 진심으로 승복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무성은 당신 구역이잖아. 내 안전을 위해서는 당신을 여기서 보내는 게 타당하겠지만.”“자비를 베풀어 당신 목숨만은 남겨 두지.”“고마워할 필요는 없어.”하현은 평온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용호태 같은 사람을 하현은 너무나 잘 안다.자신이 용호태를 무릎 꿇리고 뺨까지 열여덟 대나 때렸으니 그는 분명 보복하려고 할 것이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인품과 덕성은 도저히 용문 집법당 부당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그가 높은 지위에 오른다는 건 모든 용문에게 재앙과도 같은 일이다.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그를 직접 없앨 수도 있다.그런 편이 집법당의 수고로움도 덜어줄
용목단과 성경무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하지만 그들 둘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이들 뒤편에는 용호태와 성원효 두 사람이 들것에 실려 있었다.한 명은 완전히 몸을 가누지 못했다.하늘을 찌르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일견 진창 얻어맞은 평범한 남자의 모습이었다.나머지 한 명은 팔다리가 부러져서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가늠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용천오는 이 사람들을 보고도 그다지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지 않았다.그는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말해 보세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성경무는 눈가에 살짝 경련을 일으키다가 조용히 말했다.“방금 성원효가 실수로 하현을 건드려서 나와 부당주를 불러내 하현을 저지하려고 했어.”“그런데 결국 하현이 용문 집법당 영패를 꺼내 들었고 부당주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저 꼴이 되었어...”용천오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는 듯하다가 말을 내뱉었다.“뭐라구요? 당했다는 겁니까?”“내 기억이 맞다면 아침에 당신과 용목단에게 하현을 찾아가서 말을 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왜 그는 당주 자리를 내놓으려 하지 않았죠? 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때렸다?”“나한테 덤비겠다는 건가요!”성경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식은땀을 흘렸다.“용천오, 하현은 용문 집법당의 영패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여침도 손아귀에 넣었어. 게다가 더 중요한 사실은 그의 곁에 두 명의 고수가 더 있다는 거야. 난 병왕급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간 상대하기가 어려운 게 아니야!”“병왕이면 만만한 거 아닙니까?”용천오는 오만하게 웃었다.“그가 뭐라고 했어요?”“하현은 그러니까...”“그러니까...”“만약 한 시간 안에 사람을 풀어주지 않으면 그 계약을 사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했어.”성경무가 조심스럽게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그의 장모와 아내가 한 계약을 사실로 만든다고?”용천오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기 이내 실소를 금치 못했다.“항성과 도성에서 유명해져서
이튿날 아침, 무성 경찰서.오늘 아침 무성 경찰서에 누군가 투서를 보냈다.투서에는 한여침이 움직인 덕분에 갇혀 있던 최희정과 설은아는 아무런 괴롭힘도 당하지 않고 자유가 없다 뿐이지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하현의 아내이고 장모였다.현재 두 사람을 보석으로 석방할 수 없더라도 얼굴은 한 번 확인하고 싶은 게 하현의 심정이었다.한여침이 이미 위아래 관계를 잘 손써 놓았기 때문에 경찰서 측에서도 하현을 접견실에서 만나 서류에 몇 장 사인하는 것 외에 별다르게 난처하게 하지는 않았다.그들은 얼른 일어서서 곧장 죄수복을 입은 두 여자가 있는 또 다른 접견실로 안내되었다.반 발짝 뒤에 서 있는 설은아의 얼굴은 초췌해 보였지만 여전히 기개는 꺾이지 않은 얼굴이었다.앞서 걸어가는 최희정은 여전히 세상 오만한 표정이었다.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욕지거리부터 늘어놓았다.“제기랄!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나와 용천오와의 계약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건 용천오의 문제야!”“얼른 가서 용천오한테 내가 약속을 이행하고 내 딸을 그에게 보낸다고 해! 하지만 광산은...”최희정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갑자기 접견실에 앉아 있는 하현을 보고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그녀는 두 사람을 찾아온 사람이 용천오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하현이 여기에 나타날 줄은 정말로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설은아는 하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얼떨떨하면서도 민망한 듯 미안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하현은 혼자 버럭했다가 씩씩거렸다가 하는 최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일어서 설은아에게 다가갔다.“많이 억울했지?”설은아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최희정은 두말없이 바로 탁자 앞으로 가서 철제 테이블을 쾅하고 세게 내리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자네! 내 딸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걸 아니 다행이네!”“자네가 아직 우리 은아와의 관계를 완전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
여수혁은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고 느끼며 이를 갈았다.“양유훤, 당신 생각 잘 해야 할 거야. 아직 당신 할아버지는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양 씨 가문 큰집이 아직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구!”“게다가 당신이 아직도 양 씨 가문에서 큰소리칠 수 있는 것은 큰집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야. 그래서 양 씨 가문에서도 함부로 당신에게 칼을 들이댈 수 없는 거지. 단지 그뿐이야.”“만약 당신이 오늘 한 말이 전해진다면 그 많은 지지자들은 다 사라질 거야!”“양 씨 가문에 무슨 권세가 있겠어?”“언제까지 그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을 것 같아?”“당신이 이 남자를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해?”여수혁은 분노하며 퍼부었다.그의 저력이 여전히 꽤 굳건하다는 걸 보여주었다.그는 양유훤이 한 남자를 위해 양 씨 가문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중요한 상황을 포기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그를 두려워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난 지금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고 내일도 할 수 있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구!”양유훤이 차갑게 내뱉었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여기 나타난다고 해도 난 모두에게 알릴 수 있어!”“하현은 내 남자야. 페낭에서 누가 그를 건드리고 싶어도 내 시체를 밟고 지나가지 않는 한 절대 안 돼!”“당신...”여수혁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질투의 화신이 온몸을 점령한 듯 이를 부득부득 갈며 입을 열었다.“하현은 대하 사람이잖아? 그런데 언제 당신 눈에 든 거야?”“아무리 시집을 가고 싶어도 좀 쓸 만한 방패막이를 찾아!”“이런 쓸모없는 놈을 구하다니! 우리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퍽!”양유훤은 손바닥을 후려쳤다.“하현을 모욕하는 것은 날 모욕하는 것과 같아!”여음채는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어서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양유훤, 당신이 왜 이 남자를 이렇게 비호하는지 모르겠지만!”“이 남자
내 남자?짧은 이 한 마디에 여수혁은 천둥소리를 들은 듯 귀가 먹먹해졌다.양유훤의 신분은 말할 수 없이 높다!지금 양 씨 가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말라죽은 낙타가 말보다 큰 법이다.양유훤은 양 씨 집안의 실세로서 배후에는 양제명이 그녀의 뒤를 받치고 있었다.그녀의 남자라.그것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상징한다.적어도 지금 페낭에서는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 외에 양 씨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양유훤이 비호하는 하현을 밟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여수혁이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라는 아주 비범한 신분을 가졌다고 해도 양유훤이 하현을 비호하고 나선다면 그로서도 절대 어쩔 수 없었다.양 씨 가문이 정말로 무너지고 페낭의 몇몇 세력에 의해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한 지금 이 시점에서 양유훤의 권세는 여전할 것이다.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수혁이 줄곧 양유훤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삼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그런데 지금 양유훤의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여수혁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양유훤!”여수혁이 무겁게 입을 열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이 녀석의 정체는 당신도 나도 잘 알고 있어!”“그를 비호하기 위해 굳이 당신의 남자라고 말을 하다니! 그 결과가 어떤 것일지 생각이나 해 봤어?”“그리고 당신도 당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겠지만 그를 당신의 남자라고 선언하는 순간 당신은 그를 끝없는 위험에 빠뜨리게 된 거야.”“그런데도 당신 계속할 거야?”“그래, 내 결정은 바뀌지 않아.”양유훤이 단호하게 말했다.“하현은 내 남자야. 나 양유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틀림없는 사실이야!”“누군가가 그를 건드리려면 내 시체부터 밟고 지나가야 할 거야!”“여수혁, 당신이 해 볼 테야?”여수혁은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양유훤, 내가 당신한테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함부로 행동하지 마!”“당신은 절대 이 남자를 지킬 수 없어!”“퍽!
하현은 싱긋 웃으며 여수혁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말했다.“만약 내가 거절한다면?”“내 호의를 거절한다고?”여수혁은 쥐를 쫓으며 희롱하는 고양이의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분명 하현이 거절하길 바라는 눈치였다.“미안하지만 양유훤의 체면을 더는 봐줄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당신을 놓아주긴 어렵지 않을까?”“그렇다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여음채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언짢은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여수혁 앞에서도 여전히 센 척하는 거야?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여전히 시치미를 뗀다 이거지?여수혁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은 상태인데 당신은 아직도 사태 파악도 못하고 허세를 부린다고?설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절대 좋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모르진 않겠지?잠시 후 여수혁이 손을 흔들자 군중 뒤에서 무도복을 입은 남녀 수십 명이 걸어 나왔다.그들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꺼내며 기세등등하게 칼날을 번쩍거렸다.칼날이 빛을 받고 위용을 드러내자 여음채와 부일민은 점점 조롱과 멸시에 가득 찬 미소가 얼굴 가득 번졌다.여수혁은 마치 자신이 천왕 노자라도 된 것처럼 차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두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고 사과하게 만들어!”“감히 반항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네 명의 무맹 제자들이 앞으로 나와 하현의 이마에 장검을 들이대었다.어떤 사람은 야구 방망이를 꺼내 당장이라도 하현의 다리를 부러뜨릴 듯한 자세를 취했다.이 모습을 보자마자 하구봉은 매서운 눈빛을 드러내며 당장이라도 공격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은 손을 내저으며 그를 만류했다.그와 하구봉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하지만 강옥연과 원가령 두 사람이 이 일에 엮이면 정말로 발을 빼기 힘들어진다.이것은 하현이 원하는 일이 절대 아니다.“내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말이야.”하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빗발치는 칼날을 무시하고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당신은 양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