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네 넷째 공주는 비록 황실의 변두리에 불과한 사람이지만 독한 사람이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이걸윤을 손에서 놓치는 순간 거리낌없이 공격하고 나섰으니 말이야.”“하지만 그녀는 하현을 만났지 뭐야.”당난영의 말속에 하현을 향한 신임이 가득 묻어났다.그녀는 마치 장모가 사위를 칭찬하듯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로자크는 당난영이 하는 말을 듣고 점점 더 얼굴이 일그러졌다.그가 이번에 움직인 시간은 고작 삼십 분에 불과했다.모든 것이 임시로 결정되었고 신의 한 수라고 칭할 정도로 의기양양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하현 그놈한테 이렇게 당하다니!심지어 이것은 하현 그놈이 일부러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 것이었다.뼈아픈 실책이었고 상처였다.순간 로자크의 심장이 벌렁거렸다.유라시아 전장 이후로 처음 느끼는 고통이었다.혼혈인 로자크의 얼굴에는 동양의 나라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로 가득 차올라 손에 든 총조차 제대로 잡고 있을 수 없었다.“당신들이 들고 있는 거 다 내려놔.”당난영이 위엄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난 나이가 많고 불가의 뜻을 따르기 때문에 사람을 잘 죽이지는 않아.”“하지만 사람을 잘 죽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아예 죽이지 못하는 건 아니야.”“어차피 당신들도 날 죽이러 왔잖아, 안 그래?”“나와 껄끄러운 상대라면 몇 명을 죽인들 아무 상관없어.”“어차피 카펫도 더러워졌고.”당난영의 말이 떨어지자 수십 명의 항도 하 씨 친위대가 총을 들고 살벌하게 로자크 일행을 향해 겨누었다.로자크의 얼굴에는 자신이 이미 실패했다는 것을 통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지만 혼혈이자 반쪽짜리지만 서양인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쉽사리 체면을 내려놓고 항복하지 못했다.“탕!”당난영은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손짓을 했다.순간 총알이 날아와 불을 내뿜었고 뛰어오르려던 성전 기사 두 명을 쓰러뜨렸다.“항복! 항복합니다!”“항복!”눈앞에서 총알이 빗발치자 로자크는 그제야 무릎을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어요!”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무릎만 꿇으면 사람들을 내놓겠습니다...”무릎을 꿇어?!빌어?!이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하현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던 화풍성, 강학연 등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도대체 하현이 지금 뭐라고 말하는 것인가?넷째 공주에게 감히 무릎을 꿇으라고 하다니!?노국은 일찍이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었음을 모른단 말인가!비록 평생 왕위와 인연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노국 황실 4순위 후계자라면 보통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신분이었다!평소에도 노국을 대표해 여러 나라와 지역을 방문해 매번 국가 원수급 대우를 받아온 넷째 공주였다.위로는 귀족들부터 아래로는 모든 시민들까지 그녀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심지어 넷째 공주와 몇 마디 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읍소를 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모두들 넷째 공주에게 실수로라도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그녀에게 미움을 산다는 것은 곧 노국의 노여움을 산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하현이 넷째 공주에게 무릎을 꿇고 빌라고?이건 이미 도발의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그야말로 노국을 멸시하는 행위였다.넷째 공주는 아무리 많은 풍파를 겪었어도 자신이 이런 상황을 맞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녀는 하현이 공손하게 나오든 단호하게 나오든 그에 상응하는 해결책을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었다.그러나 하현이 무릎을 꿇고 빌라고 할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미친 게 아니고서야 절대 내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넷째 공주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하 씨, 방금 뭐라고 했지?”“무릎을 꿇고 빌라고 했습니다!”하현의 표정은 여전히 단호했고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대하에서 대하 말도 못 알아들으십니까?”“못 알아들었으면 그만 나가 주시죠.”“대하 말부터 배우고 다시 얘기하
사람들은 모두 이 광경을 바라보다 정신이 멍해졌다.항성이 노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는 노국의 공주가 오면 위로는 항독부터 아래로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큰길에서 무릎을 꿇고 맞이해야만 했다.하지만 지금 하현은 노국의 넷째 공주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한 것이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왕이 이렇게 콧대를 세우고 강하게 나오는데도 하현은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이것은 넷째 공주의 자존심을 꺾는 일일 뿐만 아니라 노국 황실의 얼굴을 때리는 것이었다.그래서 지금 넷째 공주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다.넷째 공주의 마음속에는 하현 이놈을 씹어 먹어도 모자랄 판이었다.그녀가 정말 무릎을 꿇으면 하현의 손에 어마어마한 꼬투리가 생기게 된다.이 장면이 폭로가 된다면 그녀는 하루아침에 체면이 떨어져 노국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개자식, 감히 날 모욕해?”넷째 공주는 화가 극에 달했다.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녀는 냉소를 흘리며 하현 앞에 있던 식탁을 발로 걷어차 엎어버렸다.“내가 천군만마를 불러들여 이 대구 엔터테인먼트를 박살 내 버릴 거야!”순식간에 찻잔이 널브러졌고 평화롭던 아침 식사는 엉망이 되었다.하현과 함께 있던 하수진의 얼굴빛이 살짝 일그러졌다.넷째 공주가 하현의 식탁마저 엎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화풍성, 강학연 두 사람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온몸에 차를 뒤집어썼다.그야말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되었다.그러자 넷째 공주는 만족스러운 듯 크게 웃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계속해서 모욕을 당했는데 이제야 겨우 약간은 만회를 한 기분이었다.“퍽!”하현은 일어서서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넷째 공주의 얼굴에 손바닥을 날렸다.갑자기 맑고 찰진 소리가 울렸다.생각지도 못한 한 방에 넷째 공주는 순간 온몸이 비틀거렸고 얼굴은 벌겋게 타올랐다.옆에 있던 두 명의 성전 기사들이 제때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녀는 바닥에 넘어졌을
”멀리 갈 필요도 없어요. 바로 어젯밤!”“당신이 최측근 기사들을 당난영 부인의 처소로 보내 그녀를 습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지금 당신을 때려죽일 수도 있습니다.”“그리고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노국 황실은 아무 소리도 못할 거예요. 장담합니다!”“어디 한번 해보시겠습니까?”하현의 표정은 누구보다 결연했고 매서웠다.다른 곳에서는 노국의 고귀한 황실 신분이 먹힐지는 몰라도 하현에겐 어림도 없었다.“장공주 빅토리아의 체면을 봐서 이번 한 번만은 기회를 드리겠습니다.”“무릎을 꿇든지 아니면 당장 꺼지든지 선택하세요!”“당신들 너무 하는 거 아니야?!”금발의 성전 기사가 끝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비록 방금 동료가 하현에게 걷어차여 땅바닥에 널브러지는 것을 보았지만 자신의 공주가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이를 갈며 달려든 것이다.공주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기사들에게 눈앞에서 공주가 당하는 꼴을 보고 있는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루스벨트! 물러서!”자신의 부하들이 화를 참지 못하고 달려드는 것을 본 넷째 공주는 얼른 그들을 제지했다.왜냐하면 하현이 지금까지 보여준 전력으로 봤을 때 성전 기사들이 하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는 일찌감치 알아차렸기 때문이다.넷째 공주는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하 씨, 나와 꼭 이렇게 얼굴을 붉혀야만 하겠어?”“내 체면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거지?”“그렇습니다. 당신의 체면 따위 내가 상관할 바 아니죠.”하현은 넷째 공주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난 인내심도 성격도 그리 좋은 편이 못 됩니다. 10초만 더 드리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내가 대신 선택하겠습니다.”“개자식! 당신 눈에 뵈는 게 없어?!”하현이 넷째 공주를 위협하자 루스벨트는 순간 더 이상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순식간에 허리춤에 있던 기사 장검을 꺼내더니 기세등등하게 전방을 향해 내리꽂았다.장검이 뱀의 혀처럼 독기를 내뿜었다.성
모욕!말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루스벨트의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패배감이 일렁였다.그는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하현의 무덤덤한 시선 아래 도저히 무릎에 힘을 쓸 수가 없었다.온몸이 그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만약 여기서 억지로 일어나 하현에게 반격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전해졌다.하현은 무릎을 꿇고 있는 성전 기사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시선을 넷째 공주에게로 돌렸다.“공주님, 당신의 기사가 당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공주님에게는 이제 3초가 남았습니다...”“개자식!”“사람을 이리 모욕하다니!”그때 성전 기사들이 포효하며 하현을 향해 돌진해 왔다.그러나 그들이 발을 떼자마자 최문성이 호위병들을 데리고 나타나 성전 기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1초 남았습니다...”하현은 성전 기사들의 움직임에 눈도 깜짝하지 않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1초 후 당신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죄송하게도 내가 당신을 대신해 선택하겠습니다.”“개자식!”넷째 공주는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고귀한 신분으로 어찌 그녀가 이런 수모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매서운 눈빛의 하현을 보자 그녀의 마음속엔 어느새 무력감이 크게 자리잡았다.그녀는 하현의 뺨을 세차게 때리고 싶었지만 자신이 그를 때리면 하현은 절대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좋아! 과연 듣던 대로군!”“무릎을 꿇으라는 거지?”“당신이 뒷감당을 할 수만 있다면!”“당신이 내 사람들을 풀어줄 수만 있다면!”“무릎을 꿇겠어!”이를 앙다문 넷째 공주는 갑자기 ‘털썩'소리를 내며 하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넷째 공주님!”눈앞의 광경에 성전 기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눈이 휘둥그레졌다.어떤 이들은 자신의 외투가 찢어질 정도로 분노하며 포효했다.그들은 당장이라도 하현을 산산조각 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
하현은 손을 닦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넷째 공주님, 비즈니스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장사도 이렇게 말을 꺼내는 법은 없지요.”“풀어주고 말고 하기 전에 이걸윤의 생사부터 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잊지 마세요. 카지노에서 한 서약서. 현재 그의 목숨은 나한테 달려 있습니다. 그는 나의 개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내가 물라고 하면 물고 짖으라면 짖어야 하는 개 말이죠.”“그가 살아남길 바란다면 간단해요. 당신 부하들을 데리고 하구천을 죽이러 가는 겁니다.”“하구천은 죽고 이걸윤은 사는 거죠. 이 거래는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이니 취소할 뜻이 전혀 없습니다.”넷째 공주는 심호흡을 한 뒤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하현, 당신이 항성과 도성 귀족들을 도발해서 우리 노국과의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거 잘 알고 있어.”“노국이 다시는 항성과 도성의 일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잖아, 안 그래?”“이걸윤에게 하구천을 죽이라고 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지.”“하지만 나도 한 가지 일러둘 게 있어. 당신은 날 혼혈 공주라고 치켜세우는데 말이야.”“난 일개 공주일 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노국 황실을 대변할 수 있겠어?”“나와 항도 하 씨 가문이 사이가 틀어진다고 해도 노국과 항도 하 씨 가문이 틀어지는 건 아니야.”“노국과 두 도시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당신이 단칼로 베어버린다고 해서 베어질 수 있는 게 아니야.”“게다가 지금 내 손에 쥔 능력으로는 하구천을 죽일 수 없어.”“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야. 항도 하 씨 내부에 조력자가 없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그러니 하현, 당신의 음모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당신이 작위를 원하든, 돈을 원하든, 영주권을 원하든 이런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어.”“당신네 대하인들은 다 그런 거 아니야?”“미국의 영주권 한 장을 위해 조상을 등지고 나라를 팔아 영예를 추구하잖아.”“난 지금 당신한테 노국의 영
”하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넷째 공주의 목소리는 차가웠다.“방금 말했잖아?”“첫째, 하구천을 죽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둘째, 내가 가진 역량으론 하구천을 죽일 수가 없어!”“다른 조건을 제시해 봐!”“너무 지나친 조건이 아니라면 내가 만족시킬 수 있을 거야!”넷째 공주는 이를 살짝 깨물었다.뭔가 단단히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난 당신이 거의 불가능한 일을 원해도 다 들어줄 수 있어!”넷째 공주는 진심을 보여주려는 듯 자신 있게 말했다.“죄송하지만 그렇게는 못 합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다른 조건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하구천을 죽이는 게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이 아니라 내가 판단합니다.”“노국과 항도 하 씨 가문 사이를 이간질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러길 원한다면 당신은 하구천을 죽일 방법을 생각해내야 합니다.”“하구천 하나도 못 죽이면서 어떻게 당신의 진심을 믿으란 말이죠?”“하구천이 죽어야만 당신의 진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정말 나와 화해를 하고자 하는 성의가 있다면 말이죠.”하현에게 있어서 하구천은 확실히 다루기 힘든 사람이다.하구천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수진을 상석에 앉힌다는 전제하에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것이다.하지만 만약 하구천을 건드린 사람이 노국의 넷째 공주라면 상황이 달라지고 하현은 그 일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넷째 공주가 실제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기회주의자들인 항성과 도성의 귀족들을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노국 황실의 눈에 그들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바둑돌 같은 존재들이다.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항성과 도성의 전반적인 상황을 안정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하현이 보기에는 넷째 공주가 하구천을 죽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실용적인 대국이다.넷째 공주가 보기에 하현의 모든 행동은 복수를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이것이 지금
”손님들 배웅해 드려!”보이차를 한 주전자 더 우려낸 후 하현은 넷째 공주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하 씨!”넷째 공주는 이를 악물었다.뭐라고 버럭 화를 내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며 분노를 삼켰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보이차를 하현의 얼굴에 뿌리고 싶었지만 결국 그 충동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 그녀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한동안 하현을 노려보던 넷째 공주는 결국 그대로 돌아섰다.몇 분 뒤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앉은 그녀의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멋지고 유려한 남자 비서가 샴페인 한 잔을 공손히 건네며 말했다.“넷째 공주님,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넷째 공주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원탁의 기사들!”원탁의 기사란 성전 기사단 내에서 선발된 정예부대였다.말하자면 성전 기사단의 특전사이며 병왕 중의 병왕이었다.넷째 공주처럼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원탁의 기사를 대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그녀의 부름을 듣고 잘생긴 남자 비서의 얼굴에 살짝 긴장감이 감돌았다.넷째 공주의 마음에 전력을 다할 결심이 선 것 같았다....넷째 공주의 럭셔리한 차량 행렬이 떠나는 순간 하현은 응접실 발코니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해안선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도도하고 차가운 그림지가 아름다운 형체를 뽐내며 다가왔다.하수진.그녀는 방금 전통 의상으로 갈아입었다.옷은 그녀의 차가운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날씬한 그녀의 라인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보통 남자들은 이런 아리따운 여자 앞에서 이성을 붙잡아 놓기 어렵다.그러나 하현은 몇 번 훑어보고는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에 눈길을 돌렸다.하수진은 이 모습을 보고 눈을 흘겼다.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이런 그의 모습을 봤다면 심장이 목석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넷째 공주가 떠난 후 당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