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윤은 안색이 확 변하며 입을 열었다.“하현, 내 부하들이 하구천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잘 알잖아?”“내가 직접 나서지 않고서는 하구천을 죽일 수 없어!”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덤덤하게 말했다.“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내가 말했잖아, 당신이 당신의 의형제를 죽일 수 있다면 난 당신을 죽이지 않겠다고.”“그런데 지금 당신이 그를 죽일 수도 없는데 여길 이렇게 떠나려고 한다면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당신은 여기서 매복할 인력을 배치하거나 전화를 걸어 병력을 파견하도록 요청할 수도 있어.”“당신이 능력만 있다면 여기서 당신이 뭘 하든 난 막지 않을 거야.”“단 한 가지, 당신은 여기서 한 발자국도 떠날 수 없어.”“만약 떠나려고 한다면 내 부하들의 총이 당신의 심장에 꽂힐 거야. 그때 가서 날 탓하지 마.”“얼토당토않은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이걸윤.”“내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으니까.”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것 같은 하현의 얼굴을 보며 이걸윤은 차가운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총구를 들어 올려 전방을 향해 겨누었다.그러나 그는 곧 다시 총구를 내려놓아야 했다.그가 총구를 앞으로 향하자 수십 개의 총구멍이 자신의 이마를 겨냥했기 때문이다.그가 만약 하지 말아야 할 동작을 했으면 아마 선 채로 저세상 문턱을 넘었을 것이다.전쟁의 신이라도 이렇게 많은 총부리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게다가 최면에 힘을 쏟느라 이미 자신의 평소 실력의 반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상태가 되었다.망했다!이런 생각이 이걸윤의 마음속에서 슬슬 똬리를 틀었다.그는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엄청난 아우라를 뿜으며 항성과 도성에 금의환향한 그였다.하지만 오늘 밤 그가 저지른 실수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그는 졌다.이미 판을 뒤집을 능력을 상실한 패잔병이 된 것이다.하현 이놈은 앞에서 사람을 죽일 뿐만 아니라 뒤에서 사람을 부추겼다.지금 그는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급할 거 없어. 지금 가장 그를 원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하구천이야.”“그렇다면 우리가 왜 하구천한테 이로운 일을 하는 겁니까?”“남겨두면 골칫거리나 되지 않겠습니까?”최문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이놈 만만치가 않네요.”“우리한테 잡힌 후 연신 비아냥거리고 있어요. 우리는 그를 어찌할 수 없다고 하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을 내보낼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어요.”“정말 대장님의 명령이 없었더라면 이미 형틀에 매달았을 거예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도 나름에는 전신인데 보통의 형벌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잠시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행동은 그의 의지를 부추기는 꼴밖에 되지 않을 거야.”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이걸윤은 인간쓰레기이지만 인간쓰레기도 남다른 데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그를 파멸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굴복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그래도 방법이 있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최문성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한 뒤 말했다.최문성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대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바람같이 사라졌다.“하현, 방금 문성이한테 뭐라고 한 거야?”최영하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물었다.“방금 말했잖아. 아무리 용전 항도라고 해도 이걸윤 같은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어.”“가장 간단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때가 있어.”하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효과가 있을지 어떨지는 며칠 후에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말이야. 이런 건 발설해 버리면 효과가 떨어져.”하현은 옅은 미소를 띠며 찻잔을 들고 하수진을 바라보았다.“그건 그렇고, 약혼 취소된 거 미리 축하해.”“하지만 하구천이 이대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오늘 밤 그는 큰 손실을 입었어. 비록 항도 하 씨 가문이 그걸 핑계로 날 괴롭힐 수는 없겠지만 하구천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하수진과 최영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시각.항성 빅토리아 항 작은 꽃집 안에는 하백진이 메스를 사용해 하구천의 등에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납탄을 한 발 꺼냈다.그런 다음 하구천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꿰매고 상처를 아무는 약을 발라 처치를 마무리했다.하구천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눈가에 가득히 맺힌 원한은 그에게 이를 악물게 만들었다.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원통해하며 말했다.“개자식!”“감히 나한테!”“그가 감히 이걸윤한테 날 죽이라고 명령해?”“간덩이가 부어도 한참 부었군!”맞은편에 있던 하문성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태블릿 PC에서 그가 보던 것은 방금 하구천이 이걸윤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이었다.“아니, 이걸윤 그놈은 머리가 나빠진 거야? 원래 나쁜 거야?”“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도 못 해?”“하현 그 개자식 말 몇 마디에 널 공격해?”“노국을 등에 업었다고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이 감히 제깟 놈을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나 보지?”하문성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하구천의 부상이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초조해 미칠 지경이었다.이걸윤이 이미 하현의 손에 넘어갔으니 약속대로라면 하수진과의 약혼도 당연히 물 건너 간 꼴이 되었다.하구천은 이걸윤이라는 의형제의 손에 총을 맞고 피를 흘렸다.이걸윤을 당당하게 금의환향시켰는데 정작 하구천은 조금도 이득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된 것이다.가장 중요한 건 하현과 하수진 둘 다 하구천을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하문준이 하현의 뒤를 받치고 있는 상황에서 하구천이 떳떳하게 복수할 방법이 없다.그래서 늘 지극히 이성적이라고 자랑하던 하문성조차도 지금 화가 나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다.하구천은 이를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통증과 원망 때문에 이성을 잃을 지경이라 무슨 말도 하기 싫었다.“오빠, 너무 화내지 마. 이 일은
하문성과 하백진이 신중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을 즈음 항성에 불어닥치고 있는 회오리 속에 어두컴컴하게 불을 밝힌 가든 별장에 불청객이 몰려왔다.삼엄했던 주변 경비는 비바람 때문에 다소 느슨해져 있었다.가든 별장 본관 건물에는 이따금 사람 그림자가 왔다갔다할 뿐 고요하게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이들 사람 그림자는 모두 가든 별장 경호원들의 것이었다.대다수의 정예 경호원들은 하문준과 함께 떠난 상황이어서 이곳에 남은 경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이때 어둑어둑한 불빛 아래 기사복을 입은 한 줄기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그는 손에 든 총구의 방아쇠를 소리 없이 당겨 감시 카메라 몇 개를 무력화하는 데 모두 성공했다.이후 그는 별장을 한 바퀴 빙 돌며 경호원이 몇 명 정도가 있는지 확인한 후 신호를 보냈다.잠시 후 기사복을 입은 십여 명의 대하계 성전 기사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모두 서양 검을 손에 쥔 채 싸늘한 표정으로 건물 가까이 다가갔다.그들은 아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접근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올라가!”다시 한번 상황을 확인한 뒤 선두에 선 혼혈 기사는 눈동자에 핏발이 선 채 뒤따르는 무리에게 지시했다.이 사람은 노국 황실 넷째 공주의 최측근 기사, 로자크이다.과거에 그는 성전 기사단 부단장으로 유라시아 전쟁에 나가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다.하지만 나중에 대하 총교관에게 놀라 주저앉은 뒤로는 더 이상 실력도 지위도 향상되지 못했다고 한다.은퇴 후 넷째 공주가 보디가드로 그를 불러들여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총교관에게 놀라 뒤로 나자빠졌을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누구보다 의기양양했다.그의 눈에 이 극동의 국제도시는 그가 다시 일어설 희망의 보이는 곳이었다.항성을 발아래 놓을 수만 있다면 아마 지난날 수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본관 건물을 바라보던 로자크는 냉랭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계획대로 당
항도 하 씨 가문 친위대들의 손에 들려 있던 적외선 조준기가 일제히 로자크의 등에 떨어졌다.모든 성전 기사들에게는 적어도 네다섯 개의 붉은 점이 꽂혀 있었다.살벌한 얼굴로 돌진했던 성전 기사들은 하나같이 뻣뻣하게 몸이 굳어 버렸고 그 자리에 선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이 붉은 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이 쓸데없는 행동을 해서 상대방이 방아쇠를 당긴다면 어떻게 되는지 그 결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성전 기사들 중 어떤 이는 감히 항도 하 씨 호위대가 자신들에게 손을 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는 몸을 굴리더니 당난영 쪽으로 달려들어 그녀를 잡으려고 했다.“퓽퓽퓽퓽!”작고 날렵한 소리가 나면서 수많은 총알이 쏟아져 나왔고 방금 굴러 나온 사람은 그대로 온몸에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이를 지켜보던 로자크는 눈앞에서 성전 기사의 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것을 보고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며 진동했고 분위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로자크 일행은 간담이 서늘해졌고 등골이 오싹했다.“산 지 얼마 안 되는 카펫인데 이렇게 더러워져 버렸군.”당난영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살짝 내려놓았다.이어 눈꼬리를 가늘게 뽑은 채 로자크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이제야 오셨군.”“밤늦게 깨어 있다는 게 여자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모르나 봐.”“만약 당신들이 너무 늦게 온 탓에 오늘 밤 내 휴식이 방해를 받았다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당난영의 말은 마치 이웃의 행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가벼웠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로자크 일행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주위에는 항도 하 씨 가문 정예들이 지켜보고 있었다.로자크의 눈꺼풀이 계속 떨렸다.잠시 후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부인, 제가 부인을 얕잡아 봤군요!”“당신을 향한 하 문주의 마음이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습니다. 문주 친위대를 부인
”당신네 넷째 공주는 비록 황실의 변두리에 불과한 사람이지만 독한 사람이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이걸윤을 손에서 놓치는 순간 거리낌없이 공격하고 나섰으니 말이야.”“하지만 그녀는 하현을 만났지 뭐야.”당난영의 말속에 하현을 향한 신임이 가득 묻어났다.그녀는 마치 장모가 사위를 칭찬하듯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로자크는 당난영이 하는 말을 듣고 점점 더 얼굴이 일그러졌다.그가 이번에 움직인 시간은 고작 삼십 분에 불과했다.모든 것이 임시로 결정되었고 신의 한 수라고 칭할 정도로 의기양양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하현 그놈한테 이렇게 당하다니!심지어 이것은 하현 그놈이 일부러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 것이었다.뼈아픈 실책이었고 상처였다.순간 로자크의 심장이 벌렁거렸다.유라시아 전장 이후로 처음 느끼는 고통이었다.혼혈인 로자크의 얼굴에는 동양의 나라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로 가득 차올라 손에 든 총조차 제대로 잡고 있을 수 없었다.“당신들이 들고 있는 거 다 내려놔.”당난영이 위엄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난 나이가 많고 불가의 뜻을 따르기 때문에 사람을 잘 죽이지는 않아.”“하지만 사람을 잘 죽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아예 죽이지 못하는 건 아니야.”“어차피 당신들도 날 죽이러 왔잖아, 안 그래?”“나와 껄끄러운 상대라면 몇 명을 죽인들 아무 상관없어.”“어차피 카펫도 더러워졌고.”당난영의 말이 떨어지자 수십 명의 항도 하 씨 친위대가 총을 들고 살벌하게 로자크 일행을 향해 겨누었다.로자크의 얼굴에는 자신이 이미 실패했다는 것을 통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지만 혼혈이자 반쪽짜리지만 서양인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쉽사리 체면을 내려놓고 항복하지 못했다.“탕!”당난영은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손짓을 했다.순간 총알이 날아와 불을 내뿜었고 뛰어오르려던 성전 기사 두 명을 쓰러뜨렸다.“항복! 항복합니다!”“항복!”눈앞에서 총알이 빗발치자 로자크는 그제야 무릎을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어요!”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무릎만 꿇으면 사람들을 내놓겠습니다...”무릎을 꿇어?!빌어?!이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하현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던 화풍성, 강학연 등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도대체 하현이 지금 뭐라고 말하는 것인가?넷째 공주에게 감히 무릎을 꿇으라고 하다니!?노국은 일찍이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었음을 모른단 말인가!비록 평생 왕위와 인연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노국 황실 4순위 후계자라면 보통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신분이었다!평소에도 노국을 대표해 여러 나라와 지역을 방문해 매번 국가 원수급 대우를 받아온 넷째 공주였다.위로는 귀족들부터 아래로는 모든 시민들까지 그녀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심지어 넷째 공주와 몇 마디 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읍소를 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모두들 넷째 공주에게 실수로라도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그녀에게 미움을 산다는 것은 곧 노국의 노여움을 산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하현이 넷째 공주에게 무릎을 꿇고 빌라고?이건 이미 도발의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그야말로 노국을 멸시하는 행위였다.넷째 공주는 아무리 많은 풍파를 겪었어도 자신이 이런 상황을 맞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녀는 하현이 공손하게 나오든 단호하게 나오든 그에 상응하는 해결책을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었다.그러나 하현이 무릎을 꿇고 빌라고 할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미친 게 아니고서야 절대 내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넷째 공주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하 씨, 방금 뭐라고 했지?”“무릎을 꿇고 빌라고 했습니다!”하현의 표정은 여전히 단호했고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대하에서 대하 말도 못 알아들으십니까?”“못 알아들었으면 그만 나가 주시죠.”“대하 말부터 배우고 다시 얘기하
사람들은 모두 이 광경을 바라보다 정신이 멍해졌다.항성이 노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는 노국의 공주가 오면 위로는 항독부터 아래로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큰길에서 무릎을 꿇고 맞이해야만 했다.하지만 지금 하현은 노국의 넷째 공주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한 것이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왕이 이렇게 콧대를 세우고 강하게 나오는데도 하현은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이것은 넷째 공주의 자존심을 꺾는 일일 뿐만 아니라 노국 황실의 얼굴을 때리는 것이었다.그래서 지금 넷째 공주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다.넷째 공주의 마음속에는 하현 이놈을 씹어 먹어도 모자랄 판이었다.그녀가 정말 무릎을 꿇으면 하현의 손에 어마어마한 꼬투리가 생기게 된다.이 장면이 폭로가 된다면 그녀는 하루아침에 체면이 떨어져 노국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개자식, 감히 날 모욕해?”넷째 공주는 화가 극에 달했다.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녀는 냉소를 흘리며 하현 앞에 있던 식탁을 발로 걷어차 엎어버렸다.“내가 천군만마를 불러들여 이 대구 엔터테인먼트를 박살 내 버릴 거야!”순식간에 찻잔이 널브러졌고 평화롭던 아침 식사는 엉망이 되었다.하현과 함께 있던 하수진의 얼굴빛이 살짝 일그러졌다.넷째 공주가 하현의 식탁마저 엎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화풍성, 강학연 두 사람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온몸에 차를 뒤집어썼다.그야말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되었다.그러자 넷째 공주는 만족스러운 듯 크게 웃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계속해서 모욕을 당했는데 이제야 겨우 약간은 만회를 한 기분이었다.“퍽!”하현은 일어서서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넷째 공주의 얼굴에 손바닥을 날렸다.갑자기 맑고 찰진 소리가 울렸다.생각지도 못한 한 방에 넷째 공주는 순간 온몸이 비틀거렸고 얼굴은 벌겋게 타올랐다.옆에 있던 두 명의 성전 기사들이 제때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녀는 바닥에 넘어졌을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