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본 이걸윤과 하구천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이영돈은 최고의 병왕이다!그들 둘이 합쳐도 그에게 맞서려면 전력을 다해야 할 정도로 강한 상대였다!그렇지 않으면 이영돈을 순식간에 제압할 수 없다.그러나 하현은 손쉽게, 너무나 손쉽게 이영돈의 얼굴을 날려 버리지 않는가?직접 보지 않았다면 이걸윤과 하구천은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하구천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이미 하현에 대한 경외심이 마음속에 자리잡은 하구천이었다.그러나 이 광경을 보고 하구천의 마음속엔 하현을 향한 경외심이 더욱더 짙게 깔렸다.“이것이 성전 기사의 수준이야?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데?”하현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으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러자 이걸윤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고 더 이상 지체할 겨를이 없는지 허리춤에 찬 총에 오른손을 대며 말했다.“하 씨, 당신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어?”“난 전신이야!”“당신이 정말로 나와 싸우고 싶다면 아마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할 거야.”하구천도 차가운 눈빛으로 이걸윤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하현, 사람을 대할 땐 관대해야지. 너그럽게 용서해야 할 땐 용서하고 뒷일을 생각해야지.”“어젯밤 동 항독이 당신들한테 사정하러 갔을 땐 당신들 콧방귀도 안 뀌었잖아?”하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지금 내가 이치를 따지고 우위를 점하니까 뭐, 관대하게 대하라고?”“게다가 당신들은 지금 죽자고 나한테 덤비면서 난 당신들 말에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거야?”“대구 엔터테인먼트는 화 씨 가문 거라는 거 잊지 마!”“화 씨 가문 경호원 외에도 난 용문 항도 지회, 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을 파견했어.”“당신들이 싸우자고 해도 난 아무 상관없어!”하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이들은 모두 용문 사람들이었고 하나같이 칼을 들고 살벌할 얼굴로 이걸윤 일행을 쳐다보았다.이를 지켜보던 이걸윤과 하구천의 낯
”탕!”총알 한 발이 하구천의 복부에 떨어졌다.엄청난 충격으로 하구천의 몸이 튀어나와 한쪽 면의 유리에 세게 부딪혔다.유리는 거미줄 같은 균열을 드러내며 산산조각이 났다.다음 순간 하구천의 몸이 땅에 떨어지며 ‘윽'하고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왔다.순간 그는 피를 뿜어내며 낯빛이 극도로 일그러졌다.이걸윤의 행동이 너무나 급작스러워서 아무리 하구천이라고 할지라도 막을 수가 없었다.하구천은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상처에서 피가 솟구쳤다.“이 소주!”항도 하 씨 가문의 경호원들이 혼비백산한 채 놀라서 달려나와 하구천의 앞을 가로막았다.“이 씨 이 개자식! 우리 도련님은 당신을 위해 생사를 걸고 있는데 당신은 감히 등 뒤에 칼을 꽂다니!”몇몇 사람들은 얼른 구급상자를 열어 연신 소리쳤다.“얼른 처치해! 얼른 처치해서 병원으로 가야 해!”순간 카지노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항도 하 씨 가문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모두 정신이 혼미해졌다.성전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이걸윤은 분명 하구천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형제라고 외쳤다.그런데 왜 갑자기 방아쇠를 당긴 것일까?설마 총알이 잘못 날아든 것이었을까?처치를 마친 하구천은 들고 있던 알약을 얼른 삼켰고 그러자 창백한 그의 안색이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그는 앞을 가로막고 있던 호위대를 밀어내고는 일그러진 얼굴로 이걸윤을 노려보았다.“이 소주, 당신 지금 이게 무슨 뜻이야?”형제가 서로 으르렁대는 모습을 보던 하현은 웃으며 손을 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개가 악에 받혀 으르렁대고 있는 순간인데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장면인가?굳이 여기에 끼어들 필요가 있겠는가!심지어 하현은 자신들의 일행을 이끌고 4, 5미터 정도 뒤로 물러나 두 형제들에게 싸울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무슨 뜻이냐고?”이걸윤은 냉소를 지으며 하구천을 쳐다보았다.“나랑 당신이 의형제라고?”
”이걸윤,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하 씨 이놈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거냐고?”“내가 항성으로 불러들인 게 당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라고?”“무슨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어?!”“당신은 전신이야!”“누가 당신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겠어?”하구천은 거의 피를 토할 듯 소리쳤다.“이걸윤, 당신은 쓸모없는 인간이었어!”“오죽했으면 6년 전 이곳에서 사람들한테 쫓겨나듯이 항성을 떠났겠어!”“당신이 이렇게 금의환향하게 된 건 다 내 덕분이라고!”이걸윤은 싸늘한 눈빛으로 하구천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무리 뭐라고 떠들어대도 당신이 날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어.”“게다가 지금 당신은 전신의 명성을 더럽히고 있어.”“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성전 기사단을 더럽히고 노국을 더럽히는 짓이야!”“아무리 왕법이 당신을 용서한다고 해도 난 당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그러자 이걸윤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어서 저놈을 쳐! 내 말 못 들었어?”“다 귀가 먹은 거야?”“죽여!”말이 떨어지자마자 이걸윤은 들고 있던 총을 다시 들어 그대로 전방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조심하세요!”몇몇 항도 하 씨 가문 호위대들이 순식간에 몸을 날려 하구천의 앞을 막았다.총알이 사방에서 날아들었고 호위대들은 모두 총알받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하구천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눈앞에서 섬뜩한 광경이 펼쳐지자 하구천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당신 정말 죽고 싶어?” 하구천은 화가 끓어올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이걸윤을 죽이려고 발걸음을 내디디려고 했으나 호위대가 그를 막고 섰다.“도련님, 지금 도련님은 다친 상태입니다. 그는 전신입니다. 도련님이 나설 상대가 아닙니다.”“우선 도련님은 여기를 벗어나십시오!”“항도 하 씨 가문이 온전해야 우리가 삽니다. 여기를 떠나기만 한다면 누가 도련님을 건드리겠습니다!”“도련님은 도자기 같은 존재이십니다. 어
하구천이 창문을 뛰쳐나온 순간 이미 성전 기사들이 몰려왔다.그들의 손에 든 총기는 항도 하 씨 가문 호위대의 손에 있는 것보다 더 많았다.머지않아 성전 기사들은 호위대를 짓눌러 무너뜨릴 태세였다.그러나 호위대들은 하구천이 떠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군중 속에서 최영하는 얼른 일어나 하현을 보고 하구천을 지금 잡을 것인지 말 것인지 물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오늘 밤 그가 움직이지 않으면 승리는 그의 몫이다.그러나 움직이면 자신에게 무리가 될 수도 있었다.그래서 지금은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현은 생각한 것이다.“웅!”잠시 후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하구천은 대구 엔터테인먼트를 성공적으로 탈출하여 자신의 전용 좌석에 앉은 것이 분명했다.“이걸윤, 하현. 오늘 밤 일, 내가 똑똑히 기억하겠어!”살의에 가득 찬 하구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하구천, 난 당신을 건드린 적이 없어. 원한이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덤비는 되는 거야.”“당신이 머릿속으로 머리를 굴린 뒤에 날 건드린다면 나도 정당방위를 할 수밖에 없잖아.”하현의 말을 듣고 차에 있던 하구천은 하마터면 피를 뿜을 뻔했다.하현이 그의 속을 꿰뚫어 보듯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분명 하구천은 이걸윤 그 망나니에게 손을 쓰라고 부추겼는데 이런 결과가 되다니!도저히 하구천은 인정할 수 없었다.“개자식! 감히 도망을 치다니!”이걸윤의 안색이 확 변했다.하구천을 그냥 떠나보내면 하현이 따로 자신에게 손을 쓰지 않아도 자신이 곤란해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걸윤이었다.그는 지금 항도 하 씨 가문 호위대도 아랑곳하지 않고 곁에 남은 십여 명의 성전 기사들을 데리고 창가로 돌진한 후 모든 전력을 동원해 하구천을 향해 무자비하게 사격을 가했다.“탕탕탕탕!”총알이 빗발쳤으나 하구천의 운전사는 이미 멀리 차를
이걸윤은 안색이 확 변하며 입을 열었다.“하현, 내 부하들이 하구천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잘 알잖아?”“내가 직접 나서지 않고서는 하구천을 죽일 수 없어!”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덤덤하게 말했다.“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내가 말했잖아, 당신이 당신의 의형제를 죽일 수 있다면 난 당신을 죽이지 않겠다고.”“그런데 지금 당신이 그를 죽일 수도 없는데 여길 이렇게 떠나려고 한다면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당신은 여기서 매복할 인력을 배치하거나 전화를 걸어 병력을 파견하도록 요청할 수도 있어.”“당신이 능력만 있다면 여기서 당신이 뭘 하든 난 막지 않을 거야.”“단 한 가지, 당신은 여기서 한 발자국도 떠날 수 없어.”“만약 떠나려고 한다면 내 부하들의 총이 당신의 심장에 꽂힐 거야. 그때 가서 날 탓하지 마.”“얼토당토않은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이걸윤.”“내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으니까.”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것 같은 하현의 얼굴을 보며 이걸윤은 차가운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총구를 들어 올려 전방을 향해 겨누었다.그러나 그는 곧 다시 총구를 내려놓아야 했다.그가 총구를 앞으로 향하자 수십 개의 총구멍이 자신의 이마를 겨냥했기 때문이다.그가 만약 하지 말아야 할 동작을 했으면 아마 선 채로 저세상 문턱을 넘었을 것이다.전쟁의 신이라도 이렇게 많은 총부리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게다가 최면에 힘을 쏟느라 이미 자신의 평소 실력의 반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상태가 되었다.망했다!이런 생각이 이걸윤의 마음속에서 슬슬 똬리를 틀었다.그는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엄청난 아우라를 뿜으며 항성과 도성에 금의환향한 그였다.하지만 오늘 밤 그가 저지른 실수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그는 졌다.이미 판을 뒤집을 능력을 상실한 패잔병이 된 것이다.하현 이놈은 앞에서 사람을 죽일 뿐만 아니라 뒤에서 사람을 부추겼다.지금 그는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급할 거 없어. 지금 가장 그를 원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하구천이야.”“그렇다면 우리가 왜 하구천한테 이로운 일을 하는 겁니까?”“남겨두면 골칫거리나 되지 않겠습니까?”최문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이놈 만만치가 않네요.”“우리한테 잡힌 후 연신 비아냥거리고 있어요. 우리는 그를 어찌할 수 없다고 하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을 내보낼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어요.”“정말 대장님의 명령이 없었더라면 이미 형틀에 매달았을 거예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도 나름에는 전신인데 보통의 형벌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잠시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행동은 그의 의지를 부추기는 꼴밖에 되지 않을 거야.”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이걸윤은 인간쓰레기이지만 인간쓰레기도 남다른 데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그를 파멸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굴복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그래도 방법이 있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최문성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한 뒤 말했다.최문성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대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바람같이 사라졌다.“하현, 방금 문성이한테 뭐라고 한 거야?”최영하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물었다.“방금 말했잖아. 아무리 용전 항도라고 해도 이걸윤 같은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어.”“가장 간단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때가 있어.”하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효과가 있을지 어떨지는 며칠 후에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말이야. 이런 건 발설해 버리면 효과가 떨어져.”하현은 옅은 미소를 띠며 찻잔을 들고 하수진을 바라보았다.“그건 그렇고, 약혼 취소된 거 미리 축하해.”“하지만 하구천이 이대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오늘 밤 그는 큰 손실을 입었어. 비록 항도 하 씨 가문이 그걸 핑계로 날 괴롭힐 수는 없겠지만 하구천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하수진과 최영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시각.항성 빅토리아 항 작은 꽃집 안에는 하백진이 메스를 사용해 하구천의 등에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납탄을 한 발 꺼냈다.그런 다음 하구천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꿰매고 상처를 아무는 약을 발라 처치를 마무리했다.하구천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눈가에 가득히 맺힌 원한은 그에게 이를 악물게 만들었다.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원통해하며 말했다.“개자식!”“감히 나한테!”“그가 감히 이걸윤한테 날 죽이라고 명령해?”“간덩이가 부어도 한참 부었군!”맞은편에 있던 하문성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태블릿 PC에서 그가 보던 것은 방금 하구천이 이걸윤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이었다.“아니, 이걸윤 그놈은 머리가 나빠진 거야? 원래 나쁜 거야?”“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도 못 해?”“하현 그 개자식 말 몇 마디에 널 공격해?”“노국을 등에 업었다고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이 감히 제깟 놈을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나 보지?”하문성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하구천의 부상이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초조해 미칠 지경이었다.이걸윤이 이미 하현의 손에 넘어갔으니 약속대로라면 하수진과의 약혼도 당연히 물 건너 간 꼴이 되었다.하구천은 이걸윤이라는 의형제의 손에 총을 맞고 피를 흘렸다.이걸윤을 당당하게 금의환향시켰는데 정작 하구천은 조금도 이득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된 것이다.가장 중요한 건 하현과 하수진 둘 다 하구천을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하문준이 하현의 뒤를 받치고 있는 상황에서 하구천이 떳떳하게 복수할 방법이 없다.그래서 늘 지극히 이성적이라고 자랑하던 하문성조차도 지금 화가 나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다.하구천은 이를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통증과 원망 때문에 이성을 잃을 지경이라 무슨 말도 하기 싫었다.“오빠, 너무 화내지 마. 이 일은
하문성과 하백진이 신중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을 즈음 항성에 불어닥치고 있는 회오리 속에 어두컴컴하게 불을 밝힌 가든 별장에 불청객이 몰려왔다.삼엄했던 주변 경비는 비바람 때문에 다소 느슨해져 있었다.가든 별장 본관 건물에는 이따금 사람 그림자가 왔다갔다할 뿐 고요하게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이들 사람 그림자는 모두 가든 별장 경호원들의 것이었다.대다수의 정예 경호원들은 하문준과 함께 떠난 상황이어서 이곳에 남은 경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이때 어둑어둑한 불빛 아래 기사복을 입은 한 줄기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그는 손에 든 총구의 방아쇠를 소리 없이 당겨 감시 카메라 몇 개를 무력화하는 데 모두 성공했다.이후 그는 별장을 한 바퀴 빙 돌며 경호원이 몇 명 정도가 있는지 확인한 후 신호를 보냈다.잠시 후 기사복을 입은 십여 명의 대하계 성전 기사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모두 서양 검을 손에 쥔 채 싸늘한 표정으로 건물 가까이 다가갔다.그들은 아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접근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올라가!”다시 한번 상황을 확인한 뒤 선두에 선 혼혈 기사는 눈동자에 핏발이 선 채 뒤따르는 무리에게 지시했다.이 사람은 노국 황실 넷째 공주의 최측근 기사, 로자크이다.과거에 그는 성전 기사단 부단장으로 유라시아 전쟁에 나가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다.하지만 나중에 대하 총교관에게 놀라 주저앉은 뒤로는 더 이상 실력도 지위도 향상되지 못했다고 한다.은퇴 후 넷째 공주가 보디가드로 그를 불러들여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총교관에게 놀라 뒤로 나자빠졌을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누구보다 의기양양했다.그의 눈에 이 극동의 국제도시는 그가 다시 일어설 희망의 보이는 곳이었다.항성을 발아래 놓을 수만 있다면 아마 지난날 수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본관 건물을 바라보던 로자크는 냉랭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계획대로 당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