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가 있습니까?”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물었다.“설마 당신과 내가 차를 한 번 같이 탄 것이 열애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당신의 넷째 오빠는 어쨌든 항도 하 씨 가문 문주인데 그렇게 순진하겠어요?”“믿을 거야.”하백진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넷째 오빠는 날 아주 싫어하지만 항도 하 씨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건 못 참지.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이 가문의 명예거든.”“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불며 하소연한다면 어떨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놈이 날 더럽히려고 할 뿐만 아니라 당난영에게 불손한 의도로 접근했다는 것도 알게 될 거야. 그러면 그는 당연히 당난영을 의심하게 되지.”“조금이라도 증거가 있으면 당신을 죽이려고 들 것이고.”“그리고 하현, 이걸 알아둬야지. 내가 증거를 만들려고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걸. 나한텐 식은 죽 먹기야!”“그렇게 되기 싫거든 당장 무릎 꿇고 빌든지 지금부터 하구천의 개가 되는지!”“아니면 죽음을 맞게 될 테니 딱 기다리고 있어!”하현은 손을 들어 자신의 손바닥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백진에게 시선을 옮겼다.이어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하백진, 똑똑하게 한다고 한 일이 결국 일을 그르친다는 말 알아요?”“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요.”“그런 당신이 내 앞에서 당신의 속셈을 다 털어놓는다?”“누굴 바보로 아는 겁니까?”“나를 자극해서 화나게 한 다음 내가 당신 뺨이라도 때리길 바라는 거죠?”“뒷좌석에 카메라 숨겨 놓고 있는 거 내가 눈치 못 챌 거라 생각한 거예요?”“아니면 당신과 하구천과의 상상을 뛰어넘는 관계를 내가 눈치 못 챌 거라 생각한 겁니까?”순간 하백진이 뭐라고 반박하기도 전에 하현은 얼른 손을 뻗어 자동차 뒷좌석에 있는 동물 모양의 쿠션 하나를 집은 다음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뜯어 버렸다.그러자 쿠션 속에서 툭 하고 초소형 카메라와 녹음펜이 떨어졌다.“사랑하는 사람을
”하현, 그걸 다 알아낼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단 제법이군.”하백진은 자신의 모든 계략이 들통나자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그녀는 눈썹을 찡그린 채 눈을 흘기며 하현을 쏘아보았다.“어쩐지 하구천 사람들이 하나같이 당신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더라니.”“손놀림이며 사람의 심리를 읽는 능력하며 운, 게다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성의 매력까지 정말 대단해.”“내가 끊임없이 당신을 도발하고 화나게 했음에도 당신은 흔들림 없이 내 모든 계략을 꿰뚫어 보았군.”“우리가 당신을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그렇지만 다 좋아. 당신이 충분히 강하고 능력이 있어야만 당신을 죽이는 일이 더 흥미로워지거든.”말을 하면서 하백진은 액셀을 밟아 도시 순환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길목에서 차를 세워 다짜고짜 차 문을 열며 말했다.“꺼져!”하현은 차 문을 열어주는 하백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당신과 놀아주는데 조금 신경 써 볼게요.”“다만 당신이 나이가 들어서 힘이 달릴지도 모르니 집에 가서 보양식 좀 챙기고 오셨으면 좋겠어요.”“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서 나랑 못 놀 거예요!”나이가 들어서 힘이 달린다는 하현의 말을 듣고 하백진은 순간 얼굴빛이 흉측해졌다.하현은 차에서 내렸지만 떠나지 않고 운전석 쪽으로 가더니 눈을 흘기며 하백진을 쳐다보았다.“부인, 사실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는데 말이죠.”“당신, 타고난 마조히스트예요?”“내가 때려주길 그렇게 바라는 거냐구요?”하백진은 냉랭하게 얼어붙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어쩔 건데? 안타깝게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은데. 허세만 부렸지.”“난 당신한테 기회를 줬어!”“감히 날 때려 봐?”“내가 당신한테 그럴 용기를 주어도 결국 당신은 날 건드리지 못해!”“하 세자? 집법당 당주?!”“허세만 번드르르했지 아무 쓸모도 없는 놈 퉤...”“퍽!”하백진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하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훑어보고는 뒷좌석에 앉았고 그제야 오늘 일어난 일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모든 일은 하백진의 치밀한 계산에 의해 짜여져 있었다.하백진도 하현을 함정에 빠뜨릴 속셈으로 접근한 것이었고 하현도 나름의 속셈이 있어 그녀의 차에 올라탄 것이었다.지금까지 정황으로 볼 때 그래도 그가 절반은 이긴 것 같아 보였다.하현은 특히 마지막에 하백진의 뺨을 후려진 것이 더없이 속이 후련했다.마음속의 악감정을 털어놓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당난영에게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일종의 계산이 깔려 있는 행동이었다.동시에 하백진에게 날린 뺨 한 대로 그는 하구천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 되었다.하구천을 쓰러뜨리겠다는 하현의 결심도 설명된 것이었다.그래야 당난영도 하현을 두고 심지가 확실한 사람이라는 확신 하에 그와 계속 협력해 나갈 수 있을 게 분명했다.이 일이 당난영에게 어떻게 전해졌는지 하현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당난영이 하현과 하백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어쩔 수 없이 당난영은 이 일에 신경 쓰게 될 것이라고 하현은 생각했던 터였다.당난영의 경호원 몇 명도 분명 어디선가 자신이 하백진의 뺨을 때리는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당난영이 그 정도 계산도 없는 사람이라면 문주 부인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하지만 하현은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고민 끝에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눌렀다.하현의 동작을 본 대머리 운전사는 즉시 차량에 흐르던 오디오를 껐다.동시에 앞뒤를 차단하는 방음 유리를 올려 하현이 안심하고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했다.하현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지폐를 두 장 더 꺼내 운전사에게 찔러주었다.그 사이 전화기 너머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누구세요?”전화기 맞은편에선 속세의 세상엔 아무런 미련이 없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인, 접니다. 하현입니다.”하현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말을 이었다.“방금 순환 고속도로에서 만난 건 정말 우연이
하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부인,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진실 외에 다른 두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내가 필요한 게 뭐야?!”전화기 너머의 당난영은 분명 눈살을 한껏 찌푸린 듯 긴장한 목소리였다.“첫째, 항도 하 씨 문주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십 년 전의 진실은 분명 항도 하 씨 가문 고위층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만약 항도 하 씨 가문 문주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으면 부인이 아무리 진실을 알고자 해도 절대 알 수가 없을 겁니다. 오히려 억울한 죽음을 당할 수도 있죠!”“둘째, 부인은 후계자를 따로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하구천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되면 그 이후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항도 하 씨 가문이 혼란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부인도 문주와 함께 항도 하 씨 가문을 더욱 공고히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요.”“부인은 아직 젊습니다. 분명 이십 년 후에는 두 분의 아들이 장성해 있을 것이고 무사히 대를 이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하현은 의도치 않았지만 그의 말속에는 십 년 전 사건의 진범이 하구천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전화기 너머의 당난영은 침묵을 지켰고 한참 후에야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었다.“하현, 당신이 한 말 잘 고려해 볼게.”“그리고 당신 스스로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할 거야.”“하백진은 항도 하 씨 가문 딸일 뿐만 아니라 용전 전주의 부인이야!”“그녀는 얼음처럼 투명하고 하얀 연꽃처럼 청초해 보이지만 몇 년 동안 그 청초한 가면 뒤로 얼마나 많은 남자를 죽음으로 몰았는지 몰라.”“그러니 내 진실을 찾아주기 전까진 절대 죽으면 안 돼.”하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부인,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하백진 하나 때문에 죽을 순 없죠.”“그리고 남편한테 얘기할 테니 언제 시간 한 번 잡아서 밥이나 한 끼 해. 우리가 대접할게.”당난영의 말에 하현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아, 그럼요. 부인과 문주께서 시간만 내어 주신다면 전 언
하현이 하구천의 일에 골몰하고 있을 때 갑자기 차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평탄하던 길이 언제 이렇게 심하게 뒤틀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하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후 미소를 지으며 운전수에게 물었다.“기사님, 여기가 어디죠?”“아니면 당신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물어야 할까요?”“날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앞쪽에는 분명히 관리되지 않은 도로가 있었고 길가에는 빛바랜 낡은 경고판들이 보였다.하현이 물어보자 운전수는 액셀을 밟아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도로의 끝을 향해 질주했다.운전수가 죽을 듯이 액셀을 밟는 것을 보면서도 하현은 침착하게 물었다.“뭘 하려는 거요?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고?”“당연히 저세상으로 보내려는 거지!”대머리 중년이 갑자기 섬뜩하게 웃었고 그의 입가에는 검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당신이 차에 오르는 순간 당신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어!”“염라대왕이 데려가겠다는데 무슨 수로 버틸 수 있겠어?”“하현, 어서 꺼져!”“하백진 부인이 당신한테 안부 전해달라더군!”순간 대머리 운전수는 액셀을 밟은 채 머리가 고꾸라졌고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고개가 이리저리 흔들렸다.보아하니 이미 죽은 것 같았다.액셀은 운전수의 발에 밟힌 채 그대로 노면을 뚫고 바다 위로 날아올랐다.하현의 머리도 이리저리 요동쳤다.하백진이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 여인이 이렇게 잠시도 기다릴 수 없을 줄은 몰랐다.이렇게도 자신의 목숨을 원하다니!솔직히 하백진이든 하구천이든 남들 눈에는 대단한 사람들일지 모른다.하지만 하현이 보기에는 두 사람의 행동거지는 음흉하고 비겁하고 치사하기까지 했다.차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하현은 순간 꽉 잠긴 차 문을 발로 힘껏 찼다가 차가 물에 빠진 순간 차 문밖으로 뛰쳐나갔다.물에 풍덩 빠진 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하고 말았다.짙은 연기가 솟아올랐고 무수한 쇳덩어리들이 흩날렸다.
하현은 침착한 표정으로 물속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피하다가 기회를 엿보고 얼른 요트에 접근했다.불과 십여 초 만에 그는 이미 요트 끝에 닿았다.그가 오른손으로 요트 선체를 살짝 기울이자 갑판이 휘청거리며 뒤집어지려고 했다.동시에 그는 방금 빼앗은 총으로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을 쏘았다.“탕탕!”피가 튀는 소리가 들렸다.하현의 모습을 찾고 있던 두 명의 저격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을 가린 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하현은 그 자리로 굴러가서 다른 두 명의 저격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손에 든 총으로 두 사람을 쏘아 갑판 위에 쓰러뜨렸다.“저놈을 죽여!”이때 다른 총잡이들도 하현의 존재를 알아차리며 사방에서 달려들었다.검은 마스크를 쓴 스무 명 정도의 저격수들이 그를 향해 돌진해 왔다.그들이 들고 있던 총은 일찌감치 안전장치가 풀려 있었던지라 하현을 본 순간 저격수들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팡팡팡!”총알이 허공을 가르며 살벌한 소리와 함께 날아들었고 순간 갑판 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작은 갑판 위는 세상에서 가장 험악하고 살벌한 장소로 바뀌었다.짙은 총탄 냄새가 퍼지자 하현은 전쟁터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든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아마 온몸이 벌집 쑤셔 놓은 듯 험악한 총알 자국을 껴안은 채 저세상 문턱을 넘었을 게 분명하다.순간 총잡이들은 하나같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팡팡팡!”그러나 하현은 거의 불가능한 순간에도 바닥에 흩어져 있던 총기 한 자루를 들어 올린 다음 닫히지 않은 창문을 향해 돌진하며 방아쇠를 당겼다.강철로 만든 창문이 순식간에 부서져 하현을 향해 빗발처럼 떨어지는 총탄을 막았다.가장 위험한 순간에 상대의 필사적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탕탕탕!”총알들이 비껴가거나 갑판 위에 떨어지더니 갑자기 짤칵짤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저격수들이 들고 있던 총에 총알이 다 비어 버렸다.
하현이 피를 토하는 저격수들 사이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다른 저격수들은 모두 눈 밑을 파르르 떨었다.그들은 하현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자신들의 속도가 너무 느렸다.어떤 사람은 몸에 지니고 있던 비수를 얼른 꺼냈지만 그들이 손을 움직이기도 전에 하현의 몸이 이미 그들 사이를 헤집어 놓고 있었다.“푹!”저격수들은 온몸이 그대로 굳어지는 듯했다.어떤 사람은 그대로 바다로 날아갔으며 어떤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대로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그들은 하현이 이렇게까지 강한 상대일 줄은 몰랐다.이리저리 휘두르는 하현의 날랜 주먹과 손바닥에 그들은 바로 저세상 길을 떠났다.졸개들을 해결한 후 하현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갑판 위에 있던 깨끗한 목욕 수건을 꺼내 자신의 머리를 닦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선실로 들어갔다.요트의 선실은 매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치장되어 있었다.공기 중에는 은은한 향기마저 맴돌고 있어서 방금 피비린내가 자욱했던 외부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놓인 것 같았다.모든 인테리어는 섬나라풍으로 꾸며져 있었다.가운데 놓인 높이 30센티미터 정도의 낮은 탁자 외에도 녹색 이끼, 정교한 불상 등이 사방에 장식되어 있었다.이렇게 작은 요트 안에 이런 것들을 꾸며 놓은 사람의 삶이란 정말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선실 뒤쪽 절반은 대나무와 함초를 정교하게 엮은 다다미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가장 평범해 보이는 섬나라풍의 인테리어였지만 어떻게 보면 우아하고 어떻게 보면 값어치가 나가 보이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다다미 위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섬나라 유카타를 입고 허벅지에는 섬나라 장도를 차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그는 잘 우려낸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홀짝이고 있었다.차를 마시며 글을 쓰는 풍류의 멋을 한껏 자아내었다.그리고 그의 뒤편에는 검도복을 입은 여덟 명의 섬나라 검객들이 하나같이 허리에 섬나라 장도를 차고 위엄 있는 얼굴로
”이 자식이!”“미친놈 아냐?!”“겁대가리 없는 놈! 누가 너한테 이런 용기를 준 거야? 우리 신당류 검객 앞에서 어디 입을 함부로 놀리고 있어?”“죽는 게 어떤 맛인지 몰라서 이래? 맛을 봐야 알겠어?”여덟 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화난 얼굴들이었다.텐푸 쥬시로가 어떤 사람이던가?신당류 검객일 뿐만 아니라 황실의 궁중 어의이기도 한 사람이었다!진정한 전신급 레벨이었다!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는 천인합일의 도를 깨치기 위해 오랜 세월 은둔하며 지내왔다고 한다.섬나라에서 이 정도의 지위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로 숭고하다고 여긴다.섬나라 검객들의 눈에는 그가 살아있는 미야모토 무사시, 사사키 코지로나 다름없었다.그런데 눈앞에 대하인이 감히 텐푸 쥬시로를 비꼬고 앉아 있으니!누가 참을 수 있겠는가!텐푸 쥬시로의 얼굴에는 흔들림 없이 평온한, 그러나 한기 어린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잠시 후 그는 왼손을 들어 그의 일행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 손짓했다.그의 행동을 본 여덟 명의 섬나라 검객들은 불만을 속으로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하현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여전히 살벌한 기운이 가득 서려 있었다.당장이라도 하현을 목 졸라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 같았다.“하현, 당신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건 잘 알아.”“얼마 전 음류 검객 미야타 신노스케가 당신한테서 변을 당했다지.”“당신 때문에 음류 고수들이 거의 죽거나 다쳤다더군.”“츠치미카도 가문 음양사 한 명도 변을 당했고 말이야.”“하지만 미야타 신노스케가 그렇게 당하게 된 이유는 남양의 전신 양제명이 당신을 뒤를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당신이 뭔가 대단한 능력이라도 지닌 줄 아는 모양이지?”“오늘은 당신을 받쳐 줄 양제명도 없어. 여기선 외톨이야. 아무도 당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내가 당신을 죽이는 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내 앞에서 감히 그런 말을 해?”“하현,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누가 당신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