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발대발하는 사송란의 말을 듣고 한 무리의 여자들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하현을 쳐다보았다.어떻게 이런 남자가 있을 수 있지?정말 염치도 없어!그녀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하현을 향한 혐오가 가득했다.전투에서 정면으로 당당하게 나서서 싸우지 못하고 뒤에서 비겁하게 요리조리 피하고만 있다니!이건 대하 남자들의 체면을 완전히 뭉개는 짓이다!모두들 경멸하는 눈빛으로 싸늘하게 하현을 쏘아보았다!“피하지 말라고?”하현이 웃었다.“사송란, 당신 참 관대하군!”“내 행동을 그렇게 비교하다니, 알았어. 당신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이제는 절대 피하지 않겠어!”순간 하현의 몸에서 숨겨둔 무서운 기세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거센 파도가 미야타 신노스케를 향해 몰아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이를 보고 음흉한 얼굴을 하고 있던 미야타 신노스케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하현의 기세가 순식간에 변하는 걸 감지한 사송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움츠러든 눈동자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삭!”순식간에 하현의 몸이 움직였다.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휘둘렀다.그의 손놀림은 빛처럼 빨랐고 정확했다.천하의 무공, 아무리 견고해도 다 부술 수 있는 막강한 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공격.하현은 손놀림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곧이어 하현의 손바닥이 미야타 신노스케 앞에 떨어졌다.그는 두려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무의식중에 칼을 휘두르며 밀려오는 하현의 손바닥을 가까스로 막았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먼지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가 파도처럼 다시 밀려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를 갈고 맞서는 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그들은 마침내 똑똑히 보았다.미야타 신노스케가 확실히 하현의 손바닥을 막았다.그러나 땅에는 거미줄처럼 갈라진 틈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그 모습에 사람들은
눈앞의 모든 장면이 아득한 영화처럼 충격적이고 믿을 수가 없었다.용오행이든 사송란이든 모두가 입을 벌린 채 혀끝이 얼어버린 사람처럼 말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텐푸 다이토는 마른침을 삼키다 못해 입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그는 직접 자신의 따귀를 몇 번 때려 보았다.눈앞에 보이는 것이 꿈이 아닌지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잘못 본 게 아닌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미야타 신노스케가 누구인가?!섬나라 음류 검객 중의 검객, 섬나라 전쟁의 신이 아닌가!그런 인물은 세상에 적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런데 하현이라는 애송이에게 일격을 당하다니!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어떻게 이렇게 충격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단 말인가?“이럴 리가 없어! 이게 어떻게 가능해?!”“미야타 신노스케는 진정한 전신이야. 하현이란 놈이 수련을 한다고 해서 따라올 수 있는 경지가 아니란 얘기야!”“그런데 그가 어떻게 미야타 신노스케를 이길 수 있단 말이야?”“뭔가 요상한 수를 써서 눈속임을 한 게 분명해!”“분명히 그럴 거야...”사송란은 눈동자에 초점을 잃은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눈앞의 장면은 그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기에 끊임없이 핑곗거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무학 성지의 2세들은 입을 벌린 채 눈이 휘둥그레졌다.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방금 창피를 당한 육건우만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미야타 신노스케도 하현의 손놀림 한 방에 이렇게 처참히 무너졌으니 자신이 맞은 것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내심 안도한 것이다.용오행과 집법당 제자들은 목이 타들어갔다.방금까지 그들을 흥분시켰던 설렘과 오만함은 빛을 잃고 절망의 옷을 갈아입었다.그들은 모두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며 눈가에 쉴 새 없이 경련이 일어났다.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막막한 마음뿐이었다.“당신은 안 돼.”하현은 반쯤 무릎을 꿇은 미야타 신노스케를 보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개자식!”화가 끓어오르기는 사송란도 마찬가지였다.그녀는 미야타 신노스케가 하현을 단칼에 죽이길 그토록 바랐었다.그런데 지금 미야타 신노스케가 쓰러지다니!그가 하현에게 짓밟혀 쓰러질 줄은 몰랐다.하현의 발이 이미 미야타 신노스케의 목덜미를 지그시 밟고 있는 것을 본 사송란은 온몸에 충격을 받았다.“하 씨! 그만해!”“이 싸움은 여기까지!”“당신 너무 음흉하잖아!”“이렇게 잔인할 필요는 없잖아!”“당신은 미야타 신노스케의 상대가 못 돼!”“틀림없이 무슨 사악한 수단을 써서 요행으로 미야타 신노스케를 이겼을 거야! 분명해!”“그러니 이번 싸움은 없던 걸로 해야 해!”“오히려 비겁하고 파렴치한 당신 행동을 사과해야 해!”“우리 대하는 이런 비열한 승부를 절대 용납하지 않아!”“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어!”사송란은 뻔뻔한 가면을 쓰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지금 당장 미야타 신노스케를 풀어주고 무릎을 꿇고 그에게 용서를 빌어!”“그렇다면 난 당신의 잘못에 대한 건 묻지 않을 거야.”용오행도 옆에서 거들었다.“하 씨, 어서 풀어줘!”“잘못을 인정해, 어서!”“버티다가 자꾸 사송란의 화를 돋우기만 한다면 정말 당신은 심각한 결과를 맞게 될 거야!”하현은 미야타 신노스케의 목에서 발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들어 말했다.“이 사람을 놓아주라고?”“미야타 신노스케에게 물어봐. 내가 그를 놓아준다고 해도 그가 감히 걸을 수 있겠어?”“내가 죽이려고 하면 감히 안 죽고 배길 것 같아?”“하 씨, 허풍 그만 떨어!”하현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사송란은 더욱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당신이 뭐라도 된 줄 알아? 죽이려고 하면 감히 안 죽고 배기겠냐고?”“허풍도 정도껏이야!”“젊은 사람이 정말 제대로 착각한 모양인데!”“사악한 방법으로 이긴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야!”“무엇보다 미야타 신노스케는 섬나라 전신이야! 진정한 전쟁의 신!”“섬나라와 우리 대하는
”퍽!”하현은 미야타 신노스케의 오른손을 밟아 부러뜨리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미야타 신노스케, 당신 바보야?”“아니면 머리에 총 맞았어?”“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면 내가 당신을 혹시라도 놓아줄지도 몰라.”“그런데 지금 나한테 협박을 해? 왜? 내가 너무 늦게 손을 쓸까 봐 두려운 건가?”“뭐? 이 자식이!”하현의 말에 미야타 신노스케가 발끈했지만 두려운 기색을 감출 수는 없었다.하현에게서 섬뜩한 살의를 느꼈기 때문이다.그러자 하현의 담담한 시선이 사송란에게로 향했다.그의 얼굴에 온통 비아냥거리는 미소가 가득 번졌다.이 사람들은 말끝마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실상 미야타 신노스케가 패배한 것을 보고는 양국에 영향을 주네 마네 하며 자신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정말 이보다 더 웃긴 코미디가 어디 있겠는가?의연한 척하며 노발대발하는 사송란을 곁눈질하며 하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송란, 당신의 당주님은 금사남목 관까지 가져오셨고 입만 열면 우리 집안까지 쓸어버리겠다고 하셨는데.”“이런 상황에서 나보고 뭐? 대승적으로 해야 한다고?”“너무 웃기지 않아?”“아니면 당신들 눈에는 미야타 신노스케가 나를 죽이는 건 마땅한 일이지만 내가 그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는 것도 죄악이라는 건가?”하현의 질문에 사송란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일관하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그리 알고 있으면 돼!”“당신의 신분과 미야타 신노스케의 신분은 비교가 안 돼!”“당신은 백 번 죽어도 마땅하지만 미야타 신노스케는 절대 다치면 안 되는 사람이야!”지금 사송란의 눈에는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것 같았다.“다시 한번 말할게. 이게 마지막이야. 당장 미야타 신노스케를 풀어줘!”“그렇지 않으면 정말 당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야!”“그래, 그럼 체면을 세워 줄 겸 풀어주지!”하현은 사송란을 향해 싱긋 웃었다.이대로 죽을 줄 알았던 미야타
텐푸 다이토를 포함한 섬나라 일행은 이 상황이 더없이 슬프고 두려웠다.그들은 하나같이 달려들어 하현을 쳐죽이고 싶었지만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내미는 두려움이 그들을 주저하게 만들었다.그들의 시선은 모두 하현에게 떨어져 있었지만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에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이 무뚝뚝한 젊은이 앞에서 섬나라 사람 특유의 걸걸함과 잔인함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음류 제자들은 허리춤에 찬 섬나라 장도에 감히 손도 대지 못했다.놀라기는 사송란과 용오행도 마찬가지였다.그들은 하현이 정말로 미야타 신노스케를 죽이는 장면을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그들이 살벌하게 협박을 했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 듯이 미야타 신노스케를 죽였다!어떻게 감히!?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온 것인가?!뒤에서 누가 그를 든든히 지지해 주었길래 이렇게 당당하단 말인가?휠체어를 탄 공송연은 어안이 벙벙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죽여! 하현 저놈을 죽이고 미야타 신노스케의 복수를 해야 해!”사송란이 두려움과 분노로 온몸을 떨고 있을 때 텐푸 다이토가 갑자기 소리쳤다.“죽여! 반드시 저놈을 죽여야 해!”한 무리의 음류 고수들이 텐푸 다이토의 목소리에 반응하였고 우르르 소리를 내며 하현을 포위했다.손에 든 섬나라 장도가 순식간에 칼집에서 나와 살벌한 기세로 하현을 잡아먹을 듯 혀를 날름거렸다.“차장!”하현은 미야타 신노스케의 부러진 칼을 집어 들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왜? 늙은이가 안 되니까 이제는 젊은이들이 덤벼보기로 한 거야?”“푹!”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현은 칼을 휘둘렀고 하나둘씩 달려온 음류 고수들을 차례차례 도륙 내어 바닥에 쓰러뜨렸다.하현은 칼을 휘두르며 발을 빠르게 내디뎠고 여기저기서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다가 푹하는 소리와 함께 음류 고수들이 끊어진 숨통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명의 음류 고수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다른
하현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로 주위를 한번 돌아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섬나라 음류가 대하에 와서 원수를 갚겠다고 나에게 덤볐어. 난 그에게 공평하게 싸울 기회를 주었고.”“그렇게 싸워 그가 죽었어.”“당신들이 그를 위해 복수에 나서겠다면 난 말리지 않아.”“어쨌든 내가 당신들을 다 죽여 버리면 되니까.”“어차피 당신들은 별 쓸모도 없어.”“하현! 죽여 버릴 거야!”한 음류 고수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그는 섬나라 장도를 움켜쥐고 앞으로 돌진하며 이리저리 칼을 휘둘렀다.사정없이 바람을 베어버렸다!칼 솜씨가 병왕급 실력은 되어 보였다.하현은 잠시 표정이 어두워졌다가 손에 남은 부러진 칼을 들고 휘둘렀다.“푹!”순간 칼자루는 상대방의 가슴에 떨어졌고 섬나라 병왕급 검객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땅에 떨어지는 순간 그는 피를 펑펑 쏟아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전신!”그는 자신을 이렇게 쉽게 격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그렇다면 하현은 전신임에 틀림없다.그렇지 않으면 절정의 병왕인 그가 단칼에 이런 처참한 모습이 될 리가 없었다.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병왕의 마음에 절망이 무겁게 내려앉았다.미야타 신노스케의 패배가 상대의 저속한 수단 때문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미야타 신노스케는 정말로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다!절정의 병왕이 죽지 않고 숨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하현은 오히려 흥미로운 듯 유심히 그를 살폈다.미야타 신노스케 밑에 이런 고수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아무리 절정의 병왕이라고 하나 하현은 섬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그는 오른발을 디디며 그대로 날아와 병왕의 목구멍을 향했다.섬나라 병왕은 절망적인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이미 그의 목숨은 경각에 달렸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어떻게 이런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차장!”병왕이 눈을 감고 죽기를 기다리던
”규칙?”“복수하려는 자에게 관대하게?”“당신들의 무학 성지라는 곳에 이런 규칙이 있었다고?!”하현은 비꼬며 말했다.“당신들이 평소 인의예지를 논한다고 해서 도덕의 최고봉에라도 앉은 줄 알아?”“게다가 그들 사제의 정이 깊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내 입장에선 봐 줄 필요 없는 사람들이잖아!”“난 그저 잡초 이파리만 잘랐을 뿐 뿌리는 자르지 않았어. 봄바람이 불면 다시 돋아날 거라고.”하현은 말을 마치며 덤덤한 표정으로 텐푸 다이토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텐푸 다이토의 얼굴빛이 순간 한껏 긴장하며 굳어졌고 손에 든 섬나라 장도는 빛을 잃고 하현 앞에 떨고 있는 것 같았다.바로 그때 하현이 다시 오른 발로 바닥에 부러진 칼을 툭 건드리자 칼날이 날아올랐다.“휙휙휙!”짧은 칼날이 섬나라 병왕의 눈썹, 목구멍, 명치 등을 동시에 강타하여 병왕의 얼굴에 남은 한 가닥 원한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그는 하현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죽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마지막 남은 원한의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던 텐푸 다이토는 힘겹게 내뱉었다.“개자식...”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못했다.잘생긴 그의 얼굴에는 끝없는 원망과 독기만 남아 있었다.섬나라 사람들은 이를 보고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텐푸 다이토도 말할 수 없이 안색이 일그러졌다.“하 씨!”그는 자신의 코앞에서 하현이 미야타 신노스케의 제자를 죽이는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사송란도 이 광경을 보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하현은 강호의 규칙을 지키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이제 자신은 섬나라 사람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세상 물정 모르는 피라미 한 놈 때문에 자신의 입장이 몹시 곤란해진 것이다.사송란은 하현이 미야타 신노스케를 이기려고 사악한 수단을 썼을 거라고 믿었다.그 결과 어찌 되었는가?이 소인배는 정말 자신이 섬나라 고수들과 싸워 이겨낼 것이라
용오행은 하현이 아무리 대단해도 미야타 신노스케와 일전을 치렀으니 분명 힘이 다 빠졌을 것이라고 믿었다.하현을 죽이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이번을 놓치면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공포에 질려 있던 텐푸 다이토는 용오행의 말을 듣고 다시 냉정을 찾았다.그는 살의를 번뜩이며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노려보았다.“하 씨, 용당주와 사송란의 얼굴을 봐서라도 지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 그러면 당신을 죽이진 않겠어!”“섬나라로 데려가 거기서 심판을 받게 할 거야!”“아마도 당신 죽은 몸뚱아리 하나는 온전히 건사할 수 있을 거야!”“하지만 계속 이렇게 반항한다면 당신 몸뚱아리는 가로로 두 동강이 날 거야!”텐푸 다이토는 하현을 생포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섬나라로 데려간 후 미야타 신노스케를 살해하려는 모의를 했다는 진술을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렇게 된다면 미야타 신노스케의 패배는 덮을 수 있고 섬나라가 체면을 깎이는 일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대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텐푸 다이토의 말에 용오행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얼른 무릎을 꿇어!”“텐푸 다이토가 그래도 아량을 베풀어 이런 기회를 주었으니 소중히 여겨야지!”“정말로 텐푸 다이토가 진노하면 어쩌려고 그래?”사송란 등 무학 성지 2세들은 모두 냉담한 눈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어서 하현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 씨, 얼른 무릎 꿇지 않고 뭐해? 설마 정말 내가 당신을 건드리길 바라는 거야?”텐푸 다이토가 비꼬며 말했다.“당신의 속도는 빠르지만 이미 힘이 많이 빠졌을 텐데 이제 뭘 얼마나 몸을 놀릴 수 있겠어?”“내가 나서서 당신을 죽이지 않더라도 여기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향해 덤비면 바로 죽일 수 있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텐푸 다이토를 지그시 바라보았다.“내가 힘이 다 빠졌는지 아닌지 한번 맞서보면 알 거 아니야!”“계속 아닌 척하기는!”텐푸 다이토는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