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발대발하는 사송란의 말을 듣고 한 무리의 여자들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하현을 쳐다보았다.어떻게 이런 남자가 있을 수 있지?정말 염치도 없어!그녀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하현을 향한 혐오가 가득했다.전투에서 정면으로 당당하게 나서서 싸우지 못하고 뒤에서 비겁하게 요리조리 피하고만 있다니!이건 대하 남자들의 체면을 완전히 뭉개는 짓이다!모두들 경멸하는 눈빛으로 싸늘하게 하현을 쏘아보았다!“피하지 말라고?”하현이 웃었다.“사송란, 당신 참 관대하군!”“내 행동을 그렇게 비교하다니, 알았어. 당신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이제는 절대 피하지 않겠어!”순간 하현의 몸에서 숨겨둔 무서운 기세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거센 파도가 미야타 신노스케를 향해 몰아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이를 보고 음흉한 얼굴을 하고 있던 미야타 신노스케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하현의 기세가 순식간에 변하는 걸 감지한 사송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움츠러든 눈동자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삭!”순식간에 하현의 몸이 움직였다.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휘둘렀다.그의 손놀림은 빛처럼 빨랐고 정확했다.천하의 무공, 아무리 견고해도 다 부술 수 있는 막강한 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공격.하현은 손놀림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곧이어 하현의 손바닥이 미야타 신노스케 앞에 떨어졌다.그는 두려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무의식중에 칼을 휘두르며 밀려오는 하현의 손바닥을 가까스로 막았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먼지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가 파도처럼 다시 밀려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를 갈고 맞서는 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그들은 마침내 똑똑히 보았다.미야타 신노스케가 확실히 하현의 손바닥을 막았다.그러나 땅에는 거미줄처럼 갈라진 틈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그 모습에 사람들은
눈앞의 모든 장면이 아득한 영화처럼 충격적이고 믿을 수가 없었다.용오행이든 사송란이든 모두가 입을 벌린 채 혀끝이 얼어버린 사람처럼 말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텐푸 다이토는 마른침을 삼키다 못해 입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그는 직접 자신의 따귀를 몇 번 때려 보았다.눈앞에 보이는 것이 꿈이 아닌지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잘못 본 게 아닌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미야타 신노스케가 누구인가?!섬나라 음류 검객 중의 검객, 섬나라 전쟁의 신이 아닌가!그런 인물은 세상에 적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런데 하현이라는 애송이에게 일격을 당하다니!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어떻게 이렇게 충격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단 말인가?“이럴 리가 없어! 이게 어떻게 가능해?!”“미야타 신노스케는 진정한 전신이야. 하현이란 놈이 수련을 한다고 해서 따라올 수 있는 경지가 아니란 얘기야!”“그런데 그가 어떻게 미야타 신노스케를 이길 수 있단 말이야?”“뭔가 요상한 수를 써서 눈속임을 한 게 분명해!”“분명히 그럴 거야...”사송란은 눈동자에 초점을 잃은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눈앞의 장면은 그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기에 끊임없이 핑곗거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무학 성지의 2세들은 입을 벌린 채 눈이 휘둥그레졌다.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방금 창피를 당한 육건우만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미야타 신노스케도 하현의 손놀림 한 방에 이렇게 처참히 무너졌으니 자신이 맞은 것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내심 안도한 것이다.용오행과 집법당 제자들은 목이 타들어갔다.방금까지 그들을 흥분시켰던 설렘과 오만함은 빛을 잃고 절망의 옷을 갈아입었다.그들은 모두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며 눈가에 쉴 새 없이 경련이 일어났다.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막막한 마음뿐이었다.“당신은 안 돼.”하현은 반쯤 무릎을 꿇은 미야타 신노스케를 보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개자식!”화가 끓어오르기는 사송란도 마찬가지였다.그녀는 미야타 신노스케가 하현을 단칼에 죽이길 그토록 바랐었다.그런데 지금 미야타 신노스케가 쓰러지다니!그가 하현에게 짓밟혀 쓰러질 줄은 몰랐다.하현의 발이 이미 미야타 신노스케의 목덜미를 지그시 밟고 있는 것을 본 사송란은 온몸에 충격을 받았다.“하 씨! 그만해!”“이 싸움은 여기까지!”“당신 너무 음흉하잖아!”“이렇게 잔인할 필요는 없잖아!”“당신은 미야타 신노스케의 상대가 못 돼!”“틀림없이 무슨 사악한 수단을 써서 요행으로 미야타 신노스케를 이겼을 거야! 분명해!”“그러니 이번 싸움은 없던 걸로 해야 해!”“오히려 비겁하고 파렴치한 당신 행동을 사과해야 해!”“우리 대하는 이런 비열한 승부를 절대 용납하지 않아!”“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어!”사송란은 뻔뻔한 가면을 쓰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지금 당장 미야타 신노스케를 풀어주고 무릎을 꿇고 그에게 용서를 빌어!”“그렇다면 난 당신의 잘못에 대한 건 묻지 않을 거야.”용오행도 옆에서 거들었다.“하 씨, 어서 풀어줘!”“잘못을 인정해, 어서!”“버티다가 자꾸 사송란의 화를 돋우기만 한다면 정말 당신은 심각한 결과를 맞게 될 거야!”하현은 미야타 신노스케의 목에서 발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들어 말했다.“이 사람을 놓아주라고?”“미야타 신노스케에게 물어봐. 내가 그를 놓아준다고 해도 그가 감히 걸을 수 있겠어?”“내가 죽이려고 하면 감히 안 죽고 배길 것 같아?”“하 씨, 허풍 그만 떨어!”하현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사송란은 더욱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당신이 뭐라도 된 줄 알아? 죽이려고 하면 감히 안 죽고 배기겠냐고?”“허풍도 정도껏이야!”“젊은 사람이 정말 제대로 착각한 모양인데!”“사악한 방법으로 이긴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야!”“무엇보다 미야타 신노스케는 섬나라 전신이야! 진정한 전쟁의 신!”“섬나라와 우리 대하는
”퍽!”하현은 미야타 신노스케의 오른손을 밟아 부러뜨리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미야타 신노스케, 당신 바보야?”“아니면 머리에 총 맞았어?”“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면 내가 당신을 혹시라도 놓아줄지도 몰라.”“그런데 지금 나한테 협박을 해? 왜? 내가 너무 늦게 손을 쓸까 봐 두려운 건가?”“뭐? 이 자식이!”하현의 말에 미야타 신노스케가 발끈했지만 두려운 기색을 감출 수는 없었다.하현에게서 섬뜩한 살의를 느꼈기 때문이다.그러자 하현의 담담한 시선이 사송란에게로 향했다.그의 얼굴에 온통 비아냥거리는 미소가 가득 번졌다.이 사람들은 말끝마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실상 미야타 신노스케가 패배한 것을 보고는 양국에 영향을 주네 마네 하며 자신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정말 이보다 더 웃긴 코미디가 어디 있겠는가?의연한 척하며 노발대발하는 사송란을 곁눈질하며 하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송란, 당신의 당주님은 금사남목 관까지 가져오셨고 입만 열면 우리 집안까지 쓸어버리겠다고 하셨는데.”“이런 상황에서 나보고 뭐? 대승적으로 해야 한다고?”“너무 웃기지 않아?”“아니면 당신들 눈에는 미야타 신노스케가 나를 죽이는 건 마땅한 일이지만 내가 그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는 것도 죄악이라는 건가?”하현의 질문에 사송란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일관하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그리 알고 있으면 돼!”“당신의 신분과 미야타 신노스케의 신분은 비교가 안 돼!”“당신은 백 번 죽어도 마땅하지만 미야타 신노스케는 절대 다치면 안 되는 사람이야!”지금 사송란의 눈에는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것 같았다.“다시 한번 말할게. 이게 마지막이야. 당장 미야타 신노스케를 풀어줘!”“그렇지 않으면 정말 당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야!”“그래, 그럼 체면을 세워 줄 겸 풀어주지!”하현은 사송란을 향해 싱긋 웃었다.이대로 죽을 줄 알았던 미야타
텐푸 다이토를 포함한 섬나라 일행은 이 상황이 더없이 슬프고 두려웠다.그들은 하나같이 달려들어 하현을 쳐죽이고 싶었지만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내미는 두려움이 그들을 주저하게 만들었다.그들의 시선은 모두 하현에게 떨어져 있었지만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에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이 무뚝뚝한 젊은이 앞에서 섬나라 사람 특유의 걸걸함과 잔인함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음류 제자들은 허리춤에 찬 섬나라 장도에 감히 손도 대지 못했다.놀라기는 사송란과 용오행도 마찬가지였다.그들은 하현이 정말로 미야타 신노스케를 죽이는 장면을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그들이 살벌하게 협박을 했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 듯이 미야타 신노스케를 죽였다!어떻게 감히!?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온 것인가?!뒤에서 누가 그를 든든히 지지해 주었길래 이렇게 당당하단 말인가?휠체어를 탄 공송연은 어안이 벙벙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죽여! 하현 저놈을 죽이고 미야타 신노스케의 복수를 해야 해!”사송란이 두려움과 분노로 온몸을 떨고 있을 때 텐푸 다이토가 갑자기 소리쳤다.“죽여! 반드시 저놈을 죽여야 해!”한 무리의 음류 고수들이 텐푸 다이토의 목소리에 반응하였고 우르르 소리를 내며 하현을 포위했다.손에 든 섬나라 장도가 순식간에 칼집에서 나와 살벌한 기세로 하현을 잡아먹을 듯 혀를 날름거렸다.“차장!”하현은 미야타 신노스케의 부러진 칼을 집어 들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왜? 늙은이가 안 되니까 이제는 젊은이들이 덤벼보기로 한 거야?”“푹!”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현은 칼을 휘둘렀고 하나둘씩 달려온 음류 고수들을 차례차례 도륙 내어 바닥에 쓰러뜨렸다.하현은 칼을 휘두르며 발을 빠르게 내디뎠고 여기저기서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다가 푹하는 소리와 함께 음류 고수들이 끊어진 숨통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명의 음류 고수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다른
하현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로 주위를 한번 돌아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섬나라 음류가 대하에 와서 원수를 갚겠다고 나에게 덤볐어. 난 그에게 공평하게 싸울 기회를 주었고.”“그렇게 싸워 그가 죽었어.”“당신들이 그를 위해 복수에 나서겠다면 난 말리지 않아.”“어쨌든 내가 당신들을 다 죽여 버리면 되니까.”“어차피 당신들은 별 쓸모도 없어.”“하현! 죽여 버릴 거야!”한 음류 고수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그는 섬나라 장도를 움켜쥐고 앞으로 돌진하며 이리저리 칼을 휘둘렀다.사정없이 바람을 베어버렸다!칼 솜씨가 병왕급 실력은 되어 보였다.하현은 잠시 표정이 어두워졌다가 손에 남은 부러진 칼을 들고 휘둘렀다.“푹!”순간 칼자루는 상대방의 가슴에 떨어졌고 섬나라 병왕급 검객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땅에 떨어지는 순간 그는 피를 펑펑 쏟아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전신!”그는 자신을 이렇게 쉽게 격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그렇다면 하현은 전신임에 틀림없다.그렇지 않으면 절정의 병왕인 그가 단칼에 이런 처참한 모습이 될 리가 없었다.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병왕의 마음에 절망이 무겁게 내려앉았다.미야타 신노스케의 패배가 상대의 저속한 수단 때문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미야타 신노스케는 정말로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다!절정의 병왕이 죽지 않고 숨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하현은 오히려 흥미로운 듯 유심히 그를 살폈다.미야타 신노스케 밑에 이런 고수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아무리 절정의 병왕이라고 하나 하현은 섬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그는 오른발을 디디며 그대로 날아와 병왕의 목구멍을 향했다.섬나라 병왕은 절망적인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이미 그의 목숨은 경각에 달렸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어떻게 이런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차장!”병왕이 눈을 감고 죽기를 기다리던
”규칙?”“복수하려는 자에게 관대하게?”“당신들의 무학 성지라는 곳에 이런 규칙이 있었다고?!”하현은 비꼬며 말했다.“당신들이 평소 인의예지를 논한다고 해서 도덕의 최고봉에라도 앉은 줄 알아?”“게다가 그들 사제의 정이 깊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내 입장에선 봐 줄 필요 없는 사람들이잖아!”“난 그저 잡초 이파리만 잘랐을 뿐 뿌리는 자르지 않았어. 봄바람이 불면 다시 돋아날 거라고.”하현은 말을 마치며 덤덤한 표정으로 텐푸 다이토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텐푸 다이토의 얼굴빛이 순간 한껏 긴장하며 굳어졌고 손에 든 섬나라 장도는 빛을 잃고 하현 앞에 떨고 있는 것 같았다.바로 그때 하현이 다시 오른 발로 바닥에 부러진 칼을 툭 건드리자 칼날이 날아올랐다.“휙휙휙!”짧은 칼날이 섬나라 병왕의 눈썹, 목구멍, 명치 등을 동시에 강타하여 병왕의 얼굴에 남은 한 가닥 원한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그는 하현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죽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마지막 남은 원한의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던 텐푸 다이토는 힘겹게 내뱉었다.“개자식...”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못했다.잘생긴 그의 얼굴에는 끝없는 원망과 독기만 남아 있었다.섬나라 사람들은 이를 보고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텐푸 다이토도 말할 수 없이 안색이 일그러졌다.“하 씨!”그는 자신의 코앞에서 하현이 미야타 신노스케의 제자를 죽이는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사송란도 이 광경을 보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하현은 강호의 규칙을 지키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이제 자신은 섬나라 사람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세상 물정 모르는 피라미 한 놈 때문에 자신의 입장이 몹시 곤란해진 것이다.사송란은 하현이 미야타 신노스케를 이기려고 사악한 수단을 썼을 거라고 믿었다.그 결과 어찌 되었는가?이 소인배는 정말 자신이 섬나라 고수들과 싸워 이겨낼 것이라
용오행은 하현이 아무리 대단해도 미야타 신노스케와 일전을 치렀으니 분명 힘이 다 빠졌을 것이라고 믿었다.하현을 죽이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이번을 놓치면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공포에 질려 있던 텐푸 다이토는 용오행의 말을 듣고 다시 냉정을 찾았다.그는 살의를 번뜩이며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노려보았다.“하 씨, 용당주와 사송란의 얼굴을 봐서라도 지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 그러면 당신을 죽이진 않겠어!”“섬나라로 데려가 거기서 심판을 받게 할 거야!”“아마도 당신 죽은 몸뚱아리 하나는 온전히 건사할 수 있을 거야!”“하지만 계속 이렇게 반항한다면 당신 몸뚱아리는 가로로 두 동강이 날 거야!”텐푸 다이토는 하현을 생포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섬나라로 데려간 후 미야타 신노스케를 살해하려는 모의를 했다는 진술을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렇게 된다면 미야타 신노스케의 패배는 덮을 수 있고 섬나라가 체면을 깎이는 일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대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텐푸 다이토의 말에 용오행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얼른 무릎을 꿇어!”“텐푸 다이토가 그래도 아량을 베풀어 이런 기회를 주었으니 소중히 여겨야지!”“정말로 텐푸 다이토가 진노하면 어쩌려고 그래?”사송란 등 무학 성지 2세들은 모두 냉담한 눈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어서 하현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 씨, 얼른 무릎 꿇지 않고 뭐해? 설마 정말 내가 당신을 건드리길 바라는 거야?”텐푸 다이토가 비꼬며 말했다.“당신의 속도는 빠르지만 이미 힘이 많이 빠졌을 텐데 이제 뭘 얼마나 몸을 놀릴 수 있겠어?”“내가 나서서 당신을 죽이지 않더라도 여기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향해 덤비면 바로 죽일 수 있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텐푸 다이토를 지그시 바라보았다.“내가 힘이 다 빠졌는지 아닌지 한번 맞서보면 알 거 아니야!”“계속 아닌 척하기는!”텐푸 다이토는
진홍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눈꺼풀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르르 떨렸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자신이 한없이 무시했던 데릴사위가 이렇게 강한 자였다니?!그리고 자신이 의지했었던 남자가 이렇게 나약하게 무릎을 꿇고 얼굴이 부어터지도록 만신창이가 되다니!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복잡한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던 진홍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그럴 리가 없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일어나!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장천중과 장용호의 태도를 보고 잠자코 있던 하현이 결국 나서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다만 앞으로는 꼭 기억해야 해. 우리가 풍수술을 배우는 것은 겉치레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허세를 부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만약 오늘 자신이 마침 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장용호의 서툰 솜씨에 황보정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장용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꼭 명심할게요! 우리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지금부터 그 말을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하현은 무릎을 꿇고 있는 장용호에겐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고 장천중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화자결은 확실히 황보정의 체내에 있는 나쁜 기운과 사악한 기운을 없앨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은 될지 모르나 그녀의 두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작은 배가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게 하려면 파도도 바람도 잔잔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작은 배의 능력이 충분히 좋아야 멀리 항해할 수 있는 이치와 똑같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하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화자결은 황보정의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아! 화자결로도 해결 못 하는 건가?”장천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난 하 대사의 방법으로 하면 황보정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을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