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타 신노스케의 마음속에선 이미 하현은 죽음을 맞이하고 대하의 무학계는 무참히 짓밟혀 있었다.그러나 하현이 자신의 검을 피할 줄은 몰랐다.미야타 신노스케는 고수였다.고수답게 당황한 마음을 얼른 추스른 그는 연달아 발길질을 했다.“퓌익퓌익!”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그의 몸놀림은 빠르고 예리해서 어떤 수로도 상대의 머리를 쉽게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이런 미야타의 위세에 사송란 일행들은 이미 기가 눌려 버렸다.특히 곱상한 여자들은 벌써부터 얼굴이 빨개지며 주먹을 쥐고 호들갑을 떨었다.그들은 미야타 신노스케가 얼른 하현을 제압해 영웅의 면모를 마음껏 보여주길 고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나 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여전히 의자에 앉아 찻잔을 손에 쥐고 입으로 가져갔다.이런 여유로운 자세로 하현은 살짝살짝 몸을 돌려 미야타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연이은 허사에도 미야타 신노스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 칼날을 휘둘렀다.“차장!”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부서진 돌들이 정자 곳곳에 날아다녔고 마른 나뭇잎들이 하늘에 흩뿌려졌다.그러나 하현은 여전히 무덤덤한 기색으로 두려움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굴을 했다.그저 느릿느릿 미야타의 칼을 피할 뿐이었다.그는 저항도 공격도 하지 않고 느릿느릿 찻잔을 쥔 채 미야타의 칼을 피하고만 있었다.마치 미야타 신노스케의 칼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무심해 보이기까지 했다.“솩솩솩솩!”미야타 신노스케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거침없이 빠르고 쉴 새 없는 칼날이 허공을 가루로 만들 태세였다.하지만 하현은 여전히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하현이 느릿느릿 피하는 모습을 보고 미야타 신노스케는 포효하며 갑자기 공중으로 몸을 돌리며 하현 앞에 있는 탁자를 향해 발을 튕겼다.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돌로 만든 탁자가 산산이 부서져 자갈더미로 변했다.미야타 신노스케가 손을 흔들자 갑자기 한 무더기의 자갈들이 앞을 향해 날아올라 하현을
지금 이 순간 용오행, 사송란, 텐푸 다이토 등은 모두 얼굴을 찡그렸다.그들의 생각대로라면 미야타 신노스케의 칼날이 하현의 몸을 몇 번 가르고도 남았어야 했다.하현을 죽이는 데는 고작 몇 번의 칼날이면 족할 거라 자신했었던 그들이었다.하지만 미야타 신노스케가 미친 듯이 칼날을 휘둘렀음에도 하현은 어디 하나 손상된 곳이 없었다.심지어 하현은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다.그런데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못했다니!이것은 과학으로도 무학으로도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미야타 신노스케가 대하의 체면을 세워 주느라 그런 거 같군!”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자 사송란은 문득 뭔가 깨달은 척하며 말했다.“한방에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대하인의 체면을 살려주려고 일부러 이런 방법을 쓰시는군요.”“정말 섬나라 무학계의 겸손과 선의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미야타 신노스케, 우리 대하 무학계를 대표해 나 사송란이 섬나라 무학계에 이렇게 감사드립니다.”“섬나라 무학계가 이렇게 대하 무학계의 명성을 생각해 주시는 걸 보니 정말 대하인으로서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앞으로 양국은 한 옷을 입은 것처럼 영원히 함께 협조할 것입니다!”“걱정하지 마세요. 하현을 죽인 후에 난 그의 가족과 그의 무리들을 모두 상부에 보고해 합당한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그리고 맹세코 앞으로 우리 대하 무학계가 섬나라의 존엄을 함부로 훼손하는 일은 없도록 할 것입니다!”사송란은 일부러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이렇게 함으로써 미야타 신노스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맹세한 것이며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해명을 늘어놓은 것이다!그래야 하현이 계속해서 미야타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얼굴이 일그러져 있던 텐푸 다이토도 그제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사송란, 별말씀을 다하는군!”“대하와 우리 섬나라는 예로부터 한 가족처럼 지냈지. 그러니 대하의 체면을 우리 섬나라가 당연히 세
무학의 성지 2세들은 자신들이 매우 예의와 품격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자부했다.만약 그들이 싸울 때 전신이 자신을 봐 주고 있었다고 한다면 창피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하현처럼 뻔뻔히 얼굴 들고 손을 쓰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용오행과 공송연 등 용문 집법당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멸하는 시선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그들은 하현의 모든 행동이 이미 용문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 놓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하현의 표정을 보며 사송란은 더 이상 미야타 신노스케를 볼 낯이 없었다.그녀는 하현을 뺨이라도 때려야만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생각이 이에 미치자 사송란은 거침없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가더니 대의명분을 앞세웠다.“미야타 신노스케, 우리 대하 무학계를 호의적으로 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하지만 당신은 오늘 복수하러 왔으니 더 이상 우리 체면을 세워 줄 필요없어요!”“이제 끝을 내셔도 좋습니다!”“하현이란 놈은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사송란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자신이 이렇게 말을 하면 미야타 신노스케가 마음 놓고 하현을 단번에 처리할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그녀의 마음속에는 미야타 신노스케가 이렇게 자신의 체면을 봐 줄줄 알았다면 미리 한마디 했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하현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일격에 죽여야 했다.그의 체면 따위 생각하지 말고 무참히 패배의 쓴맛을 보여 주었어야 했다!“빌어먹을 놈!”수십 번을 공격했으나 하현의 옷자락 끝도 닿지 못했던 미야타 신노스케의 얼굴에는 분노가 일렁거렸다.사송란의 말에 그의 핏줄이 다시 불뚝하고 존재감을 드러내었다.그는 이제 더 이상 점잖은 척하지 않고 거칠게 허리춤에 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솩솩솩솩!”번쩍이는 칼이 사람들의 눈을 부시게 만들며 허공을 갈랐다.종횡무진 움직이는 칼이 마치 부서지는 파도처럼 사람들 시야에서 일렁거렸다.회오리바람이 몰아치듯 먼지가 일었고 사람들은
곧이어 미야타 신노스케는 하현에게 결정적인 한방을 감행했다.섬나라 발도술도, 바람을 맞받아치며 단칼에 베어버리는 방법도, 그가 쓸 수 있는 살수는 모두 다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땅에는 무수한 칼자국이 어지러이 나 있었고 사방의 나무들은 모두 허리가 잘려 나가 있었다.그러나 하현은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였다.사송란 일행은 마침내 똑똑히 보았다.미야타 신노스케가 봐 준 것이 아니라 하현이란 놈의 몸놀림이 너무나 빨랐다는 걸!하현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몸놀림으로 미야타 신노스케의 칼날을 피했던 것이다.“어쩐지 섬나라 전신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들먹거리더라니. 미야타 신노스케가 온 걸 알면서도 도망가거나 몸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더라니 정말 이럴 수가!”“사악한 방법을 좀 터득한 모양이로군!”사송란의 얼굴이 분노로 울그락불그락 끓어올랐다.“하현, 당신은 남자도 아니야!”“미야타 신노스케의 칼을 피하려고 오로지 피하기만 하다니, 너무 비겁한 거 아니야?”“이런 사생결단의 순간에도 계속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는 게 재미있어?”“그건 미야타 신노스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우리 대하 무학계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야!”“게다가 당신은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어!”“심판으로서 당신한테 명령한다. 더 이상 피하지 말고 정면 돌파해. 반드시 미야타 신노스케와 진검승부를 해야 해!”“대하의 남자로서 생각을 좀 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어!”“실력으로 안 될 것 같으니 비겁하게 자꾸 피하기만 하는데 그건 정당하지 못해. 그리고 언제까지 그렇게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당신 때문에 우리 대하 무학계가 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걸 몰라서 이래?”사송란은 매우 심각한 얼굴로 핏대를 세워 가며 화를 냈다.그녀의 머릿속에선 하현이 미야타 신노스케의 단칼에 맞아야 마땅했다.피하든 맞서든 모두 대하 무학계의 체면이 구겨질 건 명백했다.이러든 저러
노발대발하는 사송란의 말을 듣고 한 무리의 여자들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하현을 쳐다보았다.어떻게 이런 남자가 있을 수 있지?정말 염치도 없어!그녀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하현을 향한 혐오가 가득했다.전투에서 정면으로 당당하게 나서서 싸우지 못하고 뒤에서 비겁하게 요리조리 피하고만 있다니!이건 대하 남자들의 체면을 완전히 뭉개는 짓이다!모두들 경멸하는 눈빛으로 싸늘하게 하현을 쏘아보았다!“피하지 말라고?”하현이 웃었다.“사송란, 당신 참 관대하군!”“내 행동을 그렇게 비교하다니, 알았어. 당신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이제는 절대 피하지 않겠어!”순간 하현의 몸에서 숨겨둔 무서운 기세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거센 파도가 미야타 신노스케를 향해 몰아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이를 보고 음흉한 얼굴을 하고 있던 미야타 신노스케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하현의 기세가 순식간에 변하는 걸 감지한 사송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움츠러든 눈동자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삭!”순식간에 하현의 몸이 움직였다.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휘둘렀다.그의 손놀림은 빛처럼 빨랐고 정확했다.천하의 무공, 아무리 견고해도 다 부술 수 있는 막강한 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공격.하현은 손놀림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곧이어 하현의 손바닥이 미야타 신노스케 앞에 떨어졌다.그는 두려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무의식중에 칼을 휘두르며 밀려오는 하현의 손바닥을 가까스로 막았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먼지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가 파도처럼 다시 밀려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를 갈고 맞서는 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그들은 마침내 똑똑히 보았다.미야타 신노스케가 확실히 하현의 손바닥을 막았다.그러나 땅에는 거미줄처럼 갈라진 틈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그 모습에 사람들은
눈앞의 모든 장면이 아득한 영화처럼 충격적이고 믿을 수가 없었다.용오행이든 사송란이든 모두가 입을 벌린 채 혀끝이 얼어버린 사람처럼 말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텐푸 다이토는 마른침을 삼키다 못해 입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그는 직접 자신의 따귀를 몇 번 때려 보았다.눈앞에 보이는 것이 꿈이 아닌지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잘못 본 게 아닌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미야타 신노스케가 누구인가?!섬나라 음류 검객 중의 검객, 섬나라 전쟁의 신이 아닌가!그런 인물은 세상에 적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런데 하현이라는 애송이에게 일격을 당하다니!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어떻게 이렇게 충격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단 말인가?“이럴 리가 없어! 이게 어떻게 가능해?!”“미야타 신노스케는 진정한 전신이야. 하현이란 놈이 수련을 한다고 해서 따라올 수 있는 경지가 아니란 얘기야!”“그런데 그가 어떻게 미야타 신노스케를 이길 수 있단 말이야?”“뭔가 요상한 수를 써서 눈속임을 한 게 분명해!”“분명히 그럴 거야...”사송란은 눈동자에 초점을 잃은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눈앞의 장면은 그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기에 끊임없이 핑곗거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무학 성지의 2세들은 입을 벌린 채 눈이 휘둥그레졌다.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방금 창피를 당한 육건우만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미야타 신노스케도 하현의 손놀림 한 방에 이렇게 처참히 무너졌으니 자신이 맞은 것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내심 안도한 것이다.용오행과 집법당 제자들은 목이 타들어갔다.방금까지 그들을 흥분시켰던 설렘과 오만함은 빛을 잃고 절망의 옷을 갈아입었다.그들은 모두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며 눈가에 쉴 새 없이 경련이 일어났다.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막막한 마음뿐이었다.“당신은 안 돼.”하현은 반쯤 무릎을 꿇은 미야타 신노스케를 보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개자식!”화가 끓어오르기는 사송란도 마찬가지였다.그녀는 미야타 신노스케가 하현을 단칼에 죽이길 그토록 바랐었다.그런데 지금 미야타 신노스케가 쓰러지다니!그가 하현에게 짓밟혀 쓰러질 줄은 몰랐다.하현의 발이 이미 미야타 신노스케의 목덜미를 지그시 밟고 있는 것을 본 사송란은 온몸에 충격을 받았다.“하 씨! 그만해!”“이 싸움은 여기까지!”“당신 너무 음흉하잖아!”“이렇게 잔인할 필요는 없잖아!”“당신은 미야타 신노스케의 상대가 못 돼!”“틀림없이 무슨 사악한 수단을 써서 요행으로 미야타 신노스케를 이겼을 거야! 분명해!”“그러니 이번 싸움은 없던 걸로 해야 해!”“오히려 비겁하고 파렴치한 당신 행동을 사과해야 해!”“우리 대하는 이런 비열한 승부를 절대 용납하지 않아!”“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어!”사송란은 뻔뻔한 가면을 쓰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지금 당장 미야타 신노스케를 풀어주고 무릎을 꿇고 그에게 용서를 빌어!”“그렇다면 난 당신의 잘못에 대한 건 묻지 않을 거야.”용오행도 옆에서 거들었다.“하 씨, 어서 풀어줘!”“잘못을 인정해, 어서!”“버티다가 자꾸 사송란의 화를 돋우기만 한다면 정말 당신은 심각한 결과를 맞게 될 거야!”하현은 미야타 신노스케의 목에서 발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들어 말했다.“이 사람을 놓아주라고?”“미야타 신노스케에게 물어봐. 내가 그를 놓아준다고 해도 그가 감히 걸을 수 있겠어?”“내가 죽이려고 하면 감히 안 죽고 배길 것 같아?”“하 씨, 허풍 그만 떨어!”하현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사송란은 더욱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당신이 뭐라도 된 줄 알아? 죽이려고 하면 감히 안 죽고 배기겠냐고?”“허풍도 정도껏이야!”“젊은 사람이 정말 제대로 착각한 모양인데!”“사악한 방법으로 이긴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야!”“무엇보다 미야타 신노스케는 섬나라 전신이야! 진정한 전쟁의 신!”“섬나라와 우리 대하는
”퍽!”하현은 미야타 신노스케의 오른손을 밟아 부러뜨리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미야타 신노스케, 당신 바보야?”“아니면 머리에 총 맞았어?”“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면 내가 당신을 혹시라도 놓아줄지도 몰라.”“그런데 지금 나한테 협박을 해? 왜? 내가 너무 늦게 손을 쓸까 봐 두려운 건가?”“뭐? 이 자식이!”하현의 말에 미야타 신노스케가 발끈했지만 두려운 기색을 감출 수는 없었다.하현에게서 섬뜩한 살의를 느꼈기 때문이다.그러자 하현의 담담한 시선이 사송란에게로 향했다.그의 얼굴에 온통 비아냥거리는 미소가 가득 번졌다.이 사람들은 말끝마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실상 미야타 신노스케가 패배한 것을 보고는 양국에 영향을 주네 마네 하며 자신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정말 이보다 더 웃긴 코미디가 어디 있겠는가?의연한 척하며 노발대발하는 사송란을 곁눈질하며 하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송란, 당신의 당주님은 금사남목 관까지 가져오셨고 입만 열면 우리 집안까지 쓸어버리겠다고 하셨는데.”“이런 상황에서 나보고 뭐? 대승적으로 해야 한다고?”“너무 웃기지 않아?”“아니면 당신들 눈에는 미야타 신노스케가 나를 죽이는 건 마땅한 일이지만 내가 그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는 것도 죄악이라는 건가?”하현의 질문에 사송란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일관하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그리 알고 있으면 돼!”“당신의 신분과 미야타 신노스케의 신분은 비교가 안 돼!”“당신은 백 번 죽어도 마땅하지만 미야타 신노스케는 절대 다치면 안 되는 사람이야!”지금 사송란의 눈에는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것 같았다.“다시 한번 말할게. 이게 마지막이야. 당장 미야타 신노스케를 풀어줘!”“그렇지 않으면 정말 당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야!”“그래, 그럼 체면을 세워 줄 겸 풀어주지!”하현은 사송란을 향해 싱긋 웃었다.이대로 죽을 줄 알았던 미야타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