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척에서 허민설을 바라보는 최문성의 눈꺼풀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그의 오른손이 움찔움찔했지만 끝내 손을 쓰지는 않았다.그는 어떻게 해서든 감정을 억누르려고 안간힘을 썼다.“찰싹!”최문성이 손을 쓰지 않고 화를 꾹 참고 있는 모습을 보고 허민설은 다시 손바닥을 휘둘러 이번에는 최문성의 다른 쪽 뺨을 때렸다.“쓰레기 같은 놈! 천하의 쓸모없는 놈! 당신은 전설의 병왕이 아니라 그냥 종이호랑이일 뿐이야!”“여자한테 맞아도 아무것도 못하면서!”“감히 체면은 무슨 체면?”“체면이란 게 당신한테 있기나 해?”허민설은 눈앞에 있는 최문성을 향해 극도로 경멸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항성과 도성을 이끄는 젊은 세대 중 한 명이었지만 자신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것이었다.이런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붙여야 속이 시원할까?죽어야 이 분통이 사그라질까?최문성은 입가에 흐르는 핏자국을 무심히 닦으며 얼굴을 가렸다.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처참한지 얼마나 낭패스러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현장에 있던 남녀들은 이 장면을 보며 깔깔대며 웃었고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술잔을 마주치며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듯 흥미로워했다.일부는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기도 했다.누군가 처참히 당하는 꼴은 인터넷에 올라오기만 하면 바로 핫이슈감이었다.화가 치밀어 오른 동리아가 입을 열었다.“허민설, 너무 하는 거 아니야?”그녀는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참는 수밖에 없었다.허민설의 횡포와 맹인호의 세력을 보니 도저히 자신이 가진 힘과 인맥으로는 그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진정 허민설의 기세는 대단했다.그녀의 세력과 역량이 대단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문성도 감히 맞받아치지 못하고 온전히 당하고만 있는 것이다.“허민설, 우리 말로 풀어 보자고.”“당신은 항성 4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허 씨 집안 아가씨이자 미래에 항도 하 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사람이잖아?”“나 최문성이 배짱을 부리는 날이 있긴 했지만
”그리고 그건 강 씨 집안의 지분이지 당신네 최 씨 집안 지분이 아니야.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들을 설득한다는 거야?”“아니면 당신 뒤에 있는 배후가 이미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다른 사람한테 욕을 먹을망정 모든 것을 스스로 내걸었단 말이야?”허민설은 냉랭한 눈빛으로 최문성을 노려보았다.자신에게 달콤한 뭔가를 던져 주고 뒷일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며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알아채려고 유심히 최문성의 표정을 살폈다.그러나 최문성은 아무런 기색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무덤덤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허민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다시 한번 묻겠어. 당신 도대체 나와 이 거래를 이어갈 의향이 있는 거야?”허민설은 최문성에게 천천히 다가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이렇게 좋은 조건이라면 당연히 해야지. 하지만 아쉽게도 난 정말 강옥연을 감금하지 않았어!”“감금했더라도 당신 뒤에 있는 배후가 이렇게 통 크게 선심을 써서 강옥연을 데리고 가려는데 내가 직접 그 배후와 담판을 짓는 게 더 재미있지 않겠어?”“당신 배후에 있는 그 사람, 아무리 총명하고 배포가 크다고 해도 이 항성과 도성 바닥에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걸!”“그러니까 내 말은 그 사람, 너무 순진하다는 거지!”“나오지도 못하고 당신을 앞세워 담판을 지으려 하다니! 그냥 다른 사람 다 필요 없고 그 사람 나오라고 해!”허민설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오늘 이 모든 것은 결국 하현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하지만 하현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쉽게 최문성과 거래를 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그녀는 하찮은 최문성 따위는 그녀와 직접 담판을 지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최문성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허민설, 당신은 내 체면 따위 봐 줄 마음이 없다는 거지?”“당신 체면은 당연히 세워 줘야겠지.”허민설은 샴페인 잔을 쥐고 앞으로 나섰다.“당신 체면을 봐서 고아신 일은 내가 더
”체면을 안 봐 주면 어쩔 건데?”“내가 또 당신 얼굴 때리면 어쩔 거냐고?”허민설은 천천히 소파로 돌아와 치마 사이로 하얀 허벅지를 드러내며 앉았다.그녀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최문성을 바라보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굴욕을 계속 참아오던 당신이, 평화로운 담판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본색을 드러낼 준비라도 되어 있는 건가?”“아니면 이제 날 건드릴 작정이라도 한 거야?”“자자, 건드려 봐!”“최문성, 당신이 날 어떻게 건드리는지 똑똑히 볼게!”“당신 정말...”최문성이 앞으로 나서려고 할 때였다.갑자기 뒤쪽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제복 차림에 총을 멘 수십 명의 남녀가 나타나 장내를 가득 채웠다.제복을 입은 사람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모습으로 긴 다리를 움직이며 최영하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허민설, 우리 최 씨 집안사람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있는데 혹시 나 최영하한테 물어보고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거야?”“혹시 뒷일을 생각해 본 적 있어?”최영하는 말을 하면서 최문성에게 천천히 다가왔다.붉게 부풀어 오른 얼굴과 너덜너덜해진 그의 몸을 바라보며 최영하의 얼굴에 겨울바람 같은 매서운 기운이 흘렀다.“오호! 최영하, 최 씨 집안 아가씨가 오셨군!”“왜? 요즘 용전 항도 지부를 맡더니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머리에 총 맞았어?”“감히 금옥클럽에 와서 소란을 피울 생각을 하다니!”“감히 나 허민설과 대적하려 하다니 말이야!”허민설은 한껏 비꼬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하구천이 하 씨 가문 안주인 생신 일 때문에 잠시 바빠서 당신을 혼내주지 못했을 뿐이야.”“꼬리를 감추고 잠자코 웅크리고 있지는 못할망정 감히 내 앞에 와서 위세를 부리려 해?”“사는 게 지겨워?”“꺼져!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 얼굴 가죽을 싹 다 벗겨 버릴 테니까!”옆에 있던 맹인호도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거들었다.“최영하, 총
차갑게 얼어붙은 최영하의 눈에는 맹인호를 향한 분노로 들끓었다.맹인호의 행동은 이미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행동이었다.그녀는 용전 항도 지부를 대표하는 사람이었고 하현의 뜻을 이행하는 사람이었다.그런 그녀에게 누가 감히 함부로 뺨을 때릴 수 있는가?순간 최영하는 허리춤에 있던 총기를 빼내며 서릿발 같은 눈초리로 맹인호를 쏘아보았다.“맹인호, 당신이 보기엔 용전 항도 지부장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최영하의 말소리에 사방에 있던 십여 명의 부하들이 일제히 앞으로 다가와 손에 든 총기의 안전장치를 풀고 맹인호에게 총구를 겨누었다.그러나 무력으로 위협하는 것은 맹인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최영하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은 무단으로 금옥클럽에 침입해서 허민설 앞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내가 당신을 건드리지 않으면 누굴 건드리겠어?”“최영하!”“용전 항도 지부장님, 당신은 다른 사람을 이렇게 위협할 수는 있어. 하지만 날 어떻게 할 수는 없어. 지금 최문성 하나 살려 보겠다고 이렇게 나선 거야?”“허세 좀 그만 부려!”최영하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보아하니, 당신 나랑 한번 해 보자는 거로군.”“왜? 사람도 많고 총도 많으니 날 한번 건드려 보시지?”맹인호는 차가운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자! 총으로 어디 날 한번 쏴 봐!”“날 쏘지 못하면 당신네 최 씨 집안은 대대로 나의 노예가 되고 여자는 대대로 남자들의 노리개가 될 거야!”말을 마치며 맹인호는 자신의 외투를 풀어헤쳤다.그러자 그의 옷 안에 거무스름한 수류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이게 터진다면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한날한시에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다.저런 위험한 것을 몸에 달고 다니다니!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얼어버렸다.수십 명의 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과 경호원들은 모두 본
”하하하하!”“쓰레기는 쓰레기야!”“찌질하기는!”“당신들 지금 어떤 모습인지 좀 봐!”최문성을 비롯해 낭패한 얼굴로 얼어붙은 사람들을 쳐다보며 맹인호는 험상궂게 웃었다.“이러면서 아직도 내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어?”“뭐? 나한테 그대로 돌아온다고?”“난 수류탄을 던지지도 않았는데 겁먹은 모습들이라니!”“정말로 내가 수류탄을 던지기라도 한다면 당신들은 울기라도 할 모양이군, 하하하!”“당신들 정말 못 쓰겠구만!”“최 씨 가문? 동 씨 가문?”“웃기지들 마!”“당신과 경쟁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일인자가 될 수 있었던 거야.”“당신들이 우리와 대적할 만한 상대가 된다고 생각해?”“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야?”맹인호는 말할 수 없는 오만함을 앞세워 최문성의 얼굴을 때리며 패악을 부렸다.임세인을 비롯한 여자들은 모두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거렸다.오늘 밤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동 씨 집안이든 최 씨 집안이든 항성과 도성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최문성은 사나운 맹수 같은 눈빛으로 맹인호를 노려보았다.오늘 밤 현장에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 않았다면 벌써 맹인호와 죽기 살기로 한 판 붙었을 것이다.“오늘 밤 당신들한테 충분히 기회를 주었는데도 당신들이 돌아가지 않고 이렇게 버틴다면 정말 국물도 없어. 나중에 우리한테 걸리기만 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맹인호는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길에서 날 보거나 허민설을 보면 멀리서라도 도망쳐. 우리가 있는 곳에 동 씨 집안이나 최 씨 집안사람들이 나타날 자격 없으니까!”“안 그러면 나한테 혼쭐이 날 줄 알아!”“나 맹인호, 똑똑히 말했어!”“어서 고아신을 풀어주고 돈이나 보내!”“그렇지 않으면 바로 죽여 버릴 거야, 알겠어?”말을 하는 동안에도 맹인호는 탁자 위에 놓인 샴페인 병을 집어 들고 최문성의 머리를 탁 쳤다.맹인호는 최문성에게 시선을 옮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항성 이 바닥에서 감히 나한테 정의네
”둘째, 당신이 죽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스스로 뺨을 열 대 때리고 사과할 만큼 사과해. 그러면 오늘 일은 그냥 과거의 일로 묻을 거야.”“어떻게 할지는 당신이 선택하는 거야. 내가 끝까지 함께해 줄게. 어때?”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은 맹인호를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렸다.맹인호는 순간 넋이 나간 듯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당, 당신 도대체 누구야?”그는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발로 걷어차 버리고 싶었지만 안전장치가 뽑힌 수류탄이 자신의 손에 있었고 그 손을 하현이 쥐고 있었다.만약 하현이 힘을 주기라도 한다면 맹인호의 손에 있던 수류탄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그 이후엔...모두가 가루가 되어 함께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이런 이유로 맹인호는 감히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겠지, 안 그래?”하현은 담담하게 말을 하면서 손에 힘을 지그시 주었다.“정 못 고르겠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하현이 손에 힘을 주자 맹인호의 손가락뼈에서 찌직 소리가 났고 그의 손은 더욱 헐거워졌다.수류탄이 당장이라도 미끄러져 떨어질 것 같았다.“미친놈! 당신은 미친놈이야! 미쳤다구!”오만하기 그지없었던 맹인호는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하현에게 손목이 잡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맹인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터질 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소파 뒤에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어 이 광경을 지켜보던 허민설의 얼굴에는 그야말로 극도의 공포가 가득 들어찼다.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극도의 공포감이 그녀를 압도했다.그녀는 누가 나타난 것인지 똑똑히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맹인호의 손이 풀리면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점령했다.죽음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살아 있더라도 사지 멀쩡한 채로는 살지 못할 것이다.“자! 다 같이 죽자구!”하현이 계속 힘을 주며 소리쳤다.맹인호는
맹인호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그에게 있어 말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흑주를 종횡무진 누비며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그였다.하지만 오늘 뜻밖에도 하현 일행에게 제압당하고 만 것이다.눈앞에 있는 놈은 자신보다 더 지독해 보였다.터지면 당장이라도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수류탄을 앞에 두고 태연한 얼굴로 자신을 상대했기 때문이다.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놈 때문에 자신의 마음속에는 여태 가져본 적 없던 두려움이 마구 용솟음쳤다.과거에 그가 광적으로 드러내었던 오만과 광기의 전제에는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자신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난 듯한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도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결국 자신도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는 일개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맹인호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절망에 가까운 우울이 밀려왔다.“이놈아! 너 배짱 한번 좋구나! 죽음을 각오한 최 씨 가문 군대라도 돼? 감히 어디라고 함부로 날뛰는 거야?”“내가 내일 어떻게든 당신의 온 집안사람들을 죽여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어 버릴 테야. 조상의 위패는 다 없애버리고 무덤은 다 파헤쳐 버릴 거라구!”맹인호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마음속의 두려운 심경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더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퍽!”하현은 손바닥을 한 대 후려치더니 담담하고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뭘 그렇게 말이 많아?”“같이 죽든지, 아니면 무릎 꿇고 사과하든지.”하현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몇 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온몸을 굴린 그가 용병들 데리고 전쟁놀이나 일삼은 맹인호 같은 인물을 두려워하겠는가?맹인호의 얼굴은 서서히 벌겋게 달아올랐다.생전 처음 당한 굴욕에 맹인호는 한동안 넋이 나간 채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아악!”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여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얼굴
맹인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그는 이미 칼날을 드러냈건만 하현한테는 속수무책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 자식! 너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구나?”“무서워.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어?”하현은 무표정하게 말했다.“다만 난 일개 무명 싸움꾼일 뿐이야. 한데 넌?”“넌 항성 S4 중 한 명이고 흑주를 종횡무진 누빈, 그야말로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잖아!”“우리 둘이 껴안고 같이 죽으면 내가 손해 볼 건 없지 않아?”“죽고 나면 사람들은 그냥 날 잊겠지.”“그렇지만 사람들은 당신을 그렇게 기억하겠지. 체면 차리다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듯 목숨을 잃었다고.”두 사람의 말투는 무겁지 않았지만 듣고 있던 임세인은 간담이 서늘해졌다.미치광이는 한 명이면 족했다!그런데 두 명의 미치광이라니!사람들은 밀려오는 공포와 두려움에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맹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의 얼굴에서 두려운 기색을 찾으려고 애써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하현의 표정은 생사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세상 평온한 얼굴이었다.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기개를 가질 수 있는지 맹인호로서는 정말 알 수가 없었다.설마 이놈도 전쟁터에 나간 적이 있을까?그것도 죽은 사람 더미에서 기어 나온 극도의 공포를 맛본?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보통 사람이 이런 저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절대 그럴 수 없다!이런저런 생각 끝에 맹인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이, 그래. 당신이 거만하고 강하다는 거 인정. 인정해. 그런 기개 정말 마음에 들어!”“당신이 이렇게 허세를 부리니 내가 승복하지!”“사과할게!”“아까는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맹인호, 그건 승복하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지!”“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그리고 강옥연을 풀어 줘!”“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돼.”“하나라도 빠지면 다 죽는 거야!”맹인호는 눈썹을 한껏 치켜세워 하현
노부인의 말에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웃는 듯 마는 듯한 눈빛으로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양 씨 가문 어른들도 냉랭한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그들은 노부인의 위세 아래 양유훤과 찌질한 남자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심산이었다.만약 양유훤과 하현이 아무 성과 없이 이대로 끝난다면 양유훤은 순순히 여수혁에게 시집가게 될 테니 그들에게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납품권을 해결하든지, 아니면 시집을 가든지 하라구요?”하현의 얼굴에 빈정거림이 더해졌고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양 씨 가문 사람들에게 떨어졌다.잠시 후 하현은 드디어 양 씨 가문 사람들의 속셈을 알아차렸다.오늘 아침에 양호남이 와서 양유훤을 난처하게 한 것은 스스로가 결정한 일이 아니라 노부인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다.“할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저에게 3일간의 시간을 주세요. 그동안 제가 방법을 찾아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쨌든 그녀는 이대로 여수혁에게 시집을 갈 수는 없었다.“3일의 시간을 달라고?”양호남은 양유훤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우리 집안이 당면한 일이 매우 촉박하다는 건 알고 있지?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사흘 후면 무슨 사단이 나도 날 거야. 대응하기 늦어!”“당신이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차치하고 말이야.”“할머니, 양유훤이 그렇게 능력이 있다면 지금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아니면 지금 깨끗하게 시집가는 걸로 결론지으면 되구요. 늦으면 일만 더 커져요!”이쯤 되자 양호남은 매서운 눈빛으로 양유훤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양호남!”양유훤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항성과 도성에서 자신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벌써 상어 밥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여기는 양 씨 가문이었다.“음, 그래. 호남이 말이 맞아. 우리가 구매한 상품들은 애초에 원가를 절약하기 위해 미리 구
”규율이요?”“양 씨 가문의 규율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설마 왕법 위에 군림할 수 있겠습니까?”하현은 노부인 앞에서 전혀 체면을 봐주는 것 없이 사실을 까발렸다.“더 이상 쓸데없는 말 다 필요없고 제가 말씀드릴 것은 이것뿐입니다.”“제가 여수혁의 얼굴을 때렸고 여수혁의 손도 부러뜨렸습니다.”“그러니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양호남은 이것을 빌미삼아 양유훤을 협박해 여수혁에게 시집보내려는 수작을 벌이고 있습니다. 양유훤을 집안에서 내쫓은 다음 양 씨 가문을 차지하고 싶은 그의 욕망 때문이죠!”여기까지 말한 하현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양호남을 흘겨보며 말했다.“양호남, 당신이 오늘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으로 할퀴려고 한 게 이런 목적 아니었어?”“무, 무슨 목적? 목적은 무슨!”“우리 할머니가 당신 같은 얼뜨기가 한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해?”“난 오로지 우리 집안의 이익을 위해 일했을 뿐이야!”양호남은 정의로 똘똘 뭉친 남자처럼 울부짖으며 자칫 까발려진 자신의 욕망을 숨기려 애썼다.“이 모든 게 다 우리 집안을 위해서라고! 어떤 이기적인 욕심도 없었어!”“내가 조금이라도 그런 이기적인 욕심을 품었다면 천벌을 받을 거야!”그러나 이 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심장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에 앞장서서 양유훤을 옥죈 것은 바로 두 가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첫 번째는 항성과 도성에서 돌아온 양유훤이 그에게 엄청난 위협감을 준 나머지 부상에서 회복된 양제명이 양유훤을 강하게 지지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두 번째 양유훤을 여수혁에게 시집보내는 데 성공하면 페낭 무맹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분과 이치에 어긋나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큰집의 자산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이렇게 되면 양 씨 가문은 훗날 양호남의 손에 넘어갈 것임이 분명하다!그는 페낭을 넘어 남양에서 가장 유력한 거물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양호남의 말 한마디에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이번 일이 우리 가문의 이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와 오빠는 초조함을 금할 수 없었어요.”“그래서 아침 일찍 양유훤을 찾아가 페낭 무맹에 얼른 사과나 해명이라도 하라고 했어요...”“우리 사업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다소 과격한 행동이 있을 수밖에 없었구요. 하지만 우린 양유훤에게 따끔하게 교훈을 주고 싶었어요!”“정말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 가문을 위해서 한 일이에요!”“그 결과 지금 어떻게 되었죠? 양유훤은 남자를 앞세우고 힘으로 밀어붙여 우릴 때렸어요!”“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가문 어른들도 함부로 때렸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완전히 우리 가문 체면을 무시한 거죠!”이에 콧등과 얼굴이 푸르덩덩하게 부은 나이 지긋한 두 남자가 얼른 나와 고개를 끄덕이며 하현이 함부로 폭력을 행사했다고 일러바쳤다.양유훤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할머니, 그게 아니에요...”“망측한 것!”노부인은 양유훤에게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로 양유훤의 허벅지를 세게 후려쳤다.“양유훤, 지난 세월 동안 넌 가족과 가문의 이익을 위해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예전에는 황실에 시집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집을 뛰쳐나가 우리 가문에 막대한 해를 끼치더니!”“이제는 얼뜨기 외지인 남자를 감싸려고 페낭 무맹한테 미움을 사?”“심지어 저 남자한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을 때리라고 했어?”“양유훤, 아주 간이 부었구나!”자신의 할머니가 내려치는 것이라 양유훤은 감히 피하지도 못하고 오롯이 지팡이를 맞으며 몸을 비틀거렸다.하현은 이를 보고 싸늘해진 눈빛으로 양유훤을 붙잡았고 노부인의 지팡이를 잡고 뿌리쳤다.“노부인, 어떻게 한쪽 말만 믿고 이러십니까?”“제가 양호남을 때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그들이 제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양유훤을 끌고 가 여수혁과 억지로 결혼을 시키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돼지우리에 가두려고 했어요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