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그는 이미 칼날을 드러냈건만 하현한테는 속수무책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 자식! 너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구나?”“무서워.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어?”하현은 무표정하게 말했다.“다만 난 일개 무명 싸움꾼일 뿐이야. 한데 넌?”“넌 항성 S4 중 한 명이고 흑주를 종횡무진 누빈, 그야말로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잖아!”“우리 둘이 껴안고 같이 죽으면 내가 손해 볼 건 없지 않아?”“죽고 나면 사람들은 그냥 날 잊겠지.”“그렇지만 사람들은 당신을 그렇게 기억하겠지. 체면 차리다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듯 목숨을 잃었다고.”두 사람의 말투는 무겁지 않았지만 듣고 있던 임세인은 간담이 서늘해졌다.미치광이는 한 명이면 족했다!그런데 두 명의 미치광이라니!사람들은 밀려오는 공포와 두려움에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맹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의 얼굴에서 두려운 기색을 찾으려고 애써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하현의 표정은 생사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세상 평온한 얼굴이었다.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기개를 가질 수 있는지 맹인호로서는 정말 알 수가 없었다.설마 이놈도 전쟁터에 나간 적이 있을까?그것도 죽은 사람 더미에서 기어 나온 극도의 공포를 맛본?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보통 사람이 이런 저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절대 그럴 수 없다!이런저런 생각 끝에 맹인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이, 그래. 당신이 거만하고 강하다는 거 인정. 인정해. 그런 기개 정말 마음에 들어!”“당신이 이렇게 허세를 부리니 내가 승복하지!”“사과할게!”“아까는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맹인호, 그건 승복하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지!”“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그리고 강옥연을 풀어 줘!”“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돼.”“하나라도 빠지면 다 죽는 거야!”맹인호는 눈썹을 한껏 치켜세워 하현
”데구루루.”수류탄이 땅에 떨어져 몇 바퀴를 굴렀는데도 터지지 않았다.사람들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어? 안, 안 터졌어?”“수류탄이 안 터져?”하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맹인호의 몸에 달려 있던 수류탄을 또 꺼내 안전핀을 뽑았다.“풀어 줄게! 강옥연 풀어 줄게!”맹인호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허민설이 덜덜 떨면서 내뱉었다.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하물며 방금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허민설은 정말이지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남은 날이 얼마나 창창한데 여기서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맹인호도 깊은숨을 내쉬며 안도하는 기색이 번졌다.동시에 자신의 몸에서 지독한 지린내가 풍겨 오는 게 느껴졌다.순간 그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맹인호는 자신도 그렇게 두려워할 때가 있을 줄은 몰랐다.허민설은 얼른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곧이어 몇몇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강옥연의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비록 안색이 창백했지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것 같았다.어쨌든 다들 선수들이니 해서는 안 될 일이 어떤 것인지 허민설도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동리아와 최영하가 급히 달려와 강옥연을 감쌌고 하현의 얼굴에는 의미심장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오늘 밤은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게!”순식간에 판세가 뒤집히자 지린내를 풍기던 맹인호는 갑자기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하지 않았어?”“무릎 꿇는 거, 할 수 있어. 하지만 당신 뒷일을 감당할 수 있겠어?”여기까지 와서도 맹인호는 여전히 하현을 도발하고 나섰다.강옥연은 맹인호가 무릎을 꿇는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이제 됐어...”다른 사람들은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 하현을 바라보며 그가 자비를 베풀길 바라는 눈치였다.하현이라는 두 글자를 듣고 허민설은 마침내 고개를 들고 그의 얼굴을
맹인호의 얼굴은 하현의 발에 짓밟혔다.하현에게서 살기를 느낀 맹인호는 이를 갈면서 말했다.“미, 미안해.”맹인호의 말소리를 들고서야 하현은 웃으며 자신의 오른발을 뗐다.맹인호는 서둘러 일어서려고도 하지 않았다.그는 무릎을 꿇은 채 냉랭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으르렁거렸다.“성이 하 씨라고? 당신이 바로 하현이었군!”“좋아. 오늘 이 일, 내가 꼭 기억하겠어!”“하 씨. 푸른 산은 언제나 우뚝 서 있고 푸른 물은 영원히 흐른다는 걸 알아야 할 거야.”“오늘 밤 이 일, 조만간 내가 꼭 되갚아 줄 테니까 기다려!”하현은 웃으며 말했다.“그거 알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뭔지? 누군가가 내 앞에서 주제도 모르고 허풍 떠는 거!”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현은 맹인호의 목을 졸랐다.그리고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을 맹인호의 입에 넣었다.“입이 이렇게 거치니 이거라도 깨물어야지!”“만약 당신이 입을 떼면 수류탄이 폭발하겠지! 날 원망하지 마! 다 자업자득이야!”하현은 손을 뻗어 맹인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쳤다.맹인호는 화가 나서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저 죽기 살기로 하현을 노려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또 맹인호를 발로 걷어찼다.맹인호는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을 보호하느라 허둥지둥거렸다.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낭패한 모습이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하현은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던지 얼굴 가득 웃음기가 넘쳤다.칼끝에 피만 묻혀 본 구제불능에게는 이만한 방법도 없었다.허민설이 하현을 노려보며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은 정말 운이 억세게도 좋군!”“하지만 하늘에 맹세해!”“나 허민설, 오늘 밤의 이 치욕 반드시 되갚아 주고야 말겠어!”“두고 봐! 나...”“퍽!”하현은 허민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바닥으로 그녀의 얼굴을 후려쳤다.“아직도 분수도 모르고 입을 놀리고 있어?”“무릎 꿇어!”허민설은
하백진의 관심사는 그게 아니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그놈이 그렇게 배포가 크다고? 수류탄을 땅에 던져버릴 만큼?”“그 수류탄 이미 안전핀 뽑혔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안 터졌어?”하구천은 차를 마시며 담담하게 말했다.“나중에 조사해 보니까 그 수류탄은 불량이었대. 안에 든 폭약도 이미 폭약으로서의 기능을 잃었고.”“그놈은 운지 좋은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 수류탄이 불량이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정말 알 수가 없군...”“하지만 그가 한 행동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지!”말을 하면서 하구천은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하나 재생한 뒤 하백진이 볼 수 있도록 그녀의 눈앞에 보여주었다.그제야 두 사람은 모든 과정을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세 번을 반복해서 본 후 하백진과 하구천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쨌든 간에 하현은 등장하자마자 좌중을 압도했다.하백진은 동영상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놈은 정말 여자들한테는 인기가 많아.”“최영하, 동리아, 이제는 강옥연까지!”“세 여자 모두 항성과 도성에서 내로라하는 위치에 있어.”“이번에 허민설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바람에 강옥연도 그들한테 등을 돌렸어.”“최 씨 집안, 동 씨 집안, 강 씨 집안, 화 씨 집안...”하백진이 일일이 열거했다.하현이란 놈이 항성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는가?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집안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다니!하백진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말을 이었다.“하구천, 이놈이 이대로 커 가게 놔둘 수는 없어!”“만약 그가 계속 이런 식으로 세력을 키운다면 조만간 네 지위까지도 위협할 거야.”하구천은 별다른 동요 없이 무덤덤하게 말했다.“화 씨 집안이든 동 씨 집안이든 강 씨 집안이든 그 집안들은 원래도 나한테 마음이 없었어.”“다만 과거에는 이 항성과 도성에서 감히 나한테 대적할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사를 보여주지 못했을 뿐이
눈앞에 있는 최문성에게서 예전과 사뭇 다른 느낌이 물씬 풍겨났다.세상 물정 모르던 부잣집 도련님의 자태는 온데간데없이 어느새 깊어진 그의 눈매에는 진중한 모습이 엿보였다.하현은 그런 최문성의 모습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어젯밤 금옥클럽에서의 수업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 같았다.“밤새 고생했으면서 좀 쉬지 않고?”하현은 스스로 차 한 잔을 따르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최문성에게 말했다.하현이 나타나자 최문성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하현, 밤새 들어온 소식들 보고드리려고 했었어요.”“그런데 쉬고 계시길래 방해하면 안 되겠다 생각해서 그냥 있었어요.”“수고했어.”하현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수고는요.”최문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리고 원래 제가 잠을 잘 못 잡니다.”하현은 웃으며 물었다.“잠을 잘 못 자? 왜? 화가 나서? 억울해서?”“아, 아닙니다.”최문성이 또 고개를 저었다.“당도대에서 병왕급이 되려면 자신의 마음을 직시할 줄 아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예전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어젯밤 일을 겪고 나니 알 것 같습니다.”어젯밤 일을 겪으면서 최문성의 심성이 한층 단단하게 단련이 되었음이 틀림없다.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나 참고 하지 않는 것, 포악하게 굴 수 있으나 참고 억누르는 것.이것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하현은 손을 내밀어 최문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그래, 아주 잘 했어.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면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어.”“그 정도쯤 되면 전신급으로 가기도 어렵지 않을 거야.”“전신은 실력 향상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경지로 승화되어야 이룰 수 있거든.”“진정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신념에 위배되는 모습으로는 단 일 초도 살지 않으며 세속에 얽매이지 않으면 돼. 그럼 점점 자신이 원하는 경지에 가까워질 거야.”최문성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총교관
그 시각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강 씨 집안에서는 가족 모두가 거실에 둘러앉아 무거운 표정으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강옥연이 돌아왔음에도 그녀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아직 아무도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부릉!”강 씨 가족들 사이에 불안이 고조되고 있을 때였다.갑자기 강 씨 집안 대문 앞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문 앞에는 검은색 미니밴 십여 대가 거칠게 엔진 소리를 내뿜고 있었다.문이 열리더니 수십 명의 용문 집법당 사람들이 총기를 들고 살벌한 얼굴로 내렸다.강 씨 집안 보안을 담담하던 용문 제자들은 집법당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안색이 급변하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집법당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얼른 강 씨 집안을 포위했다.공송연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앞장서서 수십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집안으로 들어왔다.강옥연은 다급히 소리쳤다.“이게 뭐하는 짓이야?”“퍽!”공송연은 강옥연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손바닥으로 그녀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그리고 나서 공송연은 핸드폰을 꺼내 강옥연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차갑게 입을 열었다.“이 여자야! 용문에서 명령이 떨어졌어. 당신을 데리고 용문 도관으로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구!”공송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용문 집법당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강옥연을 붙잡아 항성에 있는 용문 도관으로 보냈다.강옥연의 아버지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당신들 누구야? 여기가 어딘지 몰라?”“아무리 집법당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우리 강 씨 집안에 쳐들어와서 이렇게 함부로 사람을 데려갈 수는 없어!”“우리 아버지가 용문 항도 지회장이라는 걸 몰라? 용문 지회장이 얼마나 권위가 높은지 당신들 몰라서 이러냐고?”“퍽!”공송연은 두말없이 강옥연의 아버지의 얼굴에 일격을 가했다.다른 강 씨 집안사람들도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대들었다.“감히 우리 집안에 와서 이런 행패를 부려?”“당
”도대체 당신들 뭘 어쩌려는 거야?’강옥연의 아버지는 얼굴 가득 분통을 터뜨렸다.그들 강 씨 집안은 용문 항도 지회장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지회를 주관하고 있었다.그런데 어떻게 이런 모욕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강학연은 아직 행방불명이고 자신의 딸은 또 집법당 사람들에게 끌려갔다.이 사람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심산일까?“뭘 어쩌려는 거냐고?”공송연은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아주 간단해. 우린 몇 가지 진술과 약간의 증거가 필요해. 당신네 강 씨 집안은 오랫동안 지회를 호령했으니 우리한테 이 정도는 제공할 수 있겠지?”“강 씨 집안에서 외부의 적과 내통한 증거를 내놔! 30분 줄게!”“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나 공송연이 당신들 체면이고 뭐고 봐 주지 않고 마구 칼을 들이댈 거니까 그때 가서 나 원망하지 말고 알아서 해!”공송연의 말에 강옥연의 아버지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이건 분명히 강 씨 가문을 모함하고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수작이었다!강옥연의 아버지는 이를 갈며 말했다.“당신들 집법당이 이렇게 함부로 굴면 분명 나중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찰싹!”공송연은 또 한 번 강옥연의 아버지의 얼굴을 강타했다.“혹독한 대가?”“하하하! 자, 지금 말해 봐. 그 혹독한 대가가 뭐야?”“어서 수색해!”“모두들 샅샅이 뒤져서 이들이 외부의 적과 내통한 증거를 찾아내!”공송연의 말이 떨어지자 십여 명의 집법당 사람들은 모두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각 방들을 뒤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심보가 검은 집법당 사람들 눈에 곳곳에 있던 값나가는 물건들은 그냥 지나치기 힘든 유혹이었다.그들은 값나가는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군침을 흘렸다.이를 본 강 씨 집안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들을 막으려 나섰다.하지만 집법당 사람들에게 여지없이 걷어차여 바닥에 엎어졌다.강 씨 집안사람들도 나름 훈련된 사람들이었지만 용문 집법당 사람들을 어찌 막아낼 수 있겠는가?그리 오래지 않아 집법당 사람들은 온 집안
”똑똑히 들어. 나 공송연이 강 씨 집안에 죄가 있다고 하면 있는 거야!”“나한테 반항을 해? 날 상대해 보겠다는 거야?”“당신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천왕 태자가 와도 당신네 강 씨 가족을 구해 줄 수는 없을 거야!”“감히 하현의 편에 서서 뒤를 봐 주다니! 당신들은 이제 죽었어!”공송연의 말에 집법당 사람들은 모두 음흉한 미소를 입가에 내걸며 앞으로 나섰다.전에 그들은 하현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지만 오늘은 하나같이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마치 잃어버린 그들의 체면을 오늘 강 씨 집안에서 되찾으려는 것처럼.“쾅!”집법당 사람들이 막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갑자기 강 씨 집안 대문을 누군가가 걷어차며 들어왔다.펄럭이는 대문을 뒤로하고 한 줄기 사람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듣자 하니까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당신네 집법당 사람들이 나한테 외부의 적과 내통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씌우려 했다던데.”“강 씨 집안사람들을 협박해서 나한테 모함을 하려고 한다면서?”“왜? 지난번에 내가 준 따끔한 교훈으로는 부족했어?”“그렇게도 죽고 싶어?”말이 끝나자마자 하현이 집안으로 홀연히 들어섰다.불빛 아래 보이는 하현의 모습은 다소 야위어 보였지만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그의 차가운 눈은 예리하게 장내를 쏘아보았고 그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강 씨 가족은 이전에 하현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그래서 하현이 들어서자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자신도 모르게 얼른 인사를 했다.“하 지회장님!”하현이 나타나자 강 씨 가족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이전에 강학연이 하현의 편에 서려고 했을 때 강 씨 집안사람들은 그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러나 강학연의 생사가 불분명한 지금 그들을 구하러 온 사람이 하현이었던 것이다.강 씨 가족들의 표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하현, 드디어 오셨군. 난 당신이 요 며칠 항성과 도성에 틀어박혀 감히 나오지도 못하는 줄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