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구천을 부른다면 어떻게 될까?곰곰이 생각한 허민설은 결국 그를 부르지 않기로 결정했다.그녀는 오늘 너무 쉽게 생각했다.너무 방심했고 급했다.그녀는 자신이 대충 경호원들 몇 명쯤 데리고 가면 가볍게 하현을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다.정말 손쉽게 원하는 대로 흘러갈 거라 생각했다.자신의 행동을 되짚어 보던 허민설의 마음속에 스멀스멀 음흉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그녀는 다시 이를 악물었고 뭔가 결심이 선 듯 갑자기 강옥연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강옥연, 오늘 밤 일은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제정신이 아니었어. 술김에 한 폭언이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 용서해 줘!”“금옥루의 배당금에 관해서는 가능한 한 빨리 다시 정산해서 보내줄게.”“그래. 당신 사과, 받아줄게.”강옥연은 일이 더 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그녀는 짜증도 내지 않고 순순히 말했다.“이제 물러가도 돼.”허민설은 강옥연의 콧대 높은 태도에 화가 나서 피를 토할 뻔했지만 죽을힘을 다해 분노를 억누르며 하현과 강옥연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허민설이 등을 보이며 돌아서자 주시윤이 얼른 문을 닫았다.그러고 난 뒤 그는 하현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다가 강옥연 곁으로 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옥연, 오늘 일은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허 씨 가문은 4대 가문 중 하나잖아. 만약 허민설이 주도면밀하게 뭔가를 궁리한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방에 쓸려 버릴 거야.”“그러니까 우리 지금 다 같이 하구천을 찾아가는 게 어때? 가서 일단 사과를 하자구.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고 배상도 좀 더 받아낼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자, 어때?”“그래!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방금 나도 그 말 하려고 했어. 허민설은 항도 하 씨 가문 안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야. 그러니 우리가 이대로 미움을 살 순 없어!”“지금 우리가 이득을 봤다고 해도 앞으로가 더 문제야!”허민설이 있을 때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
이번 식사 자리는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강옥연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는 얼른 계산을 하고 그곳을 떠났다.집안에 보고해야 할 일도 있을 것 같아서 하현은 굳이 그녀를 잡지 않았다.용문 항도 도관 안.책상다리를 한 강학연은 느긋하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맞은편에 앉은 강옥연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강옥연이 모든 세부 사항을 말하고 나자 강학연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잘못 들은 게 아니겠지? 하현이 정말 하구천, 그러니까 항도 하 씨를 거론하며 부르라고 했다는 거야?”강옥연은 곰곰이 지난 일들을 되짚어 보며 말했다.“제대로 들었어요. 당시 하현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재미있군!”강학연이 중얼거리듯 읊조렸다.“하구천이 왔으면 확실히 일이 정리되었을 텐데 왜 허민설은 그를 부르지 못했지?”“하구천은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며 전략을 세우는 사람이야. 그런데 부르지 않았다? 하구천이나 항도 하 씨 가문이 와도 하현이 눈 하나 깜빡할 것 같지 않아서?”강학연은 미간에 주름을 잔뜩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어떤 가능성이든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다.하현은 항성과 도성에서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강학연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이자 강옥연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우리 일단 허 씨 집안에 사람을 보내 좋은 말로 해결해 보는 건 어때요? 아니면 하현의 편에 서서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까요?”“하지만 문제는 집법당이 항도 하 씨 가문 편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하현의 편에 서면 분명 위험해질 수 있어요.”강학연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항성과 도성에는 지금 거대한 폭풍이 기다리고 있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거대한 폭풍 말이야.”“우리 강 씨 집안은 여러 해 동안 용문 항도 지회를 맡아 왔어. 지금까지 내 원칙은 오직 하나, 절대로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야. 절대로.”
허민설의 뒤편으로 항성 S4 중 하나인 허지강이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담담한 표정으로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허민설은 화가 나서 미칠 듯이 씩씩거렸지만 그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왜 그렇게 흥분하는 거냐구?”“자, 생각해 봐. 진홍두, 하수진, 공송연 이 사람들도 그놈한테 당했어.”“당신이 나선 이상 이 정도 당한 건 정상 아니야?”“분하고 억울하면 혼자 또 찾아가서 건들지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내면 되잖아?”“내가 당신한테 여러 번 말했잖아. 우리 허 씨 집안은 무력으로 사람을 혼내는 가문이 아니라고. 때리고 죽이는 건 홍성 쪽에서나 하는 일이야.”“우리는 머리를 써야 해.”“촤랑!”허민설은 허지강이 들고 있던 커피잔을 툭 건드려 땅바닥에 엎어버렸다.“내가 안 갈 수 있었겠어?”“하구천이 이미 나한테 강옥연을 어떻게 처리하라고 암시했고 금옥루는 우리 허 씨 집안 자산인데,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섰겠냐구?”“당신이 나설 거야?”“감히?!”허지강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커피잔을 바라보았다.에르메스에서 일억 이상 써야 받을 수 있는 사은품이었는데 이렇게 깨지다니 그의 마음도 와장창 무너지는 것 같았다.허지강은 고개를 돌려 허민설을 바라보며 말했다.“흥분하지 마. 우리가 하현에게 당하긴 했지만 사실 우리의 태도는 확실히 보여줬잖아. 우리 허 씨 집안은 언제나 하구천 그의 편에 설 것이라는 걸 하구천에게 확실히 보여준 거라구.”“그러니 어찌 보면 좋은 투자를 한 셈이지.”“하구천이 이 일을 알고 우리 허 씨 집안이 쓸모없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우리 허 씨 집안의 충성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거야”허민설은 차갑게 비꼬며 말했다.“당신한테는 그게 괜찮겠지!”“하지만 나한테는?”“하구천이 날 쓸모없는 존재로 생각한다면 날 어떻게 더 높은 자리로 올려 주겠냐고?”“하수진이 없어져서 이제 나한테도 기회가 오는가 싶었는데!”“내가 이렇
허민설의 얼굴빛에 미세한 균열이 보이자 허지강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오른쪽 뺨을 두드리며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허민설. 이제 맹인호를 항성으로 불러들여야 할 때가 왔어.”“그가 이기면 우리 허 씨 집안은 잃어버린 체면을 다시 되찾을 수 있어!”“만약 그가 져서 목숨을 잃는다면 너한테는 고민 하나 줄어드는 셈이 되는 거야.”“일이 어떻게 되든 너한테는 다 좋은 일 아니야?”허민설은 번뜩 눈을 치켜들며 말했다.“설마 하구천이랑...”“쉿!”허지강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검지를 코에 갖다 대었다.“항도 하 씨 가문 하구천이 뭣 때문에 항성 S4를 짓누르려고 하겠어?”“예전의 항성 S4는 이미 하구천에게 제압당한 지 오래야. 사실 따지고 보면 맹인호의 자리를 하민석이 대신하게 된 거지.”“만약 나와 곽영준이 이렇게 어리숙했다면 몇 년 동안 항성 S4가 전부 바뀌지 않았을까?”허민설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맹인호는...”허지강이 허민설의 말을 잘랐다.“맹인호가 우리를 도우러 이곳으로 온다면 우리 편에 설 의향이 있다는 뜻이야.”“만약 맹인호가 오지 않는다면 그도 버려야 할 카드지!”“이 항성은 나와 곽영준이 손을 잡아야만 하구천과 맞설 수 있어, 안 그래?”“그러니까 당신과 곽영준은 누구의 앞잡이로만 살지는 않겠다, 그 뜻이야?”“대장부로 태어나서 어떻게 계속 남의 밑에서만 있을 수 있겠어?”뒤쪽에서 곽영준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문을 밀고 들어왔다.그의 등장에 허민설은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얼른 아닌 척 표정을 바꾸었다.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은 도저히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허지강과 곽영준이 손을 잡는다면 확실히 하구천과 대적할 만하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다음날 이른 아침, 하현은 핸드폰을 검색해 가까운 식당을 찾아 차와 아침 식사를 즐겼다.그와 항성 경찰서와의 약정에 의하면 당분간 그는 항성을 떠날 수 없는 몸이었다.하지만 하현은 이 약정이
”하현, 지금 해양공원 바깥 주차장에 있어요!”주시윤의 목소리에는 끝 모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컨테이너 뒤에 숨어 있는데 사람들이 날 찾으려고 돌아다니고 있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어요...”“하지만 강옥연은 이미 끌려갔어요!”“어서 좀 와 주세요...”“알았어요. 기다리고 있어요. 곧 갈 테니까.”하현은 서둘러 그 자리를 일어섰다.종업원에게 지폐 몇 장을 뿌리치듯 던져주고 계산을 한 후 택시를 불러 바람처럼 항성 해양공원으로 향했다.하현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길모퉁이의 어두운 구석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며 무전기를 입에 갖다 대고 말했다.“목표물, 적중!”...십여 분 만에 하현은 해양공원 주차장 입구에 도착해 택시 요금을 지불한 후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하현은 얼른 구석진 곳을 찾았다.양복을 입은 몇 명의 남자가 하나같이 시가를 물고 한 남자를 구석에 몰아넣고 있었다.양복 입을 남자들은 모두 야구 방망이와 쇠 파이프를 손에 들고 있었고 위협적으로 휘두르는 방망이질에 구석에 몰린 남자는 완전히 겁에 질려 울부짖었다.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지프 랭글러 보닛 위에는 달라붙는 옷을 입은 한 여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구경하듯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여자는 아주 매끈한 몸매에도 볼륨감이 살아있는 육감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그러나 어느 저격수 못지않은 살벌한 표정에, 손에는 총을 들고 있었다.그녀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주 능숙하게 총을 다루었다.하현이 걸어오는 것을 본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놀라지도 않고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으나 눈빛은 예리한 칼날처럼 매섭고 험악했다.그녀가 들고 있는 총은 어느새 하현의 이마에 점을 찍고 있었다.여차하면 하현의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여자의 오만하고 거침없는 행동에 하현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정말 이 사람들은 하현이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걸까?하현이 여기에 나타난 이유는 누가
호통치는 듯한 누군가의 말소리에 예닐곱 명의 남자들은 모두 돌아서서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자는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띠우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하현이 나선 것에 대해 그녀는 매우 흡족한 듯했다.“이 자식아! 우리 지금 영화 찍고 있는 거 몰라?”제일 앞에 선 남자는 사나운 눈빛으로 하현을 쏘아보다가 냉소를 띠며 내뱉었다.“꺼져!”“그리고 오늘 본 일은 잊어버려!”“그렇지 않으면 다음 주인공은 바로 네놈이 될 테니까! 명심해!”“미안한데 난 이대로는 못 갈 것 같은데.”하현이 느물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금 두들겨 맞고 있는 그 사람, 나랑 아는 사이거든. 나한테 구조 요청도 했으니 내가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아니면 당신들이 내 체면을 좀 봐서 그 사람을 풀어 주든가, 응?”하현은 심드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의 말에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사나운 미소를 입가에 드리우며 말했다.“인마, 너 지금 죽으려고 환장했어?”“우리가 누군지 알아?”“체면을 봐 달라고?”“네가 무슨 체면이 있어서 우리한테 봐 달라 말라야?”“지금 당장 썩 꺼져!”“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바로 저세상 구경시켜 줄 테니까!”말을 마치며 양복을 입은 남자가 손을 흔들었고 그의 부하들이 목을 좌우로 꺾더니 비열하게 웃으며 다가왔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한 걸음 내디뎠고 순식간에 그 양복 입은 남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하현의 동작이 너무 빨라서 양복 입은 남자는 미처 손쓸 틈도 없었다.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자는 순간 얼굴빛이 일그러지며 소리쳤다.“조심해!”양복 입은 남자는 겨우 정신을 다잡았고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남자가 아무리 빠르게 반응하려고 해도 하현을 이길 수는 없었다.순간 남자의 마음속에 서늘한 느낌이 밀려왔다.하현의 오른손이 이미 자신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자식아..
”그래, 내가 풀어 주지.”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띠며 오른손을 세차게 휘둘러 남자를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풀썩!”남자는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순간 그는 피를 토하며 숨을 헐떡거렸다.그의 얼굴에 한차례 절망의 빛이 스쳐 지나더니 이제는 숨이 넘어갈 듯 입을 크게 벌리며 몇 번을 꺽꺽대었다.마치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아무리 입을 벌려도 숨을 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남자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지금 이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았다.놀랍도록 불쾌하고 복잡한 심경이 얼룩진 그의 얼굴은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었다.“퍽!”하현은 남자를 발로 걷어찼고 그대로 나뒹군 남자는 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자 앞으로 굴러갔다.담담한 눈으로 이를 바라보던 하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사람 풀어 줬잖아. 이제 만족해?”주시윤은 이를 보고 통쾌한 마음에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바로 그가 원하던 그림이었다.“이놈이! 그래, 어디 한번 덤벼 봐!”예닐곱 명의 남자들이 서로 눈을 마주 보다가 갑자기 으르렁거리며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우두머리가 저 지경이 되었는데 하현을 가만히 두면 그게 더 비참한 일인 것이다.“찰싹!”“찰싹!”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남자들의 공격에 맞섰다.뺨을 한 대 때렸다.두 번째 놈이 덤벼들자 또 뺨을 한 대 때렸다.덤비는 족족 남자들은 무자비하게 쓰러졌다.의기양양했던 남자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하현을 바라보았다.얼굴은 푸르스름하고 코는 부어올라 주먹코가 되어 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어느새 남자들의 눈에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 차올랐다.눈앞의 남자가 이렇게까지 무서운 상대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수적으로 월등히 우세했던 그들은 실상 그와 맞서 보니 제대로 몸을 놀리지도 못하고 쓰러졌다.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자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하현, 당신 큰 사고 친 거야!”“퍽!”하현은
하현은 고아신이 기절하는 모습을 본 후 최문성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들을 데리고 해양공원으로 와서 마무리를 해 달라고 했다.원래 하현은 동리아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이런 피비린내 나는 일을 동리아에게 맡기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최문성에게 방향을 튼 것이다.얼마 후 주시윤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하현의 뒤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최문성은 방금 기절한 사람이 고아신이라는 걸 알아차렸다.“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최문성의 표정을 살피며 하현이 물었다.최문성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좀 번거롭게 되었는데요. 이 고아신이라는 사람은 금옥클럽 사람이에요.”“금옥클럽은 항성 4대 가문 중 하나인 허 씨 집안 구역이거든요.”최문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참, 확인해 보라는 일은 어떻게 되었어? 강옥연이 정말 끌려간 거야?”하현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최문성은 얼른 대답했다.“맞아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허 씨 집안이 화해의 대화를 하자는 구실로 강옥연을 금옥클럽으로 불러들인 다음 반강제로 끌고 간 거 같아요.”“그럼 강학연은? 그 사람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하현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강학연도 왠지 집법당 사람들한테 끌려간 것 같아. 지금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그와 연락이 안 돼.”“가장 중요한 건 허 씨 가문 사람이 강옥연을 금옥클럽으로 불러들였다는 거야. 정말 흉악한 사람들이야!”“그런데 강학연은 기회주의자예요. 감히 허 씨 가문 사람들에게 미움 살 일을 했을 리가 없는데.”최문성은 어제 일어난 일을 모르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의문스러워했다.“나한테도 아무 언질도 없었거든요.”하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일어섰다.“허 씨 가문이 강 씨 가문을 노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나를 노린 거야!”“가자구. 금옥클럽으로 같이 가 보자구.”“만약 강옥연을 무사히 데려오지 못한다면 앞으로 항성과 도성에서는 아무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