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구천을 부른다면 어떻게 될까?곰곰이 생각한 허민설은 결국 그를 부르지 않기로 결정했다.그녀는 오늘 너무 쉽게 생각했다.너무 방심했고 급했다.그녀는 자신이 대충 경호원들 몇 명쯤 데리고 가면 가볍게 하현을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다.정말 손쉽게 원하는 대로 흘러갈 거라 생각했다.자신의 행동을 되짚어 보던 허민설의 마음속에 스멀스멀 음흉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그녀는 다시 이를 악물었고 뭔가 결심이 선 듯 갑자기 강옥연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강옥연, 오늘 밤 일은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제정신이 아니었어. 술김에 한 폭언이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 용서해 줘!”“금옥루의 배당금에 관해서는 가능한 한 빨리 다시 정산해서 보내줄게.”“그래. 당신 사과, 받아줄게.”강옥연은 일이 더 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그녀는 짜증도 내지 않고 순순히 말했다.“이제 물러가도 돼.”허민설은 강옥연의 콧대 높은 태도에 화가 나서 피를 토할 뻔했지만 죽을힘을 다해 분노를 억누르며 하현과 강옥연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허민설이 등을 보이며 돌아서자 주시윤이 얼른 문을 닫았다.그러고 난 뒤 그는 하현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다가 강옥연 곁으로 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옥연, 오늘 일은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허 씨 가문은 4대 가문 중 하나잖아. 만약 허민설이 주도면밀하게 뭔가를 궁리한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방에 쓸려 버릴 거야.”“그러니까 우리 지금 다 같이 하구천을 찾아가는 게 어때? 가서 일단 사과를 하자구.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고 배상도 좀 더 받아낼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자, 어때?”“그래!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방금 나도 그 말 하려고 했어. 허민설은 항도 하 씨 가문 안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야. 그러니 우리가 이대로 미움을 살 순 없어!”“지금 우리가 이득을 봤다고 해도 앞으로가 더 문제야!”허민설이 있을 때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
이번 식사 자리는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강옥연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는 얼른 계산을 하고 그곳을 떠났다.집안에 보고해야 할 일도 있을 것 같아서 하현은 굳이 그녀를 잡지 않았다.용문 항도 도관 안.책상다리를 한 강학연은 느긋하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맞은편에 앉은 강옥연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강옥연이 모든 세부 사항을 말하고 나자 강학연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잘못 들은 게 아니겠지? 하현이 정말 하구천, 그러니까 항도 하 씨를 거론하며 부르라고 했다는 거야?”강옥연은 곰곰이 지난 일들을 되짚어 보며 말했다.“제대로 들었어요. 당시 하현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재미있군!”강학연이 중얼거리듯 읊조렸다.“하구천이 왔으면 확실히 일이 정리되었을 텐데 왜 허민설은 그를 부르지 못했지?”“하구천은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며 전략을 세우는 사람이야. 그런데 부르지 않았다? 하구천이나 항도 하 씨 가문이 와도 하현이 눈 하나 깜빡할 것 같지 않아서?”강학연은 미간에 주름을 잔뜩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어떤 가능성이든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다.하현은 항성과 도성에서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강학연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이자 강옥연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우리 일단 허 씨 집안에 사람을 보내 좋은 말로 해결해 보는 건 어때요? 아니면 하현의 편에 서서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까요?”“하지만 문제는 집법당이 항도 하 씨 가문 편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하현의 편에 서면 분명 위험해질 수 있어요.”강학연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항성과 도성에는 지금 거대한 폭풍이 기다리고 있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거대한 폭풍 말이야.”“우리 강 씨 집안은 여러 해 동안 용문 항도 지회를 맡아 왔어. 지금까지 내 원칙은 오직 하나, 절대로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야. 절대로.”
허민설의 뒤편으로 항성 S4 중 하나인 허지강이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담담한 표정으로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허민설은 화가 나서 미칠 듯이 씩씩거렸지만 그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왜 그렇게 흥분하는 거냐구?”“자, 생각해 봐. 진홍두, 하수진, 공송연 이 사람들도 그놈한테 당했어.”“당신이 나선 이상 이 정도 당한 건 정상 아니야?”“분하고 억울하면 혼자 또 찾아가서 건들지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내면 되잖아?”“내가 당신한테 여러 번 말했잖아. 우리 허 씨 집안은 무력으로 사람을 혼내는 가문이 아니라고. 때리고 죽이는 건 홍성 쪽에서나 하는 일이야.”“우리는 머리를 써야 해.”“촤랑!”허민설은 허지강이 들고 있던 커피잔을 툭 건드려 땅바닥에 엎어버렸다.“내가 안 갈 수 있었겠어?”“하구천이 이미 나한테 강옥연을 어떻게 처리하라고 암시했고 금옥루는 우리 허 씨 집안 자산인데,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섰겠냐구?”“당신이 나설 거야?”“감히?!”허지강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커피잔을 바라보았다.에르메스에서 일억 이상 써야 받을 수 있는 사은품이었는데 이렇게 깨지다니 그의 마음도 와장창 무너지는 것 같았다.허지강은 고개를 돌려 허민설을 바라보며 말했다.“흥분하지 마. 우리가 하현에게 당하긴 했지만 사실 우리의 태도는 확실히 보여줬잖아. 우리 허 씨 집안은 언제나 하구천 그의 편에 설 것이라는 걸 하구천에게 확실히 보여준 거라구.”“그러니 어찌 보면 좋은 투자를 한 셈이지.”“하구천이 이 일을 알고 우리 허 씨 집안이 쓸모없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우리 허 씨 집안의 충성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거야”허민설은 차갑게 비꼬며 말했다.“당신한테는 그게 괜찮겠지!”“하지만 나한테는?”“하구천이 날 쓸모없는 존재로 생각한다면 날 어떻게 더 높은 자리로 올려 주겠냐고?”“하수진이 없어져서 이제 나한테도 기회가 오는가 싶었는데!”“내가 이렇
허민설의 얼굴빛에 미세한 균열이 보이자 허지강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오른쪽 뺨을 두드리며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허민설. 이제 맹인호를 항성으로 불러들여야 할 때가 왔어.”“그가 이기면 우리 허 씨 집안은 잃어버린 체면을 다시 되찾을 수 있어!”“만약 그가 져서 목숨을 잃는다면 너한테는 고민 하나 줄어드는 셈이 되는 거야.”“일이 어떻게 되든 너한테는 다 좋은 일 아니야?”허민설은 번뜩 눈을 치켜들며 말했다.“설마 하구천이랑...”“쉿!”허지강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검지를 코에 갖다 대었다.“항도 하 씨 가문 하구천이 뭣 때문에 항성 S4를 짓누르려고 하겠어?”“예전의 항성 S4는 이미 하구천에게 제압당한 지 오래야. 사실 따지고 보면 맹인호의 자리를 하민석이 대신하게 된 거지.”“만약 나와 곽영준이 이렇게 어리숙했다면 몇 년 동안 항성 S4가 전부 바뀌지 않았을까?”허민설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맹인호는...”허지강이 허민설의 말을 잘랐다.“맹인호가 우리를 도우러 이곳으로 온다면 우리 편에 설 의향이 있다는 뜻이야.”“만약 맹인호가 오지 않는다면 그도 버려야 할 카드지!”“이 항성은 나와 곽영준이 손을 잡아야만 하구천과 맞설 수 있어, 안 그래?”“그러니까 당신과 곽영준은 누구의 앞잡이로만 살지는 않겠다, 그 뜻이야?”“대장부로 태어나서 어떻게 계속 남의 밑에서만 있을 수 있겠어?”뒤쪽에서 곽영준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문을 밀고 들어왔다.그의 등장에 허민설은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얼른 아닌 척 표정을 바꾸었다.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은 도저히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허지강과 곽영준이 손을 잡는다면 확실히 하구천과 대적할 만하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다음날 이른 아침, 하현은 핸드폰을 검색해 가까운 식당을 찾아 차와 아침 식사를 즐겼다.그와 항성 경찰서와의 약정에 의하면 당분간 그는 항성을 떠날 수 없는 몸이었다.하지만 하현은 이 약정이
”하현, 지금 해양공원 바깥 주차장에 있어요!”주시윤의 목소리에는 끝 모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컨테이너 뒤에 숨어 있는데 사람들이 날 찾으려고 돌아다니고 있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어요...”“하지만 강옥연은 이미 끌려갔어요!”“어서 좀 와 주세요...”“알았어요. 기다리고 있어요. 곧 갈 테니까.”하현은 서둘러 그 자리를 일어섰다.종업원에게 지폐 몇 장을 뿌리치듯 던져주고 계산을 한 후 택시를 불러 바람처럼 항성 해양공원으로 향했다.하현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길모퉁이의 어두운 구석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며 무전기를 입에 갖다 대고 말했다.“목표물, 적중!”...십여 분 만에 하현은 해양공원 주차장 입구에 도착해 택시 요금을 지불한 후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하현은 얼른 구석진 곳을 찾았다.양복을 입은 몇 명의 남자가 하나같이 시가를 물고 한 남자를 구석에 몰아넣고 있었다.양복 입을 남자들은 모두 야구 방망이와 쇠 파이프를 손에 들고 있었고 위협적으로 휘두르는 방망이질에 구석에 몰린 남자는 완전히 겁에 질려 울부짖었다.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지프 랭글러 보닛 위에는 달라붙는 옷을 입은 한 여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구경하듯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여자는 아주 매끈한 몸매에도 볼륨감이 살아있는 육감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그러나 어느 저격수 못지않은 살벌한 표정에, 손에는 총을 들고 있었다.그녀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주 능숙하게 총을 다루었다.하현이 걸어오는 것을 본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놀라지도 않고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으나 눈빛은 예리한 칼날처럼 매섭고 험악했다.그녀가 들고 있는 총은 어느새 하현의 이마에 점을 찍고 있었다.여차하면 하현의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여자의 오만하고 거침없는 행동에 하현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정말 이 사람들은 하현이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걸까?하현이 여기에 나타난 이유는 누가
호통치는 듯한 누군가의 말소리에 예닐곱 명의 남자들은 모두 돌아서서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자는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띠우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하현이 나선 것에 대해 그녀는 매우 흡족한 듯했다.“이 자식아! 우리 지금 영화 찍고 있는 거 몰라?”제일 앞에 선 남자는 사나운 눈빛으로 하현을 쏘아보다가 냉소를 띠며 내뱉었다.“꺼져!”“그리고 오늘 본 일은 잊어버려!”“그렇지 않으면 다음 주인공은 바로 네놈이 될 테니까! 명심해!”“미안한데 난 이대로는 못 갈 것 같은데.”하현이 느물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금 두들겨 맞고 있는 그 사람, 나랑 아는 사이거든. 나한테 구조 요청도 했으니 내가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아니면 당신들이 내 체면을 좀 봐서 그 사람을 풀어 주든가, 응?”하현은 심드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의 말에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사나운 미소를 입가에 드리우며 말했다.“인마, 너 지금 죽으려고 환장했어?”“우리가 누군지 알아?”“체면을 봐 달라고?”“네가 무슨 체면이 있어서 우리한테 봐 달라 말라야?”“지금 당장 썩 꺼져!”“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바로 저세상 구경시켜 줄 테니까!”말을 마치며 양복을 입은 남자가 손을 흔들었고 그의 부하들이 목을 좌우로 꺾더니 비열하게 웃으며 다가왔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한 걸음 내디뎠고 순식간에 그 양복 입은 남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하현의 동작이 너무 빨라서 양복 입은 남자는 미처 손쓸 틈도 없었다.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자는 순간 얼굴빛이 일그러지며 소리쳤다.“조심해!”양복 입은 남자는 겨우 정신을 다잡았고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남자가 아무리 빠르게 반응하려고 해도 하현을 이길 수는 없었다.순간 남자의 마음속에 서늘한 느낌이 밀려왔다.하현의 오른손이 이미 자신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자식아..
”그래, 내가 풀어 주지.”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띠며 오른손을 세차게 휘둘러 남자를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풀썩!”남자는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순간 그는 피를 토하며 숨을 헐떡거렸다.그의 얼굴에 한차례 절망의 빛이 스쳐 지나더니 이제는 숨이 넘어갈 듯 입을 크게 벌리며 몇 번을 꺽꺽대었다.마치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아무리 입을 벌려도 숨을 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남자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지금 이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았다.놀랍도록 불쾌하고 복잡한 심경이 얼룩진 그의 얼굴은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었다.“퍽!”하현은 남자를 발로 걷어찼고 그대로 나뒹군 남자는 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자 앞으로 굴러갔다.담담한 눈으로 이를 바라보던 하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사람 풀어 줬잖아. 이제 만족해?”주시윤은 이를 보고 통쾌한 마음에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바로 그가 원하던 그림이었다.“이놈이! 그래, 어디 한번 덤벼 봐!”예닐곱 명의 남자들이 서로 눈을 마주 보다가 갑자기 으르렁거리며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우두머리가 저 지경이 되었는데 하현을 가만히 두면 그게 더 비참한 일인 것이다.“찰싹!”“찰싹!”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남자들의 공격에 맞섰다.뺨을 한 대 때렸다.두 번째 놈이 덤벼들자 또 뺨을 한 대 때렸다.덤비는 족족 남자들은 무자비하게 쓰러졌다.의기양양했던 남자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하현을 바라보았다.얼굴은 푸르스름하고 코는 부어올라 주먹코가 되어 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어느새 남자들의 눈에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 차올랐다.눈앞의 남자가 이렇게까지 무서운 상대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수적으로 월등히 우세했던 그들은 실상 그와 맞서 보니 제대로 몸을 놀리지도 못하고 쓰러졌다.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자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하현, 당신 큰 사고 친 거야!”“퍽!”하현은
하현은 고아신이 기절하는 모습을 본 후 최문성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들을 데리고 해양공원으로 와서 마무리를 해 달라고 했다.원래 하현은 동리아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이런 피비린내 나는 일을 동리아에게 맡기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최문성에게 방향을 튼 것이다.얼마 후 주시윤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하현의 뒤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최문성은 방금 기절한 사람이 고아신이라는 걸 알아차렸다.“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최문성의 표정을 살피며 하현이 물었다.최문성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좀 번거롭게 되었는데요. 이 고아신이라는 사람은 금옥클럽 사람이에요.”“금옥클럽은 항성 4대 가문 중 하나인 허 씨 집안 구역이거든요.”최문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참, 확인해 보라는 일은 어떻게 되었어? 강옥연이 정말 끌려간 거야?”하현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최문성은 얼른 대답했다.“맞아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허 씨 집안이 화해의 대화를 하자는 구실로 강옥연을 금옥클럽으로 불러들인 다음 반강제로 끌고 간 거 같아요.”“그럼 강학연은? 그 사람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하현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강학연도 왠지 집법당 사람들한테 끌려간 것 같아. 지금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그와 연락이 안 돼.”“가장 중요한 건 허 씨 가문 사람이 강옥연을 금옥클럽으로 불러들였다는 거야. 정말 흉악한 사람들이야!”“그런데 강학연은 기회주의자예요. 감히 허 씨 가문 사람들에게 미움 살 일을 했을 리가 없는데.”최문성은 어제 일어난 일을 모르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의문스러워했다.“나한테도 아무 언질도 없었거든요.”하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일어섰다.“허 씨 가문이 강 씨 가문을 노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나를 노린 거야!”“가자구. 금옥클럽으로 같이 가 보자구.”“만약 강옥연을 무사히 데려오지 못한다면 앞으로 항성과 도성에서는 아무
노부인의 말에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웃는 듯 마는 듯한 눈빛으로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양 씨 가문 어른들도 냉랭한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그들은 노부인의 위세 아래 양유훤과 찌질한 남자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심산이었다.만약 양유훤과 하현이 아무 성과 없이 이대로 끝난다면 양유훤은 순순히 여수혁에게 시집가게 될 테니 그들에게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납품권을 해결하든지, 아니면 시집을 가든지 하라구요?”하현의 얼굴에 빈정거림이 더해졌고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양 씨 가문 사람들에게 떨어졌다.잠시 후 하현은 드디어 양 씨 가문 사람들의 속셈을 알아차렸다.오늘 아침에 양호남이 와서 양유훤을 난처하게 한 것은 스스로가 결정한 일이 아니라 노부인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다.“할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저에게 3일간의 시간을 주세요. 그동안 제가 방법을 찾아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쨌든 그녀는 이대로 여수혁에게 시집을 갈 수는 없었다.“3일의 시간을 달라고?”양호남은 양유훤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우리 집안이 당면한 일이 매우 촉박하다는 건 알고 있지?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사흘 후면 무슨 사단이 나도 날 거야. 대응하기 늦어!”“당신이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차치하고 말이야.”“할머니, 양유훤이 그렇게 능력이 있다면 지금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아니면 지금 깨끗하게 시집가는 걸로 결론지으면 되구요. 늦으면 일만 더 커져요!”이쯤 되자 양호남은 매서운 눈빛으로 양유훤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양호남!”양유훤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항성과 도성에서 자신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벌써 상어 밥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여기는 양 씨 가문이었다.“음, 그래. 호남이 말이 맞아. 우리가 구매한 상품들은 애초에 원가를 절약하기 위해 미리 구
”규율이요?”“양 씨 가문의 규율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설마 왕법 위에 군림할 수 있겠습니까?”하현은 노부인 앞에서 전혀 체면을 봐주는 것 없이 사실을 까발렸다.“더 이상 쓸데없는 말 다 필요없고 제가 말씀드릴 것은 이것뿐입니다.”“제가 여수혁의 얼굴을 때렸고 여수혁의 손도 부러뜨렸습니다.”“그러니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양호남은 이것을 빌미삼아 양유훤을 협박해 여수혁에게 시집보내려는 수작을 벌이고 있습니다. 양유훤을 집안에서 내쫓은 다음 양 씨 가문을 차지하고 싶은 그의 욕망 때문이죠!”여기까지 말한 하현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양호남을 흘겨보며 말했다.“양호남, 당신이 오늘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으로 할퀴려고 한 게 이런 목적 아니었어?”“무, 무슨 목적? 목적은 무슨!”“우리 할머니가 당신 같은 얼뜨기가 한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해?”“난 오로지 우리 집안의 이익을 위해 일했을 뿐이야!”양호남은 정의로 똘똘 뭉친 남자처럼 울부짖으며 자칫 까발려진 자신의 욕망을 숨기려 애썼다.“이 모든 게 다 우리 집안을 위해서라고! 어떤 이기적인 욕심도 없었어!”“내가 조금이라도 그런 이기적인 욕심을 품었다면 천벌을 받을 거야!”그러나 이 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심장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에 앞장서서 양유훤을 옥죈 것은 바로 두 가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첫 번째는 항성과 도성에서 돌아온 양유훤이 그에게 엄청난 위협감을 준 나머지 부상에서 회복된 양제명이 양유훤을 강하게 지지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두 번째 양유훤을 여수혁에게 시집보내는 데 성공하면 페낭 무맹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분과 이치에 어긋나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큰집의 자산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이렇게 되면 양 씨 가문은 훗날 양호남의 손에 넘어갈 것임이 분명하다!그는 페낭을 넘어 남양에서 가장 유력한 거물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양호남의 말 한마디에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이번 일이 우리 가문의 이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와 오빠는 초조함을 금할 수 없었어요.”“그래서 아침 일찍 양유훤을 찾아가 페낭 무맹에 얼른 사과나 해명이라도 하라고 했어요...”“우리 사업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다소 과격한 행동이 있을 수밖에 없었구요. 하지만 우린 양유훤에게 따끔하게 교훈을 주고 싶었어요!”“정말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 가문을 위해서 한 일이에요!”“그 결과 지금 어떻게 되었죠? 양유훤은 남자를 앞세우고 힘으로 밀어붙여 우릴 때렸어요!”“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가문 어른들도 함부로 때렸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완전히 우리 가문 체면을 무시한 거죠!”이에 콧등과 얼굴이 푸르덩덩하게 부은 나이 지긋한 두 남자가 얼른 나와 고개를 끄덕이며 하현이 함부로 폭력을 행사했다고 일러바쳤다.양유훤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할머니, 그게 아니에요...”“망측한 것!”노부인은 양유훤에게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로 양유훤의 허벅지를 세게 후려쳤다.“양유훤, 지난 세월 동안 넌 가족과 가문의 이익을 위해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예전에는 황실에 시집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집을 뛰쳐나가 우리 가문에 막대한 해를 끼치더니!”“이제는 얼뜨기 외지인 남자를 감싸려고 페낭 무맹한테 미움을 사?”“심지어 저 남자한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을 때리라고 했어?”“양유훤, 아주 간이 부었구나!”자신의 할머니가 내려치는 것이라 양유훤은 감히 피하지도 못하고 오롯이 지팡이를 맞으며 몸을 비틀거렸다.하현은 이를 보고 싸늘해진 눈빛으로 양유훤을 붙잡았고 노부인의 지팡이를 잡고 뿌리쳤다.“노부인, 어떻게 한쪽 말만 믿고 이러십니까?”“제가 양호남을 때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그들이 제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양유훤을 끌고 가 여수혁과 억지로 결혼을 시키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돼지우리에 가두려고 했어요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