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카이 세이이치로가 결연한 의지로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옆에 납작하게 몸을 숙이고 있는 섬나라 장도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제아무리 큰 뒷배를 가졌어도, 제아무리 대단한 능력이 있더라도 우린 끝까지 그에게 죄를 물을 거예요!”“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할 겁니다!”“하현은 죽어야 마땅해요!”“무카이 집안, 섬나라 음류의 영웅이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 않을 거예요!”무카이 세이이치로의 눈에 무카이 나오토는 분명 영웅으로 비친 듯했다.그의 말에 빈소 양쪽에 무릎을 꿇고 있던 섬나라 사람들이 하나같이 분노하며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복수할 거라는 글귀가 새겨진 흰 두건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그들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하현을 찾아내 당장 도륙 내지 않고는 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하현에 대한 섬나라 사람들의 깊은 증오를 몸소 눈으로 목격하고 있자니 진홍두의 마음속에 묵은 체증이 조금은 내려가는 것 같았다.이번 일로 홍성 쪽 사람들이 호되게 당했을 뿐만 아니라 라이온 킹도 죽었으니 진홍두 입장에서도 큰 손실을 입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홍성 쪽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고수가 없어서 조용히 처리했을 뿐이었다.진홍두는 원래 억울한 마음을 삼켜 버리려고 했다.그러나 지금 섬나라 사람들이 분기탱천하는 모습을 보니 하현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진홍두가 지금 하현을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섬나라 사람들이 하현을 어떻게 죽이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결국 이 일은 무카이 가문, 섬나라 음류, 양국의 외교와도 얽혀 있는 문제였다.어젯밤에는 하현이 전화 몇 통으로 미꾸라지처럼 사건에서 쏙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간단히 되지 않을 거라고 진홍두는 믿었다.하현, 기다려. 당신 목에 칼끝이 향할 때까지.마음속에 이런 그림이 그려지자 진홍두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심호흡을
무카이 세이이치로는 서류를 받아들고 유심히 살펴본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돌아가서 총교관에게 알려주세요. 우리 무카이 가문은 홍성을 영원한 친구로 삼겠다고!”“저희 아버지가 지금은 상심한 나머지 위층에서 쉬고 계셔요. 안 그랬으면 여기 와서 직접 감사 인사를 드렸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하지만 이 일이 마무리가 되면 꼭 찾아뵐 거예요!”진홍두는 고개를 약간 끄덕인 후 조심스럽게 무카이 세이이치로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제가 이렇게 온 것은 홍성뿐만 아니라 항도 하 씨 가문의 조의도 전달하려고 왔어요.”“하구천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 좀 어려운 일이 있다고 했는데 만약 섬나라 음류 쪽이 그분을 친구로 삼길 원한다면”“그렇다면 섬나라 음류가 항성과 도성에서 하는 모든 일엔 반드시 청신호가 켜질 거예요.”항도 하 씨 가문이라는 말을 듣고 무카이 세이이치로의 눈이 번쩍 뜨였다.그는 진홍두의 눈을 깊이 마주 보며 말했다.“하구천에게 꼭 전해주세요.”“우리 섬나라 음류는 항도 하 씨 가문이야말로 항성과 도성의 진정한 주인이라 생각한다는 것을요.”“그리고 하구천이야말로 항도 하 씨 가문의 주인이시죠!”진홍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하구천의 능력에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냈다.겉으로 보기에는 홍성의 땅을 무카이 집안에 헌납함으로써 홍성은 땅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카이 가문과 섬나라 음류의 분노를 지렛대 삼아 결국 하현에게 더 가까이 칼끝을 들이댄 것이다.섬나라 음류와 돈독한 관계를 맺은 것은 덤이었다.이 돈독한 연줄은 훗날 하구천이 항도 하 씨 가문 후계자 자리에 앉을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무카이 가문과 진홍두 일행이 흐뭇한 미소를 주고받고 있을 때 갑자기 빈소 밖에서 자동차 굉음이 들렸다.“퍽퍽!”굉음을 듣고 달려 나온 섬나라 청년 몇 명은 도요타 차량의 거친 진격에 이미 몸이 날아가 버렸다.섬나라 사람들도 횡포하긴 어디 뒤지는 편이 아니었으나 지금 눈앞의 거친 소용돌
”하현!?”그 이름을 들은 섬나라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놈이 바로 무카이 나오토를 죽인 그 하현이었던 거로군!넘어져 있던 섬나라 사람들은 모두 하나둘 일어나 장도를 뽑아 들고는 순식간에 그를 포위했다.장내는 날카로운 빛을 뿜어내는 칼날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하현!”무카이 세이이치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매서운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이 내 동생을 죽인 장본인이로군!”“감히 내 동생 빈소에 겁도 없이 쳐들어오다니!”“그것도 차를 몰고?”“이렇게 겁 없이 낳아준 네 아버지를 욕해!”“우리는 절대 널 용서할 수 없어!”“네가 감히 우리 섬나라 사람들을 우습게 본다는 거지?”“믿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칼을 한 번 휘두른다면 날고 긴다는 동정감이 와도 내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거야!”무카이 세이이치로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그가 두 눈 부릅뜨고 있는데 감히 겁도 없이 찾아오다니,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건 남을 업신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대놓고 섬나라 사람들을 무시하는 처사였다.섬나라 사람들은 이런 수모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바로 그 순간 그들은 일제히 칼을 들고 하현을 갈기갈기 찢어 놓으려는 듯 음흉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진홍두도 거들었다.“하현, 당신 정말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군!”“동정감이 당신을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해? 당신은 항성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지!”“사람을 죽이고!”“빈소로 찾아와 고인을 모독하고!”“섬나라 사람들을 무시해?”“당신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하현은 욕설을 퍼붓는 진홍두를 힐끔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무카이 나오토를 죽였다고?”“내가 그를 죽이려고 했다면 어젯밤에 그 자리에서 죽였을 거야!”“내가 그런 놈 때문에 뭐하러 내 손을 더럽히겠어? 그놈이 그럴 자격이라도 된다고 생각해?”말을 하는 동안에도 하현은 발로 사람을 걷어차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이 여자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무카이 세이이치로가 의구심을 품는 모습을 본 진홍두가 얼른 한 걸음 앞으로 나와 하현에게 소리쳤다.“하현, 지금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당신이 동 씨 집안과 손을 잡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동정감은 항성 최고 책임자잖아. CCTV 하나쯤 조작하는 거 일도 아니지, 안 그래?”“잘 들어. 당신이 증거라고 말하는 것들, 무카이 세이이치로 선생님 눈에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보일 뿐이야. 절대 당신 말에 속지 않을 거라구!”“내 말 못 믿겠으면 무카이 루미코한테 물어봐. 직접 눈으로 본 증거들을 믿는지 안 믿는지 물어보라고!”“설마 우리 홍성이 이런 일에 귀한 섬나라 손님을 속이겠어?”진홍두의 말에 무카이 세이이치로는 잠자코 무카이 루미코를 힐끔 쳐다보았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이 어떻게 루미코를 협박했는지 모르겠어!”“하지만 우리 무카이 가문과 섬나라 음류는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거든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조작할 수 있는 그런 동영상들, 우린 믿지 않아!”“증거가 없다면 당신은 오늘 밤 내 동생 관 밑에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빌어야 할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무카이 세이이치로는 손을 흔들었다.갑자기 수십 명의 섬나라 사람들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앞으로 몰려왔다.하나같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하현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하현은 터질 듯한 그들의 화난 얼굴을 당당히 되받아치며 섬나라 무사들의 칼자루를 간단히 물리치고 나서는 담담하게 말했다.“무카이 세이이치로, 오늘 밤 루미코를 여기에 데리고 온 것은 당신들을 위협하려는 것도 두려움에 떨게 하려는 것도 아니야.”“무카이 나오토의 죽음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알려주려고 온 거야.”“당신들이 정 나와 싸워 보고 싶다면 다른 핑계를 가져와.”“게다가 오늘 본 동영상이 조작한 것인지 아닌지는 직접 본 무카이 루미코가 가장 잘 알 거야.
무카이 세이이치로의 말을 듣고 무카이 루미코는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이제 알겠어!”“하현이 날 여기로 데려와서 저 동영상을 보여준 이유는 자신의 억울함을 씻기 위해서였어!”“사실 진홍두가 이미 우리에게 진실을 말해줬어.”“하현, 하현이 범인이야!”진홍두가 항성 외곽의 땅을 주겠다는 얘기를 들은 무카이 루미코는 섬나라 음류가 드디어 항성에 발을 붙일 기회가 왔다는 것을 영민하게 깨달았다.이런 상황에서 진실이 뭐가 중요하겠는가?무카이 세이이치로가 전하려는 바도 아마 이것일 것이다.하현은 무카이 루미코를 한심한 듯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루미코, 정말 이렇게 양심도 없는 짓 계속 할 거야?”“꼭 이렇게 누명을 씌워야겠어?”무카이 루미코는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무카이 세이이치로는 심호흡을 하고 잠시 눈을 껌뻑거린 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서 하현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하 씨, 양심도 없는 짓이라니? 우린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어!”“누명을 씌우는 것도 아니야!”“이 일을 저지른 사람은 당신이야!”“당신이 범인이라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지!”“오늘 밤, 난 내 동생을 추모하는 데 집중하고 싶어!”무카이 세이이치로의 말을 듣고 그의 일행들은 다시 기고만장해진 얼굴이 되었다.진홍두는 더욱 차가운 얼굴로 변했다.그녀가 계약서를 꺼내기만 하면 하현이 정말로 무카이 나오토를 죽였든 말든 그는 반드시 누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하현은 섬나라 사람들을 차갑게 바라보다가 마침내 무카이 세이이치로에게 시선을 돌린 뒤 당당하게 말했다.“이제야 욕망의 죄가 무엇인지 알겠어!”“사람이 아주 재물에 눈이 멀어 돈에 목숨을 걸었군!”무카이 세이이치로와 무카이 루미코 둘 다 바보가 아니다.무카이 나오토를 죽인 사람이 하현이 아니라는 것쯤은 분명히 안다.하현에게는 그럴 시간도, 동기도,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진홍두가 그들에게
개?정말 할 말이 없군!죽여 버려!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말하는 하현을 보고 섬나라 사람들은 모두 분노가 들끓었다!눈앞의 이 대하인은 독 안에 든 쥐처럼 섬나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그런데 감히 이렇게 건방지고 오만방자한 말을 하다니!죽는 게 어떤 건지 도통 모르는 게 분명하다!하현의 기세등등한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섬나라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하마터면 지금 포위된 사람이 자신들이라 믿을 뻔했다.몇몇 섬나라 무사는 도저히 그 분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뺨을 때렸다.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도저히 분간을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유카타를 입은 섬나라 미녀들은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껏 무시하는 눈길을 보냈다.그녀들은 무카이 가문을 따라 여러 번 출정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제멋대로 날뛰는 사람은 처음 봤다.자신이 죽을 목숨인 줄도 모르고 이렇게 날뛰다니 미친 게 아니고는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무카이 세이이치로는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하현을 죽이고 싶어 하는 열망이 가득 찼다.자신도 거물이라면 거물이었다.친동생을 죽이고 친여동생을 해치려 하는 이런 상황에서 하현을 죽이지 않고는 그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그러나 하현은 일찌감치 그의 역량을 꿰뚫어 본 듯 조금도 위축되지도 않고 거침도 없었다.이것이 무카이 세이이치로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이는 무카이 세이이치로뿐만 아니라 무카이 가문 전체를 얕잡아보고 아울러 섬나라 음류까지도 얕잡아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눈앞의 대하인은 어디서 저런 저력과 용기가 나서 눈도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당당하게 저런 말을 하는 걸까?무카이 세이이치로는 심호흡을 하고 하현을 바라보며 측은한 듯 말했다.“원래 난 당신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어. 당신이 항성 법에 의해 적당히 처벌받고 감옥에 가며 되는 거였어.”“그런데 문득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그냥 당신을 해치우는 게 깔끔하겠어!”하현은 왼손 집게손가락을 내
하현이 직접 나서기도 전에 도요타 차량의 문이 언제 열렸는지 갑자기 최문성이 튀어나왔다.그는 손에는 당도가 칼집을 나와 희번덕거리며 바로 단칼에 쓸어버렸다.“푹!”“솨솩!”칼날이 스쳐 지나는 곳마다 섬나라 무사들이 묵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며 땅바닥에 쓰러졌다.최문성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한 걸음 내디디며 칼을 휘둘렀다.한 번에 한 명씩, 길을 막고 서 있던 섬나라 무사들이 그대로 볏짚단처럼 나뒹굴었다.“병왕급인가?”무카이 세이이치로는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는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문성을 보고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바로 그가 하현을 경호하는 병왕임을 알아보고 무카이 세이이치로는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진홍두도 깜짝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중요한 순간에 최문성이 나타나 하현의 앞을 비호하며 섬나라 무사들을 처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최 씨 가문 사람들은 하현과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인가?“솨솩!”바로 그때 최문성의 뒤편에서 섬나라 무사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그러나 섬나라 무사가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이 침착하게 말했다.“앞으로 세 걸음, 칼을 가르며 뒤를 쳐!”한쪽으로 비켜서려던 최문성은 하현의 지시에 따라 반사적으로 칼을 휘두르며 뒤로 돌아보았다.“푹!”어둠 속에 숨어 있던 섬나라 무사는 가슴을 쥐어짜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최문성에게 칼을 들이대던 섬나라 무사의 미간에 붉은 핏줄이 강을 이루더니 결국 이 무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최후를 맞았다.“왼쪽 세 걸음, 세로로 가르며 후방 가격!”하현은 여전히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최문성은 잠시 상황을 인지한 후 하현이 지시한 대로 칼을 휘둘렀다.“푸푹푹!”최문성의 칼놀림을 본 섬나라 무사들은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널브러졌다.“세 걸음 뒤, 가로로 휘둘러!”“위로 뛰어올라, 칼을 휘둘러!”“땅바닥에
하지만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고 손이 덜덜 떨릴 뿐 진홍두는 감히 어떤 명령도 내릴 수가 없었다.하현의 솜씨에 놀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떨리는 손을 도무지 제어할 수가 없었다.“움직임이 너무 느리잖아. 좀 더 빨리 움직였어야지. 모두들 저녁 안 먹었어?”하현은 진홍두가 그런 표정을 짓건 말건 무시하고 장중으로 시선을 돌려 비아냥거렸다.“솨솩솩!”이때 양측의 격전은 이미 과열될 대로 과열되었다.최문성도 왼손에 작은 상처를 입었다.섬나라 무사들은 하현과 최문성을 포위했다.섬나라 장도가 사방에서 퍼런빛을 뿜어내며 반짝거렸다.칼날에 살의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언제든 최문성을 향해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공포에 질렸던 진홍두의 얼굴에도 서서히 냉소가 떠올랐고 무카이 세이이치로도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무카이 루미코도 이번에는 뭔가 본때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하는 눈빛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발도술!”하현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최문성의 눈이 번쩍였다.순간 그는 칼을 칼집에 넣었다.그런 다음 칼집에 들어간 칼을 세차게 뽑아 들었다.온 하늘에 서슬 퍼런 칼날이 스쳐 지나갔고 장내는 칼날이 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그 찰나 같은 순간이 지나자 섬나라 무사들의 장도가 최문성의 칼에 두 동강이 났다.최문성은 다시 칼을 거두어 칼집에 넣었다.“푹!”방금까지 멀쩡히 서 있던 십여 명의 섬나라 무사들은 목구멍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그들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바람 앞에 촛불마냥 피식피식 쓰러졌다.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섬나라 무사들이 땅에 주저앉아 피바다를 만들었다.최문성은 비록 왼손에 조그만 상처가 났지만 그의 몸에는 기세등등한 기운이 가득 뿜어져 나왔다.살아난 사람이 없는 거야?모두 다 쓰러진 거야?진짜 병왕급이야!진홍두와 홍성 정예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덜덜 떨고 있었다.최문성이 저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