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사람이 계속해서 싸울 경우, 안씨 집안도 같이 끌려갈 수도 있다. 그것은 안씨 집안에게 불필요한 일이었고, 오늘 수정의 목표는 경매 행사였지, 다른 것이 아니었다.“수정 씨,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시훈은 다급해졌다. 그녀를 위해서 따귀도 한 대 맞았는데, 그렇게 제멋대로 가버리면 어떡하나.시훈은 수정을 따라가면서 뒤를 돌아보며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나동하 당신은 이제 끝이에요. 두고 봐요, 내일 우리 박씨 집안의 돈을 모조리 이체할 테니. 당신도 은행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될 거예요!”동하는 시훈에게 눈길 한 번도 주지 않았고, 옆에 있던 하현을 힐끗 쳐다보며 탄식할 뿐이었다. “대표님, 제가 순간 욱해서 손이 나갔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하현은 웃으며 말했다. “면전에서 바보라고 욕을 먹고도 손이 안 나간다면, 나는 나동하 당신을 정말 하찮게 봤을 거예요.”“갑시다, 저희도 들어가서 경매장 구경이나 하죠. 내 개인 계좌 자금에 관해서는, 그쪽 은행에서 계속 맡아주기를 부탁합니다.”이 말을 남기고 하현은 느긋하게 경매장 안으로 들어갔다.동하는 어안이 벙벙하더니, 곧이어 기쁨이 흘러 넘치는 얼굴을 보였다. 보아하니 오늘 자기는 실수하지 않았고, 하현 대표도 화나지 않은 듯했다.......구르미 경매 행사의 경매장은 축구장만 한 크기로 매우 넓었다. 이 시각, 빈 좌석은 보이지 않았고, 여기에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보통 신분이 아니었다. 물론, 서울의 상류층 외에도 수많은 도시에서 부자들이 모여들었다. 구르미 경매 행사는 매우 유명했는데, 매년 독특한 물건들은 가져오고는 해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슬기는 여기 말고 동하의 VIP 대기실에 앉아있었다.진우, 은아와 세리는 경매장 맨 앞줄에 앉았다. 확실히 진우의 신분이 보통이 아니었다. 안 그랬으면, 그들은 그 자리에 앉지를 못했을 것이다.한편, 수정과 시훈 두 사람도 맨 앞줄에 앉았다. 하지만 이것은 오롯이 수정의 신분 때문이었다. 시훈의 신분으로는 아
수정은 냉미녀였고 은아는 온미녀였다. 그 두 여자는 마치 아름다운 꽃 두 송이처럼 그곳에 함께 앉아 있었다. 마치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처럼, 그 장면은 눈을 매우 즐겁게 했다.하지만 하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에 앉았고, 그런 희귀한 순식간에 광경을 망쳐버렸다.그 순간, 진우와 시훈 둘 다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이 데릴사위가 여긴 또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종업원들, 여기 경매 행사는 왜 이래요? 초대장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경매장에 들여보낼 수 있습니까? 계속해서 경매장에 들어오고, 이곳의 규정을 어기는 거 아닌가요?" 진우가 괴상한 얼굴로 물었다."맞아요, 어떤 사람은 데릴사위가 되고 나면 우리 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그저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몰라요!" 시훈이 차갑게 말했다.“그러니까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그쪽 주최측에서 설명을 안 해주시나요?”“개나 소나 이 경매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면, 이 구르미 경매 행사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뒤에 있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맞장구 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그 순간 하현이 정말 꼴 보기 싫었다. 다른 곳에 가서 앉아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할 텐데, 문제는 두 미녀 중간에 앉아서 잘난 척이나 하다니. 누가 그러라고 한 건가?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우를 힐끗 쳐다본 후,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하하하, 또 주머니나 뒤적거리고, 당신이 무슨 마술이라도 할 줄 알아요? 아까도 아무것도 꺼내지 못했으면서, 지금 당신…” 진우는 큰소리로 하하 웃었다. 그러나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멈췄다.조금 전에는 하현에게 정말 초대장이 없었는데, 나갔을 때 슬기가 가서 그의 겉옷을 챙겨왔다.이 순간, 하현은 손에 초대장을 쥐고 있더니 진우의 얼굴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그런 다음, 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제 당신의 그 더러운 입을 다물 수 있겠죠?”“당신…” 진우는 화를 냈다. “어딘가
곧이어, 진우는 재빠르게 세리에게 문자를 보냈다.세리는 핸드폰을 힐끗 보더니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일어서서 웃으며 말했다. “은아야, 이 머저리 옆에 앉지 마, 거지 냄새를 너한테 옮길라. 오늘 저녁에는 너도 운이 있어야 하니까 나랑 자리를 바꾸자. 이따가 서 대표님이 하엔 그룹의 고위 인사를 너에게 소개해준대!”은아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됐어, 그냥 여기 앉아있을래.”이 순간, 은아는 조금 민망했지만, 이상하게도 하현 옆에 앉아있으니 아까 진우랑 있을 때보다도 마음이 훨씬 편안했다.이런 마음의 편안함은 돈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집에 돌아가서 작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듯한 그런 편안함이었다.은아 자신도 왜 이런 느낌을 받았는지 몰랐지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세리의 제안을 거절했다.세리는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 일은 너무 적나라하게 벌이면 안 됐기에 별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어 하현을 째려보며 말했다. “거기 머저리, 당신한테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은아의 청춘을 허비하지 말아요. 사람이 주제 파악도 할 줄 알아야지, 자신의 물건이 아니면 아무리 무리하게 요구해도 소용없어요! 익지 않은 채 억지로 비틀어 딴 참외는 달지 않다고요!”하현이 웃었다. “달든 안 달든 상관없어요, 안 달면 설탕을 찍어서 먹으면 되죠! 제발 쓸데없는 참견하지 말아 줄래요? 우리 부부 사이의 일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나는 도대체 은아 남편이에요, 당신 남편이에요? 어이가 없네요!”두 사람이 싸우는 걸 듣자, 은아는 인상 쓰며 말했다. “너희 둘이 그만 싸우면 안 돼? 세리야, 결혼은 내 일이야. 요즘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이혼하고 싶지 않아…”이 말을 하자, 세리만 낯빛이 변했을 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진우까지 안색이 어두워졌다.만약 은아가 이혼을 안 한다면, 그에게는 기회가 없는 것 아닌가?“하현, 당신… 오늘 밤에 집에 올 거야?” 은아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
“여보, 보아하니 오늘 밤에 이 사기꾼이랑 같이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하엔 그룹 대표도 모르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어? 차라리 내일 내 동창 슬기를 만나게 해줄게, 어떤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 하현은 은아에게 말했다.“진짜? 그러면 너무 좋지.” 은아는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슬기는 하엔 그룹 대표의 비서인데, 그녀의 연줄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떠한 고위 인사를 만나는 것보다도 쓸모가 있었다.진우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세리는 이미 살며시 고개를 젓고 있었으며 그에게 말을 이어가지 말라고 암시했다. 이 상황 속에서 그는 명백히도 말실수를 했으니, 무어라 더 말해도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이 시각, 경매장에 있는 사람들은 갈수록 더 늘어났고, 결국 천 명 가까이 되었다. 구르미 경매 행사는 실로 인기가 많았다.잠시 후, 경매가 시작되었다.앞서 나온 몇몇 경매품들은 고전적인 시계, 진주와 보석 등등의 물건이었다. 비록 전부 보기 드문 물건이었지만, 사람들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이 물건들의 낙찰가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골고루 있었고, 그 값은 상당히 비쌌지만 사람을 놀랍게 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나 다음 경매품이 나오자, 현장에 있던 여자들은 참지 못하고 탄성을 내뱉었고, 그녀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그것은 바로 아주 큰 다이아몬드 반지였는데, 눈으로만 대충 봤을 때 최소 12, 13캐럿 정도 되어 보였다. 게다가 그 다이아몬드 반지는 매우 맑고 투명했고, 컷이나 투명도를 봐도 굉장히 훌륭했다.이런 다이아몬드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었고, 지금 이렇게 경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세상에! 이게 바로 전설의 비둘기 알이구나. 당시에 남아프리카에서 발굴한 그 스타 다이아몬드 맞지?”“듣기로는 이 다이아몬드가 유럽의 다이아몬드 대가가 직접 컷한 거라던데. 게다가 다이아몬드를 프러포즈 반지에 박아서, 이 비싼 반지의 이름은 영원한 별이야!”“그럼 이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소리야?
세리는 안색이 확 변했다. 그녀는 진우에게 관심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은아만을 바라보았고, 세리에게는 인정사정 없었다. 이것이 바로 세리 마음속의 영원한 아픔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리는 진우같이 키 크고 잘생긴 돈 많은 남자에게 일찌감치 달려들었을 것이지, 어디 또 은아에게 추천했겠나?“하현 씨, 자기 아내가 갖고 싶은 것도 못 사주는데 여기서 허세 좀 그만 부리면 안 돼요? 보기만 해도 짜증 나요!” 세리는 안색을 계속 바꾸며 차갑게 쏘아붙였다.“하현, 진세리, 둘 다 한 마디씩만 줄이자.” 이 광경을 보니 은아는 머리가 아팠다. 세리는 전부터 하현을 경멸해왔는데, 예전에 하현이 말대꾸를 안 했을 때 세리는 두 마디만 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의 하현은 예전과 확연하게 달라졌고, 세리는 말싸움에서 진 적이 이미 몇 번 되었다...옆에 있던 진우는 웃으며 무어라 말하려고 했다.이때.“100억!”“110억!”“120억!”진우에게 잘난 척할 시간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영원한 별의 가치가 배로 뛰려고 했다.“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진우는 어리둥절했다. 이 여자들은 완전히 미친 거 아닌가? 다이아몬드라는 것은 물론 좋았지만, 고작 보석 하나였는데, 이렇게까지 돈 쓸 일인가?그런데 아까 자신이 그렇게나 떠들어댔는데, 이 다이아 반지를 손에 넣지 못한다면…이 생각을 하자, 진우는 진절머리가 났지만 이를 악물며 말했다. “1… 21억!”“여기 신사분, 저희의 입찰가는 10억입니다. 1억만 추가하신다면 입찰 인정이 안 됩니다.” 여자 경매사가 짧고 간단하게 한 마디 알려줬다.“하하하!”말을 마치자,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구르미 경매장은 대체 어떻게 된 곳인가? 진우의 이 입찰방식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알아차렸다. 이 녀석은 분명 돈을 추가하지 못해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겠나?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집안은 부유하기는 했지만
은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애초에 진우가 그녀를 위해 돈을 이렇게나 많이 꺼내 들었으니, 그녀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계속해서 하현을 비웃자, 은아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비록 하현은 돈이 없었지만, 비록 하현은 데릴사위였지만, 지난 3년 동안 그는 옷을 세탁하고 요리하며 바닥을 쓸고 닦고 정말 뼈 빠지게 일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은아는 처음에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지금 조금씩 그의 좋은 점을 알아가고 있었다.게다가 자기 남편이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바깥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떠들어 대면 망신당하는 것은 은아였다.이 순간, 은아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서 대표님, 이전에 하셨던 말들을 취소하시고 하현에게 사과하시길 바랍니다.”“내가 저 사람한테 사과하라고요?” 진우는 피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저는 다 은아 씨 좋으라고 한 거예요. 은아 씨, 이 녀석은 노력도 안 하고 밖에서 이렇게 건방지게 굴기나 하고, 언젠가 사고 칠 거예요. 저는 선량한 마음으로 저 녀석한테 뭐라 따지지도 않았고, 많아도 말 몇 마디만 꾸짖었어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곧장 저 녀석을 때렸을 거예요!”다른 한쪽에 있던 시훈도 말을 덧붙였다. “맞아, 은아야, 너는 너무 순진해서 사람 마음이 사악하고 위험한 걸 몰라. 이렇게 면전에서 얘기하는 게 오히려 별일 아니지, 정말 무서운 건 문제를 일으켜서 다른 사람의 원한이라도 사게 된다면, 그때 불행해질 사람은 저 녀석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집안 전체도 포함이야. 은아야, 절대 작은 일로 말미암아 큰 피해를 보면 안 돼. 동창이 아니었으면,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거야.”시훈은 진심 어린 얼굴을 내비쳤다.옆에 있던 수정은 시훈을 힐끗 보더니, 그에게 또 가산점을 주었다. 이 남자 은근히 괜찮단 말이지, 예의 바를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자기 동창을 위해 생각했다.반면, 하현은 너무 역겨웠다. 데릴사위인 것은 그렇다 쳐도, 하필이면 주제 파악도 못 해서
은아는 부인하지 않고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은아의 작은 손 위에 얹은 다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남편이 선물해줄게!”은아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잠시 멍하게 있었다. 오히려 수정이 하현을 힐끗 보며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이 녀석은 능력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쳐, 허세도 제대로 부릴 줄 모른다. 이 물건이 하씨 집안 손에 들어가면 누가 가서 되찾아 올 수 있겠나?하현 같은 한낱 데릴사위가 할 수 있겠나?......“아래는 여섯 번째 경매품입니다. 이 물건은 저희 감정사도 진위를 감정하지 못했지만, 보통 물건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앞으로 나와 살펴보시고 입찰할지 결정하셔도 됩니다…”이때, 무대 위에 있던 여자 경매사의 눈앞이 반짝이며 현장 분위기가 좋다는 걸 느낀 후 박수를 치자, 누군가 재빨리 크고 높은 나무 선반을 밀며 무대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사람들의 시선이 나무 선반으로 향했고,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물건인지, 구르미 경매 행사의 감정사조차 눈을 뜰 수가 없었다.곧이어,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림 하나가 선반 위에 나타났는데, 강화 유리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만지지는 못하되 사람들이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그림을 보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차가운 한숨을 들이쉬며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내비쳤다.그러자, 어떤 사람이 실성하여 입을 열었다. “이건 황공망의 ? 어떻게 이럴 수가?!”“뭐? 이게 바로 전설의 10대 중국 명화 중 하나인 ?!”“이 그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벌써 오래되지 않았나? 어떻게 여기에 나타날 수 있지?”“이 그림의 시작가는 얼마인가요?”많은 사람이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현장에 있던 수많은 골동품 거물은 이 순간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경매사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여러분 모두 이 물건을 모르시는 것 같으니 제가 바로 말하겠습니다. 판매자의 신원은 신비스럽고 이 그림의
“물론, 이 그림은 진품이랑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서 훗날에 어떤 사람이 그린 매우 흡사한 복제품인 것 같아. 게다가 현대에, 심지어 만 원의 가치도 없는 온라인으로 구매한 공산품일 지도 몰라…” 시훈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동시에 시훈은 경매사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저기요, 저는 이 구르미 경매를 망치려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는 거니까 개의치 않으시길 바라요.”경매사는 웃으며 말했다. “이 그림은 저희 감정사조차 진위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진품이 오래전에 두 개로 나누어졌군요. 예전에는 정말 진품과 똑같게 모방한 걸 줄 알았는데 감정사도 가짜라고 말하지 못하다니, 감정도 할 필요 없이 가짜라고 증명할 수 있던 거군요.”“이제 누군가는 알겠죠? 이 그림은 만 원도 안 한다는 걸.” 시훈은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방은 순간 탄성으로 가득 찼다.고수다! 분명 고수야!이 젊은이는 의 진위를 분석할 필요 없이 역사를 인용하여 이 그림의 진위를 증명하다니, 이 수법은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보다도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매 시대마다 인재가 태어난다고 하던데, 서울에 이렇게 대단한 골동품 감정 고수가 있을 줄이야!특히 골동품 거래를 즐기는 몇몇 거물은 존경하는 얼굴로 시훈을 바라보았다.그들도 아까 이 의 진위를 고민했는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입찰 경쟁을 할 준비를 했다.하지만 지금 박시훈은 한마디만으로 사람들을 꿈에서 깨우다니, 아주 대단했다. 모두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어쨌거나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아니니, 가품을 사 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역겨울까.시훈의 비웃음을 들으니, 옆에 있던 진우도 조롱하는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데릴사위는 과연 멍청이다. 구르미 경매에서 싼 물건을 주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어찌 됐든 웃음거리밖에 안 됐고, 시훈이 자기를 내세우게 했을 뿐이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
하현의 말을 들은 황보동은 미간에 깊게 팬 주름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하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유심히 보려는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아줌마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아주머니, 앞으로 옷을 입을 때 주의해야 합니다.”“티셔츠를 거꾸로 돌려서 입으면 계속 목을 조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숨쉬기도 힘들고 잠도 푹 잘 수 없습니다!”“그것만 주의하면 십중팔구는 아무 어려움 없이 푹 잘 수 있을 거예요.”“물론 계란은 잘 챙겨 먹어야 합니다.”하현의 말을 듣고 온 장내가 정적에 휩싸였다.모두 어리둥절해져서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잠시 후 엷은 미소가 얼굴에 번지기 시작했다.가만히 눈을 들어 아줌마를 보니 역시나 옷을 거꾸로 입고 있었던 것이다.이렇게 목을 조르고 있으니 당연히 호흡이 곤란해지고 밤에 잠도 잘 수 없었을 것이다.황보동은 이 아줌마보다 하현이 더욱 궁금해졌다.황보동은 일단 아줌마에게 부적을 써서 건네주었고 이윽고 두 번째 손님이 다가왔다.두 번째 손님은 팔십이 넘은 노인이었는데 머리가 좀 헝클어져 있었고 미간에 약간 거뭇거뭇한 빛이 돌았다.몸에는 약취가 풍겨서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황보동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나침반을 꺼내 잠시 바라본 뒤 담담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자네, 이분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말해 보게.”하현은 노인을 유심히 쳐다보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이 노인은 아마 며칠 전에 외출할 때 개똥을 밟았고 실수로 또 시궁창에 빠졌을 겁니다.”“그로부터 며칠 동안 운이 없게도 외출할 때마다 크고 작은 재해를 입었습니다.”“물만 마셔도 이가 시릴 지경일 겁니다.”“요즘 아주 운이 나쁜 일 연속이었을 거예요.”“해결책은 간단합니다.”“집으로 돌아가 목욕재계하고 사흘 밤낮으로 쉬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그리고 앞으로 외출할 때는 하늘만 쳐다보지 마세요.”“척추에 문제가 있으면 의사를 찾아가 물리치료를 해야 합니다. 하늘만 쳐다본다고 병이
”제가 사기꾼일까 봐 집복당의 이름을 빌려 함정에 빠뜨릴 생각이셨던 거죠.”“그래서 이천억이란 금액을 불러 절 놀래켰고요.”“만약 제가 이천억을 낼 수 있다고 한다면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가 되니 안심할 수 있는 거죠.”“만약 제가 이천억을 낼 수 없다면 대사님의 손녀를 구하려고 할 테고요. 혹시라도 제가 구한다면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다는 얘기가 되니 집복당의 새 주인이 되어도 걱정할 일이 없는 거죠.”“한마디로 황보대사님이 매우 고심하고 계시다는 뜻이고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결국 대사님 같은 분은 스스로 최소한의 지켜야 할 도리 같은 게 있는 겁니다. 돈 때문에 그 도리를 저버릴 수는 없었던 거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황보동을 바라보았다.풍수를 보러 온 십여 명의 손님들이 하현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어쩐지 평소 붙임성 좋고 환하게 사람들을 대하던 황보대사가 이상하리만큼 싸늘하게 대하더라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로군!하현의 말을 듣고 황보대사의 의도를 간파한 간민효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미소를 떠올렸다.그녀도 분명 황보동의 인품을 믿고 싶었던 게 틀림없었다.“이보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도 능력이지만 풍수지리사는 입만 번지르르하다고 되는 게 아니야. 진짜 실력이 좋아야 하는 거야.”“만약 자네가 입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라면 남을 살리고 도와주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고 그 입 조심하지 않으면 목숨도 잃을 수가 있어.”황보동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내 일 방해하지 말고 어서 썩 꺼져!”말을 하면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나침반을 내려놓고 붉은 종이를 꺼내 부적을 쓰려고 했다.“제 추측이 맞다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대사님은 이 아줌마가 악습에 깊이 마음을 다쳤다고 판단해 이 부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 차분하게 마음을 진정시키라고 할 겁니다.”나침반을 든 황보동의 손이 살짝 흔들렸다.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하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현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지만 황보동은 냉담한 눈빛으로 얼굴도 들지 않고 매몰차게 말했다.“우리 집복당은 시장에서 파는 허드레 물건이 아니야. 이천억! 다른 가격으로는 안 팔아!”“어때? 살 거야? 말 거야?”차갑고 매마른 말투였다.하현은 눈동자를 살짝 움츠렸다.상대는 분명 뭔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간민효는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황보대사님, 우리 장사꾼들은 신용을 중시합니다.”“정직이 천하를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어제 분명 이백억에 하기로 한 것 같은데요?”“왜 갑자기 이천억이 된 거죠?”“전 이미 유명한 부동산 전문가를 고용해 이곳에 대한 평가를 꼼꼼히 진행했어요.”“이곳은 많아 봐야 백오십억 정도의 값어치가 있어요. 손볼 곳도 너무 많고요.”“어르신이라 아주 후하게 쳐서 이백억을 제시한 거예요.”“제 호의를 무시한 채 이렇게 얼토당토않는 가격을 제시하는 건 상도에 어긋나지 않습니까?”간민효는 돈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버릴 만큼 많지는 않았다.특히 황보동은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았다.“이백억은 어제 가격이고.”“이천억은 오늘 가격이야.”“집복당은 우리 황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건물이야. 내가 원하는 만큼 받아야 팔 수 있어.”“당신이 아무리 부동산 전문가를 대동해 감정을 했다고 해도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물론 당신이 돈을 내지 않고 사고 싶다고 하면 그것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내 손녀만 치료해 준다면 공짜로도 줄 수도 있어.”황보동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면서 뭔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들어온 아줌마에게 무엇 때문에 왔냐고 물었다.아줌마는 최근 밤마다 악몽을 꾸고 낮에는 숨이 턱턱 막혀서 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그녀의 설명을 들은 황보동은 나침반을 꺼내 빙빙 돌리며 계속 미간을 찌푸렸다.황보동이 자신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자 간민효도 화가 나기
하현은 갑자기 머리가 저릿해져 와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흥!”난처해하는 하현의 모습을 보고 간민효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집복당은 금정에서 이미 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때 금정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곳이었어.”“옛날에는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고 다들 어마어마한 재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지.”“내가 어릴 때는 태어나는 것 자체가 뭔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안타깝게도 지금 집복당의 주인인 황보동은 한동안 가업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고 과학의 길만 좇았지.”“그러다가 나중에 그의 아들이 사고를 당해 아무도 이 가업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게 되자 다시 돌아왔어.”“하지만 그의 풍수지리술은 그의 조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형편없어서 결국 점점 몰락하게 되었지.”“10여 년 동안 이곳에 드나든 사람은 대부분이 이 근처 오래된 이웃뿐이야.”“첫째는 가까이 있으니까 오는 것이고 둘째는 가끔 좋은 날과 길일을 보는 데는 아주 뛰어난 풍수지리술이 필요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야. 셋째는 아주 싸다는 매력 때문이지.”“다만 이렇게 되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아서 아마 결국 사라질 거야.”“참, 반년 전 황보동의 유일한 손녀이자 집복당의 9대 계승자, 황보정이 갑자기 두 눈을 잃고 온몸에 힘이 빠졌지 뭐야.”“황보정은 집복당을 계승할 만큼 풍수지리사의 자질이 뛰어났어. 그래서 집복당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해.”“금정 일부 명문가들도 관심을 가졌고.”“그런데 그녀가 공부를 마치고 출사를 했을 때 갑자기 실명하게 되었어.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봤지만 어떤 원인도 찾을 수가 없었지.”“집복당 일가가 여러 해 동안 천기를 누설한 결과라는 말도 있어.”“황보동도 풍수지리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대.”“그래서 지금 황보동도 많이 낙담한 상태야.”“이 집복
”해결되었으면 됐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세상 일에 대해 그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어떤 일에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이런 사소한 일들은 소꿉놀이 같아서 정말로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다른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과의 일이 가장 중요하지.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간민효는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 듯 홀가분한 모습으로 하현에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우리 금장 간 씨 가문의 다른 하찮은 일보다 당신과의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어차피 우린 연대한 사이잖아?”“참, 당신의 풍수관이 생기면 내가 첫 고객이 되고 싶어...”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장난치지 마.”“내가 뭘 얼마나 잘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해?”간민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연, 인연이야...”“이 일은 당신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 같은데...”하현은 간민효의 말을 듣고 눈꺼풀을 펄쩍거리며 얼굴빛이 붉어졌다.“자, 장난치지 말고 당신이 선택한 곳부터 둘러보자고.”하현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고 이 모습을 본 간민효는 빙긋 웃으며 하현의 팔짱을 끼고 집복당 안으로 들어갔다.차에 타고 있던 나박하는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이런 상황을 보고 당연히 설은아에게 바로 고자질해야 했다.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미 하현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주인 격인 그를 배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나박하가 고민에 빠진 그 시각 하현 일행은 이미 집복당 안으로 들어갔다.집복당 안 넓은 부지 앞쪽에는 큰 홀이 있고 한쪽에는 서재가 있었으며 그 안에는 각종 풍수 설비가 갖춰져 있었다.뒤편에는 사랑채 몇 개와 커다란 마당이 있었다.다만 이곳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했지만 내부는 꽤나 낡아 보였고 바닥의 청석도 파손된 곳이 적지 않았다.종이로 칠한 창문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많아서 괴기스러운 영화를 찍거나 스릴러물을 촬영하기 딱이라는 생각마저
설은아의 말을 들은 하현은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김탁우가 감쪽같은 위장으로 사람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설은아는 그의 과거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뭐라고 말을 하면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뭐, 어쨌든 우린 재혼할 거니까.”“남자들을 많이 접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왜? 다른 뛰어난 사람을 보면 내가 홀딱 빠져 버릴까 봐 걱정되어서 그래?”설은아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당신은 간민효랑 그렇게 붙어 다니면서 난 다른 남자랑 같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야?”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일이 이렇게 흘러 버렸는데 자신이 설명을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설은아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녀는 실눈을 뜨고 웃으며 말했다.“자자, 질투하지 마.”“내가 한 번 본 남자한테 사랑에 빠질 여자로 보여?”“김탁우는 오늘 밤 나한테 사람을 소개해 주려고 온 것뿐이라고.”“그러니 당신도 다른 여자들과는 접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렇지 않았다가 내가 알기라도 하면 당신 곤란해질 거야.”“어쨌든 우린 아직 이혼한 사이니까!”말을 마친 설은아는 하현을 향해 말로 주먹을 한 방 날리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하현은 이 광경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지금 누구도 두려운 사람이 없었다.모든 것을 다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한 여자 앞에서는 자신도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게다가 이 여자는 지금 이 기회를 빌려 자신과 다른 여자 사이의 애매모호한 관계에 경고장까지 날리며 그를 압박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하현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일어나서 설은아와 얘기라도 좀 나눠 보려고 했다.하지만 설은아는 어제 일은 다 잊은 듯 씨익 웃으며 일이 있다고 말한 뒤 홀연히 집을 나섰
소란은 여기서 끝났다.하현은 임수범과 이산들을 더 이상 압박할 생각이 없었다.그가 해야 할 일은 두 사람의 기세를 제압하는 것이었다.자신의 앞에 놓인 곤궁한 처지를 헤치고 운명을 바꿔 나가는 일은 오로지 나박하가 감당할 몫이었다.소란스러운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만 있던 왕인걸은 등줄기에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하현을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한 순간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가 있다.소란이 끝난 후 왕인걸은 임수범 일행을 내쫓고 하현과 나박하의 테이블에 반찬 몇 가지를 더 제공해 준 뒤 나박하의 멤버십 기간을 1년 연장해 주었다.오늘 밤 그는 완벽하게 하현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고 할 수 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왕인걸의 어깨를 툭 건드릴 뿐이었다.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왕인걸의 마음은 충분히 흡족했다.식사가 끝나자 하현은 나박하에게 자신을 설 씨 집안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고 다음 날 다시 와서 적당한 가게를 찾는 데 좀 도와달라고 했다.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설은아는 아직 돌아와 있지 않았다.그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설은아의 성격상 중요한 일이 아니면 그다지 외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전화기를 들었다.그때 문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마세라티 한 대가 대문 앞에 멈춰 섰다.덩치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려 설은아의 차 문을 멋스럽게 열어주며 에스코트했다.이 과정에서 그는 설은아와 어떤 신체 접촉도 없었지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걸었다.하현의 시선을 눈치챈 듯 남자는 그가 있는 곳을 향해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며 돌아섰다.하현의 눈동자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그때 갑자기 하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항성에서 원가령과 약혼을 하려다가 자신에게 뺨을 얻어맞은 김탁우였던 것이다!그의 얼굴을 보아하니 아마도 성형을 한 뒤 완전히 회복한 것 같았다!그리고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