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님, 형수님과…" 시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옳지, 착해라!" 하현이 쪼그려 앉아 손을 뻗어 시훈의 얼굴을 두드렸다. "이제 알겠지,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것도 때로는 미래가 밝아. 나 같은 머저리 앞에 무릎을 꿇은 너는 그럼 머저리만도 못한 거네!”말을 마치자, 하현은 시훈을 상대하기 귀찮아하며,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핸드폰을 사러 가야 하는데, 여기서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나?슬기는 주안을 매섭게 노려보며 쓸데없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현을 재빠르게 따라갔다."이 자식을 데리고 가서 한쪽 다리를 부러뜨리고 병원 문 앞에 던져버려!” 주안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안 돼요! 안 돼요!" 시훈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이 시각, 세리는 그새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른다. 그녀를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나?......잠시 후, 병원 정문 앞에는 다리가 부러진 형체 하나가 빵 배달차에서 떨어져 나왔다. 시훈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현! 당신만 여자에게 빌붙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나도 할 수 있어! 나는 최고의 여자에게 빌붙은 다음 당신이 죽는 것만도 못한 삶을 살게 해줄게…” 격노하여 욕을 퍼부은 후, 시훈은 다리 부상에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한 채 벌벌 떨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하 씨 이모, 저,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가능해요. 그럼 며칠 후에 사람을 보내서 모시러 갈게요." 전화 맞은편에서 50, 60대로들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감사합니다, 이모...""아직도 이모라고 부를 거야?""아니요, 어니요. 자기야, 자기, 몇 명 더 보내줘요. 나랑 안 맞는 쓰레기 하나를 좀 치워야겠어요…” 시훈은 눈꼬리를 움찔거리다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좋아, 네가 이해한 이상, 나도 누구인지 봐야겠다. 감히 우리 훈이를 괴롭히다니!"전화를 끊자, 시훈은 차가운 기색을 띠었다. 하현, 나는 다
하현의 뒤에서 슬기가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따라왔다. 그녀는 대단한 미인이라, 지금 하현 뒤에서 걸으면서도 온 땅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대표님, 제가 가르침과 관리를 소홀히 한 탓입니다. 오늘 이후로 아랫사람들을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슬기는 하현이 진지하게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을 보자, 그녀는 그의 뒤에서 몸을 숙이고 말할 수밖에 없다."그래요?" 하현이 무심하게 말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슬기는 마음이 조급해져 울먹거리며 말했다. "대표님,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대표님께서는 제 생명의 은인이시고, 저는 대표님께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발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나도 사실 슬기 씨를 탓한 적 없어요. 오랫동안 하씨 집안에서 열심히 일해왔고, 저 대신 이 사업 기반을 다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랫사람들을 너무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거 아니에요?""대표님, 다음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하겠습니다." 슬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모든 일을 잘 처리해주세요. 우리는 곧 이런 사소한 일들까지 처리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 하현은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마음에 드는 핸드폰 없어요? 내가 하나 사줄게요."하현이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보자, 슬기는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대표님,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제일 비싼 걸로 합니다.”말을 하면서, 슬기는 전시대 위에 놓인 폴더블폰을 집어 들었다. 그 스마트폰은 올해의 최신 제품이었는데, 몇 천만 원은 하는 기종이었다."여기 미인 분, 아까부터 계속 봤는데, 지금 손에 들고 계신 것은 한정판이고 5600만 원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대신, 전화번호만 남겨주실래요? 어때요?" 이때, 수트 차림의 풍채가 멋스럽고 스물일곱에서 스물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이 남자는 명백히도 젊고 부유한 남자였다. 이 순간, 그가 슬기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어야겠다는
한 점원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하현을 위아래로 몇 번 훑어본 후 약간 망설이며 물었다. "손님, 이 핸드폰은 한정판입니다. 가격은 56만 원이 아니라 5600만 원입니다. 그리고 다른 점포에서 재고를 가져와야 하는데, 구매 확실하십니까?"이 점원이 머뭇거리는 것도 탓할 수 없었다. 이 휴대폰의 생산량은 매우 적지만, 최근 상류층에서 유행하는 휴대폰이었다. 보통 사람의 연봉은 5000만 원이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휴대폰을 사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됐다.그리고 하현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노점에서 산 거라, 아무리 봐도 가난해 보였고, 몇 천만 원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보였다.하현 저 할 말 없는 자는, 보아하니 스스로 좀 좋은 옷 한 벌 사야 할 것 같았다.슬기도 피식하고 웃었는데, 하현이 쪼그라드는 모습은 보기 드물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래도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재고를 가져다 주세요. 두 개, 맞아요. 아, 그리고 이 심 카드를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말하는 도중, 하현은 자신의 오래된 핸드폰을 꺼내 점원에게 이따가 유심을 바꿔 달라고 했다.“2만 원짜리 구닥다리 핸드폰?” 점원은 의심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이 사람은 애플도 없는데 이렇게 비싼 폴더블폰을 사다니, 말이 되나?하현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까 전에 무시당했던 남자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가지러 가세요. 이따가 이 남자가 돈을 내지 못한다면, 이 핸드폰은 제가 이 아가씨에게 주는 선물로 하겠습니다.""네, 장 대표님." 그 점원은 이 남자가 입을 여는 것을 보고 재빨리 허리 숙이며 갔다. 분명 이 장 대표라는 사람은 상당히 높은 사회적 지위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점원은 그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하현이 무심코 그를 힐끗 보았다. 이 사람은 어디 아팠나? 자기가 핸드폰을 사겠다는 데 그랑 무슨 상관이었나, 여기서 왜 용을 쓰는 걸까?이 순간, 장 대표도 하현을 무시했다. 또
대헌도 잠시 멍해졌다.이게 끝인가? SW 엔터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게 무슨 우스운 말인가?이 다음은 슬기가 명함을 직접 받고나서, 어디 가서 술 한 잔 하자고 자기를 기쁘게 초대한 후, 나머지 일들은 알아서 잘 풀리는 게 맞지 않던가?성인의 세계에서 교환은 이렇게나 간단하고 직설적인 것이다.근데 이 아름다운 여자는 무슨 뜻인가? 자신을 깔보는 걸까? 아니면 옆에 있는 궁상맞은 남자 때문일까?이때 대헌의 시선이 마침내 진지하게 하현에 이르자, 그는 씩 웃었다. “아가씨, 혹시 당신 옆에 이 분이 계셔서 제 초대에 응하지 못하는 건가요? 잘 생각해봐요, 이건 당신의 장래이니. 한평생 이렇게 좋은 기회는 딱 한 번 뿐일 수도 있어요. 기회를 놓치면 후회로 가득 찰 거예요.”슬기는 하현한테 핸드폰 기능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대헌이 또 재잘재잘 입을 열자, 그녀는 정말 짜증나 참다못해 고개를 들어 대헌을 한 번 째려보고는 말했다. "당신 정말 파리처럼 성가시게 굴지 않을 수 없을까요? SW 엔터 대표라고 마음대로 들이댈 수 있는 줄 알아요? 지금 당신에게 똑똑히 말할게요. 저는 무슨 SW 엔터나, 무슨 스타가 되는 것에 관심 없으니까 더 이상 우리를 귀찮게 하지 말아주세요.”"와, 이 예쁜 여자 성질이 아주 불 같네!"장대헌이 여자한테 거절당하는 건 처음 봐. 쯧쯧쯧...""해가 서쪽에서도 뜨네!”핸드폰 매장에는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것은 매우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대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대우를 받은 건 정말 처음이었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냉랭하게 말했다. "아가씨, 당신 옆에 있는 이 궁상맞은 남자가 정말 당신에게 핸드폰을 사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건 56만 원이 아니라, 5600만 원이에요. 내가 선심 써서 핸드폰을 선물하겠다는데, 좋고 나쁨을 모르면 안 되죠.""당신..." 슬기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사람은 너무 귀찮게 굴었다."됐어요, 우리 핸드폰 사야
"헐, 그럼 이 사람은 검소한 재벌 2세인가?""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카드를 긁네, 대단하다!""혹시 집세 받으면서 사나?"하현이 이렇게 시원시원한 것을 보고, 둘러서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오히려 모두 어리둥절해졌다."블랙 카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장 많은 식견을 가진 사람은 바로 대헌이다. 하현이 이 카드를 꺼냈을 때, 대헌은 찬바람을 한 숨 들이켰다.이 말이 흘러나오자, 핸드폰 매장 전체가 금세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모두 블랙 카드를 모르는데, 그렇다고 블랙 카드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들은 바로는 블랙 카드 안에 있는 예금은 적어도 수백억 원의 현금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자산이 아니라 현금이었다! 대헌 같은 사람도 당장 손에 쥔 현금이 몇 억 원도 채 되지 않을 텐데, 수백억 원의 현금은 무슨 개념인가?이런 카드는 서울 전체에서 절대 5장을 넘기지 않았다!그 점원조차도 충격을 받아 멍하니 있었다. 설마 오늘 돈 많은 주인을 만나서 출세하는 건가?"이거… 인터넷에서 구매한 스티커 카드는 아니겠지?" 어떤 사람이 난데없이 이런 말을 했다.이 말을 하니,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틀림없이 스티커 카드일 것이다. 이 블랙 카드라는 물건을 어떻게 실생활에서 볼 수 있었겠나? 장난하나? 이런 꼴사나운 놈이 어떻게 블랙 카드를 갖고 있겠나?"당신 정말 역겹네요!" 대헌은 비아냥거렸다. "가난하다고 문제 될 건 없죠. 하지만 굳이 부자 행세를 한다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아요.”하현은 웃기만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카드 안의 돈을 꺼낸다면, 대헌을 눌러버리는 것은 아주 쉬웠다."카드 긁으세요." 하현은 태평한 얼굴로 무심하게 입을 열었는데, 마치 몇 백 원을 긁는 것처럼 보였다."미쳤어,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이 순간, 대헌은 표정이 약간 굳은 채, 하현의 블랙 카드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무슨 허점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했다.그 점원도 좀 긴장해서 재빨리 뒤
"아름다운 아가씨, 이 핸드폰에 푹 빠진 것 같은데 내가 사줄까요?" 대헌은 이 기세를 몰아 슬기에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 결제해주세요!""이런 가난뱅이, 실버 카드란 게 뭔지 알아요? 나중에 잘난 척을 할 거면 좀 제대로 해봐요. 실버 카드만 있어도 당신을 믿는 사람이 있는데, 블랙 카드까지? 쳇!" 대헌은 자신만만하게 하현을 내려다보았다."와! 이거 실버 카드잖아. 예금이 1억 원을 넘어야 한다고 하더라!""그래도 역시 장 대표가 돈이 많네요! 게다가 겸손하기까지 하고!""남이랑 비교할수록 정말 비참해지기만 하네!"“......” 하현은 곧 기절할 것만 같았다. 자기 카드에 분명 수십 조 원이 있었는데, 결국 백만 원 밖에 없는 사람에게 무시당하니 하현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문제는, 이 일을 어찌 해명할 방법이 없었다.옆에 있던 슬기는 대헌을 1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가방에서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내 점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제 카드로 결제해주세요. 핸드폰 두 대 다 사겠습니다."점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슬기의 카드를 받아서 결제하더니, 영수증 한 장이 빠르게 인쇄되어 나왔다.이 장면은 오히려 대헌을 넋이 나가게 했다. 이 아리따운 여자가 이렇게 부유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주변의 구경꾼들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미녀야말로 돈 많은 주인 같았다. 수천만 원을 결제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이제 가도 되죠?" 슬기는 핸드폰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그… 그럼요…" 점원이 허리를 숙였다."흥!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놈!?"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중얼중얼 입을 열었다."퉤! 이 머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은 더욱 더 하현을 경멸했다.슬기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현을 이끌고 도망치듯 핸드폰 매장을 빠져나왔다.매장에서 대헌은 핸드폰을 꺼내 슬기의 옆면 사진 몇 장을 찍더니, 카톡으로 친구 한 명에게 사진을 보
“대표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페라리 안에서 슬기는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전화로 물어볼게요." 하현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잠시 후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은행 측에서는 카드 한도가 한 달에 500만 원이라는데, 전에 현금 500만 원을 뽑아서 이미 한도를 다 썼어요. 한도를 올리려면 은행에 가서 계약서에 서명해야 한다고 하네요.""푸흡!"슬기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으며, 이런 일도 있을 줄은 몰랐다.하현도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기이한 일을 겪게 되다니, 정말 은행에 한 번 가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적인 소비를 하는 데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그럼 이 핸드폰은 제가 오빠한테 선물한 거예요." 슬기는 빙그레 웃었다. 요만한 돈은 그녀에게 사소한 일이었다."좋아요. 내가 나중에 다른 걸 선물할게요." 하현도 거절하지 않았다. “일단 나를 회사에 데려다줘요. 오늘 밤엔 회사에서 묵어야겠어요.""어?" 페라리에 시동을 건 슬기는 브레이크를 세게 밟고 의아해서 물었다. “오빠… 오늘 밤 집에 안 가요?”"못 돌아가는 거예요!" 하현이 어깨를 으쓱였다.슬기의 작은 얼굴이 약간 빨개졌으며, 그녀는 머뭇거리더니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에는 목욕할 곳이 없잖아요.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하룻밤 묵으세요. 내일 제가 회사에 모셔다 드릴게요."하현은 생각을 해봤는데, 목욕을 하지 않으면 정말 잠을 못 잘 것 같았다. 그래도 하현은 물었다. “그럼 실례해도 될까요?"“네, 네.” 슬기는 하현이 말을 바꿀까 봐 액셀을 세게 밟아, 비행기를 모는 것처럼 페라리를 운전했다.슬기는 고급 주거 단지에 살았는데, 꼭대기 층의 펜트하우스였고, 인테리어 역시 하현이 좋아하는 심플한 스타일이었다.방 안이 아주 깨끗해서 먼지 하나 묻어나지 않았고 물건이 많지 않아서 여자 혼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하현이 들어와서 소파에 앉았는데, 오히려 감개무량했다.보아하니 요 몇 년 동
하현은 정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슬기는 인간관계에서 늘 우위를 점했지만, 문제는 하현이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이 아가씨는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자신이 지금 이러고 있는데, 잠시 후 그녀가 반응을 해서 칼을 들고 자신을 벤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런데 이때, 갑자기 쑥쓰러움에 가득 찬 슬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대표님… 당신, 계속 안고 있을 거예요?""아!" 하현이 황급하게 손을 놓았는데, 그도 방금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슬기를 껴안고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하현은 민망한 얼굴로 손을 뗄 수밖에 없었고, 슬기는 빠르게 일어섰는데 그 후에도 여전히 부끄러워했다.이 장면이 너무 어색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슬기는 아까보다 더 수줍어하며 말했다. "사모님과 결혼한 지 3년이 되었다고 들었어요."하현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입을 열었다. "됐어요, 이 얘기는 그만해요. 오늘 저녁 슬기 씨에게서 손님방을 빌려 쓰겠습니다. 내일 회사에서 침실을 꾸미는 데 좀 도와주세요. 샤워하고 잘 수만 있으면 돼요.""네, 그럼 제가 준비해 둘게요." 슬기는 부끄러워 죽겠으나, 그래도 하현을 위해 손님방을 치우러 갔다.바쁘게 움직여 작은 얼굴에 땀이 맺힌 슬기를 보며, 하현은 약간 어이가 없었다.인정할 수밖에 없이, 자신의 여비서는 정말 예쁘고 몸매도 유려해, 그녀의 긴 다리는 더욱 눈길을 끌었다.이 젊은 아가씨는 이렇게나 경계심이 없다니. 하현이 그녀에게 딴 마음을 품고 있을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나?하현은 소리 없이 웃었고, 자신을 향한 슬기의 믿음이 아주 고마웠다.오늘 하루 종일 바빴고, 하현도 피곤했었기에, 슬기가 침대를 다 정리한 후에 그는 가서 대충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바로 잠에 들었다.......이튿날 아침 일찍, 하현은 향기롭고 달콤한 냄새를 맡고는 깨어나, 세수를 마치고 다이닝 룸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바로 이때, 슬기가 포니테일에 귀여운 토끼 잠옷 가운을 입고 아침밥을 짓고 있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