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성 같은 인물은 무슨 명품으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정장은 이탈리아의 최고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 재단한 것이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도 주문 제작한 것이고 하나에 몇 십억 하는 글로벌 한정판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의 몸에 걸친 것의 특별함을 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의 눈에는 보였다. 보통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1, 2류 가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몸을 치장하려면 평생은 분투해야 한다!항성 이씨 집안은 비록 대하 10대 최고 정상 가문들 중 하나는 아니었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런 인물이 나오면 남원의 1인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강남 1인자 이준태도 그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이때 이장성은 하현을 무시한 채 슬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슬기 아가씨 아니세요? 제가 있는 곳에 오셔서 식사를 하시는데 어떻게 전화 한 통 안 하셨어요?”“이 하인들이 대접을 소홀히 했다면 제가 미움을 사게 되지 않겠어요?”“당신은 이장성씨!”슬기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눈빛이 약간 달라졌다. 이장성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씨 집안에 혼담을 꺼낸 사람들 중에 제일가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연경 이씨 집안의 뜻에 따르면 반드시 그녀와 이장성은 결혼을 해야 한다. 지난 번 블랙티 레스토랑에서 하현은 이미 연경 이씨 집안 사람과 마주쳤었다. 그러나 양쪽은 서로 안 좋게 헤어진 셈이었다. 그 후 이장성이 이미 여러 차례 찾아왔기에 이씨 집안 세자에 대해 슬기는 조금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왜요? 아가씨 표정을 보니 음식이 만족스럽지 못한 거 같네요?”이장성은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치면서 레스토랑 셰프를 불렀다. “퍽!”곧이어 그는 주방장의 뺨을 때리며 차갑게 말했다. “여기 와서 식사하신 이 아가씨가 내 약혼녀라는 걸 몰라?”“이 하인이 자기 주인의 안방 마님도 못 알아보고, 여기 남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혼사를 의논하고 있는 단계에서 밖에서 빈둥거리는 남자를 데리고 목에 힘을 주고 다니다니요?”“이 일에 대해 내가 이씨 집안을 찾아가서 설명을 드리면 이 남자는 아마도 죽겠죠?”이장성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으며 경시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이전에 그는 하현을 빈대라 여기며 따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벌레가 앞에서 기어오르고 있으니 닥치는 대로 눌러 죽여야 하지 않겠는가?이 말을 듣고 슬기의 얼굴은 순간 하얗게 질렸다. 연경 이씨 집안의 능력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항성 이씨 집안이 정말 찾아온다면 체면을 위해서라도 연경 이씨 집안은 모두 하현을 상대하려고 손을 댈 것이다. 그리고 하현은 이미 은퇴를 했다. 이전에 대장이었던 사람이 정말 최정상 가문들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특히 연경 이씨 집안은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다!연경 이씨 집안의 그분은 9대 장로중의 한 분이다!이 생각에 미치자 슬기는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을 한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장성씨, 당신과 나 둘 사이의 일은 어떤 사람과도 관계가 없어요!”“내가 결혼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는 내 몫이에요. 만약 당신이 남자라면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세요!”“만약 내가 싫다면?”이장성은 웃을 듯 말 듯 했다. 슬기는 한참 동안 이장성을 싸늘하게 쳐다보고 나서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먼저 가세요. 이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하현이 웃었다. 그는 일어서서 손을 뻗어 슬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바보야, 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방금 내가 너한테 벌써 말하지 않았어? 앞으로 누가 너를 건드리려면 나를 먼저 시체로 만든 다음에 지나가야 한다고.”이장성은 차갑게 하현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이 빈대는 죽으려고 작정을 한 것처럼 보였다. 이때 송주용이 식당 구석에서 튀어 나와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난 후 조용히 말했다. “세자, 이 사람은 너무 날뛰네요. 세자는
하현은 마침내 송주용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너같이 작은 배역을 밟아 죽이는 데는 취미가 없어. 내 기분이 좋을 때 무릎 꿇고 기어나가면 이 일은 잊어버릴게.”“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남은 한 평생 밥 먹을 필요가 없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지.”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하현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이 말이 나오자 장내를 놀라게 만들어버렸다. 꼬박 몇 십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다들 반응을 보였다. “하하하, 어디서 얼빠진 놈이 튀어나왔지? 너 송 대표가 이 세자를 대표하는 거 알지?”“어르신이 사과를 하면 네가 감히 받아 주겠다고?”“그래, 네 까짓 게 뭔데!? 이 세자가 이미 명령을 내렸으니 너는 오늘 반드시 기어 나가야 해!”“너 혼자 기지 못 할거 같으면 우리가 도와줄게!”이 종업원들과 경호원들은 모두 항성 이씨 집안의 하인들이었다. 이곳에서는 누군가를 해칠 때 돕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겼다. 이장성과 송주용에게 아부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그들이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옆에 있던 슬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오늘 이 일이 잘 수습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회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 회장님 앞에서 이렇게 날뛰다니, 이것은 정말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송주용은 자신에게 기어나가라고 하는 말을 듣고 순간 화가 폭발했다. 곧이어 그는 손을 뻗어 하현의 얼굴을 툭툭 치려고 했다. 하지만 몇 초 뒤 하현은 번개처럼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잡고 힘껏 비틀었다. “퍽______”동시에 하현은 송주용의 배를 걷어찼다.“아______”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송주용은 솔직히 말해 문약한 선비였다. 진작에 돈과 여자에 빠져 몸이 나약해져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을 어찌 견뎌낼 수 있겠는가?모든 사람들이 하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퍽!”하현은 또 송주용의 옷섶을 들고 뺨을 한 대 때렸다. 뺨 한대일 뿐인데 송주용
슬기는 안색이 변한 뒤에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제가 오늘 밤 할아버지께 이 일을 수습해 달라고 부탁 드리러 가겠습니다.”하현이 웃었다.“왜 이 일을 수습하려고 해? 만약 방금 이장성이 빨리 도망가지 않았으면 내가 그의 남은 반평생 밥 먹을 필요가 없게 해줬을 거라고 장담해.”슬기는 한숨을 쉬며 잠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하현이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자, 슬기는 조용히 떠나 이씨 집안 저택으로 왔다. “할아버지, 사고가 났어요. 제발 하현을 도와주세요! 지금 강남 전체에서 그를 도울 수 있는 건 할아버지 뿐이에요.”슬기는 이준태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녀 자신의 일을 위해서라면 굴복하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하현이 자신 때문에 항성 이가와 연경 이가를 건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특별히 연경 이가를 말이다. 슬기는 연경 이가 사람이기 때문에 연경 이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더 잘 알고 있었다. 하현이 한때 당도대 대장이었다 하더라도 그는 지금 이미 은퇴를 했다. 슬기가 생각할 때 하현은 과거에는 화려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천일그룹의 회장일 뿐이었다. 이런 사람의 그룹은 보통사람들 눈에 보기에는 확실히 강해 보였지만 연경 이씨와 항성 이씨 가문처럼 최정상 가문들이 봤을 때는 확실히 부족했다. “슬기야, 네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릎을 꿇는 거야?”이준태는 멍해졌다. “슬기야, 그 짐승 같은 놈이 뭐가 좋아? 그럴 가치가 있어?”“그가 능력이 좀 있다고 해도 우리 이씨 가문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야!”“너 순순히 이 세자에게 시집갈 수 없어? 네가 이렇게 하면 우리 이씨 집안의 체면이 구겨져!”이씨 집안 사람들은 무릎을 꿇은 슬기를 보며 하나같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보기에 슬기는 정말 이씨 집안의 체면을 구겼다. 이준태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똑똑히 말해봐.”슬기는 사실대로 말했다.“하현이 이장성을 들
“좋아요. 약속할게요!”슬기는 여러 가지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현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지금 그녀는 이미 결심을 했다. 이장성이 설령 그녀와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절대 그녀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결국 양쪽 둘 다 죽게 될 것이다! 이때 슬기의 사촌 언니 주리아가 냉소하며 말했다. “할아버지, 어떤 일은 단순히 약속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 할 때가 있어요. 합의서를 먼저 써야 하지 않겠어요?”이 말을 듣고 이씨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연신 동의를 했다. 곧 합의서가 작성되었다. 약속대로 하현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만 한다면 이슬기는 반드시 이장성과 결혼해야 한다. 슬기는 암담한 얼굴로 마침내 이를 악물고 서명을 했다. 이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항성 이씨 가문이 사돈이 됨으로써 연경 이씨 가문은 다시 한번 강하게 일어설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들의 신분은 더 높아질 것이고 장악할 수 있는 세력은 더 커질 것이다. 이 합의로 슬기는 약속날짜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이장성과 결혼할 운명이 되었다. 이씨 집안 사람들은 연경 이씨 집안 쪽에서도 분명 이 조건을 들어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성 이씨 집안 쪽에서도 이준태가 나서서 조정을 해주기만 한다면 무슨 그렇게 큰 일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곧 이준태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장성은 이미 송주용이 불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 하현을 혼내줄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때 전화를 받자 그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이 어르신, 무슨 일로 연락하셨어요?”“오늘 일은 분명히 알고 계시겠죠?”이준태는 다소 감개무량한 듯 입을 열었다. “당연히 알고 있지요. 이 일은 당신 이씨 집안에서 저에게 반드시 해명해야 합니다!”이장성은 차갑게 말했다. 이준태는 잠시 생각한 후에야 천천히 말했다.“지금 이 일로 의논을 하려고요.”“슬기가 하는 말이 당신
강남 이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하현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지금 이 말을 듣고 이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세자는 과연 선견지명이있어. 혼사를 발표한다는 건 항성 이씨와 연경 이씨의 관계를 공개하겠다는 거잖아!”“대장, 장북산, 강남의 신임 병부 수장 등이 증인이 된다는 건 온 나라를 뒤흔들 만한 큰 일이야!”“이 일이 있고 나면 우리 이씨 집안의 위상은 틀림없이 높아 질 거야!”이때 슬기의 표정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슬기를 팔아서 이렇게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장사는 절대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같은 시각, 호화로운 별장 안. 이장성은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항성 이씨 가문의 먼 친척으로 이원규라는 사람이었다. 이원규가 속한 가문은 항성 이씨 가문의 분파였지만 줄곧 항성 이씨 가문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원규 본인은 달랐다. 그는 연경 병부의 부사령관으로 실세의 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관건은 그가 있는 대대의 대하 9대 군대중의 하나로 한전이라 불리며 당도대 못지않게 유명하다. 이장성은 남원에 온 뒤 이원규와 온갖 방법으로 연락을 취해 드디어 오늘 그를 초대했다. “이 사령관님, 사령관님과 저는 모두 이씨 집안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이번에 저에게 약간 문제가 생겼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이장성은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동시에 그가 손을 흔들자 몇 명의 부하들이 상자를 가지고 올라오는 것을 보았는데 안에는 보석과 옥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이원규는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세자, 병부 사람들은 물질에 미련이 없습니다. 이 물건들은 가지고 가세요.”“말씀하신 문제에 대해서는 나 이원규의 능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반드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원규의 말을 듣고 이장성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이 사령관님, 연경 병부의 병왕답게 실력이 막강할 뿐 아니라 청렴결백하고
이원규는 흠모하는 얼굴로 존경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도대 대장, 그것은 병부의 신화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다. 이장성은 이때 온몸을 살짝 떨며 말했다.“뭐요? 대장이 병부 대 장로의 자리를 물려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진짜예요!?”“확실히 그 사람 말고 누가 자격이 있겠어요?”이원규는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이장성은 심호흡을 하고는 재빨리 말했다.“이렇게 된 이상 그러면 우리는 그의 동의를 더욱이 받아 내야죠!”“그가 동의만 한다면 이번에는 내 혼사뿐 아니라 관건은 지금부터 우리 항성 이씨 집안이 미래의 대 장로와 함께 미래를 세워갈 수 있겠네요!”“아마 이런 인연으로 우리 항성 이씨 집안은 훗날 10대 탑 가문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몰라요.”이장성은 아직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대장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항성 이씨 집안에서 더 이상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원규는 잠시 중얼거리다 말했다. “그래요. 이 일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주례 서는 일은 내가 생각하기에 대장이 거절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그럼 정말 잘 됐네요!”이장성은 더할 나위 없이 감격했다. 이렇게 보면 이번 수비 교체식은 정말 본격적으로 자신이 집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연경 이씨 집안과 혼인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건 대장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그때가 되면 무슨 하민석이나 하 세자도 모두 내 발 밑에 밟히게 될 거야!”“항성 이씨 집안은 내 손에 들어올 운명이네!”이장성은 뒷짐을 진 채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마치 자신의 밝은 미래를 보는 듯 했다. ……스마트 밸리, 하현은 전화를 끊었다. 방금 당도대에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이원규라는 친구가 수비 교체식이 끝난 뒤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했다.이원규 이 사람은 하현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그도 일찍이 당도대에서 훈련한 적이 있었지만 불과 1년도 안돼서
같은 시각.최가.최가 할머니, 구기승, 나성곤 세 사람은 머리를 숙이고 서 있었다. 남원의 일류 가문으로서 이 세 사람이 나타난 것은 큰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그들 바로 앞에 멀지 않은 곳에서 제복을 입고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왼손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기개가 있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품은 최씨 할머니의 얼굴을 굳어지게 했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게 했다. 한참 후 이 사람이 왼손을 내려놓았을 때 최가 할머니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둘째 도련님, 무슨 바람이 불어 항성에서 오셨는지 모르겠네요!”“제가 마중 나갈 수 있도록 미리 말씀도 안 해주시고요.”하민석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다시 오지 않으면 너희 4대 일류 가문은 무너질 거야.”이 말을 듣고 최씨 할머니와 사람들은 안색이 약간 변했다. 하민석은 화가 났다. 지금 이 순간 이 세 사람은 평소에는 높은 사람이었지만 이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잘것없는 하 세자를 상대하라고 했었잖아. 근데 성공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소씨 가문까지 잃다니. 너희들 정말 능력이 대단하구나.”하민석의 표정은 냉담했다. 이 일을 듣고 사람들은 모두 더욱 벌벌 떨며 감히 전혀 입을 열지 못했다. 하민석은 심오한 얼굴로 갑자기 화제를 전환하며 말했다. “너희들 강남 병수 수장 교체식에 참석할 거지?”“네!”최가 할머니와 사람들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하민석이 자신들이 이 의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할까 봐 두려웠다. 필경 하민석의 눈에 일찍이 남원 4대 일류 가문은 하인에 불과했다. “너희들이 참석하든 말든 나는 별 이견이 없어. 하지만 그 전에 내가 한 가지 임무를 맡길게.”하민석이 말했다. “둘째 도련님이 무슨 분부를 내리시든 저는 전심 전력을 다해 하도록 하겠습니다.”하민석은 얼굴에 기괴한 웃음을 드러내며 천천
최희정이 하현에게 눈길을 돌렸고 그녀의 눈 밑이 두툼하게 응어리졌다.그리고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홀 한가운데로 가서 당당하게 의자에 앉은 뒤 이영산을 가리켰다.“영산아, 그림 가져와 보렴.”“아버지와 함께 잘 살펴볼게.”두 사람은 모두 대가족 출신이라 이 방면에 대해 피상적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안목이 있었다.특히 설재석은 요즘 강남에서 소장품을 열심히 연구하며 더 많은 지식을 쌓은 터였다.그렇지 않았다면 이영산이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 가며 ‘맹호하산도’를 구해 왔을 리가 없다.이영산은 황급히 하현을 보고는 얼른 그의 손에 든 ‘맹호하산도’를 설재석에게 공손히 건네주었다.설재석은 짐짓 돋보기를 꺼내 신중하게 쳐다보았다.몇 분 뒤 설재석은 최희정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최희정은 귓속말을 듣고 이영산을 힐끔 쳐다보았다.그녀의 눈빛에 살짝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이영산은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그녀의 눈빛이 너무나 무서웠던 것이다.‘맹호하산도’가 위작임을 간파한 것임이 분명하다고 그는 짐작했다.설은아와 설유아도 싸늘한 표정으로 이영산을 바라보고 있었다.감히 양아들인 주제에 가짜를 가지고 설 씨 집안에 와서 큰소리를 치다니 죽어야 마땅했다!그러나 최희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그녀는 잠시 이영산을 쳐다보다가 하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하현, 자네 그 입 좀 작작 놀리지 그래?”“이 그림은 분명 진짜야! 당인의 진품이 맞아!”“적어도 억은 넘을 거야!”“안목도 천박한 놈이 어쩌다 운이 좋아서 내 딸한테 붙어먹더니! 그 부귀영화 좀 누린다고 골동품과 서화까지 이러쿵저러쿵하는 거야? 자네가 그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더욱 웃긴 것은 자네가 감히 내 소중한 아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는 거야. 얼른 무릎 꿇고 그에게 사과해!”“그렇지 않으면 이 집에 발붙일 생각도 하지 마!”하현의 눈빛에 차가운 파도가 일렁거렸다.그는 이 서화에 분명
정말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데릴사위가 될 수 없다.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사람들이 모두 이영산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이영산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하현, 아무것도 모르면 입 다물어! 헛소리하지 마!”“맞아! 자기가 뭔지도 모르는 놈이 이영산을 모독하다니!”“무슨 전문가인 척을 해?! 당신이 가짜라면 그게 가짜가 되는 거야?”“학벌도 없고 지식도 없으면서 감히 서화를 좀 아는 척 허세를 부려?”“이영산은 우리 금정 수장계에서는 소문난 존재야. 그러니 그가 진짜라고 했으면 틀림없는 진짜야!”친척들이 동요하며 하현에 대한 거침없는 비난과 비아냥을 이어가자 설은아는 그 말들이 귀에 거슬렸는지 점점 안색이 일그러져 갔다.설유아도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이영산이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나올 줄 몰랐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 물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전문가를 찾아서 직접 감별하게 하면 되겠죠.”“감정하는 비용은 제가 내겠어요!”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하현의 말에 이영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하현이 지나치게 담담하다는 것도 걸렸지만 그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보다 큰 이유는 이 그림이 오천만 원에 산 것이 아니라 몇백만 원에 인터넷으로 산 물건이기 때문이었다.만약 그가 돈이 있었다면 설 씨 가문의 양아들이 되려고 온갖 방법을 다 쓸 필요가 없다.가짜 그림을 판 판매자는 이 물건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누구도 감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호언장담했다.그러나 이영산은 그를 믿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희정과 설재석의 부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요즘 너무 많은 돈을 쓴 터라 진짜 그림을 살 돈이 없었다.그런데 최희정과 설재석이 말한 그 데릴사위가 이 사실을 까발린다고?정말로 그럴 수 있단 말인가?“이게 뭐라고 그렇게들 싸워?”“여기가 청과시장이야?”바로 그때 입구에서 약간의 위엄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가 대가족이라는 걸 몰라? 버릇이 이렇게나 없어서야 되
”난 부모님의 친아들이 아니라 양아들에 불과해.”“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어. 우린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만족스럽게 해 드릴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는 걸.”“그들이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며 전 재산을 다 부어서라도 기꺼이 웃게 만들어야 해!”“하지만 당신들은 친자식이라는 이유로 대충대충 해도 마음만 전하면 된다?”“그래? 결국 난 남이라는 거지?”“부모님께 아무리 정성을 쏟는다고 해도 당신들의 흙 묻은 무보다도 못하다는 거지?”이영산은 억울한 듯 눈썹을 일그러뜨렸다.이윽고 그는 어지러운 듯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옆에서 장리나가 그를 부축하며 입을 열었다.“그러게 내가 당신한테 몇 번이나 말했어?!”“당신이 아무리 친자식처럼 효도한다고 해도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혈육의 정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을 거라고 했잖아!”이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영산을 바라보았다.“맞아. 요새 이영산처럼 저렇게 효도하는 아들도 드물어.”“최희정과 설재석이 늘그막에 이렇게 효도하는 양아들을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야.”“무엇보다 이영산이 친딸보다 더 효도한다는 게 관건이야.”“오천만 원짜리 이 서화를 준비했다는 건 부모님을 위한 무한한 마음을 대변하는 거지.”“시집간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하는데 출가도 안 한 딸이 양아들 뒤꿈치도 못 따라간다니!”“내가 보기엔 최 여사 부부가 이영산한테 재산을 물려줘야 한다고 봐!”“저런 배은망덕한 것들한텐 절대 한 푼도 줘선 안 돼!”“당신들 정말...”사람들의 말을 들은 설유아는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설은아의 표정도 차갑게 식었다.이 손님들이 이미 이영산 부부에게 매수되었다는 것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이영산은 그녀의 미색을 탐낼 뿐만 아니라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의 발언권이 설재석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꾸민 것이다.“설은아, 설유아. 그렇게 화내지 마.”“이 흙 묻은 무는
”하하하, 선물 가져왔어요?”이영산은 씩 웃으며 하현이 들고 있는 비닐봉지에 시선을 던졌다.“설마 이거 말하는 건 아니겠지?”“금정에 와서 부모님을 만나 뵙고 재결합하려고 하는데 비닐봉지라니? 부끄럽지도 않아?”설은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영산은 이미 하현이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빼앗아 자기 마음대로 열어 보았다.싹이 난 무같이 생긴 것이 눈에 들어왔다.“무? 조금 전 어디 밭에서 뽑아 왔어?”“포장도 따로 없이 검은 비닐봉지에?!”“이거 천 원은 하나?”“어쩐지 부모님이 당신을 두고 쓸모없다, 쓸모없다 하시더라니!”“재결합 선물에 이런 걸 선물이라고?”“천 원도 안 되는 것을! 염치가 없어도 원!”“썩 꺼져!”“우리 설 씨 가문에서 당신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최희정과 설재석이 금정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은 이영산의 말을 듣고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들의 시선에는 혐오감과 경멸함이 가득 들어 있었고 하현의 존재가 그들의 모임의 격을 떨어뜨려 놓았다고 느꼈다.하현은 이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그저 그 사람들 중 아무도 이 백두산 산삼을 알아보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하현이 아무런 동요도 없는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데릴사위가 창피한 줄도 모른다며 비아냥거렸다.“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야!”이영산은 하현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자, 자, 자. 이번에 부모님을 위해 내가 준비한 선물을 좀 보시죠. 이것은 명나라 당인의 서화입니다.”이영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화 한 권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었다.“맹호하산도!”“당나라 말기 출세작이죠!”“이 물건을 구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수집가들과 주먹다짐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해요. 결국 거금 오천만 원을 주고 손에 넣었죠!”“아마 진정한 가치는 그 열 배도 넘을 거예요!”이영산은 자신이
말을 하는 동안 하현은 트렁크를 열고 짐을 챙기려 했다.그러자 검은 비닐봉지 같은 것이 보였고 그 안에는 흙 묻은 산삼 같은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백두산 산삼?”하현은 왕인걸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백두산 산삼이라니?!이것은 진정한 강장제이다.일반 중장년층이 복용한다면 몸은 튼튼하게 해 주고 힘을 북돋아 준다.이번에 혼인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하현은 최희정과 설재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그들의 체면을 세워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고 그는 지체 없이 비닐봉지를 손에 덥석 들었다.그때 소식을 접한 설은아가 건물 입구에서 달려 나왔다.하현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보고 그녀는 살짝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하현, 이건...”“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게 되었는데 성의 표시는 해야지.”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 뿐 긴 말은 하지 않았다.설유아는 언니가 나오자 혀를 쏙 내밀며 쏜살같이 달아났다.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살짝 놀란 듯 어리둥절해했다.하현이 자신의 부모와 관계를 잘 풀어가기 위해 이런 선물을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녀는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지금 새로 들인 양아들 내외가 마침 와 있어.”“그들이 말을 예쁘게 하지 않더라도 좀 참아.”말을 마친 뒤 설은아는 자신의 차에서도 선물 상자를 꺼낸 뒤 하현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집안에는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모두 금정의 부유한 사람인 것 같았다.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하현이 모르는 남녀가 장내를 이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나이는 서른도 안 되어 보였고 남자는 무던한 표정에 여자는 서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아이고, 은아. 왜 안 보이나 했어?”“오늘은 아버지가 한턱내는 날인데 이집의 어엿한 반쪽 주인인 당신이 안 보여서 걱정했잖아!”“당신은 아버지 친딸이니까 이런 일에 좀 더 신경을 써야지,
원래 하현은 이 일에 자꾸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노인 혼자서는 절대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결국 잠시 생각에 빠진 하현은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에게 말했다.“아가씨, 할아버지 몸에 뭔가 더러운 것이 있어요.”“당신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아마 그것 때문일 겁니다.”“그러니 당신들이 시간이 된다면...”“더러운 거라뇨?”하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분노를 터뜨렸다.“당신은 일억 때문에 차량에 달려들어 우리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어요!”“자기변명을 하려고 이제는 뭐라구요? 우리 할아버지한테 더러운 게 있다구요?”“그렇게 허튼소리 하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할 거예요!”자신의 할아버지는 평생 덕을 쌓고 선을 행했고 자주 정진하고 염불을 외던 분이셨다.그처럼 선량한 사람에게 어떻게 더러운 기운이 붙을 수가 있던 말인가?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탁!”그러나 그녀의 손바닥은 하현의 얼굴에 닿지 못했다.언제 하현의 곁에 왔는지 그새 설유아가 들어와 여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아가씨, 우리 형부는 좋은 마음으로 한 거예요!”“아무도 나서서 도와주려 하지 않았는데 우리 형부가 도와줬으면 고맙다고 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에요?”“정말로 우리 형부가 한 행동이 당신 할아버지한테 해가 되었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하세요!”“형사가 우리 책임이라고 하면 우리가 책임지면 되죠!”“하지만 사람의 호의를 몰라보고 함부로 그런 말을 하는 건 못 참아요!”설유아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여자를 바라보았다.“게다가 당신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요?”“감히 내 형부한테 손찌검을 해?”본 적 없던 설유아의 패기에 하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자신의 눈에는 그저 어린 소녀처럼 보였던 설유아가 이렇게까지 성장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도 설유아의 기세에 놀랐는지 살짝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만약 이 상황에서 사람을 구해내지 않으면 양심에 걸려서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아.”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고 온화한 미소로 설유아를 안심시켰다.하현의 말을 들은 설유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자기가 형부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성격 때문이 아니었던가?이런 생각이 들자 설유아는 그의 손을 계속 잡고 있을 수 없었다.결국 설유아가 그의 손을 놓자 그가 한 걸음 내디디며 부리나케 벤츠 차량으로 뛰어들었다.“저기, 우리 할아버지 구해 주시려고요?”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다소 여윈 하현의 몸을 보고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죽은 사람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다.그녀에겐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할아버지를 구해 주신다면 일억을 드릴게요. 제발 우리 할아버지 좀 구해 주세요!”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벤츠로 발걸음을 재촉했다.엄청난 디젤 냄새가 코를 찔렀고 벤츠 차량은 이미 완전히 변형되었다.노인의 하반신은 안쪽에 꽉 끼어 있었고 고통으로 인해 의식을 잃었으며 내장의 압박이 심한 듯했다.하현은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고 왼손으로 천천히 벤츠 차량의 철골을 받친 후 오른손으로 노인의 옷을 잡아당겨 그를 직접 끌어내려고 했다.“잠깐만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하현이 강제로 사람을 끌어내리려고 하자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사람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아는 거예요? 지금 우리 할아버지를 죽일 셈이에요?”“이렇게 억지로 할아버지를 빼내려고 하다가 대동맥이라도 다처서 피를 흘리게 되면 어떻게 해요?”“사람을 구하려는 거예요? 아니면 죽이려는 거예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벤츠 차량의 골격이 다시금 흔들리며 아래쪽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왈칵!의식을 잃은 노인은 거대한 철골 덩어리에 몸이 눌려 본능적으로 피를 토해내었다.하현은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여기 누구 좀 도와주시겠어요?”“우리 할아버지 좀 살려주세요!”노인의 안색은 더욱 나빠졌고 벤츠의 구겨진 철골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주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뿐이었다.트럭이 폭발하기도 전에 철골이 누르는 압력을 구겨진 벤츠가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그러면 노인은 구조되기도 전에 압사할 것이다.그때가 되면 119가 와도 아무 소용이 없다.울먹이는 여자를 보고 주변에서 동영상을 촬영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카메라를 끈 채 불안하고 허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몇 명은 앞으로 나서려다 끝내 망설이며 발걸음을 움직이지 못했다.그들도 모두 잘 안다. 부자인 것 같은 이 노인을 구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를.하지만 상황이 너무나 위급했다.만약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같이 압사된다면 그야말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은, 아니 모두를 잃는 것이었다.삐걱삐걱!바로 그때 벤츠의 철골이 다시 거친 소리를 내며 무너질 듯 주저앉으려고 했다.의식을 잃은 노인은 고통스럽게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입가에는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이를 본 여자는 더욱 일그러진 얼굴로 안타까워했다.그녀는 주위에 있는 건장한 남자들을 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저기요! 제발 우리 할아버지 좀 살려주세요!”“도와주신다면 천만 원씩 드릴게요!”“아니, 일인당 일억씩 드릴게요!”보헤미안 옷차림을 한 여자의 말에 사람들은 이들이 정말 부자라는 생각에 더욱 주저하는 내색을 비췄다.하지만 그럴수록 아무도 감히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감히 나섰다가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괜히 역정만 듣게 되고 안 좋은 일이 엮이기만 할 뿐 아닌가?만약 이 사건에 명문가들의 원한이 뒤섞여 있다면 그야말로 괜히 나섰다가 된통 당하게 되는 것이다!이 광경을 보고 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설유아는 재빨리 그를 끌어당겼다.“형부, 왜 그러세요?”하현은 낮은 목소리로 말
하현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설유아, 날 믿어. 이 차도, 그리고 이 목걸이도 어쩌다 그냥 들어온 것뿐이야.”“다른 사람이 나한테 사과의 의미로 준 거야.”“알았어요, 알았다구요. 형부,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형부가 언니를 위해 이런 걸 준비했다고 해서 화낼 사람 아무도 없어요.”“이제 곧 결혼기념일이잖아요.”“큰 선물을 준비해서 이참에 당연히 재결합까지 가야죠!”이 말을 한 순간 갑자기 설유아의 마음 저 깊은 곳이 아려왔다.그리고는 목에 걸려 있던 까르띠에 목걸이를 풀었고 아쉬운 표정을 뒤로하며 선물 상자 속에 넣었다.하현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입을 열었다.“뭐해?”“뭘 하긴요?”설유아는 콧방귀를 뀌며 입을 열었다.“언니 물건이니까 돌려줘야죠. 그런데 형부, 가끔은 좀 빌려 쓸 수도 있어요.”“나도 이건 탐이 나지만 언니 마음을 상하게 할 순 없어요.”말을 하면서 설유아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이 물건이 정말 하현이 자신에게 주는 것이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여주인공이 아니라 단지 여주인공 뒤에 있는 어린 소녀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러니 유리 구두는 반드시 여주인공에게 돌려줘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불경한 죄를 얻게 된다.하현은 이 모습을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처제한테 주는 거라고 말했잖아. 정말로 처제한테 주는 거야.”“어서 집어넣어. 언니도 절대 뭐라고 하지 않을 거야.”“결혼기념일엔 내가 따로 준비하면 돼!”설유아는 하현의 말이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까르띠에 목걸이에 미련이 남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단호하게 선물 상자를 닫았다.“오늘 형부가 나 때문에 진홍헌의 얼굴을 때린 일은 비밀로 할게요.”“아마 언니가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언니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세요!”설유아는 주먹을 쥐며 위협적인 자세로 말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절대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