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서천에는 일이 있어서 온 거예요.”반태승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무슨 일이길래 자꾸 거기로 가길 가. 아무래도 너 거기에서 어떤 여자를 안 모양인데, 맞지?”반승제는 가슴이 턱 막혔다. 반태승이 정말 조사라도 해서 페니를 알아낸다면 그녀를 직접 불러갈 게 걱정됐기 때문이다.반태승의 수단은 반승제보다도 더욱 인정사정이 없었다.“오후면 돌아갈 겁니다.”담담한 말투로 말하고 전화를 끊은 그에게는 오랜만에 짜증스러운 감정이 몰려왔다.그는 성혜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대체 뭐 하려는 거야?」성혜인은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로 그가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제 합법적 권익을 지키려는 거예요.」반승제는 조금 우스워 났다.‘합법적 권익? 자기가 무슨 권익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고소 취하해.」「이유는요?」반승제는 이 가볍고 당당한 네 글자에 바로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러나 어째서인지, 이런 말투는 반승제의 인상 속에 있는 그 얼굴과 매치가 되지 않았다.‘이 여자 무슨 약이라도 잘못 먹었나? 아니면 다른 수단으로 내 주의를 끌려는 건가?’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BH그룹의 전문가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바로 제원으로 운전해갔다.한편, 성혜인은 반승제가 보내온 몇 통의 메시지를 보자, 왠지 곧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만약 반승제도 이 일에 참여하게 되면, 그녀의 신분을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그러나 김경자가 성씨 저택에 사람을 보내 소란을 피운 건, 분명 그녀의 잘못이다.그 시각, 김경자는 사람을 시켜 반태승을 데려오게 했지만, 돌아오는 건 오직 한 마디밖에 없었다.“자기가 자초한 일, 직접 해결하라고 해.”그가 뜻밖에도 집사람이 아닌 외부인 편에 서는 게 김경자는 화가 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그녀는 분노에 차 소파에 앉았고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마저 저릿저릿해 나는 것 같았다.‘망할, 이 죽을 영감탱이.’백연서도 옆에서 불안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성혜인
서천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하진희는 일찍이 자신이 하혈한 것을 보고는 아이가 더는 무사하지 않을 거라 판단해 일부러 반승제에게 와 수작을 부리는 것이었다.차에 치이어 몇 미터쯤 날아갔을 때, 사실 그녀는 가벼운 상처를 입은 게 다였다. 하지만 아직 배에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바로 배를 움켜잡으며 연기를 펼쳤다. 발 주변에는 온통 피로 흥건했다.“내 아기! 내 아기, 반 대표님! 저한테 아기를 주셔야 해요, 제 인생은 모두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요! 아니면 60억을 주셔야 할거예요!”반승제는 평생 이토록 뻔뻔한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곧장 하늘에 리조트로 돌아가 책임자에게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지극히 안 좋은 환경에서는 교활하고 악한 사람들이 쉽게 생기는 법이다. 그러나 하진희가 이 정도로 교활한 짓을 한 건, 서천의 책임자들도 마냥 두고 볼 수 없었다.반승제는 서천의 귀한 손님이었다. 일단 그가 진짜 화라도 내는 시에는 개발이고 뭐고 전부 중단되어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지장이 갈 게 뻔했다.몇 명의 책임자들은 분개하며 곧바로 임동원을 해고하며 이곳과 멀리 떨어지라고 경고했다. 반승제는 혼자 로비에 앉아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하도 무거워 누구도 감히 임씨 집안을 위해 한마디 더 사정할 수 없었다.모두들 큰 산을 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반승제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더니 담담하게 불을 붙였다.서천의 책임자는 임동원을 보내고 사람을 시켜 하진희를 병원에 데려가게 했다.그러나 하진희는 계속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주변 모든 이들에게 반승제가 자신을 쳤다고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마지막에 가서 그녀는 더욱 엉뚱한 말을 했는데, 그건 바로 배 속의 아기가 반승제의 아이라는 것이었다.마른 몸에 조그맣게 생긴 얼굴, 신랄하고 까칠한 성격, 게다가 공부도 해본 적이 없는 그녀를 반승제 같은 사람이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는가.하지만 하진희는 어디서 온 자신감인지, 늘 자신이 그와 엮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이제
신이한의 마음속에는 성혜인의 정체가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속셈이 있었다.이미 지난번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던 그는, 이번에는 반승제에게 이 미인을 뺏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반 대표는 윤단미 씨를 좋아하잖아! 이렇게 된 거, 그 사람이랑 잘되라고! 페니 씨는 반씨 집안에 속하지 않아도 되니까.’신이한은 미리 준비해둔 개인 메이크업 실로 성혜인을 데려갔다.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손길을 거쳐 그녀의 얼굴에는 많은 여드름이 그려졌다. 또 그녀는 두꺼운 모자에 옅은 갈색에 초록색이 있는 옷을 입어 정말 추할 정도였다.성혜인은 거울 속의 자기를 바라보았다. 앞머리는 가려지고 검은 뿔테 안경까지 끼니 입과 몇몇 ‘여드름’만 보일 뿐, 다른 곳은 잘 보이지 않았다.신이한은 그녀의 등 뒤에 서서 혀를 차며 감탄했다.“아버님이 페니 씨 앞에 있다 해도, 알아보지 못하겠어요. 가서 말할 때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면 돼요.”성혜인은 시계를 힐끗 보더니 사람들이 기다릴 것 같아 얼른 그림을 들고 일어났다.“먼저 가볼게요.”“데려다줄게요.”신이한 같은 사람이 이런 재밌는 광경을 놓칠 리 없었다.차가 윤씨 저택에 도착하자 성혜인이 먼저 혼자 내렸다. 신이한과 함께 내리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게 걱정됐기 때문이다.그림을 들고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20여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을 발견했다.윤씨 저택에서는 아주 크게 자리를 마련해놨는데 중간에 있는 4m 정도 되는 책상에는 감정사가 앉아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죄송합니다, 제가 늦었습니다.”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고 모두의 시선을 무시한 채 책상으로 걸어갔다.김경자는 그녀의 차림새를 보고는 바로 비웃었다.“성혜인, 이건 대체 무슨 짓이냐?”“전염병에 걸렸어요.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옮길까 봐 그런 건데, 혹시 개의치 않으신다면 그럼...”그녀는 마스크와 모자를 벗으려는 모션을 취해 보였다.그러자 김경자가 갑자기 그녀를 꺼리며 의자에 앉아 차갑게 콧방
윤단미의 얼굴에는 마지막 남은 핏기마저 사라졌다. 그녀는 정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만만한 줄 알았던 성혜인이 한마디 반박도 못 하게끔 말하리라 누가 감히 상상했겠는가.주변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나도 일찍부터 말하고 싶었어. 윤단미의 행동은 불륜이 맞다니까.”“아내 앞에서 자기 목걸이 자랑이나 하고, 정말 천하기 짝이 없다니까.”“윤씨 집안은 재벌도 아니면서, 뭐가 저렇게 당당한 것인지.”윤단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원망에 가득 찬 눈으로 성혜인을 바라보았다.‘이 못생긴 게 감히 나를 비웃어? 천한 년, 죽어 마땅할 년!’버티기 어려웠던 윤단미는 당장이라도 성혜인의 뺨을 내리치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반드시 참아야만 했다.이런 중요한 타이밍에, 김경자가 나서서 윤단미를 위해 주변의 분위기를 풀었다.“됐습니다. 오늘 밤은 그림을 감정하기 위해 모인 자리인데, 불필요한 말은 해서 뭐합니까?”성혜인은 가볍게 웃더니 감정사를 바라보았다.감정사는 기침을 몇 번 해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윤단미는 난감함과 어색함에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지난번 그녀가 반태승에게 당한 일은 포레스트에서 벌어진 일이라 누구도 알지 못했다.하지만 오늘 못난이같이 보이는 성혜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사실을 폭로해 자신을 난감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다짐했다.‘반드시 기회를 찾아 네년에게 복수하고 말 거야.’한편, 긴 책상 앞에서 감정사는 자세하게 관찰을 시작했다.10분 정도가 지나고, 그는 두 그림에 대한 관찰을 끝냈다. 그러고는 윤단미를 힐끗 쳐다보았다.“윤단미 씨의 그림이 진짜이고 찢긴 그림은 가짜입니다.”성혜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결과는 그녀가 예상한 대로였다.감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경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성혜인, 할 말 더 있어?”김경자도 이렇게까지 난리를 피운 게 조금 창피하긴 했다. 자신은 성혜인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으니까
그러나 주영훈은 두 그림을 동시에 내려놓더니 찢긴 그림만 들어 올리며 말했다.“누가 찢은 겁니까? 내가 한 달 넘게 그린 건데. 정말 보는 눈도 없군요.”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성혜인을 바라보았다.“누가 찢은 거냐?”성혜인은 김경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김경자의 얼굴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선생님, 무슨 뜻입니까? 설마 이 그림이 진짜라는 말씀입니까?”주영훈은 눈살을 찌푸렸다.“제가 직접 그린 그림인데 어떻게 가짜일 수 있겠어요? 사모님, 제 그림을 찢어버렸으니 당연히 배상하셔야죠. 이 그림은 지난번 경매에서 600억을 준다는 사람한테도 주지 않은 겁니다.”그는 조금 기분이 상한 듯 그림을 말았다.“이렇게 안목이 없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왜 고소를 당했는지도 이제야 알겠네요. 위조품을 진품으로 여기다니, 물고기 눈알을 진주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시고 말 겁니다!”김경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윤단미 역시 어리둥절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내가 산 게 가짜라고? 그럴 리가! 1200억이나 쓴 건데!’1200억은 윤씨 집안을 놓고 말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그녀는 김경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돈을 쏟아 받쳐 사들인 것이었다.“선생님, 다시 한번 잘 봐주세요.”주영훈은 그녀를 힐끗 째려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당시 너를 내 제자로 들이지 않은 것은 네 심술궂은 마음 때문이었다. 다행히 제자로 안 들였으니 망정이지,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려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가짜로 사람을 속여 내 피땀으로 만든 작품까지 훼손하게 하다니, 그건 너 역시 안목이 없다는걸 설명하는 거지.”주영훈은 그림을 들고 뒷짐을 진 채 곧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앞으로 다시는 제 작품을 두 분께 팔지 않겠습니다.”그리고 이내 그는 감정사를 가리켰다. 감정사는 하마터면 그의 손가락에 얼굴이 찔릴 뻔했다.“그리고 당신, 감히 내 작품이 위조품이라고 말해? 사기만 칠 줄 알면서 도대체 어떻게 감정사가 된 건지
목이 너무 강하게 졸리고 있는 탓에 성혜인은 숨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반승제는 얼굴이 왜 이 모양이 됐는지, 갑자기 앞머리와 안경은 왜 꼈는지 따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녀를 싫어했다.또 평소와는 다른 촌스러운 옷차림까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 모든 행동에, 이것 역시 그녀가 일부러 수작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재밌어?”그의 손목에는 선명한 핏줄이 솟아나 얼마나 큰 힘을 쓰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정도였다.목이 졸린 성혜인은 정말 금방 죽을 것 같았다.그녀는 반승제의 고운 두 손을 보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감미로운 입술로 몸을 쓸어내리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성혜인은 이대로 질식해버릴 것 같아 급히 그의 손을 때렸다.“성혜인, 네 아버지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있던데, 그 사람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으면 남은 시간 동안 조용히 분수를 지키면서 사는 게 좋을 거야. 수작 부리는 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거든.”그는 전에도 보지 못했던 차가운 말투로 말하며 마치 죽은 것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았다.목을 감고 있던 손이 풀리자, 성혜인은 힘이 풀려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심지어 목에서는 피 비린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콜록콜록...”반승제는 본체도 안 한 채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안은 주영훈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다. 김경자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었고 윤씨 집안 사람들은 손님들을 보내는 것을 책임졌다.윤단미는 줄곧 울고불고하고 있었다.그녀는 반승제가 온 것을 보고 마치 구세주를 찾은 듯 울며 그에게 달려갔다.“승제야, 흑흑...”그녀는 반승제의 품에 안기려고 했다.그러나 왠지 모르게 반승제는 성혜인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라 미간을 구기며 몸을 옆으로 비켰다.그 바람에 윤단미는 허공에 돌진하고 말았다. 그때, 임경헌이 느릿느릿 앞으로 걸어왔다.“형, 왜 이
반승제가 이렇게까지 화내는 모습을 그녀는 처음 보았다.성혜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신이한의 뒤를 따라나섰다.불빛이 밝은 곳에 이르자, 신이한은 그녀의 목에 난 자국을 발견했다.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반 대표가 조른 거예요?”성혜인은 차에 올라탔다. 목 안이 마치 불타오르는 듯해 말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네.”“아내한테 너무 잔인하네요.”성혜인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로 사람들을 압도하던 그녀는 갑자기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씁쓸할 뿐.“페니 씨, 제가 일찍 알려주지 않은 걸 탓하지 마세요. 반 대표 평소에는 고고한 자태를 하고 있어도, 사실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아요. 지금 제원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그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자신의 목을 만지고 있었다.“3년 안에 해외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곳에는 미치광이들도 정말 많고 서로 못마땅하게 여기는 게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반 대표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잘 섞어 들었어요. 사실, 저랑 몇몇 친구들은 그가 밖에 거액의 재산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추측하기도 해요.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한테도 모질고 다른 사람한테는 더 모질게 굴어요. 페니 씨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며 그 후과는 엄청날걸요?”신이한은 비록 다른 속셈을 하고 있긴 했지만, 전혀 함부로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조금 전에도 하마터면 목을 졸라 죽일 뻔했는데, 나중에 그녀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목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아파 급히 뭐라도 마셔 통증을 완화하고 싶을 뿐이었다.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본 신이한은 결국 길가에 차를 세워 약방에서 약을 사 왔다.차에서 내린 성혜인은 곧바로 한 덩이의 피를 토해냈다.목이 극한으로 심하게 졸리면 이렇게 될 수 있었다.신이한이 건네준 약
로즈가든에 돌아온 성혜인은 주영훈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온통 반승제에 대한 욕을 쏟아내고 있었다.“빌어먹을 자식! 찢어 죽이지 못한 게 한스럽다, 한스러워! 화가 나 죽겠어. 너랑 결혼한 걸 감사하게 여기지는 못할망정, 밖에서 헛짓거리하고 돌아다녀?! 내 제자의 명성이 바닥을 치게 하네! 바닥을 치게 해!”성혜인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스승이 제원에 딱 하루, 그것도 일이 있어서 갑자기 돌아온 것뿐인데, 자신 때문에 사람들 앞에 서게 된 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주영훈이 사람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반승제를 욕하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서둘러 사과를 건넸다.“스승님, 죄송합니다.”주영훈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머리에서 연기가 날 정도였다.“어떻게 할 생각이냐? 계속 속일 작정이야?”“모르겠어요.”핸드폰 너머로 주영훈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목은 또 왜 그래? 다 쉬어버렸네. 혹시 우는 것이냐?”성혜인은 두 번 기침을 하더니 너무 아파 조금 전의 약을 또 두 모금 마셨다.“아뇨, 목이 조금 아파서요.”“페니야, 너는 반승제를 좋아하냐?”성혜인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좋아한대도 사귈 수는 없을 것 같았다.아마도 그 미미한 설렘은 단지 그들이 매일 밤 친밀한 스킨쉽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끌어당기고 몸을 부딪치지 못해 안달 나 하는 반승제의 모습이 떠오르면 여전히 얼굴이 뜨겁고 심장이 두근거렸다.‘이게 좋아하는 건가? 아닐 거야. 이혼에 대한 결심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으니까.’“그럼 반승제 그 녀석은 너를 좋아하냐?”“아뇨.”그녀의 대답은 빨랐다. 반승제의 옆에는 윤단미가 있으니 말이다.“그럼 너도 좋아하지 말렴. 찾으려면 일편단심인 남자를 찾아. 승제는 확실히 뛰어난 사람이 맞긴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들 네 것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알겠습니다, 스승님.”“너도 네 생각이 다 있을 테니 나도 더 말은 하지 않겠다. 이 그림은 내가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