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시환은 순간 말문이 막혔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뭐가 이상한지 몰랐다.온시환은 떠나는 반승제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온시환은 돌아서서 아직 소파에 앉아 있는 서주혁을 바라보며 물었다.“주혁아, 승제가 왜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 드디어 성혜인의 실체를 다 알아차리고 이제 사업에만 몰두할 생각인가?”서주혁은 대꾸하지 않고 머리를 수그리고는 앞에 있는 바둑판을 계속해서 묵묵히 바라보았다.반승제는 BH 그룹에 도착했고 고위층 인사들이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반승제는 심인우에게 처리한 서류를 건네준 뒤 바로 BH그룹의 고위층 인사들을 조직하여 회의를 열었다.배현우는 오늘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성혜인을 돌려보낸 후로 줄곧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반승제는 자리에 앉아 펜을 돌리며 고위층 인사들의 발언을 듣고 있었다.고위층 인사들은 모두 안절부절못했다.오전까지만 해도 반대표가 부축되어 떠나는 것을 보았는데 저녁에 갑자기 회사에 돌아와 아무 일도 없는 듯 회의를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고위층 인사들은 불똥이 자신한테 튈까 두려워 아무도 감히 반승제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못했다.반승제는 회의에서 다소 냉랭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가 제출한 건의는 모두 문제의 핵심에 적중했다.반승제는 몇몇 고위층 인사들을 적절히 비판한 후에야 펜을 내려놓았다.“회의는 이쯤에서 마칠게요. 영업팀 쪽에서는 설기웅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자세한 자료를 작성해 제출하세요.”말을 마친 반승제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다른 사람들은 아직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움직이지도 못했다.회의실 문이 닫히자 그들은 비로소 죽음의 문턱에서 구조된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영업팀 쪽에 연락해 빨리 계획을 세우라고 당부했다.반승제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자료를 계속해 처리했다.심인우도 그의 곁에 서서 묵묵히 자료 정리를 도와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심인우는 심지어 반 대표가 틀림없이 일로 자신을 마비시키리라 생각했다.하지만 성혜
설인아는 독기 품은 눈빛으로 성혜인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엔디가 방문을 열면서 등을 켰고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여인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성혜인은 요즘 청각이 굉장히 예민해져 발소리만 들어도 이 사람이 배현우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누구세요?"그녀는 이불을 젖히고는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설인아와 엔디는 모두 침대 옆의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지만 성혜인의 눈빛은 그들은 향하지 않았고 오히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설인아는 살짝 놀라더니 갑자기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어머나, 성혜인 씨 설마 눈이 먼 건 아니죠? 설마 나한테 머리 맞아서 그런 건 아니겠죠? 참 정말 불쌍하네요.”그녀는 일부러 과장되게 말하고는 살며시 다가가 성혜인의 바로 앞에서 손을 들어 휘저었다.성혜인은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다.엔디도 성혜인의 눈이 실명한 것을 몰랐기에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설인아는 눈이 먼 성혜인이 자기에게 위협되지 못할 것 이라는 생각에 맘속으로 한없이 기뻐했다.설인아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성혜인의 따귀를 한 대 후련하게 때렸다.성혜인은 앞이 보이지 않아 상대방이 어떤 수를 쓸지 전혀 알 수 없었다.성혜인은 얼굴을 호되게 얻어맞았고 설인아의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들렸다.“성혜인 씨, 정말 폐인이 되었네요. 혜인 씨 눈은 제가 보이지 않게 만들었지만 보시다시피 저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어요. 저의 큰 오빠와 작은 오빠가 저를 보호해 주거든요. 게다가 반승우 씨도 제가 여기 온 이유를 뻔히 알면서도 들여보낸 걸 보면 혜인 씨를 괴롭혀도 된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참 불쌍해요. 당신은 반승우 씨를 택했지만 그는 당신을 별로 상관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설인아는 성혜인의 눈을 멀게 만든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큰 성취감이 들었다.설인아는 성혜인이 다른 남자도 유혹하지 못하게 눈뿐만 아니라 그녀의 얼굴도 가만 놔두려 하지 않았다.“성혜인 씨, 저는 당신의 눈을 멀게 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얼굴까지 망가뜨릴 예정이에요. 천한 당신이 앞으로
설인아는 한이 서린 눈빛으로 긴 단검을 손에 들고 다가갔다.성혜인의 옆에 다가선 후 소리를 질렀다.“죽어! 아무도 내 삶을 망쳐 놓을 순 없어!”성혜인은 바람이 살랑 스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아플줄 알았는데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따스한 무언가가 그녀의 뺨에 떨어졌고 피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피였다. 바닥에 피가 흘러내렸다.성혜인 위쪽에서 설인아의 손에 든 칼은 이미 엔디의 목에 찍혀 있었던 것이다..핏물은 칼날을 따라 성혜인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엔디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설인아를 쳐다봤다.설인아는 놀라서 손에 쥔 칼을 내려놓으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뒤로 물러섰다.예전에는 설인아가 누구를 상대하고 싶었을 때 모두 엔디에게 맡겼지만 이번에 그녀가 상대하려는 것은 엔디이기 때문에 직접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엔디가 정말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이번 일은 설인아가 일찍부터 계획한 것이다.설인아는 아무도 믿지 않고 자신만 믿고 있었다.자신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죽어야만 그녀가 설씨 가문 아가씨라는 신분을 지킬 수 있었다.이 피비린내 나는 광경에 설인아는 놀라서 몸을 바르르 떨었고 게다가 곧이어 엔디가 독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보고 설인아는 순간적으로 비명을 질렀다.성혜인은 침대 옆에 앉았는데 그의 콧속은 온통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로로 가득했다.눈살을 찌푸리던 성혜인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려는데 순간 비명이 들렸다.“성혜인 씨, 뭐 하시는 거예요? 죽이지 마세요! 제발 저를 죽이지 마세요!”지금 설인아는 정말 놀랐고 그녀의 얼굴에도 피 몇 방울이 묻어있었다.그녀가 칼을 엔디의 목을 찔렀을 때 실수로 얼굴에 튄 것이다.설인아는 놀란 나머지 두 다리에 힘이 빠져 땅에 풀썩 주저앉았고 이내 다시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그리고 설인아는 뒤로 물러나면서 구걸하는 척했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성혜인은 자신의 옆에 누군가 누워 있는 것을 느꼈다.성혜인은
“인아야 괜찮아?”설기웅은 급한 걸음으로 다가가 설인아를 안아줬다.설인아 정말 놀랐다. 머릿속에는 온통 엔디의 눈빛뿐이었다.엔디는 며칠 동안 자신에게 부드럽게 키스하던 여자에게 살해 당할 것을 꿈에도 생각 못 했을 것이다.날카로운 칼날이 엔디의 목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엔디는 그녀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죽기 전 엔디의 눈빛은 믿을 수 없는 눈빛이었으나 미움은 없었다.설인아가 엔디를 죽이는 속도가 원망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다.“오빠, 깜짝 놀랐어요. 성혜인 그 미친 여자가 정말 미쳤나 봐요. 다시는 보기 싫어요. 우리 빨리 집으로 가요.” 예전에 설인아가 자신의 신분을 몰랐을 때 그녀는 꿈에조차도 제원에 남기를 원했고 성혜인을 난처하게 했고 곤란하게 만들었다.하지만 어렴풋이 성혜인의 신분을 짐작한 설인아는 설기웅이 성혜인을 싫어하길 바라며 심지어 죽이고 싶었다.지금 설인아가 연약하고 가련한 척하며 겁에 질린 모습은 정말로 설기웅을 힘들게 하고 걱정하게 했다.“겁내지 마. 괜찮아, 큰 오빠가 여기 있잖아.”설인아는 설기웅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설기웅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그녀를 다독이면서 한편으로 배현우를 바라보았다.“성혜인 씨를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에요?”이 상황을 보면 설기웅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설기웅은 어차피 반승제와 사이가 틀어졌기에 반승제의 복수가 두렵지 않았다.배현우는 먼저 위층으로 향했다.엔디의 시체가 아직 방안에 누워있었고 곳곳에 핏자국이 가득했다.그러나 성혜인의 몸은 깨끗했다.그녀는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성혜인은 욕실에서 나와 침대 쪽을 유의하여 그쪽을 피해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지금 그녀는 창가 옆에 있는 소파에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배현우는 사람을 시켜 시체를 밖으로 내보내고 하인을 시켜 바닥의 핏자국을 닦게 하고는 소독하라고 지시했다.성혜인은 줄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창밖을 내다보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분명 성혜인은 아무것도
물을 다 쏟아부은 설기웅은 성혜인 몸에서 손을 떼며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곧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설기웅은 설인아를 아래층 소파에 내려놓았다.설인아는 이내 잠들었고 잠든 사이에도 울고 있는 설인아를 보면서 설기웅은 그녀가 오늘 밤에 얼마나 놀랐을까 하는 걱정만 가득했다.설기웅은 설인아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배현우는 별장 문을 나서는 설기웅을 보고 있자니 짜증만 났다.왠지 모르게 배현우는 설인아와 같은 여자를 싫어했고 심지어 설인아가 엔디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성혜인은 사람을 너무 화나게 하는 재주가 있어 배현우도 그녀를 싫어했다.하지만 배현우는 성혜인이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성혜인은 지금 반승제와 사이가 틀어져 모든 일에 담담해 졌기 때문에 스스로 먼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배현우는 대개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는 설기웅의 복수를 막지 않았다.그녀를 언어장애인으로 만들어 영원히 울지도 날지도 못하는 새로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반승제는 오늘 밤 플로리아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지만 비행기에 탑승할 때쯤에 후회하기 시작했다.반승제가 올라탄 차는 끝내 방향을 바꾸어 다시 네이처 빌리지로 향했다.겨울이와 흰둥이는 멀리서부터 달려와 반승제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특히 겨울은 유난히 그를 반겼다.반승제 거처에서 자기가 인기 없다는 걸 눈치챘는지 일부러 몇 미터 거리를 두고 꼬리를 흔들었다.반면 흰둥이는 대담하게 자기 몸을 반승제의 발끝에 대고 비비적거렸다.반승제는 심인우의 손에서 장갑을 건네받아 끼고는 겨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겨울은 반승제의 뒷모습을 보면서 소리를 더 크게 질렀다.자기 주인은 왜 아직도 오지 않는지 생각하는 듯했다.이번 성혜인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은 동거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매번 일이 좋아지려고 할 때마다 순식간에 상황은 더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혜인 씨는 다시 다시 오지 않을 거야.”성혜인은
장미는 전화 건너편에서 살며시 웃었다.“알았어. 전에 메일을 보냈었는데 지금까지 체크하지 않은 걸 보고 지금 너한테 전화하고 있는 거야. 설 회장님이 잃어버린 딸이 제원에 있을 가능성이 커 보여.” “응.”반승제는 전화를 끊은 후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너무 오랫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반승제는 머리가 아플 뿐이다.하지만 반승제의 몸은 태엽에 감긴 듯 머리가 아팠고 그외에는 상태가 멀쩡했다.그는 스카이웨어에 가서 온시환이 말한 그 신상을 보았다.스카이웨어 여자들의 질은 매우 높았고 마침 온시환 옆에도 한 명 앉아 있었다.반승제가 의자에 앉자마자 흰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소녀가 그의 옆에 앉았고 소녀의 청순한 외모에 머리를 뒤로 하나 묶었고 눈빛도 맑았다.“반 대표님, 드세요.”소녀가 머리를 돌려 부드럽게 그를 바라볼 때 반승제는 곧 몸이 굳어졌다.이 소녀는 생김새와 분위기 모두 성혜인하고 너무 닮은 것이다.하지만 소녀는 고등학교 때의 성혜인과 더 비슷했다.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반승제는 고택에서 할아버지가 소장하신 성혜인의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그때 성혜인은 흰색 반소매를 입었고 머리를 뒤로 하나 묶은 채 꽃다발을 품에 안았다.수능 끝나고 학교에서 찍은 것으로 보였다.그 사진은 성혜인이 유일한 고등학교 사진일 수도 있어서 반승제가 몰래 소장했기에 아무도 몰랐다.지금 이 소녀를 보고 그는 순간적으로 고등학교 시절의 성혜인을 보는 것 같았다.깔끔하고 부드럽고 웃는 모습도 너무 예뻤다.그러나 반승제는 고등학교 때 성혜인을 전혀 몰랐다.성혜인을 아는 사람은 반승우였다.하지만 반승제는 자신이 무엇을 하든 성혜인의 마음속에는 반승우만 있을 거라 생각했다.반승제가 BH 그룹을 포기하고 성혜인을 플로리아로 데려가려고 해도 그녀에게는 반승제가 수치스러운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했했다.‘어찌 나의 감정과 존엄을 모두 짓밟는 잔인한 여자가 있을 수 있는지...’“반 대표님, 기분이 안 좋으세요?”여자는 오늘 이곳에
반승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지은은 놀랐고 이내 얌전하게 그의 품에 기댔다.“반 대표님, 포도 드실래요?”이지은의 말투는 부드럽고 맑았다.설우현은 여성분의 애틋한 목소리를 듣고 순간 그의 옆에 여자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설우현은 욱했고 성혜인 대신 화가 났다.“벌써 다른 여자가 생겼어요? 성혜인을 사랑했던 거 아니에요?”반승제는 손끝으로 이지은의 턱을 톡 쳤고 냉랭한 눈빛으로 답했다.“이젠 싫어졌어요. 더 말 잘 듣는 애로 바꿨거든요.”설우현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말했다.“그래서 좋아한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에요? 저번에 성혜인 때문에 하마터면 나와 큰 형님을 죽일 뻔했잖아요. 반승제 씨, 마음이 너무 빨리 변한 거 아니에요?”반승제는 대답했지 않았다.반승제의 마음이 변하는 속도가 과연 빠를까?성혜인보다 빠르지는 않았다.그녀는 반승제와 만나서 협상할 때 마저도 반승우의 품에 안겨 있었다.반승제가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말이다.반승제는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했지만 성혜인은 듣지도 않고 그에게 모진 말만 했다. 반승제는 목구멍에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 더 차갑게 말했다.“네, 빠르긴 한데 성혜인만큼 빠르지 않을걸요.”반승제는 전화를 끊고 바로 이지은을 꼭 껴안았다.이지은은 처음엔 마음이 달콤했지만 점점 그녀의 허리에 힘이 점점 들어갔고 이윽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고 단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승제와 더 가까이 있었다.온시환은 반승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옆에 있는 여자와 농담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반승제에게 주의를 주었다.“마음에 들면 지은 씨를 네이처 빌리지로 데려가는 거 어때? 위로도 해주고 좋잖아. 네이처 빌리지에 있는 그 물건들은 버릴 때도 되지 않았어?”“맞아, 버릴 때가 되었어.”예전에 성혜인과 동거할 때 그녀의 물건을 방안에 가득 넣었다.반승제의 옷장에는 성혜인의 물건이 절반이나 차지했었는데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경이 되었다.품에 안긴 이지은은 그 틈을 타 고개를
반승제는 문득 성혜인과 조용히 서재에서 업무를 보던 모습이 떠올랐고 그때 방 안에는 온통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뿐이었다.반승제는 회의를 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보면 성혜인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차갑고 얌전한 모습으로 서류를 쳐다보고 있었다.반승제는 과거를 되돌려 보고는 심장이 문득 아픈 감을 느껴 저도 모르게 주먹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아침에 일어난 일에 반승제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온 하루 애써 침착한 척했다.성혜인에게 이미 대역으로 놀아났으니 반승제는 더는 낭패를 보고 싶지 않았다.인적이 드문 깊은 밤, 반승제는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보며 심장이 아프기 그지없었다.반승제는 천천히 성혜인의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엎드렸다.성혜인의 의자는 반승제의 의자와 달리 더욱 작았다.성혜인은 차분한 성격이지만 소녀처럼 귀여운 물건들을 좋아했고 심지어 의자 쿠션도 핑크였다.이 의자 쿠션은 성혜인은 인터넷에서 직접 고른 것이다.그러나 반승제는 물건이 너무 늦게 도착할까 봐 심인우에게 직접 백화점에 가서 같은 것으로 사오라고 했고 한 시간도 안 돼 그녀 앞에 나타났다.성혜인은 그날 밤에 바로 사용할 수 있었고 쿠션이 부드럽다고 칭찬하며 반승제에게도 하나 더 사서 쓰라고 말했다.핑크 물건을 반승제가 쓸 리 없었다.반승제는 책상에 엎드렸고 이윽고 호흡이 무거워지면서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방문 밖에서는 하인들이 물건을 모두 버리느라 정신없었다.성혜인은 창문 쪽 소파에 웅크리고 있었고 창문은 열려 있었다.배현우 그녀가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을 철근 여러 개로 칸막이를 해놓았다.그녀는 밤 바람을 느낄 수 있었지만 한 손만 내밀 수 있었다.바람이 살랑 뺨을 스쳤고 성혜인은 이마에 땀이 날 정도로 아팠다.목구멍이 너무 아팠다.목구멍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너무 아팠다.성혜인은 짐작했다.설기웅과 배현우의 대화에 의하면 설기웅은 그녀를 언어장애인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그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성혜인의 목구멍은 말 못 할 정도로 부어올랐다.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