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자신은 임신한 언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삼촌까지 다치게 했다.남자가 한숨을 쉬며 아이의 볼을 어루만졌다.“괜찮아. 괜찮으니까 울지마...”그러나 아이는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몇몇 건달들이 마음 아픈 장면을 보기 싫어 바로 여자아이를 잡아 데려가려 했지만 삼촌이라는 사람이 아이의 손을 잡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는 손을 놓기라도 하면 여자아이가 정말로 어딘가 팔려 갈까 봐 겁이 났다.“삼촌, 놔줘요.”여자애는 심지어 그에게 부탁하고 있었다.건달들도 경찰이 올까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그들이 야구방망이로 남자의 팔을 부러뜨리기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위기일발의 순간, 성혜인이 저 멀리서 외쳤다.“빚진 돈이 얼만데요? 제가 대신 갚을게요.”그녀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는 지친 몸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왔다.건달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향해 눈을 돌렸다가, 그녀의 비대한 몸을 보고 다시 험악한 얼굴을 했다.“이 여자가 정말. 여기서 진료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무려 10억이야. 네가 어떻게 그걸 갚을 수 있겠어?”성혜인이 배 위에 붙였던 인공피부를 떼어냈다. 배가 다시 원래의 모양을 되찾았지만 몸은 여전히 뚱뚱한 모습이다.그녀가 천천히 여자아이 곁으로 걸어가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10억이라고요? 제가 갚아드리죠. 이 아이 열 명을 팔아도 갚지 못한다고요. 그럼 차라리 제가 갚는 것이 그 쪽한테 훨씬 이득이지 않겠어요? 지금 제 친구가 오고 있어요. 친구가 오면 바로 수표 써드리죠.”“뚱녀야, 네가 우릴 속이는 거면 어쩔 건데? 몰래 경찰에 신고한 거면?”“그럼 경찰이 오면 절 인질로 잡으세요.”그녀가 담담하게 말하더니 머리를 감싸쥐고 있는 중년 남자를 응시했다.그의 머리에선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성혜인이 여학생에게 말했다.“일단 네 삼촌 진료소로 데려가. 처치 좀 하게.”여학생이 성혜인의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불러있던 그녀의 배가 갑자기 날씬
그 자리에 남겨진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여자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삼촌. 저 지금 꿈꾸고 있는 거 아니죠? 이거 10억이에요? 천 원이나 만 원이 아니라 10억이란 말이에요?”중년남자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는지 두 볼이 상기되더니 이내 여자아이를 꽉 껴안았다.“장하다, 장해. 착한 일을 많이 해서 하느님이 널 구원해 주시러 온 거야!”이 말을 하던 그는 다 큰 남자답지 않게 눈물을 줄줄 흘렸다.옆에 있던 의사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저도 몇 년 동안 이 보건소에서 일하면서도 그렇게 큰돈은 못 벌어봤는데, 정말 운이 좋은 분들이시네요.”“삼촌, 10억은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거예요.”“바보야, 너더러 갚으란 말도 안 했는데 그런 걱정을 왜 해. 넌 좋은 아이고 저분도 좋은 사람인 거야. 그러니까 이제 만나게 되면 정말 고맙다고 전해주면 돼. 다른 건 다 필요 없어.”여자아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성혜인이 떠난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봤다.귓가에 울려 퍼지는 그의 흐느낌 소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벅찬 행운이 그녀에게 주어졌음을 계속해서 말해주고 있었고 덕분에 마음속이 한겨울의 난로처럼 더없이 따뜻해 났다.오늘부터 사는 게 지옥일 줄 알았는데 천사 같은 언니의 도움으로 한순간에 운명이 뒤바뀌게 될 줄이야.이제 그녀가 나고 자란 곳인 제원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비록 엄마는 없지만 주위엔 여전히 많은 친구가 그녀를 버티게 해주고 있다.그러니 힘을 낼 거다. 열심히 살아서 언젠간 저 언니와 정상에서 만날 거다.한편, 성혜인은 강민지의 차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강민지는 거즈로 둘둘 감싸진 그녀의 손바닥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어젯밤에 경찰이랑 이 길을 따라 널 찾았었어. 그런데 그때 사람이 너무 몰려있었고 차도 심하게 막혔어. 한 임산부가 끌려갔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성혜인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민지야. 나 포레스트로 데려다줘. 지금
한편,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성혜인은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어 이실직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심지어 그 전화를 먼저 끊은 건 반승제였다는 것도.아무래도 이제 진짜 그녀를 원망하게 된 모양이다. 그런데 어젯밤엔 왜 찾아왔던 거지?성혜인은 시선을 떨군 채 뜨거운 김에 눈이 따가워 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반승제에게 제대로 설명해야겠다고 결심했다.따뜻한 물에 30분 동안이나 몸을 담그고 있었더니 그제야 몸이 조금 회복된 것 같았다. 성혜인은 만족스럽게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향했다.아래층으로 가자, 소파에서 신예준에게 연락을 하는 강민지가 보였다.아직도 야근한다는 신예준은 늘 그렇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젯밤에 왜 돌아가지 않았냐며 그녀에게 물었다.“혜인이 일이 아직 해결이 안 돼서. 나중에 찾으러 갈게. 예준 씨, 나 없다고 밥 거르지 말고 제때 챙겨 먹어. 일도 너무 힘들지 않게 쉬엄쉬엄 해.”신예준은 병상에 있는 조희서의 옆에서 죽을 든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조희서는 잘 요양한 덕인지 얼굴도 전처럼 창백하지 않았다.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신예준을 보고 있었는데 말하지 않아도 누구와 통화하냐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신예준은 그녀의 뜨거운 눈빛을 의식하고 말했다.“응. 알겠어. 그럼 이만 끊을게.”전화를 끊은 후 조희서는 언짢은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오빠. 누구야? 설마 또 그 여자야? 왜 내가 오빠 약혼자라고 말하지 않는 거야? 오빠 설마 그 여자 진짜 좋아하는 건 아니지?”조희서는 잔뜩 시무룩 해져서는 말했다.그러자 신예준은 손을 올려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그런 거 아니야. 희서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영원히 너뿐이야.”조희서는 그제야 입을 벌려 그가 건넨 죽을 받아먹었다.“그 여자가 오빠한테 너무 잘해주니까 그러지. 오빠가 분명히 말했어. 나 다 나으면 나랑 결혼하겠다고. 결혼 안 해주면 나도 수술 안 해. 말 바꾸면 나 그냥 죽어버릴 거야.”그 말에 신예준의 얼굴에 그늘이 지더니 죽
청천벽력이라도 들은 듯 성혜인이 안색이 파리한 채로 멍하니 있자 강민지가 대신 쪼그려 깨진 조각을 모았다.“내가 아까 한 말에 과장된 부분은 전혀 없었어. 차에 시동 걸릴 때 울기까지 했는데 그냥 가 버리더라. 내 생각엔, 정말로 너를 조금이라도 좋아했다면 절대 그럴 수 없어. 게다가 요즘은 설인아랑 가깝게 지내는 것 같던데...”성혜인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새 숟가락을 꺼내 눈앞의 죽을 먹을 뿐이었다.반승제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 어려웠지만, 그가 설인아와 만난다는 소식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사실 오해는 전부 해명할 수 있었다.“혜인아.”멍 때리는 성혜인의 눈앞에서 손을 휘젓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성혜인이 웃어보였다.“우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서. 내가 나중에 해명할게.”그 말에 강민지의 말문이 막혔다.“해명해도 안 들으면 어쩔 건데.”“그럼 인연이 아니라는 거지.”성혜인은 뱉은 말과 반대로 속이 문드러지는 중이었다. 그걸 아는지 강민지가 손을 꽉 붙잡았다.“요 며칠 시간 있으면 꼭 같이 있어 줄게. 만약 반승제가 진짜 태도를 안 바꾼다면 내가 무조건 더 좋은 사람 소개해 줄 거야. 그러고 보니까 온수빈도 괜찮던데? 최소한 부정적인 감정은 안 생기게 하잖아.”성혜인은 자신을 위해 일부러 하는 말이라는 건 알았지만 어떻게 답해야 할지는 몰랐다.다행히 강민지가 더 자세히 엮으려 하지 않았기에 조용히 죽만 먹을 수 있었다.아침 식사를 끝내고 났을 때 시계는 정확히 열 시를 가리켰다.배현우와 함께 했던 시간이 몸을 혹사시켜 성혜인은 여전히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하지만 그럼에도 성혜인은 배현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했다.만약 다정한 배현우가 사라진다면 나중에는 그 미친놈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때 강민지의 핸드폰이 울렸는데 발신인은 강민지의 아버지였다.“너 요즘 별 이상한 놈이랑 연애한다는 말이 들리는데. 거래처에서는 네가 어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걸 봤다고도 하고. 얼른 집에 들러서 해명해
성혜인이 손을 뻗어 반승제의 옷을 잡으려 했지만 그에 의해 제지되었다.“반...”한 글자 불렀을 때 반승제는 이미 엘리베이터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의 행동은 꼭 성혜인을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았다.설기웅은 여전히 성혜인의 옆에 선 채로 말했다.“저희 두 가문 요즘 혼담이 오고 가는 사이라서요. 양해 부탁드릴게요.”그 말을 한 설기웅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이 바닥에서 혜인 씨 명성 어떤지 모르세요? 반 대표님을 위해서라도 좀 멀어지셔야죠.”설기웅은 그대로 성큼성큼 멀어졌다.잠깐 멍하니 있던 성혜인이 정신 차리고 쫓아갔을 때는 이미 엘리베이터의 문이 거의 닫힌 상태였다. 반승제는 그 작은 틈새로도 성혜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이런 식의 태도는 성혜인으로 하여금 첫 만남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성혜인이 서둘러 버튼을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이미 내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전용 엘리베이터였기 때문에 성혜인은 탑승할 수 없었다.결국 직원 엘리베이터로 달려가 1층을 눌렀지만 반승제가 내릴 층은 지하 주하장이었다.양복을 입은 성인 남성 두 명이 들어간 엘리베이터는 조금 좁았다.반승제는 태연하게 앞만 주시하며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왼손은 아까 성혜인이 붙잡은 소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남은 온기를 찾으려는 것처럼... 그런 반승제의 미묘한 행동을 설기웅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주차장에 도착해 뒷좌석에 올라탄 순간 룸미러로 누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성혜인이었다.성혜인은 아직 다 낫지 않아 계단으로 내려올 때 또 넘어질 뻔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해 몸을 일으켰지만 자각하고는 억지로 눈을 뗐다.“출발하지.”거부할 수 없던 심인우는 그대로 엑셀을 밟았다.“반승제!”제대로 선 성혜인이 외쳤지만 차는 이미 주차장을 빠져나간 상태라 성혜인의 외침만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졌다.아까 일 층에 내려 반승제의 차를 보지 못해 지하로 급히 달려온 거라 성혜인의 온몸이 땀으로 젖는 것 같았다.비틀거리며 벽을
갑자기 안을 줄 몰랐던 반승제가 당황하며 설인아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설인아가 눈치껏 팔을 풀더니 고개를 들어 말을 걸어왔다.조금 어지러웠는데 손은 여전히 소매를 매만지는 중이었다.한참이 지나고 소매를 놓은 순간 설인아가 물었다.“여보, 오늘 나랑 저녁 같이 먹을래?”눈을 내리깐 순간 성혜인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금세 지워지고 말았다.“응.”설인아의 시선이 반승제를 거쳐 성혜인에게 닿았는데 그 눈빛에는 도발이 잔뜩 담겨 있었다.“그럼 위치는 오빠가 정해서 알려 줘.”성혜인은 설인아가 일부러 자기를 도발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 도발에 넘어갔다.결국 성혜인은 뒤돌아 엘리베이터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엘리베이터 문에 닫힐 때가 되어서야 겨우 몸을 뒤로 기댈 수 있었다.일 층에 도착하자 심인우를 마주쳤는데 커다란 꽃다발을 안은 심인우가 어색한 눈빛을 떨치지 못했다.“페니 씨.”물론 성혜인은 저 꽃의 주인이 자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그래서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피했다.꽃다발을 안은 심인우도 한동안 무어라 할 말을 못 찾았다.병실에 들어선 후 병실의 주인에게 꽃다발을 건넬 때까지 그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사람은 자기 상사의 아내고 이 꽃은 그 상사가 시켜서 가져온 것뿐인데 그 모습을 성혜인이 볼 줄은 몰랐다.설인아의 병실에서 반승제를 봤을 때 결국 말하고 말았다.“저 페니 씨와 마주쳤어요.”반승제는 그가 회사에서 마주쳤다는 줄 알고 별 반응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심 비서님, 근처에 괜찮은 레스토랑 있나 찾아봐 줘요.”“설인아 씨랑 가시려고요?”“네.”반승제는 입술을 짓씹으며 소매 부근을 봤다.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심인우는 또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반승제는 회사에 돌아와 업무를 보는 순간까지도 집중하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반승제는 못 참고 관제실로 향해 성혜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찾았다.성혜인은 BH그룹에 들어온 순간부터 침착했다. 얼굴에서 민망함
전화를 끊고 짧게 비웃은 반승제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신이한이 말을 이었다.“대표님께서 포기하셨다니까 저랑 페니 씨 일에 간섭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대표님이랑 설인아 씨가 약혼하실 때 저도 페니 씨랑 좋은 소식 들려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이 말을 들은 반승제는 그저 이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 신이한이 어디 반승우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인가?속눈썹을 내리깐 반승제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신도 성혜인을 잘 아는 건 아니니 어쩌면 성혜인이 그저 자기 같은 스타일을 싫어하는 것뿐일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 생각은 결국 자신과 밤을 보냈을 때 진심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반승우일지도 모른다는 곳까지 이르렀다.이 생각들은 반승제의 이성을 끊기게 하는 데 충분했다.반승제는 4억이라 쓴 수표를 신이한의 얼굴에 던지고 앞 범퍼가 움푹 파인 차를 끌고 떠났다.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던 신이한이 자기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잔뜩 붉어진 얼굴로 반승제의 차를 향해 중지를 세웠다.차를 몇백 미터 몰고 가던 반승제는 신이한이 안 보일 때가 되어서야 갓길에 차를 세웠다.바깥 공기는 더웠지만 차 안에는 에어컨이 있어 시원했다. 그러나 반승제는 여전히 밖에 있는 것처럼 제대로 숨 쉴 수가 없었다.좌석에 몸을 기대 멍때린지 한 시간이 지났을 때쯤 설인아에게서 전화가 왔다.어디냐 묻는 말에 곧 도착한다는 말을 남기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삼십 분이 더 지나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약속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나 늦은 시각이었다.설인아는 기분 나쁜 티를 전혀 내지 않고 반승제를 환영했다. 그뿐인가, 레스토랑에 미리 연락해 이벤트도 준비했다.반승제가 결단을 못 내리니 자기가 나서서 결정하게 해 주려는 것이었다.오늘이 지나면 성혜인이 반승제의 곁에 얼씬도 못 하게 할 작정이었다.뒷좌석에 앉은 설인아가 무슨 말이라도 해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했지만 반승제의 표정이 여간 차가운 게 아니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성혜인 곁에 있을 때만
장영희는 홧김에 테이블을 뒤집었고 위에 놓인 꽃잎들과 와인은 와르르 바닥에 쏟아졌다.레스토랑 경비원이 재빨리 들어섰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 나 혜인이 엄마야. 이 사람 내 딸 남자 친구라고.”장영희의 손끝은 자연스레 반승제를 향했으나 압도적인 그의 카리스마에 겁을 먹은 듯 이내 눈치를 보며 손을 거두었다.“다른 여자랑 데이트 중이니? 우리 혜인이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네가 자고 싶을 때 연락하는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큰 오산이야. 이대로는 안 되겠어. 정신적 피해 배상금 내놔.”그녀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섰다.다들 반승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던 터라 차마 못 들은 척 자리에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반승제는 싸늘한 눈빛으로 장영희를 바라봤고 겁을 잔뜩 먹은 그녀는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었다.“내 말이 틀려? 솔직히 자고 싶을 때만 혜인이 찾잖아. 너 때문에 나중에 시집 못 가면 책임질 거야?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위자료 내놔. 안주면 지금 당장 고소할 거야. 그리고 네가 우리 혜인이 감정을 갖고 노는 쓰레기라는 걸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거야. 내 딸이 망가졌는데 엄마로서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죽인다고 해도 두렵지 않으니까 마음껏 해봐.”그 말을 들은 설인아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얼굴은 한없이 차분했다.그녀는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들어보니 정말 너무하네요. 혜인 씨가 따님인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죠?”“넌 뭐야? 남 일에 참견하지 말고 꺼져.”장영희는 손을 들어 단숨에 설인아를 밀쳤다.뒤로 넘어지면서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자 ‘꽝’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진 설인아는 움직일 수 없었다.그 순간 장영희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보기와 다르게 연약하네. 살짝 밀었을 뿐인데 이렇게 다칠 일이야?’반승제는 자리에서 일
공지민은 섬에서 한 달을 푹 쉬었고 그 사이 연승혁의 상처도 조금씩 나아졌다.그녀는 텔레비전에서 염정아의 판결 결과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염정아는 카메라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분명히 이는 그녀가 선택한 결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운명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으니까.판결 결과를 본 날 공지민은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주변의 바람이 매우 거셌다. 그녀는 자신이 흘리는 눈물이 악어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염정아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자신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칼을 쥐여준 것처럼 느껴졌다.공지민은 입을 틀어막으며 울음소리가 흘러나오지 않게 참았으며 고통에 젖어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연승혁이 다가왔다.“지민아, 오늘 밤에 해산물 바비큐 할 건데 저번에 먹었던 킹크랩 또 먹을래? 이따가 나랑 시장에 가서 사 오자.”연승혁은 공지민 앞에 서서 그녀의 붉어진 눈을 보더니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 울었어?”최근 며칠 동안 연승혁은 매우 부드러워졌고 이전의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의 친구들이 여기 있었다면 아마 그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 바람이 너무 세서 눈에 모래가 들어갔어요.”연승혁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얼굴을 받쳐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혹시 뉴스 때문에 그래? 봤었어? 사실 무기징역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법정 쪽에 말대로라면 법정에서 자기가 직접 자백하며 죽는 걸 원했대. 아무도 살릴 수 없었어. 지민아,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오늘 밤에 뭐 먹을지 생각해 보자.” 공지민의 눈빛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오늘 밤 뭐 먹을지가 한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마음속에서 조롱이 커질수록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감동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의 목을 감싸며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연승혁의 눈빛이 깊어지고 손은 그녀의 허리에 닿아 한껏 힘을 주었다. 공지민은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연승혁은 웃음을 터뜨렸고
온시환은 일어나서 집을 나와 헬기를 타고 염정아의 집에 가기로 했다. 그녀의 집에 아이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으니까. 그가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옆에는 두 사람이 따라왔고 모두 그의 사람들이었다. 염정아의 집을 알아낸 후 그는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아래층 슈퍼마켓 사장님은 그들을 보고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염정아에게 부탁받고 왔다는 걸 듣고 몇 마디 더 묻고 나서야 방 열쇠를 건넸다. 온시환은 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문에는 작은 광고들이 잔뜩 붙어 있었고 집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그렇게 크지도 않아 보였다. 그는 열쇠를 꽂고 들어갔을 때 방 안에 있던 몇 명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일부는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었고 일부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온시환은 입을 열려고 하다가 이 아이들이 아마 죽음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아이만이 어느 정도 어른스러워 보였다. “아저씨, 엄마 아빠가 우리 보러 오라고 하신 건가요? 우리는 언제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어요?”온시환은 웃어보려 했지만 어떻게 해도 웃어지지 않았다. 염정아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고 곧 처형될 예정이다. 그는 정말 이 아이들을 모두 복지관에 보내야 할까? 그는 잠깐 망설였다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아이들 챙겨. 제원으로 간다.”만약 아이들을 이곳 복지관에 두면 이곳은 너무 멀어서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해도 알지 못할 수 있다. 차라리 제원 복지관에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온시환은 이 아이들을 직접 돌볼 고민도 했었지만 그들을 보면 염정아의 인생이 떠올랐다.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고 그걸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했다.그는 제원의 복지관에 기부할 수 있었고 매주 사람을 보내 아이들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자라도록 챙기고 학교에 보내어 나중에 직장을 찾아서 스스로 먹고살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그는 늘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가장 막장 같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문득 공지민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속의 쓰라림도 점점 더 커졌다. 그때 VIP룸의 문이 열리고 반승제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셔.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이러는 거야? 아니면 우리 다 같이 시간 내서 놀러라도 가자. 마침 혜인이도 요즘 놀러 가고 싶어 하던데.” 한때 온시환은 노는 걸 가장 즐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갈 생각만으로도 힘이 빠졌다. 그는 멍하니 손에 든 술잔을 바라보다가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그때 반승제가 물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그 여자가 나를 사랑하게 될까?’ 그때 그는 우습게 느껴졌다. 반승제처럼 완벽한 남자가 여자의 사랑이 부족할 리가 있나? 세상에 여자는 넘쳐나는데 이 여자가 아니면 다른 여자를 찾으면 될 일 아닌가.하지만 세상일은 돌고 도는 법이라더니 그도 결국 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하물며 그 사람은 그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를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른 남자의 감정을 갖고 장난치려 들었다. 그날 경찰서 앞에서 연승혁을 봤을 때 온시환은 공지민의 대략적인 계획을 알 것 같았다. 그때 연승혁이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은 분명히 순수하지 않았고 연승혁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빠졌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온시환은 질투가 아니라 씁쓸함을 느꼈다. ‘연승혁 너도 참. 평생을 거만하게 살아온 네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가 오히려 네 목숨을 노리다니.” 온시환은 술을 또 한 모금 마시며 자신과 연승혁 중 누가 더 불행한지 가늠할 수 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서주혁은 손을 천천히 내밀어 그가 마시려던 술을 가로챘다. “그만 마셔. 위 출혈 나서 병원에 실려서 가고 싶어?” 온시환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
연승혁의 상처가 조금 나아졌을 때 공지민은 그를 데리고 해변을 거닐었다. 마치 그들이 처음 섬에 왔을 때처럼. 연승혁은 체력이 좋아 빠르게 회복되었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연인처럼 보였다. 이 섬에 와서 부상을 당한 그날을 제외하고 그는 매일 자신과 공지민이 연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진실이 무엇인지. 그것은 오직 그만이 알고 있었다. 그날 두 사람이 다시 여기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연승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지민아, 여기서 돌아가면 나랑 함께할래?” 공지민은 잠시 의아해하며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우리가 이미 함께 있는 게 아니에요? 전에 우리가 미혼 부부였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렇긴 한데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네가 나를 선택한다면 그 문제들은 내가 모두 해결할 거야.” 김경자 쪽에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가 한 일이 기존의 규범을 어기는 일이었지만 반대하는 이들을 모두 없애 버리면 그만이었다. 예전처럼 말이다. 어차피 김경자도 그가 하는 방식에는 이미 익숙해졌을 터였다. 그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다. “너만 원하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공지민은 속눈썹을 내렸다. 머릿속에는 연승혁과의 일보다는 염정아가 떠올랐다.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사건이 그렇게 커졌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온시환은 염정아를 도왔을까?’ 그녀는 심지어 이런 생각도 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온시환은 슬퍼할까?’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예전부터 살고 싶은 의욕이 없었다. 그래서 제원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반드시 방법을 찾아 연승혁이 자신과 함께 여기 남아있게 할 것이다. 마치 그때 구은우가 영원히 바닷가에 남았던 것처럼. 제원 쪽에서 온시환은 더 이상 공지민과 연락하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그가 들은 바에 따르면 공지민은 이미 연승혁과 함께 그 섬으로 갔고 그 섬에는 그가 배치해
공지민이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보였는데 연승혁이 말한 대로 안전해진 것 같았다.그녀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연승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지민은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밖에 서 있던 연승혁의 부하들은 그녀가 나오는 걸 보고 격정스런 눈빛을 지었다. “공지민 씨, 괜찮으신가요?”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오빠는요?”“형님은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다.” “오빠 보러 가고 싶어요.”그때 그녀는 일부러 미친 척하며 그를 몇 번 밀쳤고 기억에 의하면 그를 불더미 속에 밀어 넣었다. 그의 등은 아마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하지만 연승혁은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를 안고 탈출할 수 있었으며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잘 보호했다.공지민은 감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그와 함께 그곳에서 같이 죽을 생각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연승혁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연승혁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의사가 그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다.섬의 의료 수준은 제원에 미치지 못했다. 연승혁은 등 부상으로 인해 이미 이틀째 의식을 찾지 못했고 의사는 감염을 우려하며 그의 곁을 이틀 동안 지키고 있었다. 공지민의 눈빛에 조롱의 기색이 스쳤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왜 이 사람은 타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곧 눈가가 붉어진 채 천천히 병상 옆에 앉았다.“오빠는 괜찮아졌나요?”의사는 그녀를 보며 공손하게 답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제 깨어나기만 기다리면 됩니다.”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승혁의 손을 잡았고 그대로 병상 옆에 앉아 떠나지 않았다.의사는 곧 방을 떠났고 방 안에는 연승혁과 공지민 두 사람만 남았다.공지민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이 방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베개를 가져다 이 남자를 질식시켜 죽일 생각도 했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그녀가 그렇게 하려던 찰나
남자는 이미 죽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연승혁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옆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짧게 말했다. “정리해. 난 먼저 간다.” 호텔 쪽에는 이미 그의 부하들을 배치해 두었으니 원래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방금 그 남자의 말이 자꾸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직접 돌아가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승혁은 자신이 공지민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이걸 단순한 게임으로만 여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만약 공지민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원래는 30분은 걸려야 할 거리였지만 그는 10여 분 만에 도착했다. 그가 머물던 호텔은 이미 짙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서둘러 앞으로 나가 자신의 부하를 붙잡고 물었다. “공지민 어디 있어!” “형님, 공지민 씨는 아직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방 안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연승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바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불길은 이미 너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고 섬의 소방은 아직 빠르지 않아 불은 이미 1층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번져 있었다. 지금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연승혁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밖에서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고 여겼다. 어쩌면 공지민이 운 좋게 스스로 탈출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성을 차릴 수 없었다. 곧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을 밀쳐내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자던 방으로 들어갔다. “공지민! 공지민!” 그는 큰 소리로 외쳤고 곧 방 한구석에서 공지민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짙은 연기에 눈을 뜰 수 없었던 연승혁은 최대한 몸을 낮추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공지민은 방구석에 웅
연승혁은 즉시 공지민을 바라보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넌 이 방에 가만히 있어. 내가 가서 그 사람을 처리하고 나서 나랑 같이 제국으로 돌아가자.”공지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오빠가 위험하진 않겠죠?”“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 테니까 한잠 푹 자고 있어.”연승혁이 묵고 있는 호텔은 이 섬에서 가장 큰 호텔로 매우 호화로운 데다가 그의 부하들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공지민은 안전했다.공지민은 서서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연승혁은 겨우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매우 불안했고 심지어 공지민이 그와 함께 움직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건 결코 안전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혹시나 손에 총이 있다면 공지민은 위험할 수 있었다.그는 신이 아니었고 공지민을 100%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약간의 과실로 그녀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는 감히 모험할 수 없었고 그녀를 호텔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연승혁은 차에 올라탔고 차는 30분 동안 달리다가 암초가 있는 곳에 멈췄다.근처의 암초는 크고 새까맣기 때문에 숨어 있기에 좋은 장소였다.연승혁은 옆에 있는 부하한테 물었다.“여기에 있는 게 확실해?”“네. 확실해요. 저희 쪽 사람들이 지금 수색하고 있어요. 늦어도 30분이면 결과가 나올 거예요.”연승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의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고 휴가를 온 것 같았다.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양측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연승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이제 그 사람은 도망칠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하들은 온몸이 새까만 남자를 붙들고 걸어왔다.어쩐지 이 남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더라니 그의 몸에는 검은 물감이 칠해져 있었고 마치 암초와 융합된 것처럼 보였으며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연승혁은 담배에 불을 붙였고 밤바다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그는 심호흡한 뒤 그 남자
연승혁은 한동안 그녀와 꽁냥꽁냥하다가 해변의 경치를 구경하러 가자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공지민은 바다를 극도로 두려워했다. 구은우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후 그녀는 평생 악몽 속에서 살았다.그녀는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리기 시작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연승혁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걸었다.“지민아, 어때? 여기 달이 특별히 예쁜 것 같지 않아?”공지민은 얼굴에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뻐요. 이렇게 예쁜 달은 처음 봐요.”연승혁의 입꼬리는 올라갔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없이 서 있었다.그는 정말로 여기의 달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와 함께 경치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뭔가 더 특별했고 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공지민은 내내 연승혁한테 맞춰줬고 그가 바닷물을 만지고 싶다고 해서 그녀도 따라나섰다.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연승혁이 물었다.“이런 해변을 보고 있으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공지민의 눈에는 의문으로 가득 찼고 그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연승혁은 구은우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공지민은 그때 구은우를 매우 사랑했고 그들이 서로를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할 때 구은우가 사망했는데 그녀가 그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이상우가 최면술을 사용했음에 불구하고 연승혁은 그녀가 갑자기 기억해 낼까 봐서 걱정이었다.하지만 공지민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연승혁은 안도감을 느꼈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기억 안 나면 됐어. 손 줘봐. 우리 여기 좀 둘러보다가 돌아가자.”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오빠가 잡으려는 그 사람은요?” “아마 일주일 안에 잡힐 거야. 이 섬이 제국만큼 크지는 않지만 숨을 수 있는 동굴이 많아. 그 사람이 이곳에 들어온 후 바로 숨어버렸어. 그래서 내 부하들이 그를 찾아내려면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해.”그들이 며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