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영이 앞으로 갔다. 운전기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서 안지영을 지켜보았다.안지영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조금 옆으로 비켜주시겠어요?”“비켜달라고?”운전기사가 웃으면서 말했다.“어디로 비켜달라는 건지. 나 때문에 핸드폰을 못 줍는 것도 아니고.”운전기사는 일부러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있었다. 안지영은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운전기사는 이런 연약한 여자가 좋았다. 목소리도 얇고 부드러우니 신음도 듣기 좋을 것이다.안지영은 운전기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좌석 밑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마음이 급해진 안상철이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안지영도 두려워서 얼른 안상철더러 본인을 데리러 오라고 하고 싶었다.하는 수 없이 안지영은 쪼그려 앉아서 손을 좌석 밑으로 뻗었다.하지만 그 자세로는 핸드폰에 닿을 수 없었다.안지영이 난감해할 때 운전기사가 물었다.“더 가까이 오지 그래요?”안지영은 더 가까이 가는 것이 두려웠다. 더 가까이 간다면 이 운전기사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저... 됐어요. 아까 가로등이 있는 곳에서 아버지를 기다릴래요.”말을 마친 안지영이 바로 도망치려고 했다.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뒤에서 운전기사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홱 당겼다.“이 년이 좋은 말로 할 때 안 듣고!”안지영은 놀라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그녀는 엉엉 울면서 빌었다.“이러지 말아요. 아빠가 기다리고 있어요. 제발요...”“네 아빠는 널 만나지 못할 거야. 여기는 다른 길이거든. 이 길에는 네 아빠가 없어!”운전기사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나를 아빠라고 불러봐. 잘 부르면 해치지는 않을게.”안지영은 놀라서 눈물을 터뜨렸다.“엉엉... 싫어요. 이건 범죄예요. 이러시면 안 돼요. 제발요. 제발 저를 놔주세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요, 네?”안지영이 운전기사 앞에 무릎 꿇고 빌고 있었다.“범죄?”기사는 피식 웃고 대답했다.“너 같은 여자가 이런 야심한 저녁에 나오는 건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잖아.
그 운전기사는 상습범이었다. 전부터 항상 차에 약을 숨겨두고 지냈는데 적당한 대상을 찾으면 범행을 저지르곤 했다. 게다가 그는 실제로 택시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는데 퇴근 후면 중고로 산 낡은 택시를 몰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른 듯한 손님이 보이면 그는 재빨리 다가가서 예약 택시인 것처럼 행세하며 승객을 태웠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면 바로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해 범행을 저질렀다. 물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안지영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떨고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울면서 애원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녀의 눈물과 애원에 마음이 흔들릴 리 없었다. 그 순간, 갑자기 차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눈부신 불빛이 차를 비췄다. 운전기사는 깜짝 놀라서 당황하고 말았다. 이 정도로 한적한 시골길에 차가 올 리 없었으니 말이다. ‘충분히 지나갈 공간이 있는데 왜 불을 비추는 거지?’ 그는 짜증이 치밀어 욕을 내뱉으려 했다. 그런데 그 검은색 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젠장!” 그러자 운전기사는 기겁하며 차에서 굴러 떨어졌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 차는 택시 바로 앞에 멈춰 서는 것이었다. 그는 어리둥절했다. ‘뭐 하는 거지?’ 그 순간, 차에서 한 여자가 내리더니 황급히 앞차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운전기사는 많이 당황했는지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소원이 차 문을 열었을 때, 안지영은 옷이 반쯤 벗겨진 상태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소원은 재빨리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녀의 몸을 감싸주었다. “일단 절 따라오세요.” ... 사실 소원은 조금 전까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나 차 안에 있는 사람이 안지영의 아버지인 건 아닌가 싶어서였다. 두 사람이 만나는 중
말을 마친 소원은 안지영을 끌고 본인의 차에 태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도 힘이 세지 않았고 안지영은 지금 너무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린 상태였다. 만약 이 운전기사에게 동료라도 있었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걸을 수 있겠어요?” 안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자 소원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원래도 몸이 약해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던 데다가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지라 겁에 질려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뗐다. “저, 저... 저도 모르겠어요. 흑...” 안지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소원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업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안지영을 막 업으려는 순간,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제 핸드폰... 운전석 아래에 있어요.” 그래서 소원은 또 하는 수 없이 안지영을 내려놓고 운전석으로 가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운전기사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는 눈이 따가워서 앞을 제대로 못 보면서도 소원의 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려 했다. 하지만 소원은 이미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는 손목을 한 번 휙 비틀더니 운전기사를 그대로 차에서 끌어내려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쿵!” 운전기사는 바닥에 처박히며 큰소리로 욕을 지껄였다. “이 썩을 년아! 너 미쳤어?” 하지만 소원은 그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핸드폰을 찾았고 차 키까지 빼앗아버렸다. 운전기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채 눈을 비비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개 같은 년, 두고 봐... 넌 반드시 내가 죽일 거야!” 그 말을 들은 소원은 운전기사를 실컷 노려보더니 앞으로 성큼 다가가 그의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커헉!” 그는 배를 감싸고 바닥에서 몸부림을 쳤다. 몰려오는 통증 때문에 당분간 제대로 걷지도 못할 듯했다. 소원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미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그쪽 사정은 제 알바 아니에요. 알아서 경찰한테 가서 해명하세요.”그렇
”축하해요. 임신하셨습니다!”멍 때리고 있던 윤혜인 머릿속에는 오후에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만 계속 떠올랐다.그때, 조용하게 다가온 이준혁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물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한참 뒤, 이준혁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고 윤혜인은 온몸에 힘이 풀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땀으로 젖은 머리와 글썽이는 눈망울은 조금 전에 많이 힘들었음을 설명해 주었다.겨우 숨을 고른 그녀는 서랍을 열어 임신 검사 보고서를 꺼냈다.요즘따라 계속 위에 통증을 느꼈던 윤혜인은 오늘 오후 병원에 찾아갔고 피검사를 한 결과, 의사는 그녀에게 임신 5주 차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윤혜인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매번 안전 조치를 확실하게 취했는데.다시 돌이켜보니 저번 달에 딱 한 번, 술자리를 마친 이준혁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뒤, 집 앞에서 갑자기 그녀에게 한마디 물었었다.“지금 안전하지?”그런데 안전기에도 임신할 수 있는 거구나…욕실 안에는 물소리로 가득했다. 안에 있는 남자는 2년 전에 윤혜인과 아무도 몰래 결혼한 그녀의 남편이자 그녀의 상사이기도 한 이산 그룹 대표 이준혁이다.그때 당시 술이 많이 취한 윤혜인은 뜻하지 않게 그녀의 상사와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마침 이준혁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이준혁은 그녀에게 가짜 결혼을 제안한 것이다. 이준혁 할아버지의 최대 소원이 손자가 하루 빨리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었다. 대외적 비밀 결혼으로 언제든 종료할 수 있는 가짜 결혼이었다.그때 당시 윤혜인은 그저 너무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이 8년 동안이나 짝사랑해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말에 고민없이 동의했던 것이다.결혼한 뒤에도 이준혁은 매일 너무 바빴다. 한달 동안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하지만 2년 동안
윤혜인은 우유를 마시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연예 뉴스로 가득했지만 윤혜인은 이런 쪽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했다.그러던 중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보여서 그 기사를 클릭하게 되었다.기사와 함께 기재된 사진 속에서 임세희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함께 걷고 있는 남자는 흐릿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 눈에 봐도 몸매 비율은 완벽했다.사진을 확대한 윤혜인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사진 속 실루엣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준혁이다!그럼 오후에 갑자기 회의를 취소하고 외출을 했던 게, 그의 전 여자친구인 임세희를 데리러 공항에 간 거란 말인가?그 순간, 윤혜인의 가슴에는 큰 돌멩이 박힌 듯 답답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다가 의도치 않게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고 다급하게 끊으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유난히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였다.너무나도 깜짝 놀란 윤혜인은 바로 핸드폰을 던져버렸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한참 뒤, 날이 밝아오자 윤혜인은 시간에 맞춰 회사로 출근했다.이준혁과 가짜 결혼을 한 뒤, 이준혁은 그녀가 집에 있길 원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이준혁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다른 회사가 아닌 이산 그룹에 취직해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 곁에 비서로 남아 물을 따르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등 소일거리 역할을 맡게 되었다.그리고 중요하고 핵심적인 비서 일은 이준혁의 수행 비서인 주훈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회사에 윤혜인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훈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산 그룹의 이준혁 대표는 지금까지 계속 남자 비서만 채용했고 2년 동안 여자 비서는 윤혜인 한 명밖에 없었기에 다들 윤혜인과 회사 대표가 특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김성훈이었다. 그는 사무실을 떠나려는 듯했다.윤혜인은 주먹을 꽉 쥐고 감정을 숨긴 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김 대표님, 안녕하세요.”그러고는 김성훈을 지나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급스러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이준혁은 고가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윤혜인은 단번에 이 옷이 어젯밤 그가 입고 나갔던 옷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 마케팅 보고서입니다. 결재해 주세요.”이준혁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서류에 사인한 뒤 윤혜인에게 건넸고 서류를 받은 윤혜인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보니 김성훈이 여전히 사무실 입구에 서있었다.그녀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김성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젠장, 혜인 씨가 우리 대화를 들은 거 아니야?”이준혁의 눈빛에는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그는 김성훈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성격이 온순하고 착한 윤혜인은 질투 같은 걸 절대 안 한다. 그녀가 계속 지금처럼 조용하게 살아준다면 이준혁은 앞으로도 그녀에게 많은 걸 해줄 것이다.한편, 엘리베이터 안에서.윤혜인은 최대한 눈물이 흐르지 않게 고개를 높이 들었지만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녀는 2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였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 여자친구의 복귀에는 역부족이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윤혜인이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가눈 채, 탕비실로 향했다.커피로 정신을 좀 맑게 하고 싶었다. 탕비실 안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기사 봤어? 임세희 귀국했대.”“응? 그게 누군데?”“너 몰라? 임세희는 임씨 가문의 아가씨잖아. 본인도 유명한 탑급
”뭐가 그렇게 잘나서 맨날 머리 치켜들고 다니는 거야? 다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거든. 부모도 없는 잡종 주제에…”팍!송소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혜인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송소미는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윤혜인이 감히 그녀에게 손찌검을 할 줄은 상상도 못해서 순간 멍한 표정이었다.한참 뒤, 송소미가 이를 꽉 깨물며 소리를 질렀다.“너, 너 지금 감히 날 때린 거야?!”“당신에게 예의를 가르친 겁니다.”윤혜인이 싸늘한 눈빛으로 송소미를 보며 대답했다. 윤혜인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아무나 그녀의 부모님을 모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송소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준혁의 사촌 여동생인 그녀는 늘 타인의 아부를 받아왔기에 이렇게 대놓고 그녀와 맞서 싸우는 사람은 윤혜인이 처음이었다.“이 나쁜 계집애!”송소미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윤혜인에게 달려들었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할퀴려고 했지만 반응 속도가 빠른 윤혜인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은 채 송소미를 꿈쩍도 못하게 만들었다.윤혜인보다 체구가 작은 송소미는 어떻게든 윤혜인을 때리려고 발버둥을 쳤고 그 모습은 매우 추했다.화가 잔뜩 난 송소미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네가 뭐라도 되는것 같아? 넌 단지 우리 준혁 오빠가 침대에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일 뿐이라고! 넌 몸 파는 여자보다 더 천박해!”송소미는 갈수록 심한 욕을 입 밖에 꺼냈고 모여드는 직원도 점점 많아졌다.“지금 뭐 하는 거야!”낮게 깔린 이준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난동을 부리고 있는 송소미를 발견했던 것이다.그의 등장에 순식간에 탕비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준혁 오빠?”송소미는 평소에도 이준혁을 조금 무서워했다. 이 사촌 오빠는 가차없는 성격이라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에게 이준혁 앞에서는 까불지 말라고 경고했었다.하지만 조금 전에 뺨을 맞은 게 생각나자 송소미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송소미는 지금 이 순간, 윤혜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준혁 오빠, 저 나쁜 계집애가 하는 말 좀 들어봐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감히 계속 건방을 떨다니. 준혁 오빠, 저 여자 다시 불러와요! 난 오늘 화가 풀릴 때까지 저 여자를 때려야겠어요!”이준혁은 가녀린 윤혜인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적당히 해.”이준혁이 차갑게 대꾸했다.평소에도 독하기로 소문난 송소미는 이준혁이 조금 전에도 윤혜인의 편을 들지 않았기에 이준혁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윤혜인의 뒷모습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다음에는 사람 불러서 저 여자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예요!”“송소미!”이준혁이 실눈을 살짝 뜬 채 송소미를 쳐다보았고 송소미는 그 눈빛에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딱 한 번만 얘기할게. 네 머릿속에 있는 꿍꿍이를 접어. 저 여자 건드리지 마.”송소미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기에 마음속에서 들끓던 복수심을 도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요…”이준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송소미를 힐끗 쳐다보다가 탕비실을 떠나면서 곁에 있던 주훈에게 명령을 내렸다.“앞으로 연관 없는 외부인은 회사에 들이지 못하게 해.”이준혁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송소미는 그의 뒤에서 계속 아부를 떨었다.“준혁 오빠 이렇게 큰 회사에 그런 명확한 규칙은 있어야 돼요.” 하지만 잠시뒤, 주훈이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송소미 씨, 이만 나가주세요.”송소미는 그제야 그녀가 바로 그 연관 없는 외부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단호하게 떠나는 이준혁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주훈이 부른 경호원에게 잡혀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송소미가 아무리 발악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경호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한편, 자리로 돌아온 윤혜인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고 차가운 이준혁의 얼굴이 생각나자 마음이 아팠다.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고, 회사를 나서려던 윤혜인 앞에
말을 마친 소원은 안지영을 끌고 본인의 차에 태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도 힘이 세지 않았고 안지영은 지금 너무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린 상태였다. 만약 이 운전기사에게 동료라도 있었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걸을 수 있겠어요?” 안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자 소원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원래도 몸이 약해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던 데다가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지라 겁에 질려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뗐다. “저, 저... 저도 모르겠어요. 흑...” 안지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소원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업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안지영을 막 업으려는 순간,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제 핸드폰... 운전석 아래에 있어요.” 그래서 소원은 또 하는 수 없이 안지영을 내려놓고 운전석으로 가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운전기사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는 눈이 따가워서 앞을 제대로 못 보면서도 소원의 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려 했다. 하지만 소원은 이미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는 손목을 한 번 휙 비틀더니 운전기사를 그대로 차에서 끌어내려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쿵!” 운전기사는 바닥에 처박히며 큰소리로 욕을 지껄였다. “이 썩을 년아! 너 미쳤어?” 하지만 소원은 그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핸드폰을 찾았고 차 키까지 빼앗아버렸다. 운전기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채 눈을 비비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개 같은 년, 두고 봐... 넌 반드시 내가 죽일 거야!” 그 말을 들은 소원은 운전기사를 실컷 노려보더니 앞으로 성큼 다가가 그의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커헉!” 그는 배를 감싸고 바닥에서 몸부림을 쳤다. 몰려오는 통증 때문에 당분간 제대로 걷지도 못할 듯했다. 소원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미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그쪽 사정은 제 알바 아니에요. 알아서 경찰한테 가서 해명하세요.”그렇
그 운전기사는 상습범이었다. 전부터 항상 차에 약을 숨겨두고 지냈는데 적당한 대상을 찾으면 범행을 저지르곤 했다. 게다가 그는 실제로 택시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는데 퇴근 후면 중고로 산 낡은 택시를 몰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른 듯한 손님이 보이면 그는 재빨리 다가가서 예약 택시인 것처럼 행세하며 승객을 태웠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면 바로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해 범행을 저질렀다. 물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안지영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떨고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울면서 애원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녀의 눈물과 애원에 마음이 흔들릴 리 없었다. 그 순간, 갑자기 차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눈부신 불빛이 차를 비췄다. 운전기사는 깜짝 놀라서 당황하고 말았다. 이 정도로 한적한 시골길에 차가 올 리 없었으니 말이다. ‘충분히 지나갈 공간이 있는데 왜 불을 비추는 거지?’ 그는 짜증이 치밀어 욕을 내뱉으려 했다. 그런데 그 검은색 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젠장!” 그러자 운전기사는 기겁하며 차에서 굴러 떨어졌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 차는 택시 바로 앞에 멈춰 서는 것이었다. 그는 어리둥절했다. ‘뭐 하는 거지?’ 그 순간, 차에서 한 여자가 내리더니 황급히 앞차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운전기사는 많이 당황했는지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소원이 차 문을 열었을 때, 안지영은 옷이 반쯤 벗겨진 상태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소원은 재빨리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녀의 몸을 감싸주었다. “일단 절 따라오세요.” ... 사실 소원은 조금 전까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나 차 안에 있는 사람이 안지영의 아버지인 건 아닌가 싶어서였다. 두 사람이 만나는 중
안지영이 앞으로 갔다. 운전기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서 안지영을 지켜보았다.안지영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조금 옆으로 비켜주시겠어요?”“비켜달라고?”운전기사가 웃으면서 말했다.“어디로 비켜달라는 건지. 나 때문에 핸드폰을 못 줍는 것도 아니고.”운전기사는 일부러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있었다. 안지영은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운전기사는 이런 연약한 여자가 좋았다. 목소리도 얇고 부드러우니 신음도 듣기 좋을 것이다.안지영은 운전기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좌석 밑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마음이 급해진 안상철이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안지영도 두려워서 얼른 안상철더러 본인을 데리러 오라고 하고 싶었다.하는 수 없이 안지영은 쪼그려 앉아서 손을 좌석 밑으로 뻗었다.하지만 그 자세로는 핸드폰에 닿을 수 없었다.안지영이 난감해할 때 운전기사가 물었다.“더 가까이 오지 그래요?”안지영은 더 가까이 가는 것이 두려웠다. 더 가까이 간다면 이 운전기사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저... 됐어요. 아까 가로등이 있는 곳에서 아버지를 기다릴래요.”말을 마친 안지영이 바로 도망치려고 했다.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뒤에서 운전기사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홱 당겼다.“이 년이 좋은 말로 할 때 안 듣고!”안지영은 놀라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그녀는 엉엉 울면서 빌었다.“이러지 말아요. 아빠가 기다리고 있어요. 제발요...”“네 아빠는 널 만나지 못할 거야. 여기는 다른 길이거든. 이 길에는 네 아빠가 없어!”운전기사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나를 아빠라고 불러봐. 잘 부르면 해치지는 않을게.”안지영은 놀라서 눈물을 터뜨렸다.“엉엉... 싫어요. 이건 범죄예요. 이러시면 안 돼요. 제발요. 제발 저를 놔주세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요, 네?”안지영이 운전기사 앞에 무릎 꿇고 빌고 있었다.“범죄?”기사는 피식 웃고 대답했다.“너 같은 여자가 이런 야심한 저녁에 나오는 건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잖아.
“기사님, 제발 세워줘요...”안지영이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이 아가씨 정말 귀찮게 구네.”운전기사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여기서 멈추면 벌금이 얼만지는 알아요? 조금 있다가 주워요.”안지영은 마음이 불안했다. 핸드폰이 있어야 안전할 것만 같았다.안상철을 불러내 데리러 오라고 하고 싶었다.안지영은 결국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벌금은 제가 내드릴게요. 아버지가 전화할까 봐 그래요. 제가 전화를 안 받으면 아버지가 걱정하실 거예요.”안지영의 요구는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구겨진 표정으로 대답했다.“벌점은 얼마인지 알아요? 결국 내가 벌점을 받는 건데 그게 얼마나 시끄러운 일인데.”“저...”안지영이 뭐라고 하려고 하자 운전기사가 말을 끊었다.“여기서 벌점이 더 생기면 면허 정지예요. 그러면 벌금부터 시작해서 면허 정지 때문에 벌지 못한 돈까지 500백만 원은 될 텐데 아가씨가 책임질 거야?”“...”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돈은 없었으니까 말이다.결국 안지영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면 편한 곳에 세워주세요.”안지영의 핸드폰은 여전히 조수석 밑에 있었다. 그러다가 전화가 한 번 걸려 왔지만 안지영은 받지 못했다.그래도 안지영은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운전기사도 알았으니 안지영에게 몹쓸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던 중 안지영은 운전기사가 내비게이션을 끄는 것을 보고 약간 걱정되었다.“기사님, 이 길이 맞아요?”안지영이 물었다.“당연하죠.”기사가 대답했다.“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안지영이 핸드폰으로 길을 확인했을 때는 이렇게 으슥한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으슥하기도 하고 다른 차도 없어서 더욱 걱정되었다.안지영이 다급히 얘기했다.“내비게이션 한 번 켜보세요. 길 확인하게요.”“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운전기사는 안지영을 향해 화를 냈다.“난 눈 감고도 운전하는 사람이야. 내 집이 바로 이 근처에 있어서 이쪽 길은 훤히 잘 알고 있다고.”
안상철의 딸은 올해 20대 초반이어서 어린 티가 났다. 그녀는 검은색 후드티로 본인을 꽁꽁 감싸고 있었다.계단을 내려온 후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상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흰 차로 걸어갔다.흰 차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물었다.“콜택시 부르셨죠?”안상철의 딸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타세요.”남자가 얘기했다.소원은 얼른 차에 시동을 걸었다. 소원의 차는 검은색인 데다가 불빛도 어두워서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안상철의 딸이 탄 차는 점점 으슥한 곳으로 향해갔다.소원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헤드라이트를 꺼버렸다. 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소원은 한 갈림길에서 그들을 놓치고 말았다.발각될까 봐 거리를 두면서 따라왔는데, 여기에서 놓쳐버린 것이다.소원은 차를 길옆에 대고 차에서 내린 후 바퀴의 흔적을 유심히 살펴보았다.이런 으슥한 곳에는 다니는 차가 많지 않기에 흔적이 많지 않았다. 소원은 금방 난 흔적을 발견하고는 빠르고 방향을 확정했다. 이윽고 다시 차에 올라타 그들을 따라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본 흰 차가 나타났다. 다행히 소원의 차는 전기자동차여서 엔진 소리가 크지 않았다. 그리고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아 눈에 띄지 않았다.조심스레 차를 세운 소원은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차는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흰 차에서, 운전기사가 예쁘장하게 생긴 안상철의 딸을 보면서 장난스레 물었다.“이렇게 늦은데, 어디를 가는 거예요?”안상철의 딸, 안지영이 대답했다.“아버지를 찾으러 가요.”“아버지를 찾으러 간다고요?”운전기사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이렇게 늦었는데 아빠를 찾으러 간다니. 밖에서 놀려고 그러는 거죠?”안지영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운전기사의 미소가 이상하게 소름 돋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어서 억지로 대답했다.“아버지는 일하는 중이에요.”“아이고,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예쁜 딸이 직접 찾아오게 하다니. 너무 하네.”그렇
소원은 안상철이 딸을 데리고 해외로 도주할까 봐 걱정했다.해외로 나가는 데는 많은 방법이 있다. 합법적인 방법보다는 불법적인 방법이 더 많았다.만약 안상철이 딸을 데리고 밀입국이라도 한다면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다.다행히 안상철의 딸은 아직 국내에 있다. 그 뜻인즉 안상철도 국내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안상철의 딸을 미행하다 보면 안상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강민혜는 본인이 아무리 말려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얘기했다.“그러면 몸을 지킬 수 있는 무기 정도는 챙겨야 해요. 눈을 공격할 수 있는 매운 가스 같은 거요. 그리고 꼭 조심해야 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고요. 제가 직접 가지 못하는 상황이면 다른 사람을 보낼게요.”“걱정하지 마요, 민혜 씨. 제 엄마와 아이를 생각해서도 저를 잘 지킬 테니까요.”소원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제 몸도 일반인 정도로 회복되었으니 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욱 많은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그래서 열심히 살려고 했다.“어머님의 상황은 어때요?”강민혜가 물었다.강민혜가 기억하는 소원의 어머니는 부드럽고 예뻤으며 목소리도 사근사근했다.마치 강민혜 꿈속의 엄마처럼 말이다.하지만 강민혜는 어머니가 없었다.“여전해요. 어머니는 저를 못 알아보셔요. 말도 못 하시고요. 그래도 몸은 괜찮은 것 같아요.”“소원 씨, 다음에... 같이 어머님을 보러 가고 싶은데, 괜찮나요?”강민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강민혜는 전미영이 아주 좋았다. 한 번밖에 보지 못한 사이지만 전미영이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으니 괜히 마음이 아팠다.“당연하죠.”소원이 기뻐하면서 얘기했다.“시간 될 때 같이 가요.”“좋아요.”소원은 무곡산의 일이 떠올라서 물었다.“그... 무녀의 일은 진전이 있나요?”그곳에서 나온 후 소원은 경찰서에 바로 신고를 했다. 하지만 너무 먼 지역이라서 소원은 관할 파출소에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후에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이미 조사
소원은 드디어 좋은 소식을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소원은 강민혜에게 이어서 물었다.“그러면 안상철 씨는 지금 어디 있어요?”소원은 빨리 안상철을 만나서 직접 묻고 싶었다. 소진영이 죽기 전에 만난 사람이 안상철이지 않은가. 도대체 안상철이 뭘 했고 왜 그런 일을 했는지 궁금했다.소진용은 안상철을 잘 대해주었다. 아픈 안상철의 딸을 생각해 연말 보너스도 다른 사람보다 3배는 더 주었다.소원과 전미영도 안상철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안상철의 딸이 공주님 놀이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전미영은 안상철의 딸 생일에 놀이공원 전체를 대관한 후 놀 수 있게 해주었다.모든 직원들은 안상철의 딸을 위해 일하고 공주님 대접을 해주었다.그때 안상철이 보여준 감정은 진심이었다. 안상철의 눈에서 그 진심이 가득 흘러넘치고 있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런 안상철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소원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무조건 안상철에게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강민혜는 아직 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아직 안상철 씨가 어디에 있는지는 찾지 못했어요. 그래도 출입국 기록을 보면 안상철 씨는 아직 국내에 있는 게 확실해요. 안상철 씨의 가족은 안상철 씨가 해외로 도망갔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말이죠.”“그럴 리가요.”소원이 반박했다.“안상철 씨는 본인 딸을 끔찍이 아꼈어요. 그러니 안상철 씨가 딸을 두고 홀로 도망갔을 리가 없어요.”“저도 똑같은 생각이에요.”강민혜가 본인의 생각을 얘기했다.“처음부터 안상철 씨 가족들은 우리를 경계하면서 계속 뭔가를 숨겼어요. 안상철 씨의 어머니는 우리를 완전히 무시했잖아요. 분명 뭔가를 알고 있는 게 분명해요. 어쩌면 안상철 씨도 눈치를 채고 다른 곳으로 도망갔을 수도 있죠.”소원은 실망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꼭 안상철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안상철은 분명 뭔가를 알고 있다.강민혜는 실망한 표정의 소원을 보고 위로해 주었다.“걱정하지 마요, 소원 씨. 이미 경찰
서현재가 소원을 도와줬다는 것만으로도 윤혜인은 서현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소원은 윤혜인의 말을 듣고 걱정을 덜었다.이튿날 아침.소원은 병원으로 갔다.소원은 커다란 꽃다발을 사서 소종을 보러 갔다.병원에 도착한 소원은 ICU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꽃다발을 간호사에게 전해준 후 소종이 있는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속으로 얘기했다.‘소종 비서님, 이번 생에는 원수 가문이었지만 다음에는 친구로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사실 다른 것만 다 놓고, 육경한에 대한 소종의 충성심만 본다면 소원은 소종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육경한이 갑자기 그렇게 변한 것도 이해되었다. 이런 최측근을 잃었으니 변할 만도 했다.‘소종 비서님, 앞으로는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지 말아요. 힘들다고 본인을 포기하지 마요. 인생은 그래도 아직 좋은 날이 더 많으니까요.’소원은 병원에서 한참 서 있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그리고 바로 로첨을 찾아갔다.소원은 양육권을 되찾아오려고 했다.유진이는 아직 어린아이다. 육경한 같은 사람과 지내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소원은 유진이를 육경한 곁에 두는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소송을 걸어도 승소할 확률이 낮다는 건 알고 있었다.상대는 미우 그룹의 법무팀이다. 다들 훌륭한 변호사들이니 말이다.그래도 소원은 부딪혀봐야 했다.이렇게 유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변호사를 찾은 후 소원은 자초지종을 변호사에게 설명해 주었다.그리고 소원은 강민혜를 찾아가 아버지의 비서, 즉 안상철의 일에 대해서 알아보았다.경찰서에 도착한 강민혜는 소원을 보고 깜짝 놀랐다.“소원 씨, 왜 요즘 연락이 없었어요. 전화를 몇 번이나 쳤는데 대답이 없어서... 얼마나 걱정했다고요.”강민혜는 진심이었다.전에 소원과 연락이 닿지 않자 탐정까지 고용해서 조사해 봤지만 소원의 마지막 행적이 육씨 가문 별장이라는 것밖에 알아내지 못했다.강민혜는 육경한을 찾아가 소원의 행방을 묻고 싶을 정도였다.오늘 소원이 나타나서 다행이었다.소원은 전에
소원은 서현재가 뭘 걱정하는지 알고 얼른 해명했다.“너를 돕기 위해서 이런다고 생각하지 마. 나는 너를 믿기 때문에 내 친구 남편한테 추천하는 거야. 내가 친구 남편한테 부탁하는 것도 아니야. 그 사람은 내 친구를 위해서라면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프로젝트에 돈을 날릴 사람은 아니니까. 그 사람이 네 기획안에 동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기회인 거야.”서현재는 그 말에 마음이 약간 동했다. 소원의 말대로라면 일 진행이 많이 수월해질 것이다.서씨 가문의 일을 안정시켜야 소원을 도울 수 있다. 애초에 서현재는 원하지 않은 서씨 가문의 싸움에 휘말렸던 것이다.서현재는 사회적 지위 같은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이 배에 올라탔으니 이제는 내릴 수 없었다.이 모든 것은 서진태가 너무 잔혹한 탓에 있다.서진태는 서현재를 서씨 가문의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서현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서진태는 죽기 전 서현재를 불렀다. 서현재의 어머니는 시골 출신이었는데 시골 출신을 싫어하는 서진태는 서현태의 어머니뿐만이 아니라 서현태도 싫어했다.죽기 직전까지도, 서진태는 서현재를 싫어했다.소원이 이어서 얘기했다.“난 네가 머리가 좋다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이러는 거야. 넌 뭘 해도 성공할 사람이야. 그러니 너 자신을 믿어야 해!”서현재는 끄덕이면서 대답했다.“알겠어요. 시도해 볼게요.”소원은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래, 곧 내 친구한테 얘기해 줄게.”“네. 급하지 않아요. 일단은 이 약을 검사해 보고 시간을 내서 이준혁 씨를 만나야겠어요.”서현재에게 있어서 감옥에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유진이었다.소원은 전화를 끊은 후 바로 윤혜인에게 얘기했다.윤혜인은 당연히 소원을 도와주려고 했다. 윤혜인은 소원의 감각을 믿었다. 상대방이 실력 없는 사람이면 소원은 추천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윤혜인은 서현재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었다.서현재는 그야말로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