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711화

Author: 이한나
그러나 발견한 건 한쪽 구덩이 속에 버려진 아이의 옷뿐이었다.

그 순간 노인은 절망에 빠졌다.

무녀들에게 아이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싶었지만 지칠 대로 지친 몸이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자신이 키운 그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버지, 제발 돌아가세요. 살아남으셔야 해요.”

아마도 하늘이 그를 불쌍히 여긴 걸까.

노인이 잠든 사이, 몸이 나무 덤불 아래로 굴러떨어진 덕분에 무녀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노인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닫고 혼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날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소원이 친구를 찾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며 노인은 그때의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의 자신은 너무도 비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린 여자도 두려움 없이 무곡산으로 향하겠다고 하는데 이제는 늙고 죽음을 앞둔 자신이 무엇을 더 두려워할 게 있겠는가.

소원은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야 했다.

“어르신, 아드님은 아마 이미... 돌아가셨을 거예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가에는 여전히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알아요. 그래도 한 번은 불러보고 싶어요. 그 아이는 사냥을 나가면 끼니 챙기는 것도 잊고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내가 부르지 않으면 집에 돌아올 줄도 모르는 바보 같은 녀석이었죠. 그러니 이번에도... 내가 불러야 돌아오지 않겠어요?”

“이번만큼은 내 바보 같은 아이를 집으로 데려올 거예요...”

노인의 목소리는 쓸쓸하고도 짙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소원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좋아요. 같이 가서 아드님을 집으로 데려와요.”

그렇게 노인은 간단히 짐을 꾸렸다.

말린 고기를 챙기고 안으로 들어가 헌터 라이플을 꺼내 들었다.

“이거 다룰 줄 알아요?”

소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서현재가 마을에서 사격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몇 번 해본 적이 없어서 능숙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화

    ”축하해요. 임신하셨습니다!”멍 때리고 있던 윤혜인 머릿속에는 오후에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만 계속 떠올랐다.그때, 조용하게 다가온 이준혁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물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한참 뒤, 이준혁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고 윤혜인은 온몸에 힘이 풀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땀으로 젖은 머리와 글썽이는 눈망울은 조금 전에 많이 힘들었음을 설명해 주었다.겨우 숨을 고른 그녀는 서랍을 열어 임신 검사 보고서를 꺼냈다.요즘따라 계속 위에 통증을 느꼈던 윤혜인은 오늘 오후 병원에 찾아갔고 피검사를 한 결과, 의사는 그녀에게 임신 5주 차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윤혜인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매번 안전 조치를 확실하게 취했는데.다시 돌이켜보니 저번 달에 딱 한 번, 술자리를 마친 이준혁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뒤, 집 앞에서 갑자기 그녀에게 한마디 물었었다.“지금 안전하지?”그런데 안전기에도 임신할 수 있는 거구나…욕실 안에는 물소리로 가득했다. 안에 있는 남자는 2년 전에 윤혜인과 아무도 몰래 결혼한 그녀의 남편이자 그녀의 상사이기도 한 이산 그룹 대표 이준혁이다.그때 당시 술이 많이 취한 윤혜인은 뜻하지 않게 그녀의 상사와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마침 이준혁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이준혁은 그녀에게 가짜 결혼을 제안한 것이다. 이준혁 할아버지의 최대 소원이 손자가 하루 빨리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었다. 대외적 비밀 결혼으로 언제든 종료할 수 있는 가짜 결혼이었다.그때 당시 윤혜인은 그저 너무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이 8년 동안이나 짝사랑해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말에 고민없이 동의했던 것이다.결혼한 뒤에도 이준혁은 매일 너무 바빴다. 한달 동안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하지만 2년 동안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2화

    윤혜인은 우유를 마시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연예 뉴스로 가득했지만 윤혜인은 이런 쪽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했다.그러던 중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보여서 그 기사를 클릭하게 되었다.기사와 함께 기재된 사진 속에서 임세희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함께 걷고 있는 남자는 흐릿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 눈에 봐도 몸매 비율은 완벽했다.사진을 확대한 윤혜인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사진 속 실루엣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준혁이다!그럼 오후에 갑자기 회의를 취소하고 외출을 했던 게, 그의 전 여자친구인 임세희를 데리러 공항에 간 거란 말인가?그 순간, 윤혜인의 가슴에는 큰 돌멩이 박힌 듯 답답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다가 의도치 않게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고 다급하게 끊으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유난히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였다.너무나도 깜짝 놀란 윤혜인은 바로 핸드폰을 던져버렸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한참 뒤, 날이 밝아오자 윤혜인은 시간에 맞춰 회사로 출근했다.이준혁과 가짜 결혼을 한 뒤, 이준혁은 그녀가 집에 있길 원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이준혁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다른 회사가 아닌 이산 그룹에 취직해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 곁에 비서로 남아 물을 따르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등 소일거리 역할을 맡게 되었다.그리고 중요하고 핵심적인 비서 일은 이준혁의 수행 비서인 주훈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회사에 윤혜인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훈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산 그룹의 이준혁 대표는 지금까지 계속 남자 비서만 채용했고 2년 동안 여자 비서는 윤혜인 한 명밖에 없었기에 다들 윤혜인과 회사 대표가 특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3화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김성훈이었다. 그는 사무실을 떠나려는 듯했다.윤혜인은 주먹을 꽉 쥐고 감정을 숨긴 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김 대표님, 안녕하세요.”그러고는 김성훈을 지나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급스러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이준혁은 고가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윤혜인은 단번에 이 옷이 어젯밤 그가 입고 나갔던 옷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 마케팅 보고서입니다. 결재해 주세요.”이준혁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서류에 사인한 뒤 윤혜인에게 건넸고 서류를 받은 윤혜인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보니 김성훈이 여전히 사무실 입구에 서있었다.그녀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김성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젠장, 혜인 씨가 우리 대화를 들은 거 아니야?”이준혁의 눈빛에는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그는 김성훈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성격이 온순하고 착한 윤혜인은 질투 같은 걸 절대 안 한다. 그녀가 계속 지금처럼 조용하게 살아준다면 이준혁은 앞으로도 그녀에게 많은 걸 해줄 것이다.한편, 엘리베이터 안에서.윤혜인은 최대한 눈물이 흐르지 않게 고개를 높이 들었지만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녀는 2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였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 여자친구의 복귀에는 역부족이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윤혜인이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가눈 채, 탕비실로 향했다.커피로 정신을 좀 맑게 하고 싶었다. 탕비실 안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기사 봤어? 임세희 귀국했대.”“응? 그게 누군데?”“너 몰라? 임세희는 임씨 가문의 아가씨잖아. 본인도 유명한 탑급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4화

    ”뭐가 그렇게 잘나서 맨날 머리 치켜들고 다니는 거야? 다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거든. 부모도 없는 잡종 주제에…”팍!송소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혜인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송소미는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윤혜인이 감히 그녀에게 손찌검을 할 줄은 상상도 못해서 순간 멍한 표정이었다.한참 뒤, 송소미가 이를 꽉 깨물며 소리를 질렀다.“너, 너 지금 감히 날 때린 거야?!”“당신에게 예의를 가르친 겁니다.”윤혜인이 싸늘한 눈빛으로 송소미를 보며 대답했다. 윤혜인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아무나 그녀의 부모님을 모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송소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준혁의 사촌 여동생인 그녀는 늘 타인의 아부를 받아왔기에 이렇게 대놓고 그녀와 맞서 싸우는 사람은 윤혜인이 처음이었다.“이 나쁜 계집애!”송소미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윤혜인에게 달려들었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할퀴려고 했지만 반응 속도가 빠른 윤혜인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은 채 송소미를 꿈쩍도 못하게 만들었다.윤혜인보다 체구가 작은 송소미는 어떻게든 윤혜인을 때리려고 발버둥을 쳤고 그 모습은 매우 추했다.화가 잔뜩 난 송소미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네가 뭐라도 되는것 같아? 넌 단지 우리 준혁 오빠가 침대에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일 뿐이라고! 넌 몸 파는 여자보다 더 천박해!”송소미는 갈수록 심한 욕을 입 밖에 꺼냈고 모여드는 직원도 점점 많아졌다.“지금 뭐 하는 거야!”낮게 깔린 이준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난동을 부리고 있는 송소미를 발견했던 것이다.그의 등장에 순식간에 탕비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준혁 오빠?”송소미는 평소에도 이준혁을 조금 무서워했다. 이 사촌 오빠는 가차없는 성격이라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에게 이준혁 앞에서는 까불지 말라고 경고했었다.하지만 조금 전에 뺨을 맞은 게 생각나자 송소미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5화

    송소미는 지금 이 순간, 윤혜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준혁 오빠, 저 나쁜 계집애가 하는 말 좀 들어봐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감히 계속 건방을 떨다니. 준혁 오빠, 저 여자 다시 불러와요! 난 오늘 화가 풀릴 때까지 저 여자를 때려야겠어요!”이준혁은 가녀린 윤혜인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적당히 해.”이준혁이 차갑게 대꾸했다.평소에도 독하기로 소문난 송소미는 이준혁이 조금 전에도 윤혜인의 편을 들지 않았기에 이준혁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윤혜인의 뒷모습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다음에는 사람 불러서 저 여자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예요!”“송소미!”이준혁이 실눈을 살짝 뜬 채 송소미를 쳐다보았고 송소미는 그 눈빛에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딱 한 번만 얘기할게. 네 머릿속에 있는 꿍꿍이를 접어. 저 여자 건드리지 마.”송소미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기에 마음속에서 들끓던 복수심을 도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요…”이준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송소미를 힐끗 쳐다보다가 탕비실을 떠나면서 곁에 있던 주훈에게 명령을 내렸다.“앞으로 연관 없는 외부인은 회사에 들이지 못하게 해.”이준혁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송소미는 그의 뒤에서 계속 아부를 떨었다.“준혁 오빠 이렇게 큰 회사에 그런 명확한 규칙은 있어야 돼요.” 하지만 잠시뒤, 주훈이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송소미 씨, 이만 나가주세요.”송소미는 그제야 그녀가 바로 그 연관 없는 외부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단호하게 떠나는 이준혁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주훈이 부른 경호원에게 잡혀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송소미가 아무리 발악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경호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한편, 자리로 돌아온 윤혜인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고 차가운 이준혁의 얼굴이 생각나자 마음이 아팠다.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고, 회사를 나서려던 윤혜인 앞에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6화

    이준혁의 건장한 실루엣이 점점 가까워지다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윤혜인을 그대로 스쳐갔다.그녀를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못 본 척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윤혜인은 이준혁 품에 안겨 있던 여자의 얼굴을 정확하게 보았다. 그녀는 바로 얼마 전에 기사가 났던 임세희였다.윤혜인은 무거운 걸음으로 병원을 떠났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택시에 탄 윤혜인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고 목적지를 묻는 택시 기사의 말에 그녀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스카이 별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거긴 이제 곧 그녀의 집이 아니게 될지도 모르니까.한참 고민하던 윤혜인이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기사님, 청월 아파트로 가주세요.”청월 아파트는 윤혜인이 이준혁과 결혼하고 나서 구매한 집이었다. 그때 당시 그녀는 할머니를 서울로 모셔오기 위해 할부로 산 20평 남짓한 아파트였다. 집이 크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와 둘이서 살기에는 충분했다.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이준혁이 큰 별장을 하나 사주겠다고 했지만 윤혜인이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결정이 그녀가 지금까지 한 일들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윤혜인은 택시에서 내린 뒤, 바로 올라가지 않고 아파트 공원에 앉아 정신이 맑아질 수 있도록 잠시 바람을 쐬었다.지난 2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달콤했던 순간도 있었고 서럽고 마음이 아팠던 때도 있었다.2년, 700일이 넘는 낮과 밤들, 그 마음이 아무리 얼음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이 시간이면 충분히 녹았을 텐데, 지금 그녀의 귓가에는 비웃음 소리만 들렸다.그 소리들은 그녀에게 이 모든 게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비웃고 있었다.어둠이 깃들고 나서야 윤혜인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문 앞에 기대고 서있는 이준혁을 발견했다.옷소매를 거둔 이준혁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서, 기다란 목과 섹시한 쇄골을 보일 듯 말 듯하게 드러냈다. 윤혜인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쯤 병원에서 임세희와 함께 하고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7화

    윤혜인이 가까스로 억지웃음을 보였지만 마음은 너무 아팠다. 누군가가 그녀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고 있는 것 같았다.“관계? 윤혜인, 네가 보기엔 우리가 어떤 관계 같은데?”이준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차갑게 웃었고 이 남자의 질문에 윤혜인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렇다, 처음부터 이준혁의 태도는 확실했다. 두 사람은 계약 결혼으로 절대 사사로운 감정을 나누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 눈에 그들은 단지 직원과 상사의 관계였다.이준혁은 여전히 서울에서 가장 핫한 골든 싱글이었고, 그와 결혼하고 싶은 규수들은 줄을 설 정도였다.이준혁이 이렇게 묻는 건 그녀에게 절대 달라붙지 말라고 얘기인가?아랫입술을 꽉 깨문 윤혜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죄송합니다, 이 대표님.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이만 돌아가세요.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청월 아파트에 오지 마세요.”말을 끝낸 윤혜인은 끝내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10년 동안이나 사랑한 남자인데 슬프지 않을 수가 없지만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그녀는 손을 놓을 준비를 해야 했다.계속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살 수는 없었다.복도의 센서등이 꺼지고 켜졌다를 반복했고 이준혁은 실눈을 뜬 채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온몸에서는 위험하다는 시그널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준혁은 윤혜인의 투정을 받아줄 수가 있지만 이번에는 실로 선을 넘은 것이다!타오르던 분노는 윤혜성의 글썽거리는 눈망울을 본 순간, 사르르 녹아버렸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혹시 송소미 때문이라면…”“그 여자랑 상관없어요. 이 대표님, 그만 돌아가세요.”두 사람 사이를 막고 있는 건 송소미 한 사람뿐만은 아니다.하루 종일 너무 힘들었던 윤혜인은 이준혁을 지나쳐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억지를 부리는 윤혜인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진 이준혁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더니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윤혜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억지 그만 부려.”이준혁이 눈살을 확 찌푸리더니 윤혜인을 돌려세운 뒤, 그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8화

    이준혁이 걸음을 멈춘 채, 자신의 셔츠를 꽉 잡고 있는 윤혜인의 손가락을 보며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왜?”“그게… 저.. 무서워요.”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대충 이유를 둘러댔다. 자신의 허접한 말에 윤혜인은 감히 이준혁을 쳐다보지도 못했으며 그가 과연 믿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걱정된 마음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조금 전에 약 먹었으니깐, 가서 한 숨 자면 괜찮아질 거예요.”이준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품에 움츠린 채 안겨 있는 윤혜인을 바라보았다. 이 각도로 보는 그녀는 더욱 예뻤다. 갸름한 얼굴에 긴 속눈썹까지, 더군다나 열이 난 탓에 하얀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라 유난히 가녀린 모습이었다.이준혁은 순식간에 마음이 약해졌다. 그는 돌아서서 익숙한 듯 집 문을 열고 윤혜인을 안방 침대에 눕혔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윤혜인은 조금 전에 너무 긴장한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으며 머리카락도 젖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얼른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한 숨 푹 자고 싶었다.“저 이제 괜찮아요.”이준혁을 보내려는 뜻이었다. 별장 생활에 익숙한 이준혁은 그녀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그래.”간단하게 대답한 이준혁은 떠나지 않았고 되레 손으로 넥타이를 풀더니 셔츠 단추까지 하나씩 풀고 있었다.“옷은 왜 벗는 거예요?”순간 흠칫 놀란 윤혜인은 숨을 참으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지금 그녀는 몸도 안 좋은데 설마 이 남자는 욕구를 풀 생각밖에 안 하고 있는 건가? 저게 인간인가?이준혁이 말없이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윤혜인은 그 적나라한 눈빛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녀를 훑어보는 이준혁의 시선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준혁의 눈빛은 다른 남자와 달랐다. 마치 윤혜인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녀는 이준혁 앞에 알몸으로 서있는 기분이었다.“저 지금 몸이 불편해요.”윤혜인을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은 오늘 잠자리를 가질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

Latest chapter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11화

    그러나 발견한 건 한쪽 구덩이 속에 버려진 아이의 옷뿐이었다.그 순간 노인은 절망에 빠졌다.무녀들에게 아이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싶었지만 지칠 대로 지친 몸이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그때 그는 꿈을 꾸었다.꿈속에서 자신이 키운 그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아버지, 제발 돌아가세요. 살아남으셔야 해요.”아마도 하늘이 그를 불쌍히 여긴 걸까.노인이 잠든 사이, 몸이 나무 덤불 아래로 굴러떨어진 덕분에 무녀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노인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닫고 혼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날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았다.그리고 이제 소원이 친구를 찾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며 노인은 그때의 자신을 떠올렸다.그때의 자신은 너무도 비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어린 여자도 두려움 없이 무곡산으로 향하겠다고 하는데 이제는 늙고 죽음을 앞둔 자신이 무엇을 더 두려워할 게 있겠는가.소원은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야 했다.“어르신, 아드님은 아마 이미... 돌아가셨을 거예요.”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하지만 눈가에는 여전히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알아요. 그래도 한 번은 불러보고 싶어요. 그 아이는 사냥을 나가면 끼니 챙기는 것도 잊고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내가 부르지 않으면 집에 돌아올 줄도 모르는 바보 같은 녀석이었죠. 그러니 이번에도... 내가 불러야 돌아오지 않겠어요?”“이번만큼은 내 바보 같은 아이를 집으로 데려올 거예요...”노인의 목소리는 쓸쓸하고도 짙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소원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좋아요. 같이 가서 아드님을 집으로 데려와요.”그렇게 노인은 간단히 짐을 꾸렸다.말린 고기를 챙기고 안으로 들어가 헌터 라이플을 꺼내 들었다.“이거 다룰 줄 알아요?”소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 서현재가 마을에서 사격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몇 번 해본 적이 없어서 능숙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10화

    소원은 영문을 잘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어르신, 자제분이 아들이에요 아니면 딸이에요? 그런데 왜 거기 가신 거예요?”소원은 갑자기 경계심이 들었다.‘혹시 여자라면... 설마 무녀인 건 아니겠지?’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고 노인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내 아이는 아들이에요. 그 백발의 늙은 마귀가 데려갔죠. 아무리 아니라고 발뺌해도 난 확신해요!”소원은 천천히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노인은 산 아래로 내려갔다가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다.이미 추위에 온몸이 새파랗게 얼어붙어 있었고 얇은 포대기를 걷어 보니 선천적으로 한쪽 손이 없는 아이였다.노인은 아이를 구조센터로 데려갔지만 센터에서는 복지시설로 보내야 한다며 책임을 미뤘다.산속에서 오랜 세월을 산 탓에 노인은 신고하는 법도 몰랐다.하지만 더 결정적인 건 어쩐지 그 아이와 인연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단 한 손으로 그의 소매를 꽉 움켜쥐고는 울지도 않았고 떼어놓을 수도 없었다.결국 노인은 마음이 약해져 아이를 데리고 산으로 돌아갔다.시간이 지나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비록 한쪽 손이 없었지만 생활하는 데 별문제는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있는 덕분에 노인의 외로운 산속 생활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노인은 아이에게 글을 가르치고 나이가 더 들면 산을 내려가 학교에 보내려 했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에 가서 따돌림을 당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아이는 오히려 산속 생활을 더 좋아했다. 글을 읽고 쓰는 것보다는 노인과 함께 사냥을 다니는 게 더 재미있다고 했다.공부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어 보였고 노인도 아이를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았다.그렇게 둘은 산에서 자급자족하며 부족함 없이 살았다. 사냥한 고기를 마을에 가져가 생필품으로 바꾸면 충분했으니 말이다.다만 노인이 아이에게 철저히 가르친 한 가지가 있었다.“산 너머로 절대 가서는 안 된다. 특히 무곡산은 절대 안 돼. 그곳엔 사람을 잡아먹는 무녀들이 있어. 아이를 보면 바로 잡아먹어 버릴 거다.”이 말이 단순한 겁주기가 아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09화

    소원이 노인에게 물었다.“여기서 무곡산까지 얼마나 먼가요?”‘무곡산’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노인의 표정은 급격히 변하더니 조금 전의 온화한 기색마저 사라졌다. 그러고는 거친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그걸 왜 묻는 거죠? 무곡산 사람인가요?”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소원은 당황했다.노인의 손에는 어느새 고기를 다듬던 칼이 쥐어져 있었다. 하여 소원의 머릿속에는 혹시 자신을 무녀로 오해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아뇨. 저는 거기에 있는 친구를 찾으러 가는 길이에요. 친구가 아직 그곳에 있어서 데리고 나오려고요.”소원의 말을 듣고서야 노인은 손에 쥔 칼을 조금 느슨하게 잡으며 말했다.“여기서 나가려면 사흘 정도 걸려요. 하지만 그쪽 체력으로 무곡산까지 가려면 최소 나흘에서 닷새는 걸릴 거예요. 차라리 나가서 구조대를 부르는 게 빠를 겁니다.”이미 배도 채우고 충분히 쉬었던 소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목에 있던 금팔찌를 풀어 노인에게 건넸다.“이거 가지세요. 밖으로 나가시면 돈으로 바꿔서 생필품이라도 사세요.”노인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지만 소원은 억지로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런 뒤 혹시라도 마을 사람들이 사기를 당할까 걱정되어 덧붙였다.“이건 순금이에요. 무게가 62g이라 현재 시세로는 8만 원이 넘어요. 바꾸실 때 꼭 이 가격을 기준으로 받으셔야 해요.”400만 정도라는 말에 노인은 더욱 받을 수가 없어졌다.“아니, 아니에요. 난 생필품도 다 사냥한 고기로 바꿔서 쓰고 있어요. 두 손, 두 발 멀쩡하면 굶을 일은 없어요. 이렇게 귀한 걸 받을 순 없죠.”“이건 별거 아니에요. 저한테 이런 장신구 많아요. 어르신께서 절 도와주셨으니 감사의 뜻이에요.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받아두세요. 안 그러면 저도 마음이 불편해요.”그럼에도 노인은 계속해서 거절했지만 소원은 끝까지 주려 했다.나이가 적지 않은 노인은 언젠가 몸이 아파 사냥이 못 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이 금팔찌가 응급자금이 될 터였다.결국 소원은 몰래 팔찌를 고기 접시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08화

    반응할 새도 없이 소원의 몸은 강하게 밀려 물속으로 빠졌다.아래쪽은 배수로였다.소원은 거센 물살을 거스르지 못하고 점점 더 멀리 떠밀려갔다.서현재는 이 모든 걸 계산해 둔 것이었다.그는 배수로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소원이 수영을 잘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예전 마을에 있을 때 그가 직접 가르쳤으니 말이다.소원에게 수영뿐만 아니라, 활쏘기, 기초적인 격투술, 그리고 생존을 위한 기술들까지 가르쳤던 것도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소원은 빠른 속도로 물살에 휩쓸려갔다.희미하게 들려오는 소음 속에서 강가 위쪽에서 무녀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이어서 남자의 짧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고 그 뒤로 더 이상 남자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소원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서현재가 들킨 것일 가능성이 컸다.팔을 힘껏 휘저으며 다시 돌아가려 했지만 거대한 물살을 이길 수 없었다.산속의 배수로는 폭우가 내릴 때면 마치 홍수처럼 변했다.소원뿐만이 아니라 체력이 좋은 성인 남성이나 수영선수라 해도 역류할 수 없을 정도였다.결국 완전히 지쳐버린 소원은 손에 힘이 빠지며 물 위에 몸을 맡긴 채 흐름을 따라 떠내려갔다.그렇게 한참을 떠다니다 눈을 떠보니 소원은 어느 초가집 안에 누워 있었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혹시 또다시 붙잡힌 걸까?’그때 온화한 인상의 노인이 다가왔다.“깨어났네요? 물 좀 마실래요?”노인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물병을 건넸다.그의 얼굴에는 산골 사람 특유의 순박함이 묻어 있었지 무녀들처럼 음험하고 교활한 느낌은 없었다.하지만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소원은 물병을 받긴 했지만 마시지 않고 먼저 물었다.“어르신, 여기가 어디인가요?”그러자 노인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여긴 남이산이라고 해요.”‘남이산?’그렇다면 협곡을 빠져나와 또 다른 산속으로 들어온 셈이었다.이제야 서현재가 구조를 요청하기 어렵다고 했던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이곳은 산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07화

    서현재는 서씨 가문 전체를 증오했다. 이 가문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혐오스러웠다.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를 이용하고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도 모자라 그의 소중한 사람들까지 해치려 들었으니 말이다.만약 서현재가 서씨 가문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가문을 벗어나려 해도 결국 그의 존재로 인해 누군가는 다치게 될 것이다.마침 과거 무녀 중 한 명이 해외에서 어느 가문의 어린 후계자를 해쳤다.하지만 그녀가 국내로 도망친 탓에 해외 가문에서는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그러다 빨간 옷을 입은 여자의 흔적을 포착한 뒤 서현재에게 접근해 어떤 거래를 제안했다.그가 지금처럼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 해외 가문이 생물학 교수와 협력해 독벌레를 차단할 수 있는 약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그 덕분에 서현재는 더 이상 몸속에서 독벌레에게 갉아 먹히지 않을 수 있었다.만약 그 약이 아니었다면 서현재는 아마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소원에게는 절대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이 모든 위험은 혼자 감당하면 되니 말이다.소원을 다시 이런 위험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그야말로 천 번, 만 번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죄였다.“소원 누나, 내 야망을... 누나는 모르겠죠?”희미한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어둠 속에서 서현재의 날렵한 얼굴선이 또렷이 드러났다.그는 씁쓸한 듯 혹은 조소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나는 서씨 가문을 손에 넣고 싶어요. 그 사람들이 날 고통스럽게 만들고 박해했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어요?”소원은 서현재가 겪은 고통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를 더 다그칠 수도 없었다.서씨 가문이 그를 어떤 방식으로 박해했는지 차마 묻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현재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현재야, 복수를 하려거든 나도 함께할게. 근데 이렇게 위험한 방식은 안 돼. 네 목숨을 걸면서까지 장난처럼 굴면 절대 안 돼.”소원의 단호한 말에 서현재는 가볍게 웃었다.“소원 누나, 누나는 서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06화

    “네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우선 나가서 지원군을 불러오고 그다음에 저 사람들을 처리하자.”소원이 설득했다.“시간이 없어요.”서현재가 고개를 저었다.“지금 나가더라도 산 중턱까지만 갈 수 있고 거기서 내가 미리 준비해 둔 산속 마을 사람들이 누나를 데리고 나갈 거예요. 하지만 산을 완전히 빠져나가는 데만 사흘이 걸려요. 우리가 지원군을 데리고 다시 오는 데까지 일주일은 족히 걸릴 거예요. 그동안 저 사람들은 이미 눈치채고 도망갈 준비를 마쳤을 거고.”그때가 되면 그녀들이 잡아 온 ‘산 채로 보관된 희생양’들은 오직 하나의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입막음 당하는 것.이번에는 족장의 육신 교체 의식 때문에 바깥에 배치되어 있던 무녀들까지 모두 소집된 상태였다.이렇게 한곳에 다 모이는 일이 드문 만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이 잔당들을 언제 다시 완전히 소탕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다.“그래도 이건 네가 할 일이 아니잖아! 네 몸 상태는 어때? 전에는 왜 기억을 잃었고 왜 갑자기 순순히 말을 듣게 된 건데?”소원이 한꺼번에 쏟아내듯 물었다.하지만 서현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지금은 모든 걸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소원 누나, 내 말 들어요. 떠나요. 무조건 떠나야 해요.”서현재의 목소리는 한없이 단호했다.“아니, 나갈 거면 같이 나가야지.”소원이 더 강한 의지로 맞섰다.그녀는 성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서 소중한 사람이 무모한 짓을 하는 걸 보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지지할 수는 더더욱 없고 말이다.“소원 누나, 난 안 나가요.”서현재의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함께 체념이 서려 있었다.떠날 수 없었다.떠나서도 안 됐다.소원은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현재야, 제발 나랑 같이 가자. 나가서 지원군을 부르자. 이건 애초에 네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저 사람들 그렇게 많은 데다가 뱀도 다루고 심지어 독벌레까지 조종할 수 있잖아...”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이건 누가 봐도 죽으러 가는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05화

    서현재가 입을 열었다.“이거 이혼초에요. 목에 걸고 냇가를 따라서 걸으면 나갈 수 있어요.”소원은 할 말을 잃었다. 서현재의 계획에 소원과 함께 도망가는 건 원래부터 없었던 것 같았다.기다려도 서현재가 말이 없자 소원이 물었다.“너는?”“난 아직 가면 안 돼요.”서현재가 말했다.“얼른 가요. 아직 시간이 조금 있어요.”“너는 왜 안 가는데?”소원이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족장이 사람 피를 빨아먹는 걸로 청춘을 유지하고 있어요. 몸도 바꿔야 한다는데 천년 이래 성공한 적이 딱 한 번밖에 없대요. 물론 그 한 사람도 소문일 뿐이지 목격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무당 가문에서는 믿어 의심치 않고 있어요. 이번에 누나를 잡아 온 것도 다 몸을 바꾸기 위해서래요. 누나 몸에 음기가 양기보다 많아서 뱀신이 선택했다나 뭐라나?”서현재는 소원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빨간 옷을 입은 여자의 몸에 뱀신이 있대요. 그때 병원에서 누나랑 마주쳤을 때 뱀신이 누나를 선택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누나를 유인해서 여기로 잡아들인 거죠.”소원은 몸을 바꾼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지만 백발의 족장이 빨간 옷을 입은 여자와 나눈 대화에 맞춰보면 맞는 말이었다. 믿을 수 없는 얘기였지만 이제 믿을 수밖에 없었다.서현재는 알아둔 정보를 소원에게 남김없이 알려줬다.“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차기 족장이 될 사람이에요. 이미 여든은 됐다고 하는데 흡혈술, 그리고 독벌레에서 추출한 알약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어요. 여기에 살아있는 공물을 가득 기르면서 피를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거죠.”소원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세상에 이 정도로 미친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그러다 몸을 바꾸는 데 실패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소원이 물었다.“그러면...”그 끝이 너무 잔인해 잠깐 망설이던 서현재는 그래도 누군가는 그들의 악행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말을 이어갔다.“특수 제작한 알코올 화로에 넣어서 굽는다고 들었어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04화

    당황한 소원은 도로 달아갈 시간도 없었다. 문이 열리고 큰 키를 가진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는데 체격을 보아하니 빨간 옷을 입은 여자는 아닌 것 같았다.눈여겨보니 서현재였다. 서현재는 눈동자가 어두웠지만 낮에 봤을 때처럼 멍한 표정은 아니었다.“누나...”서현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원을 불렀지만 소원은 너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기억... 잃은 거 아니었어...?”기억을 잃은 그가 어떻게 그녀를 알아보는지 의문이었다.서현재는 별다른 설명 없이 소원의 팔목을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이따 설명할게요. 일단 나랑 함께 가요.”소원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서현재와 함께 나무를 타고 내려갔다. 두 사람은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 낙엽을 밟아서 생기는 소리를 최대한 줄였다.그때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렸고 서현재가 귓가에 속삭였다.“엎드려요.”소원이 바로 자리에 엎드렸다.머리 위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개를 쫙 펴고 날아다녔는데 두 사람 위를 지나가며 우렁차게 지저귀었다.새가 지나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서현재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이월조인인데 저녁이면 무곡산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어요. 낯선 사람을 보면 바로 아래로 내려와 사람을 물고는 높은 곳에서 떨어트리죠.”소원은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을 드리웠던 거대한 그림자가 떠올라 고개를 들어보니 놀라울 정도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마치 바다에서 사는 상어와도 같았다. 이렇게 큰 새라면 한두 사람 정도 물어가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궁금해진 소원이 이렇게 물었다.“낯선 사람은 어떻게 구별하는데?”소원은 처음 무곡산에 왔을 때 기괴한 분위기에 몹시 놀랐다. 그래도 관찰해 낸 게 있다면 여기 있는 동물과 새들은 이상하리만치 영민했고 주인의 명령에 잘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곳에 있는 무녀들이 사술을 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게다가 여기 있는 것들 모두가 전설과 연관되어 있었다.다만 실상은 아까 봤던 그 뱀처럼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03화

    트릭을 발견한 소원은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지만 급하게 들어오느라 문이 아직 활짝 열려 있어 두 시진쯤 지나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다시 오면 낌새를 눈치챌 게 뻔했기에 얼른 문을 닫아야 했다.잠에서 깬 뱀은 짧은 시간 내에는 다시 잠들지 않을 것 같았다. 소원은 바닥에 놓인 가루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시간이 일분일초 흘러갔다. 소원이 가루를 한 줌 쥐고 문 쪽으로 뛰어가자 뱀도 혀를 날름거리며 공격적인 자세로 뒤따라왔다.소원이 손에 든 가루를 뱀에게 뿌리자 뱀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충격이 컸는지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회를 잡은 소원이 문을 닫고는 나뭇가지로 빗장을 다시 내렸다.웅황 가루에 다친 뱀은 아직 채 회복하지 못했지만 아까보다는 머리를 살짝 쳐들고 소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표독스러워 보였다.소원은 뱀에게 총기가 없다는 걸 안 뒤로 모든 게 허세 같아 더는 무섭지 않았다. 그 뱀을 여기에 간 주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같은 시간이 되자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뱀이 이상하다는 걸 발견했고 뱀도 여자를 보고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의 팔뚝을 따라 얼굴 옆으로 기어 올라가더니 말하기라도 하듯 혀를 날름거렸다.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뱀을 살피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소원을 바라봤다.“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소원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어. 움직이기만 해도 물어버릴 것처럼 달려드는데. 나 여기 사흘이나 갇혀 있으면서 아무것도 못 먹었어. 몸이 뻣뻣해져서 움직이는데 갑자기 달려드니까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소원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빨간 옷을 입은 여자는 소원의 말을 믿는 듯한 눈치였고 결계로 쳐놓은 분말이 흐트러진 것도 다 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여자가 알약을 하나 꺼내 뱀에게 먹이자 뱀이 고분고분 몸에서 내려가더니 몸을 웅크리고 휴식에 돌입했다.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