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진은 소원의 턱을 꽉 잡더니 테이블에 내팽개치며 이렇게 말했다.“젠장. 개가 뭔지 몰라? 내가 가르쳐줘?”옆에서 시중을 들던 아가씨들이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짜증이 치밀어오른 조세진이 언성을 높였다.“꺼져.”시중을 들던 아가씨들이 지체할 엄두가 나지 않아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 나갔다.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문을 닫고 안에서 있었던 일을 영숙에게 알려줬다.영숙이 이를 듣더니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자 옆에 있던 아가씨가 얼른 불을 붙여줬다. 영숙은 담배를 한 모금 빨더니 이렇게 말했다.“고작 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쓸모없다는 소리 아니겠어? 그러면 괴롭힘을 받아도 싸지.”순간 두 아가씨는 더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들은 영숙이 원칙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말만 잘 들으면 위험이 닥쳐도 직접 나서서 도와줬지만 반항하는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식으로 혼쭐을 내줬다.선미가 제일 좋은 시범 케이스였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남자는 건드리지 말라고 영숙이 그렇게 말했는데 들으려 하지 않고 육 대표에게 들러붙었다가 육 대표에게 폭행을 당했을뿐더러 업소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영숙은 그 손실을 다 선미에게 돌렸고 선미도 미친 듯이 일해서 갚았지만 아직도 몇억은 더 갚아야 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 스폰해줄 사람만 잘 만나도 금방 갚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요새 예쁜 아가씨도 많고 경쟁도 심해 선미처럼 얼굴을 뜯어고친 여자는 잘 먹히지 않을 때가 많았다.그 뒤로 영숙은 방 대표와 붙어먹었지만 방 대표는 종잡을 수 없는 데다 여자 사람 친구도 많았다. 선미가 그쪽으로 기술이 좋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절대 방 대표의 눈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돈을 들여 소원의 배상을 대신 해주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다들 영숙의 말이라면 어명처럼 받들었다. 영숙은 이 바닥에 오래 있어서 눈치를 잘 살폈고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미리 짚어주기도 했다.아가씨들은 영숙이 고개를
두 아가씨는 혀를 삐쭉 내밀더니 더는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영숙은 담배를 절반쯤 태우고는 콧방귀를 뀌었다.“오늘 채워야 할 금액은 채우고 떠드는 거야?”두 아가씨는 영숙의 말에 입을 앙다물며 얌전하게 말했다.“이만 내려가 볼게요.”영숙은 대꾸하지 않았다. 두 아가씨가 물러가고 영숙은 조세진이 있는 룸 앞으로 다가가 서서는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속이 탔는지 담배가 다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른 채 데이고 말았다. 사실 영숙도 많이 긴장한 것 같았다.그렇게 문 앞에서 한참 듣던 영숙은 안에서 더 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자리를 떠났다....조세진에게 내동댕이쳐진 소원은 갈비가 부서진 것처럼 너무 아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조세진의 더러운 입술이 곧 소원에게 닿으려는데 소원이 얼른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애초에 왜 육경한에게 당했는지 잊은 거 아니죠?”조세진이 멈칫하더니 되물었다.“무슨 말이야?”소원이 이 틈을 타서 한숨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다.“그 땅끝에 있는 마을까지 내려간 거 육경한 때문이라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조세진은 육경한의 이름을 듣자마자 성욕마저 줄어드는 것 같았다.‘그 재수 없는 자식 얘기는 왜 꺼내는 거야?’소원이 이렇게 말했다.“육경한이 조 대표님을 그 땅끝에 있는 마을까지 내려보낸 건 내게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조 대표님을 내쫓는 것으로 내게 잘 보이려고 한 거죠.”조세진은 그때 수영장에서 당했던 것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올라 바로 욕설을 퍼부었다.“다 네년 때문이잖아.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서울에서 쫓겨날 일은 없었어.”조세진이 소원의 옷을 벗기며 계속 중얼거렸다.“이제 육경한 곁에는 방민아가 있잖아. 이제 더는 너를 도와줄 리 없으니까 빠져나갈 생각하지 마.”촤락.소원이 챙겨입었던 유니폼이 조세진에 의해 볼품없이 찢어지고 말았다. 소원은 얼른 손으로 찢어진 천 쪼가리를 움켜쥐고 조세진에게 따귀를 날렸다.조세진은 갑자기 날아든 따귀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소원의 머리
소원이 이렇게 되묻자 조세진은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오만하기 그지없는 방민아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기에 잘 보이려고 할 리는 더더욱 없었다. 그런 방민아가 갑자기 이런 일을 자청하고 나선 게 이상하긴 했다.조세진은 소원의 말에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방민아가 함정을 판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육경한이 물으면 방민아는 얼마든지 발을 빼고 조세진에게 덮어씌울 수 있었다.‘젠장. 방민아 역시 듣던 대로 무서운 여자네.’조세진은 속으로 이렇게 궁시렁거렸지만 여전히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지금 이런 말 하는 거 일부러 나 엿 먹이려고 그러는 거 아니지?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지어낸 걸 수도 있잖아.”소원이 침착하게 말했다.“말은 많이 한다고 효과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해명한다고 해서 다 먹히는 것도 아니고요. 본인이 직접 그 말이 맞는지 마음으로 느끼는 게 중요하죠.”소원은 지금 자신의 입장에서 출발해 해명하면 조세진이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의문만 잔뜩 던져 알아서 생각하게 했다.소원의 말에 거의 넘어간 조세진이 한마디 덧붙였다.“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방민아가 여기로 보냈다고 직접 육경한에게 말하지 않는 거야?”“방민아가 아이로 협박한 거지?”조세진이 이렇게 추측했다. 생긴 건 우락부락하고 다소 멍청해 보였지만 소원은 한 번도 조세진을 바보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서울에 발을 붙이고 이름을 날릴 정도면 절대 바보일 리 없었다.“육경한이 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지금 당장 전화해서 알려. 어떻게 처리하는지 좀 보게.”조세진이 소원에게 전화를 걸라며 몰아세우기 시작했지만 소원이 고개를 저었다.“그 제안 바로 거절해도 되는데 해야 할 일이 남아서 여기 남아있는 것뿐이에요.”방민아가 무서워서 들어온 건 아니었다. 소원이 방민아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방민아의 경계심을 풀면서 육경한의 경계심도 같이 풀려는 것이었다.이번에는 절대 저번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차분하게 풀어나갈 생각이었다. 유진의 양육권을
조세진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 바닥에 오래 있은 사람 중에 능구렁이가 아닌 사람이 없었기에 사람 마음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했다.“너나 방민아나 다 똑같이 나쁜 년이야. 상대가 죽기를 누구보다 바라잖아.”조세진이 콧방귀를 뀌더니 헤벌쭉 웃었다.“둘 다 나를 샌드백으로 쓰겠다는 거잖아.”속셈을 들킨 소원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못 믿겠으면 방법 하나 알려줄까요? 이 방법대로 하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조세진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물었다.“무슨 방법?”“지금 방민아에게 전화해서 내가 죽었다고 해봐요. 어떤 반응인지 보면 바로 알지 않겠어요?”조세진은 소원의 아이디어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속이 텅 빈 예쁜 꽃병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리까지 총명했다. 조세진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방민아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민아가 전화를 받았다.“삼촌,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평소 방민아는 조세진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대한 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소원의 처참한 상황을 들으려고 조세진에게 유난히 살갑게 굴었다.조세진은 일부러 당황한 척하며 이렇게 말했다.“민아 씨, 어떡해요...”방민아는 조세진의 말투에 일단 기분이 좋아졌다. 소원이 조세진에게 당해 반병신이 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 친근하게 말했다.“삼촌, 왜 그래요?”“죽었어요. 죽었어. 내가 소원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죽어버렸어요.”조세진의 연기는 꽤 자연스러웠다. 버벅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정말 진짜 같았다.“...”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조세진은 방민아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의심하기 시작했다.“이제 어떡하죠? 민아 씨... 아...”방민아가 정신을 차리고는 물었다.“삼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어쩌다 죽은 거예요?”방민아는 소원이 병신이 됐을 거라는 생각은 했어도 죽일 정도까지 가지고 놀았을 줄은 몰랐다. 예상밖의 일이라 방민아는 일단 대충 관심하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조세진이 대답했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조세진은 억울함을 가득 담아 이렇게 말했다.“민아 씨, 나 골로 보내려고 작정했어요?”방민아가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세진 삼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왜 세진 삼촌을 골로 보내요? 난 그냥 KB 클럽에 선물을 보낸다고 했을 뿐이지 소원 씨가 거기서 출근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소원 씨를 그쪽으로 보내요?”아니나 다를까 방민아는 계획대로 발을 뺐다. 애초에 조세진에게 말할 때도 소원이라는 말은 일절 없었고 선물을 준비했다고만 했다. 이런 일이 생길 걸 대비해 여지를 많이 남겨둔 덕분에 책임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조세진은 이제 소원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방민아는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단순하고 선해 보일지 모르지만 마음은 악하기 그지없었다.“방민아 씨, 돌려서 얘기하지 말고 어떻게 할지나 말해봐요. 이 여자 전에 민아 씨 약혼자랑 붙어먹었던 그 여자 아닌가요? 뭐 시체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니지만 이것 하나는 약속해야죠. 육경한이 나 찾아오거나 그러진 않겠죠?”“세진 삼촌, 삼촌도 그 여자가 과거라는 거 아네요. 적어도 지금은 경한 씨도 내게 그 여자를 꺼낸 적이 없어요. 해결하고 싶으면 나랑 얘기하지 말고 알아서 해결해요.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듣기만 해도 너무 끔찍하네요.”방민아는 쓸데없는 말만 이어가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다만 방민아의 말투에서 발을 빼겠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앞으로 다른 사람 혹은 경찰이 조사한다 해도 방민아는 농담인 줄 알았다는 말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긴 방민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일에 직접 참여한 적이 없었고 조세진 혼자서 벌인 일이라 방민아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조세진은 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알아챘다. 이 바닥에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여자에게 호되게 데일 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다 조세진의 행실이 바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업보였다.조세진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방민아와 계속 신경전을 벌였다.“손 떼겠다는 말로
방민아의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조세진이 수화기에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움직여요. 움직여요. 방금 움직였어요. 안 죽은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조세진은 방민아에게 질문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방민아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 여자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명줄이 어찌나 질긴지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며 방민아의 기분을 망치고 있었다.다만 죽지 않았다 해도 조세진 손에 들어가면 반병신이 되어야 나올 수 있었다. 방민아는 조세진이 얼마나 추잡스러운 인간인지 잘 알았다. 어쩌면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소원의 몸이 망가져야 미련도 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방민아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모든 게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원이 조세진의 손에 놀아난 걸 알면 육경한도 소원을 역겨워하며 더는 손을 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조세진이 별 볼 일 없긴 했지만 추잡스럽게 논다는 소문은 이 바닥에 자자했다. 방민아는 이제 유진도 더는 거슬리지 않아 깊은 잠에 빠진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웃었다.“이게 다 너희 엄마 덕분이야.”‘명줄이 긴 덕분이지.’...한편, 조세진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애초부터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예정이었다니, 정말 사람은 얼굴만 봐서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조세진도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방민아가 이렇게 나온 이상 조세진도 똑같이 갚아줄 생각이었다.소원은 아무 말 없이 덤덤한 표정으로 조세진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이겼음을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원을 바라보는 조세진의 눈에는 이제 그 어떤 욕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조세진은 이제 정신을 차렸다. 방민아가 이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는 건 육경한의 마음속에 소원이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런 소원을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다시 육경한의 미움을 살지도 모른다. 남자라면 자기가 가지긴 싫어도 남에게 주기는 더 싫
소원이 말했다.“조 대표님 방민아 씨 덕분에 밥 벌어먹고 사는 게 아니라는 거 나도 알아요. 하지만 조 대표님 방씨 가문 방민기 대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이 빌어먹을 년이 독심술이라도 쓰나? 어떻게 다 알지?’조세진은 얼굴을 굳히더니 소원이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소원은 조세진이 어떻게 나오든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조 대표님 지금 방씨 가문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요? 방민기 대표가 여러 번 실수하는 바람에 방씨 가문에 악영향을 끼쳐서 이사회도 방민기 대표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아요. 오히려 방민아 씨가 착하고 대범한 이미지로 일을 척척 해결하며 주주들의 환심을 사고 있죠.”조세진도 능구렁이라 소원의 말에 숨겨진 뜻을 바로 알아챘다. 회사에서 입지가 좋지 않은 방민기는 방민아보다 실권이 없기에 조세진이 라인을 잘못 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조세진은 소원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았다. 소원네 가문도 육경한과 엮이면서 파산했지만 전에는 꽤 이름있는 실업가였다.소원도 어찌 보면 참 불쌍했다. 원수나 다름없는 육경한의 아들을 낳았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조세진은 당연히 육경한이 어떻게 소원을 핍박했으며, 이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태어났는지 몰랐고 그저 겉으로 보이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만약 그 뒤에 숨은 깊은 뜻을 안다면 육경한에게 소원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테고 소원을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결국 얻어낸 결론이라면 소원이 머리도 좋으면서 수단도 있다는 것이었다.조세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콧방귀를 뀌었다.“이간질하지 마. 우리나라는 아직 가부장적인 나라야. 아들이 있는 한 절대 가업을 딸에게 물려줄 리가 없어. 방씨 가문에 산업이 얼마나 많은데 설마 다 방민아에게 물려주겠어? 육경한 손에 들어갈 게 뻔한데?”소원이 말했다.“그런 일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조 대표님이 뭘 몰라도 너무 모르네요. 내가 바로 가업을 물려받은 제일 전형적인 케이스잖아요. 그리고 HT 그룹의 임 대표님도 딸에게 회
너무 맞는 말이라 조세진은 정말 이마라도 탁 치고 싶은 생각이었다.방민기는 정말 양아치나 다름없는 사람이라 죽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아직 그 정도로 궁지에 몰린 사람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노루도 급하면 뒷다리를 문다는데 누군가 앙심을 품고 방민기가 전에 원수를 졌던 사람을 찾아간다면, 이익만 보장한다면 방민기를 정말 죽여버릴 수도 있다. 방민기가 죽고 없으면 방현수도 영원히 회사를 지킬 수는 없는 일이라 딸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조 대표님, 이런 생각은 해봤어요? 조 대표님이 방민기 대표 쪽 사람이라는 걸 알고 방민아 씨가 일부러 함정을 팠을 수도 있잖아요.”소원이 손으로 목을 긋는 동작을 하며 또박또박 말했다.“토사구팽인 거죠. 나도 죽이고 조 대표님도 죽이고.”조세진은 목덜미까지 소름이 돋았다. 소원의 손이 조세진의 목이라도 긁은 것처럼 너무 섬뜩했다. 조세진은 이제야 소원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상황 분석이 예리할뿐더러 바로 핵심을 잡아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줄도 알았다.“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조세진의 말투에서 어느새 존경이 묻어났고 이미 소원의 지혜에 감탄하며 진심으로 소원을 우러러보고 있었다.“손을 잡는 건 어때요?”소원이 말했다.“언제까지 방씨 가문만 바라볼 수는 없잖아요. 무슨 일 있으면 방민기 대표는 조 대표님을 보호하기보다는 제일 먼저 잘라낼 거예요.”조세진도 이 말에 동의했다. 방민기와 방민아는 배다른 남매라 누구라 할 것 없이 잔꾀가 많았고 함정도 잘 팠다.방민기는 방민아를 무너트리고 싶어 하지만 그 뒤에 육경한이 있어 별수 없이 조세진을 선택해 다른 방법으로 방민아를 공격했다. 육경한과 방민아에게 소원의 행방을 흘리라고 한 것도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서였다.방민기도 방민아가 소원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고 내린 결정이었고 그 결정은 정확했다. 소원은 예리한 비수라 방민아와 육경한을 괴롭히기엔 딱 맞았다.고민을 마친 조세진은 주저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
소원은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직 영숙이 방민아의 사람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았고 행동이 어딘가 이상했지만 뭐가 이상한지 콕 집어서 얘기하긴 어려웠다.영숙을 보자마자 소원은 영숙이 두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영숙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모습은 그녀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지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뒤에 숨겨진 그 모습이 좋은지 나쁜지는 아직 추측하기 어려웠다.다행히 조세진은 빠릿빠릿한 편이었기에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요즘 들인 아가씨들 영 마음에 안 드네. 성격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숙 매니저가 잘 좀 교육해.”“오늘 제대로 즐기지 못했나 보네요.”영숙이 얼른 웃으며 말했다.“오늘 저녁은 제가 쏘는 걸로 할게요. 조 대표님 기분을 풀어드리지 못한 건 제 잘못이죠. 다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입니다. 노여움 푸세요. 화내면 몸 상하는데 조 대표님 몸 상하면 나 마음 아파요.”여전히 매혹적인 영숙이 조세진을 살살 달래자 조세진의 기분도 금세 풀렸다. 영숙이 기싸움에서 밀린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여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숙이 밑지는 장사를 할 리가 없었다. 물장사는 원래 큰 이익이 오가는 장사였기에 영숙은 단골이 찾아올 때마다 서비스를 톡톡히 줬다. 덕분에 KB 클럽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장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하지만 영숙도 밑지는 건 없었다. 소비하러 온 사장님들이 쓴 돈으로 서비스해 주는 거라 돈도, 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아주 쉽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특급 마케팅이었다.조세진의 커다란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역시 일은 숙 매니저가 잘한다니까. 숙 매니저 없이 오늘의 KB 클럽이 있을 수 있겠어?”“조 대표님 또 농담하신다. 전 그저 일개 직원일 뿐이에요. KB 그룹이 지금의 저를 만든 거죠.”영숙의 말에서 KB 그룹 대표에 대한 고마움이 물씬 느껴졌다.“KB 클럽이 아니었다면 저도 지금처럼 편안하게 살지는 못했을 거예요.”영숙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소원이 놀란 가슴을 쓸
그랬다. 소원이 원하는 건 바로 방민아가 유진의 새엄마가 되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방민아처럼 악독한 사람에 유진을 가까이할 기회가 생겨서는 안 된다. 그때가 되면 육경한이 말했던 약혼녀와의 사이가 돈독하고 안정적이라는 증언도 무효가 될 것이다.방민아는 아이를 돌보는 데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육경한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것도 일종의 실책이었다.소원은 아까보다는 밝아진 눈빛으로 조세진에게 말했다.“내가 원하는 정보만 가져다주면 돈도 두둑이 받고 이 전쟁에서 발 뺄 수 있게 도와줄게요.”조세진이 말했다.“장난해? 너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소원처럼 집도 없고 절도 없는 여자가 그의 위기를 모면해 주고 돈까지 벌게 해준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교외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손에 넣을 수 있게 도와줄게요.”“교외?”조세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프로젝트는 수익이 보장되어 있어 손에 넣으면 평생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프로젝트였다.“미우 그룹 프로젝트를 어떻게 손에 넣는다는 거야?”육경한이 공짜로 줄 리는 없었다. 이익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여자 하나 때문에 프로젝트를 그대로 내준다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육경한은 이제 소원에게 흥미를 잃은 상태였다.소원이 말했다.“조 대표님, 나랑 도박 한번 해볼래요?”조세진은 소원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옷은 찢어졌지만 표정만은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정말 숨겨놓은 카드라도 있는 거 아니야?’조세진은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그래. 한번 해보자.”잘만 하면 신분 상승할 좋은 기회였다. 거짓말이라 해도 조세진이 손해 볼 건 없었다.조세진은 소원을 바라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지금 한 말 기억해. 일단은 믿어보겠지만 허튼수작 부리면 바로 죽여버릴 거야.”소원은 조금도 겁내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기다릴게요.”“용기 하나는 참 대단해. 여장군이야 뭐야.”조세진이 이렇게 비꼬았다.“아참, 아들을 육 대표한테 뺏겼지?”조세진은 웃을 때 유독 얼
너무 맞는 말이라 조세진은 정말 이마라도 탁 치고 싶은 생각이었다.방민기는 정말 양아치나 다름없는 사람이라 죽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아직 그 정도로 궁지에 몰린 사람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노루도 급하면 뒷다리를 문다는데 누군가 앙심을 품고 방민기가 전에 원수를 졌던 사람을 찾아간다면, 이익만 보장한다면 방민기를 정말 죽여버릴 수도 있다. 방민기가 죽고 없으면 방현수도 영원히 회사를 지킬 수는 없는 일이라 딸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조 대표님, 이런 생각은 해봤어요? 조 대표님이 방민기 대표 쪽 사람이라는 걸 알고 방민아 씨가 일부러 함정을 팠을 수도 있잖아요.”소원이 손으로 목을 긋는 동작을 하며 또박또박 말했다.“토사구팽인 거죠. 나도 죽이고 조 대표님도 죽이고.”조세진은 목덜미까지 소름이 돋았다. 소원의 손이 조세진의 목이라도 긁은 것처럼 너무 섬뜩했다. 조세진은 이제야 소원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상황 분석이 예리할뿐더러 바로 핵심을 잡아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줄도 알았다.“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조세진의 말투에서 어느새 존경이 묻어났고 이미 소원의 지혜에 감탄하며 진심으로 소원을 우러러보고 있었다.“손을 잡는 건 어때요?”소원이 말했다.“언제까지 방씨 가문만 바라볼 수는 없잖아요. 무슨 일 있으면 방민기 대표는 조 대표님을 보호하기보다는 제일 먼저 잘라낼 거예요.”조세진도 이 말에 동의했다. 방민기와 방민아는 배다른 남매라 누구라 할 것 없이 잔꾀가 많았고 함정도 잘 팠다.방민기는 방민아를 무너트리고 싶어 하지만 그 뒤에 육경한이 있어 별수 없이 조세진을 선택해 다른 방법으로 방민아를 공격했다. 육경한과 방민아에게 소원의 행방을 흘리라고 한 것도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서였다.방민기도 방민아가 소원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고 내린 결정이었고 그 결정은 정확했다. 소원은 예리한 비수라 방민아와 육경한을 괴롭히기엔 딱 맞았다.고민을 마친 조세진은 주저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
소원이 말했다.“조 대표님 방민아 씨 덕분에 밥 벌어먹고 사는 게 아니라는 거 나도 알아요. 하지만 조 대표님 방씨 가문 방민기 대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이 빌어먹을 년이 독심술이라도 쓰나? 어떻게 다 알지?’조세진은 얼굴을 굳히더니 소원이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소원은 조세진이 어떻게 나오든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조 대표님 지금 방씨 가문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요? 방민기 대표가 여러 번 실수하는 바람에 방씨 가문에 악영향을 끼쳐서 이사회도 방민기 대표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아요. 오히려 방민아 씨가 착하고 대범한 이미지로 일을 척척 해결하며 주주들의 환심을 사고 있죠.”조세진도 능구렁이라 소원의 말에 숨겨진 뜻을 바로 알아챘다. 회사에서 입지가 좋지 않은 방민기는 방민아보다 실권이 없기에 조세진이 라인을 잘못 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조세진은 소원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았다. 소원네 가문도 육경한과 엮이면서 파산했지만 전에는 꽤 이름있는 실업가였다.소원도 어찌 보면 참 불쌍했다. 원수나 다름없는 육경한의 아들을 낳았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조세진은 당연히 육경한이 어떻게 소원을 핍박했으며, 이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태어났는지 몰랐고 그저 겉으로 보이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만약 그 뒤에 숨은 깊은 뜻을 안다면 육경한에게 소원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테고 소원을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결국 얻어낸 결론이라면 소원이 머리도 좋으면서 수단도 있다는 것이었다.조세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콧방귀를 뀌었다.“이간질하지 마. 우리나라는 아직 가부장적인 나라야. 아들이 있는 한 절대 가업을 딸에게 물려줄 리가 없어. 방씨 가문에 산업이 얼마나 많은데 설마 다 방민아에게 물려주겠어? 육경한 손에 들어갈 게 뻔한데?”소원이 말했다.“그런 일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조 대표님이 뭘 몰라도 너무 모르네요. 내가 바로 가업을 물려받은 제일 전형적인 케이스잖아요. 그리고 HT 그룹의 임 대표님도 딸에게 회
방민아의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조세진이 수화기에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움직여요. 움직여요. 방금 움직였어요. 안 죽은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조세진은 방민아에게 질문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방민아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 여자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명줄이 어찌나 질긴지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며 방민아의 기분을 망치고 있었다.다만 죽지 않았다 해도 조세진 손에 들어가면 반병신이 되어야 나올 수 있었다. 방민아는 조세진이 얼마나 추잡스러운 인간인지 잘 알았다. 어쩌면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소원의 몸이 망가져야 미련도 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방민아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모든 게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원이 조세진의 손에 놀아난 걸 알면 육경한도 소원을 역겨워하며 더는 손을 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조세진이 별 볼 일 없긴 했지만 추잡스럽게 논다는 소문은 이 바닥에 자자했다. 방민아는 이제 유진도 더는 거슬리지 않아 깊은 잠에 빠진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웃었다.“이게 다 너희 엄마 덕분이야.”‘명줄이 긴 덕분이지.’...한편, 조세진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애초부터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예정이었다니, 정말 사람은 얼굴만 봐서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조세진도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방민아가 이렇게 나온 이상 조세진도 똑같이 갚아줄 생각이었다.소원은 아무 말 없이 덤덤한 표정으로 조세진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이겼음을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원을 바라보는 조세진의 눈에는 이제 그 어떤 욕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조세진은 이제 정신을 차렸다. 방민아가 이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는 건 육경한의 마음속에 소원이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런 소원을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다시 육경한의 미움을 살지도 모른다. 남자라면 자기가 가지긴 싫어도 남에게 주기는 더 싫
조세진은 억울함을 가득 담아 이렇게 말했다.“민아 씨, 나 골로 보내려고 작정했어요?”방민아가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세진 삼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왜 세진 삼촌을 골로 보내요? 난 그냥 KB 클럽에 선물을 보낸다고 했을 뿐이지 소원 씨가 거기서 출근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소원 씨를 그쪽으로 보내요?”아니나 다를까 방민아는 계획대로 발을 뺐다. 애초에 조세진에게 말할 때도 소원이라는 말은 일절 없었고 선물을 준비했다고만 했다. 이런 일이 생길 걸 대비해 여지를 많이 남겨둔 덕분에 책임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조세진은 이제 소원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방민아는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단순하고 선해 보일지 모르지만 마음은 악하기 그지없었다.“방민아 씨, 돌려서 얘기하지 말고 어떻게 할지나 말해봐요. 이 여자 전에 민아 씨 약혼자랑 붙어먹었던 그 여자 아닌가요? 뭐 시체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니지만 이것 하나는 약속해야죠. 육경한이 나 찾아오거나 그러진 않겠죠?”“세진 삼촌, 삼촌도 그 여자가 과거라는 거 아네요. 적어도 지금은 경한 씨도 내게 그 여자를 꺼낸 적이 없어요. 해결하고 싶으면 나랑 얘기하지 말고 알아서 해결해요.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듣기만 해도 너무 끔찍하네요.”방민아는 쓸데없는 말만 이어가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다만 방민아의 말투에서 발을 빼겠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앞으로 다른 사람 혹은 경찰이 조사한다 해도 방민아는 농담인 줄 알았다는 말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긴 방민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일에 직접 참여한 적이 없었고 조세진 혼자서 벌인 일이라 방민아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조세진은 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알아챘다. 이 바닥에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여자에게 호되게 데일 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다 조세진의 행실이 바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업보였다.조세진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방민아와 계속 신경전을 벌였다.“손 떼겠다는 말로
조세진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 바닥에 오래 있은 사람 중에 능구렁이가 아닌 사람이 없었기에 사람 마음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했다.“너나 방민아나 다 똑같이 나쁜 년이야. 상대가 죽기를 누구보다 바라잖아.”조세진이 콧방귀를 뀌더니 헤벌쭉 웃었다.“둘 다 나를 샌드백으로 쓰겠다는 거잖아.”속셈을 들킨 소원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못 믿겠으면 방법 하나 알려줄까요? 이 방법대로 하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조세진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물었다.“무슨 방법?”“지금 방민아에게 전화해서 내가 죽었다고 해봐요. 어떤 반응인지 보면 바로 알지 않겠어요?”조세진은 소원의 아이디어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속이 텅 빈 예쁜 꽃병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리까지 총명했다. 조세진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방민아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민아가 전화를 받았다.“삼촌,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평소 방민아는 조세진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대한 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소원의 처참한 상황을 들으려고 조세진에게 유난히 살갑게 굴었다.조세진은 일부러 당황한 척하며 이렇게 말했다.“민아 씨, 어떡해요...”방민아는 조세진의 말투에 일단 기분이 좋아졌다. 소원이 조세진에게 당해 반병신이 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 친근하게 말했다.“삼촌, 왜 그래요?”“죽었어요. 죽었어. 내가 소원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죽어버렸어요.”조세진의 연기는 꽤 자연스러웠다. 버벅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정말 진짜 같았다.“...”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조세진은 방민아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의심하기 시작했다.“이제 어떡하죠? 민아 씨... 아...”방민아가 정신을 차리고는 물었다.“삼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어쩌다 죽은 거예요?”방민아는 소원이 병신이 됐을 거라는 생각은 했어도 죽일 정도까지 가지고 놀았을 줄은 몰랐다. 예상밖의 일이라 방민아는 일단 대충 관심하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조세진이 대답했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소원이 이렇게 되묻자 조세진은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오만하기 그지없는 방민아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기에 잘 보이려고 할 리는 더더욱 없었다. 그런 방민아가 갑자기 이런 일을 자청하고 나선 게 이상하긴 했다.조세진은 소원의 말에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방민아가 함정을 판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육경한이 물으면 방민아는 얼마든지 발을 빼고 조세진에게 덮어씌울 수 있었다.‘젠장. 방민아 역시 듣던 대로 무서운 여자네.’조세진은 속으로 이렇게 궁시렁거렸지만 여전히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지금 이런 말 하는 거 일부러 나 엿 먹이려고 그러는 거 아니지?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지어낸 걸 수도 있잖아.”소원이 침착하게 말했다.“말은 많이 한다고 효과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해명한다고 해서 다 먹히는 것도 아니고요. 본인이 직접 그 말이 맞는지 마음으로 느끼는 게 중요하죠.”소원은 지금 자신의 입장에서 출발해 해명하면 조세진이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의문만 잔뜩 던져 알아서 생각하게 했다.소원의 말에 거의 넘어간 조세진이 한마디 덧붙였다.“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방민아가 여기로 보냈다고 직접 육경한에게 말하지 않는 거야?”“방민아가 아이로 협박한 거지?”조세진이 이렇게 추측했다. 생긴 건 우락부락하고 다소 멍청해 보였지만 소원은 한 번도 조세진을 바보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서울에 발을 붙이고 이름을 날릴 정도면 절대 바보일 리 없었다.“육경한이 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지금 당장 전화해서 알려. 어떻게 처리하는지 좀 보게.”조세진이 소원에게 전화를 걸라며 몰아세우기 시작했지만 소원이 고개를 저었다.“그 제안 바로 거절해도 되는데 해야 할 일이 남아서 여기 남아있는 것뿐이에요.”방민아가 무서워서 들어온 건 아니었다. 소원이 방민아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방민아의 경계심을 풀면서 육경한의 경계심도 같이 풀려는 것이었다.이번에는 절대 저번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차분하게 풀어나갈 생각이었다. 유진의 양육권을
두 아가씨는 혀를 삐쭉 내밀더니 더는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영숙은 담배를 절반쯤 태우고는 콧방귀를 뀌었다.“오늘 채워야 할 금액은 채우고 떠드는 거야?”두 아가씨는 영숙의 말에 입을 앙다물며 얌전하게 말했다.“이만 내려가 볼게요.”영숙은 대꾸하지 않았다. 두 아가씨가 물러가고 영숙은 조세진이 있는 룸 앞으로 다가가 서서는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속이 탔는지 담배가 다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른 채 데이고 말았다. 사실 영숙도 많이 긴장한 것 같았다.그렇게 문 앞에서 한참 듣던 영숙은 안에서 더 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자리를 떠났다....조세진에게 내동댕이쳐진 소원은 갈비가 부서진 것처럼 너무 아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조세진의 더러운 입술이 곧 소원에게 닿으려는데 소원이 얼른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애초에 왜 육경한에게 당했는지 잊은 거 아니죠?”조세진이 멈칫하더니 되물었다.“무슨 말이야?”소원이 이 틈을 타서 한숨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다.“그 땅끝에 있는 마을까지 내려간 거 육경한 때문이라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조세진은 육경한의 이름을 듣자마자 성욕마저 줄어드는 것 같았다.‘그 재수 없는 자식 얘기는 왜 꺼내는 거야?’소원이 이렇게 말했다.“육경한이 조 대표님을 그 땅끝에 있는 마을까지 내려보낸 건 내게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조 대표님을 내쫓는 것으로 내게 잘 보이려고 한 거죠.”조세진은 그때 수영장에서 당했던 것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올라 바로 욕설을 퍼부었다.“다 네년 때문이잖아.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서울에서 쫓겨날 일은 없었어.”조세진이 소원의 옷을 벗기며 계속 중얼거렸다.“이제 육경한 곁에는 방민아가 있잖아. 이제 더는 너를 도와줄 리 없으니까 빠져나갈 생각하지 마.”촤락.소원이 챙겨입었던 유니폼이 조세진에 의해 볼품없이 찢어지고 말았다. 소원은 얼른 손으로 찢어진 천 쪼가리를 움켜쥐고 조세진에게 따귀를 날렸다.조세진은 갑자기 날아든 따귀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소원의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