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아, 왜 그래?”원진우가 앞으로 다가와 윤아름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확인하려 했다. 뒤를 힐끔 돌아본 윤아름이 원진우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더니 윤혜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윤아름이 오히려 애가 된 것 같았다.“삼촌, 일단 나가 계세요. 삼촌이 여기 있으면 오히려 자극만 받을 거예요.”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원진우는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지만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윤아름을 보고 한발 양보했다.“윤혜인 씨, 얌전하게만 있으면 절대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 약속할게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원진우가 타이름 반 협박 반으로 말했다. 얕은 수작을 부리면 벌을 내리겠다는 경고였다. 윤혜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윤아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엄마, 엄마, 나 혜인이야...”원진우는 겨우 차분해진 윤아름을 보며 더는 자극하기 싫어 방에서 나갔다. 윤혜인은 방문이 닫히는 걸 똑똑히 보았다. 오전에 방안을 둘러보며 카메라가 없다는 건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새 거처를 바꿔서 그런지 아니면 윤아름을 데리고 떠날 계획이라 그런지 여기는 카메라가 없었다.“엄마, 미안해요. 아팠죠?”윤혜인이 얼른 윤아름의 등을 확인했지만 다행히 살짝 빨개진 정도였다. 이런 위험한 수를 둔 건 윤아름이 조금만 이상해도 원진우가 신경 쓴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윤아름의 정서를 이용해 원진우를 영향 주려 했다. 다행히 그 방법이 제대로 먹혔다. 윤아름이 아닌 윤혜인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면 죽을 정도가 아니고서는 원진우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윤아름은 여전히 아무 감각이 없는 듯했지만 윤혜인이 친근하게 다가가도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을 깜빡였다가 윤혜인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윤혜인은 윤아름의 팔을 잡고 눈물을 뚝뚝 떨궜다.“엄마...”윤혜인은 한참 동안 속 시원하게 울더니 울음을 그치고는 물었다.“엄마, 그때 그 자수는 어디에다 뒀어요?”윤혜인이 물은 자수는
문이 삐걱 열리더니 원진우가 안으로 돌아왔다. 표정이 밝아진 윤아름을 보고 원진우의 표정도 살짝 풀렸지만 그렇다고 단둘이 있는 시간을 연장해 주지는 않았다.“시간 됐어요.”원진우가 덤덤하게 말하더니 윤아름이 의향도 물어보지 않고 윤아름을 번쩍 안아 들고는 방에서 나갔다.다음날.윤아름이 제시간에 나타나자 윤혜인은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줬다. 이야기가 결말까지 이어지자 윤아름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성을 잃은 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이거야?”윤아름이 마술을 부리듯 손목에 묶었던 레이스를 풀더니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헤헤 웃었다.“이거?”윤혜인은 원하던 물건이 윤아름 몸에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손목에 묶여있는 레이스가 그저 장식이라고만 생각했다. 윤혜인은 얼른 자수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위치 추적기가 아직 들어있었다. 윤혜인은 자수를 더듬거리며 버튼을 찾더니 꾹 눌렀다. 그때 문 쪽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윤혜인이 얼른 자수를 윤아름의 손목에 묶어줬다.발신기의 발신 기회는 고작 두번이었다. 마지막 한 번을 사용했으니 이제 더는 기회가 없다. 윤혜인은 윤아름이 다시 끌려가는 걸 보고 너무 안타까웠지만 곧 구출될 거라는 희망을 안고 꾹 참았다.한편, 곽경천과 배남준은 북안도를 이 잡듯이 뒤지며 윤혜인을 찾고 있었다. 원진우의 출입국 기록이 없는 걸 봐서는 아직 북안도에 숨어있다는 의미였다.이준혁도 온 힘을 다해 윤혜인을 찾았다. 꼬박 3일을 눈도 붙이지 못하고 돌아치던 이준혁은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잠깐 휴식하려 했다.그때 문이 열리더니 주훈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안으로 들어왔다.“발신기... 발신기에서 또 한 번의 신호를 보내왔습니다.”이준혁이 얼른 외투를 집어 들더니 지하 차고로 향했다. 가는 길에 주훈은 발신기 주변에 위험 물체가 있는지 탐색했다. 이준혁은 이 소식을 곽경천과 배남준에게 알렸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목표는 똑같이 윤혜인과 윤아름을 구해내는 것이었다.
윤혜인이 갑자기 손을 들자 봉투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안에 들어있던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윤혜인은 자료를 보고 싶은 생각보다는 하얀 나무젓가락을 들어 원진우의 목에 찔러넣고 싶었다. 두 사람은 신장 차이가 있었지만 원진우는 지금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이고 있어 윤혜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 뾰족하게 자른 나무젓가락이 그대로 원진우의 목에 들어갔다. 그러자 피가 나무젓가락을 타고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하지만 떨어지는 피의 양에서 윤혜인은 글렀다는 걸 알아챘다. 동맥을 찌르지 못했으니 원진우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원진우는 고개를 들어 아래로 흘러내리는 피를 보더니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윤혜인을 바라봤다.“나 죽이고 싶어요?”원진우가 차분하게 물었다. 까만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고요했다. 윤혜인이 뒤로 물러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곧 사람들이 나와 엄마를 구하러 들이닥칠 거예요. 도망은 꿈도 꾸지 마요.;원진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연락이 됐나 보네요.”윤혜인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윤혜인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원진우는 어떻게 된 일인지 충분히 알아챘을 것이다. 아니면 윤혜인도 이렇게 무모하게 나가기보다는 계속 위장하는 걸 선택했을 것이다.원진우는 목에 꽂혀있는 젓가락을 뽑지도 처리하지도 않은 채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제법인데? 역시 내 핏줄이라 그런가? 배짱이 커.”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간사하기로 소문난 원진우가 친자 감정을 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미 자기 핏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원진우는 윤혜인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모든 걸 알아차렸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나 속이려 했나 본데...”원진우가 허리를 굽혀 서류를 줍더니 윤혜인에게 건네줬다.“봐... 네 말이 맞아. 너 정말 내 딸이야.”“...”윤혜인은 원진우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이내 결과지에 적힌 숫자에 눈길이 갔다.99.99%.그럴
그녀가 당한 모든 불행은 전부 이 남자 때문이었다.어머니의 사랑을 받아야 할 그녀는 이리저리 떠돌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원진우 씨, 지금 무슨 헛된 꿈을 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쪽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떠날 거예요. 당신이 우리 엄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감금했는지,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는지 절대 잊지 않았어요.”윤혜인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당신 같은 사람은 지옥에나 가야 해요!”그러자 원진우는 분노가 가득 찬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이렇게는 대화가 안 되겠군.”그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아. 우리 세 식구에게는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 내가 얼마나 좋은 아버지인지 천천히 알게 될 거야.”윤혜인은 경계심을 품고 원진우를 응시했지만 그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그러나 곧 그 의도를 알게 되었다.원진우는 손짓으로 도우미를 불러 들어오게 한 후, 지시를 내렸다.“아가씨의 짐을 챙겨서 비행기에 실어라.”윤혜인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며 원진우는 느긋하게 설명했다.“우린 곧 떠날 거라서.”원진우가 윤아름과 자신을 데리고 떠나려 한다는 말에 윤혜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원진우가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수십 년 동안 윤아름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던 걸 보면 그의 경계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이번에 끌려가면 아버지, 큰오빠, 아이들, 모든 가족과 친구들을 평생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난 안 가요!”윤혜인은 근처에 있던 의자를 집어 던지고 온 힘을 다해 문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나 문에 도달하자마자 윤혜인은 원진우에게 팔이 붙잡히고 말았다.곧 원진우는 넥타이로 그녀의 손을 묶은 뒤 그대로 어깨에 들쳐 업었다.시간이 촉박했다. 이미 이곳이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즉시 떠나야 했다.바깥에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떠나기만 하면 전처럼 윤아름과 윤혜인 모두 꽁꽁 아무도 모르게 숨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렸다.윤혜인의 손에는 스마트 디스플레이 키가 들려있었는데 조금 전 원진우에게서 몰래 훔쳐 온 것이었다.그녀는 단 1초 만에 시동을 걸고 곧장 대문을 향해 내달렸다.대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지만 멈출 생각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그대로 부딪힐 각오인 듯 말이다.대문 앞에 서 있던 보안 요원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만약 차에 부딪혀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책임을 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급히 원진우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선생님, 저기... 대문을 어떻게 할까요...”원진우는 차의 기세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멈출 기색이 전혀 없는 그 모습에, 겉보기에는 얌전해 보이는 윤혜인이 자신의 열정과 영리함을 꽤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결국 그는 짧게 고심한 후 단호히 말했다.“문 열어!”아무리 비싼 슈퍼카라 해도 이 속도로 대문을 들이받으면 운전자의 안전이 100%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문을 열어주더라도 그녀가 도망칠 수는 없었다.슈퍼카가 대문에 닿기 직전, 대문이 위로 열렸다.순식간에 슈퍼카는 대문을 빠져나갔다.윤혜인은 눈 앞에 펼쳐진 넓은 도로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몇십 초를 기다린 끝에야 상황을 이해했다.“엄마, 우리 탈출했어요!”기쁨에 찬 외침이었다.윤아름은 아직도 조금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딸의 말에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탈출’이라는 말은 지하실에 수십 년 동안 갇혀 있던 그녀에게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희망이었다.윤아름이 기뻐하며 창문을 두드리자 윤혜인은 곧바로 창문을 내렸다.하지만 안전을 위해 반 정도만 내렸다.그 작은 틈으로도 윤아름은 크게 기뻐했다. 손가락을 밖으로 조금 내밀어 바람을 느끼며 냄새를 맡았다.자유로운 바람이 스치는 윤아름의 얼굴은 완전히 행복해 보였다.윤혜인은 엄마 윤아름의 이런 모습을 보며 모든 게 다 가치 있다고 느껴졌다.긴장으로 땀이 찼던 손바닥도 이제는 차갑게 식었고 조금 전 그녀는 원진우에게 조금의
게다가 원진우의 계획을 보니 해운성에서 그녀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계속 이동할 생각인 듯했다.아마 한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군데를 거쳐 이동하겠다는 의도였으니 그의 행방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윤혜인은 그제야 이해했다.그녀가 보낸 신호가 전송되었어도 곽경천 일행이 빠르게 도착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나라 하나를 건너야 하는 거리에서 아무리 빨리 와도 금방 닿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그녀는 차량에 내장된 스마트 시스템을 떠올리고 외국어로 시스템에 말을 걸어 보았다.“나 대신 신고 좀 해줘!”그러자 시스템의 인공지능이 대답했다.“현재 해운성 해안경비대로 연결 중입니다.”돌아오는 답변에 윤혜인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대다수의 차량 시스템이 전화 통화는 불가능해도 긴급 신고는 가능할 것이라 짐작했다.‘해안경비대에 연락만 닿는다면 오빠가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기다릴 수 있어. 아무리 원진우가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모든 나라에 그 세력이 미치게 할 수는 없을 거야.’윤혜인은 차를 멈추고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 연결을 기다렸다.삐빅 하는 두 번의 신호음 뒤에 전화가 연결되었다.통화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상담원이 물었다.“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윤혜인은 다급히 말했다.“저와 제 어머니가 납치되었습니다.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범인이 저희를 추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상담원은 침착하게 물었다.“상대방이 누구인지, 그리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세요.”윤혜인은 대답했다.“저희를 납치한 사람은 국제적으로 수배가 되어있습니다. 혐의도 한두 개가 아닐 겁니다.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고 주변에 바다밖에 없어요. 내비게이션에서는 블루섬이라고 나옵니다.”윤혜인은 상대가 국제 수배범이라는 말을 일부러 꺼냈다. 경찰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였다.게다가 이번 원진우에 대한 폭로로 곽경천 일행이 그의 과거 행적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 것이므로 국제 수배범이라는 표현이 적절
‘그래서 나한테 얌전히 기다리라고 한 거였어.’윤혜인은 창밖을 바라보며 푸른 섬에 눈길을 빼앗긴 윤아름을 돌아봤다.윤아름은 창밖의 풍경에 매료된 듯, 맑은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이윽고 윤혜인은 마음을 굳히고 부드럽게 말했다.“엄마.”윤아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바라봤다.그러자 윤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게임 하나 해요...”원진우는 차 안에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운전하는 경호원은 고속으로 차를 몰며 윤혜인이 타고 도주한 검은 차량을 추적했다.그러던 와중 차량이 눈에 보이자 경호원은 차를 세우며 보고했다.“대표님, 저 앞에 있습니다.”원진우는 차에서 천천히 내려 차량 앞으로 다가갔다.차 안을 들여다봤지만 이미 텅 비어 있었다.그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말 들을 애가 아니지.”딱딱 소리를 내며 손가락 관절을 꺾더니 원진우는 생각에 잠겼다.‘찾으면 어떤 벌을 줘야 할까. 다리 힘줄과 손 힘줄을 끊을까, 아니면 독을 써서 목소리를 없앨까... 아니면 둘 다 한꺼번에 해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그는 특히 윤혜인이 윤아름을 데리고 도망치려 한 점에 분노했다.‘제 엄마를 유혹해 나를 떠나려 하다니...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어.’곧 원진우는 경호원들에게 지시했다.“주변을 샅샅이 수색해.”차량의 전력 시스템을 끊은 뒤부터 지금까지 겨우 15분이 지났다.때문에 그녀들이 멀리 도망쳤을 리는 없었다.잠시 후, 경호원이 돌아와 보고했다.“대표님, 앞쪽에 사람이 없는 교회 한 채를 발견했습니다.”주변에 흔적이 없는 걸 보니 교회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원진우는 교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가슴과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 기도하듯 중얼거렸다.“주님, 제 죄를 용서하소서.”그 후 손짓으로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수색해.”건장한 경호원 네 명이 흩어져 교회 곳곳을 뒤졌다.그렇게 모든 곳을 수색한 후, 마지막으로 확인하지 못한 곳
원진우가 점점 다가오자 윤혜인은 마지막 기회를 잡고 숨겨둔 막대를 다시 한번 휘둘렀다.하지만 이번에는 실패했다. 이미 대비하고 있던 원진우가 맨손으로 막대를 가볍게 붙잡아 꽉 쥐었기 때문이다.윤혜인은 막대를 빼앗으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소용없었다.그 순간, 원진우는 다른 손으로 윤혜인의 목을 단숨에 움켜쥐고 그녀를 다락방 유일한 창틀 가장자리로 밀어붙였다.목이 졸려 말을 할 수 없었던 윤혜인은 두 손으로 창틀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이 다락방은 지상에서 족히 10미터는 넘게 높았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죽지 않아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 분명했다.이 순간, 원진우의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그의 눈에 더 이상 딸이라는 개념은 없었다.처음에는 딸에게 보상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윤혜인이 윤아름을 데리고 떠난 것은 원진우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었다.누구든 그의 역린을 건드리는 자는 심지어 친자식이라도 용서받지 못한다.윤혜인이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자 원진우는 냉소를 띠며 말했다.“아직도 말 안 할 거냐?”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이 말과 함께 윤혜인의 몸 반쯤이 창밖으로 나갔다.“멈춰!”갑자기 아래에서 분노에 찬 외침이 들려왔다.윤혜인은 몸이 거꾸로 매달려 있어 피가 거꾸로 흐르고 있었고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다.간신히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곽경천이 그곳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오빠가... 오빠가 드디어 왔어...’원진우가 서둘러 나왔던 탓에 데려온 네 명의 경호원은 이미 곽경천이 데려온 사람들에게 제압당한 상태였다.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본 원진우도 곽경천을 발견했다. 그러자 그는 느긋하게 미소를 지었다.“오늘 무슨 날인가? 죽어야 할 사람들이 모두 모였군.”“이 미친놈! 내 여동생 당장 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곽경천이 외쳤다.원진우는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곽경천을 겨누며 말했다.“뭐? 날 죽
주석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지금은 미열이 나는 것뿐이에요.”소원은 그나마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었다.일단 미열이 있다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주석훈은 소원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말했잖아요. 생사는 운명에 달려 있다고.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거예요. 소원 씨와는 상관이 없어요. 다 내 운명이니까 자책하지 마세요.”주석훈이 이렇게 말할수록 소원은 더욱 미안해져 조용히 한마디 했다.“주 변호사님, 그렇게 위로하지 않아도 돼요. 저도 제 책임이 크다는 거 알아요. 내가 갑자기 아프지만 않았어도 주 변호사님이 저를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없었겠죠. 그러면 그 취객에게 물리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이미 일어난 일, 우리 같이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도해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주 변호사님에게 큰 빚을 졌으니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반드시 도울게요.”주석훈이 말했다.“내가 어떻게 말해도 소원 씨는 본인 책임이라고 생각하겠군요. 하하, 그럼 진짜로 문제가 생기면 소원 씨에게 부탁할게요.”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마디 한 주석훈에 그나마 마음이 놓인 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꼭이요!”이때 소원의 전화에 낯선 번호가 걸려왔다.문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소원이 물었다.“여보세요, 누구세요?”“...”“계속 말하지 않으면 끊을게요.”소원이 장난 전화인 줄 알고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상대방이 말했다.“소원 언니...”소원은 깜짝 놀랐다.목소리만으로도 안지영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지난 며칠 동안 안지영의 집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강민혜가 말했다. 가족들이 집에만 틀어박힌 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그리고 안상철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아무래도 그들이 경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안상철이 눈치를 챈 것이다.소원이 아무리 초조해해도 나타나지 않으면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육경한은 감정을 억누르며 이 신비한 인물의 다음 액션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황진수가 계속 말했다.“하지만 최근에 그때 당시 한 청소부가 바닥에서 펜을 주웠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청소부는 그 펜이 예뻐서 손자에게 주기 위해 가져갔대요. 청소부를 찾아가 무슨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은 없는지 물었더니 그제야 말하더라고요.”황진수는 청소부에게서 가져온 펜을 꺼내며 말했다.“바로 이겁니다.”육경한이 사인펜을 손에 들고 살펴봤다. 무게도 어느 정도 무거운 것이 가치가 상당할 것 같았다.평소 육경한이 사용하는 사인펜과 비슷했다.평소 글을 잘 쓰지 않는 소종은 뭔가 쓸 일이 생기면 손에 잡히는 펜을 아무것이나 집어서 글을 썼다. 이런 고급스러운 사인펜을 소지할 리가 없었다.이 펜은 소종의 거친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황진수도 같은 생각이었다.“소종 비서는 이런 펜을 사용한 적이 없어요. 조사해 봤는데 이건 이탈리아 왕실 귀족들이 사용하는 사인펜이에요. 한 자루에 수천 달러가 넘죠. 일반 사람들은 펜의 브랜드를 신경 쓰지 않아요. 이 펜의 주인은 아마도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이 펜을 자주 사용하는 것 같아요. 사람 자체가 우아하고 점잖을 거예요. 물론 내면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런 척하겠죠.”황진수의 분석은 아주 일리가 있었다. 배후 인물이 누구인지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귀족용 펜이라 서울에서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야. 이탈리아 쪽 주문 리스트를 받아서 서울에 있는 사람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 없는지 확인해 봐.”육경한이 말했다.이 사람은 배후에 계속 숨어 있었기에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라고는 이 펜뿐이었다.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적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어 밝은 곳에 있는 그들은 매우 수동적인 상황이 되었다.육경한은 속으로 반드시 이 사람을 빨리 잡아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떻게든 소원이 출산하기 전에 배후에 있는 조종자를 제거해야 했다.“그리고 진아연
오랫동안 약을 먹은 소원이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는 것은 약이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말해줬다.게다가 무녀의 장수 효과도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평생 늙지 않는 그런 신비로움은 없었다.육경한이 말했다.“난 서현재를 믿지 않아. 내가 사람을 시켜 확인해 볼게. 그다음에 결정하자.”서현재를 믿지 않는다는 육경한의 말에 소원도 더 이상 그와 논쟁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아이를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다. 서현재를 믿지 않으니 본인이 믿는 사람을 찾겠다는 것은 이 일을 매우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줬기에 굳이 논쟁할 필요도 없었다.“알았어. 하지만 시간을 너무 오래 끌지는 마.”소원이 한마디 했을 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발신자를 보니 주석훈이었다.오기 전에 주석훈에게 병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던 그녀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자 주석훈이 걱정되어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통화버튼을 눌러 주석훈에게 곧 갈 것이라고 말한 소원이 전화를 끊었을 때 육경한이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소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이만 가 봐야겠어.”육경한이 말했다.“주석훈, 너무 가까이하지 마. 그다지 믿을 만한 사람 같지 않아.”육경한이 직감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사실 사람을 시켜 조사도 해봤지만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다. 이력이 훌륭했고 신상 정보도 매우 완벽했다.하지만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느꼈다.소원에게 접근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주석훈이 예전에 이선 그룹에서 일한 것도 확인해 봤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소원이 물었다.“왜 그러는데?”소원은 육경한이 무슨 증거를 찾았거나 의심스러울 만 한 단서라도 있는 줄 알았지만 육경한은 단답형으로 한마디 내뱉었다.“직감이 그래.”소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육경한 씨, 모든 사람을 본인 생각으로만 판단하지 마. 세상에 그렇게 많은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 어디 있어.”소원의 말에 육경한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에 믿을
말투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어젯밤부터 오늘까지 그 일로 육경한은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오직 다른 남자에게 사줬던 이 죽을 맛보고 싶었다.육경한이 소심한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혹시라도 주석훈에게 태클을 걸까 봐 일부러 설명을 덧붙였다.“주석훈의 병문안을 간 것은 주석훈이 나를 돕다가 다쳤기 때문이야. 게다가 꽤 심각해. 나 때문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이 고통을 받는데 어떻게 가보지 않을 수 있어?”“참 착하기도 하지.”육경한의 약간 비꼬는 듯한 말에 소원이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이 남자, 과연 그녀가 알고 있던 그 육경한이 맞나?너무 이상하게 변한 것이 아닌가?도도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나니 말이다.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하지만 소원은 육경한의 감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착한데. 하지만 누구에게나 다 착한 것은 아니야. 사람을 가리거든.”너무나 명확한 말에 육경한이 침묵하다가 말했다.“저기 있는 생선 먹고 싶어.”소원은 순간 멈칫했지만 육경한이 환자인 것을 감안해 생선 배 부분의 가시 없는 살을 떼어 죽과 함께 먹여 주었다.생선 배 부분의 살을 소원에게 먼저 먹여 주는 것은 육경한의 옛날 습관이었다.육경한은 생선을 다 먹은 뒤 말했다.“배불러.”소원이 말했다.“좀 더 먹어. 그래야 빨리 회복하지. 그러면 황진수 씨도 배 아픈 척 안 해도 되고.”소원은 황진수가 배 아프다고 했던 것이 연기인 것을 알아차렸다.육경한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는 빈 생선 뼈를 보며 한마디 했다.“소원아, 나 후회해. 전에 너에게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하지 말걸... 많이 후회하고 있어.”소원은 순간 손이 멈칫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육경한은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이가 또 생겨서인지 몰라도 왠지 그녀에게 남다른 감정이 생긴 것 같았다.두 사람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이준혁은 육경한의 행동과 일 처리 방식이 너무 극단
컵을 받아 물을 마신 육경한은 이내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컵을 내려놓자 소원이 말했다.“그럼 밥 먹어. 난 갈게.”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소원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가려 했다.문 앞까지 왔을 때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육경한이 침대에서 떨어졌다.키가 188cm인 남자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바닥에 넘어져 있으니 매우 허약해 보였다.소원은 급히 가서 육경한을 부축했다.“일어날 수 있겠어?”소원은 갑자기 허약해진 육경한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침대에 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바닥에 떨어지냐 말이다.이내 육경한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아파.”이 말을 들은 소원은 순간 육경한이 꾀병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색을 보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관자놀이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상처 난 등이 촉촉한 것을 보니 아마도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았다.황산에 의한 상처는 피가 아니라 고름이 나오기에 소원은 상처가 터졌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날 육경한이 망설임 없이 뛰어든 것을 생각하니 차마 모른 척할 수는 없었기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힘주지 마. 날 잡아. 조심하고.”소원의 팔에 기댄 육경한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오랜만에 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에 육경한은 심장이 졸깃했다. 소원의 몸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향기가 났다. 그 냄새는 마치 약처럼 아픔을 잊게 했다.육경한을 다시 침대에 눕힌 소원은 침대 높이를 조절해 그가 더 편안하게 앉을 수 있게 했다.모든 것을 마친 후 소원이 돌아서자 육경한은 그녀가 또 떠날까 봐 급히 말했다.“소원아, 나 배고파.”순간 소원은 조금 전 넘어진 것이 진짜로 고의는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조금 전 넘어지면서 손을 다쳐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간병인은 어디 갔어?”“간병인 없어. 평소에 황진수가 도와줘.”육경한의 말에 소원이 짜증 내며 한마디 했다.“왜 간병인을 안
연기가 제법인 황진수는 진짜로 배가 아픈 척했고 심지어 자신의 혀를 깨물어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며 이마에 땀까지 흘렸다.순간 멍해진 소원이 한마디 물었다.“왜 그래요? 의사를 부를까요?”황진수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아니요. 화장실 갔다 오면 될 것 같아요. 이것 좀...”그는 손에 들고 있던 죽을 높이 들었다. 혹시라도 소원이 받지 않을까 봐 일부러 그녀의 손에 쥐여 주기까지 했다.“소원 씨, 이것 좀 부탁드릴게요. 육 대표님에게 전해주세요. 의사가 염증이 생길 수 있으니 지금 차가운 걸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황진수는 말을 마친 뒤 재빨리 사라졌다.죽을 들고 좌우를 둘러보던 소원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육경한이 있는 VIP층으로 향했다.문 앞에 도착한 소원은 죽을 경호원에게 넘겨주려고 했지만 육경한 병실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사실 조금 전 황진수는 그녀와 육 대표를 만나게 하기 위해 경호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바로 철수하라고 했다.소원이 문을 두드리자 방안에서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와.”소원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고서를 보고 있는 육경한은 소원이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는 황진수인 줄 알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그냥 거기에 둬.”테이블 위에 놓여진 손도 대지 않은 음식과 손에 든 죽을 번갈아 본 소원은 육경한이 갑자기 죽을 먹고 싶어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다만 이 죽 가게가...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제 샀던 죽 가게와 이름이 비슷한 것 같았다.하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손에 든 죽을 놓은 소원은 육경한이 여전히 그녀를 알아채지 못하자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그런데 이때 육경한이 고개를 들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소원?”소원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황 비서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나더러 대신 갖다 주라고 했어.”육경한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나를 보러 온 줄 알았네.”약간 서운함이 담긴 말투에 소원은 이왕 온 김에 몇 마디 안부는 주고받아야
사생아가 많은 방현수는 여자아이인 방민아 하나쯤은 포기할 수 있었다.그리고 방민기는 이미 판결이 났고 방씨 가문이 아무리 인맥이 넓다고 해도 여론이 너무 떠들썩했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그 일 이후, 방현수의 정신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가장 기대하던 두 아이가 동시에 문제를 일으켰으니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방민아는 아마도 방현수의 비밀을 쥐고 있기 때문에 방현수가 돈과 힘을 들여 그녀를 빼내려고 하는 것이다.자신의 추측을 말한 황진수가 한마디 보탰다.“방민아 씨가 역시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방현수의 마음도 바꾸고요.”육경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방민아가 나오면 소원은 그녀의 첫 번째 타겟이 될 것이다. 여자들 사이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욱경한은 잘 알고 있었다.육경한이 황진수에게 말했다.“방씨 가문의 움직임을 주시해 봐. 그리고 방민아가 나오면 반드시 24시간 내내 감시하여 소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황진수가 말했다.“알겠습니다.”육경한이 또 물었다.“진아연 쪽은 어때, 소식이 있어?”진아연이 또 도망쳤다. 지난번 병원에서 목숨을 건진 후 몸이 나아지자 간호사가 한눈을 판 사이 몰래 빠져나갔다.아마도 육경한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그래서 육경한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까 걱정되어 기회를 잡아 도망친 것이다.하지만 소원의 아버지 일도 그녀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육경한은 그녀에게 확실히 물어봐야 했다.이때 황진수가 말했다.“아직 조사 중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서울을 벗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각 출입국 사무소에 다 물어봤지만 아직 다른 데로 갔다는 소식은 없습니다.”육경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긴장을 놓치면 안 돼. 진아연이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을 거야.”황진수가 알겠다고 하자 육경한도 조금 지쳤는지 한마디 했다.“이만 나가 봐.”황진수는 집사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요리를 육경한이 한 입도 먹지 않은 것을 보고 한마디 말했다.“육 대표님, 입에 맞지 않아서 안
병실 밖에 있던 황진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들었다.감정적 가치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이지애는 가스라이팅에 정말 능숙했다.육경한에게서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그녀가 과연 육경한을 걱정하는 척하며 그런 감정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었을까?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탐욕스러워지다니...솔직히 말해서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만 못 한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황진수가 소리 지르는 이지애를 끌어내어 경호원들에게 넘기자 이지애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감히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내가 육경한의 누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오늘 나를 무례하게 대한 일, 나중에 분명 후회할 때가 있을 거야.”황진수는 냉정하게 말했다.“여사님, 더 이상 자신을 육 대표의 누나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저 사촌 누나일 뿐인데 왜 항상 ‘사촌’이라는 말을 잊으시는 건가요? 밖에서 본인을 육 대표의 친누나라고 말하며 사기를 치다 보니 입에 붙어서 못 고치는 건가요?”황진수는 이지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육경한의 누나라는 명목으로 많은 회사 대표들에게서 이익을 취했다. 또 육경한과도 자주 만났기에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진짜로 육 대표의 누나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이지애는 결국 자업자득의 꼴이 되었다.이지애가 분노하며 말했다.“너 같은 놈은 평생 이 꼴로 살 거야. 개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해. 잘 들어, 경한이는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나를 누나로 생각할 거야. 그때면 널 첫 번째로 해고할 테니 두고 봐!”“그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황진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 정말!”이제 육경한이 그녀의 뒤를 봐주지 않으니 황진수도 당당하게 억지를 부리는 이지애를 무시하며 바로 경호원들에게 말했다.“데려가세요. 앞으로 육 대표 주위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세요.”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지애는 욕을 하면서 문을 잡고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찾아와 이지애를 보더니 통
하지만 쉽게 인정할 이지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도리어 육경한을 비난하며 말했다.“경한아, 우리 모녀를 돕지 않는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나를 모함하면 안 되지. 나는 너희 집에 빚진 게 없어.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 그래서 그 여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여자를 위해 우리 연주를 희생시키면 안 돼. 너도 어릴 때부터 연주를 봐왔었잖니? 그런데 진짜로 감옥에 들어가 고통받는 것을 지켜볼 거야?”이지애는 말을 빙빙 돌리며 돈을 빌린 것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다시 육경한의 탓을 하는 이지애는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사실 이 돈은 조사하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어요. 그때 개업한 미용원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우리 엄마 돈으로 한 거잖아요. 누나, 내가 정말로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육경한의 말에 이지애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어 일부러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경한아, 그때 미용원을 연 것은 네 엄마의 뜻이었어. 나는 단지 네 엄마를 도운 것뿐이야. 나중에 네 엄마가 돌아가시고 너도 큰 충격을 받았잖아. 그때 미용원도 파산 직전이었어. 그때는 네가 이 난장판을 처리할 겨를이 없어서 내가 대신 맡은 거야. 나는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인데 너는 어떻게 나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니?”이지애의 임기응변 능력은 진짜로 일반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런 말에 속았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을 겪은 육경한은 이지애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사람은 역시 욕심에 눈이 먼 동물이었다.이지애의 현재 모습은 정말 탐욕스러웠다.하지만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이지애는 육경한의 도움이 있어야만 육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울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경한아, 미용원을 돌려받고 싶으면 바로 줄게. 내가 여러 해 동안 운영해 왔지만 사실 다 네 엄마를 대신해서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