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최하준이래. 너무 잘생겼네. 사진보다 실물이 나은데?”“양유진이 꽤 잘생긴 줄 알았는데 최하준이랑 비교하니 볼 거 없네.”“시끄러워, 이것아. 입 다물어.”“……”수군거리는 소리가 양유진의 귀에 들어오자 얼굴이 무거워졌다.조용히 여름의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하준은 하객 무리 속에서도 한눈에 여름을 알아보았다. 하얀 원피스가 너무나 눈부셨다. 눈처럼 흰 피부에 장미처럼 붉은 뺨을 보니 심장이 두근거렸다.‘내 여자야.’이때 양유진이 갑자기 여름의 손을 잡았다. 여름은 작은 짐승처럼 양유진의 몸 뒤로 숨었다.싸늘한 기운이 휘몰아쳤다.하준은 성큼성큼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일자로 다문 입술은 서릿발 같은 냉기가 흘렀다. 누가 봐도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모양새는 아니었다.“결혼식을 축하하러 왔다면 환영하겠지만 망치러 왔다면 너무 늦었습니다. 여름 씨는 이미 내 아내예요.”양유진은 무거운 시선으로 하준을 마주했다.“남의 아내를 괴롭힐 생각은 마시죠.”“남의 아내?”하준이 낮은 소리로 큭큭 웃었다. 어쩐지 사뭇 슬프게 들렸다.‘한때는 내 아내였던 사람이야.내 손으로 압박해서 그녀가 이혼 서류에 사인하게 만들었지.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다시 돌아가서 나를 아주 세게 후려갈기고 싶다. 백지안을 싸고도느라 네가 어떤 여자를 잃게 되는지 잘 보라고.그래서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지 말해주고 싶다.’“결혼식은 결혼식일 뿐이지. 아직 혼인 신고도 안 해잖아?”하준이 싸늘하게 웃었다.양유진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하준을 똑바로 쳐다봤다.“이미 했습니다. 혼인 신고는 어제 마쳤어요. 최 회장, 난 당신과 달라요. 아내를 맞을 때는 서류상 절차도 진행하지만 합당한 예식으로 맞습니다.”하준의 눈에서 마지막 남은 희망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목으로 뭐가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제대로 서 있기 힘들었다.며칠 만에 여름이 다른 남자와 혼인 신고를 하고 식까지 모두 마쳤다는 사
온 피로연장의 사람이 모두 하준을 쳐다봤다.이 나라 최고의 재벌이 가장 아끼는 것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낭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잠시 후 하준은 곧 낮은 소리로 웃었다. 너무나 음산해서 듣는 사람은 등줄기가 서늘해질 지경이었다.“양유진, 내가 누군지 아직 모르는 것 같군. 강여름은 내 여자야. 죽을 때까지 내 여자라고. 혼인신고를 했어도 상관없어. 그까짓 종이 쪼가리 따위가 뭐라고.”하준은 싸늘하게 한 걸음씩 다가섰다. 얼굴에는 광기가 가득했다.양유진과 여름은 너무나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최하준의 광기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싶었다.“적당히 해야지.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결국 여름은 소리쳤다. 벌써 몇 번째 하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괜찮아.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하준은 다가와 여름의 손을 잡았다. 양유진은 즉시 하준과 싸우기 시작했다.그러나 곧 양유진은 밀리기 시작했다.“삼촌, 도와드릴게요.”한선우가 바로 튀어나왔다. 양유진 집안 남자들이 나와 둘러싸고 도왔다.그러나 광기 어린 하준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순식간에 십수 명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다들 들어와!”가슴을 부여잡고 힘겹게 몸을 일으킨 양유진이 밖에다 외쳤다.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더니 곧 덩치가 우락부락한 낯선 사람들만 우르르 들어오더니 하준에게 공손하게 보고했다.“밖은 정리되었습니다.”“수고했어.”하준이 끄덕였다. 여름의 눈에 하준이 악마처럼 보였다.결국 서경주가 버럭했다.“그만하게. 그래, 자네 가 힘으로 여름이를 끌고 갈 수야 있겠지. 하지만 남이 유부녀를 강탈하는 문제로 인해서 자네 집안과 FTT에 먹칠을 하게 될 거란 생각은 안 하나? 지금 여긴 기자도 잔뜩 있으니 자네의 이런 행실이 알려지게 되면 자네도 자네 집안도 온통 손가락질을 받게 될 거야.”“그래요, 형님. 진정하세요.”최양하도 다급하게 일어서 말렸다.“이 모습을 어르신들이 아시면 쓰러지세요.”“오늘은 아무도 날
“그래. 신고는 안 된다.”양유진의 아버지도 씩씩거렸다.“걔는 포기해라. 돌아오거든 이혼이나 해.”“제 일이에요. 신경 끄세요.”양유진은 무표정하게 자리를 벗어났다.여울과 하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곧 어쩔 줄 모르고 최양하를 바라보았다.“삼촌, 이제 어떡해요? 아빠가 엄마를 잡아가 버렸어.”여울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방금 본 아빠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하늘은 초조해졌다.“삼촌, 아빠가 엄마를 어떻게 하지는 않겠죠?”“걱정하지 마라. 아빠는 그냥 엄마가 유진이 아저씨랑 있는 게 마음에 안 든 거뿐이야.”최양하도 입으로는 아이들을 위로했지만 속으로는 떨고 있었다.최하준은 정상이 아니었다. 언제 정신 질환이 발작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전에도 발작했을 때 강여름을 다치게 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부디 이번에는 발작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이거 보통 일이 아니야. 빨리 돌아가서 어르신들께 말씀드려야겠다.”최양하가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 최하준이 벌인 일로 집안의 명예는 철저히 땅에 떨어질 것이고 엄청난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게 뻔했다.----룸에서 양유진은 급히 저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사람 좀 붙여주십시오. 최하준을 죽여야겠습니다.”“지금은 안 됩니다.”그 사람이 조용히 말했다.“진정하세요. 큰일을 하려면 인내할 줄 알아야지요. 이미 몇 년을 참았는데 조금만 더 참아요.”“하지만 제 아내를 데려갔단 말입니다.”양유진이 흥분했다.“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요.”“사람을 우르르 데리고 나타나면 강여름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생각해 봤습니까? 강여름도, 최하준도 바로 당신을 의심할 텐데.”그 사람이 냉랭하게 말을 이었다. “육민관 사건의 배후에 당신이 있다는 걸 강여름이 알게 되면 얼마나 부들부들 떨겠습니까?”양유진은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했다.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저 휴대 전화를 쥔 손에 힘줄이 시퍼렇게 올라올 뿐이었다. 저쪽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게다가 강여름이 최하
“……”상혁은 머리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하준이 벌인 미친 짓은 이미 전국에 다 알려졌다.온라인은 온통 하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장악했다.FTT 공식 홈페이지는 아미 다운되어버렸다.‘일이 이 지경인데 결혼식을 하시겠다고?지금 결혼하시려는 그 분은 이미 다른 사람이랑 결혼한 분이거든요.회장님 병이 도진 건 아닐까?’그러나 대놓고 하준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5시간 뒤.헬기는 하준의 개인 섬에 도착했다. 섬 정중앙에는 큰 별장이 있었다.하준은 여름을 조심스럽게 침실의 큰 침대에 뉘였다.전면 창밖으로는 파다가 넘실거리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섬은 매우 조용해서 하준도 좀 차분해졌다. 심지어 가만히 여름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사랑하는 아내를 보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이 둘 사이를 방해할 수 없었다.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가 여름의 새하얀 원피스를 물들이는 게 눈에 들어오자 하준은 기분이 과히 좋지 않았다.“가서 웨딩드레스 가져오지.”곧 눈부신 흰색의 드레스가 전달되었다. 하준은 직접 여름의 옷을 갈아입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은 아픈 목을 잡고 일어나 앉았다.낯선 공간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한 듯했다.자세히 보니 자신이 본 적이 없던 웨딩드레스까지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드레스 자락에 작은 진주가 가득 비딩된 머메이드 드레스였다.‘그런데. 여기가 어디야?내가 왜 이런 데 있지?’여름은 양유진과 결혼식을 하던 중에 최하준이 처들어온 뒤에 기절한 것만 기억이 났다. 안색이 확 변했다. 창밖을 보니 이미 어둠이 깔려있었다.이때 하준이 쟁반을 받쳐 들고 들어왔다. 흰 셔츠와 조끼까지 슈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머리는 뒤로 넘겨 미모를 시원하게 드러냈다.“깼어? 디저트 좀 먹을래?”하준이 다정하게 쟁반을 침대 옆 테이블에 놓았다.“이 미치광이가? 대체 날 어디로 끌고 온 거야?”여름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준은 신경도 쓰지 않고 무작정 밖으
어쩐 일인지 이런 하준을 보고 있자니 여름은 소름이 돋았다.그렇게 폭력적으로 쳐들어와 사람을 납치하더니 이 다정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이중인격이야?’잠시 망설이다가 조금 있다가 틈을 봐서 도망쳐야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일단 슬리퍼를 신기로 했다.하준이 여름을 놓자마자 여름은 미친 듯이 밖으로 내달았다.완전히 낯선 곳이었다. 성처럼 큰 곳이었다. 벽은 온통 꽃과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마치 곧 결혼식이라도 열리는 예식장처럼 사랑스러운 분위기였다. 뛰쳐나가면서 보니 흑인, 백인이 섞인 고용인은 모두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를 보냈다.“안녕하세요~”여름은 등에 솜털이 쭈뼛했다.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정원으로 뛰어 나가자 한없이 펼쳐진 장원이 보였다.한참을 뛰었다. 숲까지 뛰어 들었지만 그 끝에 있는 것은 망망대해였다.여름은 멍해졌다.‘여기가 어디야? 우리나라가 아닌가?’여름은 휴대 전화를 안 가지고 있었다. 뒤에서 걸음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뒤를 돌아보았다. 하준이 모래를 밟으며 다가왔다. 검은 눈동자는 그 뒤로 깔린 밤처럼 깊었다.여름은 미칠 지경이었다.“이 미친…. 대체 날 어디로 끌고 온 거야? 난 이미 유진 씨랑 결혼했다니까? 남의 부인을 끌고 오다니, 이건 엄연히 범죄라고.”“양유진이 경찰에 신고를 해야 범죄가 되지. 양유진은 신고 못 해. 그러면 범죄는 성립되지 않거든.”하준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유롭게 웃었다.여름은 움찔했다.‘내가 납치가 됐는데 유진 씨가 경찰에 신고를 안 했다고?’“유진 씨를 협박했지?”여름이 고개를 쳐들고 분노에 찬 눈으로 하준을 노려보았다.“내 협박을 받아들였다면 당신이 그 녀석에게 그렇게 소중하지 않다는 말이지.”하준은 고개를 숙이고 여름을 들여다보았다. 숱 많은 여름의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흩날렸다.하준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넘겨주려고 했다. 그러나 손이 닿기도 전에 탁하고 채였다.여름이 하준을 노려보았다.“회사를 가지고 협박했겠지. 입장
하준의 눈에 절망이 떠올랐다.여름은 벌써 여러 번이나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준도 이제 정말 여름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다.여름이 철저히 자신에게 마음을 닫도록 만든 건 자신이었다.“전에는 당신이 날 사랑해 주었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당신을 사랑할게. 당신은 날 괴롭혀. 그러면 공평하지?”하준의 여름의 팔을 잡아당겨 세게 품에 안았다.“뭐 하는 거야? 놔. 내가 당신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여전이 당신이 날 괴롭히고 있잖아?”분노해서 소리치고 주먹까지 휘둘렀다.여름은 윤민관에게 호신술을 배웠지만 도저히 하준을 해 넘길 수는 없었다.하준은 여름을 억지로 별장에 끌고 갔다. 집사가 다가왔다.“예배당 쪽에 준비를 해두었습니다.”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 예배당까지 끌려갔을 때 예식장처럼 꾸며진 것을 보고는 완전히 당황했다.“뭐 하려는 거야? 난 아까 이미 유진 씨랑 결혼했다고.”“잊어버려. 오늘은 당신이랑 나랑 결혼하는 거야.”하준이 억지로 여름을 주례 앞에 세웠다.“이제 시작해 주시죠.”“네.”주례가 빙긋이 웃으며 하준을 쳐다보았다.“최하준 군은 강여름 양을 합법적 아내로 맞아 앞으로 늘 그녀를 사랑하며 존중하고 위로하고 아껴주며 죽을 때까지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을 맹세합니까?”하준이 빙그레 웃었다.“네, 맹세합니다.”주례가 여름을 바라보았다.“강여름 양, 최하준 군을 합법적인 남편으로 맞아 앞으로 늘 그를 사랑하며 존중하고 위로하고 아껴주며 죽을 때까지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을 맹세합니까?”“아니….”“당연히 강여름도 맹세합니다.”하준은 말을 가로채며 여름의 입을 막았다.여름은 하준을 걷어찼지만 하준은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름의 손을 들더니 다이아몬드 반지를 뽑아서 던져 버리고는 주머니에서 핑크색 반지를 꺼내 여름의 손에 끼웠다.주례가 빙긋이 웃었다.“이제 신랑은 신부에게 키스해도 좋습니다.”여름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준의 키스에 눌리고 말았다.마구 입술을
“자기야, 여긴 우리 방이야. 마음에 들어?”하준이 여름을 침대에 누이고 몸을 숙여 입을 맞추었다.“가까이 오지 마.”여름은 온몸으로 하준을 막아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당연히 가까이 가야지. 난 당신 남편인데. 오늘 밤은 우리 허니문이란 말이야.”하준의 몸이 눌러왔다. 무릎 하나는 침대에 댄 채 엄청남 남성의 힘으로 여름을 압박해 왔다.“당신은 내 남편이 아니야. 내 남편은 양유진이라고”결국 여름은 비명을 질렀다.“당신이 아무리 날 데리고 결혼식을 올리고 맹세를 하고 신혼집을 준비했어도 나랑 유진 씨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지워지지는 않아. 이미 혼인 신고를 했어. 법적으로 완벽한 부부야.”“조용!”하준이 갑자기 여름을 밀어 눕혔다. 오른손으로 여름의 입을 눌렀다. 깊은 눈에는 싸늘한 빛이 흘렀다.애써서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째서 계속해서 그 사실을 말해서 가슴을 콕콕 찌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다 못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하준은 지금 있는 힘껏 억누르는 중이었다. 병이 도질까 봐, 도져서 여름을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웠다.여름은 입을 벌릴 수 없게 되자 눈물 가득한 눈으로 절박하게 애원했다.오늘 밤을 하준과 보내게 된다면 평생 하준을 원망하게 될 터였다. 남편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밤을 보냈다는 오명을 쓰게 될 상황이다. 평생을 두고도 양유진에게 갚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지게 된다.“울지 마.”하준이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여름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마음이 아팠다. 이 밤이 양유진과 여름의 것이 아니라 자신과 여름의 것임을 기억해 주길 바랐다. “최하준, 정 이러겠다면 난 영원히 당신을 증오할 거야. 내 평생, 죽어서도 영원히 당신을 용서 못 해.”여름이 고통스럽게 한 자 한 자에 힘을 담아 말했다.“미워해도 좋아. 최소한 날 기억해 줄 거잖아. 평생, 죽어도 영원토록 날 기억해 줘.”하준은 넥타이를 풀어 여름의 두 손을 묶었다.당황해서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여름을 보니 너무
이때 갑자기 휴대 전화가 “띠링”하고 울렸다.낯선 번호에서 문자가 왔다.열어보니 쇼트 클립이 있었다.컴컴한 가운데 겨우 두 사람이 있다는 정도만 판별될 정도인데 여름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갑자기 심장이 쫙 찢어지는 것 같았다.두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아도 명확했다.그저 믿고 싶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분명 오늘 밤은 나와 여름 씨의 것이었는데. 내가 이 밤을, 이 밤이 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왔는데….처음 동성에서 여름을 보았을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다.여름 씨가 청혼을 받아주었을 때 난 정말 뛸 듯이 기뻤지. 스몰 웨딩이라고는 하지만 걷는 길에 놓인 꽃 하나까지도 다 직접 신경 써서 고른 것이었어.그런데 이 밤을 내 사람이 최하준과 보내다니.’“최하준, 내가 언젠가는 널 죽도록 힘들게 만들어 주겠어.”눈앞에 보이는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다. 얼굴은 분노로 한껏 일그러졌다.“강여름… 어떻게,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양유진의 눈에 살기가 가득 찼다.전에는 여름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다.3년 전 여름은 원래 자신의 약혼녀였다. 그러나 여름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준에게로 갔다.3년이 지나 여름이 귀국했을 때 여름이 하준을 유혹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괴롭지만 꾹 참았다. 그때는 자신과 사귀겠다는 말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자신의 아내가 신혼 첫날 밤에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것이다.‘강여름, 아무리 최하준이 압박을 하더라도 죽을 각오로 맞설 수는 없었나?’양유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최하준이 증오스러웠다. 그러나 여름도 똑같이 증오했다.한참을 증오에 찬 눈을 이글거리던 양유진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전 실장, 자나? 잠깐 내 방으로 좀 오지.”“대표님….”전수현은 깜짝 놀랐다. 한밤중에 갑자기 양유진이 왜 자신을 방으로 부르겠는가? 정상적인 업무가 아닐 것은 분명했다.예전에는 그렇게 온갖 방법으로 유혹을 해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