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워낙 한 미모 하니까 추앙하는 자들도…”윤서가 움찔하더니 말을 이었다.“아니다! 어제 백윤택이 있었네! 십중팔구 그 자식이야!”여름은 깜짝 놀랐다. 머릿속에서 곧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그거네. 건달들 끌고 네 집에 쳐들어갈 정도의 위인이니 어제 발표회에서 네 술에 무슨 짓을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어쨌든 백지안이 송영식의 눈에 들었으니 뒷배를 믿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백지안만 있으면 송영식도 백윤택을 뭐 어쩌지 못할 테니까.”“정말 돌았나 봐.”임윤서가 부르르 떨었다.“내가 대체 그 인간하고 전생에 무슨 원수를 져가지고….”“그 자식이 너랑 결혼하고 싶은 건지도 몰라”여름이 정확하게 분석했다.“지금은 네가 세계 최고의 조제사인데다가 네 오빠가 리마도 잘 키워놓았잖아. 반면에 까놓고 말해서 영하는 최하준의 인맥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잖아.이제 그 최하준이라는 뒷배가 사라진 데가 송영식은 그정도로 유능하진 않지. 그러니 그럭저럭 너랑 네 집안이라도 가까이 잡아놓고 싶은 거야. 먼저 너랑 잠자리를 하면 결혼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겠지.”“나랑 우리 집이 그 녀석에게 그럭저럭이 다 뭐야?”윤서는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그런 쓰레기 같은 놈에게는 누구라도 아까울 지경인데.”여름이 푸흣하고 웃었다.“백윤택 남매 같은 인간들은 자존심이 엄청 세다고. 아마도 우리는 자기들이랑은 비교도 안 되게 아래 급이라고 생각할걸.”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싸해서 윤서는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다.“백지안도 이 일을 다 알고 있었을 것 같다.”여름이 말했다..“그 인간이 너도 마뜩찮아 했잖아. 백윤택에게 네가 당한 다음에 억지로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에 실컷 괴롭힐 생각이었겠지. 그러면 나에게도 복수가 될 테니까. 하지만 아마도 네가 송영식하고 자게 될 줄은 계산하지 못한 거야. 아마 지금쯤 백지안은 피를 토하고 있겠는걸.”“더러운 것들!”윤서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내가 가만 두나 봐라. 내가 송영식의 약혼녀가
“아빠, 오해예요. 저도 당한 거라고요.”윤서는 할 수 없이 사정을 찬찬히 설명했다.윤서의 아버지 임용준은 아무 말도 못하고 듣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송영식 대표가 너에게 책임을 져야겠구나. 어쨌든 쿠베라 쪽에서 연락이 왔으니 나랑 네 엄마가 서울로 올라가마. 같이 식사나 한번 하자꾸나.”“네.”송영식의 집에서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윤서는 재빨리 자기 계획을 아빠에게 말했다.임용준은 듣더니 벌컥 화를 냈다.“뭐라고? 네가 먼저 유혹을 했다고 말하라고 시켰다고? 이런 놈을 보았나? 내 딸이 이렇게 예쁜데 누가 누굴 유혹해? 좋다. 네 계획대로 가자꾸나. 쿠베라가 명문가라고는 하지만 그 집안 덕볼 생각은 나도 눈곱만큼도 없다. 네 작전에 나랑 네 엄마도 같이 어울려 주마.”“고마워요, 아빠.”윤서가 감동해서 손키스를 날렸다.옆에서 보고 있던 여름은 은근히 부러웠다. 사실 어려서부터 윤서를 금이야 옥이야 아껴주는 윤서네 집안 분위기가 부러웠던 것이다. 여름에게도 서경주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윤서네 집에 비길 바가 못 됐다.----해변 별장.송영식의 차가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멈춰 섰다. 집에 들어가 보니 백지안이 소파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여긴 왜 왔어? 가! 꼴도 보기 싫어.”백지안이 송영식에게 울면서 외쳤다.“평생토록 나만 사랑하겠다고 말한 게 대체 누구였더라? 그래 놓고 하루도 못 가서 다른 여자랑 뒹굴다니. 난 배신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지안아, 정말 미안해. 그런데 내 말 좀 들어 봐.”화가 나서 들어왔던 송영식은 눈물범벅이 된 백지안의 얼굴을 보자 어쩔 줄을 몰랐다.“어젯밤에 임윤서는 백윤택의 간계에 당했어. 그리고우리 누나가 그 사태에 책임을 지라고 누나가 날 그 방으로 밀어 넣은 거라고. 난 너무 취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라.”“우리 오빠?”백지안은 속으로 움찔했다. 송영식이 이렇게 빨리 진상을 파악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 그럴 리가.”“누나가 직접 봤대. 그리고
“지안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송영식이 다급히 백지안의 손을 잡았다.“널 위해서라면 난 모든 걸 버릴 수 있어.”“무…무슨 소리야?”백지안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송영식이 쓴웃음을 지었다.“우리 누나가 윤서를 약혼녀로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 집에서 오슬란을 무너뜨리겠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한 날 누나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야. 집에서 그런 식으로 압박하고 들어온다면 아마도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 하지만 괜찮아. 내 예금이 있으니 난 너만 있으면 충분해.”“……”백지안은 너무나 황당했다.쿠베라의 후계자 자리도 못 얻은 송영식은 이미 형편없는 존재인데 오슬란까지도 없으면 이제 대체 뭐가 있겠는가?‘예금으로 살겠다고?그 까짓 예금 얼마나 버치겠어?나중에는 내가 하준이에게 받은 위자료로 영식이에 멍청한 우리 오빠까지 먹여 살려야 할지도 몰라.게다가 아무 것도 없는 송영식과 함께 산다면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겠어?’“날 그렇게까지 사랑해 줘서 고마워.”백지안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들었다.“네가 이미 날 위해 많은 것을 해주었다는 건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널 그렇게까지 억울하게 만들 수는 없지. 오슬란은 네가 평생을 피와 땀으로 일구어 온 회사잖아. CEO에게 회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그리고 정말 나를 위해서 네가 모든 곳을 포기하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송영식은 완전히 감동에 사로잡혔다.“괜찮아. 난 너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무시해도 상관없어.”“……”백지안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 멍청이가!’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하지만 난 상관 있어. 네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거 싫어. 그리고 지금은 후회 안 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또 모르는 거야.”백지안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우리가 사귈 수 있게 된다면 난 우리 사랑에 후회는 없었으면 해.”“무슨 소리야? 지금 날 밀어내는 거야?”송영식이 마음 아픈 듯 말했다.“
해변 별장을 떠난 뒤 송영식은 답답한 마음에 이주혁을 불러냈다.그런데 막상 가보니 최하준이 있었다. 굳은 얼굴에 위 아래로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마치 저승사자 같았다.“넌 왜 왔어?”송영식은 이제 최하준이 너무나 눈에 거슬렸다.느릿하게 미간을 찌푸리면서 하준이 송영식을 쳐다봤다. 이주혁이 얼른 끼어들었다.“너한테 무슨 일이 났다니까 걱정 돼서 왔지. 우리가 어려서부터 같이 컸는데 이제 와서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럴 일이냐?”“그게 보통 사람이냐? 지안이라고!”송영식이 쏘아붙였다.“최하준, 결국 지안이가 지금 저렇게 비참하게 된 것은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으면 우리 집에서 그렇게 반대하지도 않았을 거야. 지안이가 얼마나 착한 애인지 알아? 내가 잘못을 했는데도 걔는 내가 잘 되기만 바라는 애라고.”“그래?”이주혁이 안경을 추어올리며 하준과 시선을 나누었다.“걔가 뭐라고 하는데?”하준이 궁금한 듯물 었다.송영식은 답답한 마음으로 식구들에게 당한 협박을 털어놓았다.“그런데도 지안이는 날 탁하기는커녕 내 회사만 걱정하더라. 내가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건 바라지 않는대. 날 위해서 우리 식구들에게 잘 보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거야. 정말 마음씨가 얼마나 착하냐. 그런 애를 아껴줄 줄을 모르다니, 최하준, 이제는 후회가 되지? 흥,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 없어.”“……”하준의 눈썹이 꿈틀했다. 예전 같았으면 하준도 송영식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함께 감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백지안에 대한 감정을 접은 상태라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니 아무래도 송영식이 완전 멍청이로 보였다.송영식에게 아무 것도 없어지면 백지안이 아니라 누구라도 송영식과 결혼하고 싶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그러나 백지안은 그런 송영식이 마음에 안 들면서도 말할 때는 마치 송영식을 위해주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백지안의 무서운 점이었다.이제 송영식을 보고 있자니 예전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전에는 백지안의 됨
하준은 편견으로 가득찬 송영식을 보니 찬물이라도 부어서 정신을 차리게 해주고 싶었다.그러나 아마도 예전의 자신처럼 그래도 별 소용이 없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누구의 말도 귀에 안 들어오는 마가 낀 상태였다.“자자, 기분도 좀 그런데 술이나 마시자.”이주혁이 송영식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송영식은 줄기차게 받아 먹더니 곧 취해서 소파에서 곯아 떨어졌다. 이주혁은 느릿하게 한숨을 쉬었다.“난 왜 지안이가 영식이를 위해주는 것 같지가 않고 오슬란을 잃으면 그냥 영식이를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나도 그렇게 생각해.”하준이 이상하다는 듯 주혁을 쳐다봤다.“전에는 너도 지안이를 철석같이 믿었었잖아?”“걔가 너무 그런 척을 잘 한 거지. 걔는 3년 전에 이미 변해있었는데 우리가 잘 몰랐던 것 같아.”이주혁이 하준을 흘끗 쳐다봤다.“어제 발표회에 넌 안 갔었지? 굉장했어. 임윤서랑 지안이가 똑같이 빨간 드레스를 입고 왔거든. 그래서 영식이가 임윤서를 끌고 가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대.예전 같았으면 영식이가 그런 짓 할 애냐? 그날 하필이면 임윤서 드레스 발이 지안이보다 훨씬 좋아보였거든.”하준은 깜짝 놀랐다. 자기가 아는 영식이라면 이유 없이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게다가 송영식은 둔한 타입이라 누가 언질을 준 게 안라면 드레스 컬러가 어쩌고 하는 것은 눈치채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그렇게 생각해 보면 백지안이 그 점을 신경 썼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좋아하는 백지안이니 그녀의 기분이 어땠는지는 송영식이 신경썼을 것이다.“주혁아, 난… 걔랑 결혼 안 해서 정말 너무 다행이다.”하준이 한탄했다.“곽철규 일은 정말 지안이가 말한 게 전부였을까?”이주혁의 시선이 묘하게 변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도 절대 아니라고 말했을 테지만 지금은….“모르지.”하준이 힘없이 피식 웃었다.“나도 영식이 비웃을 자격은 없어. 나도 전에는 완전히 지금의 영식이 같았잖아.”“나도 남 얘기할 상황은 아니었지.
第942章여름이 그대로 차를 가지고 들어가니 검은 세단이 자기 전용 주차공간에 세워져 있었다.차에 기댄 하준은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바지에 깔끔하게 들어가 있지 않은 모양을 보니 그간 좀 말라서인지 옷이 살짝 남아 있었다.“뭐 하러 왔어요? 이미 우리 사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얘기했던 것 같은데?”여름이 문을 탕 닫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하준은 심장이 찌릿했다.이렇게 싸늘하게 자신을 대할 것이 두려워서 그간 한 번도 회사로 찾아온 적은 없었다.“할 얘기가 좀 있어서. 당신 친구 임윤서 씨 얘기인데….”“뭔데?”여름이 움찔했다.“여기서 말할까, 아니면 사무실로 올라갈까?”하준이 한 발짝 다가섰다.“…좋아.”여름이 미간을 찌푸렸다. 윤서와 관련된 이야기라니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사무실로 올라가자 여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말해보시지.”하준이 두리번거렸다.“손님 접대를 이렇게 하나? 커피도 없어?”“커피 마시러 왔으면 나가서 오른쪽으로 돌아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여름이 팔짱을 꼈다.“난 바쁜 사람이야. 한가하게 커피 같은 거 마시고 있을 시간 없어.”“거참 매정하네.”여름을 만나기 위해서 임윤서라는 핑계를 팔아야 할 정도로 비참한 상황이 너무나 씁쓸했다.“이사는 왜 했어?”“저는 임윤서 씨 이야기를 하려고 들어오시라고 했는데요.”여름이 싸늘하게 다시 말을 본론으로 돌렸다.“내가 그렇게 보기 싫어?”하준이 그윽한 눈으로 여름을 바라봤다.“당연한 거 아닌가?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운데.”여름은 눈가의 혐오를 감출 생각도 없어 보였다.“명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았나? 당신은 항상 이런 식이야. 자기가 괜찮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는 항상 날 깔보면서 사람을 죽도로 괴롭히지. 그런데 자기가 틀렸다는 걸 아는 순간 바로 찾아와서 용서하라고 요구하고.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젠 피곤해. 짜증난다고.”하준은 여름의 팩폭에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누구도 이렇게 대놓고 하준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여름은 경악했다.최하준 같은 자존심 강한 사람이 그런 보상방식을 생각했다는 것이 좀 의외였다.최하준의 눈에 육민관은 그저 일개 보디가드인데 자신의 손가락으로 보상을 하겠다니, 예전의 인간성으로 미루어 봤을 때는 거의 불가능한 생각이었다.여름이 아무 말 없는 것을 보고 하준의 눈에 결심이 떠올랐다.“날 용서해주기만 한다면 그렇게라도 보상하고 싶어.”하준은 자신의 손을 내밀며 눈을 크게 뜨고 열정적으로 여름을 바라보았다.‘그냥 손가락 하나인데 뭐. 없어도 여름이를 안아 주고 입 맞추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어.손가락을 잃는 고통쯤은 여름이가 날 미워하고 날 피하는 데서 오는 고통하고는 비교도 안 되지.’여름은 하준의 손을 흘끗 보았다. 예전에는 하준의 손가락이 그렇게 길고 예쁜지 몰랐었다.“됐어.”여름은 얼굴을 돌리더니 담담히 말을 이었다.“그래 봐야 민관이 손에 붙일 수 있는 것도 아닌데.”하준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심지어 눈은 반짝이기까지 했다.“자기야, 날 위해서 생각해 주는 거야?”“뭐래?”여름은 즉시 응수했다.“용서할 생각도 없고, 재결합할 생각도 없어. 아직도잘 모르시나 본데, 난 당신이랑 있는 시간이 고통스러웠어. 난 당신하고 살면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고. 난 당신 같은 사람이랑 다시 합칠 생각은 조금 도 없어.”그러더니 일어섰다.하준은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더니 무의식적으로 여름의 팔을 잡았다.“어디 가게?”“당신이 안 가겠다니까 내가 나가려고.”여름은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응했다.하준의 목젖이 떨렸다. 여름을 잡은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가만히 여름을 들여다 보았다. 죄책감으로 가득하던 눈에 깊은 어두움이 드리워졌다. “아직 잘 모르나 본데 나랑 얽힌 이상 날 떠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웃기시네.”여름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하준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하준은 웃었다. 미워해도 좋고 화를 내도 좋으니 여름의 얼굴만 볼 수 있다면 그저 좋았다.길고 긴 인생에서 다른 것은 천천히
“맞아요.”여름이 나지막이 탄식했다.“어쨌든 지금은 최하준이 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으니 강 대 강으로 부딪혀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양유진이 여름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곧 최하준이 모든 힘을 잃게 될 거라고 말해서 안심시키고 싶었다. 여름은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여름 씨, 저기…우리 혼인신고부터 합시다. 법적으로 부부가 되고 나면 최하준도 어쩌지 못할 겁니다.”“혼인신고요?”여름은 깜짝 놀랐다.막 청혼에 답한 참인데 이렇게 빨리 혼인신고라니,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지라 잠시 멍해졌다.“그래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놀랐나 보네요.”양유진이 미안한 듯 말했다.“어쩔 수 없었어요. 다시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거든요. 혼인신고를 하면서 결혼식도 동시에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결혼식은 동성에서 합시다. 난 누구처럼 혼인신고만 하고 제대로 된 식은 올려주지 않는 짓은 하지 않을 거예요.”“고마워요.”여름은 유진의 말을 들으니 의심이 풀리면서 불안도 날아갔다.이제 와서 더 망설일 이유도 없는 듯했다.더구나 양유진은 여름을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이제 더는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좋아요. 그렇게 해요.”여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잘 됐네요. 바로 동성에서 예식 준비를 하도록 할게요. 너무 이목을 끌면 안 되니까 예식을 너무 성대하게 치르지는 못하겠지만 꼭 예쁘게 해줄게요. 그리고 양가 부모님들도 모시고. 아, 나중에 여울이랑 하늘이에게 화동을 부탁하죠.”흥이 오른 듯 양유진이 열심히 말했다.“좋아요.”여름이 머뭇거리며 끄덕였다.“하지만 유진 씨 부모님께서 제게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아시게 되면….”“벌써 다 아세요.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내가 여름 씨를 너무 좋아하니까요. 여름 씨 말고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러니 부모님은 어쩔 수가 없죠.”양유진이 여름의 배를 흘끗 보고 말을 이었다.“쌍둥이를 낳는 사람이니 또 쌍둥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