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한 짓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의 모함이었다.이런 영상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강여경이었다!강여경이라면 자신의 약혼식을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충분히 여름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대체 누구 짓이야? 원래 준비했던 USB는 어떻게 된 거야?”이정희가 화를 냈다.홀 매니저가 급히 뛰어왔다.“죄송합니다. USB가 바꿔치기 되어 있었습니다. 저희도 지금 막 알았습니다.”“누가 이런 지저분한….”양수영이 욕을 했다.채시아가 급히 외쳤다.“어머님, 누군가가 약혼식을 망치고 싶어 하나 봐요!”“그런 것 같구나. 어떤 놈인지 반드시 잡아내야 해!”이때 이미경이 우물쭈물 일어섰다.“제가 끼어들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까 작은 아가씨가 수상쩍게 영상실 쪽으로 가는 걸 봤습니다.”여름은 흠칫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여름은 아무 말 없이 있었다. 강태환이 노기 어린 눈으로 여름을 노려봤다.“네가 벌인 짓이냐?”여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평소 집에서야 그렇다 치고,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정희도 거들었다.“정말 너무 하구나. 사람 마음이 그렇게 억지로 되는 거니? 선우가 어려서부터 동생처럼 대해 줬더니 착각도 유분수지.”양수영이 덧붙였다.“다들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선우랑 여름이가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서 선우가 여름이를 동생처럼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감정이라는 문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안 그러니, 선우야?”한선우는 저도 모르게 여름을 쳐다보았다. 여름의 검고 또렷한 눈동자가 한선우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한선우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여름과의 관계가 깨끗하다며 해명했다.“미안하다, 여름아. 내가 오해하게 했구나. 정말 난 너를 동생처럼 생각했어. 너에 대해서는 남매 같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거야. 사랑한 게 아니라.”그 말을 들은 여름은 화도 내지 않고 그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평온한
“뭐야, 오늘이 어르신 팔순이었어?”“너무하네. 노인네 살면 얼마나 산다고 팔순 잔치는 거하게 해드려야지.”강태환은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했다. “난 지금 약혼식을 망친 책임을 묻고 있는 거다. 말 돌리지 말거라! 할머니 생신은 안 그래도 조금 있다가 말할 참이었어!”“좋아요. 그러면 그 얘기를 해보죠. 어떻게 이제 막 온 간병인 말만 듣고 딸을 그렇게 몰아갈 수 있어요? 여기 CCTV 있죠? 저는 들어와서부터 밥 먹으러 나올 때까지 할머니하고 룸에만 있었어요. 이런 7성급 호텔에 CCTV가 없진 않겠죠?”여름이 한 마디 던졌다.“제가 영상실에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다면 오늘 말로만 사과하는 게 아니라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어요.”“네가 사람을 시켜서 했을 수도 있지.”이정희가 참지 못하고 뱉었다."이모님은 제가 영상실로 가는 걸 봤다면서요. 그러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여름이 반격했다.하객들이 웅성거렸다. 양유진이 씩 웃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그러면 보안실에 가봅시다.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겁니다.” 이정희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강여경이 힘없이 말했다.“우리가 정말 여름이를 오해한 걸 수도 있잖아요. 조사를 하더라도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다들 배고프실 텐데.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강여경 말 한마디면 그냥 이렇게 넘어가야 해?”여름이 차갑게 웃었다.“아까 다들 나에게 한 마디씩 할 때, 내 감정이 어떨지는 생각해 본 사람 있어?“그만해. 이따가 조사해 보자고 얘기 끝나지 않았어? 뭘 더 어쩌자는 거야?”한선우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선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어른들이 다 나서서 일일이 사과라도 해야겠어?”“그 입 다물어. 오빠의 그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갔던 게 내가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날 동생처럼 생각한 거니? 내가 증거도 없고 끽소리 못할 줄 알았나 본데, 톡에 남은 그 수많은 기록은 어쩔 거야?”그러더니 여름은 이미 준비되어 있던 음성을 마
“이게….”채시아는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뭐가 이게, 저게야. 우리가 7~8년은 절친으로 지냈는데 사진을 한두 장 찍었니? 굳이 꺼내서 보여주게 만들지 마라.”여름의 시선은 침착하게 연회장의 하객들을 둘러보더니 마지막에 강태환 부부에게서 멈췄다.“CCTV 뒤져볼 것 없습니다. 어쨌든 조사할 기회도 안 주실 테죠. 더 이상 이 자리에 못 앉아 있겠네요. 솔직히 여러분들 하나하나 연기 보고 있으려니 구역질 나서요.”여름은 말을 마치더니 마이크를 탁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쿨하게 테이블에서 뛰어 내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연회장을 떠났다.연회장의 양가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한선우가 그중 가장 부끄러운 사람이었다. 한선우 아버지가 웃으며 다가왔다.“이제 다들 식사하시죠. 두 사람은 올라가서 옷 갈아입고 좀 쉬지. 피곤하겠어.”그러면서 한선우에게 경고의 시선을 보냈다. 한선우는 이를 갈며 무대를 내려가 뒤로 돌아나갔다.******엘리베이터 앞.여름은 초조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떠야 했다. 아까는 사람들이 많아서 두 집안 사람들이 어쩌지 못한 것일 뿐이었다. 이제는 혼자만 남았으므로 해코지를 할 수도 있었다.그러나 엘리베이터는 30층이 넘는 고층에 올라가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강여름, 나 좀 봐!”단단히 화난 한선우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돌아보니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여름은 한선우가 자신에게 이렇게 화내는 모습을 처음 봤다.여름은 선우가 손을 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불안에 떨고 있는데 커다란 사람이 그보다 더 빨리 여름의 앞을 막아 섰다. 양유진이었다.“뭘 어쩌려고 그러니?”“삼촌, 그건 제가 묻고 싶네요. 이건 저랑 여름이 사이의 일이에요. 비키세요.”‘삼촌이라고…?’여름은 번개라도 맞은 것 같았다.‘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거지?한선우가 양유진 대표를 삼촌이라고 불러?’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한선우는 여름이 다른 남자와 사귀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미쳤어요? 쟤는 겉으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순진하지가….”“사업을 한 경력도 사람 보는 안목도 내가 너보다는 낫지. 내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라.”양유진은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한선우의 말을 끊었다.“게다가 소꿉친구까지도 헐뜯는 전 여친인데 남자로서 괜찮으시겠어요?원한에 찬 한선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삼촌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요.”“나를 위해서 하는 소리인지 네 사심을 채우기 위한 마음인지는 네가 더 잘 알 거다.”이때 엘리베이터에서 ‘띵~’하는 소리가 났다.분노한 한선우를 그대로 남겨둔 채, 양유진은 여름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폐쇄된 공간에서 여름은 멘붕이 온 듯 멍하니 있었다.양유진이 여름을 보더니 놀란 줄 알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아까 사람들 많은 데서는 그렇게 용감하시더니?”사실 양유진도 적잖이 놀랐었다.참석했던 수많은 파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파티로 남을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 앞에서 테이블에 올라갔던 모습은 사실 꽤 매력적이었다.여름은 저도 모르게 양유진의 손을 치웠다. 머리가 굳어서 돌아가지 않았다.“대표님이… 선우 오빠의 삼촌이세요?”“그렇습니다.”양유진이 담담하게 인정했다.“저도 얼마 전에야 여름 씨가 그 댁 작은 따님인 걸 알았습니다. 선우와의 관계도 잘 알고 있었어요. 저한테 여름 씨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그 애가 여름 씨를 배신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여름 씨에게는 정말 미안합니다. 별장 인테리어 설계도를 보고 얼마나 재능이 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그렇지만 저번에 왜 먼 친척이라고 하셨어요?”“선우 삼촌이라는 이유로 저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했습니다.”양유진이 진지하게 말했다.“저는 진심으로 여름 씨가 좋습니다!”여름은 심호흡을 했다. “죄송한데 하나만 여쭤볼게요. 혹시 선우 오
윤서가 깜짝 놀랐다.“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날 엿 먹였지. 그것도 아주 빅 엿을!”여름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최하준은 한선우의 외삼촌이 아니었어! 사람 잘못 봤다고!”윤서가 말을 더듬었다.“그, 그럴 리가?”“오늘 진짜 외삼촌 만났어. 양유진 씨라고. 이제 막 담당한 W팰리스 별장이 그분 거야.”여름은 울고 싶었다.“대체 어쩌자고 나한테 사람을 잘못 소개했어, 이 친구야.”“……”윤서의 몸이 떨렸다. ‘어떻게 사람을 잘못 알아볼 수 있지? 오빠가 그렇다고 했는데….’******30분 뒤, 여름이 윤서의 눈앞에 나타났다.어디서 빌렸는지 몰라도 윤서는 헬멧을 쓰고 있었다.“가능하면 말로 하자. 아니 뭐, 때려도 되는데, 얼굴만은 때리지 말아 주라.”여름이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안 때려. 그냥 널 껴안고 강물에 뛰어들까 하는데 괜찮겠냐??”윤서는 천하에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내가 방금 30분 동안, 우리 오빠가 나한테 선우 오빠의 외삼촌이 누군지 가르쳐 줬을 때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 그때 남자 둘이 같이 있었는데 분명 거기 최하준도 있었어. 아우라가 엄청났다고. 거의 무슨 황제 폐하급의….”“그래서, 머릿속에 최하준이 한선우의 외삼촌이라고 자동 입력 됐다고?”여름이 윤서의 말을 끊었다.윤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안 그러고 배기냐? 최하준의 아우라가 모두를 압살했다고….”“그때 옆에 있었던 사람이 이 사람이야?”여름은 스마트 폰에서 양유진의 사진을 찾았다. 별장 시공 첫날, 우연히 찍힌 사진이었다.“어, 그때 자세히 안 봐서.”윤서가 눈썹을 찌푸려가며 생각했다.“좀 그런 것 같아. 어, 맞아. 그 사람이네. 그래서, 저 사람이 선우 오빠 외삼촌이라고?”여름은 가슴을 쳤다. 열이 뻗쳐서 가슴이 아팠다.“저기요, 네가 착각하는 바람에 난 혼인신고까지 해버렸다고. 내가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최하준 그 독사 같은 남자의 독에 중독돼서 미쳐버릴
변호사 사무소.이지훈이 점심을 먹고 산뜻한 기분으로 들어왔다. 최하준의 사무실을 지날 때 마침 보조사무원 하나가 커피잔을 들고 들어 가려던 참이었다.“최변은 점심에도 안 쉬나 봐요?”이지훈이 보조에게 물었다.“네. 새 의뢰건 파일 보고 계세요.”사무 보조원이 소곤소곤 말했다.“최 변호사님이 요즘 의뢰를 부지런히 받으시더라고요. 경제적으로 힘드신가? 전에는 끽 해야 한 달에 두어 건 받으셨는데 요즘은 막 4건씩 받으세요. 그래서 너무 바빠서 쉬는 시간에도 계속 일하시는 거예요.”이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천하의 최하준이 돈이 없다고?한 나라의 왕이 돈이 없으면 없었지 최하준 돈이 마를 리 없지.집에 몇 대를 써도 못 쓸 돈을 쌓아두고 있는데.집이 텅 비어 있으니 돌아가기가 싫은 거야. 곧 죽어도 그걸 인정을 안 하네.’“그건 저 주시고 가보세요.”이지훈이 커피를 들고 들어갔다.“거기 둬.”최하준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이지훈이 한숨을 쉬었다.“아이고, 오늘 TH랑 한주 약혼식 날이잖아. 거기 다녀온 친구가 그러는데 식장 스크린에 여름 씨하고 한선우의 달달한 연인 시절 사진이 다 올라갔다더라. 거기 있던 사람들이 여름 씨가 벌인 짓이라고 한대. 그걸로 또 어지간히 괴롭힘을 당했나 보더라.”‘한선우랑은 달달한 투샷이 있었어?나랑도 그런 걸 찍었던가? 한 장도 없잖아!’최하준이 싸늘한 시선을 들었다.“몇 번을 말해. 나한테 그 사람 얘기하지 말라니까. 죽든 살든 알 바 아니야.”이지훈은 어이가 없었다. ‘듣기 싫으면 말을 끊던지, 다 듣고 나서 아닌 척하긴.’“그러지 뭐, 난 친구가 보내준 영상이나 봐야겠다..”이지훈은 휴대 전화를 열었다. 마침 여름이 테이블에 올라간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최하준이 이지훈의 휴대 전화를 뺏어서 내동댕이 치려다가 그 안에서 들려오는 여름의 고함 소리를 듣고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았는데 난리 치고 반박할 줄도 아네.그런데 정말 한선우랑 사귀었다고?사귀
“당연히 안 하겠지. 온갖 못된 수작은 나한테 다 부렸거든.”최하준이 냉소적으로 내뱉었다.이지훈은 할 말을 잃었다.‘이건 그냥 대놓고 꽁냥자랑인가?그게 자랑이냐? 막상 여름 씨는 그렇게 너를 신경 쓰지도 않는데?’이지훈은 속으로만 욕을 한 뒤에 말했다.“전에 그 집 사람들이 한 짓을 봤을 때 오늘 그렇게 망신을 당했으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어. 지난번에는 감금해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이번에도 제수씨 위험에 빠지진 않는지 살펴봐.”최하준은 계속 자료만 들여다봤다.“됐어. 와서 무릎 꿇고 싹싹 빌기 전까지 꼼짝도 안 할 거야.”그러더니 잠시 후에는 이렇게 말했다.“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랬다고, 그 집에서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그냥 두면 안 되겠어. 이번 영상 싹 풀어줘.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절대 삭제 못 하게 조치하고.”“그, 그래.”이지훈이 무기력하게 뱉었다. ‘무릎 꿇고 빌지 않으면 안 도와주겠다더니 바로 말 바꾸는 거 봐라.’“빨리!.”최하준이 언짢은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이때 휴대 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발신자가 여름이다.오랫동안 기다려 온 전화를 보자 답답했던 마음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사정이 이쯤 되면 도와 달라고 전화할 줄 알았지.”최하준이 휴대 전화를 가리키며 비웃음을 흘렸다.이지훈은 지난 번에도 그렇게 말했다가 당하지 않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그러나 최하준이 신이 난 모습을 보고는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안 받아.”최하준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 휴대 전화를 그냥 테이블에 던졌다. 그러나 눈은 계속 곁눈질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20초쯤 울리고 곧 전화가 끊어지려고 할 즈음 잡아 들었다.“뭐, 이번에는 그 집에서 정말 목숨을 노릴지도 모르지. 살려달라는 전화를 안 받았다가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잖아?”이지훈은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저 꼴을 친구들 단톡방에 올려서 다 보여줘야 하는데 말이야….’“뭘 봐? 빨리 가!”최하준이 언짢다는 듯 눈을
최하준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젠장, 구청 가는 게 이렇게 기쁠 일이냐?아, 드디어 날 보게 돼서 기쁜 건가?그거군.그날 그러고 나갔는데 이제 돌아오려니 면목이 없겠지.그러니 일단 핑곗거리를 찾아낸 거야. 이따가 말투를 좀 부드럽게 해야겠다.’어쨌든 요즘 밥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최하준은 제대로 밥도 먹은 적이 없었다.‘뭐, 가는 길에 케이크나 하나 사가지고 가자.’최하준은 치즈케이크를 사들고 갔다.여름은 지난번에 최하준이 사준 하얀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겉에는 베이지색 모직코트를 입었다. 오후의 찬란한 햇살을 받으니 깨끗한 피부가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최하준의 입술이 섹시하게 슬쩍 올라갔다.‘이렇게 예쁘게 차려 입고 구청에 오다니, 정말 이혼을 하려는 건지 내 마음을 돌리려는 건지 너무 뻔한 스토리 아냐?’최하준이 케이크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갔다. 최하준을 본 여름의 눈이 반짝 빛났다.“가요!”하더니 여름은 앞장서서 구청으로 들어갔다.최하준은 할 말을 잃었다. 상상했던 것과 상황이 좀 달랐다.“잠깐.”‘너무 상황 파악 못 하는 거 아닌가? 케이크까지 들고 왔으면 체면은 살려준 거잖아?’“왜요?”여름이 의아하다는 듯 돌아봤다.“왜 그러겠습니까? 강여름 씨, 나는 기회를 줬습니다.”여름은 최하준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서 멍하니 있었다.“이혼하기로 했잖아요? 빨리 들어와요. 오후에는 회사 들어가 봐야 하거든요.”최하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한 여름을 가만히 보았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진심인가?진짜 이혼하고 싶은 거야? 대체 왜?’그런 생각이 들자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내가 언제 이혼하겠다고 했습니까?”여름은 기가 막혔다.“아까 전화로….”“내가 여기 와서 이혼하겠다는 말을 한 건 아닐 텐데요?”최하준이 얼음처럼 차갑게 웃었다.“강여름 씨, 날 뭘로 보는 겁니까? 결혼이라는 게 당신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겁니까? 날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도 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