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본 여름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 부끄러워야 정상이겠지만 두 사람이 동성에 살 때 여름은 이 수를 써본 적이 있었다.‘흥, 무슨 여자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내외를 하고 난리야?’“알았어.”여름은 침실로 들어가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나왔다.하준은 식탁에 앉아서 싸 들고 온 아침 식사를 펼쳐놓고 있었다.“자기 먹이려고 내가 우리 쉐프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싸 왔어. 계란국에, 감자샐러드, 메추리알 장조림, 마늘쫑 무침…”하준이 하나하나 읊었다.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수저를 들어 막 먹기 시작했는데 한참 먹다 보니 가만히 앉아만 있는 하준이 눈에 들어왔다.“당신은 왜 안 먹어?”“입맛이 없어.”하준의 말은 사실이었다. 여름이 해주는 게 아니면 하준은 그다지 식욕을 느끼지 못했다.“그러면 어떡해? 아침은 먹어야지. 이리와, 먹여줄게.”여름이 메추리알을 입에 물고는 장난스럽게 하준을 쳐다보았다.하준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여름의 속눈썹 하나하나까지도 잘 보였다.‘그러니까… 입으로 먹여준다는 말이야?’전혀 식욕이 없다던 하준의 목젖이 꿈틀했다. 고개를 숙여 메추리알을 반 베어 물었다.“이제 먹고 싶지?”생글생글 웃는 여름에게서 아침 햇살처럼 반짝이는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어.”하준은 참지 못하고 여름을 잡아당겨 무릎에 앉히고는 여름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강여름은 마약이야. 전에는 매일 싸우느라 바빠서 몰랐는데 정말 날 너무 빨아들인다고.’‘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저 좋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너무너무 좋아. 아니, 사랑해.처음부터 강여름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아.’“자기가 나에게 복수하려고 접근한 거라고 해도 난 자기랑 함께 있고 싶어.”하준은 여름의 목이 얼굴을 묻은 채로 중얼거렸다.여름의 몸이 굳어지더니 하준의 얼굴을 떼어내고 바라보았다.“지금 무슨 소리야?”“전에는 내가 너무 자기한테 나쁜 짓을 많이 했잖아.”하준이 두 손으로 여름의 두 볼
“하지만….”여름이 화제를 돌렸다.“꼭 혼내주고 싶은 사람은 있어. 그 사람을 손봐주지 않으면 나에 대한 당신의 마음을 의심할 수 밖에 없어.”“그게 누군데?”“민정화.”여름의 입에서 천천히 흘러나온 이름이었다. 목소리에 한껏 한이 서려 있었다.하준은 깜짝 놀라서 미간을 찌푸렸다.“민 실장이 왜? 내가 지안이를 보호하라고 해서….”“아니.”여름이 눈을 똑바로 뜨고 하준을 노려보았다.“이혼협의서에 사인하던 날, 민정화에게 내 몸을 뒤지라고 했었지? 그런데 민정화가 그 자리의 다른 남자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내 옷을 벗겼다니까. 상혁 씨가 말리지 않았으면 바지도 벗길 뻔했다니까. 그때의 모욕감은 내가 잊을 수가 없어.”하준의 눈이 어두워졌다.그날을 하도 정신이 없었지만 자기가 밖으로 나갔다가 김 실장과 민정화가 다투는 소리를 듣고 다시 들어왔을 때 여름의 옷매무새가 흩어져 있었던 것은 기억이 났다.“뭐야? 날 안 믿는 거야?”여름이 갑자기 화를 내며 하준의 품에서 벗어났다.“내가 민정화랑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모함을 하겠어? 못 믿겠거든 가서 상혁 씨랑 그날 왔던 보디가드들에게 물어봐. 내 말이 거짓말이면 벼락을 맞아 죽지.”“당신이 벼락을 왜 맞아?”하준의 안색이 변했다.“어쨌든 난 거짓말 안 했으니까 겁날 거 없어.”그러더니 여름은 이제 아침 식사에 흥미를 잃은 듯했다.“말로는 날 좋아한다면서도 민정화에게는 손을 못 대겠나 보네? 뭐, 날 못 믿는 건가? 지룡파 멤버 하나만도 못하게 여기면서 좋아하긴 뭘 좋아해?”여름이 이제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아니, 당신을 못 믿는 게 아니라….”입으로는 그렇게 말을 했지만 마음 속에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민정화는 백지안을 지키기 위해 여름에게 경계심을 품고 있었으니 여름이 민정화에게 개인적인 억하심정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었다.그러나 그렇게 망설이는 하준을 보니 여름은 눈에 거슬렸다.“가서 조사해 봐.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여름은 갑자기 시선을 피하면서
상혁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강 대표님께서 슬슬 복수를 시작하셨구나. 그래, 나라도 그때 그 일은 기분 나쁘지.’“뭐라고 말씀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겉옷은 완전히 벗겨서 슬립이 드러나긴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여기저기 찢으면서…. 살이 좀 드러나긴 했습니다. 나중에는 바지도 벗기라고 해서 제가 말렸습니다. 하지만 민정화가 제가 제대로 찾아보지 못하게 한다면서 저더러 직접 하라고 하던 중에 회장님께서 들어오셨던 겁니다.”하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지룡파 2인에게 떨어졌다.“솔직하게 말해.”깜짝 놀라서 입을 열었다.“김 실장 말이 맞습니다.”그러니까… 민정화가 여름의 바지를 벗기라고 했다?”하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다른 하나가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바지 안에 숨겼을지도 모른다면서….”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하준의 주먹이 날아왔다.둘은 곧 얼굴이 부어올랐지만 맞받아칠 수도, 끽 소리할 수도 없었다.“그러니까 네놈들은 모두 봤다는 말이군.”하준의 손등에 힘줄이 불뚝불뚝 솟았다.‘감히 여름이의 몸을 이놈들이 봤다 이거지? 확 눈알을 그냥….’“아, 아닙니다. 못 봤습니다.”둘이 더듬거리면서 죽어도 인정을 하지 않았다.“못 보기는? 그때 너희 둘이 여름을 누르고 있었는데 아주 똑똑히 봤을 건데?”하준이 매섭게 몰아쳤다.“내가 강여름하고 이혼을 하려고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전처인데 어디 너희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내 전처에게 그런 천박한 짓을 하면서 민정화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말 한마디 못해?”“죄송합니다, 회장님.”둘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머리를 조아렸다.“당시에는 강여름에 대한 혐오가 가득하신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민정화는 저희 동료니까 저희는… 그게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모른척했습니다.”하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다.두 사람이 하는 말이 사실인 줄은 알았다.‘내가 여름이를 업신여기니 저 놈들도 여름이를 욕보인 거지.어쨌든 죄다 내가 벌인 멍청한 짓이야. 그런
“정말 조사를 했어?”여름이 애매하게 웃었다.“정말 내 말을 안 믿었구나?”“……”하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제가 제 발등 찍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너무 절절히 와 닿았다.“로맨스 소설에서 보면 여주가 말만 하면 남주가 무슨 거짓말을 해도 다 믿어주던데 역시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구나.”여름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긴, 백지안이 하는 말은 뭐든 믿어 믿어주고 내가 하는 말은 뭐든 안 믿었었지. 내가 백지안이었으면 상황은 완전히 달랐을 텐데….”“미안해.”하준은 마음이 아팠다.‘그래. 전에는 여름이랑 지안이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난 무조건 지안이 말을 믿어 주었지.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니 전에도 내가 여름이를 오해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지안이가 거짓말을 한 경우도 있었을 거야. 어쨌거나 민 실장이 그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나도 생각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내가 문 앞에 있었는데도 말이지.’“그날이 복수는 내가 직접 할래.”여름이 갑자기 차갑게 말을 던졌다.“그래.”하준이 1층에서 10여 분을 기다린 다음에야 여름이 내려와 보조석에 앉았다.“이거 오다가 자기 주려고 하나 골라 봤어.”하준이 보석함을 하나 내밀었다.열어보니 다이아몬드가 달린 태슬 귀걸이였다.“지난번에 자기가 귀걸이 한 거 보니까 예쁘더라고.”하준이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사과의 선물인가?”여름이 대놓고 물었다.“…어, 그렇지.”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준이 답했다.“난 다이아몬드 귀걸이 별로더라.”여름이 보석함을 툭 던졌다.“난 골드가 좋더라. 다이아는 그냥 탄소 덩어리잖아?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무슨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 어쩌고 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지. 흥, 사랑이 어디 그딴 걸로 증명이 되는 건가?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골드가 최고야. 세계 어딜 가도 돈으로 바꿀 수 있고, 가치도 계속 오르잖아. 역시 사랑보다는 돈이지.”“……”아무래도 오늘 여름은 영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이게 다 민 실장 때
“상관없어요. 어차피 누가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인 걸 뭐.”여름은 하준을 흘끗 쳐다보았다.“뭐 한다고 사람을 저렇게 때렸대? 다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인데.”“……”하준은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여름의 팩폭에 찔려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낭패한 하준의 얼굴을 본 양성훈은 놀라서 턱이 바닥에 떨어질 지경이었다. 하준이 누구 앞에서 이렇게 온순한 양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전에 백지안과 사귀실 때는 본 적이 없는 모습인데. 와, 앞으로 강여름 대표에게 정말 잘 보여야겠구나.’“회장님, 민 실장은 반성의 방에 있습니다.”다른 한 명의 보디가드였던 원윤구가 살짝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서 보고 했다. 아까 걷어차인 엉덩이가 아직도 욱신욱신했다.“알았어.”하준은 여름을 데리고 들어갔다.----반성의 방.본부로 돌아오라는 말을 듣고 왔다가 민 실장은 바로 반성의 방에 갇혔다. 휴대 전화는 바로 빼았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민 실장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빨리 열지 못해? 난 병원에 가야 한다고!”민 실장이 문밖을 지키는 사람에게 날카롭게 외쳤다.“회장님께서 백지안님을 돌보라고 하셨단 말이다. 내 일을 방해하지 말라고.”“안 됩니다. 일단 기다리세요. 회장님께서 곧 오실 겁니다.”문지기가 나지막이 답했다.“회장님이 날 왜 여기로 부르신단 말이야? 난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민 실장은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그래? 잘못이 없는 게 확실한가?”하준이 문을 쾅 차며 들어왔다. 옆에는 여름이 따르고 있었다. 하준에게서 서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오셨습니까….”하준의 옆에 있는 여름을 보자 민 실장은 얼굴에 거부감이 확 올라왔다. 그러나 아랫사람으로서 함부로 큰소리를 칠 수 없었다. 그저 병원에서 우두커니 혼자 있을 백지안이 걱정스러웠다.‘회장님은 정말 지안 님에게 너무 하셔.’여기저기 다친 양석훈과 원윤구가 살짝 원망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지난번에 강여름 대표에게 이혼협의서에 사인하라고
“지금 저 말 좀 들어보라지? 난 최하준의 애인인데 저 건방진 말투라니. 내가 백지안이 아니라서 날 적대시하는 거잖아. 전에도 차윤이 날 보호해 주는 걸 우습게 생각하더니, 백지안 곁에 오래 있다 본 이제 백지안이 자기 상사인 줄 아나 봐?”여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조곤조곤 팩트를 짚었다.“그런 거 아니거든요!”민 실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지룡에서 가장 금기 시되는 것이 최가에 대한 불충이다. 불충했다가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어째서 날 이렇게 모함하시는 거죠? 전 강여름 대표와는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저는 그저 일개 보디가드일 뿐이라고요.”“지룡 멤버가 어떻게 그냥 일개 보디가드일 수가 있어? 자신을 너무 낮추는 거 아닌가요?”여름이 하준을 보고 웃었다.“물어볼 게 있어. 민 실장은 언제부터 백지안의 보디가드를 맡은 거야?”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지안이가 실종되기 전부터 7~8년은 되었지.”“그러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백지안을 따라다녔다는 말이네.”여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민 실장은 여름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챘다. “내가 백지안 님을 오래 모시긴 했지만, 내가 얼마나 오래 그분을 모셨든 상관없이 난 지룡에서 파견된 사람입니다.”하준이 미간을 문지르다가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 전에는 백지안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지룡에서 가장 세심한 민정화를 붙여주었던 것이다.나중에 백지안이 돌아온 뒤에 사람을 하나 붙여달라면서 가장 익숙한 사람이라며 민정화를 언급하기에 바로 동의했다.그런데 때로는 두 사람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둘 사이에는 당연히 특별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차윤과 여름의 관계와 비슷한 것일 터였다.게다가 민정화는 흰 종이처럼 깨끗할 때부터 백지안을 따랐으니 당연히 둘 사이는 훨씬 더 깊었을 것이다.“민 실장, 그만 해. 네가 내 뒤에서 여름이를 해친 것이 사실이다. 반드시 지룡의 처벌을 받아야 해.”하준이 싸늘하게 명을 내렸다.“
여름은 흠칫했다. 깜짝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민 실장은 여름이 동요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더욱 악랄하게 소리 질렀다.“백지안 님과 관계가 가능해지면 당신 따위 찾지 않으실 거야. 못 믿겠다면 스스로 알아보시던지. 회장님의 심리적인 저항만 치료된다면 당신은 이용 가치가 없어. 그러니 뒷날을 생각해서 내게 일말의 체면이라도 남겨주는 게 좋을걸. 나주에 후회할 일 하지 말라고!”“그런 거였군.”여름은 심호흡을 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끄덕였다.“그러면 좀 있다 가서 물어봐야겠네.”“그러기만 해 봐.”민정화가 펄쩍 뛰었다. 여름의 마음에 틈을 만들려는 의도였는데 만약 자신이 여름에게 그따위 소리를 했다는 사실을 회장님이 알게 되면 목숨이 남아나지 못할 판이었다. 그런 문제는 남자에게 있어 엄청난 체면이 걸린 문제가 아닌가.여름은 소리 내어 웃었다. 민정화가 점점 더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하준과 백지안이 그렇게 오래 사귀었는데 아직까지 관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오호, 이거 퍽 재미있게 되었는걸.그러니까 최면으로 머릿속은 가져갔는지 몰라도 몸에는 거부당하고 있다?’어쩐지 갑자기 하준에게 마음이 약해졌다. 돌연 이전에 느껴지던 거리감이 확 사라진 느낌이었다.“뭘 잘 모르시나 본데, 왜 백지안에게는 그쪽 방면에 흥미가 안 생기는지 알아? 최하준이 마음속에는 나뿐이기 때문이거든.”여름의 가위가 민정화의 바지를 갈라 내려갔다.드러나는 살에 수치스러워 소리 지르느라 민정화는 이제 여름에게 쓸데없는 소리 할 겨를이 없었다.“시선 돌리지 말고 똑바로 보세요. 시선 돌리는 사람은 내가 봐두겠어요.”강여름은 그 자리에 있는 남자들을 하나씩 노려보았다.거대한 체구의 남자들은 귀까지 빨개진 채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반성의 방에서 그 긴 세월을 일했지만 이렇게나 곤란한 일은 진짜 처음이네.’어쨌든 평소 운동으로 다져진 민정화의 몸에 눈이 가지 않을 수가 없는 데다 평소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섹시한 민
“저분은…?”여름이 결국 돌아보며 물었다.그러나 제대로 다시 얼굴을 보기도 전에 하준이 확 잡아당겼다.하준이 사뭇 카리스마 있는 시선으로 여름을 내려다보았다.“다른 남자를 너무 쳐다보지 마.”여름은 어이가 없었다.“중년 아저씨는 내 취향이 아니거든. 그냥 워낙 아우라가 대단해서 물어본 거지.”“지룡 당주야. 지룡파 두목인데 내 명령만 들어.”하준이 설명했다.“지룡 당주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 최고의 인물이야. 지룡에 들어오는 것만 해도 온갖 각고의 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지룡의 당주이니 당연히 아우라가 있지.”“응.”여름이 끄덕였다.“아 참, 방금 내가 민 실장 옷을 다 잘라버려서 아마 이제 날 엄청 미워할 것 같아.”“감히 그런 생각도 못 할 거야.”하준이 뼈까지 시리게 할 정도로 차가운 시선이 드러났다.“당신은 내 사람이야. 당신을 미워하면 날 미워한다는 뜻인데 그랬다가는 뼈도 못 추리게 돼.”여름은 은근슬쩍 하준을 훔쳐보았다.‘하여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다들 감히 자기를 배반할 인간은 없고 누구나가 다들 자신에게 충성하고, 공경한다고 믿는 병이 있나 봐.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잡기 어려운 건데.’“그렇지만 민 실장은 당신 코앞에서 나에게 수치스러운 모욕을 줬던 사람이야. 그건 당신하고 백지안 사이에서 민 실장은 백지안을 더 신경 쓴다는 말이지. 내가 민 실장을 노린 거라고 생각하지 마. 방금 내 복수는 당신에게 주의하라는 뜻으로 한 일이야.”여름은 당당하게 말했다.하준은 결국 여름을 흘끗흘끗 쳐다보다가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날 신경 써 주는 거야?”“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지금은 당신에게 맞추어 주기는 했지만 당신에게 넘어갈 생각도 없으니까.”여름이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었다.“절대 그런 일 없을 거야.”하준이 여름을 꼭 안았다.“자기야, 앞으로 내 거대한 힘이 당신을 지켜주는 우산이 되어 줄 거야.”‘당신을 해치는 사람이 아니라….’하준은 마음속으로 굳게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