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말라는 건 아니야.”하준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실룩거렸다.“이모가 보고 싶으면 내가 데려올게. 아빠는 안 돼.”“왜 안 돼요?”여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음표 가득한 얼굴을 했다.“큰아빠가 이모를 좋아해요? 그래서 질투해요?”하준의 검은 눈이 확 커졌다.‘내가 강여름을 좋아한다고? 요런 꼬맹이고 알아볼 정도로 그렇게 티가 났나?’“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하준의 표정이 무거워졌다.“좋아하는 게 뭔지나 아냐, 네가….”“알아요. 옛날에 옆집에 잘 생긴 오빠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 오빠가 다른 애들이랑 놀면 기분이 안 좋아요.”여울이 입을 비죽거렸다.“그게 질투잖아.”“……”하준은 골치가 아팠다.“아니, 하여튼 그냥 그런 게 있어. 집에 가자.”하준은 여울과 계속 이러고 대치하고 있다가는 머리만 아파질 것 같았다.“좋아하면 그냥 좋아한다고 말해요.”여울이 으쌰으쌰 하는 포즈를 하며 응원했다.“큰아빠는 결혼할 사람이 있어. 사람이 양다리를 걸치면 안 되는 거야.”하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자신에게 하는 경고이기도 했다.----부녀를 보내고 나서, 여름은 차를 몰고 유치원에 하늘을 데리러 갔다. 유치원 원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사뭇 귀여우면서도 의젓했다.“하늘이 오늘 첫날인데 어땠어? 재미있었어?”여름이 다정하게 물었다.“재미없었어요. 애들이 다들 너무 유치해.”하늘이가 부루퉁했다.“난 7세 반에 들어가고 싶어요.”“…음… 안 되는데. 아직 4살 밖에 안 돼서 7세 반에는 못 들어가.”여름은 한숨을 쉬었다.‘애들이 자랄수록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나는구나. 하늘이는 점점 최하준을 닮는데 먹고 마시는 취향은 나랑 똑같고, 여울이는 성격이나 머리는 날 닮아서 영리한데 먹고 마시는 취향은 최하준이랑 똑같아.’그 날은 서경주가 퇴원하는 날이었다.여름은 하늘을 데리고 벨레스 별장으로 갔따.여름이 서경주에게 미리 얘기를 해놓기는 했지만 막상 하늘을 만나더니 서경주는 매우 감격했다.“하늘아, 앞으로
지금 급한 적은 역시나 백지안이었다.아이를 데리고 있으려니 언제 들킬까 조마조마했었는데 친정에 맡기고 나니 한시름이 덜어졌다.저녁에 하늘이 잠들자 여름은 산장에서 빠져 나왔다.차에 타서 바로 전화 번호를 하나 눌렀다.“곽철규 쪽 상황은 어때?”“허구한 날 도박에 술에 바쁩니다. 이틀 연속 밖에서 여자를 데리고 들어갔어요.”육민관이 한탄했다.“백지안은 매주 3번 오는데 한 번 오면 7~8시간 있다가 갑니다. 쯧쯧, 정말이지 최하준에게 병이나 안 옮았을까 모르겠어요. 조만간 옮을 건데….”“시끄러워.”여름은 마른 세수를 했다. 육민관은 입만 열면 그 소리를 하니 여름은 심장이 벌렁거렸다.“놈과 교섭할 사람은 좀 알아봤어?”“다 알아 놨습죠. 그런데 곽철규가 이제 수중에 돈을 다 썼지 싶습니다. 곧 백지안에게 돈을 요구할 거예요. 이제 백지안도 얼마 못 버티지 싶습니다.”“내가 백지안이면 결혼하기 전에 곽철규를 해치우고 싶을 거야.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으니까.”“그러면….”“놈을 살려둬야 해. 결혼식 당일까지 살려 놔야 빅엿을 날리지.”“알겠습니다.”육민관이 답했다.‘살면서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니까….’----다음날.하준의 본가, 최양하는 아침을 먹고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울이 양하를 꽉 껴안았다.“아빠~ 같이 회사 갈래. 할머니 보고 싶어요.”최양하는 할 수 없이 여울을 안았다.“내가 모를 줄 알고? 또 아빠 찾아가려고 그러지?”“삼촌, 내가 어젯밤에 그 나쁜 이모한테 복수할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어요.”여울이 간절한 눈을 했다.“꼭 가고 싶어요. 아, 그리고 이따가 데리러 오지 마세요. 나 그 이모네 가서 자고 와야 돼요. 내가 생각해 놓은 게 있거든요. 이따 말해줄게요.”복수심에 불타는 여울을 보고 최양하는 한사코 거절할 수도 없어서 결국 여울을 데리고 회사에 갔다.어제 여울이 회사에서 지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회사에는 이미 그 집안에 꼬마 아가씨가 하나 늘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최양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냐?”하준은 아까 여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최양하, 이제 딸도 있는 사람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놀러 나가느라고 애를 뒷전에 둬? 여울이에게는 아빠가 필요하다고.”“하지만 저도 가끔은 자유가 있어야지요. 솔직히 처음에는 저도 딸이 생겨서 좋았습니다만 며칠 지나니 너무 얽매여서 자유도 없고 힘듭니다. 여울이가 어머니와 자려고 하지도 않고…. 그러니 형님께 부탁드릴 수밖에요. 잘 부탁드립니다.”그러더니 최양하는 전화를 끊었다.이때 여울이가 울먹울먹 하며 하준을 바라보았다.“아빠는 날 안 좋아하나?”“아니야. 아빠가 일이 있어서 그래. 오늘 밤에는 큰아빠 집에 가서 자자, 어때?”하준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여울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좋아요.”얌전한 여울을 보면서 하준은 속으로 최양하에게 욕을 퍼부었다.‘이렇게 귀여운 아기를 두고 귀찮다니 그게 말이야? 난 부러워 죽겠구먼, 나쁜 녀석.”----해변 별장.백지안은 차 소리를 듣고 기쁜 얼굴을 꾸미고 뛰어나왔다. 그런데 하준의 어깨에 매달린 여자애를 보는 순간 표정이 어두워졌다.“준, 쟤는….”“오늘 여기서 잘 거야.”하준이 간단하게 설명했다.“이모님께 애 먹을 반찬을 좀 해달라고 하지.”“그래.”백지안은 울컥했다. 요즘 하준은 자신에게 영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라 오늘밤에는 한껏 애교를 떨 생각이었던 것이다.그 와중에 여울이 달달하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이모 오늘 예쁘네요.”“고마워. 너도 귀엽구나.”백지안은 어쩔 수 없이 대꾸했다.저녁을 먹는데 하준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하준은 얌전한 여울을 흘끗 보더니 백지안에게 부탁했다.“잠깐 애 좀 봐줘.”그러면서 하준은 전화기를 들고 저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나 생선 좀 주실래요? 너무 멀어서요.”여울이 말랑말랑한 손으로 조기를 가리켰다.백지안은 생선을 한 조각 떼어 툭 던졌다.어쩐 일인지 꼬맹이를 보기만 하면 짜증이 났다.그런데 곧
백지안은 몰래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아오, 저거 그냥 확 때려주고 싶네.’----밥을 먹고 나서 이제 여울이를 씻겨야 할 때가 되었다.하준은 아이를 씻겨본 적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이모님께 부탁드렸다.그런데 여울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엄마가 모르는 사람한테 빨가벗은 거 보여주는 거 아니랬어. 이모랑 목욕할래요.”여울이 기대에 찬 얼굴로 백지안을 쳐다보았다.백지안은 쭈뼛거렸다.“저기, 난 애 목욕은….”‘아니,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아는 사이였다고 얘가이래?’“그러면 난 목욕 안 할래.”여울이 고개를 떨궜다.“큰아빠는 남자니까 안 된단 말이야.”하준은 듣더니 웃었다. 백지안에게 고개를 돌렸다.“한 번 씻겨줘. 늘 아이를 낳고 싶어했잖아? 연습하는셈치고 해보지 그래?”백지안은 애교스럽게 발을 굴렀다.“나는 애를 낳는 것까지만 하면 되잖아. 나중에 씻기는 일 같은 건 보모한테 맡기면 되지.”여울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갸우뚱했다.“우리집은 엄마가 씻겨줬는데? 옷도 엄마가 빨아주고.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고 하나도 안 힘들다고 했는데.”백지안은 얼굴이 굳어졌다.‘네 엄마는 보모를 쓸 돈이 없었겠지!’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입으로는 부드럽게 말했다.“그건 다르지.”“뭐가 달라요?”여울은 점점 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백지안은 이제 말문이 막혔다. 게다가 하준의 표정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됐어. 내가 씻길게.”‘얼른 대충 씻기고 나면 되지, 뭐.’욕조에 물을 받았다.여울은 들어오더니 물이 뜨겁다 차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인내심을 시험했다. 백지안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결국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말았다.“닥쳐. 한번만 더 지랄하면 큰아빠한테 별장에 데려다 주라고 할 거야.”여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려운 얼굴로 백지안을 쳐다봤다. 이쯤 되자 백지안은 슬쩍 의기양양해졌다.“내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아? 난 네 큰아빠랑 결혼할 거야. 나중에 우리
순간, 하준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심장이 욱씬 아팠다.이것저것 가릴 겨를도 없이 하준은 목욕 수건을 들고 들어가 작은 몸에 둘러 싸 얼른 목욕탕에서 안고 나왔다.여름을 침실 큰 침대에 눞히자 엉엉 울었다.“아파… 추워….”하준이 여울의 피부를 만져보니 싸늘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살펴보니 팔꿈치가 시퍼렇게 멍들었다.“괜찮아. 얼른 옷 입혀줄게.”얼른 이불로 여울을 덮어주고 돌아서니 아이 옷을 들고 온 백지안이 보였다.당황한 얼굴로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준, 미안해. 왜 애가 갑자기 넘어졌는지 모르겠어….”“애 좀 씻겨달랬더니 이게 씻기는 거야? 애는 넘어졌는데 넌 어떻게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가 있어?”울컥 화가 치밀었다. 하준이 백지안에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그… 그게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너무 놀라서 정신을 못 차린 거지.” 백지안은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더니 여울에게 손을 뻗었다.“이모가 옷 입혀 줄게.”“싫어. 이모 무서워.”여울은 확 움츠러들며 두려운 기색을 드러냈다.“됐어. 내가 입힐게.”하준이 옷을 가져가 여울에게 입혔다.백지안은 화가 나서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믿을 수가 없었다. 겨우 자기 자식도 아닌 어린애 하나 때문에 오늘 벌써 하준이 몇 번째 자신에게 화를 내는지를 생각해 보니 억울했다.옷을 입히더니 하준은 여울을 안고 옆 방으로 갔다.하준이 약을 가져오자 여울은 몸을 뒤로 뺐다 눈썹에 눈물이 맺혀있었다.“안 바를래.”“착하지, 약을 발라야 빨리 낫지.”하준은 아픈 것을 무서워 하는 여울을 보니 마음이 아팠지만 이럴 엄격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싫어. 나 여기 싫어. 엄마 보고 싶어. 여름이 이모한테 갈래.”여울이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이 시간이면 여름이 이모는 잘 텐데. 착하지? 여기서 자자.”하준이 위로했다.그러나 여울은 울기만했다.“아파! 여름이 이모 보고 싶어! 큰아빠 집 싫어
하준은 마음이 싸해졌다.다른 사람이 그런 소리를 했다면 안 믿었겠지만 여울은 이제 겨우 4살 된 아이였다. 단순해서 누굴 속이거나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그러니 그런 여울은 있는 대로만 말할 터였다.‘지안이가 그렇게 사나운 소리를 하는 걸 들어본 적은 없는데.아까 밥 먹을 때 몇 마디 했다고 애를 나무란 건가?이런 지안이는 처음인데….지안이는 따뜻하고 배려심 깊고 발랄한 사람인데.우리 아이가 생기면 지안이는 인내심으로 충만한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오늘 여울이를 데리고 와서 보니 어린애를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좋지가 않네.이제 막 엄마를 잃은 애한테 말을 너무 잔인하게 했어.지안이가 변한 걸까, 아니면 내내 그런 성격이었는데 내가 알아보지 못했던 걸까?’“여울이 방금 목욕탕에서 어쩌다가 넘어졌는지 큰아빠한테 얘기해 줄 수 있어?”하준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여울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뭔가를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큰아빠는 솔직한 아이를 좋아하는데.”하준이 진지하게 말했다.“욕조에서 나오는데 너무 추웠거든요. 그래서 내가 이모를 꽉 안았거든요. 그래서 이모 옷이 젖었어. 그랬더니 이모가 나를 탁 쳐서 자빠졌어요.”마지막에 가서 여울은 울었다.“이모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이모가 날 더 미워할 거야. 여울이는… 여름이 이모가 보고 싶다. 여름이 이모는 날 좋아하는데. 큰아빠 집은 싫어.”“그래, 그래. 같이 여름이 이모네 가자. 울지 마.”하준은 여울을 안고 나왔다.“여울이 이제 안 아프니? 병원에 가 볼까?”소리를 듣고 백지안이 후다닥 달려와 걱정스럽게 물었다.하준은 지안을 돌아보았다. 너무 낯설었다. 마음에는 의문이 가득했다.‘지안이는 정말 여울이를 걱정하는 걸까?여울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무서운 말은 왜 했을까?왜 겨우 옷이 젖은 정도로 아이를 차가운 타일 바닥에 밀쳐버렸을까?’하준은 갑자기 지안이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저 얼굴 뒤에는 내가 모르는 지안이가 숨겨져
“서인천 씨랑”여름이 담담히 답했다.“……”하준의 얼굴이 싸해졌다. 여름에게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둘은 이미 이혼을 했다. 여름을 지적할 이유가 없었다.“당장 집으로 와. 여울이가 다쳤어. 지금 당신 집 앞이야.”“뭐?”여름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쩌다 애가 다쳤어? 양하 씨는?”“몰라. 양하는 무책임한 녀석이라고. 아, 빨리 와. 여울이 울고 있어. 여름이 이모만 보고 싶다고 난리야.”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여울이 여름의 딸도 아닌데 당장 달려올까 싶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여름은 즉답했다.“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고 하준은 고개 숙여 여울을 바라보았다.‘자기 딸도 아닌데 이렇게나 마음을 써주는구나.’----한편 여름은 전화를 끊자 바로 서인천에게 말했다.“미안해요.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지금 바로 가봐야할 것 같아요.”“모셔다 드리겠습니다.”서인천이 일어났다.“괜찮아요. 차를 가져왔으니 제가 운전하고 가면 돼요.”바로 영화관을 빠져 나온 여름은 차에 타자마자 최양하에게 전화했다.“여울이가 왜 하준 씨에게 가 있어요? 애가 다쳤다는데 알고 있어요? 양하 씨, 여울이가 친딸은 아니라도 조카잖아요? 좀 잘 봐주시면 안 돼요?”“다쳤대요?”최양하가 기함을 했다.“저는 억울합니다. 꼬마 아가씨가 한사코 형님네 집에 가서 자겠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더러 밤에 놀러간다며 자길 형님에게 맡겨 달라고… 저라도 이렇게 무책임한 아빠 연기하는 게 쉬운 줄 아십니까?”“……”여울은 골치가 아팠다.“얘가 대체 무슨 짓이람?”“여울이 말로는 나쁜 이모를 좀 혼내 주겠다던데….”여름은 이마를 문질렀다.“알겠어요. 미안해요. 내가 괜히 오해했군요. 지금 하준 씨가 애를 데리고 우리 집 앞에 와 있대요. 지금 가는 길이에요.”“가만 보니 여울이가 솜씨가 보통이 아닌가 보네요. 오밤중에 형님을 형수 집 앞으로 데리고 가다니. 아무래도 형수님이랑 형님이 재결합하기를 바라나 봐요.”최양하가 웃으며 놀
하준은 지적을 당하자 여름을 노려보았다.“잘도 그런 소리를 하는군. 당신이 그렇게 야단치지 않았다면 애가 휴대전화를 깰 일도 없지. 당신이 먼저 시작한 거잖아?”“최하준 씨, 저렇게 어린애는 시력이 다 발달하지 않아서 함부로 디지털 기기 화면 보여주면 안 좋다는 거 몰라요?여름이 매우 엄한 얼굴로 여울 앞으로 다가갔다.“내 말이 맞지?”하준은 여울이 무서워서 울 줄 알았다. 그래서 막 여름에게 한 소리 하려는데 여울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휴대 전화 놀지 않을게요.”“만호가 보고 싶으면 텔레비전을 켜서 보는 거예요. 이제 휴대 전화는 절대로 안 돼.”여름의 말투가 다시 부드러워졌다.여울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여름을 꼭 안았다.여름도 포옹을 되돌려 주었다. 여울은 작은 얼굴을 여름의 품에 폭 묻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는 모녀로 보일 터였다.하준은 그 모습을 보며 매우 놀랐다.막 생각에 잠기려는데 여름이 하준을 돌아보았다.“애한테 핸드폰을 줘서 문제를 해결하지 말아요. 중독된다고. 애를 평생 망칠 셈이야? 이번에 휴대 전화 떨어트린 걸 교훈으로 삼으라고.”“……”‘그러니까 난 핸드폰 망가진 걸로도 모자라서 망할 누명까지 써야 하는 구먼.’하준은 부루퉁했다.“당신이 일찍 왔으면 나도 여울이 심심할까 봐 휴대 전화 따위 들려주지도 않았을 거라고. 통화하고 나서 40분이나 기다렸다고. 그렇게 서인천이랑 헤어지기가 싫었나?”“네! 당신이 갑자기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면 둘이 같이 돌아오려고 했는데! 사람 그냥 돌려보내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알아요?”여름이 열쇠를 꺼내며 하준을 흘겨보았다.“어? 안지 얼마나 된다고 남자를 집으로 들이고 말이야. 강여름, 너무 쉽잖아.”하준은 완전히 미칠 것 같았다. 여름과 서인천이 한 침대에 있는 장면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살의가 올라올 지경이었다.여울은 하준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보고 여름의 뒤로 숨었다.“큰아빠 무서워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