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너! 하준 오빠한테서 당장 떨어져. 오빠는 네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이지솔이 도도한 태도로 공격했다.‘요것 봐라?’여름이 재미있다는 말투로 되물었다.“못 하겠다면? 우리 하준 씨는 너를 그쪽을 동생으로만 생각하던데?”“그런 거 상관없어. 하준 오빠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집안이 어느 정도 비슷해야 성사가 되지 이건 뭐 말이 안 되게 기울잖아. 뭐, 설사 네가 오빠 옆에 있다 해도. 잠깐 놀다 금방 싫증 낼걸? 오빠네 집에서 가만둘 거 같아? 너 같은 거 뼈도 못 추리고 쫓겨날 거다!”이지솔은 악담을 퍼붓고는 거들먹거리며 휙 가버렸다.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자신에게는 혼인증명서가 있지 않은가.연회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윤서와 만났다.“이게 바로 그거야. 내가 하준 씨 술 먹일 사람들을 좀 배치해 두긴 했는데, 만약 안 먹히면 이걸 써. 잊지 마. 두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나올 거야.”윤서가 여름의 손에 물건을 슬쩍 쥐여 주었다.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지 않았다.“혹시… 부작용이 생기는 건 아니지?”“안심해. 몸에 해로운 거 아니야. 절대로.”‘더 많이 더 오래 흥분하게 만들 뿐이지.’그러나 윤서는 뒷말을 속으로만 담아두고 입 밖에 내지 않았다.“나중에 알게 되면 화낼 텐데?”여름은 계속 꺼림칙했다. “화가 왜 나? 아침에 눈 떴는데 너처럼 예쁜 여자가 옆에 누워있으면 왜 화가 나겠어? 아마 더 좋아할걸? 최하준도 남자야!”윤서의 말에 마음이 동요했다.잠시 후, 최하준이 돌아왔다.그러나 연회장 입구에서 낯선 남자에게 붙잡혔다.“최하준 선생님이시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한번 뵙고 싶었어요. 제가 한 잔 드려도 될까요?”“많이 드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전부터 이런 사람들이 많아서 최대한 예의를 갖추면서 얼른 자리를 피했다. “제 손이 부끄럽네요. 딱 한 잔만 받아주세요.”“비키시죠!” 최하준이 참다 못해 뿌리치고 지나쳤다. 눈빛은
망설이던 최하준이 고개를 숙이고 여름이 내민 음식을 받아먹었다.“아~아.”“…….”여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손이 없나? 자꾸 나한테 먹여 달래?’하지만 찔리는 짓을 한 터라 한 접시를 착실하게 다 먹였다.배가 좀 찼는지 최하준이 몸을 일으켰다.“갑시다.”“지금 바로 가요?”‘저기요, 8시도 안 됐다고! 지금 이대로 가면 곧바로 날 의심할 텐데.’“네, 지금. 가기 싫으면 남아서 밤새고 노시던가.”어차피 할아버지께 여자친구를 보여주러 온 형식적인 자리이니 더 있을 필요가 없다. 더 있어 봤자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고집 부리는 것을 보고 여름은 할 수 없이 최하준을 따라 연회장을 나섰다.차에 탄 후 여름은 할아버지가 주셨던 돈 봉투를 건넸다.“넣어둬요.” 최하준이 무덤덤하게 말했다.“이렇게 많은 돈을… 제가 어떻게 받아요?”“그게 무슨 큰돈이라고….”최하준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저 미소, 내가 돈 없다고 조롱하는 거겠지?’여름은 고개를 떨궜다. 곧 있으면 몰아칠 사나운 비바람을 기다리며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컴피티움에 돌아오니 여름은 그제야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말없이 최하준의 상태를 살폈다. 불안했다.‘미안해요, 쭌. 앞으로 잘할게요. 오늘만 날 좀 봐줘요.’******최하준은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서재에서 화상회의를 시작했다.회의 중간에 갑자기 몸이 더워졌다. 자켓을 벗어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변호사님, 괜찮습니까? 얼굴이 빨간데요….”회의에 참석한 직원이 최하준을 걱정해 주었다.“몸이 안 좋네요. 내일 다시 진행하시죠. 최영도 쪽은 바짝 주시해 주시고요.”컴퓨터를 껐다. 침실로 돌아와 차가운 물로 다시 샤워를 했지만 직감적으로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왜 이러지? 오늘 저녁에 내가 먹은 게 없는데?’잠깐, 아까 강여름이 준 음식을 먹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리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이런.... 강여름이 감히?’‘탕!’하고 최하준이 욕실문을 걷어차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최하준의 얼굴이 잠시 악마처럼 보였다.‘이러지 말 걸!’“이런 더러운 짓을! 당신은 내 믿음을 짓밟았어!”가슴 안쪽에서 뜨거운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강여름이 왜 이런 짓을 했을까. 최하준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다른 사람 술수에 놀아나는 것이었다.여름을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났지만, 막상 부드러운 피부에 손이 닿자 이성이 사라졌다. 최하준은 더 이상 억제할 수 없는 욕구에 여름을 침대 위로 던졌다.얇은 옷이 찢어져 버렸다. 최하준은 마지막 자제력을 짜내어 벌떡 일어났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샤워실로 뛰어들었다. 다시 샤워기를 틀었다.쏟아지는 물소리가 여름의 가슴을 힘껏 난도질했다.여름은 찢어진 옷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면서 멍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내가 싫어? 손도 대기 싫은 거야? 하긴, 원래 날 싫어했지.’잘못된 선택이었다.잘못되어도 너무 잘못되었다. ‘도대체 내가 뭐에 씌워서 그랬지?’******40분이 지났는데도 샤워실 물소리가 멈추지 않았다.혹시 사고가 나지 않았나 용기를 내어 샤워실 문을 두드렸다.“괜찮아요? 미안해요. 내가 좀 도와….”“입 다물어요. 죽어도 당신 같은 인간에게 닿고 싶지 않습니다.”욕실 문이 벌컥 열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젖은 최하준이 여름을 노려보았다. 욕망을 누르는 남자의 눈빛이 붉었다.여름은 경악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 얼마나 먹인 겁니까!”극심한 분노로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최하준이 여름을 샤워실 안으로 거칠게 끌고 들어갔다. 찬물을 세게 틀고 샤워기 아래에 여름을 집어 넣었다.차가운 물이 온몸에 쏟아지자 덜덜 떨렸다.숨이 막힐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제서야 최하준이 여름을 놓아주었다. 최하준은 욕을 하며 문을 걷어찼다. 되는 대로 옷을 집어 걸치더니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여름은 허겁지겁 욕실을 빠져나가 쫓아갔지만 잡을 수 없었다.******밤 12시.이지훈은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왔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 수
이지훈이 눈썹을 올리며 은근하게 물었다.“그렇게 오래 같이 살았는데 진짜 감정이 하나도 안 생겼다고?“감정?”최하준이 비웃었다.“너는 주방에 일해 주시는 분하고도 감정이 생기더냐? 예전 같으면 참아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이대로 못 참아.”이지훈이 에라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아니면, 뭔가 방법을 강구해 보든지. 밖을 못나오게 한다거나.”최하준은 입가가 굳어지면서 과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안 그래도 호시탐탐 날 덮칠 기회만 노리는데 그랬다가는 아주 미쳐버릴걸. 문이란 문은 다 부숴버릴지도 모르지.”“…….”이지훈은 그 장면을 잠시 상상하더니 부르르 몸을 떨었다.“나 좀 가만 내버려 두라고. 물이나 좀 줘.”최하준은 다시 입이 마르는 것 같았다.******새벽 4시, 수액을 다 맞고 나자 겨우 열이 내려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집에 들어서자 여름이 소파에서 자는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푹 잠이 들어 있었다.‘혼자서 자면 무서워서 악몽을 꾸느니 어쩌니 하더니 혼자서 잘만 자네.전부 거짓말이었던 거야.‘나는 오밤중에 병원에 가게 만들고 저는 집에서 편히 잤단 말이지.’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소파로 다가갔다.“좀 일어나 보시죠.”여름이 흠칫 놀라며 일어나 앉았다. 최하준이 사신 같은 목소리로 맞은편 소파에서 말하는 모습을 보았다.여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언제 왔어요? 이, 이제 좀 괜찮아요?”“덕분에 밤새 병원에서 치료 받고 왔습니다.”어젯밤 상황이 다시 떠오르니 더욱 모욕적으로 느껴졌다.“내 평생 당신하고 혼인신고 한 게 가장 후회스럽습니다. 그 집에 갇혀있을 때도 구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싶군요.”여름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화가 날 만했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앞으로는 주의할게요.”“앞으로?”최하준이 여름의 어깨를 움켜쥐었다.“우리 사이에 ‘앞으로’가 있을 것 같습니까? 보기만 해도 역겹습니다. 더러워요!”최하준의 말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여름의 눈시울이
“오버 하지 마.”여름은 쓴웃음을 지으며 윤서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윤서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미안해.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봐.”“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었어. 게다가 난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잖아. 결혼해서 선우 오빠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닐까?”여름은 이제 막막해졌다.윤서가 한숨을 쉬었다.“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쩌겠어? 이제 와서 다 때려치우고 이혼이라도 하게?”여름은 아무 말이 없었다.‘그래, 이혼해야 하는 거 아닐까?’전화를 끊고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최하준은 나가고 안방 문이 열려있었다.여름은 한숨을 쉬었다. 그 일이 벌어지고 나서부터 최하준은 완전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여름을 답답하게 했다.대충 라면을 먹고 났는데 도재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양 대표네 별장 투시도 나왔니?”“다 됐어요.”“그렇구나. 그러면 네가 도면이랑 투시도 가지고 진영그룹으로 한 번 방문해 줄래? 양 대표가 쪼더라고.”“그럴게요.”서둘러야 한다. 급히 옷을 입으면서 네비에 진영그룹을 검색했다.******진영그룹 사무실은 동성 그린생태지구에 있었다. 주변에는 높은 건물들이 즐비했다.프런트로 가서 방문 이유를 설명하자 곧장 올라가라는 안내를 받았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옆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내렸다. 뒷모습을 보니 한선우의 어머니 양수영이였다.양수영은 여름을 보지 못한 채 백을 들고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이때 ‘띵’하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여름은 정신을 차리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 이상했다.지난번에는 W팰리스에서 한선우를 만났는데 이번에는 양수영을 만나다니 너무 공교로웠다.‘잠깐, 여기 대표도 양 씨인데 혹시 오빠네 어머님과 친척 아닌가?’전에 대단한 친척이 있다고 한선우가 자랑한 적도 있었다.머리에 찌르는 듯한 두통이 왔다. 갑자기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여름은 회장실로 들어갔다.양유진이 손님과
혹시나 젊은 혈기에 충동적으로 별장 설계를 포기한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양유진은 여름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그렇군요. 그럼 도면 설명 좀 드릴게요.”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답에 여름은 마음을 놓고 대화를 이어갔다.양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이쪽 전문이 아니라서 자세한 도면은 봐도 잘 모른다.여름이 책상 맞은편에서 설명을 했기 때문에 도면이 거꾸로 보여서 좀 불편해 보였다.양유진이 자신의 오른편을 가리키며 말했다.“이쪽으로 오시죠.”허락을 얻자 여름은 책상을 돌아 양유진의 오른쪽으로 가서 허리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도면을 짚으며 말했다.“책장이 부족할까 봐 이쪽에 한 줄을 이렇게….”양유진은 여름의 손가락을 보았다. 가늘고 길었다. 자신에게 바짝 붙지도 않고 어깨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도 머리에서 나는 은은한 샴푸 냄새가 느껴졌다.매장에서 늘 맡는 진한 향수 냄새가 아니라 이렇게 자연스러운 향기를 풍기는 냄새를 맡으니 어쩐지 심장이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양유진은 가만히 곁에 있는 여름을 곁눈질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머리에 하이넥 니트를 입은 여름은 맑은 눈동자에 또렷한 이목구비가 눈에 띄었다.조금 초췌해 보였지만 그게 오히려 더 보호 본능을 부추겼다.“어떻게, 제 제안이 마음에 드시나요?”여름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좋네요. 아주 좋습니다.”양유진은 조금 당황했다. 사실 지금까지 여름이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여름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이 감기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그 후로도 여름은 20분 정도 도면을 설명했다. 고객들은 언제나 조금씩 수정을 요청하기 마련이다. 디자이너의 제안을 고객이 100% 수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양유진은 단박에 OK를 했다.“좋네요. 더 수정할 것 없으면 내일부터 바로 시공 들어가면 되겠네요.”“그렇게 빨리요? 길일 안 받으시고요?”“전 그런 거 안 믿습니다. 빨리
여름은 깜짝 놀라서 웃었다.“아유, 아녜요. 그냥 뚱냥이에요..”“에이, 전에 내가 자기 남편한테 물어보니까 임신했다고 자기 입으로 그러던데.”“제 남편이오?’‘설마하니 최하준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최하준이 가끔 지오랑 산책을 나가긴 하지만 지오는 임신하진 않았는데….’“다른 분이겠죠.”“아닌데. 내가 노안이 오기는 했어도 자기네 남편 생긴 게 오죽 눈에 띄어야 말이지. 이 동네에서 그렇게 잘생긴 사람 보기가 쉽나, 어디? 어지간한 연예인 저리 가라 할 미모더구먼. 그리고 우리 애가 그 집 애랑 얼마나 잘 논다고.”주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네 고양이를 들어 보였다. 지오가 친한 친구를 보더니 바로 반응을 보였다.‘이게 대게 무슨 일이람? 지오가 임신이라니? 아니, 잠깐! 지오가 암컷이었어?이제껏 수컷인 줄 알았는데?이름도 남자애 같지 않나?’“아유, 저 배를 봐요. 딱 봐도 임신했지. 남편이 말도 안 해줬어?”“그게….”‘와…진짜!’“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고양이를 처음 키워봐서 잘 몰라요.”여름은 동네 주민과 뻘쭘하게 인사를 나누고 후다닥 택시를 타고 동물병원으로 갔다.의사가 초음파를 보더니, 안경을 추어 올렸다.“곧 출산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요?”“…….”머릿속이 어지러웠다.‘머시라?임신했다는 것도 충격적인데 곧 출산이라고?’“예정일은 열흘 정도 남았어요.”의사가 말했다.“그동안 주의해서 돌봐주세요. 그래도 털이 반질반질한 게 보니까 영양 상태랑 체력은 좋은 것 같네요. 자연 분만은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저기 혹시, 고양이도 임신하면 입덧 하나요?”“그런 애들도 있죠. 특히 초기에는 식욕 부진이 올 수도 있고요.”“…….”병원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른다.머릿속에는 ‘속았다!’는 생각뿐이었다.출산일부터 거꾸로 계산해 보니 지난번에 토해서 병원에 데려갔을 때 최하준은 분명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터였다.지오는 여름이 소시지 같은 걸 먹여서 토한 게 아니라 입덧을 한 것이었다.그러니까 그동
“모르는 척하지 말아요! 동네 사람한테 다 들었어요. 동물병원까지 가서 물어봤다고요. 곧 출산이래요. 내가 뭘 잘못 먹여서 토한 게 아니라 입덧이었대요!”말을 하다 보니 점점 더 화가 났다.“최하준 씨, 사람 바보 취급하니까 재미있던가요?”최하준은 좀 난감해졌다.“강여름 씨, 이건 짚고 넘어가죠. 내 집에 먼저 들어와 살겠다고 한 건 그쪽입니다. 나는 그냥 강여름 씨가 들어와서 나한테 잘 보일 기회를 실컷 준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날 속인 것에 감사하라는 이 말인가요, 지금?”여름이 이를 갈았다.“들어올 때 엄청 기뻐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목숨도 두 번이나 구해주지 않았습니까? 나 아니었으면 여기서 이러고 한가하게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을 텐데요.”최하준은 인상을 찡그렸다.‘애초에 갈 곳이 없대서 좋은 마음에 재워줬더니 정말이지 앞뒤 분간을 못 하는군.그런데 이런 나에게 그따위 유치한 수단을 써?그리고서 감히 날 지적하는 거야?’“……”여름은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왔다.‘생명의 은인? 그래, 좋지, 그렇다고 이렇게 날 함부로 대해도 되나?뭐, 나도 좋은 뜻으로 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건 아니니까.할 말은 없지.’여름이 아무 말도 못하자 하준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강여름 씨, 반성하셔야겠습니다. 이게 지금 무슨 태도입니까? 우리 지오가 임신해서 손길이 필요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당신 같은 사람을 우리집에 재워줄 필요가 없어요.”여름은 그 자리를 어떻게 벗어났는지 기억조차 안 났다. 너무 화가 나서 아무나 잡고 한 판 붙고 싶었다.최하준과 함께 살고 나서부터 내면의 폭력성이 느는 것 같았다.이제 와서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을까?이렇게 험난할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최하준을 유혹하지 않았을 것이다.******아무리 마음이 힘들어도 일은 해야 한다.8시 반, 여름은 차를 몰아 W팰리스로 갔다.지난번에 최하준이 들어갔던 별장을 지나는데 보니 강여경과 이민수가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저건 최하준의 별장인데, 정말로 강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