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FTT에서는 중역회의가 열리고 있었다.최양하는 고개를 숙이고 휴대 전화를 보고 있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보다가 ‘오호!’하는 소리를 말았다.조용했던 회의실에 최양하의 목소리가 퍼지자 회의실은 완전 침묵에 빠졌다. 모두가 최양하를 쳐다보았다.하준이 의자에 깊숙이 기대면서 손에 들고 있던 펜을 툭 던졌다.“최 전무는 뭘 보느라고 그렇게 몰입했는지 다같이 한 번 들어 볼까?”최양하가 코를 문질렀다.“정말 듣고 싶으실까요?”중역들은 숨도 쉬지 못했다.‘최 전무가 지금 들이 받는 건가? 회장님의 화난 목소리가 안 들리나?’“회사 홈페이지 보고 있는데 지금 폭발 중이네요.”최양하가 씩 웃었다.“회장님하고 관련된 일로요.”누군가가 웃었다.“회장님과 백지안 씨의 결혼을 축하하나 보네요.”“요즘 회사로 축전이 많이 오고 있죠. 아무래도 경제계의 대 스타시다 보니까, 아하하!”하준은 내내 무표정으로 있었다. 중역들의 말에는 동의했지만 그런 문제에는 관심이 딱히 없었다.“그래서, 그 일이 지금 회사 미팅 중에 휴대 전화 가지고 놀 일이라는 건가?”“아니죠. 다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지금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건, 전처 쪽 일인데요.”최양하가 어깨를 으쓱했다.“아직 모르시나 본데, 서경주 회장이 강여름을 후계자로 정했습니다. 네티즌들이 강여름의 신분을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어요. 그리고 숨겨져 있던 강여름의 신분을 들추고 있는데, 이게 글쎄! 알고 보니 헤이즐의 수석 디자인 이사라지 뭡니까? 헤이즐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했어요.”“헤이즐이라고?”중역들이 놀랐다.“정말입니까? 전세계 최고의 건축 기업 아닙니까? 그쪽 디자이너들은 전세계 일류라고 하던데. 수석 디자인 이사라면 완전 초특급 인재 아닙니까!”“정말이라니까요. 못 믿겠으면 직접들 가서 보십시오.”최양하가 의미심장하게 하준을 흘끗 쳐다보았다.“회장님, 다 알면서도 우리한테는 말씀 안 하셨던 겁니까?”“……”‘어쩐지 헤이즐 같은 곳에서 선뜻 강여름과 협력을 한다 싶
여름은 초청장을 들고 빙글빙글 돌렸다.“이런 파티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담?”“정재계 명사들이 모두 모이는 파티입니다. 대표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그 시아라는 가수의 무대도 준비되어 있다고 하더군요.”여름이 안 갈까 봐 엄 실장이 부추기기 시작했다.“별일 없으시면 가서 좀 괴롭혀 주시지 그러십니까?”“……”잠시 후 여름이 웃었다.“엄 실장, 아주 사람 긁을 줄 아네요? 시아는 이주혁의 여자친구인데 나한테 무슨 일이 날까 봐 걱정은 안 되나요?”엄 실장이 웃었다.“대표님이 이제 서경주 회장의 후계자이자 헤이즐의 수석 디자인 이사라는 점이 밝혀진데다 화진의 주가가 몇 배로 뛰어서 다들 대표님과 안면을 트고 싶어 합니다. 주민 그룹이 아무리 세도 이제는 대표님에게 댈 수가 없습니다.”“그도 그러네요. 마침 이주혁에게 받을 빚도 있으니까.”여름이 초청장을 탁 하고 닫았다.‘흥, 지난 번에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모욕적으로 병원에서 내쫓았겠다? 이제 그 빚을 어떻게 받는지 두고 보시지.’----밤.컨벤션 센터의 입구.슈퍼카들이 줄줄이 들어왔다.검은 고급 세단에서 내린 여름이 길게 깔린 레드카펫 위로 걸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어 여름의 곡선을 우아하게 드러냈다. 거기에 여름의 미모와 브라운 컬이 찰랑이면서 완전히 동화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단정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웠다.모든 좋은 형용사를 모두 강여름에게 사용해도 모자랄 판이었다.오늘 파티를 위해 정성들여 차려 입은 온 재계의 미녀들이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여름이 들어오고 얼마 안 돼서 시아가 차에서 내려 이주혁과 걸어 들어 왔지만 시선을 모두 강여름에게 빼앗겨 시아를 눈 여겨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시아는 강여름이 원망스러워서 어쩔 줄 몰았다. 소진그룹도 국내에서 손꼽는 그룹이라 원래는 오늘밤 파티에 참석해 한껏 뽐낼 생각이었다. 입고 있는 드레스도 이주혁에게 한참을 졸라서 일류 디자이너에게 맞춘 것이었는데 이목이 온통 강여름에게 집중되어
여름은 웃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이거 아주 재미있겠는걸.3년 만에 아는 얼굴들이 이렇게 모두 한자리에 모이다니….’양유진은 여유롭게 여름에게 잔을 들어 보였다. 여름은 곧 양유진이 보낸 톡을 받았다.-오늘 당신의 목적을 아니까 방해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조용히 당신을 지켜보고 있겠습니다.여름의 마음이 따뜻해졌다.하얀 슈트를 입은 최양하는 우아하게 다가오더니 와인을 한 잔 건넸다.“원래 안 오려다가 강여름 씨 온다는 말을 듣고 바로 왔죠. 오늘 아주 성대하네요.”“그러네요. 전 마음에 들어요.”여름이 와인 한 모금을 홀짝 마시더니 매혹적인 웃음을 띠었다.최양하의 눈이 반짝이더니 유감스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최하준과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데려왔을 텐데. 지금 내가 강여름 씨를 따라다니면 가족에게 욕 먹겠죠. 형제가 한 여자를 두고 다투는 꼴은 못 볼 테니.”“날 안 따라다녀서 다행이네요. 제 스트레스가 극심할 뻔했잖아요?”“왜죠?”“지금 제 추종자가 너무 많아서요.”여름이 끊임없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남자들을 둘러보았다.“보세요, 저 많은 남자들이 호시탐탐 말 붙일 기회만 노리고 있다니까요.”“어쩔 수 없죠. 이렇게 예쁘고 실력있고, 배경 좋은 사람응ㄹ 누가 싫어하겠어요?”최양하가 여름에게 손을 뻗었다.“저랑 한 곡 추시겠어요? 오늘 밤 제일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체면 한 번 세워 주시죠?”“좋아요.”여름이 최양하의 큰 손바닥에 자기 손을 올려놓았다.두 사람은 함께 무도회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동화 속 주인공 같은 두 사람의 등장으로 연회장은 순식간에 부러움과 찬탄으로 가득했다. 막상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춤을 즐겼다.“오늘 뭐 하러 왔습니까? 한 번 깽판 놓으러 온 거예요?”여름이 최양하를 흘겨 보았다.“소진그룹 파티인데 깽판 같은 걸 치면 쓰나요? 노래나 한 곡 부르러 왔어요.”“노래를 한다고요?”최양하가 작게 기침을 했다.“오늘 시아 무대가
심장에 한기가 들며 절로 하준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던지 백지안이 ‘쓰읍~’하는 소리와 함께 나지막이 말했다.“준, 아파….”“아, 미안.”하준이 미안한 얼굴로 얼른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댄스홀 한가운데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원래는 백지안과 하준의 결혼 이슈가 가장 주목을 받을 때였으나 여름이 불쑥 튀어나와 이슈몰이를 할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는 사람들이 백지안과 여름을 비교하니 백지안이 아무리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저어 봤자 여름처럼 이슈의 중심이 되지는 못했다.이제 겨우 하준의 옆 자리를 꿰어 찼는데 여름이 튀어나서 모든 언론의 카메라를 다 가져가 버린 것이다.더 짜증나는 일은 지금 하준의 눈에서 보이는 질투의 시선이었다.“준, 어머님 저쪽에 계시네? 우리 가서 인사드릴까?”백지안이 부드럽게 주의를 환기시켰다.“그래.”가족이라고는 해도 공공장소에서 드러나 보이는 예의를 차리지 않을 수 없었따.두 사람은 함께 최란에게 다가갔다. 최란은 어느 아이 지긋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지인이 놀리듯 말했다.“자네 며느리랑 아들 왔네.”“어머님, 안녕하세요?”백지안이 두 어른을 향해 인사했다.“아이고, 예의 바르기도….”지인은 최란의 식구가 다가오자 다른 사람과 할 이야기가 있다며 자리를 피해주었다.최란은 덤덤하게 백지안을 흘긋 보았을 뿐이다. 최근 본가에 갔을 때 두 노인네가 툭하면 잃어버린 강여름 뱃속에 있던 쌍둥이를 자꾸 언급하니 백지안이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다.백지안만 아니었으면 진작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예전에는 그렇게 강여름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해서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는 남자에게 들러붙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끼어들어와 아내는 유산까지 시키는 백지안의 못된 짓거리를 보고나니 그렇게 윤리적인 인간이라는 생각도 안 들었다. 백지안은 자신을 본체만체하는 최란을 보니 위축이 되었다.하준은 그런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지안이가 어
여름은 이미 최양하와 한 곡을 마쳤다. 곧 훤칠하고 능력 있는 서리 제철 2세가 댄스 신청을 했다.손에 저도 모르게 꽉 힘이 들어갔다.최란은 한숨을 쉬었다.“사람 앞 일이라는 건 정말 모르는 거구나. 안 그러니? 오늘 여기서 사람들은 뒤에서 양하 이야기를 쑥덕거리지 않더라. 다들 네 얘길 하지. 어쩌자고 저런 애를 두고 백지안 같은 애를 만나냐고….걔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니? 백윤택은 재벌가에서는 다들 무시하고, 네가 지탱해주는 게 아니면 아무도 영하와는 손잡고 싶어하지도 않아.”“그만 하시죠.”하준은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은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더욱 불편해졌다.“지안이가 제 병을 고쳐줬잖습니까? 어렸을 때 병원 입원했을 때도 지안이가 격려해주지 않았더라면 전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도 않아요.”“여름이도 널 잘 보살펴 주고 격려해주지 않았었니? 그때 여름이가 아니었으면 나야 말로 네 손에 죽을 뻔 했었다.”최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그런 일이 있었습니까?”최란은 어이가 없었다.“백지안이가 치료해줬다는 네 상태가 지금 그 지경인 거니? 뭔 치료를 했길래 여름이가 네게 해줬던 좋은 일은 그렇게 싹 다 잊었다니?”최란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하준은 정신이 멍해졌다. 저도 모르게 옛일을 다시 자세히 떠올려 보려고 했더니 갑자기 두통이 극심해졌다.하준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다가 시선 끝에 저만치에 있는 추동현이 들어왔다. 추동현과 추성호가 신나게 떠드는 모습을 보다가 하준이 냉랭하게 말했다.“추동현 화백 보시죠. 입으로는 아니라면서 사실은 추신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지? 정말로 추 화백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최란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더니 안색이 나빠졌다.바로 추동현에게 다가갔다.“동현 씨, 이리 좀 와 보세요.”최란이 한참이나 기다리고 났을 때야 추동현이 느른하게 웃으며 다가왔다.“무슨 일 있어요?”최란이 추동현을 바라보았다. 점점 더 추동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추신하고 거리 두시라고 했잖아
“너 보고 싶어서 그러지. 최란이 너랑 비교가 되나?”추동현이 그 사람의 허리를 감더니 뜨겁게 키스했다.“아저씨, 나 사람 없는 데 봐 놨는데, 거기 가서 놀래요?”그쪽에서 애교를 떨며 말했다.“어디, 가볼까?”추동현이 여전히 허리에 팔을 감고 뒤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걸어가면서 내내 입을 맞추고 있었다.두 사람이 막 자리를 뜨자 여름이 휴대 전화를 들고 향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손에 든 휴대 전화는 아직까지 영상을 찍고 있었다.막 따라가려는데 손 하나가 불쑥 나와 여름의 휴대 전화를 낚아챘다.돌아보니 하준이 휴대 전화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이런 걸 찍다니 부끄럽지도 않나?”잠시 후 하준은 불쾌함이 가득한 얼굴로 여름을 노려보았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 양아버지의 바람 현장을 발견하는 바람에 기분이 안 좋으리라고 생각했지 이런 문제를 들고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뭐가 부끄러운데? 아주 핫하고 좋던데. 쉰 넘은 분이 한창 젊은 아가씨 허리에 손도 척척 올리시고. 얼마나 대단해?”여름이 눈을 가늘게 떴다.“잊어버려.”하준은 괜히 울컥했다.“내가 삭제 버튼 하나 누르면 자료가 삭제되는 컴퓨터야?”여름은 다시 휴대 전화를 쏙 뺏더니 가려고 했다.하준이 와락 여름을 잡더니 날카로운 눈을 했다.“영상은 나한테 보내.”여름이 하준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달빛 아래 여름의 손이 하얗게 빛났다. 손목에는 다이아 팔찌를 차고 있었다. 심플하지만 눈처럼 하얀 피부를 더욱 고급스럽게 빛내 보였다.하준의 심장이 두근했다.“뭔데?”“저작권료는 주셔야지.”여름이 당연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추동현 화백이 누군데, FTT의 데릴사위, 추신의 맏아들인데 이런 영상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하준은 얼음처럼 차가운 논으로 여름을 쳐다봤다.“칼만 안 들었지 완전히 강도잖아?”“최하준 회장님, 저도 알 건 다 안다고요. 유명 연예인 추문 뉴스거리만 해도 수천만 원 짜리인데, 저작권료를 안 주시겠다면 그만 두시
하준이 이맛살을 찌푸렸다.“오 씨냐니, 무슨 소리야?”“오지랖 씨냐고. 뭔 오지랖이 이렇게 넒어?”여름이 대꾸했다.하준은 화가 났다.“당신은 내 전처이고 양하는 내 동생이 아닌가? 그런데 둘이 같이 어울리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당신은 안 부끄러운지 몰라도 나는 부끄럽다고.”“최양하 씨를 동생 취급하기는 하나? 회사에서도 형에게 함부로 당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최양하 씨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데.”여름이 언짢은 듯 말을 이었다.“난 당신보다 더 제멋대로 하는 이기적인 인간은 본 적이 없어.”“그러니까 당신이 최양하를 그렇게 아낀다는 말이군.”하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말투에는 한기가 배어있었다.“내 목숨의 은인인데 최양하 씨를 위해서 한 마디쯤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여름이 웃었다.“게다가 우리 둘 다 비혼 상태인데, 만나면 안 될 이유가 뭐 있어? 양하 씨는 인물도 훤하고 좋잖아.”“뭐라고?”하준이 여름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우리 집안에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어.”“집안에서 용납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집안에서 제대로 존중받지도 못하는데 나한테 오면 얼마나 좋아. 관리해야 할 회사 볼륨도 커져서 난 마침 손이 필요한 참이거든. 날 제수씨라고 불러야 할 지도 모른다고.”여름이 하준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던졌다.“인생은 원래 서프라이즈로 가득한 거잖아.”“……”하준의 옆 이마에서 아플 정도로 힘줄이 불뚝거렸다. 도저히 여름과는 대화가 안 될 것 같았다. 여름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심장에 과부하가 오는 느낌이었다.“강여름, 당신을 내가 부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둘이 사람 망신시키는 꼴은 못 봐.”“뭐, 나도 그냥 해본 소리야. 어쨌거나 날 따라다니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최양하는 그냥 날 추종하는 남자들 무리의 하나일 뿐이라고. 난 아직 사람을 고르지도 않았어.”여름은 그 말을 남기더니 바람처럼 떠나버렸다.하준은 주먹으로 나무를 쳤다.‘이혼을 했는데도 왜 이렇게 난 강여름에게 휘둘리는
최양하가 씩 웃더니 은행 어플 화면을 보여주었다.“저녁에 서리그룹 아들이랑 가야 한다고 나랑 같이 야식 못 먹어 미안하다면서 돈을 이렇게 보내더라고.”“……”순간 하준은 바로 분기탱천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젠장, 나한테 받아간 돈을 바로 최양하에게 나누어 주다니.졸지에 내가 호구가 됐잖아?아, 그리고 뭐? 서인천이랑 데이트를 나간다고?’하준은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시아가 한 곡을 마치고 천천히 일어서더니 피아노 뒤에서 걸어 나와 허리 숙여 인사했다.연회장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시아는 뿌듯함에 으쓱한 기분이 되었다.‘이 사람들에게 그간 난 그냥 일개 연예인일 뿐이라 함께 섞이고 싶지 않은 존재였는지 몰라도 오늘 밤 드디어 모두에게 내가 얼마나 실력자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어!’이때 여름이 천천히 시아를 향해 걸어왔다.악기가 놓인 곳에 시아와 여름 두 사람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우아한 강여름에게 떨어지자 시아의 얼굴에 걸려있던 미소가 가셨다.“여름아, 자리를 잘못 찾은 것 같은데, 여기는 무대야.”시아가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부드럽게 말했다.“잘못 온 거 아니야. 네 연주 끝난 거 아니니? 나도 주최측이랑 얘기했거든. 한 곡 쳐볼까 싶어서.”여름이 다이아가 박힌 드레스 자락을 펼치며 피아노 앞으로 가서 앉았다.시아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고개를 돌렸다.“오늘 파티 참석자들은 그냥 보통 사람들이 아니야. 유명한 대중음악 전문가인 강노명 선생님도 계시다고. 네가 함부로 나서서 장난처럼 피아노를 쳐볼 수 있는 데가 아니라고. 피아노는 집에 가서 너 혼자 치도록 해.”“내가 망신당할까 봐 걱정해 주는 거니?”여름이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예전 기억에 의하면 음악 분야에서 여름의 천부적인 재능은 대단했었다. 둘이 함께 피아노 레슨을 받던 당시 여름은 뭘 쳐도 단숨에 배워서 선생님에게 늘 칭찬을 받고는 했었다.나중에는 여름이 시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