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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화

작가: 남천
최양하가 씩 웃더니 은행 어플 화면을 보여주었다.

“저녁에 서리그룹 아들이랑 가야 한다고 나랑 같이 야식 못 먹어 미안하다면서 돈을 이렇게 보내더라고.”

“……”

순간 하준은 바로 분기탱천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젠장, 나한테 받아간 돈을 바로 최양하에게 나누어 주다니.

졸지에 내가 호구가 됐잖아?

아, 그리고 뭐? 서인천이랑 데이트를 나간다고?’

하준은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

시아가 한 곡을 마치고 천천히 일어서더니 피아노 뒤에서 걸어 나와 허리 숙여 인사했다.

연회장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시아는 뿌듯함에 으쓱한 기분이 되었다.

‘이 사람들에게 그간 난 그냥 일개 연예인일 뿐이라 함께 섞이고 싶지 않은 존재였는지 몰라도 오늘 밤 드디어 모두에게 내가 얼마나 실력자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어!’

이때 여름이 천천히 시아를 향해 걸어왔다.

악기가 놓인 곳에 시아와 여름 두 사람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우아한 강여름에게 떨어지자 시아의 얼굴에 걸려있던 미소가 가셨다.

“여름아, 자리를 잘못 찾은 것 같은데, 여기는 무대야.”

시아가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잘못 온 거 아니야. 네 연주 끝난 거 아니니? 나도 주최측이랑 얘기했거든. 한 곡 쳐볼까 싶어서.”

여름이 다이아가 박힌 드레스 자락을 펼치며 피아노 앞으로 가서 앉았다.

시아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고개를 돌렸다.

“오늘 파티 참석자들은 그냥 보통 사람들이 아니야. 유명한 대중음악 전문가인 강노명 선생님도 계시다고. 네가 함부로 나서서 장난처럼 피아노를 쳐볼 수 있는 데가 아니라고. 피아노는 집에 가서 너 혼자 치도록 해.”

“내가 망신당할까 봐 걱정해 주는 거니?”

여름이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예전 기억에 의하면 음악 분야에서 여름의 천부적인 재능은 대단했었다. 둘이 함께 피아노 레슨을 받던 당시 여름은 뭘 쳐도 단숨에 배워서 선생님에게 늘 칭찬을 받고는 했었다.

나중에는 여름이 시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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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회장 내에서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가운데 여름은 담담히 웃었다. 손가락으로 ‘딱!’하는 소리를 튕기자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마이크를 조정하더니 듣기 좋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새로 쓴 곡입니다. 오늘 첫 연주니 예쁘게 들어주세요.”“미친 거 아냐? 자작곡이래.”“질투가 나서 덤빈다고 쳐도 상대를 보고 덤벼야지. 시아야 말로 이쪽 전문가 아니야?”“요즘은 돈 좀 있다 하는 집안에서 자식들을 오냐오냐 키워놔서 제 깜냥도 모르고 음악을 모욕하는 케이스가 비일비재하다니까.”소곤소곤 뒷담화를 주고 받는 사이에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졌다.“여기서 잠시 멈춰 봐.파란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난 멀리로 날아갈 거야.더 먼 곳으로 날아가겠어.눈물은 가슴에 떨어져.이 사랑은 끝나지 않을 거야.우리 함께 꿈을 향해 날아가자.이건 끝이 아니야. 새로운 시작.……점점 장내가 조용해지더니 진지하게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경쾌하면서도 우수를 지닌 노랫소리가 모두를 꿈을 향해 달리던 스무 살 그 시절의 느낌으로 데려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조금은 슬픈 듯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었다.하준은 무대 위에서 빛나는 여인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몸에서 온통 빛을 뿜어내는 듯했다.여름은 항상 그랬었따. 매번 하준에게 신선한 놀라움을 선사했다.어쩐지 그렇게 자신 있는 태도로 무대에 오른다 싶었더니 피아노를 치는 손의 우아함이며 음색이 모두 시아를 압도했다.무대에 오른 여름이 톡톡히 망신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백지안은 빠져든 듯한 하준의 시선에 미쳐버릴 뻔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3년 전 강여름은 그렇게나 하찮은 인간이었는데.3년 만에 온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괄목상대할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이야!’여름의 곁에 서 있던 시아는 백짓장 같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분야에서 시아보다 여름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이건 예전에도 여름이가 제일 잘 하던 작풍이잖아?’곧 한 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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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설마 그 정도려고?”“뭘 잘 모르네. 아까 연주한 곡은 들으면 들을수록 빨려들 그런 곳이라고. 게다가 강 대표 음색은 워낙 맑고 독특한 데가 피아노 연주 실력은 전문 피아니스트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어. 시아 정도 실력하고는 급이 달라.”“시아가 그런 사람일 줄은 정말 몰랐네.”“뭐 다 그렇지, 뭐. 이 바닥에서는 이익 앞에서 의리를 져버리는 경우는 흔하다고. 몇 년 전에는 강여름 대표는 그저 동성에서도 그렇게 이름난 인물은 아니었나 보던데. 벨레스에서 정식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도 아니고. 그러니 시아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테니 충분히 그런 짓을 했을 법도 하지.”“어쩐지.”“……”다들 이제는 멸시의 눈으로 시아를 바라보았다.이슈의 한가운데 있는 시아는 얼굴이 백짓장이 되었다. 이주혁과 사귀고 나서는 누구도 시아를 무시한 적이 없었다.시아는 구세주를 찾듯 이주혁 곁으로 다가갔다.“주혁 씨, 난….”“그 곡이 진짜로 강여름이 써줬던 거였어?”이주혁이 뭔가를 찾듯 날카로운 시선으로 시아를 바라보았다.“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강여름 손에 초고가 있다면 아무리 댓글을 조작하고 알바를 푼다고 해도 여론을 우리가 완전히 장악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시아는 이주혁의 말투에서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행간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불쌍한 척하며 울먹였다.“그때는 우리가 좋은 친구였거든. 여름이는 자기는 가업을 이어야 해서 가수가 될 생각이 없다면서 가수가 되고 싶다는 내 꿈을 이루어 주겠다며 나에게 곡을 주었거든. 난 정말… 여름이가 이제 와서 저렇게 따지고 들 줄 몰랐어. 아마도 애초에 오해를 잘 풀지 않아서 점점 더 날 미워하게 된 것 같아.”다가오던 백지안이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너한테 준 거라면 이제는 저작권을 되찾을 가능성은 낮으니 네 명예에 먹칠하겠다는 뜻이네.”송영식도 맞장구를 쳤다.“강여름이 우리를 그렇게 눈엣가시처럼 여기더니 이제 와서 하나하나씩 잡아서 복수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미친 거 아냐?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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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1시, 시아의 소속사에서는 긴급 회의를 소집하고 대외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했다.-어느 새 연예계에 발을 들인지 5년입니다. 처음에 발표했던 ‘꿈꾸던 천국’으로 저는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그간 저는 마음 속에 늘 한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예전 저의 좋은 친구 강여름입니다. ‘꿈꾸던 천국’ 앨범은 여름이가 저를 위해 만들어 준 곡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정말 살면서 이렇게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여름이가 어렸을 때는 이름이 드러나길 바라지 않았지만 이제는 대중에게 이름이 많이 알려진 상태입니다. 저는 이제 더는 여름이의 재능을 감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이 그 앨범으로 받았던 상을 여름이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사실 이 상은 여름이가 받아야 마땅한 것이니까요. 여름아, 고마워. 사랑해!입장문 끝에는 여름과 시아가 학교에서 찍었던 사진 몇 장이 첨부되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찬란하게 웃고 있었다.네티즌 여론이 폭발했다.-강여름하고 시아가 친구였구나. 세상에 예쁜 애 옆에 예쁜 애라니… 완전 그사세-예쁘기만 한가, 시아를 위해서 곡을 써줬다잖아요. 마음마저 너무 예쁘다.-강여름의 음악적 재능에 감탄하는 사람 없음? 대체 강여름은 못 하는 게 뭐임? 정말 개존경!-시아 착하다. 자기 친구의 재능을 이렇게 드러내 주다니-강여름 같은 친구 있으면 나라도 자랑함“……”여름은 일어나서 댓글을 읽더니 웃었다.‘가요계 여왕의 소속사답네. 대처가 꽤나 빠르군.’여름은 전혀 서두르는 기색 없이 휴대 전화를 들어 이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지훈 형, 부탁드렸던 일은 어떻게 됐어요?”“그럼. 내가 누군데! 이제는 내가 동성에서 최고라고. 내가 눈알만 살짝 부라려도 JJ그룹이 꼼짝도 못 해. 진가은 정도는 내 앞에서 설설….”“그거 넘겨주실 수 있나요?”여름이 이지훈의 장광설을 끊으며 물었다.“그럼. 역시 네가 똑똑하다. 시아는 예전에 자기가 강여은과 진가은에게 갖가지 약점을 흘리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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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쭌은 자신을 더 이상 두 살짜리 아기로 생각하지 않아. 쭌의 실제 나이는 나보다도 많다고 얘기해 줬거든. 요즘은 선생님들 모셔서 가르치는데 정말 빨리 배워. 앞으로 한 달 정도면 전에 배웠던 지식 수준은 따라잡을 것 같아.”“하지만… 그러면 뭐해? 너희들 사이에 있었던 애정 같은 건 다 잊었을 텐데.”윤서가 망설이면서 말했다.“널 잊어 버린 사람이 다시 널 사랑하게 만드는 게벌써 몇 번 째냐?”여름은 할 말을 잃었다. 다시 슬픈 기분이 되었다.‘그러네. 대체 이게 몇 번 째냐고….처음에 동성에서 만났을 때, 내가 죽을 힘을 다해서 최하준을 따라다닌 바람에 결국 최하준의 관심을 받는 데 성공했지.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와서도 온갖 수단을 써서 백지안 옆에 있던 최하준이 날 사랑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었고.그래, 매번 성공했어. 그래서 피곤했냐 하면, 그래. 정말 피곤했지.두 사람이 서로를 향하는 사랑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어.’“나도 모르겠어.”여름이 망연자실해서 말을 이었다.“전에는 기억에 착란을 일으켰던 거고 이번에는 완전히 어린애나 다름 없게 되어 버렸으니까. 애정 부분도 완전히 백지가 되어 버렸어. 사실 날 사랑하게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인생은 길잖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 다음에 또 이러지 않을까? 그 다음은? 내가 매번 이렇게 주동적으로 나서고 인내할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라고 무쇠로 만들어진 사람도 아니고, 나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네 애정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뭐라고 한 적이 없지만, 너 이러는 거 보니까 나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난… 최하준은 자기 자신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 혹시나 이번에 다시 고백 받거든 이번에는 쉽게 넘어가지 마.”윤서가 말을 이었다.“본인이야 그러고 싹 다 까먹어도 별 문제 없겠지. 하지만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그렇게 몇 번이고 잊어버린다면 그게 뭐 누구의 계략에 빠진 거든 뭐든 막 때려주고 싶을 것 같다. 아내랑 애가 있는

  •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1698화

    하마터면 윤서의 입술이 송영식의 코에 닿을 뻔했다. 순식간에 호흡이 엉키고 얼굴은 빨개졌다.“왜 이렇게 들이대?”“어떻게 사람이 말 한마디를 곱게 안 하냐?”송영식은 속상했다. 그런데 발그레해진 윤서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요즘 윤서의 배가 점점 크게 부풀어 올랐다. 얼굴도 동그라니 뺨이 포동포동했다. 워낙 잘 먹여 놔서 피부도 촉촉해서 저도 모르게 한번 꼬집어 주고 싶었다.“좋은 말은 할 줄 알지만 당신한테는 안 쓸 거야.”윤서가 코웃음을 쳤다.“여름이가 장보러 간다니까 우린 좀 천천히 가자.”“마침 잘 됐네. 나도 올라가서 뭣 좀 해야 하거든.”송영식이 묘하게 웃더니 신이 나서 뛰어 올라갔다.송영식의 뒷모습을 보며 윤서는 어리둥절했다.*****1시간 뒤, 송영식이 차를 몰고 하준의 집으로 향했다.송영식의 집에서 하준은 집까지는 멀지 않아서 30분이면 닿았다.윤서는 하준의 집에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집을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여기 너무 큰 거 아니야? 너희 집에 대니까 우리 집 너무 초라하다.”송영식이 반박했다.“그집이 어디가 초라해?”“그러게. 그런 좋은 집을 두고.”여름이 웃으며 답했다.“같이 한 바퀴 돌까? 그러면서 과일도 좀 따고.”“그래.”윤서가 송영식을 돌아보았다.“따라오지 말고 하준 씨한테나 가 봐요.”“누가 따라간대? 자기가 무슨 인기 연예인인 줄 아나?”송영식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흥, 앞으로는 절대로 나 따라다니지 말라고!”윤서가 싸늘하게 웃었다.송영식의 얼굴이 굳어졌다.“누가 따라다니고 싶어서 따라다니는 줄 아나? 워낙 덤벙대니가 아기 다칠까 봐 그러는 거지.”“고오맙네요. 백지안 때문에 밀치지 않아서. 내 아기는 누구보다 건강할 예정이거든요.”윤서가 비꼬았다.“대체 언제적 얘기를 아직까지…. 됐다. 내가 당신이랑 무슨 말을 하냐? 하준이한테나 가 봐야지.”송영식이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너희 둘… 안

  •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1697화

    여름은 할 말을 잃었다. ‘아까부터 그거 때문에 의기소침한 거였어?’“그래. 완전히 탄복했지.”여름이 끄덕였다. 감탄한 것을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차진욱은 흑과 백을 넘나드는 사람이었지만, 여울이를 구해주고 나서부터는 내심 존경하는 마음이 커졌다.강신희에 대해서도 차진욱은 남편으로서 아껴주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하도록 방임하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차진욱이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여 처음부터 하준을 상대했다면 여름과 하준은 진작에 끝장이 났을 것이다.돈이 넘치는 사람은 쓸데없는 못된 버릇도 있기 마련인데 차진욱에게는 그런 결점도 딱히 없었다.강신희에 대해서도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아플 때도 결코 곁을 떠나지 않았다.여름은 강신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런 사랑과 혼인 관계는 너무나 부러웠다.자신은 결혼 생활도 실패한 것 같았다. 하준은 차진욱처럼 아량이 넓고 포용력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백지안 같은 불여우에게 속아서 이용당하는 지경이었다.재결합한 뒤에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둘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전에….여름은 슬픈 마음으로 하준을 돌아 보았다. 그런데 하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우울한 모습이었다.“걱정하지 마. 나도 그런 사람이 될 거야. 여름이가 감탄할 수 있는 그런 사람.”하준이 진지하게 주먹을 쥐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FTT를 되찾아 올 거야.”여름이 빙긋 웃었다.“난 차 회장님의 패기 넘치는 스타일에 감탄한 게 아니야. 쭌은 아직 잘 모르네.”“그럼 뭔데. 말해 봐봐. 나도 배우게.”하준이 다급히 물었다.“배워서 뭐 하게?”여름이 하준을 흘겨 보았다.“혼인 관계에 대한 지조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포용력에 감탄한 거야. 그런 걸 쭌이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건데?”하준은 흠칫했다.혼인이니, 사랑하는 사람이니, 다 하준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하준은 마음이 괴로웠다. 어제 이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사실 하준은 핸드폰에서 여름과 자신의 셀카

  •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1696화

    “이게…”“그리고, 월급 받는 전문 경영인 주제에 이사회의 결정을 듣지 않고 우리에게 반항한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이 회사를 침탈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 밖에 없죠. 회사 중역은 죄다 당신이 심어놓은 사람이고 아무나 와서 기고 만장하단 말이야.”한마디 한마디 뼈가 시렸다. 맹원규의 안면 근육이 부르르 떨렸다. 하준은 그렇게 싸늘한 여름의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마저도 너무 매력이 넘쳤다.맹원규가 싸늘하게 웃었다.“강여름 씨는 내 모가지를 쳐내고 내가 고용한 임원까지 싹 솎아내고 싶으신가 보군.”“그러면, 당신은 그만 두고 나갈 건가요?”여름이 비꼬았다.“당신 같은 사람은 철면피처럼 여기 어떻게든 붙어있을 걸.”맹원규는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절대로 안 비킬 줄 알았지.”여름이 말을 이었다.“하지만 내일부터는 최하준 씨가 회사에 와서 회장직을 수행할 겁니다. 당신은 직위 해제예요. 이사회의 절대적인 행사권 앞에서 당신은 일개 직원일 뿐이에요. 싫다고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그렇게 말하더니 여름은 하준을 데리고 나갔다.막 문을 나서는데 안에서 뭔가를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여름이 하준에게 눈짓을 했다.하준은 바로 알아듣고 주먹을 쥐고 돌아섰다.두 사람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맹원규와 깨진 컵이 보였다.“어, 아주 잘나셨어?”하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일개 직원이 이사 앞에서 컵을 깨고 눈을 부릅뜨다니?”“아닙니다. 제가 실수로 컵을 떨어트렸습니다.”맹원규가 뱉었다.“왜요? 내 안면 근육이 멋대로 수축하는 것도 안 됩니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직원이 오너보다 기고만장한 꼴을 다 보고. 당장 나가시오.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하준은 냉엄하게 내뱉고는 여름을 데리고 나갔다.가면서 맹원규의 그 얼굴을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내일 맹원규가 꺼질까?”여름이 웃었다.“그렇게 쉽게 나가겠어?”“그런가…?”하준의 어깨가 쳐졌다.“안 나갈 거야. 배후에 양유진이 있을 테니까. 양유진이 놈에게

  •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1695화

    차진욱의 변호사가 나섰다.“미안하지만 강여경이 FTT를 구매하는데 사용한 자금은 모두 강신희 여사님의 계좌에서 나온 돈입니다. 계속해서 당신이 FTT 주식을 상속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법원에 주식의 동결을 신청할 수 밖에 없습니다.”“당신은 그럴 권리가 없어!”강태환이 다급히 외쳤다.“돈은 내 동생이 준 거라고. 신희를 불러와.”“강신희는 지금 병으로 입원 중이고, 나는 배우자로서 부부 공동의 자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차진욱이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그리고 난 당신들 셋이 사기범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마침 강여경의 시신이 아직 냉동 보관 중이지? 그러면 이참에 DNA를 검출해서 친자확인을 해보자고. 난 재산도 되찾고 당신들을 사기로 고소도 해야겠어. 천문학적인 금액을 사기쳤지. 아주 전세계 최고 사기액일 거야.”“헛소리! 우리는 사기 같은 거 치지 않았어!”강태환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뭐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사실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호흡이 가빠진 척하며 휠체어에 쓰러졌다.이사회를 개최했던 맹원규는 후다닥 일어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구급차 오고 있나? 회의실에 또 한 명이 기절했어. 같이 실어 보내지. 어서. 사람 죽게 생겼다고….”전화를 끊고 나가 회의실은 쥐 죽은 듯 고요해 졌다.맹원규가 차진욱을 보고 웃었다.“주식에 이렇게 큰 문제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회의는 취소하고 다음에 다시 논의하시죠. 아니면 두 분이 개인적으로 분쟁을 해결하시고 나서 다시 이야기 나누십시다.”차진욱의 날카로운 시선이 맹원규를 훑었다.“강여경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주고 당신을 불렀지? 그 돈도 내 아내의 자금이야.”맹원규의 얼굴이 굳어졌다.사실 강여경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주고 맹원규를 초빙한 것은 사실이었다.“내 아내의 자금을 날려가며 불러온 게 겨우 이따위 쓰레기라니?”차진욱은 경멸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제가 뭘 잘못한 거라도 있는지요?”맹원규가 깊

  •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1694화

    기다리지.”차진욱은 셔츠를 정리하고 다시 앉았다.강태환은 바들바들 떨었다. 기절했으면 싶었다. 이제 양유진이 실려나갔으니 혼자서 어떻게 차진욱을 감당하겠는가?차진욱이 손이라도 댄다면 자신도 양유진 꼴이 날 것은 불 보듯 뻔했다.피범벅이 된 양유진을 생각하니 두려워졌다.‘기절한 척할까? 그러면 맹원규가 회의를 취소하겠지?’그런 생각을 하는데 여름이 갑자기 다정하게 다가왔다.“왜 그러세요? 놀라서 기절할 것 같은 건 아니겠죠?”“……”“기절하시면 안 돼요.”여름이 다정하게 말했다.“아빠가 기절하면 강여경의 주식을 어떻게 상속받아요?”강태환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강여경의 주식?”차진욱이 결혼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큭큭 웃었다.“그게 당신 차지가 되겠나? 범죄자 따위가 말이야.”차진욱의 말에 회의실은 묘한 정적에 빠져들었다.강태환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난 강여경의 아버지요. 여경이가 죽었는데 자식이 없으니 우리나라 법에 따라 부모가 재산을 상속받는 거지.”“강여경의 부모인 건 확실하고?”차진욱이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았다.“얼마 전 동성에 갔을 때 분명 강여경의 부모는 따로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강여경의 친엄마는 내 아내 강신희라고 말이야.”강태환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그런가요? 내가 그런 소릴 했나? 어쨌든 법적으로는 걔가 내 딸이거든.”“그래?”차진욱이 옆에 있던 변호사에게 손짓했다.변호사가 바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건넸다.차진욱이 서류를 강태환에게 들이 밀었다.“그러면 잘 보시지. 소위 당신의 딸이 일전에 내 아내의 재산을 어마어마하게 썼거든. 당신네 나라 법에 따라 강여경이 쓴 돈은 우리 부부의 공동 재산이라서 내게도 그 돈을 추심할 권리가 있어. 강여경이 죽었으니 그러면 그 돈은 법적인 아버지에게서 돌려받아야겠군”“무, 무슨 근거로?”서류의 숫자를 본 강태환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평생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금액이었다.“거 참 우습구먼. 당신 딸이 죽어서 딸이 남긴 주식

  •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1693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와 아무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차진욱이 눈동자를 보자 양유진은 저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렸다.양유진은 자신이 차진욱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차진욱은 아들이 하나뿐이다. 그것도 강신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그러니 분명 매우 애지중지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양유진은 차진욱이 잔인함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양유진은 너무 아파서 입술에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이마에서는 땀이 송글송글 솟아났다. 고통에 가득 찬 눈에 독기가 서렸다.“계속해 보시지. 그 대가로 아들 시체를 받게 될 거야. 난 놈을 아무도 없는 곳에 숨겨뒀어. 누구도 찾을 수 없게.”“그러시겠지.”차진욱은 큭큭 웃으며 양유진을 놓아주었다. 위협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얼굴이었다.“난 이래서 가식적인 인간이랑 말을 섞기가 싫다고. 인질을 잡았으면 잡은 거지 왜 나랑 쇼를 하겠다는 건지?”양유진은 당황해서 비척비척 뒤로 물러났다. 부러진 손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차진욱! 당장 내게 사과해! 사과하지 않으면 아들놈을 죽여 버리겠어. 네놈은 이제 대가 끊기게 될 거다.”몸을 빼자마자 다시 차진욱을 협박하다니 너무나 양유진다웠다.맥퀸이 분노했다.“도련님을 다치게 했다가는 네 집안이 쑥대밭이 될 줄 알아!”“우리 집안이 차민욱 만큼 가치가 있지는 않지.”양유진은 화가 난 맥퀸을 보더니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차진욱,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면 내가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말을 마치기도 전에 차진욱은 양유진을 걷어차 날려버렸다.양유진은 바닥에 엎어졌다. 목구멍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차진욱이 다가가 양유진의 얼굴을 밟았다.“그래도 체면을 좀 차리게 해주려고 했더니 끝간 데를 모르고 까부는군.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잊어버렸나? 내 아들이 팔 다리 잃는 것쯤은 신경 안 쓴다고 했지? 살아만 있으면 된다. 잘 들어. 민우의 목숨은 네가 살수 있는 조건이다. 멋대로 날 협박할 생각은 버려. 난 협박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야.”양유진은 전혀

  • 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   1692화

    “난 사람으로서 못할 짓을 한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전세계의 낙후된 국가에 의료 환경을 제공하고자 애썼습니다. 하루하루 병에 침식되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고통을 아십니까?”여름은 구역질이 올라왔다.양유진의 연기는 그야말로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감이었다.자기 친조카도 살해할 정도로 잔인한 인간이 병으로 고통받는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니….“윽!”옆에서 듣던 하준이 먼저 반응했다.“구역질이 나는군. 당신네 약은 선진국에 팔자면 무시 당할 수준이니 제3세계 국가에 가서 돈을 버는 수밖에 없지. 가난한 나라지만 의약품은 필수니까. 당신은 죽음에 직면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거야. 말로는 성인군자인 것처럼 굴지만 사람들이 다 바보인줄 아나?”차진욱은 하준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그래. 내가 살면서 별별 사람을 다 만나 봤지만 너처럼 구역질 나는 인간은 참 드물지.”자존심이 센 양유진은 그런 모욕을 당하자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차진욱이 천천히 일어서 양유진에게 다가갔다.강태환은 양유진과 같이 있다가 차진욱의 거대한 몸이 다가오자 극도로 두려움을 느꼈다.그러나 휠체어에 앉아 있어 마음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저 손잡이만 꼭 잡을 뿐이었다.“왜 이러시죠? 여기는 FTT그룹이고, 우리나라입니다.”양유진이 낮은 소리로 경고했다.“내가 모른다더니? 이제는 내가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나 보군, 그래?”차진욱은 느릿하게 소매 단추를 풀었다. 소매를 걷으니 그을린 팔뚝이 드러났다. 탄탄한 주먹만 봐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누구 없나?”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이자 맹원규가 냅다 사람을 불렀다.그러나 맥퀸이 맹원규의 팔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테이블에 짓눌렀다.동시에 차진욱의 주먹이 양유진의 안면을 강타했다.180cm가 넘는 양유진의 몸이 그대로 벽까지 날아갔다. 입에서는 선혈이 흐르고 이빨도 몇 개가 부러졌다. 너무 아파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강태환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머…멈춰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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