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별장에 있니? 집에 포도가 다 익었길래 좀 땄거든. 포도도 좀 주고 싶고, 너도 좀 나아졌나 궁금한데, 나는 굳에 네 집에 가지는 않으마. 할미도 볼겸, 네가 좀 건너오련?”“포도 좋네요. 임산부가 포도를 먹으면 포도처럼 까맣고 커다란 눈을 가진 애가 태어나겠군요.”하준이 중얼거렸다.“뭐, 뭐라고?”장춘자가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생각하시는 그거 맞습니다. 제가 아빠가 될 거예요.”하준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목소리가 고양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쌍둥이라네요.”“얘, 그렇게 중요한 얘기를 왜 이제서 하니?”장춘자가 얼마나 소리를 지르는지 하준은 귀가 다 얼얼했다.‘쌍둥이라고? 세상에나….’하준의 집안에서는 아직 쌍둥이가 태어난 적이 없었다.옆에서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읽던 최대범도 다가앉으면서 전화기에 쫑긋 귀를 갖다 댔다.“제가 뭐 한다고 말씀드립니까? 우리 여름이를 예뻐하지도 않으시는데….”하준이 다리를 꼬았다.“눈에만 띄면 우리 여름이가 수모를 당할 텐데….”“……”장춘자가 핵심을 찔리자 당황했다.“그, 그건 예전 얘기 아니냐? 걔가 쌍둥이를 임신했으면 당연히 잘 해줘야지. 내가 지금 당장 가서….”“별장에 없습니다.”하준이 갑자기 우물쭈물거렸다.“병원에 있어요. 유산기가 조금 있어서요.”“뭐라고? 대체 무슨 일이라니? 내 새끼들은 다 무사한 게냐? 엄마라는 사람이 좀 조심하지 않고….”“아닙니다. 여름이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좀 잘못했습니다."하준이 슬쩍 에둘러서 답했다.장춘자가 전화를 끊고 40분도 안 돼서 최대범과 함께 병원에 나타났다.두 노인네가 나타나자 여름은 놀라서 펄쩍 뛰었다.장춘자와는 두 번 만나봤고, 최대범은 한 번 만나봤는데 모두 다 좋은 인상을 남긴 적이 없었다.그런데 두 분이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고 들어오니 이상할 따름이었다.“할아버지, 할머니, 오셨어요…?”여름이 막 일어서려고 하자 최대범이 위엄 있게 말했다.“어어, 거 움직이지 마라. 우리 같은
‘방을 따로 쓰다니, 말도 안 돼! 하루도 못 참아!’여름은 설명해 드릴까 하다가 할머니 말씀을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고개를 끄덕였다.“저는 본가로 들어가고 싶어요. 할머니는 자식도 여럿 낳으셨고 경험도 풍부하시니까 할머니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그럼, 그럼.”장춘자가 마음에 든다는 유감없이 드러냈다.이번에는 여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하준의 어두운 눈빛이 여름에게로 향했다.왜 이렇게 죽자 하고 자신을 피하면서 한사코 같이 안 자려고 하는지 여름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나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네가 찬성하거나 말거나.”최대범이 명령하듯 말했다.“우리 집안의 첫 쌍둥이니 무조건 몸조리 잘해서 순산해야 한다.”“……”‘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말씀드리지 않는 건데.’두 노인네가 떠나자 하준은 축 처져서 여름을 쳐다봤다.“일부러 그랬지?”“네.”여름이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받았다.“최하준 씨는 잊어버렸나 본데, 난 내가 어쩌다가 유산할 뻔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거든요. 지금 나에게는 당신 본가가 가장 안전한 곳인지도 몰라요. 최소한 당신 친구가 당신 병세 악화된 것이 내 탓이라며 날리는 경고 같은 건 안 들어도 될 거 아녜요?”하준의 눈에 짜증이 확 지나갔다.듣자마자 이주혁과 송영식이 또 여름을 찾아가서 한소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둘은 아무래도 내 수십 년 친구이다 보니 나에게 좋을 것이라고 한 짓이겠지.’“미안해요….”“미안할 것 없어요. 난 그럴만한 가치가 없으니까. 당신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건 나도 알겠어요. 하지만 당신 마음 속에는 나 말고 지다빈도 있는데 왜 당신의 병세가 나빠진 게 전부 내 탓인지 모르겠네. 심지어 그런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빠도 참아야 한다니까.”여름은 그런 말을 하고 나니 더는 최하준을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불현듯 이주혁이 여름을 협박하면서 자기 아버지의 치료를 들먹였던 일이 떠올라 더 울컥했다.******다음 날 아침.본가에서 직접 여름을
최민은 강여름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강여름 때문에 하준이가 날 FTT보험 사장 자리에서 날 끌어내리는 바람에 졸지에 내가 백수가 돼버렸다고.’그래서 최민은 여름을 생각하기만 해도 이가 갈렸다.“전 최하준의 아내인데, 왜요? 전 여기 오면 안 되나요, 이모님?”여름이 눈썹을 올리며 웃었다.“흥! 감히 날 이모님이라고 부르지도 마. 네까짓 게 FTT 사모님이라니 가당치도 않다.”“그러니까 말이야. 혼외자식 주제에. 우리는 인정 못하지.”최정도 아무렇지 않게 멸시의 말을 했다.“괜히 저를 건드리지 않으시는 게 좋을 텐데요.”여름은 타격감 없는 얼굴로 부드럽게 말했다.그 말을 듣자마자 최민이 웃었다.“내가 널 자극하면 또 어쩔 거고, 내가 널 한 대 치면 또 어쩔 거야?”그러면서 손을 쳐 드는데 최정이 최민의 손을 잡았다.“엄마, 저기 할머니….”최민이 멈칫하고 돌아보니 장춘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멀어서 이쪽 상황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을 가능성은 있었다.“할머니가 오시면 또 어쩔 거야? 어쨌든 할머니도 이딴 애 마음에 안 들어 하신다고.”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손을 쳐 드는데 여름이 최민의 손목을 딱 잡았다.최민이 힘을 주어 뿌리치자 여름이 비틀비틀 뒤로 물러났다.저만치 다가오던 장춘자는 깜짝 놀랐다.“아이고, 우리 아가. 괜찮으냐?”장춘자가 다급히 뛰어왔다.최민의 입꼬리가 의기양양하게 올라갔다.“엄마, 난 괜….”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장춘자가 긴장해서 여름을 부축했다. 귀한 보물이 뭐에라도 닿을세라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할머니, 지금….”최정은 기함해서 입이 쩍 벌어졌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할머니가 지금 강여름을 ‘우리 아가’라고 부르신 거야?’“전 괜찮아요.”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뭔가 불편해 보이는 여름이 배를 만지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여기 계속 살아도 아기를 무사히 낳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임신했어?”최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조용히 해
최정은 마음이 다급해졌다.“할머니, 엄마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고요….”“나하고 네 하래비는 이제 늙었다. 이젠 그냥 편하게 살고 싶다. 그렇게 악독한 마음은 내가 견디기가 힘들구나. 정아, 너도 엄마처럼 그런 마음이 들면 앞으로는 우리 집에 안 와도 된다.”장춘자는 정말이지 최민 모녀의 모진 마음에 넌덜머리가 나서 손을 휘휘 저었다.바로 집사를 불러서 두 모녀를 밖으로 모시라고 일렀다.“할머니, 제가 잘못했어요….”여름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네가 왜 사과를 하니? 내가 내 두 눈으로 다 봤다. 걔들이 먼저 너한테 달려들었잖니? 내가 널 뭐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그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시비를 가리지 못할 정도로 널 미워하지도 않는다.”장춘자가 대놓고 솔직하게 말했다.여름도 그런 말을 들었다고 마음이 괴롭지도 않았다. 되려 장춘자의 그런 솔직함에 안심이 됐다.“앞으로 누가 널 괴롭히거든 나한테 말하렴. 그리고 넌 이제 하준이 아내니까 우리 세상 떠나고 나면 이 집은 네가 관리하게 될 게다. 그러니 산책하면서 이 집에도 익숙해지렴.”여름은 흠칫 놀랐다.‘할머니가 날 받아주시는 건가?’하지만 지금 여름과 하준이 관계로는 그렇게 끝까지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장춘자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여름을 들여다보더니 심란한 듯 한숨을 쉬고는 집사와 함께 갔다.“에휴, 그런데 이제 FTT 안주인이 될 애 얼굴을 저 지경을 만들어 놔서….”집사가 끄덕였다.“그렇죠. 하지만 회장님께서 계속 실력 있는 성형외과의를 알아보고 있다고 합니다.”“그래, 애 얼굴을 좀 되돌려 놓을 수 있으면 참 좋겠구먼.”******밤 9시 반.여름이 윤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부탁한 일은 어떻게 됐어?”“걱정하지 마. 동성은 내 구역 아니냐? 교도소에 연락해서 머리카락 얻어내는 정도는 일도 아니라고.”윤서가 말을 이었다.“재촉해 놔서 이틀이면 결과 나올 거야.”“그래, 잘 부탁할게.”“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인사치레를 하냐? 적응 안 되게.
“걸어. 이 시간이면 할머니 전화기 꺼놓고 주무실 시간이거든.”하준이 의기양양하게 말하면서 여름을 와락 안았다. 왼손으로는 여름의 배를 문질렀다.“어디 보자. 오늘 우리 아기들은 얼마나 컸나?”“아니 이제 6~7주 된 아기들이 뭐 만져진다고.”여름은 어이가 없어서 하준을 밀어냈다.“가요. 난 잘 거야.”“아까 물어본 거 대답 안 해줬잖아.”하준이 눈빛을 빛내며 여름을 쳐다봤다.“누가 우리 아기들 이모가 돼 주냐고? 임윤서는 영 머리가 영리한 것 같지는 않으니 별로고, 백소영이면 더 동의할 수 없고….”“최하준 씨, 오밤중에 와서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예요?"여름은 화가 나서 베개를 집어 던졌다.“애는 내가 낳을 거니까 누가 이모가 되던 내 문제지. 한 번만 더 시끄럽게 굴면 다 그만둘 거야.”“뭐라고?”하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말이라고 아무 말이나 막 하면 안 되지. 아기가 아직 요만하다고 해도 우리 하는 말 다 들릴 텐데. 우리 아기들 기분이 어떻겠어?”여름은 임신으로 인해서 쉽게 흥분되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했다. 하준에게 지적질을 당하자 갑자기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누가 막 그렇게 자극하라고 했나? 당신이 나랑 다시 같이 살고 싶다면 이제 내 친구도 다 받아줘요.”하준은 여름이 울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알았어, 알았어. 울지마.”여름은 그치기는커녕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소리를 질렀다.“그리고, 당신이 뭔데 내 친구를 두고 마음에 드니 안 드니 그래? 송영식은 머리가 좋아? 내가 보기에는 무식하던데. 이주혁은 완전 여자만 밝히는 바람둥이고. 당신 친구도 괜찮은 사람 하나도 없던데.”“……”하준은 여름의 팩트 폭격에 놀라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원래라면 이렇게 여름이 자기 친구를 모욕하면 화가 나야 정상인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름을 보니 그저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울지 마. 울면 아기한테 안 좋아.”“울 거야. 누가 오밤중에 내 방에 들어와서 나랑 싸우래? 나도 밤에 가만히 잠
第 “어라? 윤서 언니?”상대 차의 창문이 열리더니 여우 같은 신아영의 얼굴이 나왔다. 임윤서를 만나서 사뭇 반갑다는 표정이었다.임윤서는 울컥했다.‘와 씨, 동성에 오자마자 제일 짜증 나는 얼굴을 만난단 말이야?’“언니 동성에는 어쩐 일이에요? 새 남친 생겼다면서요? 언니가 상원이 오빠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신아영은 눈썹을 여덟 팔 자로 만들면서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남이사! 넌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안 들리니? 너 내 차 받을 뻔했잖아!”임윤서는 이제 참을 수가 없었다.신아영이 억울하다는 듯 우물쭈물했다.“미안해요, 그게….”“내가 대신 사과할게.”보조석 문이 열리더니 윤상원이 나왔다. 그 위풍당당하던 윤상원은 이제 파리하고 힘이 없었다. 미간은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그런 꼴을 보니 임윤서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그러나 얼른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걱정의 말을 꿀꺽 눌러 삼켰다.이미 헤어졌으니 윤상원이 어디가 아프던 이제 임윤서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게다가 예전처럼 윤상원이 병이 나니 신아영이 곁에 붙어 있는 상황이 아닌가.“내가 너무 속이 안 좋아서 아영이가 급하게 자리를 찾느라고 그런 거야.”윤상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임윤서를 쳐다봤다. 하얀색 SUV를 끌고 옅은 화장을 한 임윤서는 너무나 근사했다.윤상원은 자신이 서울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내내 단 한 순간도 자신은 임윤서를 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임윤서와 함께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내내 우울하기까지 했다.전에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기회가 생기면 거절하지 않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이번에 속이 안 좋은 것도 어젯밤 너무 마셔서 위를 상했기 때문이었다.신아영은 윤상원이 내내 임윤서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 질투심에 불타올라 억지웃음을 지었다.“언니, 언니가 오빠랑 먼저 들어갈래? 전에는 늘 언니가….”‘늘 언니가…?’임윤서는 눈썹을 치켜세웠다.‘말 이상하게 하네?그래. 늘 내가 윤상원하고 같이 있었지. 그런데 나만
“임윤서! 글쎄 병원 유전자 감별 센터에 들어가더라. 어디 가서 누구 혼외자식이라도 임신한 거 아닌지 몰라?”“유전자 감별 센터?”저쪽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임윤서가 동성에 있어?”“그래, 왜 갑자기 여기 나타났는지 나도 이상하더라니까. 또 상원 오빠를 뺏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내가 그 꼴은 못 보….”“아영아, 나 갑자기 일이 생겨서 다음 얘기는 나중에 해야겠다.”전화를 끊고 나니 강여은은 아직도 따끔따끔한 두피가 떠올랐다. 강여름에게 머리를 잡아 뜯긴 자리가 아직도 욱신욱신했다.그러고 나니 가슴이 철렁해서 바로 미스터리의 인물에게 전화를 걸었다.“강여름의 친구인 임윤서가 갑자기 동성의 한 병원 유전자 감별 센터에 갔대요. 강여름이 나와 아버지의 친자 감별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요.”“내가 알아보지.”“최하준 쪽에서 내가 가짜 지다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날 죽이려고 할 거예요.”“걱정하지 마. 우리를 위해서 일해주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지.”----병원.임윤서가 금방 유전자 보고서를 받게 되었다. 위에 커다랗게 쓰인 ‘친자 확인’이라는 글씨를 보고 임윤서는 강여경의 조상님 무덤에라도 절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얼른 여름에게 전화를 걸었다.“우와, 정말 네 말이 맞았어. 지다빈하고 강태환 유전자 감식결과 둘이 친자로 확인됐어. 걔가 강여경이야.”여름은 이마를 짚었다. 정말 바라지 않던 결과였다.그러나 지다빈을 만나고 점점 심각해지는 병세와 매일 하준에게 따라주던 우유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그게 다 제대로 된 약이었을까?’그런 생각을 하니 몸에 한기가 들었다.“결과서 찍어서 보내줄게. 빨리 최하준한테 보여줘.”여름은 사진을 받자마자 하준의 서재로 들어갔다.요즘 하준은 거의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서재에서 일했다.여름이 서재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하준은 여름을 보더니 눈이 반짝했다. 최근 여름이 주동적으로 자신을 찾아온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나 보고 싶어서 왔어?”“왜 그래?”하준이
여름이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잘 생각해 봐요. 당신 친구들은 자꾸 내가 당신을 자극해서 당신 증상이 나빠졌다고 말하는데, 백지안이 죽었을 때도 정서적으로 크게 타격 입지 않았나요? 그때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이전에도 이렇게 기억력에 문제 있고 머리가 아팠던 적 있었어요? 왜 지다빈이 당신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기억력이 급속도로 나빠졌을까요?”하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확실히 최근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기억을 잃기 시작했다.“난 걔가 지다빈이라고100% 확신해요. 걔가 당신 주변에 나타난 이유가 뭘까? 당신이 평소 마시던 우유랑 약에 뭘 넣지는 않았을까? 이런 생각해본 적 있어요?”여름의 눈에 의혹이 가득했다.“그렇게 매일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데 전에는 호전이 됐었는데 요즘은 왜 하나도 안 들을까?”하준은 말문이 꽉 막혔다.드디어 여름의 말에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지금 당장 걔 잡아다가 강태환이랑 유전자 검사해 봐도 좋아요. 지다빈의 부모님은 살아 계신가요? 난 걔가 강여경이라는데 다 걸겠어요.”여름이 덧붙였다.“하지만 지금은 섣불리 움직이면 안 돼요. 걔를 데려간 사람이 걔를 당신 주변에 심어둔 거예요. 당신과 맞서려는 사람이 배후에 있는 거야.”“그래.”하준은 바로 상언에게 전화를 걸었다.“당장 가서 지다빈 잡아와. 24시간 내에 지다빈하고 지영수 친자 감별해 봐.”여름은 살짝 실망했다.결국 하준은 여름이 보여준 친자 검사 결과를 믿지 못하니 직접 해보아야 믿겠다는 말이 아니겠는가?어쨌거나 ‘그 지다빈’은 강여름이 성형한 가짜라는 점은 사실이니 여름은 상관없었다.----밤 12시.갑자기 상혁에게서 전화가 왔다.“회장님, 큰일입니다. 지다빈이 사망했습니다.”“어떻게 된 일이야?”하준이 벌떡 일어났다.“제가 사람을 시켜서 교외 별장에 데리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새벽에 침입자가 있어서 지키고 있던 사람이 지다빈을 먼저 구하려고 놈을 쫓았는데 돌아와 보니 두 사람이 기절해 있고 집에는 불이 붙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