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게 다 무슨 말씀이에요? 제가 쟁취해 내지 못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바로 쫓겨날 거예요. 최씨 집안에는 이제 저 하나 남는 건데요.”최양하가 비웃었다.“나도 양하가 제대로 FTT를 장악했으면 해요. 하준이는 멋대로 그런 애랑 결혼하질 않나, 지난번에 민이 해치려고 한 거 봐요. 정신적으로도 불안하고 점점 더 마음에 안 들어요.”최란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준을 낳지 않고 싶을 지경이었다.******점심을 먹고 나서.따스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왔다. 여름은 눈을 감고 푹 잠이 들어 있다가 누군가가 얼굴에 입 맞추는 느낌에 깨어났다.‘누구지?’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차가운 오데코롱의 익숙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아직 졸린 듯한 눈을 뜨니 한껏 클로즈업된 듯한 하준의 비현실적으로 잘 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깼어요? 게으름뱅이네. 두 시간이나 잤어요.”하준이 여름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 마치 한창 달달한 연애 중인 연인 같은 말투였다.여름은 잠시 동성에 와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가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하지만 동성에 있을 때도 이렇게 다정한 순간은 많지도 않았는데.’“언제 왔어요?”여름이 급히 일어나 앉았다. 마침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얼마 안 됐습니다. 1시간 정도? 덕분에 당신 코 고는 것까지 보고….”하준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거짓말! 난 코 안 곤다고요.”자신이 코 고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하준을 생각하니 어쩐지 강하게 부정하고 싶어졌다.“잠들었는데 본인이 코를 고는지 안 고는지 어떻게 압니까?”하준은 오랜만에 여름이 발칵 하는 모습을 보니 좋아서 더 놀렸다.“…뭐, 코 고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이제는 누구누구가 다시는 옆에서 같이 안 자겠네.”여름이 하준을 한번 흘겨봤다.“당신이 내 와이프인데 내가 당신이랑 안 자면 누구랑 잡니까?”하준이 씩 웃으며 여름에게 윙크를 해 보였다.“됐어요, 최하준 씨. 애진작에 이혼해 놓
”좋아요. 솔직하게 말하죠.”하준이 여름의 손을 잡아 턱 밑으로 가져갔다.“사실 서유인을 만났던 건, 당신하고 너무 닮아서였습니다. 동성에 간 이후로 나는 강여름을 마음에서 내려 놓아본 적이 없어요.”‘날 마음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다고…?’서울에 온 이후로 하준의 입에서 나온 말 중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말이었다.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졌다.여름도 처음 서유인을 만났을 때 자신과 조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하지만 최하준이 그것 때문에 서유인을 만났었다니 뜻밖인걸.어쨌든 최하준은 동성을 너무 갑자기 떠났어.날 믿어주지 않아서 너무 상처받았다고.’“날 속일 목적으로 접근했고, 당신이 날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면 그냥 당신과 닮은 사람과 결혼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당신과 배다른 자매였을 줄이야.”하준의 눈에 복잡한 심경이 비쳤다.“벨레스에서 강여름 씨를 보고 나니 더 이상은 서유인에게 아무런 마음도 들지 않았습니다.”“그러면서도 서유인이랑 별장에는 잘만 왔으면서. 아참, 지난번에는 할아버지 생신잔치에도 왔었지. 아주 옆에 서유인을 데리고 얼마나 거들먹거리고 왔었는지는 잊어버리셨나 봐.”그 일을 생각하니 여름은 부아가 치밀었다.“당신은 별 신경 안 썼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매번 모욕적이었다고요.”하준이 이상한 시선으로 여름을 쳐다봤다.“당신이 보고 싶어서 간 거 아닙니까? 내가 누구 생일 잔치 같은 데 다니는 사람인 줄 압니까? 당신이야말로, 이혼도 안 했는데 양유진을 약혼자라고 데리고 가서 부모님 만나고, 같은 테이블에서 애정 행각 벌이고 있는 두 사람 보는 내 기분은 생각이나 해 봤습니까?”“……”의기양양한 하준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그러는 당신은 내 앞에서 애정 행각 안 했어요?”“내가 벌이는 애정 행각을 신경 쓰기나 했습니까?"하준이 콧방귀를 끼며 물었다.“…난 별로!”여름이 시선을 피했다.하준은 화가 났지만, 여름의 그런 모습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
“잠깐만요….”여름이 갑자기 하준을 잡았다.“왜?”여름이 이렇게 사람을 오래 붙잡은 것은 오랜만이라 하준은 좋아서 놀리듯 웃음을 가득 띠고 물었다.“가니까 아쉽습니까?”여름이 입술을 깨문 채 하준의 왼쪽 소매를 젖혔다. 안에 감긴 붕대가 드러났다.‘정말… 다쳤잖아?’“그냥 조금 다쳤습니다.”하준의 얼굴에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스치고 지나가더니 바로 팔을 뺐다.“어쩌다 다쳤어요?”여름이 꼼짝도 않고 하준을 쳐다봤다. ‘별 거 아니면 왜 방금 살짝 부딪혔는데도 그렇게 아파서 몸을 떨지?’“나한테 관심을 가져주는 군요?”하준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즐거움을 띤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이렇게 날 아껴주다니?”“…흥!”여름은 짜증이 나서 화를 냈다.‘관심은 무슨…그냥 법적인 남편이니까 그런 거지.’하준은 다정하게 씩 웃더니 돌아서서 손을 씻으러 갔다.화장실로 들어간 하준의 얼굴은 바로 고통에 일그러졌다.겹겹이 싸인 붕대를 풀자 안에서 이제 막 딱지가 앉기 시작한 상처가 벌겋게 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보기에도 끔찍했다.하준은 밖에서 휴대폰 소리가 울릴 때까지 안에서 족히 6~7분은 앉아 있었다.“어머님이 전화하셨어요.”여름이 침대에 놓인 휴대폰을 보더니 말했다.하준은 여름의 코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건너편에서 최란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시간 되니? 우리 모자가 밥이나 같이 먹자.”“흥, 모자 관계 끊은 거 아닙니까? 직접 말씀하셨잖습니까?최란이 울컥했다.“최하준, 적당히 해야지. 어쨌든 내가 널 낳았잖니?”“그렇죠. 낳기만 하고 기르진 않으셨죠. 그렇지만 아~주 훌륭한 어머니십니다.”하준이 비아냥거렸다.“날 찾아서 뭘 하고 싶으신지 다 알고 있으니 안 만날 겁니다.”“얘가….”최란이 거세게 한숨을 내쉬었다.“좋다. 네가 동의하지 않겠다면 강여름을 찾아가지. 네 병력을 듣고도 걔가 무서워하지 않을까?”“……”하준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최하준, 사람은 약점이 제일 무서운 거다. 넌 이제 약점을
“하준이가 말을 안 한다면 저도 말하기는 곤란한데요.”이주혁이 우아하게 웃었다.“쓸데없는 생각 너무 하지 말아요. 하준이가 여름 씨를 사랑한다는 것만 알면 돼요.”‘이제 보니 다들 최하준이 날 사랑한다고 알고 있네.’여름은 천천히 눈을 내리 깔았다. 다만 왜인지 마음 속에 불안한 예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냥 누가 다치게 했나 싶어서 그래요. 나 때문에 그 집에서 하준 씨를….”“하준이는 그렇게 만만한 친구가 아닙니다. FTT에서도 하준이는 어쩌지 못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최하준에게 상처줄 수 있는 사람은 강여름 씨뿐이에요.”이주혁은 문까지 걸어가서 돌아보더니 웃었다.“이제 하준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걸 보니 용서할 준비도 된 것 같군요.”여름은 잠시 흠칫했다가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이주혁이 가볍게 웃었다.“잘 해주세요. 하준이 그 폭발하는 성질도 다 성장 환경이랑 상관이 있어요. 봐서 알겠지만 재벌가 사람들이라는 게 다들 이익만 따지고 되게 이기적이거든요. 하준이도 한때는 굉장히 안쓰러웠어요.”이주혁이 나가고 여름의 머릿속에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하준이도 한때는 굉장히 안쓰러웠어요.’그런 금수저가 안쓰러울 수도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그러나 하준의 본가를 떠올리고 모두에게서 고립되고 버려진 하준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그때 이진숙이 들어오셨다.“사모님, 저녁에 전복죽 어떠세요?”여름이 끄덕이다가 잠시 후 물었다.“삼 잔뜩 넣고 삼계탕도 좀 끓여주시겠어요?”이진숙이 의아해했다.“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지금 소화가 잘 안 된다고….”“… 그런 게 아니고요. 하준 씨랑 이모님 좀 드시라고요.”여름은 말을 마치더니 얼른 휴대폰을 들여다 보며 난처한 얼굴을 감추었다.이진숙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두 분이 정든 건 진작 알았지만. 이제 정말 잘 됐구나. 이제 사모님도 드디어 회장님을 배려하기 시작했어. 이제 점점 더 좋아졌으면 좋겠네.’“예, 삼계탕 준비할게요. 저녁에는 사모님이 준비하라고
여름은 얼른 전등을 껐다. 가뜩이나 망가진 얼굴까지 빨개져서 추하지 싶었다.“내가 언제….”“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던가.”하준이 여름에게 얼굴을 들이대고는 응큼하게 웃었다.“그럼 한 번 더 차보고요”여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다리를 들어 올렸다.하준이 잽싸게 여름의 다리를 붙들었다.“워워, 착하지, 우리 애기”닭살 돋는 멘트에 여름은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았다. ‘얼굴이 이 지경인데 정말 신경이 쓰이지도 않나?’여름은 진심으로 궁금했다.“이제 그만 해요. 나 잘래요.”“부부는 같이 자는 거예요.”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듯, 하준은 혼인관계증명서를 베개 옆에 두었다.여름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한밤중에 내 얼굴 보면 악몽 꿀까 봐 겁 안 나요?”“겁은 무슨, 다른 데가 안 변했으니 됐습니다.”하준은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여름은 곧 귀까지 빨개졌다.“진짜 제대로 혼나볼래요?”“당신이 어떤 모습이건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줘요.”하준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여름을 꼭 껴안았다. 진심을 느낀 여름의 마음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이 사람은 정말… 뭐지? 지금 내 모습이 이런데 정말 싫지 않다는 거야? 대단하네, 정말.’“이제 믿으려나? 계속 못 믿으면 행동으로 보여주지.”하준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여름을 바라보았다. 여름은 화들짝 몰라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요, 믿으니까 그만 해요.”“뽀뽀.”하준이 다가오더니 쪽 입을 맞췄다.순간, 여름의 마음이 요동쳤다.‘아니 정말.... 이 얼굴이 전혀 상관없다고?”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은 그 키스… 영원히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 하준의 말이 가식이 아니라는 걸 여름은 알 수 있었다.******사흘째 되던 날, 여름은 퇴원 후 곧바로 화신으로 갔다.보름만의 출근이라 긴급 회의부터 소집했다.여름의 모습을 본 임원들은 모두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여름도 자기 모습이 흉측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의
“상관없어요. 얼굴로 회사 경영하는 거 아니잖아요. 자, 이제 각 지역 프로젝트 진행 상황 보고해주시죠.”한 시간 후, 회의는 끝이 났다.대표이사실로 돌아온 여름의 눈에 책상 위에 놓인 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유인과 추성호가 보낸 초대장이었다. 내일 무진 인터내셔널호텔에서 약혼식을 한다는 내용이었다.‘서유인이 나한테 초대장을? 뭐 하자는 거지?’그때, 알 수 없는 발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내 초대장 봤어, 언니?”“언니 같은 소리 하네, 남의 남편 뺏으려고 안달 난 게 동생인가?”이제 혼인증명서까지 있겠다, 서유인 앞에서 움츠러들 이유가 없었다.“어이없어, 누가 누구 남편을 뺏어?”서유인은 발끈하더니, 심호흡을 한번 하고 말을 이었다.“됐고, 나도 이제 드디어 내 행복을 찾았어. 어쨌든 가족이니까. 동생 약혼식이니 참석할 거라 믿어.”“초대한 정성을 봐서 참석은 하지.”여름이 흔쾌히 온다고 하니 서유인은 잠시 당황했다.“완전히 환영이지. 아참, 얼굴 다쳤다며? 내일 하객들 안 놀라게 얼굴은 가리고 와. 그럼 내일 봐.”말을 마치더니 서유인은 키득거리며 전화를 끊었다.여름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속셈을 알 것 같았다.하지만, 여름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얼굴이 어떻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디, 진짜 혐오스러운 사람이 누군지 한번 보자고.’******퇴근 후, 차윤이 차로 데리러 왔다.“회장님께서 오늘 야근하셔서 제가 대신 모시러 왔습니다.”뒷좌석에 앉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차윤이 설명해주었다.그러고 보니, 하준이 회장직에서 쫓겨난 후에도 다른 일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여름은 아는 바가 없었다.“어느 회사에서 야근한다는 거죠?”차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말하기 싫으면 됐어요. 그냥 생각난 김에 물어본 것뿐이에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딘지 꺼림칙했다.병원에 입원해 있던 동안, 하준의 달달한 고백이 여
뉴빌가든으로 돌아온 여름은 샤워 후 노트북을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각 부서에서 지역별 매물의 판매 실적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잠시 자료를 보다가 어느새 무언가에 홀린 듯 인터넷으로 지안그룹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다.검색하던 여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직 5년이 되지 않은 회사인데 시장 가치가 놀라웠다. 게다가 지안그룹과 FTT에서 가장 수익이 큰 자회사는 모두 주력 상품이 전자제품이었다.물론, 업계에서 FTT의 규모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지안의 실적은 단연 돋보였다. FTT 시장을 무려 4분의 1이나 점유하고 있었다.5년 전, 하준은 이미 암암리에 이 모든 걸 다 계획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FTT에서 내쳐지게 될 걸 예측했던 걸까?’여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최하준이란 사람은 정말 가늠할 수가 없었다.“지안 그룹 공부 중입니까?”갑자기 문에서 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름은 깜짝 놀라 황급히 노트북을 닫고는 도깨비처럼 뒤에 나타난 남자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됐습니다, 다 봤어요. 차 실장이 말해주던가요?”하준이 몸을 책상에 기대며 말했다.“네.”여름은 하준이 차윤을 나무랄까 봐 서둘러 덧붙였다.“내가 물어봤어요….”“좋은 자세네, 이제 남편한테 관심도 가지고.”하준이 허리를 숙였다. 입술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하지만, 앞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검색하지 말고 나한테 물어봐요.”“…….”여름이 입술을 삐죽거렸다.하준이 그런 여름의 뺨을 쓰다듬었다.“지금 내가 FTT에 대적하려고 5년 전에 지안그룹을 설립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닙니까? ‘이 사람 정말 무서운 사람이구나’ 하면서….”“무슨, 그냥 보험 들어둔 거겠죠, 이해해요.”“당신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예전엔 FTT에서 제일 잘 나가던 자회사가 전자 쪽이 아니었어요. 처음엔 금융으로 시작했고 전자 쪽은 별 볼 일 없었지. 내가 회장직 맡은 후에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회사도 위기를 맞았고 그래서 전자 분야에 대대적으로 투자했
하준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준은 곧 웃으며 말했다.“회사에서 다들 상의해서 결정했습니다.”“그렇구나….”여름이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답했다.차라리 사실대로 말해줬다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준은 여름이 백지안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매번 이런 식이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려고 할 때마다 날 실망시켜.’“그 얘긴 그만하고… 이건 뭡니까?”하준이 봉투를 잡고 흔들었다.여름이 돌아와 책상에 올려둔 걸 본 모양이었다.“서유인이 약혼식에 초대했어요.”“나도 초대했던데.”하준이 가볍게 웃었다.“어지간히 자랑하고 싶은가 보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전 남친까지 불렀다고? 내일 아주 볼만하겠네.’“이건… 그냥 안 본 걸로 해요. 갈 필요 없어요.”하준은 초대장을 한쪽으로 던져버렸다.“당신은요?”여름이 하준을 쳐다보았다.“나는 추신그룹 사람들을 좀 만나려고.”하준의 눈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여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최근에 일어난 일들이 그 집안과 관계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응, 특히 요트 동영상 같은 건 최양하 혼자서는 벌일 수 없는 일이거든, 분명 추신에서 도왔을 겁니다.”하준이 여름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에 기분이 좋았다.“당신은 출근해요, 다른 건 나한테 맡기고.”“아뇨, 간다고 했어요. 나도 갈 거예요.”여름이 고개를 들었다, 결연한 눈빛이었다.“굳이….”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여름이 하준의 무릎에서 내려왔다. “내가 이런 얼굴로 그런 데 가면 웃음거리나 될까 봐 그래요? 아니면 나 때문에 당신이 망신당할까 봐?”“강여름….”하준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당신에게 나는 그런 사람입니까? 당신을 보호하고 싶으니까 가지 말라는 거지. 서유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여름이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당신은 앞으로 이런저런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게 될 거예요. 나더러 평생 숨어있으라고? 난 집에서 당신이 연회에 참석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