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잖아! 예전에 너 어땠어? 강여름, 넌 언제나 똑 부러지고 당당했었잖아. 근데 지금 널 보라고! 이 인간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으면 기가 팍 죽어서 다 죽어가고 있잖아!”윤서가 화나 나서 악을 썼다.“사실대로 말할게요. 여름이가 감옥에 있을 때 찾아가서 했던 말, 모두 거짓이에요. 소송 맡아 달라고 부탁하려고 내가 꾸며낸 얘기라고요. 여름이는 감옥에 있어서 아무 것도 몰랐어요. 면회도 안 돼서 얼굴도 못 보는 애가 뭘 알았겠어요?”여름은 당혹감에 이마를 문지르며 하준을 슬쩍 바라보았다. 하준의 얼굴이 어둡게 변하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여름은 하준의 앞을 가로막았다.“윤서가 날 위한다고 이러는 거에요. 얘랑은 상관 없으니까 제발 윤서는 건드리지 마세요.”“…….”자기가 윤서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까 싶어서 필사적으로 막는 여름을 보니 가슴이 울적하고 답답했다. ‘강여름 마음 속에 난 악마나 다름없겠지?’“이쪽으로 비켜 봐요. 우리 뭣 좀 먹읍시다.”“네?”“못 들었습니까? 배고프다고.”하준이 여름의 손을 잡아 끌고 의자에 앉았다.테이블에는 전부 자극적인 음식들이어서 하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먹을만한 음식은 없군요.”‘난 이런 음식은 먹으면 안 되다는 거 알았을 텐데.’“맞다, 이런 거 못 먹죠?”여름이 흠칫했다.“할 수 없죠. 당신이 좋아하니 따라서 먹어보죠.”하준이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보니 해물파전은 그나마 먹을 만 해 보였다. 푸르크에서 내내 잘 먹지 못해서인지 포장마차 파전 맛은 그야말로 기대 이상이었다.“해물파전 더 시키죠?”여름과 윤서는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 쳐다보았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이렇게 넘어간다고? 예전처럼 까다롭게 안 따지고?’여름은 하준에게 맵지 않은 메뉴로 몇 가지 더 주문을 했다. 그리고 윤서와는 새우를 먹기 시작했다.굵은 소금 위에 구운 새우는 맛이 기가 막혔다. 다만 껍질 벗기는 것이 힘들어서 귀찮았다.하준은 이런 요상하게 생긴 갑각류가 무슨 맛이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여름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영화 하나 보는데 상영관 하나를 전세 내다니 과연 FTT 최 회장 답네. 아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게 창피해서 그러나?’30분 후, 하준이 여름을 데리고 스카이필드 시네마에 나타나자 영화관 매니저가 친히 나와 두 사람을 VIP 커플석으로 안내했다.여름은 자신이 좋아하는 베이글남이 등장하는 액션물을 골랐다. 전에 윤서와 함께 보러 가자고 했던 영화였다.영화가 시작되자, 하준은 여름을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다. 시간이 좀 지나니 여름은 자세가 불편했지만 하준은 편안해 보였다. 하준의 핸드폰이 두 번 울렸다. 여름이 보니 한 번은 서유인, 또 한 번은 그의 할머니 장춘자였다.하준은 핸드폰을 무음 모드로 전환하더니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고개를 숙여 물었다.“이런 장르를 좋아합니까?”“그런대로요”사실 여름은 영화관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보는 그 기분을 좋아했다.“다음에 시간 될 때마다 자주 데려오죠.”하준이 손가락을 여름의 허리에 두고 살짝 눌렀다.“아직 아픕니까?”여름은 오늘 밤 자신을 원한다는 뜻인 줄 알고 순간 놀라 얼어붙었다.“최소 한 달은 더 있어야 해요.”하준이 그윽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나도 들어서 굳이 그렇게 말 안 해도 압니다. 류닥 말로는 오늘 아플 거라길래 묻는 겁니다.”“괜찮아요, 이제 안 아파요.”여름은 사실대로 말했다.하준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름을 무릎 위에 안고 부드럽게 입맞춤하며 부드럽게 말했다.“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네.”여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상처는 아물지 않는 법이다.영화를 다 보고 하준은 여름을 데리고 뉴빌로 갔다.여름이 물었다.“1주일이나 출장을 다녀왔는데 본가에 한 번 안 가봐도 돼요?”“안 갑니다.”하준은 단호했다. 하준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눈을 꼭 감은 모습에서 최근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름은 핸드폰을 열어 뉴스를 보았다. 하준이 최양하와 함께 귀국하는 사진이 실린 기사가
“안녕하세요, 말씀 나누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여름은 그 자리가 불편해 인사를 하고 나왔다.최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양하야, 너 저 아가씨 좋아하니?” 최양하의 눈동자가 반짝이더니 고개를 숙였다.“뭐, 조금? 그런데 남자친구가 있어요.”최란은 놀라더니 불만스러운 투로 말했다.“쟤 서 회장 혼외 자식이잖니, 어디 너한테 대겠어? 보니까 혁이랑도 아는 사이 같던데. 주혁이가 얼마나 가벼운 인물인지는 너도 잘 알지?”“여름 씨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리고 자꾸 혼외자, 혼외자 하지 마세요. 따지고 보면 저도 혼외자 아니었어요?”최양하가 따졌다.“얘가 정말!”최란이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됐어요, 싸우지들 말아요.”추동현이 부드럽게 타일렀다.“양하는 양하가 좋아하는 사람 선택하게 두기로 했잖아요? 당신 겪은 일 똑같이 겪게 하지 말아요.”최란이 한숨을 내쉬었다.“당할까 봐 그러죠. 하준이가 서유인이랑 결혼하는데 쟤가 또 그 집안 혼외자랑 결혼하면 평생 하준이한테 눌려 살게 돼요.”최양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형님이 서유인과 결혼해요?”“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이번 푸르크 건 때문에 하준이에 대한 평판이 안 좋아졌다고 결혼시키려고 하시더라고. 서 회장 정도 명망 있는 인사 딸과 결혼하면 어느 정도 커버되지 않을까 하고.”갑자기 추동현이 말했다.“강여름 씨, 왜 다시 돌아왔죠?”모두 문 쪽을 바라보니 언제 왔는지 여름이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핸드폰을 두고 갔더라고요.”여름은 핸드폰을 들고 바로 떠났다. 머릿속에는 최란의 마지막 말이 울리고 있었다. 가슴을 세게 얻어맞은 것 같고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다.‘웃기 시네. 어젯밤 자신에게 새우를 까주고, 함께 영화 보고, 그렇게 착각하게 해 놓고 결혼은 서유인이랑 해?흥, 와이프에 내연녀까지 두고 즐기겠다, 이건가?’여름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최양하는 깊이 감춰두었던 속내를 드러냈다.“저는 여름 씨가 좋아요. 출신이 뭐가 중요해요? 솔직히 말해 서유인은 머저리지만
사무실.시간을 보니 6시였다.여름은 돌아갈 준비를 했다.이때, 하준이 톡을 보내왔다.-저녁에 집에 안 가니 일찍 자요.‘일찍 갈 필요 없겠네.’여름은 다시 기획안을 집어 들었지만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아마 오늘 밤 서유인이나 자기 집안 어르신과 함께 혼사를 논의하고 있을 터였다.하준이 곧 결혼한다. 만약 결혼 후에도 이렇게 계속 자신을 놓지 않는다면 여름은 평생 자기 자신이 혐오스러울 것 같았다.‘빨리 힘을 키워서 그 인간에게서 벗어나야만 해.’******최하준의 본가.차에서 내린 하준은 마침 장춘자의 팔을 잡고 정원을 산책 중인 서유인을 보았다.하준은 찡그리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나 장춘자가 먼저 하준을 발견하고 다가왔다.“마침 잘 왔다. 유인이랑 딸기 따러 가는데 같이 가자꾸나.”“피곤합니다. 저는 가서 좀 쉬겠….”“나랑 있는 게 피곤하다니? 너에게는 할미가 겨우 그 정도냐?”장춘자의 안색이 확 변했다.하준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섰다.장춘자는 일부러 몇 발짝 떨어져 걸었다. 서유인은 앞에서 걸으며 하준에게 가는 내내 재잘거렸지만, 유인이 열 마디를 하면 하준은 한 마디 대답하는 정도였다.딸기밭에 도착해 딸기를 맛보더니 서유인이 눈을 반짝였다.“딸기가 엄청 달아요.”“딸기 처음 먹습니까? 뭘 그렇게 오버합니까”?하준이 성격대로 내뱉었다.“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화가 난 장춘자가 하준의 등을 때렸다.“아잉, 그러지 마세요.”서유인이 다급히 장춘자를 말리며 빨개진 얼굴로 하준을 올려다보았다.“비웃는 거예요? 딸기가 얼마나 귀여운데요. 여자들은 다 좋아한다고요.”그 말을 들은 하준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강여름도 좋아하겠지? 요즘 날 많이 겁내는 것 같은데 좀 따다 줄까?’그런 생각이 들자 하준은 제일 크고 빨갛게 잘 익은 것만 골라서 열심히 따 담기 시작했다. “이거 봐요, 엄청 크죠? 두 개가 같이 붙어있어요. 꼭 다정한 부부 같지 않아요?”유인은 어렵사리
순간 서유인은 지난번 하준이 누군가를 숨기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나중에 사람을 시켜 조사해 봤지만, 알아내지 못했었다.“아이고, 내가 전에 정이한테 좀 따다 주라고 했었지.”장춘자가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내 정신 좀 봐.”“그랬군요.”서유인의 안색이 한결 밝아졌다.******저녁 7시 반, 저녁을 먹고 나서 집사가 갑자기 귀한 물건들을 가득 들고 왔다.최대범이 말했다.“잠시 후 유인이 집에 갈 때 이 물건들을 서 회장 네 전해드리거라. 곧 날 잡아 둘이 혼인신고도 하고.”서유인이 수줍어하며 얼굴을 붉히고는 기대 섞인 눈으로 하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하준은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차가운 눈으로 물었다.“제가 언제 결혼하겠다고 했습니까?”“언제까지 미룰 셈이냐?”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최대범이지만, 이번에는 언성을 높였다.“그래, 네가 양하를 잘 데리고 오긴 했다. 하지만, 네가 친동생을 해치려고 했다는 소문이 무성해. 유인이는 서경주 회장 딸 아니냐? 서 회장은 작년에 10대 인물에 뽑힐 만큼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사이니 유인이랑 결혼해 잘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외부적인 평판도 호전될 거다.” “나 참!”웃기는 소리라는 듯 하준의 목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저 정도 되는 사람에게 그런 쇼가 필요합니까?”최대범이 말했다.“요즘은 인터넷 세상 아니냐, 쇼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저는 안 합니다.”하준은 바로 일어났다.“제 평판이 신경 쓰인다면 양하더러 회장 자리 앉으라고 하십시오. 제 실력은 충분합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건 신경 안 씁니다.”“기어코 내가 혈압 올라 죽는 꼴을 보겠다, 이거냐?”최대범이 책상을 치며 버럭했다.“이렇게 정정하신데 화났다고 돌아가시지 않습니다.”하준은 우아하게 입술을 닦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2분 후, 다시 그 딸기 광주리를 들고 현관으로 내려와 현관으로 갔다.서유인의 안색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 장춘자가 소리쳤다.“하준아! 유인이 바
서유인은 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이를 악물고 말했다.“전 절대 안 헤어져요. 당신이 먼저 유혹했잖아요.”“그러면 뭐, 천천히 해보자고.”하준은 서유인을 떨쳐내고는 몸을 돌려 차에 올랐다.서유인은 두려운 눈으로 멀어지는 하준의 차를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과 위자영이 서경주의 집안에서 버틸 수 있는 건 순전히 최하준을 등에 업은 덕이었다. 서신일 회장조차 이들 모녀에게 넙죽거릴 정도였다. 유인은 절대 최하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그 여우가 뒷구멍에서 조종하고 있는 거야. 아주 작살을 내야지 안 되겠어.’******차 안에서 하준은 여름에게 전화를 걸었다.“뭐 합니까? 난 퇴근하는 중입니다.”"아직 회사에서 잔업 중이에요.”여름이 놀라며 대답했다.‘오늘 안 온다더니?’“이렇게 늦게까지 야근입니까?”하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기다려요. 데리러 가겠습니다.”“…….”여름은 좀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다.하준이 서유인과 만나고 와서 다시 자신을 찾는다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30분 후 하준이 여름의 회사 앞에 차를 세웠다. 여름이 차에 올랐다.차에 여자 향수 냄새가 가득했다. 전에 서유인에게서 났던 향기였다.분명 방금 막 유인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양다리, 지치지도 않나?’“내가 뭣 좀 가져왔는데….”하준이 뒷좌석에서 딸기 광주리를 집어 들어 여름의 다리 위에 놓았다.“우리 집 밭에서 직접 땄습니다. 아주 달아요.”말을 마치고 기대에 차 여름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고 애써보긴 처음이었다.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여름은 딸기를 내려다보며 무성의하게 살짝 웃을 뿐이었다.“고마워요.”여름은 제일 위에 있던 한 꼭지에 두 알이 달린 딸기를 집었다.“그 딸기 우리 둘 같지 않습니까?”하준이 여름의 왼손을 꽉 잡고 애정 가득한 얼굴로 따뜻하게 여름을 바라보았다. 그윽한 두 눈에 여름의 실루엣이 비쳤다.매혹적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하준을 본 순간, 여름은 넋을 잃고 말았다.‘이 남자는 정말
다음 날 아침.여름은 잠에서 깨어 습관적으로 핸드폰으로 포털 창을 열었다.오늘 검색어 1위는 ‘여자 친구와 딸기 따는 최 회장’이었다.사진 속에서, 서유인은 손에 두 알짜리 딸기를 들고 최하준을 바라보며 달콤한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최하준은 고개를 돌려 서유인을 보고 있었는데 석양빛이 얼굴에 비추고 애정 어린 눈길로 서로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다.어젯밤 최하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딸기 우리 두 사람 같지 않습니까?‘흥, 웃기고 있네.’‘서유인이 딴 딸기를 갖고 나한테 와서 그따위 소리를 지껄였어?하긴, 여자 친구와 내연녀에게 줄 딸기 따는 인간인데 정말 너무 뻔뻔해서 말이 안 나오네.’“뭐 보고 있습니까?”여름을 안고 자고 있던 하준이 다가와 여름의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사진을 본 하준이 당황하며 말했다.“오해하지 말아요. 어제 할머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갔던 것뿐입니다.”“뭐, 상관없어요.”여름은 정말 괜찮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하준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여름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입니까?”왜 갑자기 하준이 불쾌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얘기했다.“여자친구잖아요. 딸기 따러 갈 수도 있지. 난 질투 안 해요. 나도 내 포지션 정도는 알아요.”‘최하준의 심심풀이 장난감, 자랑스럽게 밖에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여자.’하준이 여름을 잠시 쳐다보다가 갑자기 웃었다.상상을 초월한 여름의 이해심 때문에 더 씁쓸했다.‘이렇게 아무렇지 않다니, 날 전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겠지.’바보처럼 여름이 오해할까 걱정하고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던 자신이 한심했다.“참 대범하십니다, 강여름 씨.”하준은 휙 이불을 걷고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잠시 후 문을 ‘쾅’ 하고 차고 나갔다. 마치 자신이 화났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여름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설마 내가 대성통곡하며 질투하길 바란 거야? 자기 입으로 그랬잖아. 서유인은 최 회장 사모님이 될
하준도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다. 많은 사람이 이미 자신에게 애처가 프레임을 씌워 놓고 있었다. 황당하게도 다음 달 자신이 서유인과 결혼할 거라고 떠드는 인사들마저 있었다. ‘이게 다 무슨 개소리야!’화가 난 하준은 홍보팀 서 팀장을 호출했다.“회사 새 개발 프로젝트 홍보할 생각은 안 하고 연예계 커플 놀이 흉내는 참 잘하는군. 당장 다 없애!”서 팀장이 억울한 듯 말했다.“하지만 회장님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대체 누가 회장이야? 나야, 당신이야?”하준이 시니컬하게 물었다.“알겠습니다. 삭제하겠습니다.”서 팀장이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검색어도 곧 내려갔고 인터넷에 올라왔던 사진은 다 삭제했지만, 이 일은 떠들썩하게 퍼져서 거의 전 국민이 다 알 정도였다.여름도 예외가 아니었다.모든 사람이 최하준과 서유인이 커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양유진이 톡을 보내왔다.-최하준 씨 정말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여름 씨, 내가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조만간 당신을 구해오겠습니다.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난감하기도 했다. 양유진이 잘해줄수록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이후 며칠 동안 하준은 뉴빌에 오지 않았다. 어디서 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여름은 묻지 않았다.밤에 최양하에게서 전화가 왔다.“어제 퇴원했어요.”“축하드려요.”“이번엔 빚 독촉하려구요.”최양하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지난번에 보답하겠다고 했잖아요. 내일 봉사활동에 가는데 여름 씨도 같이 가죠.”여름은 망설이다가 봉사활동이라는 말에 가겠다고 했다.다음 날 오후 5시, 최양하가 잘 빠진 고급 승용차를 타고 회사 앞으로 여름을 데리러 왔다.여름은 재빨리 차에 탔다. 최양하는 여름이 트레이닝복 스타일로 차려 입은 것을 보고 웃었다.“오늘 이 패션은 좀 에러인데요, 다른 걸로 바꿔 입어야겠네요.”한 시간 후, 여름이 레트로한 스타일의 빨간 원피스를 입고 탈의실에서 나왔다.“나이스!”최양하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며 말했다.“이렇게 입고 봉사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