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가 출산하려고 해요?”“웬 일로 전화를 거셨습니까?”최하준의 목소리가 냉랭했다.“내가 묻잖아요!”여름은 다급했다.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돌봤던 고양이라 정이 많이 들었다.“힘들어 해요.”“그럼 빨리 병원으로 안 가고 뭐해요?”여름이 호통을 쳤다.이렇게 작고 귀여운 고양이가 엄마가 되려고 엄청난 고통을 참아내고 있다니.“새끼를 낳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움직이기 어려우니 강여름 씨가 와주는 게 좋겠어요. 지오가 여름 씨를 보고 싶어 합니다. 이런 순간에는 당신의 격려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만약의 경우 지오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요.”최하준은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위경련으로 아픈데도 여름은 남의 일처럼 병원 전화번호만 던져주고 가버렸다. 최하준은 그 이후로 자기 자신보다 고양이를 돌보는데 집중했다.여름이 쏘아붙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지금 바로 가요.”“서둘러요. 얼마 못 버틸 것 같아서 솔직히 무섭습니다.”최하준이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야야야야, 우리 여름이~, 나 어때? 화장 잘 먹었지. 이제 가자.”윤서가 화려한 무늬의 빨간 스커트로 갈아입고 걸어 나왔다.“어때? 이거 꽤 괜찮지?”“윤서야, 진짜 미안한데… 지오가 출산 중이래. 내가 가봐야 할 것 같아. 잘못하면 오늘 밤에 죽을지도 몰라.”여름이 ‘죽는다’는 말을 거듭 강조하며 황급히 문을 나섰다.윤서가 웅얼거렸다.“…너 새끼 받을 수 있어?”돌아오는 건 문 닫는 소리 뿐이었다.‘아… 뭐야… 나 스커트는 뭐 한다고 이렇게 열심히 골랐다니?’ ‘남의 집 고양이가 부럽긴 처음이네… 하하…’******여름은 미친 듯이 차를 달려 컨피티움에 들어섰다.현관 비밀번호는 그대로였다.집 안에는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최하준이 고양이의 출산실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조용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사랑하는 딸의 출산을 지켜보는 아버지처럼.“어때요? 새끼 나왔어요?”여름이 쌩하고 달려갔다.“네.”최하준이 복잡한 심
여름은 믿기로 했다.지오를 쓰담쓰담 했다.“우리 지오, 고생했어. 넌 용감한 엄마야. 진짜 대단해.”지오가 힘없이 ‘야옹’하고 소리를 내더니 축 늘어졌다.“배가 고픈가 봅니다.”최하준이 말했다.여름도 그렇게 생각했다. 새끼를 낳느라 온 힘을 다 썼을 것이다.“영양식을 만들어줘야겠어요.”주방에 불이 다시 켜 지고 열기가 피어 올랐다. 전에 입던 앞치마도 챙겨 입었다.최하준이 일어서서 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짓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들었다. 집 안에 요리하는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했다.“나도 배가 고픕니다.”여름은 못 들은 척 했다. 최하준이 여름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귓가에 입을 대고 말했다.“나 배고파요! 안 들립니까?”귀가 멍멍했다. 하마터면 냄비를 떨어뜨릴 뻔했다.휙 하니 그를 바라보니 능글능글 웃고 있었다.“최하준 씨! 당신 입으로 직접 나더러 불결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이렇게 불결한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고 싶으신지? 토하진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네요!”“……”최하준의 얼굴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내가 그런 소릴 했다고? 설사 했더라도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는데…’“그게 저… 그땐 너무 화가 나서 듣기 민망한 말을 한 겁니다.”최하준은 매끈한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부당한 방법으로 피해를 입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침착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뭐 화가 나는데 화낼 권리도 없습니까?”‘헐… 누가 변호사 아니랄까 봐 말은 청산유수네. 진짜 얄미워.’여름은 말문이 막혔다..“요리하세요.”최하준이 한 마디 하고는 주방 테이블을 두드렸다.“네, 하죠.”여름은 웃음이 나왔다.여름이 이 집을 비운 지 꽤 오래인데 냉장고 안의 식재료들은 모두 완벽하게 구비가 되어 있었다. 모두 신선하고 고급진 재료들이다.여름은 지오를 위해서 연어 미트볼과 고양이 푸딩을 정성껏 만들어 주었다.최하준을 위해서는 간단히 국수를 만들었다. 국수 위에는 쫑쫑 썬 쪽파와 향긋한 소스, 그리고 청양고추를 살짝 올렸다.“벌써 다했습
빌어먹을! 최하준은 태어나서 이렇게 화가 나기는 처음이었다.여름은 무서워서 다리가 덜덜 떨렸다. 울고 싶지만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여기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내 잘못이에요… 실망이라면… 미안해요. 그러니까 좀 놔주세요.”여자의 얼굴에 깊은 두려움이 스쳐가는 것을 최하준은 보았다. 커다랗고 그윽한 눈망울이 자신의 고양이를 닮았다. 최하준의 마음이 고통으로 무너졌다. 처음으로 가슴 뛰게 한 사람이 이렇게 완벽하게 나쁜 인간이였다니!“가!”최하준은 분을 참지 못하고 여름을 힘껏 밀쳤다. 여름이 바닥에 쓰러졌다.“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시죠.”넘어질 때 바닥에 부딪친 무릎이 아파 죽을 지경이다.아픈 무릎을 잡고 겨우 일어섰을 때 여름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지오만 아니었어도 안 왔어요. 이렇게 업 다운이 심한데 누가 그런 성격을 견딜 수 있겠어요!”여름은 말을 마치자마자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최하준은 머리 속에서 팽팽한 줄 하나가 툭 끊어진 느낌이었다.테이블 위에 남겨진 국수를 바닥에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요 며칠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애꿎은 컵을 던져 깨뜨려버렸다.컵을 깨뜨리고 나니 오히려 허탈하고 심기가 불편해졌다.‘왜 여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나를 못 견디겠다?진짜로 자신이 한 달콤한 말들은 전혀 기억 못하는 걸까?표정도 눈빛도 모두 거짓이었나?좋다.다시는 강여름이 돌아오지 못 하게 하겠어.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절대로 상대하지 않을 거다.’화를 내면서 국수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제길… 엄청 맵잖아!’ 매운 걸 먹으니 또다시 위장이 아프기 시작했다.하지만 위경련보다 더 아픈 건 최하준의 마음이었다..******여름이 돌아왔다. 윤서는 집에서 마스크팩을 하고 있었다.여름이 온 걸 보고는 농담을 던졌다.“에이~, 이렇게 빨리 돌아올 걸 왜 나갔어? 자고 올 줄 알았더니.”“무슨 소리야. 나는 지오가 걱정돼서 가본 거라고.”지오가 생각나자 가슴이 뭉클했다.
“오빠네 아버지하고 신아영 아버지하고 군대에서 만난 친구 사이야. 두 분이 전역 후에 창업을 하셔서 둘이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대. 그래서 그런가 지금도 오빠가 아영이를 동생처럼 생각해.”“신아영이 오빠를 단순히 오빠로 생각하는 거 맞아?”여름이 윤서의 눈치를 살폈다.윤서는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너도 그렇게 느꼈구나? 나도 전에 같은 의심을 했었거든. 근데 증거가 없어.”“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응.”******일주일 후.강여경 가족은 해외 여행을 마치고 동성에 돌아왔다.TH그룹 별장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선우에게서 다시 전화가 결려왔다.강여경은 발신자를 보더니 짜증 섞인 표정이다. 억지로 전화를 받으면서 상냥하게 말했다.“선우 오빠, 무슨 일이에요?”“우리가 일이 있어야만 전화하는 사이던가?”바로 이 시각, 한선우는 TH그룹 별장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방금, 강여경과 부모가 돌아온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당연히 아니지.”강여경의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에 한선우는 기분이 풀릴 뻔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여경의 한 마디로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아직 여행 중이에요. 곧 서핑하러 나가려던 참이라 통화 길게 못해요.”“그래?”“그럼 내가 본 건 뭐지? 방금 네가 TH별장으로 돌아오는 걸 똑똑히 봤는데. 나 지금 입구에 있어. 왜 거짓말을 하지?”“……”강여경이 창밖을 내다보았다.“더 이상 한주그룹 대표이사가 아니라서 파혼하고 싶은 거야?”한선우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좋아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강여경이 냉담하게 말을 이었다.“한선우 씨, 본인 처지를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양유진 쪽에서도 등을 돌렸고 한주그룹 승계인 자격도 박탈당했으니 나랑은 이제 레벨이 맞지 않아요. 나는 TH의 주인인데 오빠랑 너무 차이가 지지 않겠어요? 우리 좋게 헤어져요.”한선우는 믿을 수 없었다.“강여경, 너 이렇게 신의가 없는 사
잠시 후, 어머니 양수영에게서 득달같이 전화가 왔다.“선우야,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여경이 SNS에 너랑 파혼한다는 공개글이 올라왔어. 약혼 기간 동안 네가 강여름을 은밀히 만났다면서.”한선우는 사색이 되었다. 강여경이 이렇게 빨리 손을 쓸 줄은 몰랐다. 서둘러 강여경의 SNS에 들어갔다.-순진한 소녀가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났다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그저 상속녀라는 내 신분을 노렸을 뿐이었어.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욕한다. 내가 동생의 남자를 빼앗았다고. 나한테 죄가 있다면 내가 그 둘 사이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그 남자는 나만을 사랑한다, 나를 믿는다는 달콤한 말로 눈을 멀게 했고 늘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약혼식에서 일어난 일도 해프닝으로 넘기려고 했다.하지만 그 남자는 나 몰래 내 뒤에서 동생과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나와 약혼하려고 둘러댄 사탕발림이었을 뿐. 내가 아니라 내 위치를 탐 냈던 것인데… 왜 난 몰랐을까…게시글과 함께 한선우와 여름이 W팰리스에서 찍힌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사진을 어찌나 교묘한 각도에서 찍었던지 한선우가 여름의 손을 잡고 밀담을 나누는 모습처럼 보였다.‘몰래 내 사진을 찍었어?’TH쪽에서는 이렇게 온갖 대비를 다 하고 있었나 보다. 더러운 추문을 한선우에게 몽땅 뒤집어 씌워서 강여경을 가엾은 희생자로 만들 계획인 것이다..한선우는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TH디자인 그룹과 진가은, 채시아까지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면서 댓글과 좋아요가 엄청났다. 빠른 속도로 강여경의 게시글이 검색어 1위에 올랐다.한선우는 비열한 남자, 쓰레기로 욕을 먹고 있었다.심지어 강여름과 짜고서 시골에서 온 순진한 언니에게 사기 쳤다는 댓글도 있었다.양수영이 전화에 대고 다급하게 말했다.“너 설마 진짜로 강여름과 얽혀 있는 건 아니지? 이 멍청한 녀석아, 지금은 여경이 집안에 납작 엎드려야 해. 그래야 네가 다시 살 수 있….”“엄마, 절대 아니에요.”한선우는 갈라진 목소
“……”수많은 마이크가 여름을 에워쌌다.여름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질문만 쏟아내고 서로 밀쳤다. 기자의 공세에 하이힐을 신고 있던 여름은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기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넘어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야? 비켜!”한선우가 마침 달려와 기자들 틈으로 길을 열어주었다. 여름을 부축하고 속삭였다. “여름아, 괜찮아?”여름은 한선우의 등장에 예감이 좋지 않았다. 기자는 기사 거리가 생기자 더욱 달려들었다.“한선우 씨 오셨네요. 제일 먼저 달려오셨군요.”“두 분 계속 관계를 지속하신 건가요?”“대단들 하십니다.”주변 사람들의 말이 점점 듣기 거북해졌다. 한선우가 노발대발 열을 냈다.“말을 좀 가려서 하시죠. 모든 일은 강여름 씨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무책임 했던 건 바로 접니다. 제가 사과해야 할 사람은 강여경 씨가 아니라, 강여름 씨입니다.”“아~, 강여름 씨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래서 이렇게 싸고 도시는 겁니까?”“강여경 씨가 참으로 안타깝네요.”“그러게요. 이런 동생이 있으니 정말 재수 없는 일이죠.”여름은 한선우 때문에 돌 것 같았다. 하필 이런 타이밍에 나타나서 소란을 피워야 하느냐 말이다.두 사람은 사람들 틈을 빠져나가긴커녕 독 안에 든 쥐 신세였다.이런 북새통에 보디가드 몇 명이 기자 무리를 흩어지게 했다.양유진이 기자들 틈으로 들어와 머리가 흐트러진 채 당하고 있는 여름을 보았다. 기자를 향해 매섭게 엄포를 놓았다.“취재를 하는 겁니까 심문을 하는 겁니까? 아니면 폭력을 사용해서 사람 괴롭히는 중입니까? 기자로서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둘러싼 기자들이 양유진의 카리스마에 흠칫 놀랐다. 옷차림도 옷차림인데다 기세에 눌려 취재를 강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우리는 단지 여기 두 사람의 관계를 정확히 알고 싶을 뿐입니다!”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어떤 기자가 외쳤다.“이 두 사람은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양유진이 여름을
여름은 쿡쿡 웃었다. “바보라니? 오빠네 여경이는 똑똑하고 성실하고 우아하지만 나는 못되먹었잖아.”여름이 비꼬는 말에 한선우는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여름아, 널 다치게 한 거 진심으로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내가 평생 동안 너한테 속죄하면서 살면 안 될까? 네가 나한테 다시 온다면… 맹세해. 이런 실수 다시는 안 할 거야.내가 너무 철이 없었어. 네 말이 맞아. 젊은 혈기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던 거야. 이제 너만 있으면 돼.”한선우는 여름을 애타게 바라보았다.양유진 얼굴이 흐려졌다. 조카가 이렇게 자존심이 없는 놈인 줄 몰랐다.문제는 이게 아니다. 여름의 마음이 움직일까 걱정이 되었다. 강여름과 한선우는 한때 사랑했던 사이가 아니던가.“여름 씨, 잘 판단하셔야 합니다. 한 번 배신했으면 두 번도 가능…”“외삼촌!”한선우가 침을 튀기며 말을 막았다.“삼촌이 여름이 좋아하는 거 아는데요, 감정이란 게 밀어붙인다고 능사가 아니에요. 여름이 마음속에 남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저 밖에 없다고요.”여름은 두 남자의 언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만들 하세요! 한선우, 입 다물어. 나한테 상처 줄 일이 아직 더 남았어? 이걸로 부족해? 내가 누굴 좋아해?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이제는 당신 얼굴만 봐도 욕 나와.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차라리 모르는 채로 살고 싶다고!”마지막 남아있는 영혼까지 짜내어 단호하게 쏘아붙였다. 여름은 두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벌컥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가지 마…”한선우가 급히 막아 섰다.“나한테 한 번만 기회를 줘. 다시는 널 배신하지 않을게.”“저리 가. 건드리지 마.”“데려다 줄게요. 선우야, 너는 그만 가봐라. 이번 일은 배후에 주동자가 있을 겁니다. 제가 해결해 보죠.”양유진도 조심스럽게 말했다.“괜찮아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한선우에게서 힘껏 팔을 빼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한선우와 계속 같이 있다가는 속이
“그렇지 않을 걸.”영민하고 잘생긴 얼굴에는 포악한 기운이 내려앉아 있었다.“가능한 한 빨리 그 인간과 이혼 수속을 밟을 거야.”“하지만 본가에는 뭐라고…”이지훈이 펄쩍 뛰며 말했다.“방법을 생각해 봐야지.”최하준이 씩씩거리며 한 모금 들이마셨다.“여기에는 괜찮은 여자가 하나도 없고 모두 나쁜 여자들 뿐이야. 그 여자 얘기는 이제 나한테 안 해도 돼.”사람의 감정이란 게 때로는 애틋하다가도 때로는 변심하기도 한다. 결혼한 부부끼리도 그렇다. 아니, 그렇다고들 한다.최하준은 여름만 생각하면 죽도록 화가 났다.지금 이 시간에도 여름이 양유진과 함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숨이 턱턱 막히고 미쳐버릴 것 같다.‘동성이 뭐 어쨌다고, 여자들도 괜찮기만 한데...’이지훈도 덩달아 식은땀이 났다. “마음 굳혔어?”“응, 당장 다른 집을 좀 알아봐 줘. 강여름이 있던 공간에는 한시도 있고 싶지 않아. 지오도 새끼를 세 마리나 낳아서 지금 집이 너무 좁거든. 큰 정원이 있으면 좋겠는데.”“알았어.”이지훈도 이제는 슬슬 짜증이 났다. ‘강여름 씨, 당신은 눈도 없나? 내 친구지만 최하준, 이 녀석 이렇게 멋진데 말이야… 여자들이 어떻게 하질 못 해 안달인데, 강여름! 당신이 잡으면 잡힌다고! 이 답답아!’최하준이 창 밖을 내다 보았다. 무슨 생각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담배가 다 타서 손가락까지 태울 기세인데도 최하준은 생각에 빠져 알지 못했다. 상혁이 이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정말 감이 안 좋은데.’******그 후로 며칠 간 여름은 집안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다.인터넷에서는 한선우와의 일이 일파만파 퍼져서 여름을 욕하는 댓글들이 쏟아졌다.윤서도 하나씩 읽어 내려가며 화를 냈다. “우리 오빠한테 부탁해서 악플 싹 다 잡으라 할까?”“괜찮아. 나도 생각이 있어. 내 SNS 팔로워가 아직 많이 늘지 않았어.”여름이 머리를 가로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윤서는 어이가 없었다.“저것들 모두 널 욕하려고 온 안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