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여기 병 났다고. 잊지 마, 저 여자가 누구 와이프인지.”한편, 여자 탈의실에는 조은서밖에 없었다. 드레스를 벗고 검은 속옷만 입고 있는 그녀의 하얀 몸은 전등 아래에서 더 빛이 났다. 갑자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열렸다.문 앞에 유선우가 서 있었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며 탈의실의 문을 잠궜다...그의 행동에 조은서는 입술을 깨물었다.“유선우 씨, 여기 여자 탈의실이에요.”유선우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그녀를 향해 걸어왔고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에 있던 셔츠를 낚아챘다... 그러고나서 한 손으로 그녀를 옷장 앞으로 밀어내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런 것에 익숙지가 않았던 그녀는 온몸에 닭살이 돋는 것만 같았고 몸을 살짝 떨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라도 할까 봐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유선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녀를 조용히 쳐다볼 뿐이었다. 두 사람이 부부 사이가 아닌 척... 처음 그녀의 몸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눈빛에는 욕망조차 없었다. 잠시 후, 그가 손을 풀자 그녀는 말없이 등을 돌리고는 손가락을 떨며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는 개의치 않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유선우 씨, 뭐 하자는 거예요?”그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조은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이혼을 요구할 때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 조은서는 자신의 것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많은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노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걸 예전에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뒤에 서 있던 그가 그녀의 몸에 바싹 달라붙었다. 은은한 담배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고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수정같이 반짝이는 그녀의 피부는 연한 핑크빛으로 물들어져 더욱 매력적이었다. 유선우는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고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허스키한 목소리를 입을 열었다.“당신을 어쩌면 좋을까? 예쁜 여자는 화의 근원이라고 해야 하나...
유씨 본가, 등불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고용인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각종 보양식 요리가 식탁을 가득 메워 찼다. 최숙자는 옆에 앉아 두 사람이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혹여나 손주가 남자구실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특별히 주방에 자라탕을 끓이라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조은서에게는 여인에게 좋은 보양식을 직접 챙겨주었다.최숙자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내가 날짜까지 다 알아봤어. 오늘 밤에 틀림없이 임신할 수 있을 거야.”결혼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조은서는 여전히 얼굴이 붉어졌다. 게다가 옆에 고용인들이 여럿 서 있었으니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유선우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얼굴조차 붉히지 않고 담담하게 최숙자를 달랬다.“그럼 이따가 열심히 해 겠네요. 우리 할머니한테 일찍 손자 안겨드리려면.”최숙자는 곧 증손주라도 태어날 것처럼 싱글벙글 웃었고 이내 유선우에게 자라탕 한 그릇을 더 챙겨주었다.“몇 시간 동안 푹 끓인 거야. 뜨거울 때 얼른 먹어... 남자 몸에 좋은 거야.”유선우는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자라탕을 먹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며 조은서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결혼 생활 3년 동안, 매번 잠자리를 하고 나서 그는 늘 그녀에게 약 먹는 걸 잊지 말라고 주의를 줬었다. 아이를 갖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지만 최숙자 앞에서 연기를 했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챈 그가 그녀를 쳐다보고는 이내 휴지로 입술을 닦았다.“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은서랑 전 먼저 올라가 볼게요.”“그래, 얼른 올라가서 쉬거라.”말을 마치고 최숙자는 향을 피우러 갔다. 그녀는 향을 피우면서 중얼거렸고 함은숙이 유씨 가문의 대를 잇는 문제에 관심이 전혀 없다고 불평을 드러냈다. ‘아들 며느리가 모처럼 왔는데 어떻게 일찍 잘 수가 있는 건지...’한편, 유선우는 그녀의 가는 팔목을 잡고 위층으로 올라왔다. 침실로 돌아온 뒤, 조은서는 그의 팔을 세게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그만해요. 당신한테 맞춰서 연기까지
그가 비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조은서, 당신 참 마음이 넓은 여자군.”말을 마친 그는 샤워를 하러 욕실로 향했다. 10분 뒤, 욕실에서 나온 그는 소파에 얇은 이불을 깔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다.‘오늘 밤은 소파에서 잘 생각인가 보군.’그는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방금 어렵게 억눌렀던 화가 또다시 올라왔다. 그는 조은서를 덥석 안아 올려 침대로 향했고 그녀를 침대 위로 던지고는 그녀의 위로 올라탔다. 조은서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있었다. 유선우는 그녀와 잠자리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 그녀를 놓아주려고 하려는 찰나 갑자기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고 문자 한 통이 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이 늦은 시간에 누구야?”“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에요.”그의 거친 손길에 화가 났던 조은서는 차갑게 대답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누른 채 몸을 기울여 침대 옆에 있던 핸드폰을 들어 그녀의 지문으로 핸드폰 화면을 열었다. “유선우 씨, 당신한테 이런 권리 없어요.”유선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문자를 쳐다보며 안색이 어두워졌다.허민우가 보낸 문자였다. 별다른 문구가 없이 그냥 야경 사진 한 장만 보내왔다. 문자로 봐서는 감정이 전혀 섞인 것 같지 않았지만 그러나 성인인 그가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밤늦게라도 이런 것을 공유하고 싶은 한 남자의 마음을...그는 한참 동안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아래에 누워있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하얗고 작은 얼굴, 앙증맞은 코는 빨갛게 달아올랐고 우는 모습조차 섹시해 보였다.‘이러니까 남자들이 당신한테 반한 거겠지.’유선우는 핸드폰을 집어던지고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 늦은 시간에 당신한테 문자를 한다고? 말해... 두 사람 어디까지 간 거야? 응?”말을 하면서 그가 그녀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약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베개에 엎드려 있던 그녀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날 수가 없
그녀는 그의 품 안에서 떨고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별로 좋지 않았던 추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3년 동안 그녀의 몸은 점점 그의 몸에 익숙해졌다. 한창 뜨거워지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그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확인했고 진 비서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전화기 맞은편, 진 비서의 목소리는 다급하기만 했다.“대표님, 백아현 씨가 B시로 왔습니다.”그의 말에 유선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그가 조은서를 힐끗 쳐다보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방금 진 비서의 그 말은 조은서도 듣게 되었다. ‘백아현이 B시로 돌아왔다고?’ 유선우가 마침내 자신의 내연녀를 이 집안으로 끌어들일 생각인 것 같다. 이건 그의 아내로서 조은서한테는 엄청난 모욕이었다.2분 뒤, 유선우가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한편, B시로 돌아온 백아현은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바람에 실수로 넘어져 또다시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녀의 부모는 기자들에게 백씨 가문은 유씨 가문과 혼약을 맺은 사이라고 발표했다. 이건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유선우는 직접 가서 이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고 간 김에 백아현도 처리할 생각이었다. 옷을 입고 있던 그가 힘없이 침대에 엎드려 있는 조은서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먼저 자. 내일 아침 데리러 올게.”조은서는 등을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투를 집어 들면서 그는 그녀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고 이내 급히 자리를 떴다. 얼마 후 마당에서 자동차의 시동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오늘 밤 그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지난날의 일들이 생각났다. 매번 유선우가 백아현을 보러 H시로 갈 때 마다 그녀는 늘 신경이 쓰여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백아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여전히 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알았어요, 선우 씨.”이내 유선우는 병실을 나섰고 문밖에서는 백아현의 부모가 얌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유선우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 생각이었지만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진 비서는 그들을 한 번 째려보고는 이내 뒤를 따라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유선우와 진 비서 둘 뿐이었고 액정 화면의 빨간 숫자가 끊임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유선우가 입을 열었다.“백아현을 왜 한림병원으로 데리고 온 거야? 내 기억으로는 은서의 아버님도 이 병원에 입원하신 걸 아는데.”그의 말에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짔던 진 비서가 이내 설명했다.“대표님, 이건 정말 제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구급차는 이미 백아현을 싣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백아현 씨 내일 수술하는데 대표님께서 오실 겁니까?”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유선우는 한마디 툭 던지고 엘리베이터를 나갔다.“내가 의사는 아니잖아.”진 비서는 이내 그의 뒤를 쫓아갔고 차에 올라탄 그가 창문을 내리고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김 선생님께서 B시에 도착하시면 식사 자리 마련해 봐.”유선우가 백아현을 김 선생에게 소개해 줄 거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대표님, 김 선생님께서 이미 마음에 두신 제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일은 아마도 안 될 것 같습니다.”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하고 있던 그가 무심하게 물었다.“어떤 사람이길래 김 선생님 눈에 든 거야?”진 비서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정확한 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 선생님께서 그 바이올리니스트가 마음에 드신다며 잘 키워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한참 후,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럼 한번 시험해 보지. 김 선생이 얼마나 인격이 높고 절개가 굳은 양반인지.”...7시반, 유선우는 유씨 본가로 돌아왔다.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한껏 풍겨왔다. 우아한 옷차림의 함은숙이 식탁에
YS그룹의 1층 주차장, 유선우는 차의 시동을 끄고는 한참을 고민 끝에 조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그의 전화를 끊어버렸고 그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는 가죽 시트에 기대어 앉아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은서가 화 많이 난 걸까? 어젯밤 내가 거칠게 대해서 그런 거야? 아니면 한밤중에 나가서 그런 거야? 진 비서가 하는 얘기를 은서도 들었겠지?’유선우는 핸드폰을 쥐고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달래줘야 하는 건가?’그러나 이런 생각은 불과 몇초 만에 사라져 버렸다. 잉꼬부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와 조은서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조은서를 사랑한 적이 없다. 예전에도 지금에도...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핸드폰을 거두자 진 비서가 다가와 차 문을 열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했지만 진 비서는 여전히 힘이 넘쳐났다.그녀는 항상 열심히 일을 했고 유선우도 그녀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녀가 선을 넘은 후에도 그녀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진 비서가 일정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유선호가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목요일 저녁 시간 비워둬. 성진그룹 사모님께서 파티를 연다고 하셔. 진 비서가 나랑 같이 가줘야겠어. 드레스 비용은 회사에서 처리해 줄게. 성진그룹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진 비서도 잘 알고 있겠지? 일 망치지 마.”그의 말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진 비서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대표님, 성진그룹 사모님의 파티에 저랑 함께 가시겠다는 말씀인가요?”“뭐 문제라도 있어?”“아니요, 없습니다.”진 비서는 황급히 부인하며 최대한 프로페셔널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날 꼭 대표님을 도와 이 프로젝트를 따낼 것입니다.”그는 더 이상 말이 없이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 진 비서는 거울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거울 속에 비
그의 말은 약간 도발적이었다. 유선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는 캐디에게 볼을 띄우라고 말하고는 살짝 몸을 기울이고 골프채를 휘둘렀다. 공이 떨어지는 곳을 확인한 그가 그곳을 향해 걸어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가 언제부터 나에 대해 알았다고 그래? 맞아, 집에 있는 와이프는 꼭 감춰야지. 데리고 나갔다가 누구 눈에라도 들면 어떡해? 안 그러냐? 이지훈.”이지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잠시 후, 그가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하지만 가끔은 아무리 꽉 잡고 있어도 소용없더라. 그런 말 몰라? 사랑은 손안에 든 모래와 같아 꽉 쥐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빨리 사라져 버린다는 걸.”석양 아래, 골프장의 풀들은 유난히 푸르렀다. 흰색 캐주얼 차림을 한 유선우는 훤칠한 모습이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골프채를 휘둘렀다. 단 두 번 만에 골프공이 홀 안으로 들어갔고 유선우는 더 이상 골프를 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는 캐디에게 골프채를 건네주고는 한 손으로 수건을 받아 손을 닦으며 이지훈을 향해 웃었다. “이지훈,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원한 건 놓친 적이 없었어. 그리고 내 성격 너도 잘 알잖아.”그는 조은서 때문에 이지훈과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비록 조은서가 그의 아내이긴 하지만 이지훈과 얼굴을 붉힐 만큼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경고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말을 마친 유선우는 먼저 자리를 떴고 이지훈은 그 자리에 서서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은서를 싫어했는데 지금은 유선우가 그녀를 놓아주기만을 두 사람이 이혼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럼 그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게 아니겠나?...한편, 유선우는 진 비서가 일을 망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수요일 오후, 진 비서는 성진그룹 사모님의 별장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두 시간이 채 되지도 않아 그곳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유선우는 비즈니스 쪽에서 꽤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다. 옛말에 개도 주인을 봐가면서 때려야 한다고 성진
한편, 유선우가 돈을 보낼 때, 조은서는 임지혜랑 한창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임지혜는 박연준의 소식을 듣고 이내 조은서한테 연락한 것이었다. 그녀는 알아본 소식을 조은서에게 말해주었다.“박연준 변호사는 아프리카 어느 마을로 법률 지원을 하러 갔대. 근데 지금 연락이 두절된 상태야. 조수의 말로는 1,2년은 돌아올 수 없다고 하던데. 은서야, 이렇게 성공한 변호사들은 왜 벌써 이 세상을 다 꿰뚫어 본 건걸까? 큰 도시에서 있으면 돈을 엄청 벌 거 아니야...”말을 마친 그녀는 커피 한 모금을 크게 마시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조은서는 고개를 숙인 채 컵에 담긴 커피를 가볍게 휘젓고 있었다. 임지혜는 조은서가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그녀를 위로했다. “우리 좀 더 알아보자. 박연준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잖아.”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 4천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그런 표정을 본 임지혜는 저도 모르게 다가와 그녀의 핸드폰을 쳐다보았다.“무슨 문자이길래 그렇게 넋을 잃고 보는 거야? 유선우 그 나쁜 자식이었네.”“4천만 원을 너한테 주는 이유가 뭐야? 잠자리도 해달라는 거야 뭐야? 조은서, 이 남자 이거 진짜 나쁜 놈이다. 이 남자도 다른 남자들이랑 똑같이 천박한 인간이야...”조은서는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옆에 있던 임지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실 일단 받아도 되잖아. 자그마치 4천만 원이야.”그 말에 조은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유선우의 돈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임지혜는 저도 모르게 욕설이 나갔다. 스케줄이 있었던 그녀는 조은서와 작별을 하고 자리를 떴다. 떠나기 전, 그녀는 맛없는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절약 때문인 것 같다. 그녀가 떠나고 조은서도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는데 마침 핸드폰이 또 울렸다. 유선우한테서 온 문자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김 선생님에게서 온
진석은 예의 있게 조은혁을 호칭했다.“아버님.”조은혁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았고 가볍게 기침하며 조은희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먼저 올라가라. 네 엄마가 네가 돌아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마 할 얘기가 있을 거다.”조은희는 처음엔 가만히 있었고 진석은 부드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밀면서 말했다.“먼저 올라가.”조은희는 그제야 움직였고 조은혁 옆에 다가갔다. 집에서 막내딸인 조은희는 가장 애교가 많았고 조은혁을 안고 인사한 후 아쉬운 듯 올라갔다.조은혁은 작은 딸을 안자 화난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리더니 진석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앉아서 얘기해.”진석은 즉시 자리에 앉아 조은혁에게 차를 따랐고 조은혁은 일부러 그를 자극하는 듯한 말을 던졌다.“눈치가 빠르네.”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버님 앞에서는 실수하지 않으려 합니다.”조은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는 이제 두 사람이 다시 함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여전히 아버지로서 딸의 미래를 걱정했다.“은희와 만나고 싶다면 지금은 조건은 없어. 하지만 요구 사항은 몇 가지 있네.”진석은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은혁은 진석의 태도를 만족스러워했지만, 하는 말은 전혀 봐주지 않았다.“첫째, 결혼을 하게 되면 은희는 너의 집에 가지 않고 결혼식과 생활은 모두 B시에 있어야 해. 둘째, 조씨 가문은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없으니 결혼 때 충분한 축의금을 줘서 편하게 생활하게 할거야. 하지만 네가 결혼 후 벌어들인 모든 돈은 은희와 공동 재산으로 해야 하며 은희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간섭할 수 없어. 또한 아이를 가질지 안 가질지 은희의 선택을 존중해야 해.”이 조건들은 모두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그렇지만 진석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할 수 있습니다.”조은혁은 더 이상 그를 어렵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진석을 보며 잠시 마음을 정리했다.사실 그도 같은 도시에서 사업을 하며 진석이 처음부터 얼마나 힘들었을
하지만 조은희는 그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고 눈물이 맺힌 채 애처롭게 다시 물었다.“결혼했어요?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아직도 저를 좋아해요?”그녀가 물었을 때 처음보다 조금 더 고집스러워졌고 그 모습에 진석은 마음이 아팠다.진석은 그들이 헤어졌을 때 조은희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소녀였다는 것을 기억했다.하지만 지금 조은희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며 진석에게 묻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용감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 아팠다.진석은 더 이상 조은희를 놀리지 않았다.그는 조은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했다.“결혼 안 했고 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 약혼녀는 다리 치료를 마친 후 올 상반기에 결혼할 거야. 아직도 좋아해. 많이 좋아해.”...조은희의 눈가는 더욱 붉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그게 제가 진석 씨와 사귀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진석은 한 걸음 다가가 그녀 눈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조은희는 눈물이 많은 여린 여자가 되었다. 그는 예전 조은희가 항상 웃고 뒤에서 그를 끌어안으며 ‘진 선생님’이라고 달콤하게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때 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그 감정을 시작했다. 그 후 조은희는 해외로 떠났고 진석은 B시에 남았다. 그 뒤 1년 동안 진석은 조은희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에 대해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먼저 유혹한 것도 조은희였기에 더 화가 났다.하지만 그가 나중에 생각하니 조은희는 겨우 20살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첫사랑이었고 그녀의 청춘 그 전부였다. 게다가 그녀는 진심으로 진석을 사랑했기에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진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알겠지? 우리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먼저 학교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어야지. 도서관도 지어야 하잖아. 그곳도 우리가 갔던 곳이었지.”그는 조은희가 대답하기 전에
순간 조은희의 생각이 멈추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조은희는 진석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그가 굳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진석은 그녀를 차에서 이끌어 내리고 있었다.학교에서 준비한 식당은 학교 근처에 있었고 과거에 조은희가 진석과 함께 와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별도로 방을 예약하지 않았었다.익숙한 장소를 다시 찾으니 묘한 감회가 밀려왔다.진석과 조은희는 나란히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185cm인 남자와 170cm인 여자는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조합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 사이의 과거를 아는 학교 관계자들은 자연스럽게 몇 마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조은희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띠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어린 시절엔 철이 없었죠.”반면 최근 몇 년간 사업을 통해 단련된 진석은 여유로운 미소로 담담하게 응대했다.“과거의 인연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것으로 보여요.”그 말이 나오자 학교 관계자들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진석이 조은희 때문에 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 1억이 전부 조은희 덕분이었기에 학교 관계자들은 일부러 조은희를 진석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조은희에게 음료만 권하면서 농담을 건넸다. “잠시 후 진석이 취하시면 조은희가 집에 데려다줘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잖아.”조은희는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지만, 탁자 아래로 내려간 그녀의 손이 진석의 손에 잡혔다.진석의 손길은 매우 부드러웠고 남녀 간의 감정이 담긴 것 같지 않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듯 따스한 느낌이었다.조은희의 붉은 입술이 약간 떨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후 손을 빼냈고 진석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먼저 한 잔을 마셨다.교장은 여전히 예전의 그 교장이었고 진석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깊은 감회에 잠긴 듯 말했다.“많이 변했구나.”감상적인 분위
그날 밤 조은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조은혁은 그 시간 동안 새로 들인 취미인 거북이들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늙으니까 이런 거나 만지고 있지.” 그날 밤 조은혁은 거북이들을 모두 방생하며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들었다. 심지어 한 마리 거북이 등에 ‘진석’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으며 괜히 화풀이도 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유치하다며 혀를 찼다. 조은희는 이 모든 일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가 며칠째 자신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보라며 걱정하고 있는 것만 알았다. 일주일이 지나며 휴가가 끝났고 조은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 수업을 맡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자신이 진석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일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저녁 해 질 녘이었다. 조은희는 차 열쇠를 챙겼다. 차를 몰고 가 간단한 간식을 사서 집에 돌아와 드라마를 보며 먹을 계획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단순했고 굳이 그것을 깰 생각도 없었다. 며칠 전에 그 일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조은희의 얼굴은 노을빛에 물들어 더욱 맑고 투명해 보였다.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차 문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희야.” 그 목소리는 진석이였다. 조은희는 천천히 돌아섰고 그곳에 서 있는 진석을 보았다. 그는 몇몇 교직원들과 함께 기부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조은희는 학교의 오래된 도서관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한 기부를 논의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재회에 조은희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석의 눈빛은 깊고도 복잡했다. 이 학교는 그들이 과거에 함께 있었던 곳이었
휴게실에서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안겨 억눌린 채로 울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대신 가서 말해줄게요.” 조은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가 언니를 대역죄인이라고 할 거예요.” 진안영은 잠시 멈칫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 “진범 씨가 도와줄 거예요.”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더욱 몸을 기댄 채 계속 울었지만 오늘이 조우찬의 첫돌 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조금만 울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니까.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이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진안영은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자기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문 열어볼게요.” 진안영이 문을 열었을 때 예상대로 문밖에는 진석이 서 있었다. 진안영은 그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두 분이 얘기하세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진안영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 안은 여전히 조은희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녀는 왜 이렇게 슬픈 걸까. 다시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까? 아니면 이 몇 년 동안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던 걸까? 진석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5년 동안 떨어져 지낸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실 그들이 처음 함께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만남 이후 바로 헤어졌으니까. 조은희는 그때 겨우 18살의 어린 소녀였고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소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 조은희는 그를 품에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처음엔 진안영인 줄 알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진안영의 허리는 이렇게 강건하지 않았다. 분명히 남자의 허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온화한 듯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을 풍기
다음 해 8월. 조우현과 방유설의 아기가 첫돌을 맞았다. 방유설은 조우현에게 아들을 낳아주었고 그 아이의 이름은 조우찬으로 지어졌다. 이 이름은 큰아버지인 조진범이 지어준 것이었고 방유설은 이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편 조진범과 진안영의 막내아들의 이름은 조우진이었다. 조우찬과 조우진, 이 두 아이는 조씨 가문의 차세대 남자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가문에서 첫 아이는 여전히 진아현이었다.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한 작은 공주님으로서 이 작은 소녀는 조은희 고모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올해로 세 살 반이 된 진아현은 곧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조우찬의 돌잔치 날 조은희는 여전히 진아현을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치 못한 옛사람을 마주쳤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해 그녀가 타국으로 떠난 이후로 가끔 스쳐 지나갈 뿐 이렇게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몇 년이 지났을까. 조은희는 차마 생각하기조차 두려웠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듯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벌써 4, 5년이 된 것 같았다. 진석은 옆에 아무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행사장의 중앙에서 다른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조씨 가문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의 일은 잊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은희 진아현의 손을 잡고 있었고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진아현은 고개를 들어 고모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모, 저 사람 좋아해요?” “아니야.” 조은희는 순간 당황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진아현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왜 자꾸 그 사람만 보고 있어요? 물론 잘생겼긴 하지만 여자애들은 좀 더 절제해야 해요.” 조은희는 잠시 놀라며 물었다.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진아현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빠가 그랬어요! 아빠가 항상 엄마한테 말했어요. 잘생겼어도 자기만 보면 안 된다고. 여
유이안의 말이 끝나자 조씨 가문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박연희였다. 그녀는 서둘러 유이안에 물었다. “유설이 상태는 괜찮아?” 유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외숙모, 걱정하지 마세요! 유설 씨 상태는 좋아요. 그냥 조금 놀란 것 같아요. 우현이가 안에서 곁에 있어 주고 있어요.” 박연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조은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뜻밖에 아이라니. 그게 좋은 거지! 좋은 거야.” 두 사람의 부부 사이는 원래도 좋았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법이다. 게다가 조우현과 방유설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니 그 아이 역시 틀림없이 예쁠 거라는 생각에 조은혁은 그저 상상만으로도 격동되었다. 방유설을 닮은 귀여운 딸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지난 후 조우현이 방유설을 부축하며 나왔다. 방유설은 설탕물을 조금 마신 덕분에 정신을 차렸지만 집에 돌아가 며칠은 충분히 쉬어야 했다. 특히 임신 초기 3개월 동안은 모든 일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뜻밖에 찾아온 아이였지만 방유설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아직 평평한 아랫배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조우현의 목을 끌어안으며 마음속 깊이 행복이 가득 차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방유설도 한 번쯤은 행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꿈에서조차 감히 바랄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조우현이 깊은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가 약간 잠긴 채 말했다. “유설아,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어.”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조우현은 가끔은 철없고 유치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성숙했고 갈수록 더욱 성숙해졌다. 가끔 방유설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우현은 젊은 나이에 결혼한 편이었고 자신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모두 그녀에게 쏟아부은 것 같다고. 밤에 문득 잠에서 깨어날 때면 그는
몇 달 후 가을 10월쯤.방유설이 주연한 《청홍》이 대히트를 치며 영화 글러브 최우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 당일 날 조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모여 방유설을 응원하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가 부담을 느낄까 봐 다음에 받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계속 전했다. 방유설은 매우 감동했다. 진안영이 갓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마친 후 이렇게 와서 자신을 응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방유설은 진안영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난 이미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상을 받았어요.” 진안영은 원래 차분한 성격인데 방유설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우현이랑 있으면 사람이 이렇게 활발해져! 우현이가 사람을 잘 챙긴다고 네 아주버님이 자주 칭찬하셔.” 방유설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진안영과 얘기했다. 조은희는 사탕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평소에 연기하면서 다이어트해도 이럴 때는 사탕 하나 드세요. 나중에 여우주연상 받고 저혈당으로 쓰러지면 안 되잖아요.” 방유설은 사탕을 받아서 입에 넣었다. 우유사탕이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았다. 조은희는 살짝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딱 봐도 언니예요! 다른 여배우들보다 언니가 훨씬 이뻐요.” 조우현은 여동생을 흘깃 보며 말했다. “이건 외모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외모만 보고 결정되면 긴장감이 없잖아.” 조은희는 달콤한 사랑을 떠먹은 기분에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이때 최우수 남자주연상이 발표되었고 다른 영화의 남자 주연이 받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도원이었다. 그는 국내에 없어서 촬영 감독이 대신 상을 받으며 발언 중 여러 번 방유설을 언급했다. 갑자기 설원 커플 팬들이 들썩이며 이 장면을 모든 플랫폼에 퍼뜨렸다. 설원 커플 팬클럽에서 활동 중인 팬들은 102만 명에 달한다. 그렇게 인기 있는 커플이었다. 조우현은 아내의 직업을 존중하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그저 코를 머쓱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방유설은 가장 떠들썩한 설날을 보냈다. 3월쯤 그녀는 조우현과 결혼했다. 그녀의 웨딩드레스와 베일은 무려 3미터 길이였고 어르신들은 베일이 길수록 결혼이 오래 지속된다고 했기에 조우현은 3미터 길이의 베일을 디자인하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 약속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리자 방유설은 조진범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조우현에게 다가갔다. 이제부터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그의 가족도 그녀의 가족이 되어 함께 기쁨과 고난을 나누게 되었다. 10여 미터의 거리. 그 길은 마치 그들이 걸어온 4년과 닮아 있었다. 순백의 제단 앞에서 조진범은 방유설을 동생에게 넘기며 가볍게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대해라.” 조우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베일 너머로 방유설을 바라보았다. 오늘에 그녀는 순백의 모란꽃 같았다. 조우현은 부드럽게 방유설의 베일을 올리며 그녀에게 그의 눈을 바라보게 하며 결혼식을 마치려 했다. 그들은 이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목격할 것이고 잠시 후 서약을 마치면 그들은 진정한 부부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그것이 그가 그녀에게 약속한 평생의 로맨스였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그들의 감정은 깊었고 후회는 없었다! 방유설은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생중계가 이루어졌고 그녀는 생중계 수익은 모두 산간 지역의 아이들에게 기부했다. 네티즌들은 광고비를 통해 많은 수익을 올렸고 한 번의 생중계에서만 160억 정도의 이익을 얻었다. 네티즌들은 생중계를 보며 신나서 토론했다. [와! 조우현의 큰형도 잘생겼네.] [너무 아쉬워. 결혼을 너무 일찍 했어.] [여동생도 엄청 이쁘네! 이 가족은 다들 왜 이렇게 훈훈하지?] [저런 부모님이라니. 부러워!] 조씨 가문에 대한 댓글이 잠잠해지고 이번에는 유씨 가문으로 넘어갔다. [YS 그룹 대표도 너무 잘생겼잖아!] [영국에 모델 같아. 혼혈인가?] [100% 순수 본토! 얼굴이 완벽할 뿐!]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