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에는 조우현 외에도 10여 명이 있었다. 분위기는 매우 화끈했다.홍이현을 제외하고, 조우현과 방유설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 재벌 2세들은 방유설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방유설이 이곳에서 가장 예뻤기에 그녀를 붙잡고 계속 술을 먹이기도 했다.와인 세 잔이 그녀의 앞에 놓였다.명재호가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 20억을 쓰더니 와인을 가리키면서 방유설에게 얘기했다.“투자가 필요하다며? 이걸 다 마시면 이 수표를 가져가도 좋아. 내가 투자하는 거니까.”와인 세 잔을 다 마시면 만취가 되어 꽐라가 될 것이다.홍이현이 웃으면서 얘기했다.“유설이랑 계속 얘기하셔야 하잖아요. 이건 제가 마실게요. 그리고 3잔 더 마실게요, 어때요?”말을 마친 홍이현이 잔을 가져와 와인을 부었다. 하지만 홍이현이 마시려고 하자 명재호가 그녀를 막았다.그리고 차갑게 웃으면서 얘기했다.“내가 원하는 건 방유설이야. 네가 이 술을 마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홍이현은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 걱정했다. 방유설이 이 술을 다 마신다면 응급실에 실려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평소에 방유설에게 엄격하다고 하지만 방유설을 아끼는 것도 진심이었다.하지만 방유설이 얘기했다.“마실게요.”홍이현이 미간을 찌푸렸다.“너무 무리하지 마.”명재호는 훼방 놓는 홍이현을 내쫓아버렸다. 홍이현은 문 앞에 가로막힌 채 방유설의 이름을 불렀다. 방유설이 지금이라도 후회한다면 바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방유설은 웃으면서 얘기했다.“투자받으려고 온 거잖아요.”그렇게 말하는 방유설은 가슴이 아팠다. 조우현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지난날 동안 적지 않은 술자리를 거쳐왔고 수많은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길가에서 토하고 운 적도 많았고 추태를 부린 적도 많았다. 다만 오늘처럼 난감한 날은 처음이었다.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조우현은 그녀를 미워한다.그리고 이미 그녀를 더러운 걸레로 본다.그러니 지금 와서 거절한다고 해봤자 투자를 받을 기
룸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처음에는 누군가가 비속어를 내뱉었지만 그 상대가 조우현인 것을 알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조우현은 천천히 일어나서 그 와인 자국을 밟고 방유설 앞으로 왔다.그는 방유설을 내려보았다.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속눈썹마저 와인으로 물든, 하얀 쇄골에 붉은 와인이 고인,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방유설을 보면서 조우현은 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더니 방유설을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원하는 게 이런 생활이야? 즐거워? 돈 때문에 이렇게 짓밟히는 게 좋아?”방유설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사람들은 조우현과 방유설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눈치챘다.명재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우현 씨가 원한다면 방유설은...”“나한테 주려고요?”조우현은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네가 뭔데 내 여자를 양보한다는 식으로 얘기해?”명재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는 이 바닥에서 조씨 가문과 유씨 가문 사람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조우현은 다른 사람들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새 와인 몇 병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 자리의 사람들은 다 눈치가 빨랐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다.모델들은 얼른 와인을 자기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방유설 같은 꼬락서니가 될 때까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유설이 나중에 복수하러 올 것만 같았다.이제는 남자들의 차례였다.명재호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와인병을 들어 머리를 깼다. 붉은 피가 그의 머리에서 흘러내렸다.하지만 웃는 얼굴로 방유설에게 얘기했다.“제가 몰라뵀군요. 죄송합니다. 나중에 사죄의 의미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방유설은 명재호가 이러는 게 조우현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가볍게 대답했다.“괜찮아요.”명재호는 조우현의 눈치를 보았다. 조우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안고 방유설을 데려갔다....조우현은 방유설을 데리고 룸을 나섰다.홍이현은 밖에서 소리를 듣더니 놀랐다. 방유설은 이미 엉망진창이
주차장은 너무도 추웠다.조우현은 검은 세단의 문을 열고 방유설에게 얼른 타라고 눈짓했다.방유설은 와인으로 물든 옷 때문에 조우현의 차를 더럽힐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조우현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약간 불쾌해하면서 얘기했다.“타.”방유설은 그제야 조심스레 차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차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애썼다.그리고 조우현도 차에 탔다. 안전벨트를 매는 소리를 들으며 방유설은 놀라서 조우현의 귓가에 물었다.“우리 어디 가?”조우현은 안전벨트를 매고 고개를 들어 검은 눈동자로 방유설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대답했다.“호텔로 가. 왜, 연예계에서 굴러먹으면서 아직도 배운 게 없어? 내가 남자를 가르쳐줘야 하는 거야?”“난 그런 적 없어.”방유설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조우현은 자리에 앉아 앞을 보면서 무표정으로 얘기했다.“관심 없어.”방유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호텔로 향하는 길,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은 적막만이 흘렀다.10분 후, 세단은 5성급 호텔 주차장에 도착했다.차가 멈춘 후, 조우현은 고개를 돌려 방유설을 보면서 담담하게 얘기했다.“지금이라도 후회되면 가.”방유설은 시선을 내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술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더러워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예뻐 보였다.방유설은 아직 젊고 아름다웠다.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조우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문을 열고 내린 후 방유설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가 가장 좋은 방을 달라고 했다.프론트의 직원은 방유설을 보면서 연예인이 안타깝게 되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눈치는 빨랐기에 얼른 1박에 1300만인 스위트룸을 잡아주었다.조우현이 담담하게 얘기했다.“3개월로.”직원은 깜짝 놀랐다.3개월이면 거의 12억이다. 12억이면 집을 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길래 이러는 거지?’하지만 굴러들어 온 호박을 찰 수는 없다. 직원은 공손한 말투로 얘기했다.“그럼 할인해 드리겠습니다
방유설은 호텔 가운을 걸치고 욕실에서 나왔다. 가운이 헐렁하게 걸쳐져 그녀의 가늘고 작은 체형이 더욱 돋보였다. 침실에는 밝은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조우현은 옆 욕실에서 씻고 나와 넓은 침대 머리에 기댄 채, 호텔에서 준비해 준 잡지를 대충 훑어보고 있었다. 호텔 가운 대신 검은색 바지만 입고 있으니 그의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가 돋보였다. 방유설은 그의 몸에 맺힌 물방울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침대를 짚고 조심스럽게 그의 곁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기억을 더듬어 몸을 기울여 그의 입술을 조심스레 찾아갔다. 그러자 커다란 손이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며 자신의 쪽으로 강하게 당겼다. 곧바로 뜨거웠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방유설의 마음속에 다시 꽃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조우현의 반복된 욕망 끝에 둘은 몇 번이고 파도를 탔다. 모든 게 끝났을 때는 새벽 두 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방유설은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조우현은 여전히 체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들어가더니 샤워를 하고, 호텔에 들어설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방유설은 부드러운 이불을 몸에 두르고 그가 셔츠의 마지막 단추를 채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조우현은 당장이라도 떠날 사람 같았다. “지금 가려고?” 방유설이 본능적으로 물었다. 크리스탈 조명이 조우현을 비췄다. 조우현은 모든 일을 끝낸 것처럼 시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난 여기서 잠을 자지 않을 거야.” 방유설의 조그마한 얼굴에는 실망감이 드리웠다. 하지만 그녀는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일어나 배웅하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조우현은 그녀의 난처한 표정을 발견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배웅하지 않아도 돼. 내일 천천히 일어나서 떠나. 다음에 전화할게.” 이윽고 조우현은 방유설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자신의 번호를 입력한 뒤 전화를 걸어 저장까지 해두었다. 그러나 곧 자책의 표정을 지었다. 방유설
아주머니는 상황을 바로 눈치챘다. “조우현이구나! 안 그래도 너희 할머니가 계속 그 아이 얘기를 하시던데.”방유설은 억지로 미소 지었다. 아주머니는 방유설의 표정에서 두 사람이 행복한 연인 같지 않음을 느꼈다. 아무리 방유설네 가족과 친밀하게 지낸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고용된 입장이었기에 아주머니는 더 이상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방유설은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아주머니의 말을 곱씹었다. 할머니는 조우현을 알고 계신다.방유설과 할머니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살아남기도 힘든 상황에서 방유설은 할머니에게 매일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좋은 남자가 한 명 있어요. 조우현이라는 사람인데, 지금은 유학을 갔어요. 그 애가 돌아오면 우리는 결혼할 거고 우리 집도 더 행복해질 거예요.” 시력을 잃은 할머니는 조우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미소를 지으셨다. 조우현,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방유설은 씻고 난 뒤 할머니 방으로 갔다. 그녀는 돈을 벌어 지금의 47평 아파트를 빌렸고, 대형 테라스가 있는 가장 좋은 방을 할머니께 드렸다. 그러면 아주머니가 시력을 잃은 할머니를 돌보기도 편하니까 말이다. 아침이 되면 아주머니는 늘 할머니의 용모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햇볕을 쬐게 해드렸다. 할머니는 방유설이 밤새 집에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술을 많이 마신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방유설의 발소리를 듣자마자 걱정하며 나무라셨다. “돈은 먹고 살 정도면 돼. 왜 그렇게 무리하니! 우현이도 아직 안 돌아왔잖아. 그 애가 돌아오면 너희 결혼도 하고 애도 둘 정도 낳아." 방유설은 가슴이 저려왔다. 그녀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반쯤 웅크린 채 무릎에 얼굴을 대었다. 조우현은 방유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전날 밤 침대에서 조우현은 방유설을 룸살롱 여자 대하듯이 대했으며 어떠한 감정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성인 남녀 간의 본능적인 욕망만 남아 있었다. 피임도 철저히 했으며 모든 것이 끝난 후 방유설에게는
홍이현은 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방유설과 조우현이 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사실 방유설 같은 순진한 아이는 연예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가 부잣집 며느리가 되어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된다면, 홍이현은 그저 방유설이 자신을 잊지 말아 주길 바랐다. 하지만 조우현이 진심으로 방유설을 아끼기 전까지, 방유설은 아마 몇 번이고 더 마음 아파해야할 것이다.홍이현은 교활하게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모든 것을 조우현에게 투명하게 내보일 생각이었다. 만약 조우현이 방유설에게 진심을 주지 않는다면 방유설은 조우현이 그녀에게 준 3개월 치의 돈으로도 평생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연예계에서 오래 굴러온 홍이현은 온갖 더럽고 치사한 일들을 보아왔다. 그런 그녀는 문득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방유설이 괜찮은 삶을 살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조우현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방유설은 휴대폰을 움켜쥔 채 조용히 말했다. “촬영장에서 일이 조금 생겨서요. 아마 호텔로 못 갈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조우현은 얼굴이 굳었다. 그는 마침 근처에서 일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조우현은 바로 방향을 틀어 촬영장으로 향했다. 그 시각, 홍이현은 방유설과 여배우의 갈등 한가운데에 있었다. 감독은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여배우를 의식하며 편을 들어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연기는 진지하게 해야 해요. 대본에 있는 건 진심으로 표현해야죠.” 감독의 말에 홍이현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요! 그럼 당신이 한번 직접 연기해 보든가, 아니면 저 아줌마한테 해 보라 그래요!” 감독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조금 더 예의를 차리세요.” 그러나 홍이현은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예의? 우리 유설이가 뒷배가 없다고 이렇게 무시하는 거죠? 뭐, 저 늙은이는 B급이지만 그래도 연예계에서는 공주라 이거죠? 좋습니다. 두
방유설은 조우현의 품에 안겨 있었다.그녀의 코끝에는 조우현의 남성적인 향기가 스며들었다. 익숙하지만 이전보다 더 깊고 성숙한 느낌의 향기였다.방유설은 머리를 조우현의 품에 깊숙이 파묻었다.눈물이 나오려고 했기 때문이다.결국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부상을 입었을 때도 울지 않았고, 홍이현이 조현아와 싸울 때도 울지 않았다.그러나 조우현의 무심한 듯 다정한 태도에,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방유설은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나지막이 말했다.“우현아, 아직 나를 신경 써주는 거 맞지?”조우현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그는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방유설, 착각하지 마. 네가 그 짓을 했는데 내가 아직도 너한테 감정이 있을 것 같아? 우리 관계가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그는 말끝에 더 가혹한 말을 덧붙였다.“내가 너를 걱정하는 이유는, 네가 하다가 중간에 쓰러질까 봐 그런 거야.”방유설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한참을 멍하니 있던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알겠어.”조우현은 방유설의 뻔뻔함에 혀를 찼다.아까 그녀를 차에 태울 때, 방유설은 그의 목을 살며시 감았다.그런 방유설의 모습은 너무나도 연약해 보였다. 방유설의 행동 안에는 연기인지 진심인지 모를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방유설은 조우현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조우현, 나를 미워하지 말아줘. 제발.”‘나를 미워하지 말고 너 자신을 더 사랑해 줘. 그리고 세 달 뒤 네가 나에게 질린다면, 그때 헤어지자. 좋은 여자 만나서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줘.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하지 말고.’그러나 이런 말은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그저 조용히 조우현을 바라볼 뿐이었다.조우현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방유설, 이번엔 또 무슨 속임수야? 같은 수법으로 날 두 번이나 속일 수 있을 것 같아?”방유설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조심스럽게 그의 뜨거운 목에 얼굴을 붙
조우현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방유설은 정말 작고 가녀렸다.방유설은 조우현이 한 손으로 충분히 감쌀 수 있을 만큼 작았고, 부드럽고 연약한 몸이 그의 가슴에 꼭 붙어 있는 느낌은 꽤 오묘했다.그 순간, 묘한 감정이 스며들었지만, 조우현은 그런 감정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여의사는 웃으며 말했다.“바로 이렇게 해야죠!”여의사는 수다스럽지만 전문적이었다.의사는 곧 방유설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여의사가 상처에서 도자기 조각을 뽑아낼 때, 방유설은 조우현의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조우현은 시선을 내려 방유설을 쳐다보았다. 고통에 몸을 떠는 방유설은 마치 상처 입은 새처럼 가여워 보였다.조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 손으로 방유설의 어깨를 잡고 방유설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그 순간만큼은 어렴풋한 연민이 느껴졌다....병원을 나선 후, 방유설은 그가 자신을 호텔로 데려갈 줄 알았다.그러나 예상과 달리 조우현은 방유설을 예전 학교 근처의 오래된 거리로 데려갔다.그곳은 학생들이 자주 찾는 작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였다. 그들은 젊은 시절 몇 번이나 이곳을 찾았던 추억이 있다.방유설이 차에서 내리며 잠시 멈칫하자 조우현이 안전벨트를 풀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왜? 이곳이 너 같은 대스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방유설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아니야. 그냥 네가 여길 다시 올 줄 몰랐어.”조우현은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사실, 조우현은 방유설과 함께 있을 때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그날 밤 호텔 스위트룸에서 몇 시간 동안 함께했지만, 주고받은 대화는 열 마디도 되지 않았다.그들은 근처의 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이윽고 조우현은 방유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고기를 두 판, 채소 몇 가지를 시켰다.그리고 방유설에게는 라임차를 주문해 주고 본인은 평소처럼 따뜻한 물을 주문했다.고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둘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조우현의 표정은 한치의 변화도 없었다. 고기가 익기 시작했을 때,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