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서는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보면서 가볍게 말했다.“혼인을 잃었다고 해서 사업까지 잃을 순 없죠. 저 괜찮아요, 선배... 얼른 가요!”그날 저녁 연회는 뜻밖으로 아주 성공적이었다.조은서는 업계 거장들 앞에서 양축을 연주했는데 짧은 시간 내에 업계에서 제일 빛나는 샛별이 되었다. 김재원은 득의양양해 하면서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줬다.조은서는 술을 적지 않게 마셨다.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위가 불에 타는 것처럼 아파왔다.기사가 그녀를 별장으로 데려다주면서 특별히 집에 하인에게 사모님이 몸이 불편해하니 해장차를 끓여 위층에 올려다 주라고 말했다.하인은 조은서를 잘 대했는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해장차를 만들었다.하지만 하인이 이 층으로 올라갔을 때, 조은서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식은땀을 흘리며 소파에 쓰러져있었다.깜짝 놀란 하인은 조은서를 가볍게 흔들어 깨웠다.“사모님, 어디 편찮으세요? 대표님 불러올까요?”조은서는 너무 아파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아퍼... 너무 아퍼...’하인은 조은서가 아파하는 걸 보면서 당황하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했다. 그녀는 이내 유선우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전화를 몇 번 걸어보았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하인은 어쩔 수 없이 아래층에 가서 기사를 불러와 함께 조은서를 차에 태웠다.조은서는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었지만 병원 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그녀는 YS 병원으로 가지 않겠다고 중얼거렸다.그녀는 유선우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기사 김병훈은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한림병원으로 갔다. ‘한림병원에 사모님이 아는 분이 계시는 것 같은데...’‘아는 사람이 있으면 일이 쉬워지지.’하지만 그들은 얼마 전에 백아현이 가까운 곳으로 찾아간 병원이 바로 한림병원이라는 걸 생각도 못 했다.하늘이 사람을 놀리는 것 같았다.검사 해보니 조은서는 급성 위경련 때문에 아파한 것이었다. 음주와 정서 기복이 심한 탓에 위경련을 일으킨 것이었다.그녀는 약을 먹고 병원에서 하룻밤 묵은 후,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유선우는 환자복을 입고 있는 조은서의 얼굴에는 병색이 맴돌았고 그녀의 눈에는 절망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낯선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부드러운 목소리로 ‘선우 씨, 전에 선우 씨를 좋아했던 마음을 몇 년, 심지어 몇십 년이 되어야 되찾아올 수 있는데...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요?’라고 말했었다.그는 기다리겠다고 말했었는데 진심이었다.하지만 그가 후에 그녀의 진심을 진흙탕에 버린 것도 사실이었다.유선우가 조은서를 한참 바라보다가 힘겹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조은서.”그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녀가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녀는 절망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서 온몸의 힘을 다해 말했다.“당신이 조금이나마 날 좋아한다는 말을 믿었던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요! 아직도 그날 내가 당신을 해쳤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 마음속에서 대체 난 어떤 존재예요? 당신이 날 좋아한다는 말과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믿었었다니. 유선우 씨, 당신이 속셈이 많은 거예요, 아니면 내가 너무 멍청한 거예요?”“난 당신이 그냥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하지만 그냥 질리지 않은 것이었군요. 유선우 씨, 진짜 묻고 싶은데, 대체 언제쯤이면 질려서 날 놔줄 거예요? 난 더는 놀아줄 힘이 없다고요!”...그녀는 사실 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을 들은 그녀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감정이 없다고 해도 삼 년 동안 잠자리를 가졌는데 조금이나마 감정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삼 년이 지나도록 그녀는 그에게 있어 아직 질리지 않은 노리개에 불과했다. 아주 천박한 여자일 뿐이었다.유선우가 그녀를 잡으려고 했는데 조은서는 전보다 더 큰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환자복을 입고 뒤로 몇 발 물러서는 그녀는 연약하면서도 냉정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채 그를 바라보았는데 울면서 미소를 잊지 않았다.“내 몸에 손대지 마요... 너무 더러워서
반 시간 후, 조은서는 별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차에서 내리면서 우산을 쓰지 않았다. 빗물은 그녀의 몸과 얼굴을 마구 적셨고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세례라고 생각하면서 비를 맞았다. 그녀는 그대로 하얀 카펫을 밟았는데 카펫 위에는 얼룩이 남았다.하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위해 생강차를 끓여주러 갔다.조은서는 방으로 올라가자마자 벽에 걸린 웨딩사진을 보았다.전에 유선우가 촬영을 거부해서 그녀가 뻔뻔하게 1억 육천만 원을 내고 합성한 사진이었다. 그녀는 전에 사진을 보면서 유선우가 자신을 사랑하기를 수없이 기대했다.하지만 지금은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조은서는 침대에 올라 그 사진을 떼어냈다.너무 급하게 떼어내는 바람에 손이 액자에 긁히면서 손등에 긴 상처가 생겨 피가 흘렀다. 새빨간 피가 한 방울씩 떨어졌는데 아주 섬뜩했다.하지만 조은서는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듯 액자를 바닥에 팽개쳤다.그리고 그녀는 화장대에 앞에 천천히 앉았다.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아주 초라했다.조은서는 조용히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온몸을 떨고 있었는데 머리가 비에 젖어 얼굴에 붙어 있었고 옷도 젖어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남편한테 버림받은 여인처럼 비참해 보였다.아니, 버림받은 것보다 더 몰골이 사납고 처참했다.버림받았다는 건 적어도 전에 사랑을 받았었다는 걸 의미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를 6년 동안 좋아해 왔는데 돌아오는 건 ‘질릴 때까지 가지고 놀 거야!’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조은서는 시선을 내려뜨리고 서랍을 천천히 열었다. 서랍 안에는 청춘 시절 그녀의 요동치는 마음을 기록한 일기장이 있었다.그녀는 피 묻은 손으로 일기장을 꺼냈다.일기장을 펼친 그녀는 전에 유선우를 향한 사랑하는 마음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서 자신의 멍청함을 되뇌었다.「신혼 첫날 밤에 날 매우 난폭하게 대했지만 언젠가는 내가 그날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그때 가면 날 부드럽게 대하고 날 좋아하게 될 거야!」
유선우는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화장대를 만졌다.은서가 일기장을 가져갔다.순간 테라스에서 타는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선우는 움찔하더니 뭔가 떠오른 듯 빠른 걸음으로 테라스에 갔다.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건 그들의 결혼사진이었다. 은서가 그 일기장을 태우는 것도 보았다.은서는 그 자리에 앉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치 쓸모없는 물건을 태우는 것 같았다.“너 돌았어?”선우는 생각하지도 않고 앞으로 달려가 그 일기장을 뺐었다. 심지어 아무런 보호 조치도 없이 맨손으로 가져왔다. 고작 일기장 하나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불은 이미 꺼졌지만, 일기장은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선우는 화상을 입은 손바닥은 신경 쓰지 않은 채 급하게 일기장을 펼쳐보았는데 눈에 들어온 건 마침 그 한마디가 있는 페이지였다.“선우 씨는 영원히 날 안 좋아해!”심장이 저릿해 났다.선우는 고개를 들고 은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이걸 태우는 건 지금까지의 마음도 버리겠다는 뜻이야?”“그래요, 버릴래요.”은서도 붉게 핏발이 선 눈으로 선우를 보았다. 둘은 마치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은서는 낙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젠 당신도 버릴 거예요! 유선우 씨, 앞으론 당신에 관한 모든 건 갖고 싶지 않아요!”선우는 얇은 셔츠 한 장만 달랑 입고 있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서 비가 내렸다.빗방울은 선우의 몸을 치고 갔는데 그건 마치 바늘처럼 몸에 꽂히곤 했다.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르고 싶은 정도였다.그는 은서 눈에 담긴 실망을 보자 처음으로 당황함을 느꼈다.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도우미는 침실을 청소했고 은서도 샤워한 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점심이 되었을 때 도우미가 밥을 가져왔지만, 그녀는 입맛이 없다고 하면서 돌려보냈다.-선우는 아래층에서 담배를 피웠고 그의 앞에는 거의 탄 액자와 일기장이 놓여있었다.이건 은서가 버리려 했던 거였다.옅은 연기 속에서 선우는 조용히 그 두 물건을 보았다. 실
“그럴 때마다 난 생각해요. 당신이 날 안고 있을 때 내가 흠뻑 빠져든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뿌듯해할지. 분명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저 여자 정말 싸구나, 손끝만 까닥거려도 멍청하게 속는다고 말이에요.”“유선우 씨, 난 예전에 당신을 좋아한 건 사실이지만 앞으론 절대 그러지 않을 거예요!”...은서는 이렇게 말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졌고 가슴도 아팠다.선우는 지금 매우 피곤했다.그리고 성격이 좋은 남자도 아니었다. 이 정도로 자신을 낮추어가며 달랬는데도 은서가 받아주질 않으니 그는 눈가를 문지르며 물었다.“그럼 뭘 원해? 서로 서먹하게 계속 보낼 거야, 아니면 이혼할 거야? 조은서 너 잊지마! 네 오빠가 박연준이 소송 도울 것만 바라는 거. 그런데 네가 날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은서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 동안 소리를 내지 않았다.선우는 은서의 속셈을 눈치챘다. 그녀는 선우를 떠나고 싶었고 심지어 평생 보고 싶지 않았다. 일기장도 태웠는데 과연 감정이 남아 있을까.하지만 그녀에겐 약점이 있었다.조은혁이 바로 그 약점이었다.은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선우는 화를 눌러 참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는 몸을 돌렸다.흑발이 베개에 흩어졌고 하얀 얼굴엔 운 흔적이 남아있었는데 연약하고 가여워 보였다.선유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를 만지면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조은서, 난 널 갖고 논 적이 없고 너랑 떨어지고 싶은 마음도 없어. 그땐 홧김에 했던 말이야.”은서는 그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애인이 있는 남편,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녀를 채 갖고 놀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그들의 믿음은 이미 산산조각 났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었다.은서는 몸을 다시 돌렸다. 그리고 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듣고 싶지 않아요!”충분히 자세를 낮추었다고 생각한 선우는 은서가 아직도 자신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자 더는 달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그래서 그녀의 몸을 다시 자신 쪽으로 돌려 한쪽 손으로 그녀의 얇은
따귀 하나가 선우의 얼굴에 내려앉았다.선우는 행동을 멈추고 베개 위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은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실크 잠옷은 어깨 아래로 미끄러지면서 얇고 하얀 어깨를 드러내었는데 더 연약한 아름다움을 보태주었다.“이젠 때릴 줄도 아네?”한참이 지나서야 선우는 혀로 입 안을 쓸었고 눈동자에는 읽을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로 매우 부드러웠다.선우는 은서의 손을 꽉 잡아 새하얀 베개 위에 눌렀다. 하지만 일시에 다른 행동은 더 하지 않았다.은서의 코끝은 붉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선우를 보며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유선우 씨, 지금 뭐 하려는 거예요? 잘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면 이거 좀 놔요!”하지만 선우는 은서를 놔주지 않았다.그는 은서의 연약한 모습을 보면서 한참이 지나서야 반쯤 쉰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다시 시작하겠다고 한 말은 진심이었어.”은서는 얼굴을 피하면서 다시 베개에 묻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우리 사이엔 아이도 없을 거고 다른 그 어떤 것도 없을 거예요! 난 계속 당신한테 놀아날 자신도 없고 계속 낭비할 시간도 없어요! 우린 정말 끝이에요!”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더는 몸부림을 치지 않았다. 그저 연약하게 그의 몸 아래에 누워 반항하지 않으면서 가만히 있었다.지금 이때 선우가 정말 그녀의 몸을 가지려고 한다면 그녀는 막을 수 없었다.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를 생각해야 했다.선우의 그 채 놀지 못했다는 한마디에 모든 수고를 수포로 되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싫어도 유선우 아내 역할은 계속 해야 했다.굴욕적일 뿐 더 이상 사랑은 없다.마음을 꽁꽁 닫을 생각이다.이 점에 대해서 선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를 품을 수 있었고 심지어 아이도 만들 수 있었다. 아직 젊었기 때문에 정자의 질도 좋았고 은서도 쉽게 임신할 수 있다. 정 안 된다면 여러 번 더 하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정말 그렇게 했다간 은서와의 관계는 정말 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는
“당신 혼자 준비해요!”은서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유선우 씨, 앞으로 당신의 사생활에 연관된 건 절대 손대지 않을 거예요. 옷과 액세서리는 돈 주고 사람을 고용해서 시켜요. 정 안 되겠으면 높은 비용으로 진 비서를 집에 불러서 시키던지요.”선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이런 사적인 일에 다른 사람이 손대는 건 싫어.”침실은 정적이 흘렀다.한참이 지나서 은서는 입을 열었다.“그럼 불편한 대로 있어요. 어쨌든 난 하지 않을 거니까. 만약 이렇게 많은 돈을 써가며 내 생활을 부담하는 게 너무 쓸모없다고 여기면 이혼해도 좋아요. 난 굳이 이 YS 그룹 사모님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선우는 그저 조용히 서 있었다. 은서의 말을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아내로 남을 수는 있지만 예전처럼 그의 시중을 들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진 비서가 그들의 생활에 끼어드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이젠 정말 그를 남편으로 보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그는 여자 한 명 정도 더 놀든 아니면 덜 놀든 별로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선우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꿈 깨!”말을 마치고 그는 드레스룸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선우가 떠날 때 윤아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선우는 병원에 간 후 오래 있지 않았다.계속 우는 아현을 보니 선우는 귀찮았다. 누구든 이렇게 숨 막히는 병실에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게 아주 호화롭고 고급스럽다고 해도 불과 병실일 뿐이었다.병원에서 나와 그는 차에 앉았다.조수석에는 봉지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그 안에는 이미 타버린 결혼사진과 너덜너덜해진 은서의 일기장이 있었다.하지만 선우는 가장 훌륭한 복구사를 구해 직접 가져갔다.우아하고 고전 느낌이 가득한 다실에선 그윽한 차향이 맴돌았다.선우는 반듯이 앉아 맞은 쪽에 있는 복구사를 쳐다보았다.복구사는 돋보기를 들고 그 두 물건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안경을 벗고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이 두 물건은 소장 가치가 있는 게
선우가 저택에 돌아왔을 땐 이미 열한 시가 되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도우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주인님, 돌아오셨어요? 야식이라도 준비해 드릴까요?”선우는 외투를 벗고 셔츠 단추를 두 개 푼 후 담담하게 말했다.“면 한 그릇 끓여줘요. 사모님은요, 잤습니까?”도우미는 공경한 태도로 그의 외투를 받으며 조용히 말했다.“저녁 무렵에 아래층에 내려오셔서 뭐 좀 드시고 악기 연습을 잠시 하셨어요. 그 후엔 내려오지 않으셨어요.”선우는 담담하게 알겠다고 말했다.도우미가 떠난 후, 그는 식탁에 걸어가 앉았다. 손을 들어 창문을 열고는 담배 한 대를 천천히 피웠다.연한 색의 연기를 보면서 그는 전에 은서가 음식이나 디저트를 만들고 그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던 게 떠올랐다. 은서는 그가 조금이라도 맛보길 바랐고 칭찬 한마디를 해주면 엄청나게 기뻐했었다.예전의 식탁은 썰렁했고 지금의 식탁도 썰렁했다. 다만 지금 식탁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로 바뀌었을 뿐이었다.그는 너무 깊이 기억 속에 빠져든 나머지 도우미가 면을 들고 다가왔을 때 귀신에게 홀린 듯 한마디 했다.“앉아서 같이 먹어.”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없었다.고개를 들고 보니 곁에 서 있는 사람이 은서가 아닌 도우미였다는 것을 발견했다.선우는 순간 눈을 감고 아픔이 나아지길 기다렸다.아마 이 불빛이 너무 눈부셔서 그렇다고 생각했다....면을 다 먹은 후 그는 침실에 올라갔다.그의 발걸은 소리는 매우 낮았다. 그래서 어두컴컴한 침실에서 자고 있는 은서를 깨우지 않았다.마음속이 허전해서인지 오늘따라 은서를 안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이때 은서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전해졌다.“자고 싶어요?”선우의 몸이 조금 경직되었다.하지만 은서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실크 잠옷의 끈이 가볍게 풀리자 하연 여인의 몸이 나타났고 검은색 속옷도 훤히 드러났는데 희미한 불빛 속에서 더 아름다워 보였다.선우의 그 방면 욕구는 늘 강했다.하지만 지금은 그저 은서를 안고 싶었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