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와 아람은 바로 돌아섰다. “아린아!”아람은 신나서 눈을 부릅떴다. 경주의 손을 놓고 홀로 서 있는 아린에게 달려가 따뜻하게 안아주었다.“얼마나 기다렸어? 들어가지 그래. 아줌마 계셔. 널 알아서 들어오라고 했을 거야. 왜 여기서 기다려.”“언니, 미안해. 갑자기 찾아와서 언니와 형부를 방해했어.”아린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늘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바보야, 무슨 소리야. 언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아람은 아린의 부드러운 얼굴을 만지며 웃으며 말했다.“네 형부가 전에도 얘기했었어. 바쁜 시기가 지나면 너랑 같이 나가 놀자고, 세계여행도 좋아!”아람의 말을 듣자 경주는 깜짝 놀라더니 가슴이 따뜻해지며 미소를 지었다. 아린은 경주의 신분을 인정하였지만, 아람에게 직접 들으니 그 행복감과 만족감은 전혀 달랐다. 아람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차피 네 형부 돈이야. 네 형부는 부자야. 블랙 카드를 막 긁어도 돼. 이참에 혼수를 더 벌어와야겠어.”경주는 입꼬리며 사랑스럽게 웃었다.‘다른 사람한테는 정말 대범하네. 나한테면 꿍꿍이를 품네.’비록 경주에게 블랙카드가 있지만, 아람의 오빠들에게도 가득하다. 그래도 아람은 경주의 돈을 쓰겠다고 한다.‘딸은 집의 웃음꽃이라더니, 시집을 가도 가족을 향한 마음은 변화가 없네.’하지만 경주는 기꺼이 하고 싶다. ‘돈을 남겨서 뭐 해. 와이프에게 쓰는 거지.’“무, 무슨 혼수야. 언니, 농담하지 마.”아린은 쑥스러워서 얼굴을 붉혔다.“농담은 무슨,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야.”아람은 정색하며 눈을 깜빡였다.“너랑 수해의 결혼도 곧 일정을 잡아야지. 결혼도 엄청 빠르게 지나갈 거야. 미리 준비하는 것도 좋아.”이 말을 듣자 아린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가에 알 수 없는 슬픔의 흔적이 감돌았다.“어? 혼자 왔어? 수해는 같이 안 왔어?”아람은 의아하며 물었다.“언니를 찾으러 왔다는 걸 모르고 있어. 내가 얘기하지 않았어.”아린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반짝이며 머뭇거렸다. 경주는 아린이
아람의 허리를 잡고 있는 경주의 손은 천천히 꽉 잡았다. 입꼬리도 서서히 올라가면서 사랑스럽게 아람을 바라보았다.‘아람은 매일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네. 내일 새로운 것을 하고 있어. 아람과 있으면 평생 지루하지 않겠네.’“언니, 알아, 언니가 나를 위로해 주고 있잖아.”아람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엄청난 죄책감에 눈시울을 붉혔다.“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면 언니는 그 일에 휘말리지 않았을 거야. 윤씨 가문의 복수도 당하지 않았을 거야. 다 내 탓이야. 내가 너무 나약하고 멍청해서 이렇게 된 거야.”말을 하면서 수정 같은 눈물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떨어져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람은 경주에게 눈치를 주었다. 경주는 멍해지더니 급히 테이블로 몸을 기울여 휴지를 뽑아 아람에게 주었다. 순간 아람은 말문이 막혔다.‘왜 나한테 줘, 내가 우는 것도 아닌데. 아린한테 주면 되잖아.’아람은 직접 아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음이 무거워 한숨을 내쉬었다.“아린아, 사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야. 내가 정의를 찾지 못했고, 복수도 해주지 못했어. 윤진수는 결국 풀려났잖아.”이 말을 내뱉자 아람도 울컥했다.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참았다. 아린이 있어 경주는 감정을 억지로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람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이 팽팽해지며 화를 표현했고, 싸늘하고 날카로운 분위기가 맴돌았다.아린은 촉촉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연신 흔들었다.“충분해, 언니. 정말 충분해. 이 일은 여기까지 하자. 계속하지 마.”“여기까지 하자고? 왜 여기까지 해?”아람이 주먹을 꽉 쥐가 뼈마디에 소리가 났다.“윤진수가 널 괴롭혔고 수해를 중상을 입힐 정도로 때렸어. 수많은 소녀를 해쳐서 평생 굴욕적인 트라우마 속에 살고 있어.”“화가 나도 얘기할 용기가 없어. 윤씨 그룹은 권력으로 사람을 압박했어. 복수를 당할까 봐 자신과 가족을 위해 참고만 있어.”“난 지금 피해자들의 유일한 희망이야
경주와 아람은 깜짝 놀라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아린아, 무슨 소리야?”아린은 정의에 따른 침착함과 결단력이 있었다.“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든, 윤진수가 나중에 법정에 서 있든, 내가 나서서 증언할게. 윤진수가 법의 제재를 받게 하고, 그 여자애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더 큰 압박이라도 난 견딜 수 있어.”이 순간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아린은 자기 아이디어를 말하면 아람과 경주가 강력하게 지지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경주와 아람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진수가 날 괴롭히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간 미수야. 내 신분으로 나서서 증언하면 커뮤니티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어. 윤씨 그룹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그럼 무슨 일이 있어도 윤진수에게 괴롭힘을 당한 여자애들에게 정의를 되찾을 수 있어. 윤씨 그룹이 윤진수를 지켜주고 싶어도 압력으로 인해 할 수 없을 거야!”“하지만 이렇게 하면 무슨 끔찍한 위험이 있을지 생각해 봤어?”아람은 눈썹을 찌푸리며 부모보다 더 엄한 어조로 말했다.“네가 윤진수한테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이 터지면 오히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기회를 잡아서 사실을 왜곡할 수 있어. 심지어 미친 듯이 과장할 수 있어.”“그때 너와 연서 이모는 몰림을 당할 수 있어. 그런 압력을 네가 견딜 수 있다고 해도 연서 이모는 견딜 수 있어? 게다가 네가 나선다고 해도 윤진수는 그저 강간 미수야.”“3년, 5년만 있으면 다시 풀려나서 사람을 해칠 거야. 철저하게 끝내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야.”“윤성우도 온갖 방법을 생각해서 널 모함할 거야. 그때 네가 어떻게 상대해? 수해는 널 어떻게 도와주고 지켜주겠어? 평생 윤씨 그룹 그 자식들과 엮이고 싶어?”초연서와 수해를 생각하자 아린의 가슴이 몹시 아팠다. 하지만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윤진수에게 괴롭힘을 당한 여자애들이다. 구만복의 딸로서 아린은 아람과 경주처럼 훌륭한 가족의
아린의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차갑게 했다. 아람은 눈을 부릅떴다. 순간 억울함이 가슴에 휘몰아쳤다.“아린아, 그게 무슨 뜻이야? 그 말은 난 그저 가족들만 걱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신경 안 쓰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거야?”두 자매는 어렸을 때부터 서로에게 떨어지지 못할 정도로 친했다. 오늘 밤은 처음으로 싸운 것이다. 경주는 조마조마하여 가슴이 쿵쾅거렸다.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 씁쓸했다. 그저 아람의 옷깃을 가볍게 잡았다.“아람아, 아린이가 그렇게 생각하겠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내가 생각이 많은 거야? 그럼 해명해 봐, 무슨 뜻인지.”아람은 경주의 애타는 손바닥에서 옷깃을 잡아당겼다. 경주는 가슴이 떨리며 씁쓸하게 입술을 오물거렸다. 외부인들이 악플을 달며 비아냥거려도 아람은 침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아람이 제일 참지 못하는 건 가족 간의 오해이다. 그건 칼로 뼈를 긁어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며칠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신이 지쳐서 마침내 참지 못하고 사랑하는 동생 아람에게 화를 냈다.“언니, 아직 내 문제에 대답하지 않았어.”예상치 못한 아린 역시 포기를 할 줄 모르는 성격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다 한번 또박또박 물었다. “만약, 내가 언니 동생이 아니라면 여전히 날 말렸어?”“만약 네 질문이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묻는 거라면, 난 대답해 주지 않을 거야.”아람은 최선을 다해 화를 억누르며 목소리를 낮춰 경주에게 말했다.“경주야, 차 준비해서 아린을 데려다줘.”...두 자매는 안타깝게 헤어졌다. 아린이 떠난 후 아람은 부엌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 냉수 한 병을 원샷하며 화난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심장 끝에서 치밀어오는 불길은 꺼지지 않았고 혈압도 치솟고 있다.‘뭐야, 이유희 그 자식의 방법이 소용없잖아. 한 병 더 마셔 보자!’아람이 냉수 한 병을 더 마시려는 순간, 경주의 단단한 팔이 아람의 머리를 지나 쾅 하는 소리와
“음, 왜 갑자기 이래. 아줌마랑 마주치면 너무 부끄럽잖아.”아람은 부끄러워 입술을 오물거렸다.“남극에서 뛰어내릴까 봐 걱정돼서 화 풀어주는 거야.”경주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때, 기분은 좀 나아졌어?”“괜찮아. 하지만 여전히 좀 억울하고 숨 막혀.”아람은 답답해 나서 눈시울을 붉히며 킁킁거렸다. 그 불쌍한 표정에 경주의 가슴이 아파 났다. 경주는 두 손으로 아람의 붉어진 얼굴을 어루만졌다. 손바닥은 아람의 체온처럼 뜨거웠다.“네가 화내니까 얼굴이 열난 것 같아. 두 자매가 사이도 좋은데, 윤씨 가문 그 자식들 때문에 싸우는 건 의미가 없어. 화 풀어, 응?”“내가 어떻게 아린과 싸우겠어.”아람은 답답하여 고개를 숙였다.“난 나한테 화내는 거야. 윤진수에게 복수도 못 하고, 숨 쉴 기회를 주었어. 내가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야. 누구 탓을 하겠어. 그냥 내 탓이야.”경주는 가슴이 아파 눈썹을 찌푸렸다.“아람아, 그렇게 말하지 마. 너랑 상관없어.”“아린이 나보고 사심이 있다고 해. 맞아, 사심이 있어. 억울한 손녀들에게 정의를 찾아주고 싶고, 가족을 지켜주고 싶어.”“아린은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연서 이모의 보호를 받아서 학교를 다니고 공부하는 것 외에는 세상의 어둠과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본 적이 없어.”“아린은 구씨 가문 아가씨야. 고귀한 신분은 아린을 도와줄 수도 있고, 해칠 수도 있어.”아람은 숨을 헐떡였다. 심장 끝이 날카로운 핀셋에 꼬집힌 것처럼 느껴졌고 너무나 아팠다.“아린은 생각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난 기억하고 있어. 아린의 꿈은 배우야. 만약 앞으로 연예계에 들어서면 강간은 치욕적인 문제가 될 거야. 평생 벗어날 수 없어.”“앞으로 구아린 이름을 언급하면 사람들은 이 문제를 떠올리겠지. 그럼 아린과 윤진수의 이름은 평생 엮일 거야.”“그럼 연예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어떻게 감당하겠어?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 윤진수를 처리해도 아린은 평생 손가락질 받을 거야!”
“우는 게 좋아, 참는 것보다 우는 게 나아.”경주는 아람의 촉촉한 얼굴을 꼬집었다.“두 자매는 오늘 밤에 감정을 진정시켜. 내일 시간을 내서 아린을 만나서 제대로 이야기해 봐. 분명 완벽한 방법이 있을 거야.”아람의 착한 의도를 온 세상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경주는 이해했다. 울보가 된 아람은 눈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배고파, 밥 좀 해줘.”경주는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왼손을 뒤로하며 인사를 했다. 순간 우아하고 잘생긴 집사로 변신했다.“네, 아가씨.”...다음 날, 경주와 아람은 해문으로 가서 아린을 찾았다. 하지만 아린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린은 초연서에게 연락했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학교로 돌아가고, 이틀 동안 기숙사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와 아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했다.아린은 이미 졸업했고, 짐까지 집으로 옮겼는데, 학교에서 머물면서 해결할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아람아, 아린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초연서는 긴장하며 물었다.“괜찮아요, 이모. 나랑 경주는 아린을 데리고 나가 놀고 싶었어요. 산책도 하면서 기분 풀어주려고 했는데 바쁜 줄 몰랐어요.”아람은 초연서가 걱정할까 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아람아, 네가 시간을 내서 아린과 있어 줘서 너무 고마워.”초연서는 걱정이 가득했다.“윤진수가 풀려난 후 아린은 계속 불면증에 시달렸어. 밥도 잘 먹지 않았어. 괜찮다고는 하지만 아린의 마음이 안 좋다는 거 알아.”그 말을 듣자 아람은 가슴이 아프며 자책했다. 어제 아린에게 한 말들이 후회되었다. 차분한 태도 속에 아린이 처음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피해자로서 아린은 그 누구보다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했다. 하지만 오히려 아람을 걱정해 주었다. 생각을 하자 너무 가슴이 아팠다.“아람아, 아린을 만나면 좀 설득해 줘.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초연서는 다정하게 말하면서도 절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살아야 하니 앞을 내다봐야지.”해장원에서 나오
이 순간, 성주에서 아린은 동구 지부 앞에 홀로 서서 이를 악물고 걸어 들어갔다.“아가씨, 신고하러 오셨어요?”여경이 아린을 맞이했다. 아린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혹시 구도현, 구 팀장님 계신가요?”...도현은 이틀 밤낮으로 바빠서 지금 이 순간에도 당직실에서 자고 있다. 아린이 찾으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도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맞이했다. 사무실에서 아린과 도현과 마주 앉아 있었다. 아린은 손가락을 맞대고 주물자 손이 빨개졌다.“아림아, 갑자기 날 찾으러 온 건 무슨 일이야?”도현의 시선은 조심스럽게 아린을 살폈지만 말투는 매우 걱정스러웠다. 이복남매이고 아린은 다정하고 소심한 성격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람의 뒤를 따르며 커다란 아우라에 있었다.하지만 도현은 늘 평등하게 대했고, 아린을 친동생처럼 예뻐해 주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도 아람과 아린에게 선물을 가져오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항상 떨어져 있었다.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아린은 아람처럼 적극적으로 오빠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아보인다. 하지만 아람이든 아린이든 둘 다 동생이다. 두 사람에 향한 마음은 똑같다. 한참 침묵하더니 아린은 천천히 눈을 들고 도현의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했다.“오빠, 피해자의 신분으로 윤진수의 성폭행에 대해 증언하고 싶어요.”도현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아린아, 뭐라고?”“제가 윤진수를 성폭행으로 고소하고 싶어요.”이 말을 내뱉을 때 아린의 가슴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도현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는 훌륭한 형사이다. 전문적인 범죄 수사 기술과 뛰어난 정신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도현은 누구보다도 윤진수를 처리하고 싶었다.“아린아, 여기 오는 걸 연서 이모한테 얘기했어? 아람은? 아람은 알아?”아린은 고개를 흔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만약 내가
백소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합의이혼서를 바라보았다. 서류엔 이미 남자의 이름이 사인되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젖은 눈동자 속에 비친, 신경주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차갑고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뒷모습은 마치 어서 빨리 합의서에 사인하라고 재촉하고 압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가 사인을 끝냈으니 당신도 어서 하세요. 은주가 돌아오기 전에, 저는 당신과의 모든 법적 절차를 끝내고 싶어요.”신경주는 양손을 등 뒤에 짊어진 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결혼 전에 이미 재산 공증을 했기 때문에 재산 분할을 할 필요는 없지만, 소아 씨 당신한테는 그간 정이 있으니 40억 상당의 서부의 별장 한 채를 더 넘겨줄게요. 어쨌든 당신이, 이 집을 나가야 하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전 할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을 것 같아서요.”그의 말에 백소아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눈앞이 번쩍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저랑 이혼하려는 건 아세요?”“모르면 뭐 어때요. 그게 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꺼라 생각해요?”그녀는 여윈 몸으로 서 있지도 못하고 책상에 겨우 몸을 지탱한 채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경주 씨……, 우리 꼭 이렇게까지 이혼을 해야 해요?”그 말에 마침내 신경주는 돌아서서 짜증 섞인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녀를 쳐다보는 남자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가슴 떨리게 했다.“왜요? 이 결혼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요??”“왜냐하면……, 전 여전히 경주 씨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백소아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사랑한다구요, 경주 씨. 전 경주 씨의 아내로 그냥 있고 싶어요. 당신이 저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더라도 그냥 옆에만 있게 해주세요…….”“전 이제 지긋지긋해요. 사랑도 없는 이 결혼생활 저에게 일분일초가 지옥 같아요.”신경주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그녀의 말을 계속 들어줄 인내심조차 없었다.
이 순간, 성주에서 아린은 동구 지부 앞에 홀로 서서 이를 악물고 걸어 들어갔다.“아가씨, 신고하러 오셨어요?”여경이 아린을 맞이했다. 아린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혹시 구도현, 구 팀장님 계신가요?”...도현은 이틀 밤낮으로 바빠서 지금 이 순간에도 당직실에서 자고 있다. 아린이 찾으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도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맞이했다. 사무실에서 아린과 도현과 마주 앉아 있었다. 아린은 손가락을 맞대고 주물자 손이 빨개졌다.“아림아, 갑자기 날 찾으러 온 건 무슨 일이야?”도현의 시선은 조심스럽게 아린을 살폈지만 말투는 매우 걱정스러웠다. 이복남매이고 아린은 다정하고 소심한 성격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람의 뒤를 따르며 커다란 아우라에 있었다.하지만 도현은 늘 평등하게 대했고, 아린을 친동생처럼 예뻐해 주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도 아람과 아린에게 선물을 가져오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항상 떨어져 있었다.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아린은 아람처럼 적극적으로 오빠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아보인다. 하지만 아람이든 아린이든 둘 다 동생이다. 두 사람에 향한 마음은 똑같다. 한참 침묵하더니 아린은 천천히 눈을 들고 도현의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했다.“오빠, 피해자의 신분으로 윤진수의 성폭행에 대해 증언하고 싶어요.”도현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아린아, 뭐라고?”“제가 윤진수를 성폭행으로 고소하고 싶어요.”이 말을 내뱉을 때 아린의 가슴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도현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는 훌륭한 형사이다. 전문적인 범죄 수사 기술과 뛰어난 정신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도현은 누구보다도 윤진수를 처리하고 싶었다.“아린아, 여기 오는 걸 연서 이모한테 얘기했어? 아람은? 아람은 알아?”아린은 고개를 흔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만약 내가
“우는 게 좋아, 참는 것보다 우는 게 나아.”경주는 아람의 촉촉한 얼굴을 꼬집었다.“두 자매는 오늘 밤에 감정을 진정시켜. 내일 시간을 내서 아린을 만나서 제대로 이야기해 봐. 분명 완벽한 방법이 있을 거야.”아람의 착한 의도를 온 세상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경주는 이해했다. 울보가 된 아람은 눈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배고파, 밥 좀 해줘.”경주는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왼손을 뒤로하며 인사를 했다. 순간 우아하고 잘생긴 집사로 변신했다.“네, 아가씨.”...다음 날, 경주와 아람은 해문으로 가서 아린을 찾았다. 하지만 아린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린은 초연서에게 연락했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학교로 돌아가고, 이틀 동안 기숙사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와 아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했다.아린은 이미 졸업했고, 짐까지 집으로 옮겼는데, 학교에서 머물면서 해결할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아람아, 아린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초연서는 긴장하며 물었다.“괜찮아요, 이모. 나랑 경주는 아린을 데리고 나가 놀고 싶었어요. 산책도 하면서 기분 풀어주려고 했는데 바쁜 줄 몰랐어요.”아람은 초연서가 걱정할까 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아람아, 네가 시간을 내서 아린과 있어 줘서 너무 고마워.”초연서는 걱정이 가득했다.“윤진수가 풀려난 후 아린은 계속 불면증에 시달렸어. 밥도 잘 먹지 않았어. 괜찮다고는 하지만 아린의 마음이 안 좋다는 거 알아.”그 말을 듣자 아람은 가슴이 아프며 자책했다. 어제 아린에게 한 말들이 후회되었다. 차분한 태도 속에 아린이 처음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피해자로서 아린은 그 누구보다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했다. 하지만 오히려 아람을 걱정해 주었다. 생각을 하자 너무 가슴이 아팠다.“아람아, 아린을 만나면 좀 설득해 줘.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초연서는 다정하게 말하면서도 절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살아야 하니 앞을 내다봐야지.”해장원에서 나오
“음, 왜 갑자기 이래. 아줌마랑 마주치면 너무 부끄럽잖아.”아람은 부끄러워 입술을 오물거렸다.“남극에서 뛰어내릴까 봐 걱정돼서 화 풀어주는 거야.”경주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때, 기분은 좀 나아졌어?”“괜찮아. 하지만 여전히 좀 억울하고 숨 막혀.”아람은 답답해 나서 눈시울을 붉히며 킁킁거렸다. 그 불쌍한 표정에 경주의 가슴이 아파 났다. 경주는 두 손으로 아람의 붉어진 얼굴을 어루만졌다. 손바닥은 아람의 체온처럼 뜨거웠다.“네가 화내니까 얼굴이 열난 것 같아. 두 자매가 사이도 좋은데, 윤씨 가문 그 자식들 때문에 싸우는 건 의미가 없어. 화 풀어, 응?”“내가 어떻게 아린과 싸우겠어.”아람은 답답하여 고개를 숙였다.“난 나한테 화내는 거야. 윤진수에게 복수도 못 하고, 숨 쉴 기회를 주었어. 내가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야. 누구 탓을 하겠어. 그냥 내 탓이야.”경주는 가슴이 아파 눈썹을 찌푸렸다.“아람아, 그렇게 말하지 마. 너랑 상관없어.”“아린이 나보고 사심이 있다고 해. 맞아, 사심이 있어. 억울한 손녀들에게 정의를 찾아주고 싶고, 가족을 지켜주고 싶어.”“아린은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연서 이모의 보호를 받아서 학교를 다니고 공부하는 것 외에는 세상의 어둠과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본 적이 없어.”“아린은 구씨 가문 아가씨야. 고귀한 신분은 아린을 도와줄 수도 있고, 해칠 수도 있어.”아람은 숨을 헐떡였다. 심장 끝이 날카로운 핀셋에 꼬집힌 것처럼 느껴졌고 너무나 아팠다.“아린은 생각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난 기억하고 있어. 아린의 꿈은 배우야. 만약 앞으로 연예계에 들어서면 강간은 치욕적인 문제가 될 거야. 평생 벗어날 수 없어.”“앞으로 구아린 이름을 언급하면 사람들은 이 문제를 떠올리겠지. 그럼 아린과 윤진수의 이름은 평생 엮일 거야.”“그럼 연예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어떻게 감당하겠어?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 윤진수를 처리해도 아린은 평생 손가락질 받을 거야!”
아린의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차갑게 했다. 아람은 눈을 부릅떴다. 순간 억울함이 가슴에 휘몰아쳤다.“아린아, 그게 무슨 뜻이야? 그 말은 난 그저 가족들만 걱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신경 안 쓰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거야?”두 자매는 어렸을 때부터 서로에게 떨어지지 못할 정도로 친했다. 오늘 밤은 처음으로 싸운 것이다. 경주는 조마조마하여 가슴이 쿵쾅거렸다.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 씁쓸했다. 그저 아람의 옷깃을 가볍게 잡았다.“아람아, 아린이가 그렇게 생각하겠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내가 생각이 많은 거야? 그럼 해명해 봐, 무슨 뜻인지.”아람은 경주의 애타는 손바닥에서 옷깃을 잡아당겼다. 경주는 가슴이 떨리며 씁쓸하게 입술을 오물거렸다. 외부인들이 악플을 달며 비아냥거려도 아람은 침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아람이 제일 참지 못하는 건 가족 간의 오해이다. 그건 칼로 뼈를 긁어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며칠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신이 지쳐서 마침내 참지 못하고 사랑하는 동생 아람에게 화를 냈다.“언니, 아직 내 문제에 대답하지 않았어.”예상치 못한 아린 역시 포기를 할 줄 모르는 성격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다 한번 또박또박 물었다. “만약, 내가 언니 동생이 아니라면 여전히 날 말렸어?”“만약 네 질문이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묻는 거라면, 난 대답해 주지 않을 거야.”아람은 최선을 다해 화를 억누르며 목소리를 낮춰 경주에게 말했다.“경주야, 차 준비해서 아린을 데려다줘.”...두 자매는 안타깝게 헤어졌다. 아린이 떠난 후 아람은 부엌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 냉수 한 병을 원샷하며 화난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심장 끝에서 치밀어오는 불길은 꺼지지 않았고 혈압도 치솟고 있다.‘뭐야, 이유희 그 자식의 방법이 소용없잖아. 한 병 더 마셔 보자!’아람이 냉수 한 병을 더 마시려는 순간, 경주의 단단한 팔이 아람의 머리를 지나 쾅 하는 소리와
경주와 아람은 깜짝 놀라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아린아, 무슨 소리야?”아린은 정의에 따른 침착함과 결단력이 있었다.“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든, 윤진수가 나중에 법정에 서 있든, 내가 나서서 증언할게. 윤진수가 법의 제재를 받게 하고, 그 여자애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더 큰 압박이라도 난 견딜 수 있어.”이 순간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아린은 자기 아이디어를 말하면 아람과 경주가 강력하게 지지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경주와 아람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진수가 날 괴롭히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간 미수야. 내 신분으로 나서서 증언하면 커뮤니티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어. 윤씨 그룹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그럼 무슨 일이 있어도 윤진수에게 괴롭힘을 당한 여자애들에게 정의를 되찾을 수 있어. 윤씨 그룹이 윤진수를 지켜주고 싶어도 압력으로 인해 할 수 없을 거야!”“하지만 이렇게 하면 무슨 끔찍한 위험이 있을지 생각해 봤어?”아람은 눈썹을 찌푸리며 부모보다 더 엄한 어조로 말했다.“네가 윤진수한테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이 터지면 오히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기회를 잡아서 사실을 왜곡할 수 있어. 심지어 미친 듯이 과장할 수 있어.”“그때 너와 연서 이모는 몰림을 당할 수 있어. 그런 압력을 네가 견딜 수 있다고 해도 연서 이모는 견딜 수 있어? 게다가 네가 나선다고 해도 윤진수는 그저 강간 미수야.”“3년, 5년만 있으면 다시 풀려나서 사람을 해칠 거야. 철저하게 끝내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야.”“윤성우도 온갖 방법을 생각해서 널 모함할 거야. 그때 네가 어떻게 상대해? 수해는 널 어떻게 도와주고 지켜주겠어? 평생 윤씨 그룹 그 자식들과 엮이고 싶어?”초연서와 수해를 생각하자 아린의 가슴이 몹시 아팠다. 하지만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윤진수에게 괴롭힘을 당한 여자애들이다. 구만복의 딸로서 아린은 아람과 경주처럼 훌륭한 가족의
아람의 허리를 잡고 있는 경주의 손은 천천히 꽉 잡았다. 입꼬리도 서서히 올라가면서 사랑스럽게 아람을 바라보았다.‘아람은 매일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네. 내일 새로운 것을 하고 있어. 아람과 있으면 평생 지루하지 않겠네.’“언니, 알아, 언니가 나를 위로해 주고 있잖아.”아람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엄청난 죄책감에 눈시울을 붉혔다.“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면 언니는 그 일에 휘말리지 않았을 거야. 윤씨 가문의 복수도 당하지 않았을 거야. 다 내 탓이야. 내가 너무 나약하고 멍청해서 이렇게 된 거야.”말을 하면서 수정 같은 눈물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떨어져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람은 경주에게 눈치를 주었다. 경주는 멍해지더니 급히 테이블로 몸을 기울여 휴지를 뽑아 아람에게 주었다. 순간 아람은 말문이 막혔다.‘왜 나한테 줘, 내가 우는 것도 아닌데. 아린한테 주면 되잖아.’아람은 직접 아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음이 무거워 한숨을 내쉬었다.“아린아, 사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야. 내가 정의를 찾지 못했고, 복수도 해주지 못했어. 윤진수는 결국 풀려났잖아.”이 말을 내뱉자 아람도 울컥했다.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참았다. 아린이 있어 경주는 감정을 억지로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람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이 팽팽해지며 화를 표현했고, 싸늘하고 날카로운 분위기가 맴돌았다.아린은 촉촉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연신 흔들었다.“충분해, 언니. 정말 충분해. 이 일은 여기까지 하자. 계속하지 마.”“여기까지 하자고? 왜 여기까지 해?”아람이 주먹을 꽉 쥐가 뼈마디에 소리가 났다.“윤진수가 널 괴롭혔고 수해를 중상을 입힐 정도로 때렸어. 수많은 소녀를 해쳐서 평생 굴욕적인 트라우마 속에 살고 있어.”“화가 나도 얘기할 용기가 없어. 윤씨 그룹은 권력으로 사람을 압박했어. 복수를 당할까 봐 자신과 가족을 위해 참고만 있어.”“난 지금 피해자들의 유일한 희망이야
경주와 아람은 바로 돌아섰다. “아린아!”아람은 신나서 눈을 부릅떴다. 경주의 손을 놓고 홀로 서 있는 아린에게 달려가 따뜻하게 안아주었다.“얼마나 기다렸어? 들어가지 그래. 아줌마 계셔. 널 알아서 들어오라고 했을 거야. 왜 여기서 기다려.”“언니, 미안해. 갑자기 찾아와서 언니와 형부를 방해했어.”아린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늘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바보야, 무슨 소리야. 언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아람은 아린의 부드러운 얼굴을 만지며 웃으며 말했다.“네 형부가 전에도 얘기했었어. 바쁜 시기가 지나면 너랑 같이 나가 놀자고, 세계여행도 좋아!”아람의 말을 듣자 경주는 깜짝 놀라더니 가슴이 따뜻해지며 미소를 지었다. 아린은 경주의 신분을 인정하였지만, 아람에게 직접 들으니 그 행복감과 만족감은 전혀 달랐다. 아람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차피 네 형부 돈이야. 네 형부는 부자야. 블랙 카드를 막 긁어도 돼. 이참에 혼수를 더 벌어와야겠어.”경주는 입꼬리며 사랑스럽게 웃었다.‘다른 사람한테는 정말 대범하네. 나한테면 꿍꿍이를 품네.’비록 경주에게 블랙카드가 있지만, 아람의 오빠들에게도 가득하다. 그래도 아람은 경주의 돈을 쓰겠다고 한다.‘딸은 집의 웃음꽃이라더니, 시집을 가도 가족을 향한 마음은 변화가 없네.’하지만 경주는 기꺼이 하고 싶다. ‘돈을 남겨서 뭐 해. 와이프에게 쓰는 거지.’“무, 무슨 혼수야. 언니, 농담하지 마.”아린은 쑥스러워서 얼굴을 붉혔다.“농담은 무슨,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야.”아람은 정색하며 눈을 깜빡였다.“너랑 수해의 결혼도 곧 일정을 잡아야지. 결혼도 엄청 빠르게 지나갈 거야. 미리 준비하는 것도 좋아.”이 말을 듣자 아린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가에 알 수 없는 슬픔의 흔적이 감돌았다.“어? 혼자 왔어? 수해는 같이 안 왔어?”아람은 의아하며 물었다.“언니를 찾으러 왔다는 걸 모르고 있어. 내가 얘기하지 않았어.”아린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반짝이며 머뭇거렸다. 경주는 아린이
“허, 그럼 좋은 마음이 없겠네. 당신은 윤씨 그룹과 같은 편이에요. 당신도 윤씨 그룹이 보낸 거죠? 우리 소연을 괴롭히려고?”“아니에요! 저.”“당신도 좋은 의도가 아니었어요. 어떻게 감히 그 짐승한테 수술을 해줄 수 있어요? 나쁜 사람을 도와주는 거예요. 꺼져요. 다시는 소연을 찾아오지 마세요!”만소연의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아람을 향해 고통스럽게 소리쳤다. 문을 쾅 닫으려는 순간, 아람은 마음이 급해져 재빨리 문을 막았다.“아주머니, 정말 소연을 도와주러 온 거예요. 설명할 시간을 좀 주세요!”화난 만소연의 어머니는 창문 옆에 있던 갓 뜯은 세제를 아무렇지 않게 집어 들고 아무 말 없이 아람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아람은 이마에 땀이 났다.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갑자기 큰 힘에 끌려가더니 뜨거운 호르몬이 아람을 둘러쌌다. 허리에 내려앉은 팔은 단단하고 강했다. 귀가에서 경주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아람은 깜짝 놀랐다.팍-세제 본지는 경주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머리와 어깨, 등에 눈송이처럼 하얀 가루가 뿌려졌다. 정장이 순간 엉망으로 되면서 비참해 보였다.“신, 신 사장님. 괜찮으세요?”한무는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급히 달려와 경주의 상태를 보았다. 아람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경주 머리의 세제를 털어주며 겁에 질렸다.“괜찮아. 사모님이 괜찮으면 돼.”경주는 아람이 당황한 것을 눈치채고 입꼬리를 올리며 아람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아람아, 무서워? 담이 작아졌네.”“바보야, 네가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두려운 거야!”아람은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났다. 온 힘을 다해 경주의 단단한 가슴을 때렸다.“내가 내 생각만 한 줄 알아?”세제 봉투라서 다행이었다. ‘만약 냄비, 프라이팬이었다면? 만약 돌이었다면? 만약, 칼이었다면?’’이런 생각을 하자 아람은 겁에 질렸다. 경주는 눈웃음을 지었다. 아람에게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아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때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만씨
아람은 맑은 눈을 들어 경주의 불타는 눈빛과 마주쳤다. 그녀는 경주를 이해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좁은 통로를 통해 옥상으로 걸어 올라가 가장 안쪽에 있는 집 앞에 도착했다.노크를 하기도 전에 목발을 짚은 할머니 한 분이 아래층에서 비틀거리며 올라왔다. 정교한 정장을 입은 세 사람을 보자 할머니는 화를 내며 부들부들 떨었고 지팡이로 땅바닥을 마구 내리쳤다.“감히, 감히 또 여기를 와? 만씨 가문에 남자가 없다고 마음대로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해? 이미 고소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또 무엇을 원해? 죽이고 싶어?”경주와 아람은 서로 바라보다가 바로 깨달았다. 윤씨 그룹이 전에 와서 만씨 가문 모녀를 협박한 적이 있다. 보지 않아도 윤씨 가문이 악독한 모습이 눈앞에 생생했다.“아니에요. 할머니. 진정하세요. 우리는 그 사람들과 한편이 아니에요. 우리는 도움을 주러 왔어요!”한무는 서둘러 설명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무의 말을 듣지도 않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때렸다.“꺼져! 어차피 살기도 귀찮아. 협박하고 겁을 줘도 난 무섭지 않아. 죽일 거야! 난 소연을 어렸을 때부터 봐왔어. 엄청 순진하고 착한 아이야. 나한테 친손녀와 같아. 소연을 괴롭히지 마! 꺼져!”지팡이를 휘두르자 바람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목숨을 걸고 싸우려는 것이다. 한무는 제때 피하지 못하고 팔을 맞아서 고통스럽게 헐떡거렸다. 다시 휘두르려고 할 때 눈치 빠른 경주는 다가가 지팡이를 막았다.“경주야, 할머니가 다치면 안 돼!”아람은 깜짝 놀라 급히 말렸다.“할머니, 저희는 악의가 없어요.”경주는 천천히 손을 내려놓으며 온화하고 진주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우린 만소연 씨를 도와주러 왔어요. 전에 찾아온 사람과 한편이 아니에요. 제발 믿어주세요.”할머니는 눈앞에 있는 잘생긴 경주와 뒤에 서 있는 예쁜 아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천생연분 같았고 선하게 생겼다. 지난번 적대감과 악의가 가득했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