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하는 여이현의 눈은 점점 더 붉어졌다.여이현은 온지유에게 아이를 위한 어떤 약속도 할 수 없었다.그녀가 살아 있어야만 한다.여이현은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몸 상태 때문이든 온지유 죽음 때문이든 만약 아이에게 엄마가 없어진다면 그는 그 아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래서 마음 아프더라도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온지유가 자신을 미워하게 되더라도 모성애를 일깨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온지유는 강한 여자였고 이번에도 어떻게든 살아남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역시나 온지유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방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더 이상 기운 없이 있을 수 없었다.그녀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 “여이현, 이 나쁜 새끼!”그녀가 있는 힘껏 힘을 주자 드디어 뭔가가 몸에서 쭉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그 순간 온지유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쏟아부었다. 온지유는 온몸이 가벼워지고 그대로 기운이 빠져 쓰러졌다.“와앙!”어린 아기의 울음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의사는 갓 태어난 아기를 높이 들어 올렸다.여이현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지금까지 많은 일을 겪어왔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충격적인 일은 없었다.“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남자아이네요!”의사도 기쁜 표정이었다.의사는 아이를 여이현에게 보여주었다.아직 처치도 끝나지 않은 작은 아기는 연약한 피부에서 피 냄새를 풍기며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아무런 방어도 못 하는 어린 아기의 모습에 여이현은 큰 자극을 받았다.그 순간 그는 아기를 움켜쥐고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여이현은 그저 주먹을 꽉 쥔 채 아이를 쳐다볼 수조차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데려가세요.”의사는 여이현이 기뻐할 줄 알았지만 돌아온 차가운 반응에 잠시 어리둥절해졌다.아빠인 여이현이 그리 말하니 의사는 곧바로 아기를 멀리 데리고 갔다.그의 눈빛은 마치 아이를 죽일 듯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당장 아이를
여이현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온지유는 자신이 이미 죽은 줄 알았다.눈 앞은 온통 어둠뿐이었고, 어디에 있는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공포만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다.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아직 아이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했다.아기의 얼굴도 보지 못했고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건강한지조차 알지 못했다.온지유는 강한 생존 본능을 느꼈지만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눈앞에 검은 실루엣이 나타났다.그 사람은 키가 크고 체격도 건장했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그저 온지유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온지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공포를 느꼈다.그녀는 간신히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누구세요?”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온지유는 확신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나를 지옥으로 데려가려는 거예요?”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온지유는 그가 마치 조각상이라도 된 듯이 서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때, 그의 몸이 살짝 움직였다.온지유는 겁이 났지만 이 지경에 저 흐릿한 무언가를 굳이 두려워해야 할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이미 본인이 귀신이 되었는데 뭐가 더 두려울 게 있겠는가?온지유는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그 그림자는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돌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온지유는 얼굴이 없는 그림자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꺄악!”온지유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두려움에 휩싸인 채 눈을 떴다.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꿈이 아니었다.그녀는 아직 살아 있었다.현실과 꿈이 겹친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모든 것이 존재했던 것 같으면서도 마치 꿈인 것 같았다.그녀는 병실에 있었다.“온지유 씨, 괜찮으세요?”간호사가 비명을 듣고 급히 들어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온지유는 간호사를 바라봤다. 여전히 가슴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저... 어떻게 된 거죠?”모든 것이 너무나도 평화로워 마치
온지유는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서 놀라서 깨어난 것만 같았다.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기적 같았다.꿈을 꾼 것처럼 믿기지 않았다.그때, 문이 열리고 여이현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단정한 정장을 입고, 여전히 고고한 모습이었다. 깊은 눈매는 온지유에게로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많은 일을 겪었지만 그는 여전히 빛나는 사람이었다.“몸 상태는 어때? 불편한 곳은 없어?”여이현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온지유는 너무 기뻐서 다시 침대에서 내려왔다.“괜찮아요. 우리 아기 봤어요? 간호사가 아기가 아직 인큐베이터에 있다고 난 볼 수 없대요.”여이현은 온지유가 맨발로 내려오는 걸 보고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슬리퍼를 가져다주었다.“봤어. 귀엽더라. 눈은 너를 닮았고 코는 나를 닮았어. 울음소리도 크고 힘이 넘치던데. 아마 나중에 장난꾸러기가 되겠어.”그의 말을 들은 온지유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온지유는 슬리퍼를 신으며 말했다.“정말요? 진짜 장난꾸러기라면 좋겠네요. 괴롭힘당하지 않고 강하게 자라겠죠. 하지만 잘 교육해야 해요. 아이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말이에요.”“알았어.”여이현은 담요를 가져다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며 말했다.“방금 출산 했으니 조리를 잘해야 해. 당분간은 밖에 나가지 마. 바람을 많이 쐬면 나중에 두통이 생길 수 있다고 들었어.”“알아요. 나도 이미 다 알아봤으니까요.”온지유는 전에 이미 산후조리에 대해 공부를 했었다.“이 한 달 동안 잘 회복해야 아기를 안아볼 수 있으니까요.”그녀는 계속해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여이현은 그런 그녀에게 옷을 덮어주며 말했다.“너를 위해 산후조리식을 준비해 뒀어. 조금 있다가 가져다줄 테니까 잘 챙겨 먹어.”“네.”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여이현을 바라보았다. 아직 둘 사이 갈등을 잊지 않았다.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그녀는 그 문제들을 일부러 회피하고 있었다.아무도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화
여이현은 진지한 눈빛으로 온지유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줬다.“지유야, 늘 나에게 놀라움을 선사해 줘서 정말 고마워.”여이현의 말에 온지유는 안심하고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눈시울을 붉혔다.“더 이상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 줘요, 네? 나와 아기 모두 온전한 가정이 필요해요. 아이가 건강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는 게 제 소원이에요. 당신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렇죠?”여이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넌 나를 절대 용서하지 못할 거야.”온지유는 눈살을 찌푸렸다.“왜 당신을 용서하지 못하겠어요? 당신이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희생했는지 알아요. 비록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나는 당신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알겠어.”여이현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그럼 대답해 줄게. 네 말이 맞아. 노승아는 내가 감금해 두었어.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내 손에 있지 않아. 네가 걱정할 일은 없어. 내가 잡혀서 벌을 받는 일은 없을 거야. 노승아가 너에게 했던 모든 일은 내가 이미 되갚아 줬으니까.”말을 하며 여이현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마치 온지유를 대신해 복수를 했다는 사실이 매우 통쾌하다는 듯했다.온지유는 그 말에 오히려 불안해졌다.“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여이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노승아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온지유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녀는 여이현이 그리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온지유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여이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이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좀 지루할 거야. 네 친구들을 자주 불러서 얘기 나눌 수 있도록 할게. 나도 시간 날 때마다 들를 거고.”“알겠어요.”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그럼, 아기는 언제쯤 볼 수 있어요?”여이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다.“그건 의사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 네가 산후조리 기간을 마칠 때쯤이면 볼 수 있을 거
온지유도 감개무량했다.“언니를 만난 것도 나에겐 큰 행운이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거네요.”여이현은 두 사람이 대화에 푹 빠진 걸 보고 덧붙였다.“홍혜주 씨는 이제 우리 팀 사람이야. 전에 호신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 나중에 혜주 씨에게 배워도 좋을 것 같아.”“정말요?”온지유의 눈이 반짝였다.“좋아요! 산후조리 끝나면 꼭 배우고 싶어요!”여이현은 온지유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녀가 행복해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차올랐다.물론, 그는 그녀가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천천히 이야기 나눠. 시간은 많으니까.”여이현은 말했다.그 모습에 온지유는 여이현을 바라보며 물었다.“가려고요?”여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다 끝내고 나면 다시 올게.”“알겠어요.”온지유는 더 이상 그를 붙잡지 않았다.여이현은 병실을 나서며 문을 살며시 닫았다.문밖에는 이미 누군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나이가 지긋한 50대의 남성이었다.그는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기고 정장을 입은 채 마치 집사 같은 인상을 풍겼다.그의 뒤에는 체격이 우람한 경호원 네다섯 명이 따르고 있었다.그는 공손하게 여이현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3개월이 당신의 기한입니다. 약속을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여이현의 얼굴은 차가웠고 목소리도 무미건조했다.“알고 있어요.”집사는 여이현의 확고한 대답을 듣고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그럼,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그렇게 말한 후 집사는 그의 일행과 함께 병원을 떠났다.병원 앞에는 여러 대의 고급 승용차가 대기 중이었고 수많은 경호원들이 경계하고 있었다.그들은 그야말로 대단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감히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배진호는 여이현의 옆에 서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그가 지금까지 그들을 보며 웃지 못했던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이었다.“대표님, 3개월 후에
온지유는 혼란스러웠다.“이유가 뭐죠?”홍혜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럴듯한 핑계를 생각해 냈다.“하루 종일 연구실에 있어서 아주 바쁠 거예요. 전화를 받기 어려우니 방해하지 마세요. 일 끝나면 분명 보러 올 것 같아요.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연구실의 성과도 신경 써야 하니까요.”홍혜주의 말을 듣고 나서 온지유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녀 역시 인명진이 본업에 집중하는 것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일반인과 달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알겠어요. 바쁜 일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볼게요.”온지유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홍혜주는 온지유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심했지만, 표정이 어색해졌다.그러나 온지유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될까 봐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하고 싶었던 말을 삼키고 나서 홍혜주는 온지유에게 고마움을 표했다.“소대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지유 씨 덕분에 새로운 신분을 얻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모든 게 두 분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말 감사해요. 소대장님, 정말 고마워요. 앞으로 신뢰를 저버리지 않을 거예요.”홍혜주는 마치 맹세하듯 말했다. 하지만 온지유는 이렇게 답했다.“언니,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우리는 자매잖아요. 예전에는 언니가 저를 지켜줬으니, 이제는 제가 언니를 지켜줄 차례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현 씨의 덕도 좀 보긴 했지만, 제가 있는 한 언니는 무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홍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온지유의 어깨에 기대었다.“정말 감사해요.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온지유는 애정 어린 미소를 지으며 홍혜주를 끌어안았다.“그리고 제가 호신술을 배울 수 있는 것도 다 언니 덕이잖아요.”“그러니 잘 회복하세요. 제가 가진 모든 기술을 다 알려줄게요.”홍혜주가 웃으며 말했다.온지유는 아무 말 없이 미소 지었다. 그녀는 지금의 삶에 만족했다. 지금보다 더 큰 것을 바라지 않았고, 그저 평범한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지선율은 감정에 북받쳐 훌쩍이며 수상소감을 이어나갔다.“특별히 감사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지 못했지만, 이 ‘글로리’라는 작품이 성공을 거둔 것은 모두 온지유 씨의 덕분입니다. 온지유 씨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 드라마 팀 전체를 구해줬어요. 그녀 없이는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었었을 겁니다. 지유 씨도 이 작품을 완성시킨 감독이니 꼭 기억해 주세요. 온지유 씨, 감사합니다!”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또 한 번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온지유는 그 길고 험난했던 여정이 떠오르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지선율이 수상소감을 마치자, 장다희가 무대에 올라와 수상소감을 이어갔다.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어 보였다.“10년 전, 저는 무명 배우였어요. 그리고 이어진 10년 동안 성공도 맛보고 실패도 겪었죠. 하지만 결국엔 다시 일어섰습니다!”그녀의 말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또 한 번 큰 박수가 이어졌다.장다희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앞에서 지선율 감독님께서 언급했던 것처럼, 제가 가장 감사드리고 싶은 분은 이 자리에 오지 못한 또 한분의 감독님이에요. 바로 온지유 씨입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감독님은 저를 끌어주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상을 받게 해준 은인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저를 사랑해 주는 팬들이라면 이분의 이름을 꼭 기억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의 공동 연출을 맡았던 온지유 감독님을 기억해 주세요!”온지유는 조금 민망해하며 싱긋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시상식에 참가하여 자신을 언급할 거라고 사전에 말한 적 없었기에 더 큰 감동이었다. 온지유는 원래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장다희의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그녀의 말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예상대로 그날 밤 온지유의 이름은 실시간 검
녹음 파일이 재생되자 거친 숨소리와 힘든 목소리가 들렸다.그리고 곧 나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거의 다 찾은 것 같아. 하지만 확실하진 않아.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어... 휴대폰은 들고 갈 수 없어.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휴대폰을 반입할 수 없거든. 갖고 들어갔다가 들키면 큰일 나니까... 지유야, 난 아직 살아 있어. 너를 위해서,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야. 마지막으로 이걸 주운 분께 제 연락처에 있는 온지유에게 전화를 걸어 제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주길 부탁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그 한마디로 녹음은 끝이 났다.‘민우는 무사할 거야!’온지유는 휴대폰을 꽉 쥐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아직 상황이 버틸만할 거야. 나쁘지 않을 거야. 모든 게 잘될 거야!’온지유는 전화를 걸어준 상대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이 조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데, 민우가 그 조직에 들어갔다면 정말 무사히 나올 수 있을까? 그런 게 아니라면 민우의 부모님께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온지유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몸조리 중이었고 아직 호신술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에 가봤자 오히려 짐이 될 뿐이었다.깊은 밤, 여이현이 온지유를 찾아왔다.온지유가 깊이 잠든 시간에 맞춰 살며시 병실로 들어왔다.그는 잠깐이라도 온지유의 얼굴을 보려고 찾아왔던 것이었다.방 안으로 들어가니, 창문 커튼이 걷혀 있었다. 달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어 온지유의 하얀 피부를 더욱 환하게 비추었다.여이현은 침대 옆에 서서 그윽한 눈빛으로 온지유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여이현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었다.그런데 그 순간, 온지유가 그의 손을 잡으며 눈을 떴다.여이현은 자는 줄 알았던 온지유가 움직이자 깜짝 놀랐다.“이 시간에 왜 온 거죠?”온지유는 그를 바라보며
은서우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인명진은 이미 돌아서서 갈 길을 가고 있었다.비록 인명진이 병원의 원장이었지만 은서우는 회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오늘 처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는 것이었다.그는 수술용 멸균복을 입고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깊고 차가운 그의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수술 내내 상황이 아무리 긴박해도 인명진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고 그의 침착함과 냉정함은 뛰어난 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은서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이제야 왜 병원의 많은 여성 간호사, 인턴, 심지어 여의사들까지도 그에게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은서우는 가볍게 몸을 풀며 수술실을 나왔다.막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한 동료가 그녀를 찾아왔다.가슴에 걸린 명찰을 보고 은서우는 상대가 인턴임을 알았다.은서우는 예의 바르게 물었다.“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은 선생님, 방금 원장님과 함께 수술을 마치셨죠?”인턴의 질문에 은서우는 약간 의아했다.“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인턴은 자신의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은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원장님 카톡 좀 추가해서 저한테 넘겨주시거나 아니면 원장님 사진 몰래 몇 장만 찍어 주세요. 제가 이만큼 드릴게요.”인턴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은서우는 인턴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제가 원장님 연락처를 넘긴다고 해도 원장님 입장에서는 그냥 낯선 사람일 뿐일 텐데 원장님이 연락 받아줄 것 같아요? 그리고 몰래 사진 찍는 건 불법인 거 모르나요? 고작 그 정도 푼돈으로 저를 이런 큰일에 끌어들이겠다고요? 당신이 미친 걸까요? 아니면 제가 미친 걸까요?”은서우는 거침없이 인턴을 몰아붙였다.인턴이 급히 덧붙였다.“아니에요, 은 선생님. 도와주시기만 하면 백만 원 아니 천만 원도 문제없어요.”‘천만 원에 사진 몇 장과 연락처? 저 인턴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은서우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이명진은 병원에서 만약 어떤 의료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이 병원의 명성은 그대로 무너질 것으로 생각했다.그의 말에 한 간호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원장님, 병원 내부 번호와 원장님 개인번호 모두 통화 중이셨어요. 원장님 인기가 지금 장난 아닌 걸 모르시는 건 아니시죠?”문 앞에 대기 중인 인턴들로도 모자라 소문 듣고 연락이 오는 환자도 있었고 학생들도 있고 심지어 부잣집 부인들도 어디서 개인번호를 얻었는지 매일 전화를 걸어 이명진의 전화는 항상 통화 중 상태였다.긴급 상황만 아니라면 인명진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인명진은 간호사의 필요 없는 말을 들을 시간도 없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가 문을 열자 밖에서 있던 인턴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진짜 너무 멋있고 젊잖아. 이렇게 젊으신데 원장 선생님이라고?”“너무 잘생겼어. 여자 친구도 없다 그러던데.”“많은 수술도 직접 하신대. 그리고 학술논문도 봐주고 기타 강의도 하신다고 들었어.”“이렇게 훌륭한 사람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어떤지 상상도 안 가.”그들은 미친 사람처럼 저마다 한마디씩 주고받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인명진에게 달려들어 길을 막고 있었다.“인 원장님, 저랑 사귀시면 이런 병원 몇 개라도 더 해줄 수 있어요. 당신을 경성의 의료센터에서 우두머리로 만들어 드릴게요.”“인 원장님, 저 사람 말 믿지 마세요. 저랑 사귀시면 더 많은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드릴게요.”“인 원장님, 저랑...”“다들 꺼져!”인명진은 평소에 이 사람들에게 무관심이었지만 지금은 급한 수술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한 간호사가 데리고 온 경호원들도 그녀들을 막을 수가 없었지만 항상 따뜻하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말만 할 거로 생각했던 인턴들은 인명진의 화내는 소리 한 번에 더 이상 앞으로 다가서지 못했고 자리를 피해 길을 열어 주었다.인명진은 재빨리 수술용 무균복으로 갈아입고 소독한 후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실 안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
온지유는 그의 앞에 다가서며 말했다.“이건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어떻게 생각할 겨를도 없을 수 있어요? 병원의 간호사나 의사들도 휴가가 있던데 명진 씨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에요? 당신 생각도 잘 알아요. 아이를 입양할 생각도 괜찮지만 그래도 결국 친자식은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할 에너지가 있으면 친자식을 낳으면 되잖아요.”지금은 좋은 마음으로 입양했다 하여도 커서 입양한 자녀들 간의 모순으로 불행하게 된 사람들도 너무 많아서 온지유의 걱정이 틀리진 않았다.인명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런 말은 왜 해. 너의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데 내가 왜 다른 아이를 입양할 생각 하겠어? 법로가 나한테 너하고 별이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도 있고 또 별이가 나중에 크면 이 삼촌이 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을 알고 그냥 내버려두진 않을 거잖아. 그때가 서 별이가 날 너희 별장으로 데리고 가면 우린 또 한 지붕 아래에서 살 수 있고 내가 곁에서 지켜줄 수 있잖아.”온지유는 인명진의 이런 생각에 너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우리 아버지가 어떤 임무를 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분명하게 알아둬야 할 것은 명진 씨 옆에는 반드시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 해요.”온지유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명진의 자료를 만들었고 바로 소개팅 사이트에 올리려고 했지만 그 순간 망설이게 되었다.분명 좋은 마음으로 하는 건데 혹시나 인명진이 원하지 않으면 되려 부담이라도 될가봐 다시 자료들을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그때 여이현은 집에 돌아와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 온지유를 보며 말했다.“왜 그래? 요즘 항상 기분이 다운되어 있던데, 무슨 일 있는 거야?”온지유는 있는 그대로 털어 놓았다.“인명진 씨 땜에 그래. 우리 주변 사람들은 다 각자의 삶을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인명진 씨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냥 혼자 살고 있잖아. 금방 그의 자료를 만들어 소개팅 사이트에 올리려 했
양시은은 더 이상 나도현에게 빌붙어 사는 작은 변호사가 아니었고 심지어 임다혜와의 앙금도 풀고 둘은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김혜연 쪽은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다.온지유는 여름방학에 윤별을 데리고 Y 국으로 갈 계획이었고 인명진도 직접 나설 예정이었다.온지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결혼도 하고 홍혜주는 출산도 앞두고 있었고 양시은과 나도현도 이젠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인명진만 미혼에 아직도 혼자였다.여이현은 여희영이 만난 남자를 처음엔 좋게 보지 않았지만 그 남자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것을 증명하자 안심되었다.심지어 나민우도 지난달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고 연락이 왔고 결국 이제 남은 건 인명진뿐이었다.옆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많이 도와준 인명진을 가족으로 생각한 온지유는 그의 앞날이 걱정되어 하지 않으려던 말을 참지 못하고 내뱉고 말았다.“명진 씨, 제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자기 행복 찾아 잘 살고 있는데 명진 씨도 이젠 그럴 때가 된 거 같아요. 명진 씨처럼 훌륭한 남자가 본인만 원한다면 좋은 사람은 많을 거잖아요.”인명진은 온지유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알고 있었다.전에 여이현이 죽었다고 생각한 5년 동안은 인명진에게 가장 좋은 기회였지만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온지유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그 뒤로 인명진은 뒤에서 지켜주는 것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온지유의 그림자가 되어주었다.“난 지금 충분히 행복해. 네가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바로 나설 수 있어 좋고 더욱이 법로가 떠나시면서 옆에서 너를 잘 지켜주라고 특별히 당부하셨어.”“하지만 저는 명진 씨 인생의 전부가 아니잖아요. 명진 씨도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사셔야죠. 홍혜주 씨도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데 이젠 정말 명진 씨만 남았어요. 그러면...”온지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명진은 말을 끊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인류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 사는 건 아니잖아. 율아, 난 지금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어.”인명진은 항상 온지유가 행복하
현민아는 엉엉 울면서 말했다.“그건 내가 준 예물인데 나한테서 뺏어가려 하지 마요.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아빠가 말했잖아요. 근데... 아빠는 사기꾼이야.”현민아의 끝없는 투정 부림에 현민아의 아버지도 어쩔 수가 없었다.집 계약서도 돌려받았고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은 현민아의 아버지는 현민아가 원하든 하지 않든 일단 둘러메고 집으로 들어갔다.양시은은 옆에 서 있는 하민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니 이런 일로 어떤 스트레스도 받으면 안 돼. 유치원에서도 일부러 남을 냉정하게 대해서도 안 돼, 알았지?”“알겠어요.”하민은 양시은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최정숙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우리 귀염둥이 손자가 유치원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는 줄은 몰랐네.”그러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말했다.“집 계약서 8권이면 재산도 적지 않은데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거 같은데?”양시은은 최정숙이 이런 생각까지 할 줄은 몰랐다.“요즘 애들이 뭘 알겠어요. 애들끼리 뭔 생각을 못 하겠어요.”“엄마, 왜 어릴 때부터 그런 일을 만들어요.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에 정말 탄복해요. 집 계약서 8권이 뭐가 대단하다고, 우리 하민이랑 비기면 턱도 없는걸요. 그 여자아이는 단지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뿐이에요.”지금 좋아한다고 해도 아직도 이십여 년이나 남았는데 사람의 마음은 당연히 변할 것으로 생각한 나도현은 아들이 어릴 때부터 혼약을 맺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그와 같이 직접 경험한 사람에게는 이런 일은 귀찮다고만 생각되었다.최정숙은 나도현의 말에 변명하며 말했다.“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렇게 하라고는 안 했잖아? 뭐가 그렇게 안 달아 할 지경이니?”“그럴 만도 했잖아요. 전에 저도 엄마가 벌려놓은 이런 일 때문에 편하게 지내지도 못했는데 제 아들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죠.”나도현의 말에는 토하나라도
“제가 어제 집에 돌아와 하민이의 가방을 열어보니 이런 집 계약서들이 있었어요. 현민아가 가방에 집어넣었나 봐요.”알고 보니 하민이가 잘생겼다고 오랫동안 지켜본 현민아는 그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하민이가 평소에 말을 잘 안 한 것 땜에 삼촌한테 고민을 털어놓았었고 그런 행동이 귀여웠던 삼촌은 조롱하는 식으로 현민아에게 친구보다 결혼이 좋은 거라고 말해줬는데 그 말에 현민아가 몰래 집 계약서들을 학교에 가져가 예물이라면서 하민이의 가방에 넣어 준 것이었다.현민아의 아버지는 말을 듣고 더욱 난처해졌다.“우리 꼬마 아가씨, 넌 아직 어려서 예물이라는 것이 뭔지 몰라. 다음부터는 남의 책가방에 물건을 함부로 넣으면 안 돼.”현민아는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근데 난 하민이랑 친구 하고 싶단 말이에요. 친구가 되고 싶으면 뭐라도 보여줘야 내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잖아요.”옆에서 듣고 있던 양시은도 현민아의 진지한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현민아의 아버지는 미안해하며 말했다.“하민 어머님,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민아가 어디서 어떤 말을 듣고 저런 행동까지 했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에 두시지 말았으면 좋겠어요.”“현민아 아버님, 여기 집 현민아가 넣어 둔 계약서들입니다.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보세요.”현민아의 아버지가 계약서를 확인하자 현민아는 기분 나빠하며 말했다.“전 돌려받기 싫어요. 아빠가 말했었잖아요. 이미 준 것은 곧 엎질러진 물이랑 같아 주워 담을 수 없다면서요. 그럼 책임을 져야잖아요. 이 물건들은 제가 이미 하민한테 줬고 하민이도 받아들이고 집에 가져갔으니 앞으로 제 사람이 될 건데 이렇게 다시 제가 준 예물을 회수하면 앞으로 저보고 어떻게 하민이랑 잘 지내라는 거예요? 아빠가 이렇게 하면 하민이 한테는 제가 신용이 없는 사람이 되잖아요.”현민아는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울어댔다.요즘 아이들은 응석받이로 자라서 고집을 부리면 누구도 말릴 수 없어 현민아 아버지와 양시은도 현민아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다만 양시은이 예상치 못했던
“어젯밤에 집에 도착했는데 네가 없길래 전화하려고 하자 마침 여이현 씨가 널 데려다주셨어.”나도현은 어제 마음이 심란하여 술을 많이 마신 게 분명했다.“여기 비타민이라도 좀 먹어.”양시은은 나도현이 깨어나기 전에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고 비타민 한 알을 건네주었다.나도현도 어제 양시은과 잘 소통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고 심지어 양시은이 너무 바쁜 탓에 돌아오지 못하면 그녀가 간 도시를 찾으러 가려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출장에서 돌아와 지금 옆에 있는 양시은을 보며 쓰디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시은아, 넌 이러는 내가 싫지?”“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넌 하나뿐인 내 남편인데 왜 싫겠어.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는 거야?”양시은은 항상 아이가 평안하고 나도현이 건강하고 그렇게 그들 세 식구가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으로 매우 소박한 소원을 품고 지내왔다.“하지만 나...”“어제 여이현 씨가 널 데려왔을 때 나한테 둘이 잘 소통해 보라고 하길래 네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예측했어.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널 버릴까 봐 그러는 거지?”양시은은 나도현의 옆에 앉아 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녀는 나도현이 이렇게 불안해하는 것이 심리 건강에도 안 좋다고 생각되어 자신의 진심을 확실하게 말해주기로 했다.양시은의 말을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한 나도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하지만 전날 술자리에서 여이현과 배진호가 양시은의 우수함을 부정하지 말고 더욱이 양시은의 앞길을 가로막지 말라고 한 말이 생각나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며 말했다.“내 생각이 좀 많이 유치했던 것 같아.”“아니야, 날 사랑하는 표현이라는 거 잘 알아. 만약 내가 너라면 너보다 더 했을지도 몰라. 나도현, 내가 너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마. 지금 하고 있는 사업도 네가 옆에서 많은 도움을 줘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양시은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도현의 두 손을 잡고 말하자 그는 더 부끄러워졌다.나도현의 도움과 격려하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고 착하게 자란 윤별은 초등학교에 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으며 여이현도 매우 기뻐했다.하지만 윤별은 항상 외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고 심지어 작은 빨간 꽃을 만들어 외할아버지가 있던 방에 붙여놨다.온지유는 윤별의 행동을 눈치채고 바로 다가가서 위로해 주며 말했다.“별아, 너무 슬퍼하지 마. 외할아버지는 지금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셔서 우리를 보고 계실 꺼야. 그리고 내년이면 외숙모 집에서 별이 남동생과 여동생도 태어날 거야.”“그런데요 엄마, 외할아버지께서 제가 1학년이 되어 글자를 배우면 공부를 가르쳐 주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외할아버지께서 또...”윤별은 말하다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전에 윤별이가 브람을 따라갔을 때 브람은 매우 엄하게 대했지만, 온경준이 경성에 데려다 키우는 동안은 윤별에게 끝없는 사랑을 주면서 모든 것을 만족시켜 주었다.그리고 윤별의 몸이 허약하니 온경준은 옆에서 정성껏 보살펴 주었고 쓴 약도 잘 먹게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달래여 먹이면서 많은 추억을 쌓아 주었다.그때 윤별은 온경준에게 물었었다.“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온경준의 집은 Y 국이었고 윤별의 말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해 주었다.“별이랑 엄마가 어디에 있으면 할아버지 집은 거기에 있는 거야. 할아버지는 예전에 많은 잘못을 했고 그렇게 되어 너희 엄마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었어. 이제 겨우 같이 살게 되였는데 할아버지가 어찌 Y 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겠어? 게다가 이쪽에 오래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온경준은 그때 윤별이랑 함께 많은 수공예도 했고 병아리도 기르고 꽃을 심고 풀도 심었지만, 지금은 반 친구들 외에 하민 동생이 놀러 오고 평소에 윤별은 항상 혼자였다.온지유는 윤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외할아버지는 그저 우리보다 먼저 다른 세계로 가신 거야.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사명이라는 걸 가지고 와. 그리하여 사람은 언젠가 죽을 것이고 앞으로 때가
여이현이 추천해 주겠다는 의사는 인명진이었다.인명진의 능력은 상당히 좋았다.당시 그와 지석훈이 하민에게 수술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하민은 지금처럼 이렇게 빨리 낫지 않았을 것이다.“난 병이 없거든.”나도현이 자신의 심병을 인정하지 않자 여이현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지난 4년 동안 치료해 온 걸 아니까 너의 이런 심리는 이해는 할 수 있어. 근데 넌 배 비서가 말했듯이 양시은 씨의 우수함을 부정하면 안 돼. 그녀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도 있을 텐데 네 옆에만 가둬 두고 있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게다가 네가 뭐 사랑을 강제로 시키는 대표도 아니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 다투지 마.”나도현은 여이현의 말을 다 알아들었지만 자신의 답답하고 복잡한 이 심정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그는 양시은이 모두에게 존중받는 것도 원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앞에서만 이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마시다 보니 나도현은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양시은은 오늘 저녁에야 출장에서 돌아왔고 여이현이 만취한 나도현을 데려온 것을 보고 그녀는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여이현 씨, 저의 남편 데려다줘서 고마워요.”“별말씀을요. 둘이 잘 소통해 봐요.”여이현의 한마디에 양시은은 바로 눈치채고 나도현이 열일곱 살 난 아이 같아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양시은은 도우미를 불러 나도현을 위층으로 옮기고 침대에 눕혀 신발을 벗기고 넥타이를 풀어줬다.금방 출장 다녀온 탓에 힘들었지만 인내성 있게 나도현을 돌보았고 혹시라도 토할까봐 곁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나도현은 갑자기 양시은을 품에 안더니 그녀에게 입을 맞추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양시은, 나 정말 널 너무 사랑해. 그래서 또 잃을까 봐 두려워.”“너의 마음을 나도 다 알고 있어.”“니가 너무 우수해서 다른 사람들이 눈여겨볼까 봐 겁이 나, 그리고...”양시은은 그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바보야, 너는 내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남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