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경찰은 곧 떠났고 이 소동은 무사히 끝났다고 할 수 있었다.은서우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친구가 옆에서 눈짓하며 재미난 이야기를 묻는 모습이었다.“너 눈에 경련 났어?”그녀가 묻자 이혜성은 퉁명스럽게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니!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니다.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지. 빨리 설명해봐. 너와 원장님 대체 무슨 상황이야?”은서우는 어리둥절해 해며 물었다.“무슨 상황이라니?”이혜성은 눈을 크게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야, 방금 서로 껴안고 있는 거 나 말고 본 사람이 몇 명인 줄 알아? 근데 지금 두 사람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차라리 귀신을 속여라.”“지금 솔직하게 고백하면 용서하고 그렇지 않으면 엄하게 처벌할 거야. 지금 모든 걸 털어 놓는다면 우리 우정을 지킬 수 있다고.”은서우는 머리가 하얘졌다.곧 얼굴이 빠르게 달아올랐고 단 몇 초 만에 귀 끝까지 붉어졌다.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그녀와 인명진이 사람들 앞에서 서로 껴안았다니.친구의 가십 어린 눈빛을 보니 그녀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결국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별로 설명할 것도 없었다. 그녀와 인명진의 관계는 확실했다.듣고 난 이혜성은 약간 실망했지만 그저 입술을 삐죽 내미는 정도였다.“알았어. 난 또 뭐 대박 뉴스인 줄 알았지.”“참, 너 원장님한테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방금 손에 피나더라고.”이 말은 이혜성의 미끼였다.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은서우의 반응을 기다렸다.은서우는 인명진이 다쳤다는 말을 듣자마자 순간 놀라 아무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뭐? 다쳤다고? 내가 가봐야겠어.”그녀는 이혜성을 두고 급히 자리를 떴다.일을 해결한 후 인명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는 길에 여러 명의 의사와 간호사에게 물어보았지만 모두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그녀는 직감적으로 그가 사무실에 있을 거로 여겼고 노크하는 것도 잊고 벌컥
인명진은 은서우를 바라보며 끝내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언제까지 감을 거예요?”은서우는 그제야 자신이 붕대를 너무 많이 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아, 방금 말을 거셔서 잠깐 정신이 팔렸어요. 조금 풀게요.”그녀가 바깥쪽 두 바퀴 붕대를 풀고 나니 보기에 훨 나아졌다.은서우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어쩌다 다쳤어요? 방금 칼을 손으로 잡은 거예요?”인명진이 불편한 곳을 교정하니 손에 붕대가 더 자연스럽게 묶였다. 그리고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니요. 그냥 살짝 긁혔어요.”은서우의 미간이 순식간에 꼬였다.당장 경찰서로 달려가 그 남자를 한 대 때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지금 인명진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처가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흔한 일처럼 보였다.심지어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도 없었다.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몸에 이렇게 무관심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은서우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냥 간단하게 처리한 것뿐이니 돌아가서 꼭 약 바르시고 상처에 물이 닿지 않도록...”“서우 씨, 그렇게까지 나 신경 쓸 필요 없어요.”인명진이 말하자 은서우는 어리둥절했다.남자는 자기 손을 힐끗 보더니 내려놓았다.“그냥 내버려 두면 혼자 낳을 거예요. 이젠 서우 씨도 어서 일하러 돌아가요. 나 이따가 수술 있어요.”이 손으로 수술하러 간다니.이 말을 들은 은서우는 목청을 더 높였다.“안 돼요! 다친 손은 오른손이잖아요? 게다가 상처가 이렇게 큰데 어떻게 수술을 해요?”수술은 아주 정교한 작업이었다.특히 내과 수술은 더욱 조심해야 하며 의사의 손은 그들의 목숨만큼 중요했다.인명진은 오른손을 자주 사용하는데 부상도 오른손이었다. 방금 붕대를 풀 때 그녀는 상처가 너무 깊어 속으로 놀랐다. 비록 정맥과 동맥을 아슬하게 피했지만 힘줄에 닿을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이 정도로 다쳤는데도 인명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꾹 참았다.그래서 은서우는 그가 수술하러 간다고 했을 때 크게 흥분했다.“지금 명진 씨 손으로는 큰 수술을
수술까지 거의 두 시간이 남았다.은서우는 다른 사람에게서 임시로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고 환자의 정보를 확인했다.인명진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여 진료 기록을 짚으며 말했다.“이 환자는 관상 동맥 질환을 앓고 있고 여러 가지 증상으로 인한 혈관 막힘이 많아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기절한 상태였어요. 환자 나이가 50이 넘었기 때문에 수술 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하고...”남자의 목소리는 잔잔하여 마치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 같았다.은서우의 불안함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보조 의사가 인명진을 부르러 왔고 사무실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이미 마음이 진정되었다. 막 일어나려는데 옆에 있던 인명진이 그녀와 함께 일어섰다.“함께 가요. 내가 현장에서 지도하면 서우 씨가 더 안심될 거예요.”인명진이 말하자 은서우는 몇 초 동안 어리둥절했다.곧 노크한 사람이 들어왔고 한 남자 의사였다.은서우를 본 그는 의아해하며 말했다.“은 선생님 원장님을 찾으러 오셨어요? 죄송하지만 지금 응급 수술이 있어서 원장님을 모시고 수술실에 들어가야 해요.”“시간이 촉박하니 바로 가시죠. 원장님. 그렇지 않으면 늦을지도 몰라요.”인명진은 대답하고 옆에 있은 은서우를 바라보았다.은서우는 또 긴장하기 시작했다.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두 사람만 있을 때는 인명진 앞에서 호언장담할 수 있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 앞에서도 자신만만한 건 아니었다.그녀는 그 정도로 뻔뻔하지 않았다.그러나 인명진은 전혀 걱정 없이 은서우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수술은 은 선생이 집도할 거예요.”이 말에 남자 의사는 깜짝 놀랐다.“무슨 그런 농담을 하세요 원장님. 이번 수술은 절대 쉽지 않아요. 경력이 부족한 은 선생님이 감당할 수 있는 케이스가 아니에요.”인명진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니 내가 가능하다고 하면 가능한 거예요.”남자 의사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인명진을 설득할 수 없자 그
그들은 이미 인명진을 인정했고 심지어 문제가 생겼을 때도 제일 먼저 그를 떠올렸다.인명진이 현장에 있다면 안심할 수 있었다.가는 길에 은서우는 인명진이 시종일관 자기보다 앞서가는 뒷모습을 보며 은근히 주먹을 쥐었다.그녀는 항상 자신이 진보했다고 생각하지만 매번 그를 따라잡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서 이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되었다.곧 은서우는 수술실로 들어가 수술을 시작했다.갑자기 집도의가 바뀌었으니 수술실의 보조 담당 간호사와 다른 의사들이 모두 놀랐다.하지만 수술실은 안정을 유지해야 하고 모두가 얼굴에 소독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걱정하고 있었다.인명진은 앉을 곳을 찾았다.은서우는 한 눈 팔지 않고 모든 주의력을 동원해 세심하게 수술에 집중했다. 때때로 옆 사람에게 핀셋이나 보조 도구를 건네주라고 했다.그러나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간호사가 갑자기 소리쳤다. “환자의 혈압이 올라가고 있어요!”은서우는 손을 떨지 않고 기기를 보았는데 정말로 눈에 보이는 속도로 혈압이 올라가고 있었다.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한 그녀는 약간 당황했다.그때 인명진의 침착한 목소리가 마치 진정제처럼 들려왔다.“당황하지 말고 호흡을 가다듬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라고 내가 가르쳤는지 잘 생각해 봐요.”은서우는 무의식적으로 몇 번 심호흡했다. 그렇다. 그녀는 지금 진정해야 했다.인명진의 말에 그녀는 기억을 떠올렸다.순간 그녀는 눈이 반짝이더니 지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은서우는 침착하게 주변 간호사에게 자신을 보조하라고 분부했다.한 시간 후, 수술이 끝났다.수술실을 나오기 전 그녀는 먼저 피 묻은 장갑을 벗었다. 마치 마음속의 무거운 돌멩이를 꺼낸 듯 긴 호흡을 토해냈다.“은 선생님 방금은 정말 위험했어요. 그래도 선생님께서 해결방법을 찾았으니 다행이에요. 전에는 저희가 은 선생님을 과소평가했어요.”동료들은 말하면서 쑥스러워 자기 코를 매만졌
환자 가족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다면 그건 가치 있는 일이었다.곧장 원장실에 갔지만 그는 자리에 없었다.텅 빈 사무실을 보니 인명진의 기운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약간 막막했다.그는 어디로 갔을까?그때 누군가 다가와 물었다.“원장님 찾으세요? 방금 옷 갈아입고 나가는 걸 봤어요. 이미 퇴근 시간이니 갈 때도 되셨죠.”은서우는 이미 어두워진 밖을 보고 문득 깨달았지만 이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인명진은 퇴근할 때 늘 그녀에게 말하고 나갔고 매일 차로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줬다. 만약 혼자 퇴근했다면 왜 미리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을까?순간 그녀는 자신의 뺨을 때렸다. 힘이 좀 세서 짝 소리가 울렸다.“은서우,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원장님이 퇴근하는데 왜 나한테 보고해야 하냐고?”그렇게 말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은서우는 생각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그런데 어질러진 진료실을 치우고 창턱으로 나왔을 때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그냥 오늘은 집에 가지 말까? 원장님 집 근처에 꽃집이 하나 있는 것 같던데...”지난번 이준서가 그 패랭이꽃을 망가뜨린 후 그녀는 다시 사지 않았다.지금 마침 시간이 있으니 가보는 것도 좋았다.물론 이것은 은서우가 자신을 위한 핑계일 뿐 진정으로 보고 싶은 것은 꽃이 아니라 사람이었다.인명진이 말도 없이 떠난 데다 오늘 좀 이상한 반응을 보이니 은서우는 왠지 신경이 쓰였다.그녀는 마음을 정한 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바로 택시를 타고 인명진이 사는 동네로 갔다.초인종을 눌렀을 때 도우미가 문을 열었다.문 앞에서 조금 오래 기다린 은서우는 찬바람에 으스스 추워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아주머니 왜 이렇게 늦게 나오셨어요?”도우미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목소리를 낮추었다.“서우 씨, 왜 지금 오셨어요? 오늘은 그냥 돌아가세요.”“왜요? 원장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아니요. 원장님께서 지금은 사람을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요.”도우미가 다급해진 은서우를 위
도우미는 위층을 쳐다보더니 말했다.“선생님께서 돌아오셔서 잠이 드셨는데 또 악몽을 꾸신 것 같아요. 그러니 지금은...”은서우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으로 뛰쳐들어갔다.도우미가 막으려야 막을 수 없었다.그녀는 미친 듯이 2층으로 달려가 침실 문을 여는 순간 가슴이 조였다.평소에 차갑고 냉담하던 사람이 지금 고통스럽게 침대에 누워 눈을 꼭 감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은서우는 침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남자의 한쪽 손을 잡았다. 놀라울 정도로 차가운 손이었다.“인명진 씨, 내 말 들려요? 나 왔어요. 나 은서우예요. 일어나봐요.”인명진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그녀는 인내심 있게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의 손바닥을 자신의 볼에 대보았다. “당신은 지금 악몽을 꾸고 있을 뿐이에요. 깨어나면 다 괜찮아질 테니 두려워하지 마세요.”은서우는 남자가 무서워하는 걸 눈치챘다.정말 신기했다. 인명진의 경쟁자가 이를 알게 되면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준서는 절대 거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사실 은서우가 처음 왔을 때도 도우미가 말한 인명진의 모습을 믿지 않았다.하지만 들어와서 본 이 모든 것들이 인명진에 대한 오랜 인상을 깨뜨렸다.놀라움도 잠시 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자리를 잡았다.“그만 자고 어서 일어나봐요. 아주머니가 당신 아직 밥도 안 먹었다고 하던데 어서 일어나서 우리 같이 밥 먹고 다시 자요. 네?”남자가 깨어나지 않자 그녀는 손을 남자의 얼굴에 얹고 땀을 닦아 주었다.그런데 순간 남자가 눈을 번쩍 떴다.강력한 팔의 힘이 다가오더니 통증과 함께 하늘과 땅이 빙빙 돌았다.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침대에 눌려 있었고 목에 남자의 손이 더해져 목을 조이고 있었다.“선생님... 내가 누군지 잘 봐요.”호흡을 빼앗긴 은서우는 억지로 버티며 겨우 말을 내뱉었다.그러나 남자는 흔들리지 않았고 그녀는 곧 현기증을 느꼈다.은서우는 이것이 저산소증로 인한 첫 번째 반응이라는
그녀는 일어나다가 실수로 발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그러자 인명진이 그녀를 안았다.이렇게 되면 은서우는 인명진의 마음이 좀 헷갈렸다. 방금은 그녀를 차갑게 내쫓았는데 왜 이럴까?사실 은서우뿐만 아니라 인명진 자신도 놀랐다.완전히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그녀가 곧 넘어질 것으로 보이자 아무 생각 없이 가서 그녀를 받았는데 마치 그의 마음이 입보다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았다.은서우가 궁금한 것을 묻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를 놓아주고 방금 자신의 행동을 해명하듯 말했다.“어쨌든, 방금 일은 고마웠어요. 택시 잡기 편해요? 내가 데려다줄 수 있어요.”은서우는 마음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괜찮아요. 나 혼자 갈 수 있어요.”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제멋대로 생각한 결과가 이거였다.남자는 단지 그녀가 넘어질까 봐 호의로 잡아준 것인데 그녀는 계속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으니... 정말 답이 없었다.은서우는 기대를 품고 왔다가 넋을 잃고 떠났다. 그녀는 혼자라고 생각하며 어둠 속으로 들어가 주변과 하나가 되었다.그러나 뒤에서 누군가가 오랫동안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비틀비틀 걷는 것을 보며 하마터면 달려갈 뻔했다.하지만 결국 참았다.도우미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선생님 지금 시간이 늦었어요. 정 마음이 안 놓이시면 데려다 주세요.”인명진은 고개를 저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이 아파트 단지는 보안이 좋고 도로도 좋은 편이에요. 교차로에 도착하면 바로 택시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난 서우 씨 휴대폰 위치를 공유하고 있어요.”이 위치 공유는 다른 목적이 아니라 애초에 소씨 가문 때문에 은서우가 매일 잘 먹지 못하고 잠을 잘 수 없을까 봐 걱정돼서 위치를 공유하자고 제안했었다.이 말을 들은 도우미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분명 은서우를 걱정하면서 왜 계속 참고 있는 걸까?이렇게 걱정할 거면 나가 보는 것도 좋을 텐데. 계속 집에서 이런 얘기만 하고 있으니 그는 대체 누구를
이혜성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너랑 누구야? 인 원장님?”“내 친구 얘기야.”은서우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했다.이혜성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서우야 제발, 핑계를 댈 거면 다음엔 좀 더 그럴싸한 거로 찾아. 이런 핑계는 이미 오래전에 쓰고 닳았어.”이혜성은 투덜거리더니 다시 디테일을 묻기 시작했다.내용이 궁금할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은서우를 돕고 싶었다.은서우는 자신에 대한 인명진의 태도를 모두 그녀에게 말했다.그걸 들은 이혜성은 목청을 돋웠다.“내 생각에는 네 남자친구가... 아, 네 친구의 남자친구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아. 네 친구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뭔가가 있는 거지.”은서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아니면 왜 네 친구를 그렇게 대하겠어? 정말 관심이 없다면 네 친구가 넘어질 때 급해 하지도 않았어.”은서우는 이혜성의 말을 귀담아들었다.머릿속으로 어제 일을 회상해 보았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지 않으니 어제 인명진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게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다만 어제의 그녀는 너무 억울하고 괴로워 그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그녀는 벌떡 일어나 밥도 먹지 않으려 했다.“고마워. 나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갈게.”“밥 먹는 거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 은서우! 돌아와!”은서우는 인명진을 만나러 달려갔다.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지금처럼 치열하고 기대감으로 가득 찬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제의 억울함과 슬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가슴 가득한 뜨거운 열기만 남은 것 같았다.지금 당장 인명진을 만나고 싶었다.복도 모퉁이에서 은서우가 갑자기 멈춰 섰다. 여기가 원장실로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나려는 사람은 지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인명진이 앞에 서 있었다.“원장님, 이번 프로젝트는 상대방이 원장님의 체면을 봐서 맡긴 겁니다. 만약 완성한다면 우리 병원의 의료 환경이 크게 개선될 겁니다... 원장님 듣고 계세요?”몇 번이나 불렀지만 응답
강윤슬의 이런 모습은 여자인 문지원이 봐도 마음이 아팠다. 하물며 오랫동안 강윤슬을 사랑한 지석훈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것이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문지원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강윤슬의 말에 마음이 약해지지도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강윤슬을 향해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여자들은 늘 그러잖아. 늦게 온 사랑은 싸구려라고. 우리 남자들도 그래. 나 이제 예전처럼 선배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까 선배는 임혁수한테 가.”“임혁수가 선배를 많이 사랑하고 있을 거야.”강윤슬이 임혁수의 사랑을 원했다면 아마 벌써 그와 함께 살았을 것이다. 이렇게 지석훈을 찾아올 리가 있겠는가? 사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사랑할 때는 상대를 보물처럼 여기다가도 사랑하지 않으면 헌신짝 취급을 한다. 한번 마음먹었으면 되돌아보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사랑해도 다시는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제 장난 그만 쳐.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아. 네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 돌아와 줘.”강윤슬은 목이 멘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눈물이 마치 끈 떨어진 진주처럼 흘러내렸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기 싫었던 그는 아예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 순간, 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얼른 가. 나도 할 일이 있어. 선배가 이러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볼일을 봐?”지석훈은 그게 어떤 일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강윤슬은 깨달았다.지금 두 사람의 옷차림을 보면 두 남녀 사이에 할 일이라는 게 또 뭐가 있겠는가?울면서 애원했지만 지석훈은 요지부동이었고 그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그래. 지석훈, 잘 들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다시는 나 찾아오지 마.”눈물을 닦으며 말하던 강윤슬은 이내 뒤도 안 돌아보고 별장을 뛰쳐나갔다.강윤슬이 떠난 후, 지석훈은 바로 문지원을 밀어냈다.그의 마음속에 강윤슬이 1 순위라는 걸 문지원은 잘 알고 있었다. “쫓아가 보는
더 이상 강윤슬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그는 문지원에게 눈빛을 보냈다.곁으로 다가가자 그가 문지원의 허리를 껴안았다. “선배, 문지원이랑 있으면 나 편해. 사랑은 일방적인 게 아니야. 선배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아니. 이 여자가 너한테 순종하는 거 네가 많이 도와줬기 때문이야. 네가 지석훈이 아니었다면 네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문지원이라는 여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겠지.”강윤슬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문지원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문지원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석훈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찌 그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석훈 씨한테 순종하는 거 맞아요. 나한테 잘해주니까요. 결혼도 안 한 남녀가 만나겠다는데 뭐가 문제예요?”문지원은 강윤슬을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강윤슬 씨, 나랑 석훈 씨가 만나는 게 불만인 거죠? 우리 두 사람은 당신한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어요. 석훈 씨가 프러포즈를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고 임혁수 씨를 찾아간 건 바로 당신이에요.” 프러포즈하던 날, 그곳에는 강윤슬과 지석훈 두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지석훈이 이 일을 문지원에게 알려준 것일까?문지원의 차가운 눈빛을 보니 그녀를 무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에요.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란 말이에요. 지석훈, 너 꼭 이 여자 앞에서 나한테 망신을 줘야겠어?”강윤슬은 흥분된 표정을 지으며 문지원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녀가 지석훈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확실히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다.다만 문지원이 이 얘기를 꺼낸 건 강윤슬이 더 이상 이렇게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게다가... 지석훈은 문지원에게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었다. 어떤 일들은 그녀도 단지 두 사람의 대화에서 눈치를 챈 것뿐이었다. 먼저 포기를 한 사람은 강윤슬이었기 때문에 지석훈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슨 할 말이 있겠는
지금까지 강윤슬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아무리 강윤슬이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그의 앞에서 당당했고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았다.지석훈은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선배 곁에는 이미 임혁수가 있잖아.”“임혁수만으로는 만족 못 하는 거야?”그의 말에 강윤슬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와 지석훈 사이의 가장 큰 문제는 임혁수였다. 비록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임혁수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그저 단지 과거의 아쉬운 감정만 남아있는 것이었지만 지석훈은 그리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혁수 씨 얘기가 왜 또 나와? 설마 나더러 혁수 씨를 쫓아내라는 거야? 어떻게 쫓아내니?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는 사람인데.”“어찌 됐든 알고 지난 사이인데. 임혁수도 임혁수지만 만약 네가 그렇게 된다면 나도 널 도와줬을 거야.”그녀는 지석훈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고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그도 더 이상 그녀를 바로잡고 싶지 않았다.“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선배 자유야. 하지만 나랑 선배 사이는 이제 완전히 끝났어.”“아니지. 시작한 적이 없으니까 끝낼 것도 없지 뭐.”오랜 시간 강윤슬의 옆에 있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의 마음을 받아준 적이 없었다. 강윤슬은 아예 그를 남자 친구의 후보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 정도의 위치만 했어도 오랫동안 함께 있다 보면 남자 친구로 변할 법도 한데, 그녀는 아니었다. 지금 그의 옆에 문지원이 나타난 걸 보고 강윤슬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가. 혼자 돌아가지 말고 임혁수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그녀의 안전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강윤슬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한없이 다정하고 그녀에게 고분고분하던 남자가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있다. “정말 내가 너한테 사정까지 해야 하는 거니? 아니면 혁수 씨를 쫓아내야 네 화가 풀릴 거니?”그래야
심호흡을 하던 강윤슬은 그 순간, 지석훈을 되찾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임혁수의 손을 뿌리쳤다.“석훈이한테 볼일이 있어. 먼저 갈게. 혁수 씨는 딸이랑 당분간 이 별장에서 지내. 나중에 돈이 생기면 헐값에 넘겨줄게.”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자리를 떴다. 워커홀릭이었던 지석훈은 병원에서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곳에 가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그는 병원에 있지 않았고 병원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그가 휴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석훈의 별장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녀는 그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바로 그의 별장으로 향했다.문을 두드리는데 뜻밖에도 문을 연 사람은 문지원이었다. 문지원도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잠깐만요. 석훈 씨 불러줄게요.”사실 문지원은 별장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옷이 마르지 않았고 지석훈을 생각해 비서한테 옷을 가져다 달라고도 하지 못했다.어찌 됐든 지석훈은 그녀를 도와준 사람이었고 누군가한테 연락해서 별장으로 오라고 한다면 두 사람 사이를 오해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윤슬이 이렇게 찾아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 강윤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은 문지원에게 떨어졌다.문지원은 지석훈의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그녀의 목덜미에 붉은 자국이 몇 군데 있었다. 성인인 강윤슬이 어찌 그걸 보고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수가 있겠는가?이젠 정말 늦은 것 같다. 만약 일찍 깨달았더라면 지석훈은 여전히 그녀의 곁에 있었을까?강윤슬은 문지원을 가로지나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지석훈을 찾았다.마침 그가 샤워 가운을 입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계단에서 마주쳤다. 180cm가 훨씬 넘는 큰 키, 어두운 눈빛이 그녀에게 떨어졌다. 입술을 오므리고 있던 그녀는 먼저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석훈아, 나 결심했어.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네 마음도 몰라주고. 하지만 이제는 알 것
또한 회사에 임혁수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임혁수도 자신이 입만 열면 그녀가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건 강윤슬이 완전히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이었다. “나도 이젠 귀국한 지 꽤 되었고. 너... 내가 한 번 결혼한 적은 있지만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는 거잖아. 내 과거에 대해 감출 생각은 없어. 우리 딸도 너 많이 좋아하고. 우리한테 기회가 있을까?”임혁수는 강윤슬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다시 돌아왔지만 그녀는 사귀자는 말도 없었고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을 때가 많았다. 아마도 지석훈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 혁수 씨가 돌아온 건 기뻐. 당신을 도와준 건 그저 친구로서 도와준 것뿐이야. 그리고 나 계모가 될 자신 없어.”임혁수의 딸이 예쁜 건 맞지만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임혁수 때문에 지석훈의 프러포즈까지 거절한 강윤슬인데...게다가 그를 회사로 끌어들였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사람들은 알만큼 다 알고 있었다.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예전에 널 두고 떠난 건 내 잘못이야. 하지만 이제는 내가 돌아왔잖아. 하루라도 젊을 때 같이 있자. 아이가 싫다면 아이는 우리 엄마한테 맡길게.”“강윤슬, 나 더 이상 널 잃을 수가 없어.”그의 목소리는 울컥했고 말을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윤슬은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어찌 됐든 한때는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고 사랑했지만 얻지 못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임혁수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아쉬움을 달래준 셈이었다.지석훈이 그날 프러포즈를 할 때, 임혁수의 전화 한 통에 그녀는 바로 그를 향해 달려갔다.공항에서 임혁수와 그의 딸을 마주한 순간, 임혁수는 여전히 멋진 남자의 모습이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젊은 날의 아쉬움도 이제는 서서히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게다가 그동안 지석훈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많이 아물게 되었다.지석훈...
한편,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문지원은 지석훈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어디 있어? 우리 집으로 와.”“알았어요.”지석훈의 말이라면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지석훈은 그녀한테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니까.만약 지석훈이 없었더라면 그녀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할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잠시 후, 퇴근하고 나서 그녀는 바로 지석훈의 집으로 향했다. 뜻밖에도 그는 나른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녀를 본 순간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그녀의 손목을 확 낚아챘고 그녀는 그의 다리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문지원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석훈 씨, 날 여기로 부른 건...”차마 입 밖으로 다 꺼내지 못할 말이었다.지석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향기가 꽤 좋더라고맛있더라고. 내가 오라고 하니까 이렇게 왔잖아. 그럼 충분한 거 아니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저돌적으로 입을 맞춰왔다. 하룻밤의 섹스로는 끝나기가 아쉬웠던 관계, 두 사람은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한편, 임혁수는 강윤슬을 위해 정성껏 장미 꽃다발을 준비했다. 장미꽃은 강윤슬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고 평소에도 장미꽃을 보면 그렇게 오랫동안 기뻐했었다.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장미꽃을 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지석훈이 떠올랐다. 지석훈은 사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오로지 의학에만 몰두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의학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예전에 지석훈은 그녀에게 각양각색의 장미꽃을 선물해 주었다. “왜 그래?”임혁수도 그녀가 딴생각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요즘 들어 강윤슬은 툭 하면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멍해 있었다.그런 모습을 보고 그는 강윤슬이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아니야.”정신이 돌아온 강윤슬의 말투는 차갑기만 했다.차가운 강윤슬의 태도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예전의 강윤슬이라면 그를 중심으로 맴돌고 있던 사람이었는데...지금 이러는 걸 보면 아마도 지석훈 때문인 것 같았다.“
“왜? 마음이라도 아픈 거야?”“알았어요.”그녀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잠시 후,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던 그녀는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최지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왜 불도 안 켜고 있어요?”여울은 놀란 가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어두컴컴한 게 좋아서.”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이리 와봐.”여울은 얌전히 다가가 살짝 몸을 숙여 그의 관자놀이를 주물렀다.“왜요? 기분 안 좋아요?”“응.”무심하게 대답하던 그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당신은 나 배신하지 않을 거지?”그 말에 여울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설마 최지후가 뭔가 눈치라도 챈 걸까?’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냥 궁금해서.”그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당연히 그럴 일 없죠. 난 지후 씨 곁에 평생 있을 거예요.”그녀는 예쁜 말로 골라서 했고 원하는 답을 들은 최지후는 이내 환하게 웃었다.“그래. 당신이 날 배신한다면 내가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갈 거야.”농담처럼 들리지만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윤슬 씨, 나 어떡하죠? 최근에 회사의 프로젝트들이 지석훈 때문에 다 엉망이 되어버렸어요.”엄우정이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문지원을 건드린 것이 엄청 후회되었다.강윤슬은 그녀를 보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바보같이 왜 일을 만들어서는... 일이 틀어지니까 날 찾아와?’“윤슬 씨, 말 좀 해봐요. 내가 누구 때문에 그런 건데요?”강윤슬이 말이 없자 엄우정은 더 초조해졌다.이번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집에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강윤슬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정 씨, 석훈이는 이제 우정 씨가 알던 사람이 아니에요. 나도 우정 씨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어요.”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문지원 씨를 찾아간다면 어쩌면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문지원 씨는 줄곧 우정 씨와 협력하고 싶어
최주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역시 그럴 줄 알았어. 문지원 씨 때문이 아니라면 네가 나한테 보자고 할 일도 없겠지.”“말해 봐.”한참을 망설이던 지석훈은 끝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됐다. 술이나 먹으러 가자.”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최주하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술잔을 들자마자 최주하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여울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잠깐 전화 좀 받게 올게.”지석훈은 고개를 끄덕였고 최주하는 밖으로 나오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볼 일이 있어서요...”전화를 끊고 최주하는 다시 지석훈에게로 다가갔다. “미안하다.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아. 나중에 시간 되면 내가 술 살게.”“됐어. 일 있으면 가.”최주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혼자 술을 마시던 지석훈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한 그룹의 그 프로젝트, 나한테 넘겨.”전화를 끊은 후, 그는 눈앞의 술잔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버렸다. 자신이 왜 신한 그룹을 겨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본능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한편, 프라이빗한 호텔에 도착한 최주하는 흰 원피스를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있는 꽃 같은 여인, 여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눈빛은 아무런 파동이 없었다. “말해.”여울은 그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하 씨, 최지후 씨가 저한테 마음을 완전히 연 것 같아요.”그녀의 말대로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현재 최지후는 여울을 완전히 신임하고 있었고 무방비 상태라 그녀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알아. 하지만 난 더 가치가 있는 것이 필요해.”최주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부담감이 확 밀려왔고 최주하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저... 최지후 씨가 최근에 입찰을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입찰 문서를 손에 넣었어요.”그녀는 급히 입을 열
문지원은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고통스러웠다. 지석훈에게 붙어있으면 조금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고는 필사적으로 그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부드러운 입술이 닿자 흠칫 놀라던 그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가 앞에 앉아 있는 운전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출발해요. 가장 가까운 호텔로 갑시다.”이내 가림막이 내려졌고 문지원은 여전히 끙끙거리며 그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에 그의 몸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얼마 후, 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섰고 그가 그녀를 안아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프런트 데스크에 다가가 블랙 카드를 꺼내며 한마디 했다.“스위트룸으로 잡아줘요.”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은 훤히 다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룸에 들어온 후, 그는 문지원을 침대에 눕혔다. 막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그녀가 그의 목을 감싸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가지 마요.”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문지원, 이건 당신이 선택한 거야.”더 이상 그도 참지 않았고 들끓어 오른 욕정을 드러냈다. ...뜨거웠던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잠에서 깨어난 문지원이 몸을 움직이는데 갑자기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자마자 그녀는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그가 천천히 눈을 뜨는데 눈빛은 평온하기만 했다.“깼어?”“저기... 우리...”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지석훈은 아주 자연스러웠다.“걱정하지 마. 책임질게.”“책임... 책임질 필요 없어요. 어젯밤 일은 사고였어요.”어젯밤의 일에 대해 기억이 남아있었고 자신이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 일로 지석훈한테 뭔가를 요구하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그한테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니까.“왜? 그렇게 나랑 선 긋고 싶은 거야?”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차갑게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