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외의 폐공원에 도착하자 여이현은 이른바 이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는 사람을 만났다.“별이와 싸운 그 아이의 부모예요.”온지유는 작은 목소리로 사실을 알리고서는 마음속으로는 법로가 왜 이 사람을 잡아 왔는지 의아해했다. 이씨 가문의 사모님인 박민정은 온지유를 보자마자 격렬하게 반응하며 온지유에게 달려들려고 몸부림쳤다. 박민정은 온지유를 산산조각 낼 정도로 두 눈에 증오가 가득했다.여이현은 법로에게 박민정의 입에 물린 헝겊을 제거하라고 지시했다.“내가 너희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너희를 끝장내버릴 거야. 아니, 너희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 거야.”박민정은 악랄하게 저주를 퍼부었다.법로의 부하가 다시 박민정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여이현은 그를 막고 박민정을 발로 차 분노를 표출했다.박민정은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여전히 독설을 퍼부었다.“이런 방식으로 만나게 된 건 우리 잘못입니다만 박민정 씨라고 했죠? 남편이 누군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내 남편의 이름을 당신 같은 사람이 알아서 뭐 하게? 얼른 날 풀어줘.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여기서 나간 뒤 바로 남편에게 당신들을 고소하라고 할 거야. 당신들 전부 감옥에 처넣고 말 거라고.”박민정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여이현에게 침을 뱉었다.여이현은 피하지 못해 침을 맞고서는 불쾌함에 얼굴을 찌푸렸다. 여이현은 겉옷을 벗어 바닥에 던지더니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경성에 이씨 가문은 한 곳뿐인데 그쪽은 이씨 가문 사람이 아니군요. 더는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 나를 협박하려 하지 마세요.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면 최소한 시체라도 보존할 수 있게 해드리죠.”여이현은 겁을 주기 위해 위협적인 표정을 지을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가볍게 말했을 뿐인데 그의 말은 박민정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너, 너, 너...”박민정은 한참 동안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박민정 씨에게 두 가지 선택을 드리죠. 그쪽이 누구인지 밝히고 남편에게 전화해 나와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선택지고 다른
“사모님, 어떻게 해야 저를 용서해 주시겠어요? 제가 아들을 잘못 키웠어요.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제발요.”뒤에서 박민정의 애원이 들렸지만 온지유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여이현은 온지유를 따라오며 다정하게 물었다.“왜 그래? 갑자기 기분이 왜 이렇게 안 좋아졌어?”온지유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저 여자 풀어주고 아들은 전학시키라고 해. 앞으로 별이랑 다시는 만나지 못하도록.”“알겠어. 바로 그렇게 처리할게.”여이현은 온지유의 기분이 많이 상했음을 느끼고서는 이는 분명 박민정과 관련 있다고 확신했다. 이미 법로가 나섰고 또 상대방도 이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기에 미적거리지 않고 일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여이현은 부하의 귀에 대고 지시를 내렸다.“저 사람 가족을 데리고 떠나라고 해. 아가씨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도 전하고.”법로의 부하는 바로 알겠다고 대답한 뒤 한 명이 빠르게 박민정을 기절시키고 다른 한 명이 자루에 넣었다. 그런 다음 바로 내려가려 하는 것을 다행히 여이현이 제지하여 여이현과 온지유가 떠난 다음 떠났다.아름다운 밤 여이현은 온지유를 끌어안고 통유리창 앞에 서서 아래쪽의 복잡한 교통을 내려다봤다.“박민정이 나한테 세컨드라고 했어. 난 생각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싶어. 그렇다고 내가 일일이 세컨드가 아니라고 알릴 수도 없잖아. 맞지?”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여이현을 바라보며 물었다.여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네가 세컨드가 아니라는 걸 알릴 방법이 필요한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여이현은 마치 깊이 고민하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온지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술을 삐죽였다.“난 상관하지 않을 거야. 이 일은 이현 씨가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해. 더 이상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까. 안 그러면 이현 씨를 탓할 거야.”“알겠습니다. 리더님.”여이현은 이미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온지유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이태훈이 여진 그룹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누
“두고 보시죠.”여이현은 이태훈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온지유의 손을 잡고 사무실로 들어갔다.셋이 아직 자리에 앉기도 전에 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비서는 긴장된 표정으로 이태훈을 한 번 바라보더니 말을 꺼내지 못했다.“무슨 일이죠? 그냥 얘기해요”“최승현 씨가 밑에 와 있습니다. 지금 기자들 앞에서 이태훈 씨의 험담을 하고 있어요.”비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태훈은 벌떡 일어나 최승현에게 따지러 가려고 했다.여이현은 이태훈을 붙잡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태훈 씨가 최승현 씨의 마음을 빼앗았으니 이태훈 씨를 비난하는 것쯤은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아요? 최승현 씨는 일생의 행복을 잃었으니까요.”이태훈은 잠시 멈칫하더니 큰 웃음을 터뜨렸다.“맞아요. 맞아. 그게 최승현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다면 그냥 두는 게 좋겠네요. 굳이 막을 필요는 없죠.”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겉보기에는 등 떠밀려 기자 회견을 진행하는 것 같지만 사실 모든 것은 여이현의 계획 속에 있었다.비서가 기자들을 1층 응접실로 유도한 뒤 그제야 세 사람은 여유롭게 내려갔다. 응접실에 가까이 다가가자 최승현이 이태훈을 헐뜯는 소리가 들려왔다.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여이현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원래 떠들썩했던 응접실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세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울렸다.“저 사람이 여 대표의 부인인가요? 온지유라고 하던데. 저 여자가 왜 왔죠? 여희영이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모르겠어요. 아마 여희영이 나서기 민망해서 저 여자를 대신 보낸 것 같네요.”누군가는 온지유가 현장에 있는 목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여이현 일행은 모른 척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비서가 선물을 나눠주자 의문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은 여이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태훈이 입을 열길 기다렸다.“여러분, 이태훈 씨가 우리 회사에서 사고를 당한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이태훈 씨는 저에게 분명한
여이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태훈 씨가 언제 우리 고모를 병원에 데려간 거죠? 난 몰랐는데요. 언제 있었던 일이죠? 저희 고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태훈 씨가 우리 고모한테 무슨 짓을 한 거죠? 이태훈 씨 이 일은 분명히 설명하셔야 할 겁니다. 설령 내가 이씨 가문과 싸워 이길 수 없더라도 우리 고모를 위해 정의를 되찾겠습니다.”“당신...”이태훈은 여이현이 보인 예상 밖의 행동에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이태훈 역시 계획대로 이을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이태훈은 갑자기 깨달은 듯 건방진 웃음을 지으며 여이현에게 말했다.“내가 여이현 씨의 고모부가 되고 싶다고 하면 여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이 말이 떨어지자 기자들은 모두 놀랐고 최승현은 소리를 질렀다.“난 반대야.”“그쪽이 무슨 자격으로 반대해요? 그쪽이 누군데?”“그러니까요. 자기 신분도 모르고. 내 생각에 여 대표님이 승낙해 주시는 게 낫겠어요. 강한 자끼리 연합하면 여진 그룹은 더욱 번창할 거예요.”“만약 그렇게 되면 정말로 경성에 큰 경사가 일어나는 거야.”기자 중 일부는 여씨 가문과 이씨 가문의 결혼을 찬성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좋아하던 기자들이 언제부터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 주게 된 걸까?여이현은 온지유의 의아한 눈빛에 낮은 목소리로 해명했다.“여긴 내 회사야. 나도 내 사람 몇 명은 준비해야 상대방 손에서 놀아나 체면을 상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어.”“맞는 말이네.” 온지유는 생각해 보더니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이때 한 기자가 갑자기 소리쳤다.“여 대표님께서 이태훈 씨에게 약을 먹인 건 혹시 여희영 씨와 이태훈 씨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생각해 낸 특별한 방법이 아니었습니까?”여이현은 미소를 지었고 이런 표정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날카로운 기자들은 즉시 이를 포착해 질문했다.“여 대표님, 일을 성공하지 못하셨는데 다음 계획은 있으신가요?”온지유는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온지유 씨,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당신을 만나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에요.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당신이었고 이 사실은 언제나 변함이 없어요. 사람들이 당신을 세컨드라며 소문을 퍼뜨려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누가 그런 소문을 낸 건지 모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오늘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화면에 온지유와 여이현의 일상 사진들이 나타났고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여이현은 마이크를 잡고 일어나 온지유를 일으켜 세웠고 온지유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온지유, 사람들은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몰라. 그 사람들은 내가 너에게 과분한 줄 알지만 사실 네가 나에게 과분하다는 사실을 난 잘 알고 있어. 너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건 나에게 큰 행운이자 영광이야.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만나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를 뿐이지. 넌 잘 알고 있잖아?”여이현은 눈가가 촉촉해졌다. 원래는 세컨드라는 소문을 해명하기 위해서였지만 그동안의 사진들을 보며 깊은 감정에 휩싸였다. 두 사람의 사랑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두 사람은 다행히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온지유는 눈물이 맺힌 채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여이현이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너라는 걸 믿지?”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기억해. 넌 세컨드가 아니고 난 너 이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도 없어. 기억해 줄 거지?”여이현은 말을 끝마치고서는 온지유의 이미에 키스하더니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오늘 이태훈 씨 덕분에 여러분 앞에서 제 아내와 저의 사랑을 증명하게 되었네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온지유 씨를 보게 된다면 사모님이라고 불러주시기를 바랍니다.”사실 온지유는 이미 여씨 가문의 사모님이었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여이현이 굳이 강조한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기자들은 조금
여희영은 약속한 호텔에 도착한 뒤 이태훈 혼자 있는 것을 보고 돌아가려 했지만 그 순간 온지유의 메시지를 받았다.[상황이 시끄러워졌어요. 이태훈 씨에게 호감이 없다면 오늘 확실하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한 번쯤 사귀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쩌면 이태훈 씨가 고모님의 운명일지도 모르잖아요.]여희영은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온지유에게 이런 충고를 듣는 것이 화가 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지만 온지유의 말이 맞긴 했다.이태훈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기에 먼저 친구로 사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여희영은 용기 내 이태훈의 맞은편에 앉아 해명했다.“두 사람은 아마 안 올 거예요. 태훈 씨가 기분 나쁘시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사실 내가 보상을 요구한 것도 희영 씨를 만나고 싶어서 그런 거지 다른 뜻은 없거든요.”이태훈의 눈빛이 흔들렸다.오늘 밤 평소보다 더욱 아름다운 여희영의 모습은 이태훈의 눈길을 더욱 사로잡았다.이태훈은 마치 아름다운 꽃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여희영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요리를 주문한 뒤 요리가 테이블에 오르자 요리마다 조리법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해주었다.이태훈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에 또래보다 식견이 넓었다. 그리고 이태훈도 호기심이 많아 많이 배웠기에 여러 가지 비하인드를 많이 알고 있었다.이태훈의 설명을 들은 여희영은 조금 자격지심이 느껴졌다.이제 보니 각 요리마다 독특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여희영은 줄곧 셰프들의 솜씨가 뛰어나서 이렇게 여러 가지 요리를 연구해 낸 줄 알았다.술을 몇 잔 비우자 두 사람은 점점 편해졌고 그에 따라 이야깃거리도 점점 더 많아져 어느새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한편 영화관에서 여이현은 온지유에 의해 끌려 나왔다.사실 여이현도 오늘 밤 정말 억울했다. 그는 확실히 비서에게 표를 예약하도록 했지만 영화 제목을 잘못 말하는
온지유는 여희영이 아침 일찍 찾아와 옷을 빌리겠다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만약 여희영이 여씨 가문의 딸이 아니라면 옷을 빌리는 행동이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문제는 여희영이 여씨 가문의 딸이라는 것이었다.여희영이 원한다면 갖지 못할 옷이 없을 텐데 왜 굳이 온지유에게 옷을 빌리려는 걸까?온지유는 잠시 여희영을 살펴봤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온지유는 여희영이 옷을 빌려 달라고 하던 돈을 빌려달라고 하던 두말없이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온지유는 찻잔을 내려놓고서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올라가서 옷 골라 보세요.”여희영은 놀라며 물었다.“왜 내가 옷을 빌려 달라고 하는지 안 물어봐?”물론 궁금했지만 여희영이 굳이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온지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드레스룸에 도착했고 그곳에 진열된 옷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다양했다. 하지만 여희영은 몇 벌을 골라보다가 결국 마음에 드는 게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냥 안 빌릴래. 나한테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어울리는 게 없긴 할 거예요. 이 옷들은 제 나이에 맞는 것들이니까요. 고모님 나이에는 좀 더 성숙한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아요.”온지유는 여희영을 한참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런데 고모님도 옷이 많으실 거고. 만약 적당한 옷이 없다면 가서 사시면 될 텐데 왜 저에게 빌리러 오셨어요?”여희영은 얼굴이 빨개지며 즐거운 일이 떠오른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한껏 부끄러워하는 여희영의 모습에 바보가 아닌 온지유는 바로 여희영이 연애 중임을 깨달았다.온지유는 여희영에게 살짝 다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혹시 이태훈 씨와 잘되고 있는 거예요? 말해주세요. 진도는 어디까지 가셨어요?”“진도는 무슨 진도. 그냥 사람이 괜찮아 보여서 일단 사귀기 전에 시간을 두고 좀 알아보려는 거야. 나 아직 그 사람하고 사귈 생각 없거든?”여희영은 얼굴이 빨개져 빨간 과즙이 흐를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대답하지 않아도 이미
여이현은 대답을 들은 뒤 여희영을 보고서는 놀라며 말했다.“왜 지유 옷을 입고 있어요? 옷이 없어요?”그렇게 말하며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요. 내 돈은 아까워하지 말고요.”“내가 돈을 다 쓰면 네 와이프는 무슨 돈을 써?”여희영은 여이현을 놀리고 싶어 농담을 던졌지만 여이현이 슬며시 웃으며 온지유를 감싸안더니 말했다.“내 돈은 다 지유 손에 있어요. 고모한테 준 건 내 용돈일 뿐이에요.”“정말이야?”여희영은 마음속으로 여이현 같은 그룹의 대표가 모든 돈을 온지유에게 맡겼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건 일반적인 가정의 몇백만 원, 몇천만 원이 아니라 수백억, 수천억에 달할 테니 말이다.하지만 두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아 여희영은 다시 한번 놀랐다.“만약 이태훈이 돈을 다 나한테 맡긴다고 해도 나는 받지 못할 것 같아.”“바보 아니에요? 못 받긴 왜 못 받아요? 그냥 대범하게 받으면 되지. 이태훈이 안 주면 그게 이상한 거예요.”온지유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여이현도 모든 돈을 다 온지유의 명의로 돌린 것은 아니었다. 여이현의 개인적인 자산만 온지유의 손에 있을 뿐 그룹의 자산은 여전히 여이현의 손에 있었다.“이현아,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네가 이러면 다른 남자는 어떻게 살아?”여희영은 이 일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비록 일심동체라고 해도 자산을 모두 한쪽에 넘기는 건 너무 모험이었기 때문이다.“나는 지유하고 이혼할 생각 없는데. 그럼 돈을 누구에게 맡기겠어.”여이현은 온지유에게 입을 맞추며 물었다.“그렇지, 여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질투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알겠지?”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이현의 턱에 얼굴을 비볐다.여희영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참지 못하고 서둘러 소파에 놓았던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더 이상 방해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태훈과 데이트를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여희영이 떠나자 정색하며 각자 소파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훌륭합니다. 양시은 변호사는 법 조항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능력이 인상 깊네요. 주장도 명확하고 논리 정연해서, 이번 사건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줬어요.”다른 심사위원들도 잇달아 동의하며 양시은의 변론을 높이 평가했다.대회가 끝난 뒤, 양시은은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탈락한 여성 변호사가 갑자기 주먹을 쥐고 외쳤다.“이건 불공평합니다.”조금 전 무대에서 사용했던 마이크가 꺼지지 않았던 터라, 그 소리는 대회장 안팎으로 크게 울려 퍼졌다.순식간에 장내가 조용해졌다.“이번 변론은 양시은 변호사 쪽이 훨씬 수월하게 짜여 있습니다. 게다가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까지 있는 데 왜 참가 자격을 박탈하지 않은 거죠?”그녀의 말에 주위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양시은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표정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상황을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양시은의 목소리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저는 어떤 특혜도 받지 않았어요. 모든 절차는 대회 운영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쳤고, 온라인상의 소문은 실력 있는 사람을 함부로 정의하지 못한다고 믿습니다.”여성 변호사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여전히 목소리를 높였다.“그래도 지금 누리는 편의가 전부 다 나도현 변호사 덕분이잖아요. 이게 뒤를 봐주는 게 아니면 뭐겠어요?”양시은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나도현 변호사는 대회의 스폰서 중 한 명이고, 스폰서가 추가로 한 명을 뽑을 수 있다는 건 공개된 조항이에요. 그건 운영위원회의 결정이고, 저는 그 범위 안에서 경쟁했을 뿐이죠. 만약 이게 뒤를 봐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스폰서의 추천을 받는 모든 참가자를 그렇게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요?”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양시은의 말은 많은 이들에게도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다.“게다가 대회 중 제가 보여 준 실력은 심사위원과 관중들이 다 지켜봤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결과가 아니었다면, 저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양시은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곧 오늘 대회가 시작되겠네요. 저는 제가 가진 전문성으로 끝까지 가볼 거예요. 설령 못 간다고 해도 떳떳하게 임할 거고요.”그 말을 남기고 양시은은 돌아섰다.곧이어 대회가 시작됐다. 유언비어 때문인지, 방청석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를 편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무시하는 기색까지 드러냈다.그러나 양시은은 전혀 개의치 않고 법 조항을 들고 무대에 올라 당당하게 변론을 펼쳤다.“이모 씨가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 증언에 따르면 가해자는 여전히 행동 능력이 있었고 침해 행위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모 씨의 생존을 위한 반항은 정당방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상대 변호사는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반박했다.“법의학자가 부검한 결과, 피해자는 당시 이미 행동 능력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이모 씨가 공격을 이어간 건 방어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죠.”양시은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이모 씨는 체구가 작아서 키가 160도 안 되는 반면 가해자는 180에 달합니다. 체격 차이가 꽤 크기 때문에 가해자가 완전히 재공격 능력을 잃었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손을 뗄 수 없었겠죠? 이모 씨에게 가해자를 고의로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양시은의 목소리는 단단했고, 사건에 대한 이해와 법 조항 활용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 줬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전문성에 저절로 감탄하는 분위기였다.상대 변호사 역시 그녀의 논리에 흔들린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반박했다.“그래도 이모 씨의 행동은 필요한 한도를 이미 넘어섰습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가상 판사가 기침을 하며 둘 사이의 공방을 제지했다.“핵심은 이모 씨의 행동에 주관적 고의가 있었는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입니다.”양시은은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실무에서 주관적 고의 판단은 언제나 가장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였기 때문이다.“이모 씨는 가해자가 이미 행동 불능 상태인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양시은은 차분하게 설명했다.“이
누군가 일부러 여론을 몰아가는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유명한 계정이나 언론 매체들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양시은은 부정적인 댓글들을 보며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그녀는 알았다. 이런 때에는 근거 없는 비난이나 헛소문을 굳이 상대하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걸 말이다.더군다나 내일 대회가 있으니 지금은 준비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그녀는 뜬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대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음 날 현장에 도착하자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예선에 임했는데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꽤 힘이 들었다.이때 권 변호사가 다가왔다.“요즘은 뒤봐주는 사람만 있으면 뭐든 다 돼요. 뭐 하러 이기겠다고 애쓰겠어요?”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쏠렸다.양시은은 고개를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권 변호사를 바라봤다.“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지만 권 변호사님은 변호사시잖아요. 근거 없는 소문을 함부로 떠드는 건 잘못 아닌가요?”양시은의 단호한 말에 주변의 수군거림이 잠시 잦아들었다.권 변호사는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시은 씨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누가 알겠어요? 딱 봐도 뭔가 수상쩍잖아요.”“저는 한낱 신인일 뿐인데 왜 예민하게 구세요? 설마 저한테 지면 체면이 구겨질까 봐 걱정되시는 건가요? 소문이 뭐라고 하든 실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어요.”양시은은 조금도 밀리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런 건 시은 씨가 지닌 오점을 다 털어낸 다음에 말씀해요.”권 변호사는 콧방귀를 뀌었다.양시은이 대답할 틈도 없이 나도현이 그녀 뒤에 나타나 어깨를 감싸안았다.“제가 제안한 자리는 맞습니다. 매년 대회 주최 측은 스폰서에게서 참가자를 추천받거든요. 권변이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을 텐데요.”나도현이 나타나자 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그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기세를 뿜어냈다.주위 사람들은 호기심과 놀라움이 뒤섞인 시선을 보냈다.권 변호사는 나도현의 기에 눌린 듯 얼굴이 굳었지만 여전히 억지를 부렸다.“그렇다 해
나도현은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수건 하나만 두른 채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양시은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서재에 있을 거라고 짐작했고, 곧 문틈 아래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순간 그의 모습은 마치 날개를 활짝 펼친 공작새 같았다. 허리에 둘러맨 건 수건 한 장뿐이었고, 머리카락에는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탄탄한 가슴 근육을 따라 물방울 하나가 서서히 흘러내렸다.그러나 양시은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너 먼저 자. 나 아직 판례 보고 있어.”“이거 몇 번이나 봤잖아?”나도현은 그녀의 앞에서 어슬렁거렸다.“그래도 부족해. 내가 제일 뒤떨어지는 건 경험이잖아. 그건 짧은 시간 안에 메우기 힘들어.”양시은이 한숨을 쉬었다.“다음 라운드까지 며칠 남았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나도현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거의 그녀의 손을 자기 가슴팍에 갖다 댈 뻔했다.하지만 양시은은 여전히 분위기를 몰랐다. 법 조항을 들여다보느라 고개도 들지 않고 다시 말했다.“며칠 안 남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례를 언제 다 보겠어!”나도현은 답답함을 느꼈다. 법 조항이나 판례가 자신보다 더 매력적인가 싶을 정도였다. 뭐가 됐든 그녀가 통나무인 탓이겠지만 말이다.그는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허탕이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방금 샤워를 마친 양시은의 머릿결에 남아 있는 습기를 보고 드라이어를 꺼냈다. 그러면서 말했다.“머리 젖은 채로 오래 두면 두통 생길 수도 있어.”그는 양시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말려 주고 빗으로 차분히 빗겨 주었다.한참 뒤에야 양시은이 반응하며 고개를 들었다.“고마워, 도현 씨.”이제야 나도현의 어깨가 훤히 드러난 모습을 본 그녀는 잠시 다정한 눈빛을 보이더니 시선이 저절로 아래로 내려갔다. 허리에 수건 한 장만 두른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유혹적이었다.오래된 부부 같은 사이인데도 양시은은 얼굴이 빨개졌다.“안 추워?”“추워
“앞로 하민이를 자주 데리고 올게요.”양시은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요. 그런데 그건 대회 끝나고 나서 얘기해요.”온지유는 그녀의 호의에 감사하면서도 사려깊게 덧붙였다. 지금은 대회가 먼저이기 때문이다.날이 저물 무렵에서야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하민은 가는 길 내내 신이 나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별이랑 잘 놀았나 보구나. 앞으로 자주 놀러올까?”양시은이 그의 의견을 물었다.“좋아요! 저 이제 형아랑 친구예요. 더 자주 만날래요.”하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잘 통하는 친구가 생겨서 다행이구나. 엄마가 또 약속을 잡아볼게.”양시은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도했다. 별이가 슬픔에서 벗어나는 데 하민이가 도움이 되길 바라며 말이다.집 앞에 도착하자 나도현이 마중 나왔다.“왜 이렇게 늦었어? 오래 기다렸는데.”“기다릴 필요까지 있었어?”양시은은 그와 함께 현관문을 들어섰다.나도현은 담담하게 웃었다.“승리는 같이 축하해야지.”“예선 통과일 뿐인데 아직 기뻐하기엔 일러.”양시은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줄곧 독학 해왔다. 그래도 신인이라는 점은 변함 없었다. 실전 경험이 없는 그녀에게 본선은 더 험난한 길이 될 것이다.“작은 승리도 축하할 가치가 있어.”나도현이 미소를 지었다.하민을 도우미에게 맡기고 그는 양시은을 침실로 안내했다. 촛불이 어둠을 밝히는 공간에서 정성스러운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양시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도현 씨, 정말 고마워.”“앉아봐.”나도현은 신사답게 의자를 당겨줬다.와인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스테이크를 조심스럽게 썰었다.“네가 직접 구운 거야?”“역시 요리사 수준은 따라가지 못하겠어. 금방 알아차리네.”“특별한 맛이야. 정성이 더 중요하지.”그녀는 한 입 더 먹고는 아쉬운 듯 말을 이었다.“이것저것 먹고 왔더니 배가 고프지 않아서 아쉬워. 이럴 줄 알았으면 아무것도 안 먹고 올 걸 그랬어.”나도현은 레코드 플레이어에
시간을 정한 후, 양시은은 하민을 데리고 온지유의 집으로 갔다.최근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탓에 온지유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문을 열고 양시은을 맞이하며 그녀는 물 한 잔을 내주었다.“앉아요.”“미안해요,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지유 씨 곁에 있지 못해서.”양시은은 온지유의 모습을 보며 점점 속상해졌다.온지유는 살짝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양시은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우리 사이에 그런 말은 필요 없어요.”양시은은 흔한 말로 그녀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온지유는 별다른 말 없이 하민과 놀기 시작했다. 하민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별이 형아가 기분이 안 좋다고 해서 제가 놀러 왔어요. 선물도 가져왔어요.”“별이는 위층에 있어.”온지유는 위쪽을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다.“별이는 외할아버지랑 많이 친했거든. 그래서...”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양시은은 다 알았다. 그래서 하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하민아, 가서 별이랑 놀래?”하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 계단을 올라갔다.양시은은 하민이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물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엉망진창인 일들부터 정리해야죠.”온지유는 이마를 문질렀다. 그녀는 매우 힘들어 보였다.“나머지 일들은 나중에 생각하려고요.”양시은은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묻지 않기로 했다.“알겠어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그럼 필요할 때 편하게 부탁할게요.”대답하고 난 온지유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근데 어쩌다 대회에 참가했어요?”“아, 봤어요?”양시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온지유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드디어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거예요?”“네, 늦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어요.”양시은은 감회가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히 늦지 않았죠. 결혼 후에는 오로지 가정에만 집중할 줄 알았는데, 점점 좋아지는 걸 보니 제가 다 기뻐요.”“이제는 특별히 신경 쓸 게 없어요.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야죠.”
나도현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자신 있으면 고소해요. 저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니까요. 공정하게 법정에서 승부를 보죠.”권 변호사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됐어요, 저도 그냥 구경꾼 입장이라서요. 그리고 그 유명한 나 변호사를 왜 건드리겠어요? 저는 의문을 표한 것이지 주장을 한 건 아니에요.”나도현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건 무대에서 확인하면 되겠네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두고 봐요.”권 변호사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그렇게까지 양시은 씨를 믿어요?”나도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네.”무대에서 MC가 승리한 변호사의 명단을 발표했다. 양시은의 이름 또한 크게 불렸다. 양시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에 기쁨과 만족으로 가득 찼다.곧, 양시은은 무대에서 내려왔다. 나도현이 몸을 일으켜 비서에게서 꽃을 받아 들며 말했다.“축하해.”“이 꽃 미리 준비한 거지?”양시은은 꽃향기를 맡았다. 그녀는 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물론이지.”나도현은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양시은은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내가 이길 거라고 어떻게 확신했어?”“넌 반드시 이길 거야.”나도현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네 실력으로는 끝까지 가는 것도 아무 문제 없어.”나도현의 확신에 찬 말을 듣고 양시은은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지만 겸손하게 말했다.“최선을 다할게. 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나도현은 그녀를 품에 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결과가 어찌 되든 너는 이미 최고야.”양시은은 그의 품에서 안정감을 느꼈다.잠시 그렇게 있다가, 양시은이 먼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 한 발짝 물러섰다.“왜 그래?”나도현은 그녀가 멀어진 걸 느끼며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우리 이제 좀 조심하자. 네가 스폰서라는 걸 알고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지면 어떡해.”나도현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 정말...”그때, 전화가 울렸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양시은은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때 나도현이 다가와 옆에 앉으며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는 격려의 표시였다.양시은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나 때문에 얼마나 투자했어?”“이건 스폰서의 권한이라 다른 사람과는 상관없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어. 시은아, 너만 마음먹으면 이건 정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나도현은 진지하게 말했다. 작은 일에 얽매여 괜한 고민하지 말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자는 뜻이었다.양시은은 곧 결심을 내린 듯 말했다.“알았어. 널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거야.”“내가 아닌 너 자신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해.”나도현은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봤다.양시은의 마음속에서 감동이 여울처럼 퍼졌다.이튿날 바로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변호사의 토론 대회는 심플했다. 한 문제로 찬성팀과 반대팀이 나뉘어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었다.옳고 그름은 나뉘지 않는다. 주최 측은 일부러 애매한 문제를 선정해서 참가자의 언변을 시험했다.양시은은 운 좋게도 작은 로펌을 상대로 뽑았다. 무대로 올라간 다음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무대에 서 있으니, 자신감으로 넘쳐나던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그녀는 당당한 눈빛으로 무대에 서 있었다. 눈빛 속에는 법조인의 꿈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이 무대는 그녀의 전쟁터자, 그녀의 가치를 다시 증명하는 곳이다.“시작합니다!”MC의 말에 따라 토론이 시작되었다.상대는 경력이 풍부한 것이 분명했다. 논리 정연한 말은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마구 쏟아져나왔다.양시은도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의 입장을 지켰고 실제 사례까지 들며 논리를 완성시켰다. 모든 말이 승리를 향한 발걸음이 되었다.무대 아래에서 지켜보던 관객과 심사위원은 보잘것없는 줄 알았던 신입 변호사인 그녀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그녀의 실력은 단순히 법에 대한 이해를 넘어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힘을 발산했다. 그것은 정의에 대한 갈망과 공정함
“네!”양시은은 들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사람들은 점점 더 모여들었다.그러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가 그녀의 앞에 놓인 명패를 힐끗 보더니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나진 그룹 로펌도 이제 영 시원찮네. 아무나 막 끌어들이는 모양이야.”양시은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자신이 이 업계에서 출신이나 지위가 마땅히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경멸에 기죽을 생각은 없었다.그녀는 대형 로펌 변호사를 똑바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누구나 출발점이 있는 거잖아요. 중요한 건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느냐가 아니겠어요?”그 변호사는 그녀의 침착한 태도와 단호한 눈빛에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분수를 모르는 신참 변호사를 비웃는 표정이었다.“어찌 됐든 올해 상은 다른 로펌에 가겠네요.”“글쎄요, 그건 모르는 일이죠.”다른 몇몇 변호사들이 다가와 말했다.“뭐요?”대형 로펌 변호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오랜만이네요, 권변.”무리 중 리더 격인 변호사가 손을 내밀어 자연스럽게 악수했다.권 변호사는 그들을 슥 훑어보더니 상황을 이해한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나진은 투자자로서 스폰서 자격으로 두 팀을 내보낼 수 있는 거였네요. 수상 확률을 높이려고 한 일인 것 같은데 왜 이름도 없는 신인 변호사한테 기회를 줬어요. 이렇게 큰 무대를 연습장으로 삼다니, 나변도 참 통이 커요.”“과찬이십니다. 근데 뭐가 됐든 나 변호사님의 계획이 아닐까요.”리더 변호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저는 이해가 안 되는데요. 나진이 스폰서가 돼서 은변도 좋았죠? 근데 이 좋은 기회를 신인한테 넘기다니...”권 변호사는 말끝을 흐리다가 다시 한번 크게 웃어넘긴 뒤 손을 내저었다.“그냥 헛소리였어요. 못 들은 걸로 해요.”은 변호사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답했다.“나 변호사님도 다 생각이 있으십니다. 부러우면 따라 해보시죠.”권 변호사는 더 말해봤자 손해만 볼 것 같았는지 형식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