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소은정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나오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서민영이 생각처럼 많이 다치지 않았다는걸, 지금 일부러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수혈을 언급하며 부산을 떨었지만 어두운 밤이라 잘 보이지 않는 데다 박예리가 눈물부터 흘린 탓에 다들 놀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탓이 컸다.진작 꺼지라고 했는데 왜 굳이 지금까지 여기 남아있는 걸까? 굳이 그녀 앞에서 박수혁이 서민영을 얼마나 아끼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모든 사람들이 서민영을 걱정하는 걸 보며 우월감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걸까?하지만 이제 소은정은 서민영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싶은 생각도,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할 생각도 없었다. 방금 전 서민영을 향해 발을 날린 순간, 속에 쌓인 무언가가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소은정은 뻔뻔한 사람들을 향해 피식 웃어주고 단호하게 고개를 돌렸다. 한편 소은해도 그녀를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잘했어. 이렇게 나와야 소은정이지.”소은정이 오늘 또 인내했다면 소은해가 먼저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박수혁의 품에 안긴 여자와 강서진을 번갈아 바라보다 한 마디 던졌다.“우리 은정이 피를 원한다고? 주제를 알아야지. 감히.”한편 서민영은 방금 전 타격으로 인해 전해지는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킥을 맞는 순간, 정말 눈앞이 핑 돌며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이었다. 대충 아픈 척 연기만 한 생각이었는데... 소은정, 이 악독한 여자 같으니라고.소은정에게 그녀가 박수혁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려주려고 했었다. 그러면 알아서 떨어져 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흔들리기는커녕 바로 발을 날리다니. 게다가 보는 눈도 이렇게 많은 곳에서!강서진은 여유롭게 사라지는 소은정, 소은해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저... 저 사람들 도대체 뭐야? 뭐가 그렇게 당당해?”한편,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의료진들을 다시 부른 김하늘은 전화를 끊고 박수혁, 강서진을 향해 말했다.“짧은 인생을 살면서 느낀
사실 강서진의 말만 아니었어도 항상 침착하고 냉정한 소은정이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지만 강서진은 말로 천 냥 빚을 지는 스타일이었다.쌤통이다, 이것들아!강서진은 일그러진 얼굴로 박수혁을 돌아보았다.“뭐야? 멍청?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저래?”여전히 뻔뻔한 강서진의 모습에 박수혁의 표정도 차갑게 굳었다.“정말 몰라서 물어?”그래, 방금 전에는 그가 실수한 게 맞다는 걸 강서진 본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민영이 정말 위급한 상황인 줄 알고 그랬던 것뿐인데. 반창고 하나면 된다는 의사의 말에 황당하고 억울한 건 강서진도 마찬가지였다.“그래도 사람을 때리면 안 되는 거잖아...”화가 단단히 난 것 같던데 설마 알몸 사진을 퍼트리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에 불안감이 밀려왔다.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뭔가 생각하더니 말했다.“민영이 데리고 병원으로 가봐. 난 이만 가볼게.”“뭐? 안 돼! 나도 약속 있단 말이야!”강서진이 기겁하며 말했다. 소은정이 알몸 사진을 기억해내기 전에 먼저 사과라도 하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하지만 박수혁은 강서진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떴고 강서진도 대충 핑계를 대며 그 뒤를 따랐다.뭐야? 나 혼자 남은 거야?박예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한편, 소은해의 차 안, 소은정은 쏟아지는 단톡방 메시지를 훑어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한유라가 오늘 소은정과 그녀가 런웨이에 오른 사진을 단톡방에 보내자 성강희는 소은정만 예쁘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댔고 약이 오른 한유라와 또 투닥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맡긴 일로 해외로 출장을 간 성강희는 오늘 패션쇼에 참석하지 못한 게 한이라며 여러 이모티콘을 난발했다.그래, 나한테는 친구들이 있잖아. 그런 인간들 때문에 약해지지 말자.소은정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집에 도착했어?”이때 김하늘이 따로 소은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아니, 가는 중이야. 어떻게 됐어? 죽었어?”“나
“무슨 루머?”“누군가 익명으로 너에 대한 폭로글을 작성했더라고. 아주 그럴듯하게 지어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내가 힘을 썼는데도 글이 계속 퍼져나가고 있는 걸 보면 이 사람 보통이 아닌 것 같아. 얼른 확인해 봐.”한유라가 다급하게 말했다.전화를 끊은 소은정이 인터넷을 확인해 보니 역시. 그녀의 이름이 또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하고 있었다.화보다 귀찮음이 앞서는 걸 보니 이런 일도 여러 번 겪다 보니 적응이 되나 보다. 소은정은 한숨을 푹 내쉰 뒤 링크를 클릭했다.“저 여자 뭐야? 어떻게 SC그룹 본부장 자리까지 오른 거야?”“위자료도 안 받았다던데 도대체 무슨 돈으로 사치를 부리는 거래?”“무조건 스폰이지 뭐.”“누굴까?”......소은정이 소은호, 소은해, 성강희 심지어 비즈니스로 만남을 가졌던 사진까지 증거로 제출되며 그녀는 어느새 사생활이 문란한 천하의 불여우가 되어있었다. 사람들은 또 다시 그녀의 이혼에 숨겨진 진실이 있을 것이라며 떠들었다.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주식 홈페이지를 클릭한 소은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역시나. SC그룹의 주가도 영향을 받아 대폭 하락한 상태였다. 그녀 때문에 회사까지 피해를 입으니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이때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오빠?”소은호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물었다.“은해 지금 너희 집에 있지?”“응. 어제 우리 집에서 잤어.”“그래. 너희 두 사람 오늘은 외출하지 마.”“인터넷에 퍼진 글 봤어.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소은정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녀 혼자만 피해를 입은 거라면 평소처럼 웃어넘겼겠지만 회사에까지 파장이 이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다.이건 분명 누군가의 음모다. 그리고 상대는 박예리, 강서진보다 훨씬 더 고단수인 사람이겠지.“도 대표한테는 내가 벌써 연락했어. 그런데 그쪽도 막기 어려운가 보더라.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누가 이런 짓을 한 건데?”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누가 또 그녀를 모함하려는 걸까? 과거의 일까지 들먹이
이한석도 이 소식을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굳이 이혼한 손자며느리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과거 사모님으로 모셨던 그 여자에게 동정심까지 생기기 시작했다.이한석의 대답에 박수혁은 또 한동안 침묵했다.“펑!”책상을 쾅 치고 일어선 박수혁은 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차량은 빠르게 달려 그의 본가에 멈춰 섰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저택 직원들을 향해 박수혁이 물었다.“할아버지는?”박수혁의 굳은 표정에 잔뜩 겁을 먹은 직원이 더듬거렸다.“어... 어르신께서는 서산 별장에 가셨습니다...”그의 대답에 망설임없이 돌아서는 박수혁의 뒤를 쫓아간 직원이 한 마디 보탰다.“대표님,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요.”직원의 말에 성큼성큼 걸어가던 박수혁이 우뚝 멈춰 섰다.“뭐라고?”날카로운 그의 시선에 직원은 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를 갈며 다시 저택을 나온 박수혁은 차에 탄 뒤 박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한참 동안 울리고 박수혁이 짜증스레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박대한이 전화를 받았다.“결국 그 여자 때문에 움직이는구나. 나도 충분히 자비를 베풀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 거야.”“제가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박수혁의 원망 어린 질문에 박대한은 코웃음을 쳤다.“해결? 우리 집안에 대한 그 아이의 증오는 이미 극에 달했다. 그 아이가 제 발로 담뱃대를 네게 건넬 것 같으냐? 웃기는 소리!”“그래도 없는 일을 만드시면서까지 모함할 필요는 없으시잖아요! 앞으로 은정이는 어떻게 살라고 그러세요!”“내가 왜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지? 난 그 아이한테 충분히 기회를 줬다. 그 아이는 주제를 모르고 다시 소은호와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더구나. 그래서 우리 집안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에 넌 더 이상 참견하지 말거라. 그 여자와는 다시 연락도 만남도 가지지 마. 그나마
“받았어?”박대한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집사는 수신을 거부했다는 알림음을 듣고 조심스레 대답했다.“수신을 거절했습니다.”하? 지금 날 도발하는 건가? 아직도 그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거야?또다시 기회를 져버린 소은정의 행동에 박대한의 얼굴에도 분노가 차올랐다. 감히 전화를 끊어?“다시 걸어!”박대한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언제까지 버틸지 어디 한번 두고 볼 생각이었다.“네.”다시 한번 전화를 건 비서가 머쓱한 얼굴로 해명했다.“또 끊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요?”“하!”박대한이 어이가 없다는 듯 차갑게 웃었다. 한편, 소은정은 전화를 두 번이나 끊은 탓에 결국 조말론 향수를 구매하지 못했다. 품절이라는 두 글자와 옆에서 약을 올리는 소은해의 모습에 짜증이 치민 소은정은 그의 휴대폰을 확 빼앗아 아예 쇼호스트에게 DM을 보냈다.“저기 혹시 유럽에 계신 거면 구매대행 좀 부탁할 수 있을까요? 비용은 얼마든지 드릴게요.”한참이 지나서야 쇼호스트의 답장이 도착했다.“죄송합니다. 개인적인 구매대행은 받지 않습니다.”잠깐 생각하던 소은정이 문자를 보냈다.“그럼 다음 라이브 방송 때 판매할 제품들을 모두 구매할게요. 저만을 위한 라이브 방송이라고 생각하세요.”말도 안 되는 문자에 쇼호스트의 눈도 휘둥그레졌다.모든 제품? 그는 옆에 있는 매니저에게 물었다.“오늘 매출액이 얼마야?”“아마 100억 정도 될걸요?”쇼호스트는 이 정도 금액이면 바로 물러설 거라 생각하고 답장했다.“제품 가치만 해도 100억 정도 될 텐데. 가능하겠어요?”하지만 1초도 안 되어 도착한 소은정의 답장에 쇼호스트는 휴대폰을 떨어트리고 말았다.“가능해요. 선불로 30%, 라이브 방송이 끝나면 나머지 잔금까지 치르죠. 계좌 보내주세요”물을 마시다 사레까지 들린 쇼호스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문자를 확인했다. 진짜일까 잠깐 고민하던 그는 어차피 계좌를 보내도 손해볼 게 없다는 생각에 결국 계좌번호를 보내주었다.그리고
소은해는 다시 한번 소은정이 들고 있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역시, 그의 휴대폰이었다. 소은해의 모든 계좌의 비밀번호가 그녀의 생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소은정이 100억이라는 거금을 긁어버린 것이다.소은해의 입가가 경련으로 살짝 떨렸다. 100억... 그에게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순간에 100억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허전해졌다.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면, 하나뿐인 여동생 소은정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오빠들에게 손 한 번 내밀지 않던 그녀가 아닌가? 연예인으로서 인터넷의 악플이 사람의 정신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소은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익명이란 단어에 숨어 내뱉는 아무 감정 없는 비난으로 그와 친하던 동료들 중 스스로 세상을 져버린 연예인들도 여럿이었다.하지만 어쩔 수 없이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그와 달리 소은정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사람들의 비난에 행여나 소은정이 나쁜 생각이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던 소은해였다.그래, 소은정의 미소를 볼 수만 있다면 100억이 아니라 더 큰돈도 쓸 수 있었다.어느새 소은해와도 친해진 소호랑이 다가와 그에게 애교를 부렸다. 그는 흐뭇한 얼굴로 여동생을 다시 한번 쳐다본 뒤 다시 소호랑과 놀아주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날 오후, 소은정의 루머와 함께 한 시간 사이에 100억을 탕진한 플렉스의 이야기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것 빼고 다 주세요라는 말 난 드라마 대사에서나 쓰는 줄 알았는데...”“재벌들은 저렇게 사는구나... 부럽다...”“나도 저런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 누나, 밥도 알아서 챙겨 먹고 산책 안 시켜줘도 되는 반려견 안 필요하세요?”“플렉스님 정체가 뭘까?”......한바탕 쇼핑을 끝낸 소은정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소은해의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 사이에 7개의 부재중 전화가 도착해 있었다.한 통은 박수혁, 네 통은
그녀의 명예를 짓밟고 SC그룹에서 쫓겨나게 만든 뒤 태한그룹의 작은 지사로 들어가라?어쩌면 이 집안사람들은 이렇게나 뻔뻔할까?소은정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아니요. 전 남편 회사에서 일하는 악취미는 없습니다. 전 돈을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와 달리요.”“소은정, 내가 얼마나 자비를 베푸고 있는지 모르는 거냐? 언제까지 고집을 부릴 셈이야! 이번 기회까지 놓치면 정말 후회하게 될 거야.”누구가 가리키는 게 박대한 자신임을 눈치챈 박대한이 분노했다..“누가 후회를 하게 될지는 두고 보면 알겠죠.”당당한 박대한의 목소리를 들으며 곧 밝혀질 진실을 알게 된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던 소은정의 얼굴에 흥미진진한 표정이 피어올랐다.만약 소은정이 정말 평범한 여자였다면 결국 이 모욕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명예를 가차 없이 짓밟는 상대에게 이제 더 이상 그녀도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전화를 끊은 소은정은 침착하게 소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아빠는 언제 돌아오신대?”“왜? 아버지가 보고 싶어? 내일 오실 거야. 내일 내가 사람을 보낼 테니까 넌 본가에서 기다리고 있어.”소은호가 미소를 지었다.“아니. 내가 직접 공항으로 나갈 거야.”모든 사람들 앞에서 사라지는 것, 평생 고개도 들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박대한이 원하는 것이라면 절대 그 의도대로 움직여줄 수 없지.당당하게 모두 앞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소은호는 그녀가 상처를 받을까 여전히 망설여지는 눈치였다.“하지만... 기자들도 있을 거고...”“괜찮아. 경호원들이나 준비해 줘.”여동생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소은호가 한숨을 쉬었다.“그래. 네가 그렇게 결정했다니 어쩔 수 없지 뭐. 아, 은해는 너한테 잘해줘?”소은호는 아직 철이 덜 든 소은해가 소은정을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었다.“오빠가 아주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어. 요리 실력도 엉망이고...”소은정이 장난스레 불평을 내뱉었다. 이때
소찬식은 웬만큼 화가 났는지 공항을 나서는 내내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공항 문을 나서자 소은호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왜 너까지 왔어?”소찬식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걱정이 돼서요. 제가 직접 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소은호는 소찬식의 트렁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고 소은정을 향해 말했다.“마음의 준비 단단히 해둬. 기자들이 벌써 냄새를 맡고 몰려들었어.”“하, 난 당당하니까 괜찮아!”소은정은 오히려 당당하게 고개를 들었다.소찬식은 만족스럽다는 듯 소은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이래야 내 딸답지. 넌 아빠 뒤만 따라와.”감히 소은정에 관해 무례한 질문을 한 기자는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소찬식은 이를 갈았다. 반면 소은호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소은정의 손을 잡고 옆으로 끌었다. 역시, 수많은 플래시가 소은정의 눈을 자극했다. 소은정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어쩌다 보니 소은호의 품에 안긴 듯한 모습이 연출되었다.소은정, 소은해 동거 중?소은정, 소은호 대표의 아버지에게도 인사를 드려!기사 타이틀을 생각하며 소은정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소은정 씨, SC그룹 소은호 대표와 교제하는 사이십니까? 그럼 소은해 씨와는 무슨 사이시죠?”소은호는 눈부신 플래시 불빛을 막아주며 소은정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당당하게 걸어나갔다.“소은정 씨, 소은호 대표와 결혼을 약속하신 겁니까?”“또다시 재벌가 며느리가 되는 기분은 어떠신가요?”“여러 남성분들의 사랑을 받고 계신데 한 마디 좀 해주십시오.”“소은정 씨, 성강희 씨와는 무슨 사이시죠? 혹시 어장관리 중이십니까?”......인터넷에서 떠도는 루머들은 어느새 사실이 돼버린 듯 기자들은 무례한 질문들을 멈추지 않았다.“소찬식 회장님, 요즘 떠도는 소은정 씨의 루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물론 SC그룹의 실세인 소찬식 대표를 향한 질문도 잊지 않았다. 소은호 대표는 소은정에게 이미 빠져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않을 것이고 소찬식 대표의 입장이야말로 가장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