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호와 소은정은 동시에 소찬식을 돌아보았다. 정말 웬만큼 급한 모양이다. 소찬식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연락을 하다니.“뭐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지금 저희 집안 꼴이 말이 아닙니다. 한가롭게 술이나 마실 기분이 아니라서요.”소찬식이 차갑게 웃었다.“뭐 천박한 계집애 하나 때문에 마음 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뭐 소은호 대표도 당장 결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젊은이들 불장난이라고 생각하세요. 마침 저도 소 회장님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오늘 만나시죠.”“아, 박 회장님,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떨까요? 며칠 뒤면 SC그룹 창립 기념일입니다. 그날 가족분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해 주세요. 무슨 일이신지 모르겠지만 그때 얘기하시는 게 어떨까요?”소찬식의 제안에 박대한은 잠깐 망설이다 대답했다.“좋습니다. 그럼 그날 뵙죠.”통화를 마친 소찬식은 날카로운 눈동자로 전방을 주시했다.“그날, 너희 집안 체면을 짓밟아주지.”“그럼 전 그동안 이사진부터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은정이한테 완벽한 회사를 물려줘야 하니까요.”“그래. 어차피 떠나보낼 사람이라면 지금이 적기일지도 모르지.”소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소은정이 괜히 한숨을 쉬었다.“어떡해... 돈이 너무 많아질 것 같은데 죽을 때까지 다 쓸 수 있으려나 몰라?”돈 얘기에 소찬식은 흠칫하더니 물었다.“참, 어제 은행장한테서 전화가 왔더구나. 은해 자식이 어제 오후에 100억을 인출했다던데. 부동산이나 주식도 아니고 그냥 쇼핑에 100억을 썼다더구나. 그 자식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아무리 자기가 알아서 번 돈이라지만 안 그러던 자식이 왜 갑자기 사치를 부리는 건지.”소찬식의 불만 섞인 목소리에 소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아버지, 그 100억 은정이가 쓴 거예요.”“아? 그래? 그렇다면 뭐.”소은정이 썼다는 말에 소찬식은 어디에 썼는지 묻지도 않고 바로 납득했다. 확연히 다른 태도, 다혈질인 소은해가 이 모습을 봤다면 또 방방 뛰었을 걸 생각하니
소은정은 심호흡을 하며 더 벅차오르는 감정도, 금방이라도 흐를 것 같은 눈물을 애써 누르고 눌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수혁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루머가 퍼지고 3일 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소은정은 3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리고 다다른 결혼은 단 하나,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기대도 품지 말자.박대한의 행동에 박수혁의 의도가 있었는지뭐가 중요할까? 결국 박수혁이 원하는 것도 그녀가 애원하길 바라는 게 아닌가?그녀가 반성하고 애원하면 자비를 베풀 듯 넘어가 주겠다는 그 태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람들은 그녀를 하등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이혼 뒤 SC그룹의 본부장이 되고 성강희, 소은호, 소은해와 어울리고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박수혁과 그 가족들의 눈에 비치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3년 전, 그들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돈도 없고 배경도 없고 남자 하나 잘 물어 신데렐라의 삶을 꿈꾸는 천박한 여자일 뿐.그녀가 노리는 모든 것들에 시비를 거는 것도, 없는 루머를 만들어 그녀를 짓밟은 것도 그 이면에는 “소은정 네까짓 게 뭔데”라는 태도가 기본으로 깔려있었다.그래서 그 알량한 돈과 권력으로 그녀를 완벽한 패배자로 만들려 하는 거겠지.한편, 박수혁은 아무 말 없이 소은정의 울분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녀가 내뱉는 글자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그의 심장을 난도질했다.지금까지 소은정이 당한 모든 일들 중, 그녀의 잘못인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걸 박수혁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박수혁도 나름 루머를 누르기 위해 노력했지만 박대한의 인맥과 세력은 여전했다. 게다가 프랑스 지사에 사고가 생겨 출장까지 가게 되어 더더욱 퍼져나가는 여론을 막을 수 없었다.할아버지까지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오는 이상, 일을 해결하는 방법은 타협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 굽히고 들어간다면 어떻게든 그녀가 잘 살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소은정이 담뱃
소은호는 정성스레 SC그룹의 창립 기념일 파티에 참석 명단을 정리했다. 정재계 유명 인사들은 모두 파티에 초대되었다.게다가 모든 브랜드 협찬을 거절하고 파티장 인테리어부터 술, 음식까지 모두 업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초빙했다.일주일 정도가 흐르니 소은정을 향한 악플도 어느새 잠잠해졌다. 그 대신 네티즌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1시간 만에 100억을 소비한 플렉스의 정체였다.한 시간 동안의 라이브 방송을 통해 잠깐이나마 엿본 재벌 2세의 삶, 사람들이 가장 동경하고 가지고 싶은 삶이니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거기다 아무리 캐봐도 여전히 미스터리인 플렉스의 신비로움이 사람들의 관심에 박차를 가했다.소은정은 그녀를 향한 동경, 부러움, 질투가 섞인 댓글들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훑어보았다. 어차피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인플루언서도, 연예인도 아니고. 굳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결제도 소은해의 카드로 했으니 정체가 드러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며칠 후, 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파티장, 밖을 내려다보면 번화한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이 바로 SC그룹의 창립 기념일 파티가 열리는 장소다.도시의 가장 큰 번화가, 초 단위로 요금을 받는 큰 빌딩들의 전광판은 오늘 밤, SC그룹을 위해서만 빛날 예정이었다. 화려하지만 우아한 인테리어의 파티장, 정재계 유명 인사들과 수많은 매체의 기자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해마다 있는 창립 기념일에 왜 이렇게까지 성대하게 하는 걸까? 사람들은 의아했다.한편, 소은정은 진작 파티장 휴게실에 도착했고 소찬식은 잔뜩 신난 표정으로 딸을 위해 드레스아 액세서리를 골라주고 있었다.행거에 걸린 드레스는 모두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의 심혈이 담긴 작품들, 고급 브랜드라면 질릴 정도로 봐온 재벌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의 의상들이었다.“은정 씨, 첫 번째 타임에는 어느 드레스로 입으실 거예요?”디자이너가 웃으며 물었다.화려하고 정교한 드레스를 하나하나 훑어보던 소은정을 바라보던 소
소찬식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그래, 마침 잘 됐네. 내가 직접 맞이해야겠어.”소은정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아버지의 소맷자락을 잡았다.“아빠, 오늘은 우리 회사에도 중요한 날이에요. 그쪽 사람들한테 복수하는 것도 좋지만 괜히 우리 회사한테까지 영향 가는 건 저도 싫어요.”“이 자식, 며칠 출근했다고 아빠를 가르치려고 그러네. 아빠가 알아서 할게.”소찬식은 소은정의 코를 살짝 집은 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휴게실을 나갔다. 마침 들어오던 한유라와 김하늘이 소찬식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아저씨, 안녕하세요.”소찬식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유라야, 하늘아, 너희들이 있어서 아저씨가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몰라. 오늘 아저씨가 액세서리를 많이 준비했거든? 어차피 은정이는 그런 데 관심이 없으니까 너희들 마음 드는 거 있으면 마음껏 골라. 아저씨가 선물하는 거니까.”한유라와 김하늘은 살짝 시선을 마주친 뒤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그제야 소찬식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휴게실을 나섰다.한유라와 김하늘은 소녀처럼 들뜬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드디어 네 신분을 밝히는 날이네. 이제 사람들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 생각하면 내 속이 다 시원하다니까.”발랄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소은정도 미소를 짓다가 살짝 표정이 어두워졌다.“글쎄. 이번 일로 회사에 피해까지 주고. 내 맘이 편하지 않네.”한유라가 앞으로 다가갔다.“야, 그게 뭐 네 탓이야? 자책하지 마. 그건 그렇고 내가 누굴 봤는지 알아?”“넌 상상도 못할걸.”김하늘도 거들었다.“누군데?”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태한그룹에서 글쎄 서민영 그 불여우까지 데리고 왔지 뭐야?”한유라는 단단히 화가 난 듯 하이힐로 바닥을 탁 내리쳤다.“너도 여기 있을 줄 알고 일부러 데려온 게 아닐까?”소은정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정성이 갸륵하네.”“그쪽 집안사람들은 네가 은호 오빠나 은해 오빠와 사귀고 있다고 믿고 있어. 그래서 깽판 치려고 온 거지. 내가
소은정의 등장에 이민혜와 박예리의 눈이 커다래졌다.“네... 네가 어떻게 여기에...”박예리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소은정은 이미 버림받은 거 아니었어? 이민혜도 적잖게 놀랐지만 곧 감정을 감추고 여유롭게 웃었다.“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고 싶은가 보지. 소은정, 이제 널 원하는 사람은 없어. 정신 차려.”어차피 곧 진실이 밝혀질 텐데 굳이 여기서 입씨름을 할 필요가 있을까? 소은정은 말없이 두 사람을 향해 미소 지은 뒤 자리를 뜨려 했다.하지만 박예리는 화장실 입구를 막은 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나한테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나?소은정은 피식 웃으며 박예리의 어깨를 퍽 치며 화장실 문을 나섰다. 어깨에 느껴지는 충격에 비틀거리던 박예리는 겨우 중심을 잡고 바로 욕설을 내뱉으려 했으나 마침 고개를 돌린 소은정의 차가운 눈빛과 시선을 마주치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소은정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박예리는 욱신거리는 어깨를 만지며 말했다.“주인 잃은 강아지 주제에 뭐가 저렇게 당당해. 두고 봐. 오늘 네가 망신 당하는 모습, 내가 똑똑히 봐줄 테니까.”한편, 파티장, 소찬식 소은호 부자는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과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비록 아들에게 경영을 맡기고 뒷선에 물러났지만 여전히 예전과 같은 기량을 보여주는 소찬식의 모습에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소 회장님...””박 회장님, 이런 자리에까지 참석해 주시고 영광입니다.”반가운 듯 악수를 청했지만 소찬식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아저씨.”박수혁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하하, 박 대표 인사까지 받을 줄은 몰랐네. 형식적인 인사는 거둬요.”소찬식이 비아냥거렸다.예상치 못한 소찬식의 태도에 박수혁은 흠칫 뒤로 물러섰지만 다시 무표정을 유지했다. 나름 아버지 세대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 친밀하게 다가간 건데 소찬식의 말에 숨겨진 가시를 느낀 박수혁의 마음속에도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반면 박대한은 그 점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소찬식과 형식적인 대화를
소찬식은 박수혁을 힐끗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글쎄요. 설령 저한테 딸이 있다고 해도 박 대표처럼 훌륭한 청년의 마음에 들지 모르겠습니다.”박대한은 살짝 당황했으나 곧 화제를 돌렸다.“참, 요즘 그 여자의 루머 때문에 마음이 많이 복잡하시죠. 주가도 많이 떨어졌던데...”한편, 서민영은 박예리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물었다.“정말 제대로 본 거 맞아? 소은정이 여길 온다는 게 말이 돼?”“내가 그 계집애 얼굴을 잘못 봤을 리가 없잖아. 엄마도 봤단 말이야...”박예리의 확신에 서민영도 그 뒤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 중에서 소은정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여기서 어떻게 찾아...”“뭐 어디 숨어있나 보지 뭐. 여기 나타난 이상 아직 여기 있을 거야. 기자들 앞에서 강제로 결혼 발표라도 할 생각인 거라고.”머리를 긁적이던 박예리가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니 소은호와 결혼 발표라도 먼저 하려는 속셈이겠지.곧 펼쳐질 재밌는 상황에 서민영의 마음도 벅차올랐다. 소은정, 너도 이런 악수를 두다니! 한참을 눈동자를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보던 서민영이 다급하게 말했다.“저기 있다!”서민영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평범한 원피스 차림의 소은정이 꽃다발을 들고 입구의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너 해외로 출장 간 거 아니었어? 어떻게 온 거야?”깔끔한 정장 차림의 성강희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오늘 같은 날에 아무리 바빠도 와야지. 파티만 참석하고 바로 돌아가야 해.”눈부신 그의 미소에 꽃다발을 든 소은정의 손이 살짝 떨렸다.“오늘 아저씨도 오셨던데 인사라도 드리지 그래?”“아니. 내가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아마 때리실지도 몰라. 오늘 같이 좋은 날 인명 사고가 나면 안 되잖아? 어차피 프로젝트도 막바지고 아마 곧 귀국할 수 있을 거야.”성강희가 고개를 젓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그래. 귀국하는 날 내가 직접 마중 나갈게.”“약속한 거다?”환하게 웃던 성강희는
어차피 이혼한 사이인데 소은정이 비난을 받을 때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해지는지 박수혁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왜 여기 나타난 걸까? 아직도 소은호가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지금 다들 그녀를 멀리하는 걸 정말 느끼지 못하는 걸까?특히 그녀의 손에 들린 꽃다발이 박수혁의 신경을 더 거슬리게 만들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아니야. 지금 다들 네 행보만 주시하고 있어. 여기서 네가 돌발행동이라도 하면 그땐 나도 널 지킬 수 없어.”박수혁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도 모자라 SC그룹까지 적으로 돌리면 그때는 박수혁도 더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다.하지만 소은정은 박수혁의 그런 호의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지켜줘? 당신이 언제 나를 지켜줬다고 그런 말을 해? 날 지키고 싶은 게 아니라 당신 집안의 명예를 지키고 싶은 거겠지.”지켜주겠다고 말하면 내가 꼬리라도 흔들면서 고마워할 줄 알았을까? 누굴 바보로 아는 거야?“은정 씨...”이때 서민영이 달려오더니 바로 박수혁의 팔짱을 꼈다.“은정 씨, 다 나 때문이야. 은정 씨가 나 싫어하는 거 알아. 저번 패션쇼장에서 나 때린 거 내가 용서해 줄게. 나도 은정 씨 마음 이해하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가만히 있어줘.”소은정은 고개를 돌려 서민영을 바라보았다.“용서? 네까짓 게 뭔데 용서란 단어를 입에 올려?”서민영은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박수혁을 바라보았지만 예전처럼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박수혁의 모습에 표정이 살짝 굳었다.“은정 씨, 은정 씨는 이미 수혁이랑 이혼한 사이야. 평생 그렇게 증오 속에서 살 거야?”“평생? 당신 같은 사람들을 내가 평생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아?”서민영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다시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나도 수혁이도 은정 씨가 과거 일은 잊고 새롭게 시작하길 바라. 하지만 오늘은 SC그룹 창립 기념일 행사잖아. 여기서 무슨 사고라도 난다면 은정 씨만 더 힘들어져. 멀리 봐야지.”서민영의
경쾌한 음악과 반짝이는 조명이 파티장을 장식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고 소찬식이 무대로 올라가자 음악이 멈추었다.오늘 파티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시작될 것이란 예감에 모두의 시선이 무대로 꽂혔다. 비록 지금 SC그룹의 실무는 모두 소은호가 담당하고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조용히 소찬식 옆에 서 있었다.“여러분, 바쁘신 시간 쪼개서 저희 SC그룹 창립 기념일 파티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의 응원과 서포트가 있었기에 오늘날 SC그룹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자, 이 소찬식, 여러분들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소찬식이 와인잔을 들자 모두들 그를 따라 와인잔을 들고 담긴 술을 원샷했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SC그룹과 더 좋은 인맥을 쌓고 싶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축하한다고 말하며 박수를 쳤다.소은호는 직접 다가가 소찬식의 와인잔에 샴페인을 따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소찬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무대 아래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빌려 해명하고 싶은 사안이 있습니다. SC그룹의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기자님들도 아마 다들 궁금하실 겁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 여자 소은정 씨에 대해서요.”소찬식의 말에 모두들 숨을 죽이기 시작했다. 역시 그 일을 해명하기 위해 기자들까지 부른 것이라며 다들 생각했다.특히 박대한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소찬식이 이혼녀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리가 없지. 소은정, 이게 주제를 모르고 나댄 자의 결말이야.이민혜와 박예리도 서로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른다.“소은정 이 계집애 어디 간 거야?”박예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불평했다. 반면 이민혜는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진작 쫓겨났겠지 뭐. 소은정은 SC그룹의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야. 그런 애를 여기 남겨둘 리가 없지.”소찬식은 박씨 일가 사람들을 한 번 바라본 뒤 살짝 뜸을 들이다 말을 이어갔다.“소은정 씨는 저희 SC그룹에서 일하는 동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