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의 칭찬이 진심이든 아니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내가 이쁘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거든?하지만 그녀를 짜증 나게 만드는 건 주위 사람들더러 들으라는 듯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 박수혁이 아닌 그 말에 순간 가슴이 떨린 그녀, 사탕 발린 말에 넘어갈 뻔한 그녀 자신이었다.생각지 못한 말에 소은정은 순간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곧 다시 고개를 돌렸다.이 여우 같은 남자를 봤나. 그딴 말에 내가 넘어갈 줄 알아? 휴, 정신 차리자. 소은정.별 수확 없이 끝난 두 사람의 대화에 사람들은 다시 자연스레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잠시 후, 시상식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오늘 유준열은 신인상 수상자, 그리고 소은정은 그의 시상자로 낙점되었다. 무대 화면에 신인상 후보들의 사진이 뜨기 시작하자 소은정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물론, 유준열은 자신이 상을 받게 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베테랑 MC의 유창한 진행이 이어지고 수많은 조명들이 각 배우들의 얼굴을 하나둘씩 비추었다. 긴장된 분위기가 고조로 오른 순간, MC가 수상자를 발표했다.“신인 연기자상, 유준열, 반시연 씨, 축하드립니다!” 시상을 위해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리고 유준열은 깜짝 놀란 표정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편, 백스테이지, 옷매무새를 정리한 소은정이 시상을 위해 무대로 나가려던 순간,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당황한 그녀가 고개를 돌린 순간, 박수혁의 완벽한 옆라인이 소은정의 시야에 들어왔다.또 무슨 꿍꿍이야? 소은정을 제외한 다른 시상자는 드라마국 국장, 이런 큰 행사에서 갑자기 시상자를 바꾼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국 국장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박수혁을 향해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박수혁과 이렇게 가깝게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은정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향수 냄새에 두근대는 심장이 설렘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소은정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박수혁의 성의 없는 말에도 모두들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소은정도 속으로는 온갖 욕설을 내뱉고 있었지만 카메라 앞인지라 어쩔 수 없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시상이 이어졌고 박수혁이 건넨 트로피를 받는 반시연의 손이 살짝 떨렸다. 박수혁, 엔터업계는 물론 대한민국 재계를 꽉 잡고 있는 대기업의 대표이사, 게다가 잘생긴 외모까지.아무리 진정하려 애써도 콩닥대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저 남자 눈에만 든다면 앞으로 배역을 위해 오디션을 볼 필요도, 기획사 대표의 손에 이끌려 이런저런 접대 자리에 나갈 필요도 없겠지.반시연은 불긋한 뺨을 어루만지며 용기를 내 한 마디 건넸다.“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반시연의 눈빛에도 박수혁은 그저 고개를 까닥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곧 이어진 기념촬영. 예정대로라면 박수혁은 반시연 옆에, 소은정은 유준열 옆에 서야 했으나 박수혁이 소은정 곁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덕에 두 수상자가 함께 서고 시상자가 함께 서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그 모습에 관객석에 앉은 연예인들도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제멋대로인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은 속에서 천불이 일었지만 기자들 앞에서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아 몰래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뭐야. 유준열을 띄워주려고 겨우 시간 빼서 온 건데. 박수혁 이 능구렁이 같은 자식...시상식이 끝나고 기분이 상한 소은정은 뒤풀이 파티도 마다한 채 바로 식장을 나섰다. 박수혁도 바로 그 뒤를 따르려 했지만 그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는 기획사 대표들과 연예들에게 둘러싸여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박 대표님...”이때 달콤한 목소리가 그의 뒤에서 울려 퍼졌다. 반시연이었다.등을 시원하게 노출한 얇은 드레스 차림의 반시연은 추운지 몸을 살짝 떨고 있었다. 여리여리한 몸매, 반짝이는 눈동자... 웬만한 남자라면 예의상이라도 재킷을 벗어 건넸겠지만 박수혁은 여자가 누군지 기억도 나
한유라, 김하늘과 함께 스키 여행을 가려던 소은정에게 예상치 못한 문자가 날아왔다.박우혁이 그녀를 새로 제작하는 웹 예능에 초대한 것이다. 스키 여행과, 모험 콘텐츠... 소은정이 관심이 가는 쪽은 당연히 전자였다.이미 섬에 조난당한 경험이 있는 소은정은 왜 굳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박우혁은 문자로 조르는 것도 모자라 아예 소은정의 집까지 찾아와 드러눕기 시작했다.처음에는 펄쩍 뛰며 반대하던 소찬식과 소은해마저도 저렇게까지 조르는데 못 이기는 척 나가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그래도 걱정이 되긴 했는지 소은해는 자신의 매니저, 코디,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모두 소은정에게 내주었다. 섬에 도착한 소은정은 흔들의자에 누워 따스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매니저가 미리 준비한 디저트와 커피를 건네고 소은정은 정교하게 꾸며진 쿠키들을 맛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박우혁이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누나, 우리 콘텐츠는 모험, 도전이야. 우리 지금 휴가 온 거 아니라고!”눈을 감은 채 흔들의자에 누워있던 소은정은 스르륵 눈을 떴다.“나도 알아. 어차피 아직 촬영 시작도 안 했잖아?”여유로운 소은정의 태도에 박우혁은 그녀 옆에 앉더니 애원하기 시작했다.“누나, 나 이 프로그램에서 탈락하면 정말 지사로 출근해야 할지도 몰라...”그제야 소은정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야... 뭘 또 그렇게 심각하게 말해.”박우혁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정교한 디저트들을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누나가 준 돈 덕분에 겨우 제작한 프로그램이야. 여기서 무너지면 삼촌이 다시 기회를 줄 것 같아? 이번 회차에 팬들 마음을 꽉 잡아야 한다고. 1회 만에 떨어지면 어떡해!”차라리 탈락했으면 좋겠다. 나 좀 편히 쉬게!그의 말에 반박하려던 소은정은 멀리서 다가오는 반시연과 유준열을 발견하고 물었다.“다른 연예인들도 섭외한 거야?”“누나가 준 돈으로 겨우 급한 불만 끈 거라 유명한 애들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반시연도 흠칫 놀라는 듯했지만 카메라 앞에라 감정을 드러내진 못했다.하지만 다른 세 남자는 추첨 결과가 꽤 마음에 드는 듯했다.소은정, 반시연. 하나는 재벌 2세 아가씨에 다른 하나는 여배우. 체력도 별로일 테고 망가지는 것도 원하지 않을 테니 오히려 미션 수행에는 방해만 될 게 분명했다.그런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었으니 남성팀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어차피 정해진 결과, 물릴 수도 없으니 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우승을 노리고 예능에 출연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서바이벌 모험 콘텐츠다 보니 매니저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동행 금지, 오직 촬영 담당 VJ만 함께할 수 있었다. 소은정은 미션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겨 백팩에 넣었다.미션이 시작되고 소은정은 지도의 지형을 살펴보며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던 반시연은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반시연은 중고 신인이었다. 데뷔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최근에서야 신인상을 탔고 그 덕분에 웹 예능에 출연하게 된 그녀와 달리 소은정은 집안 배경과 아름다운 외모로 별다른 노력 없이도 톱 여배우 못지않은 화제성과 인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반시연은 그런 소은정이 부러우면서도 질투가 나 미칠 것만 같았다.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그때, VJ의 카메라가 그녀를 향하는 걸 발견한 반시연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소은정의 뒤를 따랐다.“소 대표님, 뭐 좀 알아내셨어요?”그녀의 질문에 소은정이 고개를 돌리더니 싱긋 웃었다.“대표님은 무슨. 말 편하게 해요. 대충 방향은 알 것 같네요. 어차피 촬영이니까 막다른 길로 몰지는 않겠죠?”재벌집 아가씨라 도도하고 콧대 높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반시연은 살짝 당황하는 듯했지만 바로 미소로 응했다.“네, 언니. 저 평소에도 익스트림 스포츠 진짜 좋아하거든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꼭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한 거 있죠?”뜬금없는 반시
숲은 온갖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햇빛을 가렸지만 나뭇잎 틈새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숲에 조그마한 생기를 더해주었다.소은정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텐트를 포함한 보급품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만약 그것마저 실패한다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야외 취침뿐. 그 꼴이 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걸어도 부족할 텐데 반시연은 지치지도 않는지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언니, 전 우혁 씨랑 언니가 단둘이 섬에서 시간을 보냈으니까 정이 많이 들었을 것 같아서 물은 거예요. 다른 뜻은 없어요. 정말이에요...”조심스럽게 소은정의 눈치를 살피는 꼴이 소은정의 신경을 거슬리가 만들었다.소은정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멈춰 서더니 고개를 돌렸다.소은정이 갑자기 멈출 거라 예상치 못했던 반시연은 살짝 휘청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소은정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시연 씨, 제가 시연 씨보다 2살 어려요. 그냥 은정이라고 부르세요.”언니는 무슨. 누가 봐도 내가 더 어려 보이는구만!소은정의 말투에서 언짢음을 느꼈는지 반시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어, 은정아... 미안... 내가 나이가 더 많았구나...”“그리고 우리 프로그램은 연애 콘텐츠가 아니잖아요? 시청자들도 제 개인적인 사생활보다는 미션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원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소은정은 확실히 평범한 여자 연예인과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저 싱긋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을 줄 수 있는 포스가 바로 그것이었다.그녀의 눈동자는 얄팍한 술수를 그대로 꿰뚫어 보듯 맑고 깊었다.한편 라이브 방송으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반응이 댓글창을 바로 채웠다.“역시 걸크러시. 불만은 바로바로 말하고 넘어가야지!”“반시연 저 여자 뭐야?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아까부터 거슬렸는데 바로 짚어주시네. 내 속이 다 시원하다.”“나름 친해지려고 다가간 것 같은데 저렇게까지 선 그을 필요
어느새 소은정은 한 동굴 앞에 도착했다. 동굴은 맵에 기록되지 않은 지형, 그렇다면 분명 뭔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소은정은 확신했다.그녀는 나무막대기로 동물 입구를 막은 잡초를 걷어냈고 반시연도 눈치껏 거들었다.동굴은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고 바닥에는 정체 모를 물기가 가득한 데다 냄새도 고약했다.소은정은 깊이 숨을 들이쉰 뒤 조심스럽게 손전등을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하지만 여배우로서 저렇게 더러운 곳에 발을 들인다는 게 내키지 않았던 반시연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은정아, 그쪽에는 카메라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런 곳에 단서가 있을까? 괜히 힘만 빼는 거 아니야?”예능에서 단서를 숨겨둔 곳에 카메라가 있는 건 이 바닥의 불문율,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춘 적이 있었던 반시연도 당연히 그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소은정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그럼 언니는 밖에서 기다려요.”설령 들어간다 해도 진짜 단서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 동굴의 상태가 엉망인 것도 사실이었으니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소은정과 담당 VJ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밖에는 반시연과 담당 VJ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하지만 곱게 자란 재벌 2세도 털털하게 안으로 들어가는데 신인 연기자 주제에 몸을 사리면 또 괜히 안티팬들만 늘어날 거란 생각에 내키지 않았지만 반시연도 발걸음을 옮겼다.“아!”하지만 몇 걸음 걷지도 못한 채 반시연은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소은정이 다급하게 다가가며 물었다.“왜 그래요?”발목을 접지른 반시연은 터져나오는 눈물을 꾹꾹 참으며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발목을 다친 것 같아. 미안, 괜히 나 때문에.”“얼른 스태프들한테 연락하고 언니는 베이스캠프에서 쉬는 게 좋겠어요.”발목 상태를 살피던 소은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나도 끝까지 버틸래.”반시연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발목에서 전해지는 고통보다 이대로 아무런 방송분량도 얻지 못하고 연예계에서 사라지는 게 훨씬 더 두려
소은정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반시연은 눈에 띄게 실망한 눈치였다. 길을 잘못 들어선 소은정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소은정의 신분과 팬덤이 두려워 결국 위로 전법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막혔네? 그럼 다시 돌아갈까?”소은정이 고집만 부리지 않았어도 여기로 들어올 필요도 없었을 테고 발목을 접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반시연은 짜증이 밀려왔다.하지만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리고 지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분명 이쪽이 맞는데 왜 갑자기 막힌 걸까?“지도가 정확하다면 출구는 바로 이 동굴 안에 있을 거예요.”소은정은 막힌 출구로 다가가더니 손으로 바위를 옮겨보려 했다. 하지만 꽉 막힌 출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진지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단서를 찾던 소은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가끔씩 정체 모를 물방울이 번쩍 떨어지는 바위에는 이끼가 잔뜩 자라있었다.손전등으로 불빛을 비추며 이끼 하나하나를 관찰하던 소은정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손바닥 자국이야!위쪽에 손바닥 자국이 있다는 건 이곳을 짚고 무언가를 했다는 뜻. 소은정은 옆에 있는 바위를 딛고 올라서 위쪽의 바위를 더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미끌미끌한 진흙이 잔뜩 묻어있었지만 소은정은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었다. 바위 틈 사이로 미약하게나마 빛이 보였기 때문이다.소은정이 손을 틈 사이에 가까이 가져다 댄 순간, 차가운 바람이 살짝 느껴졌다. 몇십센치 정도의 너비 한 번에 겨우 한 사람만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틈이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소은정은 훌쩍 뛰어내려 반시연에게 다가왔다.“출구는 바로 위쪽이에요. 언니가 먼저 갈래요? 아니면 제가 먼저 갈까요?”저렇게 좁은 틈새가 출구라고?“또 네 판단이 틀린 거면 어떡해?”반시연의 태클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시도조차 안 해보면 틀렸는지 아닌지 영원히 알 수 없어요. 뭐 지금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요?”오는 내내 쓸데없는 소리만 해대다 발목까지 풀쳐 민폐를 끼쳐 놓고는 무
하지만 곧 바위틈 사이에 낙하산 2개가 준비되어 있는 걸 발견한 소은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그래, 다 왔어.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낙하산 안전 로프를 단단히 묶은 소은정은 담당 VJ가 장비를 착용하는 것도 도와주었다.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뜨겁지도 쌀쌀하지도 않은 바람. 이렇게 좋은 날, 이게 무슨 짓일까...소은정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바로 뛰어내렸다. 바람이 그녀의 볼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났지만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왜냐? 비명을 지르면 카메라에 못생기게 나올 테니까.이런 프로그램인 줄 알았으면 박우혁이 그녀의 집 앞에서 텐트를 치든 노숙을 하든 내버려 두는 건데...기압이 그녀의 고막에 충격을 주고 바람 소리가 수십 배는 확대된 듯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영겁 같은 몇 분이 흐르고 소은정은 드디어 발이 무언가에 닿았음을 인지했다.그리고 바로 사람들이 그녀 주위로 몰려들었다.아, 살았구나.“누나, 괜찮아?”멍하니 앉아있는 소은정에게 다가온 박우혁이 그녀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댔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소은정은 바로 박우혁을 노려보았다.“오늘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출연 안 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오늘은 체력 테스트라 좀 힘든데 다음 회차는 지력 테스트라 괜찮을 거야. 그리고 아직 이번 회차 촬영도 채 안 끝났다고. 누나, 누나가 먼저 도착했으니까 팀원 교체를 선택할 수 있어. 어떻게 할래?”오는 내내 짐만 되던 반시연.. 어떻게 한다?소은정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그래!”박우혁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 중에서 고르라면 경험도 가장 풍부하고 친분도 있는 그를 고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누구로 바꿀 건데?”박우혁이 두 눈을 반짝였다.“원한빈으로 바꿀래.”박우혁은 사형선고라도 받은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 한참 뒤에야 소리쳤다.“왜? 왜 원한빈인데?”“유준열은 이런 프로그램은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을 테고 넌 못 미더워...”“뭐? 누나 나 못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