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움 속, 며칠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남유주가 또 생각난다.연락 한 번조차 하지 않은 그녀.전보다 더 대담해진 것 같다.박수혁은 깊은숨을 내쉬더니 핸드폰을 탁자 위로 던졌다. 화가 나 가슴이 아플 정도다.며칠 동안 내버려 두려고 한 건데 왜 아무 소용이 없지?시간을 올려다보니 오후 5시 반이었다.그는 핸드폰과 외투를 챙겨서 나갔다.그러다 때마침 서류를 들고 있는 이한석과 마주쳤다.“박 대표님, 이따 화상회의도 있는데 어디 가세요?”박수혁은 머뭇거리더니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러더니 그의 눈빛이 차갑게 굳어졌다.“5시 반인데 퇴근해야지, 왜 자꾸 야근을 시키는 거야?”이한석은 침묵에 잠겼다.“......”이게 사람이 할 말인가?그룹 고위층이 제시간에 퇴근한 적이 있었나?이한석은 거의 회사에서 살다시피 지낸다.박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뒤돌아섰다.“회의는 내일로 미뤄.”그는 바로 가버렸다.정말 가버렸다...이한석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자리에 서있었다.박수혁 맞아?아직 저녁 7시도 채 안 됐지만 하나 둘 사람들이 와인바에 모이기 시작했다.룸에 갈 사람들은 룸으로 가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조용한 구역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오히려 술집 같지 않은 분위기이다.하나도 떠들썩하지 않았다. 그저 수다를 떨며 술을 마시거나 노래를 감상하는 정도였다.아마 시끌벅적할 시간이 되지 않아 다들 한가롭게 앉아 있는 걸 지도.한수근과 몇 명의 웨이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남유주는 문을 등지고 바 의자에 앉아 개업 후의 주류 명세서를 보고 있었다.보면 볼수록 만족스럽다.비록 주류 가격은 보편적으로 인상되었지만 할인 혜택을 받아 실제 가격은 낮아진 것과 같았다.하지만 와인바는 조금도 밑지지 않았다.그녀는 네이비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름다운 몸매가 드러났고 머리카락은 느슨하게 묶여져 있었다. 부드러운 눈썹과 약간 올라간 입꼬리, 부드럽고 산뜻한 기품이 느껴진다.박수혁이 와인바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예쁜 남유주
위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새로 바뀐 가구들을 본 박수혁은 갑자기 굳어버렸다.심지어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침실들은 넓고 밝게 디자인되어 있었고 심지어 외부 장식도 개성이 넘쳤다.그리고 위층 바닥은 방음 처리가 되어 있어 위에 서있으면 아래층 공간과 아예 두 층으로 분리된 것처럼 느껴진다.박수혁은 안방을 향해 들어갔다. 방음이 더 잘 되어 있어 수면에 전혀 영향이 없었다.그는 약간의 실망과 괴로움을 느꼈다.위에 서있던 남유주가 말한다.“얼른 둘러보세요, 다 보고 나면 내려가요.” 박수혁은 잠자코 있더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아까 내가 했던 말 생각해 볼 거야?”남유주는 얼른 그를 보내려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박수혁은 안방의 베란다로 가더니 흔들의자에 앉았다.남유주는 침묵에 잠긴다.“......”수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그럼 지금 생각해 봐, 생각 다 하면 나랑 같이 가, 생각 다 못했으면 여기서 기다릴게.”“억지 부리는 거 아니에요?”남유주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박수혁은 눈썹을 씰룩거리며 두려울 게 없다는 듯 앉아 있었다.각진 얼굴엔 온기가 묻어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제멋대로였다.남유주는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린다.더 이상 그와 티격태격하기 싫었던 그녀는 돌아서더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무튼 그도 재미가 없어지면 알아서 갈 테니.밤이 어두워지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노래를 신청하기 시작했고 가수들은 잔잔한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새로운 밤을 열어갔다.남유주는 기분을 정리하고 내려가 손님들을 맞이했다.벌써 9시가 거의 다 돼간다.아마 박수혁도 갔을 거다.그녀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바 카운터에 앉아 술을 정리하고 있었고, 그때 술을 많이 마신 남자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사장님, 브랜디 한 잔 더 주세요.”남유주는 힐끔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다음에 오시면 드릴게요. 오늘 충분히 많이 마셨어요, 같이 오신 분에게 데려다 드리라고 할까요?”바에서 술에 취
남유주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으며 배를 움켜쥐고 걸어갔다.“박 대표님, 술을 제조하는 방법은 언제 배우신 거예요?”앉아있던 박수혁은 짜증이 났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그녀의 말에 솔직하게 말했다.“할 줄 몰라, 내 맘대로 섞은 거야. 어차피 막 섞어도 무슨 맛인지 모를 텐데. 방금 그 사람들은 술맛을 모르는 게 확실해.” 알고 보니 아가씨들을 속이기 쉽다고 생각한 거네? 박수혁은 또 한 잔을 만들더니 건네주었다.“공짜로 줄게.”남유주는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박 대표님, 여기가 누구의 영역인지 잊으셨어요?”“내가 유주 씨 영역에서 만든 술을 공짜로 주는 것도 안돼?”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정말 부끄러운 줄 모르네!남유주는 참지 못하고 혀를 내둘렀다.“박 대표님, 신분이 높아서 다행이에요.”“그렇지 않으면?”“벌써 맞아 죽었을걸요.”박수혁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두 사람은 모처럼 평화로운 모습이다.심지어 싸우고 나서 처음 아무렇지 않게 하는 대화였다. 방금 전 경직된 분위기보다 훨씬 나았다.남유주는 말은 그렇게 해도 술잔을 집어 들고 살짝 맛보더니 눈을 찡그리며 바로 뱉어냈다.“레몬주스를 얼마나 넣은 거예요?”심지어 농축액이었다.박수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의 병을 보았다.“반 병쯤 넣은 것 같은데.”남유주가 입을 다물었다.“......”사업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박수혁에 대해 다시 알게 된 것 같았다.남유주는 카운터에서 그를 내보냈다.박수혁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어쨌든 돈을 내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는 명분이라도 있었으니.“왜 다시 돌아온 거예요?”“음, 유주 씨가 생각 다 할 때까지 기다리려고.”“참나...”남유주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이었다.밤새도록 남유주는 그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그를 따라갔다.화해가 아니라 그만두는 것이었다.그녀도 확실하게 생각했다.이번 생은 그냥 대
“아닙니다, 기사가 데리러 올 겁니다.”천유희가 웃음을 지었다.그가 사양하는 말들을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진심도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적극적일까?박수혁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머리부터 발끝까지 도도하고 차갑고 낯선 사람이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침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번에 분명 그가 곁에 있던 여자에게 따뜻하게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았다.착각이 아니었다.천유희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사업을 할만한 사람이 아니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잠시 그녀를 밀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하지만 앞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천유희는 CK 그룹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 그녀의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그녀 대신 CK 그룹을 관리하고 감히 아무도 넘보지 못하도록.박수혁이 바로 최고의 선택이었다.그녀는 그의 감정을 탐내지 않고 그의 주변에 여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단지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했다.다만 아버지는 그녀에게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당부했다.허나 성안 그룹에서 겪었던 일이 아직도 생생했으니.그녀는 당연히 그렇게 바보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각자 기사를 기다리며 함께 서있었다.역시나 천유희의 기사가 먼저 왔다.박수혁은 예의상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천유희는 부드럽게 감사 인사를 하고 허리를 굽혀 차에 올라탔다.다만 치마가 너무 길어 문틈에 끼어버리고 말았다.그녀가 막 허리를 굽히려 하는 순간 박수혁은 허리를 굽힌 김에 머리를 숙여 끼어버린 치맛자락을 빼주었다.불빛에 비친 남자의 옆모습이 유난히 밝게 비났다. 마치 조각을 한 얼굴처럼 섹시하고 차분해 보였다.왠지 모르게 천유희의 마음이 흔들리더니 뭔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박수혁이 옆에 있던 남유주에게 웃음을 짓는 모습이 보인 것 같기도 했다.그녀는
“CK 그룹 사람들에게 말해, 유희 아가씨만 괜찮다면 두 번째 방안을 선택하겠다고.”인터넷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화풀이하는 게 분명했다.구경만 하게 할 수는 없으니 그는 이 판을 갖고 놀려고 했다.이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박 대표님.”박수혁의 결정은 회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위해 내린 것으로, 지적할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그러다 오후.실기간 검색어의 열기는 점차 사라졌다.구경꾼들도 흥미를 잃고 하나 둘 흩어졌다.그러다 잔잔해졌을 무렵,태한 그룹과 CK 그룹이 공동으로 이번 협력의 초점을 제시했다.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그뿐만이 아니다.사람들은 낭만적인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고 포토샵으로 웨딩사진까지 만들어냈다.그러나 이에 대해 양측 모두 감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하지만 인터넷에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태한 그룹과 CK 그룹의 주가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이 일의 최종 결과는 자본가들의 이득으로 번지고 말았다.태한 그룹 직원들은 기쁨과 즐거움에 잠겼고 박수혁이 천유희와 결혼하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오히려 박수혁 본인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비록 이 싸움에서 이긴 격이었지만 마음은 좀 불편했다.심지어 숨이 막혔다.말할 수 없는 불안감도 느껴졌다.시간을 보니 5시 반이다, 퇴근할 시간이다.박수혁은 물건을 챙겨서 나갔다.이한석은 그의 그런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차 안.박수혁은 남유주에 대해 미리 물어보려고 가정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집에 있을까?아니면 와인바에 찾아갈까?그는 마침내 불안해하고 있는 원인을 찾았다.남유주 때문인거잖아?싸웠던 게 고작 며칠 전 일이고 지금은 화가 난 나머지 두 번째 방안을 선택했는데 그녀가 알게 되면 분명 오해할 것이었다.그는 일찍 돌아가 그녀에게 확실하게 설명해야 했다.가정부가 전화를 받자, 수혁은 유주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유주 아가씨요? 아, 점심에 나가셨
“지금 과일이 얼마나 비싼데요.”박수혁이 쓰레기 인간이라 과일도 주기 아까웠다.남유주는 할 말을 잃었다.박수혁이 룸으로 들어간지 꽤 오래되었지만 아무도 들어 가지 않았다.그곳에 앉아 있는 박수혁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남유주의 말에 처음에는 침묵했고, 그러다가 반성했다.‘내가 잘못한 거 맞지?’다들 그와 천유희의 관계를 추측하고 있었지만,그는 아무런 해석도 하지 않았다.남유주는 정말 그를 믿고 있는 것일까?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것일까?박수혁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실타래가 엉킨 듯 도무지 두서가 잡히지 않았다.짜증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왜 아직도 안 오는 거지?’생각을 하던 그때,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한수근이 과일 쟁반과 술을 들고 들어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드리라고 했어요. 박 대표님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유주 씨는요? 직접 오라고 해요.”박수혁은 초조함과 불안감을 억누르며 말했다.그렇다, 그런 불안감이 다시 몰려왔다.그는 도무지 이 불안감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다.박수혁은 당장 그녀를 만나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설마 정말 내가 천유희와 어울리니까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설마 이미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날 고작 그런 놈으로 생각한 건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여자와 어울린다고 할 수 있지?’한수근은 담담하게 웃으며 정중히 거절했다.“죄송해요, 박 대표님. 사장님은 바쁘시니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박수혁은 쌀쌀맞은 눈빛으로 한수근을 노려보았다.“뭐라고요? 유주 씨가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요?”순간 한수근은 숨이 멎을 것 같았지만 침착하게 박수혁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아니요, 아무도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적 없어요. 박 대표님, 전에 두 분을 지지했던 건 박 대표님이 사장님을 지켜드리고 돌봐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금 보니 제가 순진했네요.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입구를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했다.이때 강서진은 눈빛이 반짝이더니 뭔가 알아차린 것 같았다.‘아무 사이 아니라던 말은, 어쩌면 평범한 사이가 아니라서 그랬던 건 아닐까? 오늘 천유희와의 스캔들이 시끌벅적하게 터졌는데 어떤 여자가 참을 수 있겠어. 그러니까 지금 남유주는 완전 빡친거 맞지?’계단을 내려온 박수혁은 아무렇지 않게 리듬에 맞춰 몸을 가볍게 흔들며 손님들과 대화하는 남유주를 보았다.더는 참을 수 없다.박수혁은 표정이 멈칫하더니 화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남유주를 끌고 나갔다.그렇게 두 사람은 입구에 도달했다.남유주가 아무리 반항해도, 아무리 뭐라고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어이가 없었다.입구를 나서니 박수혁도 긴장이 풀렸고, 남유주는 그 틈을 타서 손을 뿌리쳤다.그녀는 일초라도 박수혁과 얽히기 싫었고 이로 인해 오해받는 것도 싫었다.그는 그녀가 생각이 깊다고 생각했어야 했지만, 오히려 마음이 불쾌했다.화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그러다 지금, 결국 극치에 도달했다.남유주가 먼저 선수를 쳤다.“미쳤어요?”“오늘 왜 이래요? 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죠?”박수혁은 곧게 서서 날카롭고 차가운 기운을 풍겨왔다.남유주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온통 남유주밖에 없었다.그녀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그는 바로 알아챘다.남유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오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뭘 물어야 할까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해요. 빙빙 돌리지 말고.그리고, 전화하면 되지 왜 끌고 나와요?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박수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전화를 몇 통이나 걸었는데, 받았어요?”박수혁의 목소리는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남유주는 멈칫하더니 주머니를 만졌다.그제야 휴대폰을 카운터에 둔 것이 생각났다.하지만 그녀는 전혀 기가 죽지 않았으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저녁에는 바빠서 전화 받을 시간이 없어요
박수혁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표정은 극도로 일그러졌다.한참 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유주 씨 생각은요?”남유주는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그래요, 그렇다면 오늘부로 연락처도 지우고 다신 찾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박수혁 씨도 저 찾지 말아 주세요. 서로 몰랐던 때로 돌아가자고요.”남유주는 이성적으로 두 사람의 미래를 생각했다.꼭 두 사람이 남이였던 그때와 같은 말이다.박수혁은 표정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무거워졌다.수많은 감정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헤집었다. 이 순간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위에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바람만 불면 거센 파토가 몰아치는 바다.“아니요.”박수혁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금 매우 고통스러웠다.“네?”“나와 아무 상관 없는 여자야. 그러니까 결혼은 더욱 말도 안 돼. 설명하려고 찾아왔어.”박수혁은 남유주의 표정을 찬찬히 보았지만,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호수처럼 잔잔했다.하여 박수혁은 남을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렇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그는 깊은숨을 내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두 기업은 곧 협력을 앞두고 있어. 그런데 이 상황에 관계에 선을 긋게 되면 사람들은 두 기업의 협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해. 그렇게 되면 모두 불리해. 그래서 대응하지 않기로 했어.”박수혁은 뜨거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마음에 찔리는 부분도 있었다.그에겐 두 가지 방안이 있었다.대응하더라도 큰 손해는 없다. 그저 지금의 효과가 없을 뿐이다.하지만 이 방안을 말하게 되면 제 발등을 제가 찍는 격이 되어버린다.이 순간,박수혁은 남유주의 표정에 변화가 있기를 기다렸다.잔잔하지만 않으면 된다.하지만 그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박수혁의 말을 듣고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만 끄덕였다.믿는 건지, 믿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아, 작별 인사 하러 온 줄 알았어요.”왠지 실망한 것 같은 말투다.박수혁은 표정이 굳어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