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비아냥거린 말이었지만 박수혁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소은정도, 서민영도, 허하진도, 그에게 호감을 표하는 여자들은 결국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걸까?착잡한 마음에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박수혁은 한참 뒤에야 말했다.“은정아, 넌 걔들이랑 달라.”적어도 소은정은 한때 그의 와이프였지만 서민영과 허하진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그래. 난 다르지. 내 특이한 혈액형 덕분에 결혼에 골인했으니까. 뭐 허울뿐인 와이프였지만.”소은정이 피식 웃었다.남 얘기하듯 담담하게 말하던 소은정은 곧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마음과 달리 삐딱하게 나가는 말, 그리고 더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소은정.마음이 복잡했다.“도착했습니다.”우연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는 입장인 우연준은 불편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소은정은 단 1초도 그와 함께하고 싶지 않은 듯 바로 차에서 내렸고 박수혁도 그 뒤를 따랐다.갑자기 주주회가 열린 거도 모자라 방금 전까지 거성그룹 프로젝트 기자 회견장에 있던 두 사람이 트윈즈 엔터에 나타나자 주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박 대표님.”“소 대표님.”주주들이 일어서고 고온하게 인사를 건넸고 그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던 박수혁은 대충 고개를 까닥했다.트윈즈 그룹 대표 허강운은 눈치껏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 먼저 두 사람더러 타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멈칫하다 엘리베이터 탄 박수혁과 달리 소은정은 싱긋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아, 저는 급하게 통화할 데가 있어서 먼저들 올라가세요.”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박수혁과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다는 뜻임을 눈치챈 박수혁은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 물론 다른 주주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엘리베이터에 탔다.인적이 드문 곳에서 소은해와 통화를 마친 소은정이 돌아선 순간, 독기를 잔뜩 품은 허하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소은정, 여기가 어디라고 와?”성큼성큼 다가선 허하진이 물었
최대 주주가 바뀐 사실을 알면 허하진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다.“소은정, 너 뭐가 그렇게 잘났어? 너나 나나 집안 도움받으면서 사는 거 마찬가지잖아.”그녀도 소은정도 결국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모 덕에 호의호식하는 상황에 뭐가 그렇게 잘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입이 트인 허하진은 소은정의 과거 이야기까지 끄집어냈다.“소씨 일가가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수혁 오빠 집안에서는 네가 누군지 모르고 쫓아냈다며? 그것 봐. 집안 서포트가 없으면 넌 그냥 버림받은 이혼녀라고.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신분을 공개한 거야? 네가 SC그룹 딸이라고 하면 오빠가 다시 널 봐줄 줄 알았어? 하여간, 천박하긴.”허하진은 어떻게든 저 고고한 소은정의 가면을 벗겨내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당연히 화를 낼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소은정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실려있었다.“허하진 씨, 이혼은 내가 먼저 제안한 거니 쫓겨난 것도 아니고. 난 한 번 돌아서면 끝이에요. 상대방 기준에 맞게 날 맞출 생각은 없어요. 뭐, 다른 건 몰라도 그 점 하나는 허하진 씨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말을 마친 소은정은 입꼬리를 씩 올린 채 자리를 떴다.한참 뒤에야 소은정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허하진은 하이힐 굽으로 바닥을 세게 내리치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감히 내 구역에서 날 모욕해? 감히?이성을 잃은 허하진은 바로 소은정의 뒤를 따랐다. 머릿속에는 온통 소은정에게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띵!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소은정이 타려던 순간, 허하진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다른 한 손을 번쩍 들었다.“소은정, 너 죽었어!”하지만 그 손이 소은정에게 닿기도 전, 엘리베이터에 있던 누군가 날린 킥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아!”비참하게 바닥에 쓰러진 허하진이 눈을 부라리던 순간,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수혁 오빠...”뭐야? 두 사람 이혼한 거 아니었어? 소은정 저 여자 때문에 날 때린 거야?박수혁은 벌레를 바라보듯 혐오스러운 눈빛으
허하진은 바닥을 기어 허강운의 손목을 잡았다.“아빠, 도대체 왜 그래? 소은정 저 계집애가 뭐라고 그렇게 굽신거리는 거냐고!”하지만 매정하게 딸의 손을 뿌리친 허강운은 방금 전 소은정의 말을 떠올리고 억지로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이 멍청한 X. 소은정은 SC그룹의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야. 말 한마디로 우리 회사를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고. 주주회에서 얌전히 있어. 또 소란 부리면 해외로 추방시켜버릴 테니까.”뭐? 최대 주주? 대표이사?불안한 예감에 허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한편, 엘리베이터, 소은정과 박수혁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회의실 앞에서 소은정을 기다리던 우연준이 바로 다가갔다.박수혁은 특유의 포스와 외모로 어디를 가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옆에 서 있는 소은정도 그 포스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박수혁보다 한 발 더 앞서 걷는 그녀는 마치 모두의 경외를 받기 위해 태어난 고귀한 여왕과도 같았다.곧이어 허강운과 허하진도 도착하고 주주회가 시작되었다. 우연준이 소은정 대신 여러 가지 사항들을 발표했다.가장 끝자리에 앉아 상석에 앉아 모두의 시선을 즐기는 소은정의 모습을 바라보던 허하진은 깨닫고야 말았다.긴 회의 테이블의 거리처럼, 그녀와 소은정은 아예 레벨이 다른 사람이었음을. 그녀가 잘못 건드린 거였음을.그리고 허하진이 그토록 사랑하는 박수혁의 시선마저 소은정을 향해 있었다.형식적인 절차가 이어지고 복잡한 용어들 중 허하진이 알아들은 건 마지막 한 마디뿐이었다.소은정이 최대 주주가 되었고 그녀의 아버지 허강운은 대표직에서 해임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글즈 엔터 대표 도준호가 새 대표이사로 취임했다는 것이었다.소은정은 다채롭게 변하는 허하정의 표정을 재밌다는 듯 지켜보았다.역시, 기대 대로네.이번 사건으로 허강운도 더 이상 사고뭉치 딸을 곁에 두지 않을 것일 테니 다시 해외로 보내겠지. 허하정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속이 다 시원했다.주주회가 끝나고 형식적인 인사가 귀찮
뭐 일부러? 먼저 급정거를 한 건 분명 박수혁이었다. 어차피 사고는 일어났고 구구절절 변명도 귀찮았던 소은정이 말했다.“그래, 일부러 그런 거야.”일부러 그런 거면 뭐 어쩔 건데? 합의 보면 그만이지.도발적인 소은정의 눈빛에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어떻게 할 거야?”그냥 떠본 것인데 정말 일부러 그런 것이라 대답할 줄이야.“뭘 어떡해. 회사로 비용 청구해.”사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박수혁의 책임이 더 컸지만 일부러 했다고 말한 이상,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휴대폰을 꺼낸 박수혁이 물었다.“그래. 견적 뽑고 연락할게. 번호 바꿨어?”“아니...”무의식적으로 대답한 소은정이 말끝을 흐렸다.휴대폰에 저장해 둔 번호로 전화를 건 박수혁의 귓가에 딱딱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전화를 받을 수 없어...”박수혁의 번호를 차단한 사실이 밝혀지고 박수혁의 따가운 시선에 소은정은 머쓱한 듯 고개를 돌렸다.“아니다. 뭐 따로 연락을 해. 대충 얼만지 말해. 지금 바로 입금해 줄 테니까.”소은정도 휴대폰을 꺼냈다.“됐어. 이런 건 정확하게 해야지. 연락처 남겨.”물론 박수혁이 굳이 그 돈 몇 푼에 집착하는 건 아니었다. 기회를 잡은 이상 어떻게든 차단을 풀고 싶었다.“우 비서한테 연락해.”여전히 단호한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은 전략을 바꾸었다.“나랑 연락하는 거 싫으면 됐어. 그냥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처리하지 마.”박수혁에게 빚을 지는 걸 질색하는 소은정의 마음을 정확하게 공략한 전략이었다.하, 지금 보내주고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차단은 다시 하면 그만이지.깊은 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알았어. 번호 안 바꿨으니까 연락해.”말을 마친 소은정이 다시 시동을 걸었다.하지만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박수혁이 창문으로 손을 뻗더니 핸들을 꽉 잡았다.기다란 손가락은 마치 조각한 듯 아름다웠다.박수혁의 돌발행동에 소은정이 당황하던 그때, 박수혁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이렇게 가고 딴
“이제 됐지?”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마침 그 글귀를 확인했다. 순간, 망치로 가슴을 내리친 뒤 답답했다.고개를 홱 돌린 소은정은 박수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떴다. 코끝이 찡하며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그런 이름으로 저장해 주고 있었구나.와이프?와이프라고 생각하긴 했었나?한편 박수혁도 연락처를 저장해 둔 호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와이프?이혼 전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오직 그만을 바라보던 소은정을 스스로 버렸던 그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마음을 되돌리려 하는 사람도 그다.과거의 일들이 떠오르며 호흡마저 가빠졌다. 이때 박수혁의 휴대폰이 울렸다.“오빠, 할아버지가 본가로 오라시는데...”“그래.”박예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박수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깊은 한숨을 내쉰 박수혁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차라리 다른 일에 집중을 하는 게 더 나을지도.한편, 박예리는 거칠게 침대에 휴대폰을 던졌다. 쌤통이라고 놀려주려고 했는데 기회마저 주지 않다니.박수혁이 트윈즈 엔터 지분을 소은정에게 넘긴 덕에 그녀가 트윈지 엔터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는 소식에 박대한은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소은정에게 사과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일로 지금까지 고통을 받던 그녀는 할아버지의 화가 다른 곳으로 향하자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박수혁이 차량이 박씨 저택에 도착하고 집사가 바로 뛰쳐나왔다.“회장님은 서재에 계십니다.”고개를 끄덕인 박수혁이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서재로 들어선 순간, 찻잔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민첩하게 피한 덕에 애꿎은 찻잔만 문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뭘 잘했다고 여길 기어들어와!”박대한이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왜 그러세요?”미간을 찌푸린 박수혁이 물었다.“왜 그러세요? 소은정 그 계집애한테 트윈즈 주식을 홀랑 다 넘겼다면서? SC그룹에서, 그 애가 우리한테 어떻게 했는지 잊었어? 이번 기회야말로 우리가 주도권을 다시 찾을 기회인데 그걸 홀랑 날려?”
소은정이 정말 친정의 힘으로 입지를 다지고 싶었다면 그녀를 볼 때마다 비난을 퍼붓는 가족들에게 얼마든지 진짜 신분을 밝혔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한 건 결혼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박수혁 그의 사랑이었다. 물론 그 기회를 차버렸지만.“그 아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걸 지켜볼 셈이냐? 그건 우리 태한그룹에게 큰 손해나 마찬가지야!”소은정이 다른 누구와 재혼을 한다면 전 남편이었던 박수혁과 태한그룹, 박씨 일가까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게 분명했다. 비록 발칙한 소은정이 며느릿감으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 뒤에 있는 강력한 SC그룹의 서포트를 얻을 수 있다면 지난 과거는 잊고 편견 없이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박대한은 생각했다.한편, 박대한의 말에 박수혁의 마음은 다른 의미로 복잡해졌다.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은정이가?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다.비록 이혼 뒤 염문이 끊이지 않는 소은정이었지만 그들 중 누구와 결혼을 할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하지만 만약 정말 소은정이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면...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거부감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그건 안 돼!“소은정이 싫다고 하면 비슷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해. 그래야 SC그룹과 싸울 수 있어.”결혼은 결국 그룹과 가문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박대한의 말이 역겹게 느껴졌다.“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더 이상 SC그룹 건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나서지 마세요.”괜히 재결합이라는 말을 꺼내 소은정과의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도 싫었지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는 건 더 최악이었다.할 말을 마친 박수혁은 미련 없이 서재를 나섰다.한편 계단에서 할아버지의 호통을 기다리던 박예리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고 찻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 걸 제외하고 큰소리 한 번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엿들을 용기도 없어 서성이던 그때, 박수혁이 내려왔다.“오빠, 내가 말했지. 소은정이랑 엮이지 말라고. 걔한테 잘해 주지 마. 걔는 그럼 자
이른 아침 햇살이 커튼을 뚫고 흘러들고 소은정은 부스스 눈을 떴다.소은정은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바로 회사로 향했다. 거성그룹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어 매일 직접 연구실로 가볼 필요가 없어졌다.이제 소은정은 새로운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눈길을 돌렸다.회사에 도착해 최신 기사를 검색해 보니 어느새 사람들은 “소은정&소은해”파, “소은정&유준열”파로 나뉘어 저희들끼리 싸우고 있었다.그중 일부는 “소은정&박수혁”을 응원하기도 했지만 불륜남 옹호라며 바로 사람들의 질투를 받았다.하, 다른 건 몰라도 박수혁 욕하는 건 마음에 드네.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우연준이 물었다.“대표님, 기사 내려달라고 할까요?”“아니에요. 재밌는데 뭐. 어차피 이 사람들 말대로 될 것도 아니고. 왜 그런 데 신경을 써요?”소은정은 언젠가 소은해와 그녀의 관계를 알게 된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했다.소은정의 반응에 우연준도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을 나섰다.한편 태한그룹, 이한석은 요즘 따라 점점 더 이상해지는 박수혁의 눈치를 다시 살폈다. 가끔씩 뉴스는 확인하셔도 스캔들이나 루머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던 분이 요즘 따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계신다.가끔씩 그를 향해 악플을 다는 유저들에게는 직접 답글을 달기도 했다. 그럴수록 이미지만 나빠진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소은정&소은해”파, “소은정&유준열”파로 나뉘어 더 잘 어울리네 어쩌네 떠드는 사람들을 보니 박수혁은 화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소은해, 유준열, 걔들이 나보다 더 낫다고?왜 나보다 더 인기가 많은 건데!남자 보는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박수혁은 짜증스레 태블릿을 책상 위로 던졌다.힐끗 기사를 확인한 이한석은 몰래 한숨을 쉬었다.또 소은정 씨에 관한 거네.“대표님, 이 글들 전부 내리시는 게 어떨까요?”보다 못한 이한석이 제안했다.“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저 두 자식보다 더 떨어진다는 게 말이 돼?”박수혁의
소은정이 맡은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는 거성 건처럼 순조롭지 않았다. 가격 협상까지 끝마친 상황에서 갑자기 상대편이 가격을 300%나 인상했기 때문이었다.소은정은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SC그룹의 대형 프로젝트, 이사, 주주들이 모두 주시하고 있는 사안이었다.협상을 위해 파견한 직원들도 별다른 성과 없이 돌아오더니 갑자기 건설 업체의 태도가 더 강경하게 변했다.의미없는 기싸움을 해봤자 양쪽 모두에게 좋을 게 없다. 게다가 소은호는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 즉 그녀 혼자서 온전히 이 일을 해결해야 함을 의미했다.협상을 나갔던 직원들이 올린 보고서를 읽어보던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갑자기 태도가 바뀐 거지?그 표정을 눈치챈 우연준이 덧붙였다.“알아봤는데 누군가 석동우 대표와 은밀히 접촉한 것 같습니다. 새 프로젝트와 보너스까지 제안한 것 같더군요. 지금 두 프로젝트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누군지는 알아냈어요?”“그건 아직. 워낙 신중하게 움직이는 자라 종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괘씸하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다른 지역의 건설 업체와 협력한다면 원가가 더 올라갑니다. 어떻게든 석동우 대표와 협상을 이뤄내야 합니다.”“한번 만나자고 해요.”이대로 주도권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네.”만나자는 제안에 석동우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흔쾌히 응했다.하지만 약속시간이 맞춰 장소에 도착한 소은정과 달리 석동우는 30분이나 늦게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잔뜩 굳은 소은정의 얼굴을 보며 석동우가 사과를 건넸다.“오래 기다리셨죠? 아 제가 급한 볼 일이 있어서. 죄송합니다.”죄송하다는 말과 달리 표정이며 제스처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하? 기싸움을 하시겠다?소은정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렇게 바쁘시면 미리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오늘만 날인가요? 가보세요. 약속은 다시 잡으시죠.”말을 마친 소은정이 핸드백을 들고 일어서려 하자 석동우는 당황하더니 그녀의 앞을 막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