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 씨의 이상형을 왜 나한테 물으시는 걸까?당황한 이한석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말해 봐.”박수혁이 이한석을 다시 다그쳤다.“두 사람 사이 좋아 보이던데. 말해 보라고.”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노려보고 있는 박수혁과 눈이 마주친 이한석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이건 분명 협박이다.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소리다.계속 이대로 출근하다간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한참을 고민하던 이한석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변명했다.“대표님, 저 소은정 씨와 안 친합니다. 소은정 씨 이상형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그의 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여전히 서늘한 시선에 이한석은 바로 말을 이어갔다.“3년 전, 소은정 씨는 모든 걸 버리고 대표님과 결혼하지 않았습니까? 이상형이라면 분명 대표님 같은 사람이겠죠. 유준열은 절대 아닙니다.”그제야 고개를 숙이는 박수혁의 모습에 이한석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 한고비 넘겼다.“거성 프로젝트 기자회견 준비해. 차질 없이. 알겠어?”“네. 알겠습니다. 새 휴대폰은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지옥의 질문 세례를 견디는 것보다 일을 하는 게 훨씬 더 즐거웠으므로 이한석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휴대폰을 주워 다시 댓글을 확인하던 박수혁은 다시 짜증스레 휴대폰을 뒤엎었다.유준열, 그딴 자식이 뭔데. 다들 눈이 삔 거 아니야?박수혁이 열을 올리는 사이, 인터넷에서 소은정과 유준열은 국민 연상연하 커플로 떠올랐다. 비록 양측 모두 인정하지 않았지만 팬들의 극성에 두 사람의 열애는 기정사실화되었고 가만히 있던 소은해에게까지 불똥이 튀고 말았다.그의 인스타 아래에는 불쌍하다, 다시 소은정을 빼앗아라, 그냥 포기하라는 등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오후가 되고 태한, 거성 SC그룹의 기자회견 발표에 정재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다들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궁금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임춘식이 워낙 보안 작업을 열심히 한 덕에 아무런 정보도 얻어내지 못했다.기자 회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임춘식은 새로 개발된 인공지능 칩 “휴먼 월드”의 기능에 대해 설명했다.의학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제품에 기자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제품이 상용화된다면 인류의 발전에 지대한 기여가 될 사건으로 기록될 만큼 놀라운 성과였다.임춘식의 차분한 브리핑과 놀라운 표정의 기자들과 전문가들의 표정을 파악한 소은정은 성취감에 두 눈을 반짝였다.사랑? 남자?그것보다 일이 훨씬 더 재밌고 짜릿했다.기자회견이 끝나자 바로 기립박수가 터졌고 일정이 끝났음에도 임춘식의 주위로 수많은 전문가들과 기자들이 몰려들었다.예정 시간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질문 세례에 임춘식이 진땀을 흘릴 무렵, 우연준의 문자가 도착했다. 트윈즈 엔터 지분 인수가 끝나 주주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대충 눈치를 보고 조용히 자리를 뜨려던 그때, 눈치 빠른 기자들이 바로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대표님, 더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아, 프로젝트 관련 사항은 임 대표님한테 질문하세요. 감사합니다.”친절한 소은정의 태도에 기자들도 경계를 풀었다.“아, 그럼 프로젝트 말고 사생활에 관련된 질문을 해도 될까요?”“글쎄요. 너무 프라이빗한 질문이라면 거절하겠습니다.”“인터넷에서 유준열 씨와 대표님의 열애설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일전에 유준열 씨는 대표님을 이상형으로 꼽았는데 그렇다면 대표님은 유준열 씨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순간, 술렁대던 현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지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소은정에게로 쏠렸다.“글쎄요. 요즘 유준열 씨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저도 물론 팬으로서 좋아합니다.”명확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팬으로서라는 단어를 통해 뜻을 전달하기엔 충분했다.이에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길을 비켜주던 기자들은 박수혁이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아, 전 남편인 박수혁 대표 앞에서 그런 질문을 한 것도 모자라 애매모호한 소은정의 대답에 더 기분이 언짢은 듯한 박수혁의 모습에 기자들은 바로 긴장하기 시작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박수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소은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없으니 최소한의 예의도 차리지 않는 모습에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여전히 가슴이 아려왔다.성강희, 소은찬, 소은해, 유준열 심지어 이한석까지. 모두 다 친절하게 대하는 그녀가 그에게만 보여주는 증오 어린 시선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한편, 소은정은 박수혁이 알아서 비키길 기다렸지만 30초가 흐르고 1분이 흘러도 꿈적도 하지 않았다.다시 한번 거절하려던 그때 박수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가는 곳이면 그게 어디든 안 갈 거라고? 정말?”“당...”미처 말을 끝내기 전에 운전석에 있던 우연준이 어색하게 기침을 했다.“트윈즈 그룹 지분 3%, 양도 계약서에 내가 사인을 했던가?”능글맞게 말끝을 흐리는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은 바로 우연준을 쳐다보았다.“아까 말씀드리려 했는데 계약서 작성은 마쳤지만 아직 사인은 안 하신 상태입니다.”깊은 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우연준을 힐끗 노려보았다.진작 말할 것이지.하지만 미처 말하기 전에 불쑥 나타난 박수혁 때문에 말을 끝내지 못했던 우연준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박수혁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피어오르고 다시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1초... 2초...박수혁이 고개를 돌린 순간.“잠깐!”소은정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우 비서, 뭐해요? 박 대표님 모시지 않고?”소은정의 말에 우연준이 바로 차에서 내려 좌측 차 문을 열었다.“타시죠.”목적을 달성한 박수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랐다. 은은한 향수 향이 박수혁의 코끝을 자극했다.그녀의 분위기처럼 은은하고 차가운 분위기의 향이 박수혁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자극적인 여성 향수 냄새는 극혐하던 박수혁이었지만 왠지 향수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제야 소은정은 방금 전 우연준이 건넨 파일을 확인했다. 역시, 지분 양도 계약서에 박수혁의 사인이 비어있었다.“왜 지분을 양도하려는 거야?”소은정은
아무 생각 없이 비아냥거린 말이었지만 박수혁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소은정도, 서민영도, 허하진도, 그에게 호감을 표하는 여자들은 결국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걸까?착잡한 마음에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박수혁은 한참 뒤에야 말했다.“은정아, 넌 걔들이랑 달라.”적어도 소은정은 한때 그의 와이프였지만 서민영과 허하진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그래. 난 다르지. 내 특이한 혈액형 덕분에 결혼에 골인했으니까. 뭐 허울뿐인 와이프였지만.”소은정이 피식 웃었다.남 얘기하듯 담담하게 말하던 소은정은 곧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마음과 달리 삐딱하게 나가는 말, 그리고 더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소은정.마음이 복잡했다.“도착했습니다.”우연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는 입장인 우연준은 불편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소은정은 단 1초도 그와 함께하고 싶지 않은 듯 바로 차에서 내렸고 박수혁도 그 뒤를 따랐다.갑자기 주주회가 열린 거도 모자라 방금 전까지 거성그룹 프로젝트 기자 회견장에 있던 두 사람이 트윈즈 엔터에 나타나자 주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박 대표님.”“소 대표님.”주주들이 일어서고 고온하게 인사를 건넸고 그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던 박수혁은 대충 고개를 까닥했다.트윈즈 그룹 대표 허강운은 눈치껏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 먼저 두 사람더러 타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멈칫하다 엘리베이터 탄 박수혁과 달리 소은정은 싱긋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아, 저는 급하게 통화할 데가 있어서 먼저들 올라가세요.”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박수혁과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다는 뜻임을 눈치챈 박수혁은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 물론 다른 주주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엘리베이터에 탔다.인적이 드문 곳에서 소은해와 통화를 마친 소은정이 돌아선 순간, 독기를 잔뜩 품은 허하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소은정, 여기가 어디라고 와?”성큼성큼 다가선 허하진이 물었
최대 주주가 바뀐 사실을 알면 허하진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다.“소은정, 너 뭐가 그렇게 잘났어? 너나 나나 집안 도움받으면서 사는 거 마찬가지잖아.”그녀도 소은정도 결국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모 덕에 호의호식하는 상황에 뭐가 그렇게 잘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입이 트인 허하진은 소은정의 과거 이야기까지 끄집어냈다.“소씨 일가가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수혁 오빠 집안에서는 네가 누군지 모르고 쫓아냈다며? 그것 봐. 집안 서포트가 없으면 넌 그냥 버림받은 이혼녀라고.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신분을 공개한 거야? 네가 SC그룹 딸이라고 하면 오빠가 다시 널 봐줄 줄 알았어? 하여간, 천박하긴.”허하진은 어떻게든 저 고고한 소은정의 가면을 벗겨내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당연히 화를 낼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소은정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실려있었다.“허하진 씨, 이혼은 내가 먼저 제안한 거니 쫓겨난 것도 아니고. 난 한 번 돌아서면 끝이에요. 상대방 기준에 맞게 날 맞출 생각은 없어요. 뭐, 다른 건 몰라도 그 점 하나는 허하진 씨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말을 마친 소은정은 입꼬리를 씩 올린 채 자리를 떴다.한참 뒤에야 소은정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허하진은 하이힐 굽으로 바닥을 세게 내리치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감히 내 구역에서 날 모욕해? 감히?이성을 잃은 허하진은 바로 소은정의 뒤를 따랐다. 머릿속에는 온통 소은정에게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띵!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소은정이 타려던 순간, 허하진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다른 한 손을 번쩍 들었다.“소은정, 너 죽었어!”하지만 그 손이 소은정에게 닿기도 전, 엘리베이터에 있던 누군가 날린 킥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아!”비참하게 바닥에 쓰러진 허하진이 눈을 부라리던 순간,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수혁 오빠...”뭐야? 두 사람 이혼한 거 아니었어? 소은정 저 여자 때문에 날 때린 거야?박수혁은 벌레를 바라보듯 혐오스러운 눈빛으
허하진은 바닥을 기어 허강운의 손목을 잡았다.“아빠, 도대체 왜 그래? 소은정 저 계집애가 뭐라고 그렇게 굽신거리는 거냐고!”하지만 매정하게 딸의 손을 뿌리친 허강운은 방금 전 소은정의 말을 떠올리고 억지로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이 멍청한 X. 소은정은 SC그룹의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야. 말 한마디로 우리 회사를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고. 주주회에서 얌전히 있어. 또 소란 부리면 해외로 추방시켜버릴 테니까.”뭐? 최대 주주? 대표이사?불안한 예감에 허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한편, 엘리베이터, 소은정과 박수혁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회의실 앞에서 소은정을 기다리던 우연준이 바로 다가갔다.박수혁은 특유의 포스와 외모로 어디를 가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옆에 서 있는 소은정도 그 포스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박수혁보다 한 발 더 앞서 걷는 그녀는 마치 모두의 경외를 받기 위해 태어난 고귀한 여왕과도 같았다.곧이어 허강운과 허하진도 도착하고 주주회가 시작되었다. 우연준이 소은정 대신 여러 가지 사항들을 발표했다.가장 끝자리에 앉아 상석에 앉아 모두의 시선을 즐기는 소은정의 모습을 바라보던 허하진은 깨닫고야 말았다.긴 회의 테이블의 거리처럼, 그녀와 소은정은 아예 레벨이 다른 사람이었음을. 그녀가 잘못 건드린 거였음을.그리고 허하진이 그토록 사랑하는 박수혁의 시선마저 소은정을 향해 있었다.형식적인 절차가 이어지고 복잡한 용어들 중 허하진이 알아들은 건 마지막 한 마디뿐이었다.소은정이 최대 주주가 되었고 그녀의 아버지 허강운은 대표직에서 해임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글즈 엔터 대표 도준호가 새 대표이사로 취임했다는 것이었다.소은정은 다채롭게 변하는 허하정의 표정을 재밌다는 듯 지켜보았다.역시, 기대 대로네.이번 사건으로 허강운도 더 이상 사고뭉치 딸을 곁에 두지 않을 것일 테니 다시 해외로 보내겠지. 허하정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속이 다 시원했다.주주회가 끝나고 형식적인 인사가 귀찮
뭐 일부러? 먼저 급정거를 한 건 분명 박수혁이었다. 어차피 사고는 일어났고 구구절절 변명도 귀찮았던 소은정이 말했다.“그래, 일부러 그런 거야.”일부러 그런 거면 뭐 어쩔 건데? 합의 보면 그만이지.도발적인 소은정의 눈빛에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어떻게 할 거야?”그냥 떠본 것인데 정말 일부러 그런 것이라 대답할 줄이야.“뭘 어떡해. 회사로 비용 청구해.”사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박수혁의 책임이 더 컸지만 일부러 했다고 말한 이상,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휴대폰을 꺼낸 박수혁이 물었다.“그래. 견적 뽑고 연락할게. 번호 바꿨어?”“아니...”무의식적으로 대답한 소은정이 말끝을 흐렸다.휴대폰에 저장해 둔 번호로 전화를 건 박수혁의 귓가에 딱딱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전화를 받을 수 없어...”박수혁의 번호를 차단한 사실이 밝혀지고 박수혁의 따가운 시선에 소은정은 머쓱한 듯 고개를 돌렸다.“아니다. 뭐 따로 연락을 해. 대충 얼만지 말해. 지금 바로 입금해 줄 테니까.”소은정도 휴대폰을 꺼냈다.“됐어. 이런 건 정확하게 해야지. 연락처 남겨.”물론 박수혁이 굳이 그 돈 몇 푼에 집착하는 건 아니었다. 기회를 잡은 이상 어떻게든 차단을 풀고 싶었다.“우 비서한테 연락해.”여전히 단호한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은 전략을 바꾸었다.“나랑 연락하는 거 싫으면 됐어. 그냥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처리하지 마.”박수혁에게 빚을 지는 걸 질색하는 소은정의 마음을 정확하게 공략한 전략이었다.하, 지금 보내주고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차단은 다시 하면 그만이지.깊은 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알았어. 번호 안 바꿨으니까 연락해.”말을 마친 소은정이 다시 시동을 걸었다.하지만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박수혁이 창문으로 손을 뻗더니 핸들을 꽉 잡았다.기다란 손가락은 마치 조각한 듯 아름다웠다.박수혁의 돌발행동에 소은정이 당황하던 그때, 박수혁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이렇게 가고 딴
“이제 됐지?”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마침 그 글귀를 확인했다. 순간, 망치로 가슴을 내리친 뒤 답답했다.고개를 홱 돌린 소은정은 박수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떴다. 코끝이 찡하며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그런 이름으로 저장해 주고 있었구나.와이프?와이프라고 생각하긴 했었나?한편 박수혁도 연락처를 저장해 둔 호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와이프?이혼 전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오직 그만을 바라보던 소은정을 스스로 버렸던 그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마음을 되돌리려 하는 사람도 그다.과거의 일들이 떠오르며 호흡마저 가빠졌다. 이때 박수혁의 휴대폰이 울렸다.“오빠, 할아버지가 본가로 오라시는데...”“그래.”박예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박수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깊은 한숨을 내쉰 박수혁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차라리 다른 일에 집중을 하는 게 더 나을지도.한편, 박예리는 거칠게 침대에 휴대폰을 던졌다. 쌤통이라고 놀려주려고 했는데 기회마저 주지 않다니.박수혁이 트윈즈 엔터 지분을 소은정에게 넘긴 덕에 그녀가 트윈지 엔터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는 소식에 박대한은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소은정에게 사과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일로 지금까지 고통을 받던 그녀는 할아버지의 화가 다른 곳으로 향하자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박수혁이 차량이 박씨 저택에 도착하고 집사가 바로 뛰쳐나왔다.“회장님은 서재에 계십니다.”고개를 끄덕인 박수혁이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서재로 들어선 순간, 찻잔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민첩하게 피한 덕에 애꿎은 찻잔만 문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뭘 잘했다고 여길 기어들어와!”박대한이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왜 그러세요?”미간을 찌푸린 박수혁이 물었다.“왜 그러세요? 소은정 그 계집애한테 트윈즈 주식을 홀랑 다 넘겼다면서? SC그룹에서, 그 애가 우리한테 어떻게 했는지 잊었어? 이번 기회야말로 우리가 주도권을 다시 찾을 기회인데 그걸 홀랑 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