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 씨의 이상형을 왜 나한테 물으시는 걸까?당황한 이한석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말해 봐.”박수혁이 이한석을 다시 다그쳤다.“두 사람 사이 좋아 보이던데. 말해 보라고.”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노려보고 있는 박수혁과 눈이 마주친 이한석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이건 분명 협박이다.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소리다.계속 이대로 출근하다간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한참을 고민하던 이한석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변명했다.“대표님, 저 소은정 씨와 안 친합니다. 소은정 씨 이상형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그의 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여전히 서늘한 시선에 이한석은 바로 말을 이어갔다.“3년 전, 소은정 씨는 모든 걸 버리고 대표님과 결혼하지 않았습니까? 이상형이라면 분명 대표님 같은 사람이겠죠. 유준열은 절대 아닙니다.”그제야 고개를 숙이는 박수혁의 모습에 이한석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 한고비 넘겼다.“거성 프로젝트 기자회견 준비해. 차질 없이. 알겠어?”“네. 알겠습니다. 새 휴대폰은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지옥의 질문 세례를 견디는 것보다 일을 하는 게 훨씬 더 즐거웠으므로 이한석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휴대폰을 주워 다시 댓글을 확인하던 박수혁은 다시 짜증스레 휴대폰을 뒤엎었다.유준열, 그딴 자식이 뭔데. 다들 눈이 삔 거 아니야?박수혁이 열을 올리는 사이, 인터넷에서 소은정과 유준열은 국민 연상연하 커플로 떠올랐다. 비록 양측 모두 인정하지 않았지만 팬들의 극성에 두 사람의 열애는 기정사실화되었고 가만히 있던 소은해에게까지 불똥이 튀고 말았다.그의 인스타 아래에는 불쌍하다, 다시 소은정을 빼앗아라, 그냥 포기하라는 등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오후가 되고 태한, 거성 SC그룹의 기자회견 발표에 정재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다들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궁금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임춘식이 워낙 보안 작업을 열심히 한 덕에 아무런 정보도 얻어내지 못했다.기자 회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임춘식은 새로 개발된 인공지능 칩 “휴먼 월드”의 기능에 대해 설명했다.의학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제품에 기자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제품이 상용화된다면 인류의 발전에 지대한 기여가 될 사건으로 기록될 만큼 놀라운 성과였다.임춘식의 차분한 브리핑과 놀라운 표정의 기자들과 전문가들의 표정을 파악한 소은정은 성취감에 두 눈을 반짝였다.사랑? 남자?그것보다 일이 훨씬 더 재밌고 짜릿했다.기자회견이 끝나자 바로 기립박수가 터졌고 일정이 끝났음에도 임춘식의 주위로 수많은 전문가들과 기자들이 몰려들었다.예정 시간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질문 세례에 임춘식이 진땀을 흘릴 무렵, 우연준의 문자가 도착했다. 트윈즈 엔터 지분 인수가 끝나 주주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대충 눈치를 보고 조용히 자리를 뜨려던 그때, 눈치 빠른 기자들이 바로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대표님, 더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아, 프로젝트 관련 사항은 임 대표님한테 질문하세요. 감사합니다.”친절한 소은정의 태도에 기자들도 경계를 풀었다.“아, 그럼 프로젝트 말고 사생활에 관련된 질문을 해도 될까요?”“글쎄요. 너무 프라이빗한 질문이라면 거절하겠습니다.”“인터넷에서 유준열 씨와 대표님의 열애설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일전에 유준열 씨는 대표님을 이상형으로 꼽았는데 그렇다면 대표님은 유준열 씨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순간, 술렁대던 현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지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소은정에게로 쏠렸다.“글쎄요. 요즘 유준열 씨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저도 물론 팬으로서 좋아합니다.”명확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팬으로서라는 단어를 통해 뜻을 전달하기엔 충분했다.이에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길을 비켜주던 기자들은 박수혁이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아, 전 남편인 박수혁 대표 앞에서 그런 질문을 한 것도 모자라 애매모호한 소은정의 대답에 더 기분이 언짢은 듯한 박수혁의 모습에 기자들은 바로 긴장하기 시작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박수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소은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없으니 최소한의 예의도 차리지 않는 모습에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여전히 가슴이 아려왔다.성강희, 소은찬, 소은해, 유준열 심지어 이한석까지. 모두 다 친절하게 대하는 그녀가 그에게만 보여주는 증오 어린 시선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한편, 소은정은 박수혁이 알아서 비키길 기다렸지만 30초가 흐르고 1분이 흘러도 꿈적도 하지 않았다.다시 한번 거절하려던 그때 박수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가는 곳이면 그게 어디든 안 갈 거라고? 정말?”“당...”미처 말을 끝내기 전에 운전석에 있던 우연준이 어색하게 기침을 했다.“트윈즈 그룹 지분 3%, 양도 계약서에 내가 사인을 했던가?”능글맞게 말끝을 흐리는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은 바로 우연준을 쳐다보았다.“아까 말씀드리려 했는데 계약서 작성은 마쳤지만 아직 사인은 안 하신 상태입니다.”깊은 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우연준을 힐끗 노려보았다.진작 말할 것이지.하지만 미처 말하기 전에 불쑥 나타난 박수혁 때문에 말을 끝내지 못했던 우연준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박수혁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피어오르고 다시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1초... 2초...박수혁이 고개를 돌린 순간.“잠깐!”소은정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우 비서, 뭐해요? 박 대표님 모시지 않고?”소은정의 말에 우연준이 바로 차에서 내려 좌측 차 문을 열었다.“타시죠.”목적을 달성한 박수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랐다. 은은한 향수 향이 박수혁의 코끝을 자극했다.그녀의 분위기처럼 은은하고 차가운 분위기의 향이 박수혁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자극적인 여성 향수 냄새는 극혐하던 박수혁이었지만 왠지 향수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제야 소은정은 방금 전 우연준이 건넨 파일을 확인했다. 역시, 지분 양도 계약서에 박수혁의 사인이 비어있었다.“왜 지분을 양도하려는 거야?”소은정은
아무 생각 없이 비아냥거린 말이었지만 박수혁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소은정도, 서민영도, 허하진도, 그에게 호감을 표하는 여자들은 결국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걸까?착잡한 마음에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박수혁은 한참 뒤에야 말했다.“은정아, 넌 걔들이랑 달라.”적어도 소은정은 한때 그의 와이프였지만 서민영과 허하진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그래. 난 다르지. 내 특이한 혈액형 덕분에 결혼에 골인했으니까. 뭐 허울뿐인 와이프였지만.”소은정이 피식 웃었다.남 얘기하듯 담담하게 말하던 소은정은 곧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마음과 달리 삐딱하게 나가는 말, 그리고 더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소은정.마음이 복잡했다.“도착했습니다.”우연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는 입장인 우연준은 불편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소은정은 단 1초도 그와 함께하고 싶지 않은 듯 바로 차에서 내렸고 박수혁도 그 뒤를 따랐다.갑자기 주주회가 열린 거도 모자라 방금 전까지 거성그룹 프로젝트 기자 회견장에 있던 두 사람이 트윈즈 엔터에 나타나자 주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박 대표님.”“소 대표님.”주주들이 일어서고 고온하게 인사를 건넸고 그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던 박수혁은 대충 고개를 까닥했다.트윈즈 그룹 대표 허강운은 눈치껏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 먼저 두 사람더러 타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멈칫하다 엘리베이터 탄 박수혁과 달리 소은정은 싱긋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아, 저는 급하게 통화할 데가 있어서 먼저들 올라가세요.”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박수혁과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다는 뜻임을 눈치챈 박수혁은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 물론 다른 주주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엘리베이터에 탔다.인적이 드문 곳에서 소은해와 통화를 마친 소은정이 돌아선 순간, 독기를 잔뜩 품은 허하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소은정, 여기가 어디라고 와?”성큼성큼 다가선 허하진이 물었
최대 주주가 바뀐 사실을 알면 허하진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다.“소은정, 너 뭐가 그렇게 잘났어? 너나 나나 집안 도움받으면서 사는 거 마찬가지잖아.”그녀도 소은정도 결국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모 덕에 호의호식하는 상황에 뭐가 그렇게 잘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입이 트인 허하진은 소은정의 과거 이야기까지 끄집어냈다.“소씨 일가가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수혁 오빠 집안에서는 네가 누군지 모르고 쫓아냈다며? 그것 봐. 집안 서포트가 없으면 넌 그냥 버림받은 이혼녀라고.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신분을 공개한 거야? 네가 SC그룹 딸이라고 하면 오빠가 다시 널 봐줄 줄 알았어? 하여간, 천박하긴.”허하진은 어떻게든 저 고고한 소은정의 가면을 벗겨내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당연히 화를 낼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소은정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실려있었다.“허하진 씨, 이혼은 내가 먼저 제안한 거니 쫓겨난 것도 아니고. 난 한 번 돌아서면 끝이에요. 상대방 기준에 맞게 날 맞출 생각은 없어요. 뭐, 다른 건 몰라도 그 점 하나는 허하진 씨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말을 마친 소은정은 입꼬리를 씩 올린 채 자리를 떴다.한참 뒤에야 소은정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허하진은 하이힐 굽으로 바닥을 세게 내리치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감히 내 구역에서 날 모욕해? 감히?이성을 잃은 허하진은 바로 소은정의 뒤를 따랐다. 머릿속에는 온통 소은정에게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띵!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소은정이 타려던 순간, 허하진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다른 한 손을 번쩍 들었다.“소은정, 너 죽었어!”하지만 그 손이 소은정에게 닿기도 전, 엘리베이터에 있던 누군가 날린 킥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아!”비참하게 바닥에 쓰러진 허하진이 눈을 부라리던 순간,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수혁 오빠...”뭐야? 두 사람 이혼한 거 아니었어? 소은정 저 여자 때문에 날 때린 거야?박수혁은 벌레를 바라보듯 혐오스러운 눈빛으
허하진은 바닥을 기어 허강운의 손목을 잡았다.“아빠, 도대체 왜 그래? 소은정 저 계집애가 뭐라고 그렇게 굽신거리는 거냐고!”하지만 매정하게 딸의 손을 뿌리친 허강운은 방금 전 소은정의 말을 떠올리고 억지로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이 멍청한 X. 소은정은 SC그룹의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야. 말 한마디로 우리 회사를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고. 주주회에서 얌전히 있어. 또 소란 부리면 해외로 추방시켜버릴 테니까.”뭐? 최대 주주? 대표이사?불안한 예감에 허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한편, 엘리베이터, 소은정과 박수혁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회의실 앞에서 소은정을 기다리던 우연준이 바로 다가갔다.박수혁은 특유의 포스와 외모로 어디를 가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옆에 서 있는 소은정도 그 포스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박수혁보다 한 발 더 앞서 걷는 그녀는 마치 모두의 경외를 받기 위해 태어난 고귀한 여왕과도 같았다.곧이어 허강운과 허하진도 도착하고 주주회가 시작되었다. 우연준이 소은정 대신 여러 가지 사항들을 발표했다.가장 끝자리에 앉아 상석에 앉아 모두의 시선을 즐기는 소은정의 모습을 바라보던 허하진은 깨닫고야 말았다.긴 회의 테이블의 거리처럼, 그녀와 소은정은 아예 레벨이 다른 사람이었음을. 그녀가 잘못 건드린 거였음을.그리고 허하진이 그토록 사랑하는 박수혁의 시선마저 소은정을 향해 있었다.형식적인 절차가 이어지고 복잡한 용어들 중 허하진이 알아들은 건 마지막 한 마디뿐이었다.소은정이 최대 주주가 되었고 그녀의 아버지 허강운은 대표직에서 해임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글즈 엔터 대표 도준호가 새 대표이사로 취임했다는 것이었다.소은정은 다채롭게 변하는 허하정의 표정을 재밌다는 듯 지켜보았다.역시, 기대 대로네.이번 사건으로 허강운도 더 이상 사고뭉치 딸을 곁에 두지 않을 것일 테니 다시 해외로 보내겠지. 허하정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속이 다 시원했다.주주회가 끝나고 형식적인 인사가 귀찮
뭐 일부러? 먼저 급정거를 한 건 분명 박수혁이었다. 어차피 사고는 일어났고 구구절절 변명도 귀찮았던 소은정이 말했다.“그래, 일부러 그런 거야.”일부러 그런 거면 뭐 어쩔 건데? 합의 보면 그만이지.도발적인 소은정의 눈빛에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어떻게 할 거야?”그냥 떠본 것인데 정말 일부러 그런 것이라 대답할 줄이야.“뭘 어떡해. 회사로 비용 청구해.”사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박수혁의 책임이 더 컸지만 일부러 했다고 말한 이상,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휴대폰을 꺼낸 박수혁이 물었다.“그래. 견적 뽑고 연락할게. 번호 바꿨어?”“아니...”무의식적으로 대답한 소은정이 말끝을 흐렸다.휴대폰에 저장해 둔 번호로 전화를 건 박수혁의 귓가에 딱딱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전화를 받을 수 없어...”박수혁의 번호를 차단한 사실이 밝혀지고 박수혁의 따가운 시선에 소은정은 머쓱한 듯 고개를 돌렸다.“아니다. 뭐 따로 연락을 해. 대충 얼만지 말해. 지금 바로 입금해 줄 테니까.”소은정도 휴대폰을 꺼냈다.“됐어. 이런 건 정확하게 해야지. 연락처 남겨.”물론 박수혁이 굳이 그 돈 몇 푼에 집착하는 건 아니었다. 기회를 잡은 이상 어떻게든 차단을 풀고 싶었다.“우 비서한테 연락해.”여전히 단호한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은 전략을 바꾸었다.“나랑 연락하는 거 싫으면 됐어. 그냥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처리하지 마.”박수혁에게 빚을 지는 걸 질색하는 소은정의 마음을 정확하게 공략한 전략이었다.하, 지금 보내주고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차단은 다시 하면 그만이지.깊은 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알았어. 번호 안 바꿨으니까 연락해.”말을 마친 소은정이 다시 시동을 걸었다.하지만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박수혁이 창문으로 손을 뻗더니 핸들을 꽉 잡았다.기다란 손가락은 마치 조각한 듯 아름다웠다.박수혁의 돌발행동에 소은정이 당황하던 그때, 박수혁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이렇게 가고 딴
“이제 됐지?”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마침 그 글귀를 확인했다. 순간, 망치로 가슴을 내리친 뒤 답답했다.고개를 홱 돌린 소은정은 박수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떴다. 코끝이 찡하며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그런 이름으로 저장해 주고 있었구나.와이프?와이프라고 생각하긴 했었나?한편 박수혁도 연락처를 저장해 둔 호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와이프?이혼 전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오직 그만을 바라보던 소은정을 스스로 버렸던 그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마음을 되돌리려 하는 사람도 그다.과거의 일들이 떠오르며 호흡마저 가빠졌다. 이때 박수혁의 휴대폰이 울렸다.“오빠, 할아버지가 본가로 오라시는데...”“그래.”박예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박수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깊은 한숨을 내쉰 박수혁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차라리 다른 일에 집중을 하는 게 더 나을지도.한편, 박예리는 거칠게 침대에 휴대폰을 던졌다. 쌤통이라고 놀려주려고 했는데 기회마저 주지 않다니.박수혁이 트윈즈 엔터 지분을 소은정에게 넘긴 덕에 그녀가 트윈지 엔터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는 소식에 박대한은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소은정에게 사과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일로 지금까지 고통을 받던 그녀는 할아버지의 화가 다른 곳으로 향하자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박수혁이 차량이 박씨 저택에 도착하고 집사가 바로 뛰쳐나왔다.“회장님은 서재에 계십니다.”고개를 끄덕인 박수혁이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서재로 들어선 순간, 찻잔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민첩하게 피한 덕에 애꿎은 찻잔만 문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뭘 잘했다고 여길 기어들어와!”박대한이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왜 그러세요?”미간을 찌푸린 박수혁이 물었다.“왜 그러세요? 소은정 그 계집애한테 트윈즈 주식을 홀랑 다 넘겼다면서? SC그룹에서, 그 애가 우리한테 어떻게 했는지 잊었어? 이번 기회야말로 우리가 주도권을 다시 찾을 기회인데 그걸 홀랑 날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