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박수혁 대표님이 이런 음모를 꾸몄을 리가 없잖아요? 솔직히 지성그룹 프로젝트가 SC그룹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도 아니고... 최악의 경우 이번 프로젝트가 완전히 엎어진다 해도 SC의 근간은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걸 박수혁 대표가 모를 리가 없는데 왜...”SC그룹은 거대한 숲과 같은 존재다. 숲의 나무 몇 그루를 벤다 하여 그곳이 황량해지진 않는다. 만약 박수혁이 정말 SC그룹을 노렸다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게 은밀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비록 파장이 크긴 했지만 어딘가 조잡한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박수혁의 솜씨처럼 보이진 않았다.이건의 말에도 한참을 침묵하던 소은정이 문득 물었다.“만약 박수혁 대표의 뜻이 아니라면요?”박수혁이 태한그룹 대표인 건 사실이지만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직원들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까...소은정의 말에 우연준과 이건이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던 소은정이 우연준을 힐끗 바라보았다.“저녁 약속은 잡았죠?”“네. 양 회장님께서 응해 주셨습니다. 별장에서 뵙자더군요.”“그래요.”소은정도 한시름 놓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양동재 회장은 한때 S시 정재계를 꽉 잡고 있던 거물, 이 국장도 수습할 수 없는 일이라면 지금으로서 그녀가 도움을 청할 사람은 그뿐이었다.비록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다지만 그 인맥과 입김은 여전할 테니까.게다가 양 회장은 아빠와도 사이가 좋았다고 그랬으니까 내 부탁이라면... 적어도 듣는 척은 할 거야.”자리에서 일어선 소은정이 이건을 향해 말했다.“그 기자의 행방 은밀하게 쫓으세요. 명심하세요. 무조건 조용히 움직여야 합니다. 여기서 여론이 더 나빠지면 정말 번거로워집니다.”소은정의 당부에 이건이 고개를 끄덕였다.말을 마친 소은정이 우연준과 함께 회의실을 나서고 최성문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호텔로 이동하는 길, 현지 명품 편집샵 번
방금 전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던 방에 잠깐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에는 놀라움, 감탄, 의아함 등 감정들이 섞여있었다.역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의아했던 소은정의 시선이 사람들의 얼굴을 훑다 근엄한 표정의 노인에게서 멈추었다.“오랜만이에요, 아저씨.”흠칫하던 양동재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은정아. 아이고 못 알아 볼 뻔했네. 네 돌잔치에 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컸어. 이제 정말 아가씨네, 아가씨야...”양동재의 말에 소은정이 싱긋 웃어 보였다.그가 정말 그녀의 돌잔치에 참석했는지 당시 한 살이던 소은정이 확인할 방법이 없었지만 일단 그녀를 환영하는 듯한 태도에 마음이 살짝 놓였다.한편, 소은정은 그녀의 등장에 가장 놀란 듯한 강서진을 애써 무시하며 앞으로 다가갔다.“진작 찾아뵀어야 하는 건데 죄송해요.”형식적인 인사에 양동재가 손을 저었다.“젊은이들이야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찾아오는 거지 뭐.”그리고 식탁에 앉은 다른 이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얘들도 다 마찬가지야. 아, 내가 소개를 깜박했구만...”이때 강서진이 벌떡 일어서더니 양동재의 어깨를 주물렀다.“작은 할아버지도 참. 대한민국에 소은정 대표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완벽한 외모에 출중한 능력까지... 대단한 사람이잖아요?”말을 마친 강서진은 환한 미소와 함께 소은정과 눈을 맞추었다.하지만 소은정은 나 좀 칭찬해줘요라는 듯한 눈빛의 강서진은 깔끔하게 무시하며 양 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오며 가며 만나는 사이이니 소개는 안 해도 될 것 같네요.”강서진이 양 회장을 작은 할아버지라고 불렀다라... 생각보다 복잡하네.“하하하! 그래, 그래...”한편 매정한 소은정의 모습에 강서진이 입을 삐죽거렸다.윽, 여전히 차갑네...형식적인 안부 인사가 끝나고 소은정의 모습을 훑어보던 양동재가 눈을 가늘게 떴다.“사실 아까 네가 들어오는데 네 엄마가 살아돌아온 줄 알았다. 깜짝 놀랐어.”그의 말에 소은정도, 강서진도 흠칫했다.소은정
잠시 후, 테라스.직원이 두 사람에게 주스를 건네고 살짝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목을 축였다.그런 소은정을 가만히 지켜보던 강서진이 물었다.“왜 날 보고도 안 놀라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내가 궁금해야 하나요?”왜 친한 척이야...퉁명스러운 소은정의 대답에 말문이 막힌 강서진이 괜히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잠깐 동안의 침묵 끝에 강서진이 다시 물었다.“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에요? 혹시 작은 할아버지한테 뭐 부탁할 거라고 있는 거예요?”“네.”그녀의 대답에 강서진이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턱을 만지작거렸다.“잘됐네요. 양 회장님은 우리 할머니 동생이에요. 아주 가까운 친척이라 이 말이죠. 도움 필요한 거 있으면 내가 대신 좋게 말해 줄 수도 있는데? 어때요?”“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의심 가득한 소은정의 눈빛에 강서진이 어깨를 으쓱했다.“형 얼굴 봐서 내가 특별히 도와주려는 건데...”“그럼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인가요?”소은정의 질문에 한동안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대던 강서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만약 은정 씨가 내 사진... 돌려주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말해 줄 수도 있고요...”아하, 결국 그게 목적이었어?괜한 내기를 했다가 소은정에게 나체 사진이 찍힌 뒤로 강서진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기가 일쑤였다.우연히 SC그룹 이름이라도 들리면 내가 요즘 소은정한테 잘못한 건 없나 다시 돌이켜보는 게 어느새 습관처럼 자리잡았다.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가슴에 품고 다니는 기분, 이제 끝낼 때도 됐잖아!하지만 소은정은 택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글쎄요. 딱히 수지에 맞는 거래는 아닌 것 같네요.”겨우 옆에서 아부 몇 번 하는 걸로 나체 사진을 바꿔? 꿈 깨시지... 평생 발 벗고 못 자게 만들어주겠어...박수혁과 부부였을 때 그녀를 무시했던 건 그렇다 치더라도 추하나에게 저지른 짓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소은정의 단호한 대답에 흠칫하던 강서진이
잠시 후, 다시 방으로 돌아온 소은정은 오늘 식사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훑어보았다.익숙한 얼굴도 낯선 얼굴도 두루 보이는 걸 보였지만 정재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모두들 양 회장에게 굽실대는 모습에 소은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S시는 아직 양 회장이 꽉 잡고 있는 게 분명해. 하지만 양 회장과 독대하게 될 것이란 그녀의 예상과 달리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이 모인 것 같아 의아하면서도 걱정스러웠다.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소은정이 생각에 잠긴 그때,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조용히 다가왔다.“소은정 대표님? 회장님께서 부르십니다.”“아, 네. 고맙습니다.”이에 술잔을 내려놓은 소은정이 직원의 뒤를 따랐다.은은한 조명으로 꾸며진 복도에는 하나둘씩 모여 얘기를 나누는 이들로 가득했고 다들 알게 모르게 소은정을 훑어보고 있었다.잠시 후, 양 회장 앞으로 다가간 소은정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먼저 입을 열었다.“회장님...”그제야 고개를 돌린 양 회장이 그녀를 향해 손을 저었다.“아, 은정아 왔어? 자, 이쪽은 환경부 유지석 장관, 이쪽은 장이한 부장 검사야.”양 회장의 소개를 듣고 있자니 의아함이 더 커져갔지만 일단 그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도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솔직히 양 회장이 따로 얘기만 해주면 쉽게 끝날 일, 왜 굳이 자신의 인맥들을 소개해 주는 걸까? 양 회장에게 이득이 될 게 없는데 말이지... 다른 목적이 있는 건가?하지만 정계쪽 사람들과 안면을 터 나쁠 게 없으니 일단 형식적인 미소로 대화를 이어갔다.생각보다 잘 풀릴 것 같기도 한데... 뭐지? 이 찝찝함은?잠시 후, 식탁에 다시 사람들이 둘러앉았다.소은정은 양 회장의 왼쪽에, 강서진은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그리고 다음 순간, 자연스레 룸으로 들어오는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소은정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바로 오늘 점심에 만났던 박수아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이게 정말 우연일까?다
박수아의 말에 양 회장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혼이 나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은정이가 널 왜 혼내?”낮에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오르며 박수아의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기회를 잡았다 싶은 그녀가 대답을 하려던 그때, 소은정이 먼저 선수를 쳤다.“수아 씨도 참. 그렇게 말씀하시면 회장님께서 오해하시잖아요? 동하 씨랑 제가 만나는 사이인 거야 다들 아는 사실인데 그 사람 앞에서 절 새언니라고 부르면 동하 씨 입장이 뭐가 돼요. 참, 박수혁 대표와 부부였을 때도 못 받은 새언니 대접을 갑자기 받으니 당황스러워서 말이 좀 세게 나갔나 봐요. 남자친구가 오해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요.”박수아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전동하라는 걸 알고 있었던 소은정이 담담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랑 동하 씨가 사귀는 게 창피한 일도 아니고. 굳이 숨길 필요야 없지.부드러운 말투에 날카로운 가시를 숨긴 소은정의 대응에 분위기가 다시 어색하게 가라앉았다.그중에서 가장 가시방석인 건 강서진이었다.박수혁과 절친한 사이인 그는 박수혁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걸 가장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소은정이 직접 전동하와의 사이를 인정하니 그의 마음이 다 씁쓸해졌다.형, 이제 진짜 포기해야 할 것 같아... 우리 형 불쌍해서 어쩌냐...아무것도 모르고 미국에 있을 박수혁 생각에 강서진의 가슴이 먹먹해졌다.한방 먹은 박수아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겉보기엔 예의바른 듯했지만 머리가 달린 사람이라면 그 말에 담긴 뜻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전동하는 내 거니까 넘보지 마.’두 사람의 기싸움을 지켜보던 양 회장이 박수아에게 말했다.“됐어. 두 사람 이혼한 지도 꽤 됐고 그 얘기는 그만하자. 수아 너도... 해외에서 오래 지내느라 뭘 잘 모르겠지만 앞으론 조심해.”“네, 할아버지.”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은 박수아는 소은정을 향해서도 싱긋 웃어 보였다.“소 대표님 말씀이 맞죠. 제가 반가움이 앞서서 철없이 행동했어요. 호칭 정리 똑바로 할
깊은 한숨을 내쉰 양 회장이 주위를 살짝 둘러보다 수저를 내려놓았다.“사실... 이번 일은 나도 도움이 못 될 것 같아. 그래도 마침 오늘 자리에 한 사람들 중에 그쪽 업무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대화는 나눠보렴.”양 회장의 눈짓에 장 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사실 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이번 사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까다롭습니다. 소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요즘 여론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게다가 이번 사건은 소비자들의 건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문제이니 조용히 해결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장 검사의 말에 다른 국회위원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폭로글을 작성한 기자 본인이 직접 해명하지 않는 이상... 쉽게 끝날 것 같진 않군요.”“그런데 그 기자 지금 잠적 상태라면서요?”“휴,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도 그룹 입장에선 좋을 게 없는데요. 잘 진행되던 프로젝트 날개가 꺾이겠어요...”“감사도 들어갔다던데... 재점검 결과가 나오면 해결되지 않을까요?”...너도 나도 자기 의견을 밝혔지만 프로젝트 자체와 SC그룹을 걱정하는 듯한 그들의 말에는 그 어떤 영양가도 담겨있지 않았다.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졌다.얼굴에 띤 미소를 유지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질 무렵, 물 한 모금을 마신 소은정이 양 회장을 바라보았다.“전 회장님 의견이 더 궁금한데요.”애써 소은정의 시선을 무시하던 양 회장이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사실 내 의견도 저 분들과 별 다르지 않아. 지금 뭔가 조치를 취해 봤자 소비자들의 반감만 얻게 될 거다. 점검 결과가 나오면 의심도 비난도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겠니?”양 회장을 빤히 바라보던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알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시고 이렇게 좋은 인맥도 쌓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께서 얼마나 절 걱정하고 계신지 느낄 수 있는 자리였어요.”말을 마친 소은정이 잔에 담긴 술을
그뒤로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정말 취한 것 같네요...”“자기도 마음이 착잡하겠지...”“회장님, 정말 모르는 척하실 겁니까? SC그룹이 주관하고 있는 프로젝트 아닙니까? 소찬식 회장이 직접 나서면 거절하기 힘들 텐데요...”이에 박수아가 코웃음을 쳤다.“소 회장님이 이런 일에 직접 나설 리가 있나요? 이 정도 일도 수습 못 한다며 혼이나 안 내면 다행이죠. 능력있는 척 온갖 이미지 플레잉은 다 하더니. 이제 밑천이 다한 것뿐이에요. 다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승리의 기쁨에 잠긴 박수아를 힐끗 바라보던 양 회장이 진지한 얼굴로 주의를 주었다.“수아야, 너도 정도껏 해. 소 회장은 나랑 꽤 친한 사이야. 소 회장이 직접 연락 오면 나도 그쪽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어.”“그럼 일단 계속 시간을 끌면 되는 거죠?”장 검사의 질문에 양 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아직 어리니 별 다른 방법이 없을 거야. 아버지한테 부탁하든 수아한테 사과를 하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겠지. 우리 수아 기분을 풀어줄 수만 있다면 이 정도야 뭐.”박수아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양 회장의 모습에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 자체가 달라졌다.박수아 때문에 소은정 대표의 부탁을 거절한다라... 그냥 박수혁 대표의 사촌동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좀 더 잘 보일 필요가 있겠어...“고마워요, 할아버지. 저도 할아버지 입장 난처해지시지 않게 정도껏 할게요.”양 회장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리던 박수아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였다.소은정... 멍청한 여자는 아니니 오늘 할아버지가 왜 부탁을 거절했는지도 눈치챘겠지...한편, 별장을 나선 소은정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몸을 꼿꼿이 세웠다.그녀가 진짜 취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최성문도 자연스레 그녀의 팔목을 놔주었다.“호텔로 돌아가실 겁니까?”10시네...시간을 확인한 소은정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비록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아무 수확도 없다고 볼 순 없었다. 적당한 인맥 따위
강서진의 “전략”에 소은정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아차, 실수했다...순식간에 변하는 그녀의 표정에 강서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사람 참 쉽게 안 변해요. 당신 같은 쓰레기가 제대로 된 조언을 할 거라 생각했던 내가 잘못이지... 추하나 씨도 하루빨리 정신 차리고 당신한테서 벗어났으면 좋겠네요. 추하나 씨가 원하면 두 사람 이혼 내가 물심양면으로 도울 거예요.”경멸 가득한 소은정의 표정과 날카로운 목소리에 강서진의 표정 역시 점점 더 어두워졌다.사실 강서진이 이런 조언을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박수아가 전동하와 만난다면 박수혁에게도 다시 기회가 생기는 것이니 슬쩍 던진 것뿐인데 이 정도로 반감을 느낄 줄이야.그리고 추하나까지 언급하는 소은정의 모습에 강서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겨우 다시 찾은 사랑을 눈 뜨고 빼앗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였다.소은정이 정말 추하나를 돕는다면 어쩌면 평생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그건 안 돼... 절대 안 돼...!이때 최성문을 태운 차량이 천천히 다가오고 소은정 역시 또각또각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강서진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외쳤다.“잠... 잠깐만요.”또 무슨 소리를 지껄이려고...?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소은정의 모습에 강서진은 본능적으로 움찔했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다. 다른 방법이 있어요.”“뭔데요?”인내심이 바닥난 소은정이 정말 욕이라도 내뱉기 전에 강서진이 대답했다.“사진... 그 사진만 넘겨요. 그럼 내가 할아버지한테 부탁해 볼게요. 솔직히 수양딸의 딸? 따지고 보면 그냥 남이잖아요? 혈연으로 엮인 나랑은 차원이 다르다고요. 내가 직접 부탁드리면 할아버지도 못 이기는 척 들어주실 거예요.”강서진의 말을 듣고 있던 소은정이 코웃음을 쳤다.그 웃음이 모욕처럼 느껴졌지만 강서진은 말을 이어갔다.“그 대신 앞으로 나랑 하나 일에 간섭하지 말아요. 우리 두 사람 이제 곧 재혼할 거예요. 다른 사람 결혼 생활에 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